[책] 내셔널리즘의 틈새에서: 위안부 문제를 보는 또 하나의 시각, 야마시타 영애저, 박은미역, 한울출판사,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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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학-한국여성주의운동이 민족문제에 걸려 있는 것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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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소개
위안부 담론에 관한 불편한 진실!
페미니즘을 주장하며 한국 사회의 여성차별을 고발해온 활동가들조차 왜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민족주의자’가 되곤 하는가?
이 책의 저자는 운동단체와 여론에 나타난 ‘남성중심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위안부 담론을 치열하게 비판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식민지 지배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라는 관점을 뛰어넘어 여성운동의 역사성과 인간의 실존적 가치 회복운동에 연관시켜 인식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 민족의 틈새를 메우고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힘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는 오늘도 계속된다
2011년 12월 14일, 20년에 걸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가 1000회를 맞이했다. 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 모여 “일본은 사과하고 피해를 보상하라”며 절규해왔다. 수요 집회는 민간 차원의 대표적인 ‘반일집회’로 자리 잡았고, 국내 집회 사상 유례가 없는 최장기 집회로 기록되었다. 수요 집회에는 세계 각국의 인권단체 회원들을 비롯하여 나이와 국적을 불문한 수많은 사람이 참석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외쳤고, 광복절과 세계여성의 날 등의 기념일에는 세계 연대 집회로 진행되기도 했다. 또한 수요 집회는 많은 변화를 낳았다. 무엇보다도 조국에서조차 관심과 배려를 받지 못하고 수치심과 피해의식 속에서 살아온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스스로 권리와 자의식을 주장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군과 일본 정부가 조직적·체계적으로 만든 성폭력 시스템이며, 여성의 인간성을 참혹하게 말살한 세계에서 그 유례가 없는 반인륜적 범죄이다. 일본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범죄에 대한 참회와 반성을 표하고 고통받은 피해자에게 일정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당위론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위안부’ 인식은 역사적 증거가 없는 날조라거나 전쟁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성매매로 치부하는 정도에 불과하며, 1965년 한일협정(한일조약) 때 식민지 지배에 대한 포괄적인 배상이 끝났으므로 ‘위안부’ 청구권도 다시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남성중심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위안부 담론 비틀기!
이 책은 한국과 일본 양국 사이의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인 ‘위안부’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룬 연구서다. ‘위안부’ 또는 ‘위안소’ 제도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서부터 이 제도의 토대가 된 조선의 공창제도에 관해 고찰하며, 한국의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의 흐름을 살핀다. 나아가 여성학의 관점으로 한국의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이른바 민족주의적인 인식에 대해 비판한다.
위안부 문제가 가시화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여성운동은 이 문제를 민족 문제로서 위치 지웠다. 그로 인해 전 국민적인 이슈화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그 내면에 뿌리 깊게 퍼져 있는 남성우월적 지배 구조에 대해서는 미처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일본과의 식민지 과거 청산이 제대로 완료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민족 문제로서의 거시적인 접근도 중요하다. 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이 받은 개인적인 아픔과 경험을 진심으로 위로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고 보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민족주의적인 시각에서 민족의 피해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가부장적 여성관에 의해 힘없이 끌려가 성적 폭력을 당한 여성으로서 바라보고 그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아울러 가해 민족인 이유로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 일본인 위안부의 아픔도 살펴본다.
여전히 현재진행 중인 위안부 문제, ‘민족’이 아닌 ‘여성’의 시각으로 다시 보기!
이 책의 저자 야마시타 영애는 ‘재일조선인’이자 한국에서 여성운동과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활동가다. 저자는 한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여성학에 관한 학술연구뿐 아니라 민주화운동과 여성운동에도 실천적으로 관여하면서 체험한 자신의 내적 성찰과 운동 현실에 대한 인식을 이 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위안소 제도를 연구·분석하는 것은 물론, 운동단체와 여론에 나타난 남성중심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위안부 담론을 비판하고 있다. 일본 사회든 한국 사회든 근대에 형성된 민족의식은 남성중심의 가부장제를 그 토대로 한다. 어느 사회에서든 여성은 배제되고 차별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지금도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데 지배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사죄와 배상, 진상규명 등을 둘러싼 위안부 문제는 아직도 현재진형행이다. 우리는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문제에서 어떤 역사적 교훈을 배울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 이 책이 조금이나마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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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장.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갈등
1. ‘조선인’으로서
2.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고뇌
3. 한국 유학과 위안부 문제
4. 정신대 문제의 부상이 드러낸 것
제1장. 일본군 위안소제도의 배경: 조선의 공창제도
1. 공창제도 실시의 배경
2. 조선인 매매춘에 대한 공창화정책
3. 공창제도의 확립
4. 공창제도의 전개
제2장. 일본군에 의한 성폭력의 진상과 그 특징
1. 성적폭력의 유형과 특징
2. 위안소제도의 토양
3. 성적폭력의 구조
제3장. 한국 여성학과 민족
1. 여성학의 성립과 ‘민족’ 문제
2.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민족’ 논의
3. 아시아 여성학의 시점
제4장.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의 전개와 과제: ‘성적피해’라는 시각에서
1. 위안부 문제의 전개와 민족주의
2. 위안부와 공창
3. 성적피해란 무엇인가
제5장.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의 위상 : 1980~1990년대의 성폭력 추방운동과 관련하여
1. 민족민주운동과 성폭력 추방운동: 1980년대의 여성운동
2. 성폭력 추방운동의 질적 전환: 1990년대의 여성운동
3.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의 위상
종장. 내셔널리즘을 넘어서기 위하여
1. 위안부 문제와 내셔널리즘: 2000년 ‘법정’ 후의 과제
2. 한·일 내셔널리즘과 위안부 문제: 박유하, [화해를 위해서]에 대해
3. 배제와 차별에 저항하는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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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장. 일본인 위안부를 둘러싼 기억과 담론: 침묵이 의미하는 것
1. 일본인 위안부란
2. 전후 일본의 위안부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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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론. 근로정신대가 된 사람들의 인생 피해에 대하여
1. 조선인 소녀들에게 ‘근로정신대에 간다’는 말이 의미했던 것
2. 일본에 가서 받았을 충격
3. 조선으로 돌아온 후에 겪게 된 인생의 곤경: 근로정신대로 갔던 일이 조선 사회에서 의미하는 것
4.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의 연관성
5. 일본 정부와 관련 기업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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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강간이라는 말이 가해자의 시점에 의한 표현인 것처럼, 또 위안부나 위안소라는 말이 이곳에서 일하도록 강요당한 여성들의 실감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남성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여성들이 받을 수밖에 없는 성적폭력은 눈에 띄기 어렵게 되어 있다. 증거나 방증을 통해 어떻게 성폭력 사실을 인정시킬 것인가라는 문제 이상으로 피해를 당한 측의 시점에서 성폭력을 다시 문제 삼는 작업이 필요하며, 인식 방법 역시 재고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군의 성적폭력에 대해서 살펴볼 때, 피해 증언이 있고 다양한 증거가 발견되었으며 전 병사에 의한 가해 증언까지 있는데도 이 문제의 해결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 p.87)
창기의 공급원은 수많은 빈곤한 농촌지역이었는데, 여성은 가정의 경제적 빈곤을 구원해야 할 희생물이 되었다. (……) 위안부로 징집된 일본인 여성 대부분은 창기 출신이었다는데, 전장으로 가면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업자에게 끌려간 사례가 많았다. 이 여성들이 스스로의 의사로 전장에 가기를 결정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자유결정권’을 임의적으로 행사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들의 ‘자유의사’는 대단히 제약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p.94)
한국에서는 식민지 피지배민족으로서의 관점에서, 또 위안소제도의 정책적 의도에 포함되어 있는 민족차별을 지적하기 위해서 위안부 문제를 주로 민족 문제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일 양국이 식민지 지배에 대해 진정한 청산을 이루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인 피해자의 문제에 초점을 맞출 경우 민족 문제로서의 접근이 그 나름의 당위성을 지니고 일면의 진실을 부각시킨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야를 더 넓혀 천황제 파시즘 아래에 있던 일본군의 침략을 받은 아시아 각지에 위안소제도의 피해자가 존재하고, 지역에 따라 피해 형태의 차이마저 있으며, 그 기본은 여성에 대한 일본군의 성노예제도라는 인식에 설 경우 이런 접근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은 다분히 여성억압적인 요소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 p.115)
‘강제성’에 관한 논리는 위안부 동원이 강제적으로 행해졌는지 아닌지, 또 위안소에서의 생활이 강제적이었는지 아닌지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런 논리의 이면에도 역시 그것에 의해 위안소제도의 범죄성 유무를 분리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즉, 강제라면 범죄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라는 의미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 p.133)
위안부제도는 일차적으로 일본 군국주의의 산물임에는 분명하지만, 민족 내부로 눈을 돌리면 식민지 조선에서 수많은 여성이 위안부로 동원된 배경에 당시 조선사회의 남존여비적 사회구조도 한몫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최근까지 한국에서 피해자들이 침묵을 지켜야 했던 이유에도 단지 일본 정부의 사실을 은폐하는 태도뿐 아니라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잘못된 인식도 영향을 끼쳐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일본 정부에 대한 요구뿐 아니라 자국 내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지 않는 한 한국인의 입장에서 위안부제도의 전체상을 밝혀낼 수 없고, 재발을 방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또 심각한 성폭력을 당한 생존자들의 피해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치유를 돕기 위해 노력하는 데에는 여성 문제로서의 의식화가 필수적이다.
(/ p.141)
위안소제도는 여성을 성노예로 삼은 공창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고안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공창제도도 위안소제도도 성노예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위안소제도가 공창제도와 마찬가지이므로 범죄가 아니라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에게 이 두 제도가 모두 범죄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위안소제도와 공창제도의 차이를 논할 때도 우선 이런 인식을 전제로 할 필요가 있다.
(/ p.150)
대중적 여론과 운동이 민족 문제라는 시각을 강하게 내세울수록 이런 측면은 보기 힘들어진다. 이 문제가 민족 문제로서 다뤄지면 피해자들은 같은 민족의 일원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그들이 입은 피해가 민족의 피해로 일반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성폭력 피해자로서의 그들의 상처는 육체적으로도, 마음의 상처라는 면에서도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다. 민족적 피해는 그 개별적 피해의 내용을 구성하는 환경적 요소이기는 하지만 중심은 아니다. 위안부가 된 여성은 자신이 당한 성폭력에 의한 심신의 아픔으로 인해 가장 직접적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상처는 피해를 받은 당시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 정신적·육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그 여성을 괴롭힌다.
(/ p.155)
위안부 문제는 외국인 여성에 대한 성적폭력행위와 전시의 잔학성에 대한 문제일 뿐 아니라 국가에 의한 여성의 인권침해로 연결되는 (남녀의) 성지배와 통제라는 의미에서 일본인 위안부를 피해자로부터 제외해서는 안 되는 문제이다. 바꾸어 말하면 일본인 위안부를 피해자로 보지 않는 한 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일본인 위안부를 피해자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에 적용하는 내셔널리즘뿐 아니라 자국에서 작동하고 내면화되어 있는 내셔널리즘을 스스로 해체할 필요가 있다. 내셔널리즘을 초월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이런 일을 꾸려나가는 데서 실현 가능하지 않겠는가.
(/ pp.260~261)
저자소개 TOP
아마시타 영애 [저]
일본 도쿄 출생. 쓰다주쿠 대학 국제관계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거쳐 한국 이화여자대학대학원 여성학과를 졸업했다.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동 편저서로 [일본군 ‘위안부’ 관계자료집성(日本軍?慰安婦?關係資料集成(上·下)](明石書店, 2006)이 있고, 옮긴 책으로 [한국여성인권운동사(韓?女性人?運動史)[(한국여성의전화연합 편저, 明石書店, 2004), [한국의 군사문화와 젠더(韓?の軍事文化とジェンダ?)]인숙 저, 御茶の水書房, 2006) 등이 있다.
리츠메이칸 대학의 외래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국 드라마 강좌를 열거나 드라마 에세이를 쓰면서 한일 간의 문화교류에 힘쓰고 있다.
박은미 [역]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졸업, 박사과정 수료, 일본 히도쯔바시(一橋)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문예사회학)를 취득했다.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 교육전담 교수를 거쳐, 서울특별시 경찰기동대 명예인권 상담관, 평화방송(TV) 신앙상담 [따뜻한 동행] 진행(2008), 문화체육관광부 공직자 종교차별 자문위원(2010-12)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 총무로서 대학과 가톨릭교회 내에서 교육과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품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는 현실치료(R.T.) 전문상담가이다. 끊임없는 배움을 통한 개인의 성장과 건강한 인간관계 형성에 관심이 많다. 가족으로 남편과 두 딸이 있다.
저서로[도전받는 가정공동체](2006, 공저),[미래를 여는 가정공동체](2008, 공저), [예수 그리스도와 가톨릭](2009, 공저), 역서로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2006), [성녀 마들렌 소피이 바라](2012, 공역), [영성으로 읽는 성경](2013, 공역) 등, 다수의 저서와 번역서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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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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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N...
위안부 문제를 통해서 본 한국사회의 젠더와 성
『내셔널리즘의 틈새에서』
- ‘위안부 문제를 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읽고
Ⅰ. 젠더와 성에 대한 기존의 시각
| 冊
작은풀꽃 2014. 2. 8. 21:25 http://blog.daum.net/evergreen7/16155998
저자출판사 |
카테고리 책소개
2/19/2021 그 숲 속 내 그리움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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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젠더와 성의 나의 인식은 사회적
환경인 조선시대의 가부장(家父長)제까지 거슬
러 올라간다. 가장을 중심으로 한 가족제도인 가
부장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력을 합법화하는
사회구조화 된 제도로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
압체계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어왔다. 한국 속담
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와 북어는
사흘이 멀다않고 두들겨 패야 한다.” 등의 듣기
도 민망한 말은 가부장제가 남긴 제도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유년 시절에 어머니에게
자주 들었던 이야기 또한 “계집애가 그러면 못 쓴다. 남녀 칠세 부동석” 이란 말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다. 뭐든지 남자와 여자가 하는 일이 구분되었고 제
약이 따라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부모와 주위의 환경에 지배를 받게 되어 자연스럽게 남여의 구분이 확실한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영향으로 여
러 가지 일에서도 남여의 대한 분명하고 고정적인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Ⅱ.『내셔널리즘의 틈새에서』의 젠더와 성
이 책의 저자인 야마시타 영애는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법적 혼인을 하지 않아 사생아로 어머니 호적에 등록되어 일본인 국
적이 부여되었다. 조총련계에 몸담고 있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조선학교에 다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일본 명과 한국 명의 두 개의 이름사이에서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고뇌가 시작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고교시절, “여성은 만들어 진다”는 아사히신문 연재기사를 읽고 ‘남여차별문제’ 눈을 뜨게 되었다. 저자도 나의 경우
처럼 부모가 무언중에 내비치는“여자답게 행동하라”는 등의 일에서 여자라는 사실이 늘 불만이었다고 토로한다. 그러던 중 아사히신문의 연재기사를 읽고 눈에 씌워
진 덮개가 떨어져 나간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 후, 도서관에서 여성차별문제에 관련된 책을 읽고 뜻에 맞는 친구들을 모아 ‘여성문제연구회’를 만들었다.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사회
적 차별을 피하기 위해 일본 이름을 사용해야 했다고 한다. 가족에 관한 법률이 남성 중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두 국가에서는 조선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이 결혼하
여 태어난 자녀는 아버지의 국적만 부여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조선, 일본 양쪽 사회로부터 하나의 이름을 선택하라는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저자가 한국정부의
장학생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여성문제와 위안부 문제가 결코 무시하고 넘어가서는 안 되는 과제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성과 젠더, 내셔널리즘 속에서 새롭게 자각한 체계적인 연구서이자, 야마시타 영애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에 대한 고뇌의 괘적이다.
Ⅲ.『내셔널리즘의 틈새에서』의 위안부문제와 여성문제의 시각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본격적인 서막은 1990년 5월, 여성계가 위안부 문제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면서이다. 입에 올리기도 꺼려했던 정신대 문제를 1990년 5월, 노태
우 대통령 방일에 맞추어 이화여대 여성학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주축이 되어 여성의 강제연행이라 할 수 있는 ‘정신대’ 문제에 관해서도 교섭의제로 삼아야 된다고 인
2/19/2021 그 숲 속 내 그리움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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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하여 여성계 주요 단체를 동원하여 성명을 내게 하였다. 여성학을 전공하며 한국 사회의 성 억압 문제를 배운 여대생들이 정신대 문제를 성폭력의 측면에서 바라보
고 ‘여성들 자신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 고 사회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몇몇 여성단체가 일본 정부에 대해 정신대 문제의 진상 규명과 사죄를 요구하는 성명
을 발표했다. 이 모임이 시발점이 되어 훗날 “한국정신대연구소”하는 연구회가 만들어 지게 된다. 저자는 당연히 스스로 이 운동에 적극 가담하게 되었다. 이 활동을 통
해 한국 사회에 스며들어 갔으며 유학 전까지 덮어 씌워져있던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고뇌로부터 완전히 해방됨을 느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한국 여성이 인식하는
위안부 문제와 시각과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위안부 문제의 제기는 예상했던 대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켜, 한일 문제에서 더 나아가 국제 문제로 발전되어 갔
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정신대’라는 어휘를 일제강점기에 강제 연행되어 일본군 위안부가 된 여성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실제로는 군수공장 등에서 노동한 근로
정신대원도 존재한다. 이런 혼란은 해방 후 위안부나 근로정신대에 대해 역사적인 해명이 이루어지지 못한 데서 연유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유교적 영향도 강하여 여
성의 정조를 중시하는 사회적 풍조로 인해 ‘정신대’라는 용어가 공교롭게도 일본군 위안부를 지칭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정신대문제가 근년에 이르기까지 드러나지
못한 것은 가해자 측인 일본이 패전 후 관계서류를 폐기하는 등 증거인멸을 도모하고 전후책임 문제를 모호하게 처리해온데서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나의 인식
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황군위안부가 된 대부분 농촌의 빈곤층 출신자로 조선인 여성들이다. 지배국가에서 피지배국가의 전쟁에 동원된 수단으로 돈벌이를 하게 해 준다던가 뚜쟁이나 주
선업자들에 의해 반 강제적으로 끌려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다 죽어나가고 신체를 훼손당하는 등 범죄행위와 더불어 행해지다가 일본의 패전 후에는 전쟁터에 방
치되었으며, 귀국선을 타고서 상륙을 눈앞에 두고 바다에 몸을 던진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해방 후에도 ‘정조를 더럽힌’정신대라는 사회의 편견으로 이중고를 당
해야만 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정대협)의 활발한 활동 가운데 정신대 문제가 부상되면서 1991년 5월 일본에 보낸 두 번째 공개서한에서는‘수많은 소녀
들을 여자정신대로 ‘내지’의 군수공장 등으로 강제연행했던 것, 종군 위안부로 전지에 억지로 보낸 것은 어느 것이든 인권유린이다.’라고 주장했다.
전쟁 중 일본군이 조선인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가서 병사의 성욕처리 도구로 만든 것은 구 일본군 관계자나, 전 위안부들의 증언, 위안소의 규정이나 군의관의 의견집
등을 보아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엄연한 사실을 무시했다. 그러나 1992년 1월 일본군이 위안소에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방위연구도서관에
서 발견됨으로써 일본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이 일에 국가가 관여했음을 인정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피해자나 유족에 대한 보상은 1965년 한일협
정으로 이미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과거 식민지 지배에 의해 저질러진 피해 전체에 대해서도 늘 입에 발린 정도의 사죄와 정치적 대처로 일
관해왔다. 한편 한국 정부의 철저하지 못한 ‘일제 잔재 청산’과 일본정부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에도 비판이 가해졌다. 거듭 일본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며 암흑 속에 묻
혀 있던 정신대 문제가 언론에 부상하자 이름과 신원을 밝힌 정신대 피해자들의 신고가 이어졌다. 국민의 반일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자, 정부는 공영방송을
통해 “정신대 문제는 감정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실상을 분명히 밝혀 사죄와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당연히 정부가 나서겠지만 국민의 성찰
도 필요하다. 정신대 사건을 민족정기를 되찾자”는 캠페인을 보냈다고 한다.
일본군 위안소제도의 배경은 일본이 조선에 도입한 공창제도를 토대로 발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창제도란 공권력이 성매매를 통제하며 기본적으로 성매매를 적
법행위로 간주하는 것이다. 일본의 공창제도의 실태는 창기가 대좌부업자에게 금전적으로 착취되고 노예처럼 매춘을 강요당하는 것으로서 여성을 성적대상물로 간주
하는 남성 중심적 성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만천하에 드러난 위안부 사건을 일본은 아직도 여전히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지지부진한 상황이
다.
2/19/2021 그 숲 속 내 그리움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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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게 된 이론적 기반이 된 여성학의 진전과 위안부에 대한 여성학의 인식에 대해 살펴보겠다. 한국에서 여성학이 시작된 것은 1970년 중반
이다. 군사독재정권에서 민주화투쟁을 거쳐 문민정권으로 이행했고,1990년 이후부터는 민주주의 정착과 남북분단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고민해왔다. 이런 사회적인
변화 속에서 여성학은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으로 급속하게 확산되어 갔다. 1984년에는 ‘한국여성학회’의 회원이 800명을 확보하고, 1995년에는 이화여대에 ‘아시아여
성학센터’가 개설되었다. 아시아 여성학을 깃발을 든 것은 ‘한국여성학’의 정체성을 묻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 중반에는 여성학 주변에도 ‘민족’을 둘러싼 논의가 일
어나기 시작했다. 위안부 문제는 기존의 민족주의적 관점에 내포한 여성 차별적 논리를 부각시키고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성과 민족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여성운동을 민족 문제와 관련시켜 인식하기를 주창해온 이효재는 “여성의 존재와 삶이 식민지 시대와 분단시대로 이어진 민족수난사 속에서 규정되어 한층 억압되
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문제에 대해 필자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하나는, 객관적 조건으로서의 민족이 놓인 상황이 여성에게 준 영향, 즉 동일
민족이라는 것에서 받은 영향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고, 또 하나는 그런 상황 속에서 형성되어온 민족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여성 억압적 요소를 도입하거나 혹은 작용
해 왔는가 하는 점이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한국여성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로 여성의 의식변혁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린 한편, 대학 내에 여성학 과목을 개설의 확대로 이어졌다. 성,
계급, 민족의 상호관계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의 문제가 여성운동의 노선과 관련되어 논의되었다. 또한 한국의 운동이 민족 문제적인 측면이 강했기 때문에 민족담론
속에서 위안부 문제와 성을 분석하는 논문도 나오기 시작했다. “민족 간의 억압이 성적억압에 어떻게 더해지고 여성에게 작용했는가. 여성이 어떻게 민족이 이름 아래
혹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왜소화, 왜곡화 되었는지에 대한 방향으로 논의하였다. 대중적 여론이 위안부 문제를 민족 문제로 드높임에 따라 많은 위안부가 스
스로를 피해자로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피해자들이 침묵을 깰 수 있었다. 지식인들이 동참하여 한국정부의 협조를 받아 신고한 생존자들에게 생활지원
활동으로 경제적 혜택를 받을 수 있게 하였고, 유엔 등의 국제기구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름을 밝힌 다른 아시아 국가의 피해자와 그들을 지원하는 단체들과 연대하는
등 국제적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 중에 피해자와 국민, 지식인 활동가들 사이의 공감의 토대가 ‘민족’에 머물러 있다는 점으로, 피해자들의 진정한 이
해와 공감을 하기에는 부족했으며, 성폭력 피해에 대한 관심과 치유를 돕는 작업이 중요시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위안부들의 마음의 상처인 ‘복잡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는 평생 고통을 안겨주게 되기 때문에 어느 한 방향만이 해결이 아닌 다각도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위안부 문제는 한국여성에게 억압민족에
의한 여성차별이나 민족차별과의 투쟁뿐 아니라 그동안 민족의 이름으로 은폐되고 때로는 정당화 되어 왔던 자국 내의 가부장적인 체제와도 투쟁할 것을 요구한다. 한
국여성들에게 식민지 지배나 남북 분단이라는 민족적 수난이 얼마나 무거운 의미인지, 민족담론이 얼마나 젠더화 되어 있는지에 대하여, 성폭력 추방 운동과 연대하여
민족운동의 남성중심성을 극복해야 함을 인식하며, 여성운동이 가부장적 여성관을 내면화한 한국민족주의의 재검토 작업까지 시야를 넓혀나갈 때 비로소 여성운동으
로서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Ⅳ. 우리사회의 젠더와 성의 재인식
우리사회의 남녀 성 역할의 경계가 이제는 많이 허물어진 듯하다. 그동안 남성의 전문분야라고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여성들이 자유롭게 도전, 적극적으로 활동도 하
고 있고, 남성들 또한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한국의 여성운동을 계기로 위안부 문제가 국제적으로 이슈화가 되었고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자행하며 전후 문제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정부
에게 지속적으로 문제 해결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여성폭력이나, 성폭력 방지대책 등의 다각도로 활동을 벌이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우리사회의 여성차별
2/19/2021 그 숲 속 내 그리움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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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 성문제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올해는 특히, 사회적 약자인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가해진 인면수심의 성폭력 사건이 위험수위에
달하고 있다. 이는 인터넷 문화가 가져온 역기능이 한 몫을 하고 있으며, 소통부재가 빚어낸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성폭력 문제는 사회구조와 경제구조에서 소외 되
고 있는 사회의 어두운 계층에게 사회나 가족이 지속적인 관리와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가동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현대사회에서의 여성운동은 예전과 달라져야 한다. 한국의 여성문제를 넘어 통합적 사고와 인터내셔널International한 새로운 시각의 여성의 정체성을 바탕으
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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