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vable Object: North Korea’s 70 Years at War with American Power‘
-부동의 목표 : 북한, 미국과 70년 동안 전쟁 중-
A.B. Abrams
미국 언론매체 ICH(Information Clearing House)의 책 소개 내용을 민플러스가 기사화했습니다.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www.minplusnews.com)
------------ 기사 내용 --------------
미국의 북에 대한 일반적 생각들이 대부분 잘못된 것임을 보여 준다.
김일성 가문이 전체주의적 방법으로 통치해온 것이 사실이지만(집단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곡해로 인한 오역으로 보임) 합리적이고 때로는 현명한 정책을 채택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 덕분에 북한은 전례 없이 강한 외부의 적의와 견제를 물리치고 상당한 정도의 군사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2017년 7월과 11월 사이에 북한은 3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한 개의 더욱 정교해지고 소형화된 수소핵탄두를 시험 발사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 실험으로 미국의 가장 오랜 적대국 하나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음이 의심할 여지 없이 입증되었으며, 그 후에 미 정보당국도 북한의 핵탄두뿐만 아니라 실험발사 된 2개 유형의 ICBM 모두가 실전에 배치 가능함을 확인했다.
이제 북한은 더 이상 군사적 약자가 아니며, 미국과의 오랜 전쟁에서 유리한 입지로 올라서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북의 인민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갈등의 뿌리
미국과 북한 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 사이의 갈등은 그 뿌리가 미국주도의 세계질질서(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를 북한이 거부한다는 사실에 닿아 있다.
조선 건국의 아버지 김일성은 탁월한 조선민족주의자 김형직과 강반석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소련의 극동지역에 배치되어(? 만주와 백두산 연해주 지역 활동의 연장선에서 소련지역까지), 일본의 식민지배에 저항한 만주빨치산들의 지도자였다.
일본은 1910년부터 1945년 사이의 식민지배 시기에 산업화를 추진하고 (전 세계에서 후버댐 다음으로 큰) 수풍댐을 건설했으며, 동시에 끔찍한 감시체제를 개발하여 정치적 반발을 억압했다.
미국은 남한에서 좌익민족주의 운동단체(좌/우익으로의 구분은 곡해의 소지가 큼)들에 대해 적대적이었고, 경찰국가체제를 건설했다는 측면에서 일본을 뒤따르고 있었다. 특히 그러한 국가 기관들은 과거의 일제하수인들에 의존하여 운영되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조선을 의도적으로 양분하고, 남한에는 이승만이 이끄는 종속정권을 수립했다. 이승만은 수년의 추방생활 끝에 더글러스 맥아더의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다.
당시 CIA보고서들은 김일성과 이승만이 지도력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에서는 김일성의 지도하에 산업생산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으며, 공장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83%나 증가했다. 성공적인 토지개혁으로 농부들 또한 새로운 기회를 가지게 되었으며, 많은 인민들이 국가보조를 받는 의료체계와 교육으로 혜택을 입었다.
반면에 이승만 정부는 남한경제를 일본경제에 부속시키려는 경제정책으로 사회적 반발을 촉발시켰다. 미국이 일본을 재건하여 냉전체제의 하위동반자로 삼고자 했던 결과였다.
그 밖에도 일제협력자들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반대진영에 대한 불관용이 사회적 반발을 더욱 거세게 키웠다.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발발전 이승만 정부는 미국 군사정치고문관들의 지원하에 적어도 10만의 자국민을 살해했다. 남쪽 섬 제주도에서의 좌익폭동(좌익폭동이라는 성격 규정은 곡해의 소지가 다분함)이 특히 잔인하게 진압되었다.
1940년대 후반, 김일성 정부는 자유로운 선거를 통한 평화통일을 주창했다. 미국 정부는 김일성의 승리를 예상했기 때문에 선거를 반대했다.
비슷한 사례로 베트남을 들 수 있다. 1956년 당시 미국정부는 호지명이 80% 이상의 득표로 승리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유선거를 무산시켰다.
미국은 민주주의에 대한 공약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주권을 짖밟았다. 당시 미국은 이미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과정에서 동남아시아를 군사기지들로 포위할 수 있었으며, 이 기지들을 발판삼아 이 지역에서 제국주의적 야망을 관철시킬 생각이었다.
한국전쟁
북이 1950년 6월 25일 남한을 침략함으로써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공식화된 견해이다. 그러나 아브람스의 설명에서는 그 반대임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가 제시된다.
선거를 통해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이(승만)의 병력은 북으로의 침공을 감행했고, 그 시발점이 6월 25일 국경 도시 해주에 대한 공격이었다. 남한 측은 후일에 반격의 일환으로 해주를 공격했노라고 주장했지만, 이미 성공적으로 해주를 점령했다는 발표는 널리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
미국 정부관료들은 한국전쟁의 발발 소식에 고무되었다. 국무장관 Dean Dcheson은 “한국전쟁이 때 맞춰 일어났고, 그래서 우리를 구해주었다”고 말했다.
▲Dean Dcheson(오른쪽)과 Harry S.Truman 미국 대통령(왼쪽)이 한국전을 계획하고 있다.
그밖에도 미국의 군부는 한국을 슈퍼바주카포, 네이팜탄, 젤리화된 개소린 등 새로운 무기체제를 시험하는 장소로 이용했다.
후에는 베트남이 동일한 목적을 위해 이용되었다.
북의 전쟁포로들은 의학용 실험쥐로 이용되었으며,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는 일본 전범들로부터 배운 세균전이 실험되었다.
일본전범들은 세계2차대전이 끝나고 메릴랜드의 미육군 생물전 본부에 비밀리에 초청받았고, 그 곳에서 강의했다.
일본제국주의를 상대로 전쟁을 이끈 경험이 있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살아있는 사람 중에 나만큼 유혈 낭자한 참상들을 많이 목격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전쟁만큼 처참한 파괴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다. 내가 그 곳에 있던 마지막 무렵에는 그 처참함에 위장이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후에 맥아더는 그 전쟁에 대해 “인간 역사에 절대로 기록된적 없는 대살상극이었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난지 수십년 후에 설립된 진실위원회에 의하면 남한군이 북한군(조선인민군 KPA)보다 6배나 더 많은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미군 병사들 또한 마을을 불 지르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수십건의 대량학살을 저질렀으며, 그중 일부는 순전히 인종적 편견에 의해 촉발된 것이었다.
전투기 조종사, David Tatum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후에 우리를 공격할지 모르는 병사 한명을 죽이기 위해 민간인 10명을 죽여야 했다면, 우리는 후회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전쟁동안 북한이 격어야 했던 손실은 역사에 그 유례가 없을 정도였다. 적게 잡아도 북한 인구의 20%가 사망했다. 미 공군이 북한에 떨어뜨린 폭탄은 635,000톤 내지 698,000톤인데, 태평양전쟁 전기간 동안 일본 제국에 투하한 폭탄 503,000톤을 크게 넘어서는 많은 양이었다.
1950년 9월, 단 한차례 신의주시에 가해진 폭격만으로 공공건물 3,017채 중에서 2,100채, 주택 11,000채 중에서 6,800채, 초등학교 17개 중에서 16개, 종교시설 17곳 중에서 15곳이 파괴되었다. 폭격에 의한 사망자 중에 80%가 여성과 어린이였고, 생존자들은 지하동굴에서 살아야 했다. 공격은 소이탄(incendiary bomb)으로 시작되었고, 뒤따라 폭탄이 사용되었으며, 마지막으로 구조작업을 방해하는 시한폭탄이 사용되었는데, 그 목적은 순전히 사상자의 수를 극대화하자는 것이었다.
전에 도쿄 폭격을 지휘했던 Emmet O’Donnell 장군은 “전쟁 발발 3개월만에 한반도 거의 전역이 끔찍한 폐허로 바뀌었다. 공습의 결과로 거의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이름값 할 만한 어떤 것도 서있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1953년 미 공군은 압록강 관계댐들을 공격목표로 삼았다. 그 결과 수많은 마을들이 통째로 그리고 조선의 넓은 곡창지대가 수장되었다. 특히, 이곳의 쌀은 이미 영양실조에 걸려있는 주민들이 목숨을 연명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한 보고서는 “서양 사람들은 이 주곡의 손실이 그곳 아시아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굶주림과 서서히 찾아오는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한국전쟁이 불러온 공포를 압축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한국전쟁은 이 나라에 38선이라는 영구분단선을 남기고 소강상태로 끝이 났다.
후에 미군의 군지휘관들은 중국과 북한의 전투력을 과소평가했음을 시인했고, 특히 맥아더는 북한 인민들에 대해 “강인한 적이고 통솔력 있는 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오늘날 북한민들은 한국전을 위대한 조국해방전쟁, 승리한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이 전쟁의 결과 김일성 가문은 정통성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한국전쟁이 망각 속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주된 이유는 이 전쟁이 미국의 정의로운 자화상에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다.
전쟁은 계속된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의 미국 정보보고서들은 이승만 정부가 북한에 대한 또 한 차례의 공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수소폭탄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1957년 8월 9일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국가 안전 보장 회의(NSC) s702/2 보고서를 통해, 남한군의 조선에 대한 일방적인 선제공격을 허락했고 미군의 지원을 약속했다.
1958년 1월경 미국은 남한내 네 개의 군사 기지에 대략 150개의 핵탄두를 분산 배치했다. 이에 자극 받은 북측은 소련의 협력 하에 자체의 핵개발 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1968년 북한군이 미 해군의 감시선 U.S.S. 푸에블로 호를 나포하자 긴장이 끓어 넘쳤다. 북베트남은 이 사건이 있은 지 불과 일주일 후에 미군에 대한 ‘구정 대공세’를 개시했다. 일각에서는 푸에블로 호 나포와 ‘구정 대공세’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그 후의 통신들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펜타곤은 이 사건에 관한 미국 측 요구를 평양이 수용하도록 하기 위해 핵무기의 사용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한국전 휴전협정 당시 유리한 위치에 서기위해 핵무기 사용을 협박했던 사례와 아주 흡사하다.
1969년 미해군 비행기가 북측 영공에 침투했다가 일본영해에서 북측 Mig-21에 의해 격추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에 미 대통령 리차드 닉슨이 격분한 상태에서 핵공격을 승인했고, CIA 요원 Gorge Carver에 의하면 군부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다행히 좀 더 냉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그러나 긴장된 군사적 대치가 계속되었고, 그 와중에서 핵전쟁 위협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대리전쟁
핵전쟁 위협이 증가하는 가운데 미-북 간의 갈등은 대리전쟁을 초래했다. 예를 들어 북한은 베트남으로 조종사들을 파견했고, 이들은 베트남 인민군 공군을 위하여 공중 방위임무를 수행했다. 14명의 북한 조종사들이 사망했다.
베트남 전 국방부 차관이자 베트남전쟁 당시조종사였던 Tran Hanh은 “우리는 북한 조종사들이 굉장히 용감한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국가적 자존심이 아주 높았고..., 무엇도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보도에 의하면, 김일성은 1965년 중국대표와의 회견에서 베트남 인민들의 투쟁을 돕는 일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미제국주의자들이 베트남에서 굴복하면 아시아에서도 무너질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전쟁이 우리의 전쟁이라는 생각에서 베트남 인민들을 돕고 있다. 베트남의 요청이 있으면, 우리는 우리 일을 내팽개치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수의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군 병력은 북베트남군과 함께 지상전에 참여했으며, 북한군 심리전 전문가들이 북베트남군을 도왔다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베트남 지도자들과의 대화중에 진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동굴을 파고 공장들을 그 안에 숨기라고 조언했다.
김일성은 1967년의 6일 전쟁 후에 이집트를 경제적, 군사적으로 지원했으며, 미국이 적극적으로 이스라엘 측을 지원한 1973년의 욤키푸르 전쟁에서도 원조를 제공했다.
그밖에도 1970년대 후반 김일성 정권은 1500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쿠바 지원하의 앙골라 인민해방군을 훈련시켰고, 고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국민회의(ANC)와 나미비아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SWAPO) 해방군, 그리고 미국 제재의 표적이 된 짐바브웨 로버트 무가베(Robert Mugabe) 정부를 지원했다.
1982년 북한은 이스라엘이 미국 후원하에 레바논을 공격했을 때 레바논의 방위에 기여했으며, 헤즈볼라가 지하무기고와 벙커, 그리고 통신망을 구축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지하시설은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목적을 무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후 북한은 이란과 (2011년 카다피 붕괴 이전의) 리비아가 핵기술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미국이 바샤르 알아사드(Basharal-Assad)를 축출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자 특수부대를 파견하여 미국 후원하의 Jihadi군과 전투했다.
이상의 정책들은 완화될 줄 모르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적대감과 정권교체 계획 때문에 취해진 것이었다. 워싱턴 당국은 전세계에서 자신의 적들을 돕고 있는 북한의 현정권을 제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북 Vs 남
미국은 한국전 동안에 처음으로 북한에 대한 봉쇄조치를 취한 이후 1980년대까지 그 조치를 연장했다. 그 목적은 북한을 세계경제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의 전시기를 통하여 조선은 사회주의 진영의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견실한 경제적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성과는 농촌지역까지 포함하는 전 지역에서 높은 기술수준의 교육을 실시했던 덕분에 가능했다.
조선은 놀랍도록 거대한 수력발전 댐들과 전 세계에서 제일 깊은 지하철을 건설했다. 특히 깊은 지하철 건설은 한국전쟁동안에 지하방어시설을 건설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선이 전후에 빠른 속도로 사회의 기반시설을 재건했던 반면에, 남한은 1960년 이승만이 학생 주도의 시위로 권좌에서 축출되기까지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남아 있었다.
이승만이 집권하는 동안 남한은 GNP의 24%를, 미군병사 상대의 매음에 의존하고 있었다. 58세의 매춘 경험이 있는 김애란 씨는 2009년에 “미군에게는 제일 큰 핌프가 우리정부였다”고 말했다.
남한 경제는 1970년대 박정희 통치 하에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 정권보다 경제의 운영에서 유능했으며 일본자본의 대대적인 투입이라는 혜택을 누렸다.
1977년 전 한국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미국 의회에서 “북한에서는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북한 국민이 남한 국민보다 박탈감을 덜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북의 경제 생산이 감소하고 있던 시기에도 김일성 가문이 정권을 유지했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1990년대의 생존
1990년대는 조선에게 특별한 고난의 시기였다. 1994년에 김일성이 사망했고, 그의 아들 김정일이 뒤를 이었다. 조선은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로 인하여 중요한 교역상대국들을 잃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은 연이은 자연재해를 겪어야 했다. 남서부 지역을 홍수가 강타하면서 식량창고가 사라졌다. 이 홍수로 인해 150만톤 규모의 지하 곡물저장고가 파괴되었다. 그 밖에도 전력생산능력의 85%가 사라졌으며, 540만 인민들의 집을 잃었다.
북한에서는 이 위기를 ‘고난의 행군’ 시기라고 부른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국제사회가 고통을 완화시켜주기위해 개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는 오히려 경제봉쇄조치를 강화했으며, 북한으로 들어오던 유류공급까지 차단했다. 그 의도는 불만을 심어서 정권교체를 용이하게 해보려는 것이었다.
중국국경에 주둔하고 있던 CIA요원들은 절망적인 처지의 농민들에게 소꼬리를 댓가로 쌀을 제공했으며, 이 거래 뒤에는 북한의 농업경제를 더욱 철저하게 몰락시키겠다는 계산이 숨어 있었다. 기름이나 전기가 없어서 트랙터를 가동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는 소가 유일한 경작수단으로 남게 된다. 이때 소를 없애려했다면, 그 의도가 기아를 유도하려 했던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치명적인 지정학적 게임
북한 인민들은 모든 잔인한 수단들이 동원되는 치명적인 지정학적 게임에서 오랫동안 볼모로 잡혀 있었다. 그 유례를 찾아보자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경제봉쇄 조치가 최소 50만명 어린이들을 사망으로 내몰았던 이라크의 경우일 것이다.
북한의 경우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기구가 어린이들에게 비타민A 보충제를 제공하려 했으나 가로막혔고, 그 결과 적어도 2,772명의 어린이들이 죽었다.
2010년대 후반 출산건강에 관련된 의료장비에 대해 내려진 제재조치는 그 충격이 임신여성 72명과 신생아 1,200명의 사망으로 나타났다.
북한이 미국의 경제제재와 정권교체 시도에 당면하여 불가피하게 핵견제력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음을, 오바마 시절 국가정보원장을 맡았던 James Clapper와 같은 미국의 고위 관료들도 인정했다. Clapper는 북한의 핵프로그램에 대해 “생존을 위한 출구전략”이라고 말했다.
1994년 6월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핵프로그램 때문에 전쟁의 가장자리까지 접근했다. 그 위기는 김일성 정부가 영변핵시설을 조사하겠다는 국제 핵에너지 감시기구(IAEA)의 요청을 거절하면서 시작되었다. 북측은 그들만이 차별적인 대상이 되었고, 조사팀에 정보요원이 침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거절했다.
미국 측이 선제군사 공격으로 협박하자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으로 날라가 김정일을 만났다. 그리고 그의 중재로, 조선은 무기생산이 불가능한 새로운 원자로와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원유를 공급받는 대가로 자신의 핵프로그램을 동결하겠다는 내용의 합의를 받아들였다.
국무부 관리로서 그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Selig S. Harrison은 후에 북측이 협상의 목표에 부합하도록 영변원자로의 가동을 중단했지만, 클린턴 행정부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확인해 주었다. 특히 북이 식량부족을 비롯한 경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경제제재의 해제가 반드시 필요했지만, 클린턴 행정부는 북측 요구를 외면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측은 약속했던 원유공급과 경수로 제공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북한은 이 시점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상실하고, 2002년 핵협정(NPT)에서 철수했으며, 핵무기의 독자적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악의 축에서 트럼프까지
조지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이라크, 이란 등 테러리즘의 후원국이라고 추정되는 국가들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함으로써 불에 기름을 부었다.
미 의회조사국의 동아시아 전문가였던 Larry Nikstch는 “북한에서의 정권교체가 부시행정부의 주된 목표였다”고 말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위해서 경제봉쇄 외에도 북의 항해로를 차단하는 등 새로운 경제적 압력이 가해졌고, 이러한 압박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국방장관 Donald Rumsfeld는 “다수의 목표를 향한 대대적인 공격계획을 폭넓게” 고려하고 있었다.
부시의 재임기간 동안에 잠시의 해빙기가 있었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 경제 압박을 강화하고, 조선의 핵 기반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는 등 강경노선에 따른 접근을 새롭게 시행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자유주의적 기조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자들과 함께 앞서 말한 정책들을 선택했던 것은, 그들 스스로가 아시아의 악한 공산주의 정권 하나를 상대로 선한 대결을 벌리고 있다는 생각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 년 동안, 주류언론들은 북한을 악마화하는 데 열중했고 돈을 대가로 조선에 대한 역정보를 파는 탈북자의 이야기를 방송했다.
2017년 김정은은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그의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했다고 비난받았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수사당국은 김정은이 연루되었다는 어떤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다. 북한의 공안국이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Otto Wambier)를 고문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비난이 있었지만, 이 비난 또한 근거가 없었다.
국무장관 Madeleine Albright는 2000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자신이 북한에 대해 역선전과 편견 때문에 무언가 크게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김정일이 얼마나 기이한 인물인가를 보고 받았는데, 그가 회담을 잘 준비했고, 매력적이고, 스마트하며, 군사 분야에 관해 기술적인 문제까지 잘 알고 있었으며, 풍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일반 대중의 전형화된 견해는 2014년 소니사가 제작한 헐리우드 영화 『The Interview』에서 잘 드러났다. 한 관람자에 의하면 이 영화는 “인종주의적 이미지와 용어”를 채택했고, “북한의 희화된 지도자가 피투성이로 처형되는 장면”을 즐겁게 전하려 했다는 것이다.
제작자 겸 배우인 Seth Rogen은 그를 비롯한 제작진이 정부에서 일하는 인사들을 만나서 조언을 들었는데 그들이 CIA에 소속되어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그 영화는 오래 지속된 선전활동의 일부였음이 분명했으며, 제작진의 예상을 뛰어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서 도널드 트럼프가 조선지도자 김정은을 만났을 때 그를 향한 조롱이 폭넓게 쏟아졌다. Hillary Clington은 평양과의 협상을 향한 그의 움직임을 “돼지에게 립스틱을 발라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외교적 제안을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압박을 북한을 조정하는 지렛대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북-중 관계는 베이징이 평양을 지배하는 신제국주의적 관계가 아니었다.
아브람스의 책은 독자들이 조선이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힘을 이해하는데, 그리고 공격적인 정권교체 정책의 정당화에 도움이 되었던 대중매체의 고정관념을 깨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미국인들은 북한 인민들이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북한 인민들은 그 반대가 타당하다고 믿는다. 북측의 그런 믿음이 훨씬 더 탄탄한 근거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미국이 시작했고 미국이 끝내야 하는 갈등에서 북측은 도덕적 우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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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ovable Object: North Korea's 70 Years At War with American Power
by A. B. Abr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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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 have been officially at war for over 70 years, one of the longest lasting and most unbalanced conflicts in world history, in which a small East Asian state has held its own against a Western superpower for over three generations. With the Western world increasingly pivoting its attention towards Northeast Asia, and the region likely to play a more central role in the global economy, North Korea’s importance as a strategically located country, potential economic powerhouse and major opponent of Western regional hegemony will only grow over the coming decades. This work is the first fully comprehensive study of the ongoing war between the two parties, and covers the history of the conflict from the first American clashes with Korea’s nationalist movement in 1945 and imposition of its military rule over southern Korea to North Korea’s nuclear deterrence program and ongoing tensions with the U.S. today. The nature of the antagonism between the two states, one profoundly influenced by both decolonisation and wartime memory, and the other uncompromising in its attempts to globally impose its leadership and ideology, is covered in detail.
Northern Korea is one of very few inhabited parts of the world never to have been placed under Western rule, and its fiercely nationalist identity as a deeply Confucian civilisation state has made it considerably more difficult to tackle than almost any other American adversary. This work elucidates the conflicting ideologies and the discordant designs for the Korean nation which have fuelled the war, and explores emerging fields of conflict which have become increasingly central in recent years such as economic and information warfare. Prevailing trends in the conflict and its global implications, including the multiple wars that have been waged by proxy, are also examined in detail. An in-depth assessment of the past provides context key to understanding the future trajectories this relationship could take, and how a continuing shift in global order away from Western unipolarity is likely to influence its future. (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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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don customer
5.0 out of 5 stars A very interesting, well researched and brilliant book.
Reviewed in the United Kingdom on 13 Decembe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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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a book that cleared away the wool from my eyes. Main stream media always portrays North Korea as evil and the USA as good. However the truth is that North Korea has been the victim and the USA the aggressor. If one has an open mind, then this book should be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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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Dluzak
1.0 out of 5 stars North Korean Propaganda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25 Januar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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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book is biased in favor of North Korea with facts and events cherry-picked to cast a sinister totalitarian government in a positive light. A.B. Abrams is likely a pen name for a group of propagandists in Pyong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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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Armstrong
5.0 out of 5 stars Eye-opening information on North Korea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1 Februar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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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uthor provides interesting insights into North Korea. The readers will encounter surprising facts about North Korea and uncomfortable truths about the US interventions. We think everything is North Korea's fault if things go wrong in the Korean Peninsula. This is always not the case. You can discover a lot of things about North Korea you did not know before. Now is the time to put aside our prejudices about this little-understood country.
This book is strongly recommended by some renowned pundits including a professor from Colombia University and two former diplom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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