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6

누가 더 국가주의적인가?: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평석

누가 더 국가주의적인가?: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평석

 - 문학동네 제23권 제1호(통권 86호) : 네이버 블로그
누가 더 국가주의적인가?: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평석 - 문학동네 제23권 제1호(통권 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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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2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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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숫자는 검열 전 원본의 쪽수임) 



이 책의 핵심주장은 ‘일본군 위안부’들은 소개업자나 포주들의 꼬임에 빠져 끌려간 사람들이며 “위안부를 군이 모집은 했지만 군이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23)”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근대부터 “감언이설에 속아 . . .외국에 있는 일본인들을 ‘위안’하는 역할을 하는 소위 가라유키들이 많이 있었고 이들은 ‘조선인 위안부’의 전신이었다(30)”는 것이며 이런 위안부를 ‘강제로 끌어간’ 직접적인 주체는 업자들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위계에 의한 납치단계는 주로 민간업자에 의해 수행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에 대해서는 이승재, 박노자를 포함한 비판자들도 반박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박유하는 이 사실을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니 이 사실의 함의를 과장한다. 즉 국가에 의한 강제연행이 없었으니 일본이라는 국가가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며 그러므로 ‘법적 책임’은 업자에게만 물을 수 있을 뿐 국가에게는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틀렸다.

 

강제연행 여부가 법적 판단에 중요하기는 하지만 최소요건이 아니다. 길윤형(2016. 1. 22 한겨레)이 자세히 밝힌 대로, 일본군이 강제연행을 하지 않았더라도 일본군은 틀림없이 공식적으로 위안부 모집을 했고 업자들에게 위안부를 데려올 것을 의뢰하고 이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며 독려했다. 또 대부분의 여성들이 업자들의 거짓말에 속아서 끌려왔음을 쉽게 알 수 있었으면서도 위안부들을 이용하고 그 이용에 대한 보수를 업자들에게 지급하였다. 일본군은 이들이 감금상태 및 거부불능상태에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성관계를 강요했고 이 대규모 인신매매의 최대 수혜자였다. 어느 나라에나 장물애비를 처벌하는 법이 있는데 하물며 절도대상이 인간인 경우, 일본군의 책임은 크다. 위안부에 대한 모집, 투자, 관리, 수혜에 이르는 일본군의 ‘관여’는 틀림없이 보편적 인권규범에 반하는 것이었다. 물론 박유하도 “일본군이 이 문제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첫 번째 주체이다. 더구나. . .불법적인 모집이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집 자체를 중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일본군의 책임은 크다. 묵인은 곧 가담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25)”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박유하는 일본군의 ‘법적 책임’만큼은 부인한다. 사실 바로 이 때문에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이 탄생한 것이다.

 

국가가 군대를 위한 성노동을 당연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았던 이상 그것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 . . . ‘범죄’로서 책임을 물을 대상은 이미 없다고 해야 한다(191).”

 

이 주장은 법적 책임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거나 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본정부에 대한 요구의 실체를 오해하고 있다. 법적 책임은 실제 존재하는 법 즉 실정법에 의해서만 규정되지 않는다. 홀로코스트도 당시 독일 내의 합법적인 절차와 문헌에 따라 저질러졌다고 해서 독일의 법적 책임이 없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도리어 국가가 홀로코스트와 같은 행위를 법적으로 허용하거나 요구하였다면 그 국가의 책임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뉘렌베르크 전범재판소는 재판소 창설 이전에 존재하는 법 즉 실정법에 따라 재판을 한 것이 아니다. 입법, 행정, 사법의 기본 국가체계를 통해 정당화되어 이루어지는 범죄를 우리는 ‘국가범죄’라고 부르는 것이며 그래서 국가범죄는 초국가적인 규범 즉 국제인권법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물론 2차대전 당시 국제인권법이라는 것이 명확히 존재하지 않았으니 국가범죄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권이 모두 소멸되거나 을사조약 때문에 배상권의 성립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다. 법실증주의를 신봉하는 법학자라면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주장들이다.



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이 과연 법실증주의자를 설득시킬 만큼 정교하게 ‘법적’으로 인증된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까? 위안부 할머니들은 자신이 당한 피해가 잘못되었다거나 일본군의 관여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줄 ‘권위 있는 타자(법)’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본군이 자신이 입안하고 간여한 강요된 성착취에 대해 일본군의 당시 최종책임자로서 과거와 연속성을 띄고 존재해온 일본정부가 진실 되게 책임을 표명하고 이행하기를 바라는 것이지 그것이 법적 책임인지, 도의적 책임인지, 정치적 책임인지, 도덕적 책임인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2014년 12월 전까지 일본정부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 1993년 고노담화를 부정하는 표현을 반복해왔으며 위로금 성격의 보상 외에는 전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또 위안부 문제가 1990년대에서야 밝혀졌으니 그전에 체결된 한일협정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까지 소멸시켰다고 보기 어려움에도 한일협정을 근거로 법적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은 상식에 반한다. 할머니들은 법적인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법적 책임을 지라’는 구호는 ‘제대로 책임을 지라’는 의미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유하는 왜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법적 책임의 부재에 천착한다. 왜 그럴까?  할머니들이 법적 책임 문제에 과도하게 매달리면서 한일관계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박유하는 법적 책임에 대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비타협적 태도”를 문제삼으려 하다보니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주장들까지 하게 된다.



즉, 위안부가 일본군과 소위 “동지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위안부는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협력자이기도 한 모순적인 존재’였다는 주장이다. 당시 조선인도 국제사회에서는 일본인으로 규정되던 식민지배 아래에서 조선인 위안부에게 일본인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객관적으로 협력자의 역할이 강요되었다는 주장에는 문제가 없다. 심지어는 일부 위안부는 그와 같은 억압을 내화하여 주관적으로도 협력자의 태도를 가졌을 거라는 주장도 상상해봄직 하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위안부할머니들의 도덕적 위상이 달라질 이유는 없다. 피해자이기도 하고 협력자이기도 한 모순적인 상황도 전적으로 위안부들의 의사에 반하게 강요된 것이었다. 피해-협력 모순쌍의 도덕적 합계는 ‘피해’였다.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이 있었든 없었든 피해자들이 당한 것은 ‘사기를 통한 납치’ 이후 ‘감금과 강요된 성착취’이었다. 도리어 ‘강제된 협력’은 도리어 ‘강제된 폭력’보다 더 큰 인권침해일 수도 있다. 강간을 살인 못지않게 죄악시 하는 것은 상대의 신체적 협력을 강제로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박유하는 할머니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현실을 외면한다. “명확한 ‘굴종’이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자발적’인 협력을 강요당한 ‘식민지’의 복잡한 구조를 보지 못[한다](138)”는 문장에서 보듯이 위안부에게 강제된 협력도 위안부들을 ‘복잡한’ 고민에 빠뜨릴 정도의 도덕적 실체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박유하는 위안부들의 상황을 자꾸 ‘모순’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이유는 위안부에게 강제된 협력도 자신들의 비타협적 태도를 자성하도록 만들 수 있는 ‘복잡한 과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부의 강제 때문에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일을 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그냥 ‘억압’일 뿐이다. 박유하는 이것을 부인하고 있다. 



실제로 심리적으로 ‘억압의 내화‘ 과정을 거쳐 강제된 협력의 수인을 넘어서서 적극적 협력으로 나아갔던 위안부들도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박유하의 주장은 위안부 일부가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위안부의 ’전형‘이 그렇다는 것이다. “예외”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139). 그렇기 때문에 박유하는 “협력의 기억을 거세하고 하나의 이미지, 저항하고 투쟁하는 이미지만을 표현하는 ‘소녀’상은 협력해야 했던 ‘위안부’의 슬픔은 표현하지 못한다(xxx)”고 말하기도 하며 “원한보다는 슬픔을, 분노보다는 절망을, 그리고 일제에 의해 이중인격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식민지의 모순을 표현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다(209)”라고도 말한다.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감금된 상태에서 총칼의 협박 속에서 협력을 강제당한 것을 왜 ‘이중 인격적’이라고 보는가. 왜 종국적인 피해자로 봐주지 않는가. 박유하는 위안부들이 객관적으로는 강제적인 피해를 당했지만 주관적으로 자발적인 협력을 했다고 간주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유하가 실제로 대다수의 위안부들이 (또는 생존하는 위안부들의 다수를 포함할 만큼의 확률적으로 많은 숫자가) 심리적으로 자발적인 협력을 했다고 주장하지는 않으며 단지 그렇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런 주장을 했다면 명예훼손 형사재판에서 매우 불리한 증거가 되겠지만 다행히 그런 주장은 없는 것으로 보이며 실제 그런 주장을 할 증거도 없다. 하지만 외부의 힘에 의해 협력이 강요되었다고 해서 그 강제력의 피해자를 협력자로 규정하는 것은 하얀 눈사람에게 파란 빛을 쏘고 그 눈사람을 파란 눈사람이라고 부르는 마법 같은 일이다.

다시 묻지만, 박유하는 왜 이런 주장을 할까? “‘동지’적 관계를 직시하는 것이 꼭 ‘일본군’을 면책하는 일은 아니[지만](138)“ 위안부할머니들의 현재의 투사적 태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동지적’ 상황을 그저 예외적인 것으로서 배제해버린 일이 ‘동지적’ 측면에만 혹은 ‘매춘부’적인 측면에만 주목하려 했던 이들의 반발을 불렀고, 대립을 심화시켰다. . . 위안부의 ‘피해’에만 주목하고 나머지는 외면했던 것이 일본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은 셈이다(139).

 

즉, 위안부가 자신들이 자발적인 협력을 한 이중인격적인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일본우익도 “매춘부”적인 측면에만 주목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이에 따라 더 생산적인 대화가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193). 하지만 누가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신을 모순적 존재로 보는지 여부를 문제 삼는가. 박유하 자신의 말에 따르면 바로 일본우익이다. 그리고 박유하는 이들 일본우익이 자극받지 않도록 할머니들이 자신의 ‘표면적으로 자발적인 협력’에 대해 고뇌하고 자성하는 자세 – 종국적으로는 법적 책임의 요구를 철회하는 –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일본우익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박유하는 말하지만 그의 말은 한정적으로만 진실이다.



조금 더 명징한 사례를 가지고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보자. 박유하는 ‘자발적인 매춘부’라는 표현을 자신이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는 이미지를 우리가 부정해온 것 역시 그런 욕망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297)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는 이미지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박유하의 명확한 입장이다. 맥락을 보면, 그것이 진실이라서가 아니라 우익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 바로 ‘자발적 매춘부’론이 일본정부의 사과 노력을 방해할 수 있는 정치력을 가진 일본우익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중요한 평가의 지점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박유하의 ‘동지’론은 사실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위안부할머니들이 취해야 할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지금 생존해서 운동하고 계신 할머니들이 실제로 자발적인 협력을 하지 않았더라도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개선을 위해 ‘피해’만을 강조하지 말고 ‘협력의 기억’을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국가주의적인 주장 아닐까?



국가주의적인 측면은 다음 문장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위안부’의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33)

 

사람들이 가장 경악하는 위 문장을 최대한 선의로 해석해보자면, 조선인 위안부의 문제는 일본에서 옛날부터 해외매춘업자들이 저지른 인신매매가 식민지배와 결합하면서 제국 전체의 밑바닥에 있는 식민지 여성을 주 대상으로 삼으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라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33, 111). ‘기본적으로 같다’는 표현은 사과도 오렌지도 과일이라는 측면에서 같다는 수준에서 봐줄 수도 있다.



그러나 박유하의 주장은 더 사나운 독을 감추고 있다. ‘기본적으로’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은 ‘종국적으로’를 의미하고 있다. 사과와 오렌지가 법적으로 같다는 주장인 것이다. 즉 ‘식민지배를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인다면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의 창기가 법적으로 같다. 고로 제국이 직접 강제연행하지 않은 한 자국민 창기에게 법적 책임을 질 이유는 없다’는 결론으로 가는 징검다리에 있다. 위안부 문제는 식민지배의 불가피한 산물이었지 별도의 악행이 아니었고(“그것은 [조선인 위안부]들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조선이 식민지가 되는 순간부터 걷어낼 수 없게 된 모순이었다(294)”), 위안부문제에 대한 보상권의 존속에는 이견이 있지만 식민지배 자체에 대한 법적 보상을 받을 권리는 을사조약에 의해 애초에 불가능하게 되었거나 한일기본조약에 의해서 소멸된 것에는 이견이 없으니 (232)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별도의 ‘법적 보상’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의 관문인 것이다.



식민지배라는 거시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해서 그 변화에 개인들이 동화되어야 한다거나 동화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 또는 개인들의 기억 마저도 개조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이야말로 국가주의적 아니 전체주의적 주장이다. 객관적으로 제국에 의해서 애국의 의무가 부여되었다는 것과 주관적으로 그 의무를 이행했다는 것을 혼동하는 문장은 <제국의 위안부> 곳곳에서 발견된다. “오히려 그녀들의 ‘미소’는... 병사를 ‘위안’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애국처녀’로서의 미소로 보아야 한다.[화해를 위하여](160)”



박유하는 틀림없이 책의 일부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순진한 소녀가 아니더라도 또는 총칼로 둘러싸여 강제성착취를 당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국가의 책임은 있다고 강조하며, 도리어 미군 기지촌 여성처럼 ‘강제된 소녀’라는 ‘완벽한 피해자’의 틀을 벗어난 사람들을 챙기지 않는 정대협을 비난한다. “매춘부라면 피해자가 아니냐(xxx). . . .조선인 위안부를.. . 순진한 어린 소녀로만 간주하는 일은 그런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 또다른 위안부를 배제하는 일이기도 하다(295).”



그러나 이런 말들도 결국은 자기가 보기에는 급진적인 위안부할머니들의 주장을 주저앉히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피해를 강조하지 않아도 일본정부의 책임은 있으니 걱정마라. 협력을 부인하고 피해 만을 강조하면서 법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일본우익을 자극하기 때문에 사태해결에 걸림돌이 된다’는 논리열차의 한 칸일 뿐이다. 과연 총칼로 감금되어 성착취를 당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협력의 기억’을 강조하며 해결 중심적 자세를 요구하는 책이 그보다 덜 폭압적인 상황에서 성착취를 당한 사람들의 문제제기에 도움이 될 것인가? 박유하는 기지촌 여성들이 한국정부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286) 이들은 책 출간 후에는 국가배상소송을 통해 법적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위안부의 모집, 투자, 관리, 수혜에 걸쳐 관여한 일본군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물지 못한다는 박유하의 주장이 미군 기지촌 여성의 법적 주장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김규항이 박유하를 한나 아렌트에 빗대어 탈민족주의적 페미니스트로 상찬하는 것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역사의 거울 앞에서 성찰적이 되라’는 말은 위안부할머니들을 포함해 식민지배를 현실로 용납하면 살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은 식민지배의 일반적 경험 외에 특수한 경험 즉 취업사기에 의한 납치 및 감금상태에서의 수년간의 성착취의 경험이 있다. 그들만의 슬픈 거울이 따로 있고 그들만의 성찰이 따로 있는 것이다. 당시 나라를 잃어 국제법상 일본인으로 분류가 되었다고 해서 제국이 위안부들에게 애국의 의무를 억지로 부여했다고 해서 그들의 특수하고 구체적인 기억이 달라질 수는 없다. 그 기억을 이제 와서 나라를 위해 접어두라는 말에서 나는 전체주의를 읽는다.



지난 12월2일 윤정옥 교수를 포함한 일단의 사람들이 박유하에게 공개토론을 요구하자, 박유하는 공개토론의 취지가 “1) 박유하의 주장을 논박하는 일”인지 “2)위안부 문제 해결”인지를 물었다. (박유하의 페이스북) 나는 당연히 학자로서 전자를 원해서 묻는 줄 알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이원재가 이 책이 위안부에 대한 책이 아니라 정대협에 대한 책이라며 저자의 “화해 조급증을 느낀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FELIVIEW, 2016.2.5.).



마지막으로 형사기소의 문제가 있다. 형사기소가 없었다면 필자는 절대로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책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책에 대한 형사기소는 표현의 자유 “문제로만” 보아야 한다. 이 글 어디에도 명예훼손의 증거는 없다. 박유하의 국가주의적 견해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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