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7

손민석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5) 손민석 | Facebook

손민석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을 다 봤다. 

재미없다는 평가도 많이 보이는데 나는 그럭저럭 재밌게 봤다. 나름대로 서사에 공을 들이기 위해 머리 쓴 흔적이 많이 보였다. 최고 빌런이 사실 최약체였다는 설정을 알아차리라고 이런저런 떡밥 흘려놓은 것도 그렇고 이병헌과 이정재가 왜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줬다는 점에서 나는 설정과 서사 자체는 잘 조립해놨다고 본다. 마지막에 이정재가 염색하는 걸 보고 좀 깨기는 했는데 이병헌과의 대비라는 점에서는 납득할만한 설정이고 그 설정으로 이어지게 된 주인공의 변화를 낳은 사건과도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괜찮았다. 이정재한테 너무 안 어울렸다는 게 문제였을뿐.. 

일본 영화 신이 말하는대로를 표절했다는 말에 대해서는 표절까지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미지나 이런 게 너무 비슷해서 나도 보자마자 그 영화 생각이 났다는 점에서는 문제라고 본다. 문제의식이나 이런 걸 베낀 건 아니라 표절까지는 아닌 것 같고. 나름 괜찮은 긴장감과 적절한 반전, 그리고 나쁘지 않은 문제의식이 잘 조화됐다고 본다.

 다만.. 내가 진짜 보는 내내 기분 나빴던 건 결국 이 드라마는 세상 모든 경쟁에서 승리한 부자들의 '신놀음'에 미천한 인간이,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은 인간이 대항하는 구도인데 시청자를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 부자들의 신놀음에 위치시킨다는 점이다.. 영화 속의 VIP들이 사람 죽어나가는 걸 보며 즐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청자들 또한 안전한 곳에서 서로 죽고 죽이고 인간 내면의 추악함을 보여주는 과정을 즐기는거다.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모든 지옥도에 너도 참여하고 있고 공범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으면 나름 성공한건데 그게 약간 좀 억지스러워서.. 

그리고 이정재와 마찬가지로 게임에서 우승했지만 이정재와 다른 길을 택한 이병헌의 고시원에 '라캉'에 대한 해설서가 있었다는거 너무 작위적이지 않니? 인간 욕망의 밑바닥까지 다 본 이병헌이 마찬가지로 인간 욕망을 다룬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책을 읽는다는 건 너무 작위적이고 뻔해서 좀.. 그랬어. 인간 목숨값이라는 말에서 아이디어를 따와서 말그대로 인간 목숨 "값"이라는 걸 전시한다는 서사 자체가.. 탁월하다..고 할 수는 없고 식상한 지점도 있고 그런데.

. 아무튼 그래.. 한국적인 소재로 한국적으로 풀어냈다고 본다.. 한번 볼 정도는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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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내가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이 정말 기분 나쁜 이유는 
주인공이 승리한 게 아니라는 점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꼬인 사람이라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오징어게임의 중심서사는 경쟁에서 항상 승리해 부자가 된 이들의 '신놀음'에 인간성을 지닌 주인공이 대항하는 것인데 이 모든 걸 기획한 부자가 주인공한테 패하지 않는다는 게 내가 기분 나쁜 지점이다. 
오징어게임 자체가 부자들이 자기랑 똑같은 인간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부자들이 온갖 경쟁 속에서 승리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돈 없는 이들도 6번의 게임 속에서 승리하면 부자가 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니까 부자들은 자신과 똑같은 인간을 만들어내면서 "너라고 다를 것 같아?"라는 마음으로 즐기는건데..

 자폐적인 세계관 속에서 즐거워하는 부자들이라는 설정 자체도 기분이 나쁜 포인트이지만
 더 기분 나쁜 건 놀이 자체가 어린아이의 놀이라는 것. 
무슨 말인가 하면 부자는 돈을 버는 과정에서 순수성을 잃어버렸기에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는 이 게임을 통해 즐거움을 얻으려고 하는건데 
이 설정 자체가 부자는 닳고 닳은 인간, 
빈자는 가진 게 없어서 순수한 어린시절과 같은 상태라는 전제를 갖고 있다. 

물론 실제로 돈이 없다고 해서 어린아이 같을 수가 없으니 잔혹한 짓도 하고 그러는건데 최고 빌런 입장에서 보자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마치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신의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한 마음으로 빈자들과 함께 맘껏 놀 수 있게 된다. 여기서 기분이 최고로 나쁘다..

6 comments
박성우
선생님 그럼 만화 은하! 어떠신지요. 네이버블로그에 연재 중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만화입니다. 인간성을 버리지 않고 기득권에 대항하는 멸망 인류의 마지막 자유인이 은하 차원에서 대항하는 스토리인데 처음에는 그림체가 거북할 수 있어도 정말 흥미로운 스토리고 보다보면 그림체도 익숙해집니다.. 감히 추천드려요ㅎ
 · Reply · 6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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