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8

손원영 | Facebook 위안부

손원영 | Facebook
8 Aug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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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매판학자 이영훈 교수에 대한 비판 우리는 광신적인 반일운동을 지양하고 이번 기회에 일본에 종속적인 경제구조를 해체하고 한국 내 친일매판세력을 청산해야 한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 친일매판 담론을 이끌고 있고 어제 MBC 기자에게 폭행까지 행한 이영훈 교수에 대해 비판을 한다. 이영훈 교수에 대한 비판 - 민족주의 진영이 이영훈에 대해서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민족주의 진영의 누구보다 방대한 실증적 자료를 근거로 내재적 근대화론자들의 허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대한 자료의 수집과 분석, 정리에 대해서 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의 학문은 다음의 문제를 가진다. 첫째, 그가 논거로 사용한 방대한 실증적 자료들은 총독부가 일제의 식민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또 객관적으로 공정한 자료라 하더라도 일본 엘리트의 관점이 투영된 자료들로 자료 선택 자체가 아전인수격으로 행해졌다. 그는 의도적으로 왜곡된 조선총독부의 통계와 조사를 비판적 수정작업을 충분하게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둘째, 그는 조선조 후기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과소평가하고 일제 강점기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과대평가하고 있다. - 그의 주장대로 일제강점기에서 1인당 GDP가 고성장한 기간은 1930년대에 국한된다.(허수열, 「식민지근대화론의 쟁점-근대적 경제성장과 관련하여」, 檀國大 東洋學硏究所, <東洋學>, 第41輯, 2007년 2월, 248면.) 이영훈은 “조선 사회의 전시기에 걸쳐 지주제와 무관한 또는 불완전한 형태로 포섭된 自作農과 自小作農은 쉽게 무시될 수 있을 정도의 부차적 범주가 결코 아니었다. 조선 전기의 경우 자작농 지배력이 강한 설득력을 갖는 한편의 연구동향을 별도로 하더라도 조선 후기의 경우 지방에 따라 지주제의 발전 정도가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음은 약간의 관찰과 추론으로써도 쉽게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李榮薰, 『朝鮮後期社會經濟史』, 한길사, 1988, p. 17면.)라며 조선조 후기의 내재적 발전을 부정하고 일제강점기 이후의 사회경제에서 공장제 수공업 및 근대 산업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계량적 수치, 일본과 무역통계를 제시한다. 하지만, 식민지 이전의 조선에서 일부이지만, 경영형 부농, 상업적 광작, 매뉴팩처의 실증을 찾아낼 수 있다. 또, 식민지 근대화는 실제로 당시 가장 중요한 산물이던 쌀만 하더라도 1941년 43.1%를 수탈하였다면 1944년에는 63.8%를 수탈하고(정태균, 『일제의 경제정책과 조선사회-조세정책을 중심으로』(역사비평사, 1996, p.61) 제주도에서는 해녀들이 생산한 해산물의 90%를 수탈하여(현기영 증언) 해녀들이 항일투쟁을 전개할 정도로 조선에서 생산된 것들의 40~70%를 수탈한 경제인데 이런 실증들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은폐하고 있다. 셋째, 이영훈은 ‘서구화〓근대화’라는 구태의연한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이영훈은 내재적 근대화론에 대해 “서구 사회의 역사적 발전과정으로부터 추출된 기본법칙을 비서구사회의 다양한 역사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려는 것은 마치 신데렐라가 흘리고 간 유리구두에 발을 맞추려고 애쓰는 시골처녀의 욕심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으로”비유된다고 지적하였다.(이영훈, 「한국자본주의 맹아문제에 대하여」,『한국의 사회경제사』(한길사: 1987), 58∼61면.) 하지만, 근대와 근대성은 모든 나라에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다. 쉬무엘 아이젠스타트를 비롯하여 리델 등은 근대는 서구적 근대만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그 지역의 사회경제적 맥락, 전통, 역사적 경험, 문화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고 이를 복수의 근대성(multiple modernities)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양의 근대화가 역사적으로 先進을 구가하며 지금도 계속해서 다른 나라에 근본적인 참조체계로 작용한다 하더라도, 서양의 근대성 유형이 유일하게 ‘진정한’ 근대성은 아니다.”(Shmuel N. Eisenstadt “Multiple Modernities,” Daedalus: Proceedings of the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 V.129, No.1, winter, 2000, pp.2∼3.) 또, 폴커 슈미트는 복수의 근대성론이 세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며 대안으로 多種의 근대성론(varieties of modernities)을 제시한다. “자본주의가 똑같은 양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며 다종의 자본주의(varieties of capitalism)가 있다. 영국, 미국 등의 자본주의가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유주의 자본주의(liberal Capitalism)라면, 독일과 일본은 비자유주의 자본주의(non-liberal Capitalism) 체제이다. 다종의 자본주의가 있는 것처럼, 서양의 근대성이라는 개념과 범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없거나 서양의 근대성을 수용한 이후에도 서양의 제도적 형식이나 구조로 수렴되지 않는 ‘서양 외부의 근대성(modernities of outside the West)'이 있다.”(Volker H. Schmidt, “Multiple Modernities or Varieties of Modernity?”, Current Sociology, Vol. 54, No. 1, 77-97 (2006), pp.81∼82.) 넷째, 이영훈이 적용하고 있는 실증주의 방법론 자체가 기존체제를 옹호하는 패러다임 내에서의 객관성일 뿐이다. 실증주의는 이미 기존의 체제에서 아는 것, 인정된 것을 바탕으로 사회와 역사, 문학과 예술 텍스트를 해석하기에 실증주의 연구자는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기존체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적 작업을 행하게 된다.(.한국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넘었음에도 아직 식민지 역사학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유 또한 일제 식민 학자들이 식민지사관(타율성론, 정체론, 日鮮同祖論)을 가지고 실증주의 방법론에 기대어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한국사를 왜곡하여 구성하였고, 이를 이병도를 중심으로 조선사편수회와 경성제국대의 어용학자들이 수용하고 이들의 제자와 손제자들이 아직도 학계에서 강력한 헤게모니를 형성하고 있고, 이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민족주의적 사학자들조차 상당수가 방법론은 실증주의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상 졸고, 「근대성 논의에서 패러다임과 방법론의 혁신 문제- 식민지근대화론과 내재적 근대화론을 넘어 差異와 異種의 근대성으로」, <국어국문학> 153호, 2009년 12월 30일. 발췌요약함.
민속원, Insu Bae and 22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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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Nov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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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이 개봉되었다. 영화는 위안부 여성들을 대표하는 ‘김복동 할머니’를 상징으로 하여 일본군 성노예 여성들이 겪었던 고통스런 기억들을 하나하나 소환하여 관람자에게 ‘정의 기억’을 촉구하고 있다. 더욱이 영화는 아직도 사죄하지 않고 있는 일본당국의 만행을 고발하면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온 세계의 시민들도 정의 기억에 동참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그러면서 영화는 ‘꽃’(윤미래 노래/로코베리 작사작곡)이란 노래로 막을 내린다.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빈들에 마른 풀 같다 해도/ 꽃으로 다시 피어날 거예요/ 누군가 꽃이 진다고 말해도/ 난 다시 씨앗이 될 테니까요/ 그땐 행복 할래요/ 고단했던 날들/ 이젠 잠시 쉬어요/ 또다시 내게 봄은 올 테니까(후략)” 노랫말은 ‘성령’을 내려주십사 간절히 노래하는 찬송가 183장의 “빈들에 마른 풀 같이”와 묘하게 겹쳐지면서, 빈 들에서 마른 풀처럼 고통스럽게 살다간 위안부 할머니들의 괴로움과 정의의 외침 그리고 꽃으로 피어날 부활의 희망을 우리에게 강렬히 전달해주고 있다. 참 한(恨) 많은 질곡의 역사이다. 이정배 교수는 <종교개혁 500년, ‘以後’신학>(2017)이란 책에서 ‘역사유비’의 신학을 주장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중세 가톨릭신학은 ‘존재유비’(analogia entis)의 신학으로, 그리고 루터 이후 개신교신학은 ‘신앙유비’(analogia fide)의 신학으로 명명될 수 있다. 여기서 존재유비의 신학이란 하나님과 인간이 존재론적으로 얼마나 서로 비슷한 것인가를 논하는 신학이라고 한다면, 신앙유비의 신학이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그 어떤 비슷함도 없고 오직 인간의 믿음에 의해서만 하나님에게 이를 수 있다는 신학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정배 교수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보내면서 진정한 종교개혁을 위해 종교개혁 그 이후의 신학은 과거의 존재유비와 신앙유비의 신학을 모두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제 새로운 신학은 ‘역사유비’(analogia historia)의 신학으로 나가야 함을 역설한다. 여기서 역사유비란 각기 다른 시제들인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역사유비의 신학은 고통스런 과거의 역사를 ‘애도적 기억’을 통해 현재에 소환하여 그것의 아픔을 치유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와 조율시키는 작업을 말한다. 역사유비의 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의 희생자와 패배자들의 고통을 현재로 불러내는 애도적 기억으로, 그것을 통해 불의에 의해 희생된 과거의 역사를 다시 정의롭게 제 자리를 잡도록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활동을 통해 우리는 메시아적 구원의 주체로서 현재라는 시간을 과거에서 미래로 뻗어 나가게 한다. 이것을 그는 ‘회억’(回憶)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강조하는 ‘정의 기억’과 다르지 않다. 결국 아픈 과거를 바르게 기억해주는 정의 기억으로서 회억이 없다면, 우리의 미래, 곧 하나님의 나라는 없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회억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은 ‘각비’(覺非)이다. 각비란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즉 과거의 역사가 잘못되었다는 깨달음을 통해 역사는 단순히 기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니다’라는 깨우침에서 새롭게 솟아나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나님 나라를 여는 것이다. 이것을 동학의 용어를 빌어 표현한다면, ‘후천개벽’의 역사를 여는 것이다. 따라서 회억이든 각비든 혹은 정의기억이든 그것들은 모두 지난 고통스런 불의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공의의 역사를 세우는 ‘프락시스’(praxis) 곧 실천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새 하늘과 새 땅을 여는 하나님의 나라 운동의 각 모습들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지금까지 그런 정의 기억의 작업을 게을리해 온 것이 사실이다. 희생자의 고통을 기억하려는 정의 기억 대신에 한국 교회는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가해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그 한 예는 최근 한국 사회에 문제가 되고 있는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교회들의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교회는 신사참배의 거부를 자랑스런 한국 교회의 유산으로 선전하면서도 일제 강점기 시절 한국 사회가 큰 경제발전을 이뤘다면서 일본에 감사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이중적인 태도 말이다. 그 얼마나 자기모순인가? 수탈과 착취를 근대화로 포장한 식민경제를 어떻게 정의 기억으로 회억하자는 말인가? 진정한 정의 기억은 식민지 시절 수탈된 한국 경제를 직시하는 일이요, 징용공이나 위반부로 전장에 끌려가 고귀한 생명을 잃은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바르게 기억하여 그들의 원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다. 예수께서는 종종 ‘깨어 있음’을 강조하셨다. 예컨대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면서 주인이 혼인 잔치에서 돌아와서 문을 두드릴 때에 곧 열어 주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다.(눅 12:36) ‘깨어 있음’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하기 위한 조건인 셈이다. 그렇다면 깨어있음이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적어도 바른 역사의식을 갖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일인지를 바르게 분별하며, 혹시 잘못된 기억이 있다면 그것을 바르게 기억하도록 수정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회억이요 정의 기억의 다름 아니다. 따라서 내가 꿈꾸는 교회는 깨어 있는 공동체, 곧 정의 기억의 공동체이다. <주간기독교>, 『2206호』 (2019/08/28)
Paul Dongwon Goh and 72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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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Aug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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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몸을 빼앗겼던 위안부 여성들,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중국으로 러시아로 또 만주로 돌아다니며 동분서주했던 독립투사들, 특히 무엇보다 식민지백성으로서 늘 열등국민 취급받으며 언어를 빼앗기고 각종 차별을 받던 한반도의 노예들, 그들이 해방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과연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저는 지난주 <군함도>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그 영화의 작품성에 대한 시시비비가 적지 않지만,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다시한번 일본의 만행에 슬픈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산업화의 상징으로 알려진 군함도에 까닭없이 끌려가서 노예로서 석탄을 캐던 우리의 조상들, 이름없이 그렇게 죽어간 수 많은 조선의 영혼들, 정말로 가슴 아픈 우리 노예국가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1945년 8월 15일, 그 조국의 광복은 아마도 엄청난 기쁨이요 감격이었을 것입니다. 시편 126편1절에 나와 있듯이,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아마도 그들은 “꿈을 꾸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민족에게 제1의 해방 광복절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1945년 우리는 일본에 해방되었지만, 우리는 또 다시 ‘분단’이라는 또 다른 노예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이란 제1의 해방을 경험한 후에, 바벨론에게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서 50년동안 종살이하였던 것처럼, 우리는 지금 72년째 분단이란 종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종살이 하고 있는 동안에 신탁통치도 경험했고, 남북전쟁도 경험했고, 독재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625와 같은 끔직한 전쟁의 위험을 겪고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분단과 전쟁의 괴물로부터 해방되는 제2의 광복절을 꿈을 꾸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강가에서’라는 저항의 노래를 부르며 제2의 출애굽을 꿈꾸었듯이, 우리도 그런 꿈을 꾸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들의 요구대로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겠습니까? 나의 입의 말과 내 마음의 묵상이 오직 주께 열랍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3.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가 분단의 포로로 살면서 우리의 원수들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야 할까요? 그리고 어떻게 제2의 광복을 꿈꾸며 살아야 할까요? 오늘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참으로 어려운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 만큼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마5:43-48) 저는 정치인도 아니고, 국제관계 전문가도 아닙니다. 게다가 전쟁전문가는 더더욱 아닙니다. 저는 다만 성경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이고 목사로서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성경의 말씀을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지금 우리 민족의 분단을 초래하고 또 그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우리 민족의 원수는 누구입니까? 마치 바벨론이 유대 나라를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땅으로 포로로 잡혀간 것처럼, 지금 우리 민족을 분단시키고 지난 72년 동안 우리를 분단이란 포로생활을 시키고 있는 우리의 민족의 원수는 누구입니까? 북한입니까? 일본입니까? 중국입니까? 아니면 미국입니까? 아니면 우리 자신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그 모두 다입니까? 제 소견으로는 지금 우리 민족의 분단을 고착시키고 통일을 막는 원수들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을 포함한 주변국가들 모두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 민족의 통일을 원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도 원수요, 중국도 원수요, 미국도 원수요, 일본도 원수입니다. 아니 통일을 간절히 바라지 않는 우리 자신이 원수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원수들로부터 해방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제2의 해방, 제2의 광복절을 맞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제2의 해방을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할 과제는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예수님 말씀에 의지해서 두 가지를 말씀드리면서 오늘 제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첫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2의 광복인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또 우리의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치 바벨론 강가에서 저항의 노래를 부르며 간절히 기도했던 유다인처럼 우리도 분단에 저항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평화통일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요즈음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서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저항의 노래가 사라졌고, 또 평화통일의 기도가 사라졌습니다. 오직 먹고 사는 문제로만 기도하고 노래합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하면서 그들이 불렀던 저항의 노래와 기도를 기억하십시다.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겠습니까? (오직)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랍되기를 간절히 비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합시다. 특히 우리 민족의 슬픔인 분단의 원수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일본을 위해 기도하고, 중국을 위해 기도하고, 또 미국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그들의 마음이 바뀌기를,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뀌고, 그래서 대한민국이 제2의 광복인 평화통일을 맞이할 수 있도록 그들이 돕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한, 우리의 원수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쩜 더욱더 포악해 질 것이고, 우리의 통일은 그 만큼 더 멀어질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할 일은 원수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를 해하려고 핵무기를 만들고, 또 폭력적으로 첨단 무기를 동원해서 우리를 위협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예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원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은 사랑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분단상황에서 원수를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제 소견으로는 남북한 모두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즉 정의와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에서도 실현될 수 있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최근 북한에서 귀순한 사람 중에서 최고위급인 전 주영북한공사 태영호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그 분의 대북관을 비교적 경청하는 편입니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중앙일보, 2017.8.12)에서 북핵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김정은 정권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교체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평화적인 북한의 정권교체) 100% 가능합니다. 김정은 체제와 핵미사일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한국과 미국은 북한 당국을 상대로 협상도 하고 제재도 했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해결의 주체를 북한 당국으로 보면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열쇠는 북한 민중에 있습니다. 북한 민중을 각성시켜 그들 스스로 현 체제에 반대해 들고 일어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에 따르면, 북핵 문제 풀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남한의 촛불혁명처럼, 북한에서도 그런 촛불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 스스로 민주주의 의식이 고양되고, 그렇게 양심혁명에 따른 내적 변화가 생길 때 북한이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명백합니다. 북한에 촛불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참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북한 인민들 사이에 민주주의의식이 싹트고, 그래서 촛불혁명과 같은 양심혁명이 일어날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것입니다. 저는 그 길만이 북핵문제와 우리의 분단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우리는 전쟁을 방지하고 전쟁억지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면 국방력을 키우고 싸드 같은 신무기도 구입하고, 또 미사일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2의 광복인 평화통일을 위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하겠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참고 인내하면서 화해와 평화통일의 노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김정은이가 전쟁을 부추키고, 미국의 트럼프가 전쟁을 감행하려고 해도, 우리가 제2의 광복인 통일을 바란다면, 우리는 거기에 결코 편승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형제자매들에게만 인사를 하면서 지내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사람들도 그 만큼은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마5: 47-48)] 4.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945년 8월 15일, 그날 우리는 제1의 해방을 감격적으로 경험했습니다. 마치 꿈꾸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후 해방의 기쁨도 잠시 자그만치 72년째 분단이란 제2의 포로생활을 겪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제2의 광복절을 더욱 갈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2의 광복절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저항의 노래를 부르면서, 평화통일을 위해서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그 날을 위해서 더욱 이웃을 사랑합시다. 특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사랑 말고, 우리의 원수를 더욱 사랑합시다. 그러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하던 유다인들에게 해방을 허락하시고, 또 일제의 식민지백성이던 우리 민족에게 8월 15일 해방을 선물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 민족에게 제2의 해방인 평화통일을 허락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제2의 광복인 평화통일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며 묵묵히 사랑을 실천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윤석 and 104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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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Aug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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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서 그리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위원회의 한 위원으로서, 일본교회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진실 앞에 겸손하고 정직한 한일 양 교회의 노력으로 한일관계가 개선되기를 기도한다. 샬롬_()_ 韓国人として、そして韓国キリスト教教会協議会神学委員会の委員として、日本の教会に心から感謝の気持ちを伝える。真実の前に謙虚で正直な日韓両教会の努力で韓日関係が改善されることを祈る。平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s post
일본/재일교회,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서 발표해 1. 일본교회가 과거 일본 정부가 행한 침략전쟁과 현재의 한일관계에 대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이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통해 전해왔습니다. 2. 일본그리스도교협의회, 일본기독교단, 재일대한기독교회 등 일본 내 주요한 기독교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외국인주민기본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전국기독교연락협의회」(이하 외기협)는 지난 8월 15일, “우리는 일본의 역사책임을 직시하고, 한국의 기독교인, 시민사회와 건설적인 대화를 계속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일본 정부를 향해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해 희생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희생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배상을 할 것과 한국을 겨냥한 부당한 수출규제조지를 측각 철회할 것 등을 요구하며 공동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2. 외기협은 성명서를 통해 일본 정부가 반도체 3부품의 대한 수출규제에 이어 한국을 수출우대국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은 “자유무역의 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한국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적대적 행위”라 지적하며, 이는 “전후 배상의 본래적 의미를 무시하고 한일청구권 협정과 국제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결여된 잘못된 인식 속에서 행해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외기협은 “전후 보상이란, 본래 정치문제도, 외교문제도 아닌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 과정에서 둘도 없는 생명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빼앗긴 사람들의 인권 문제라고 우리는 확신한다”라고 밝히며, 일본 정부가 징용자들에 대한 개인배상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 2조1항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조항에 따라 소멸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2007년 4월 27일, 일본 최고재판소의 일본과 중국간의 배상관계에 있어서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의 경우는 청구권을 실재적으로 소멸시키는 것까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청구권을 소구하는 권능(재판에 의해 구제를 요구하는 법률상의 능력)을 잃는데 그친다”고 판시한 것을 언급하며, 현재 일본정부의 주장은 최고재판소의 판결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상태에서 나온 것으로 교묘한 논점 흐리기이자 무지에 의한 강변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따라 외기협은 일본제철과 미츠비시 중공업을 향해 한국대법원의 판결을 수용할 것과, 인권침해 사실에 대해 희생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사죄와 배상에 나설 것을 요구했으며, 일본 정부를 향해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제법에 근거하여 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피해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첫 발을 내디딜 것을 강력하게 촉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외기협은 국가간의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한국의 시민사회간의 다양한 만남과 건설적인 대화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고 밝히고 한국교회 및 기독교인들과의 공동의 대응을 더욱 다양하게 진행해 갈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외기협은 1987년, 재일 외국인의 지문날인제도를 폐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되어 외국인등록법 개정 운동 등 일본 내 이주민의 인권 향상을 위해 오래도록 노력해 왔으며 현재도 일본의 전쟁책임과 보상 문제 해결을 통해 외국인 주민과 일본국민이 화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생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일본교회의 전국적인 조직입니다. 본 공동성명에는 외기협 외에도 일본 내 27개 기독교단 및 단체들이 참여했습니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일본/재일교회 공동성명> 우리는 일본의 역사책임을 직시하고, 한국의 기독교인, 시민사회와 건설적 대화를 계속할 것이다. 한국의 대법원은 지난해(2018년) 10월 30일, 전 징용자 4명이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 배상을 요구한 재판에서 징용자 한 사람당 1억원(약 1천만엔)을 지불하라고 명령했다. 대법원은 본 판결을 통해 과거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을 수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징용자들은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던 일본 기업에 의해 반인도적 불법 행위를 당했으며, 또한 이들의 손해 배상 청구권은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협정에 의해서도 한국 정부의 외교 보호권과 개인의 손해 배상 청구권은 모두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또 11월 29일, 미츠비시 중공업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 재판에서 한국 대법원은 같은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에 관해 일본 정부는 징용자의 개인배상청구권은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으므로, 한국대법원의 이와 같은 판결은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판단”이며, “의연하게 대응하겠다”고 표명했다(2018년 10월 30일, 중의원 본회의). 그리고 올해 7월 4일, 반도체 3부품의 대한(対韓) 수출규제에 이어 8월 2일, 한국을 수출우대국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각의 결정을 내렸으며 이는 28일부터 실시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복조치는 자유무역의 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적대적인 행위이다. 게다가 이것은 전후 배상의 본래적 의미를 무시하고 한일청구권 협정과 국제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결여된 잘못된 인식 속에서 행해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 일본에 있는 기독교 제 교회와 단체는 한국의 제 교회, 기독교인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공동프로그램을 실시해 왔다. 최근에는 한・일・재일교회의 청년들이 만나, 때로는 격론하며, 서로 배우는 관계를 형성해 왔으며, 일본의 기독교학교와 한국의 기독교학교 간 상호 방문을 통해 학생들간의 만남과 교류,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를 이어왔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교류와 협력이 연기되고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우리 일본에 있는 기독교회와 기독교인은 이러한 사태에 깊이 우려하며, 우리의 생각과 공통의 바람을 여기에 표명한다. 1. 문제시되는 것은 식민지, 전쟁피해자의 인권 문제이다. 징용자들은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든 일본이 전시체제 하에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1942년 「조선인 내지 이입 알선 요강」의 ‘관 알선방식’에 의해, 그리고 1944년 식민지 조선에 전면적으로 발동한 「국민징용령」에 의해 강제 연행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임금도 지급받지 못한 채 감전사 위험이 있는 용광로에 코크스를 투입하는 등의 가혹하고 위험한 노동을 강요당했으며, 제공된 식사는 부족하고 변변치 않았고, 외출도 허용되지 않고, 도망을 기도했다는 이유로 체벌을 받는 등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강제노동이자(ILO제29호 조약), 중대한 인권침해였다. 따라서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해결이 필요하다. 즉 전후 보상이란, 본래 정치문제도, 외교문제도 아닌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 과정에서 둘도 없는 생명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빼앗긴 사람들의 인권 문제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2. 개인배상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소멸되지 않았다. 징용자들의 개인배상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 2조 1항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조항에 의해서 과연 소멸했을까? 한국대법원은 징용자의 위자료청구권은 한일청구권 협정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의 외교 보호권도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한편 일본의 최고재판소는 일본과 중국간의 배상관계에 있어서 외교보호권은 포기되었으나,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의 경우는 “청구권을 실재적으로 소멸시키는 것까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청구권을 소구하는 권능(재판에 의해 구제를 요구하는 법률상의 능력)을 잃는데 그친다”고 판시하고 있다(2007년 4월 27일 판결). 따라서, 현재의 일본 정부가 한일청구권협정에 적시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했다”는 문구가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도 완전히 소멸했음을 의미한다고 본다면 이는 일본의 최고재판소의 판결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것이 된다. 원래 일본정부는 이전부터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포기된 것은 외교 보호권이며,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견해를 거듭 표명했다(1991년 8월27일, 제121회 국회예산위원회/1992년2월26일, 제123회 외무위원회/1992년 3월9일, 제123회 국회예산위원회). 현재 일본 정부는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중대한 인권침해에 기인한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피해당사자의 동의없이 국가간의 합의에 의해 일방적으로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견해를 나타낸 판례는 이탈리아의 치비텔라 마을에서 있었던 나치 독일의 주민학살사건에 관한 이탈리아 최고재판소나, 유사한 사건에 대한 그리스재판소의 판결 등, 국제적으로 얼마든지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개인이 당한 인권침해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구제를 도모하고자 하는 국제 인권법의 취지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일본정부가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해 이미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묘한 논점 흐리기 이며, 한국대법원의 판결을 “국제법에 비추어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무지에 의한 강변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3. 인권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인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문제가 된 징용자들의 소송은 민사소송이고, 피고는 일본 기업이다. 이 문제의 본질은 인권침해이기 때문에 소송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피해자 개인의 인권이 구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제철과 미츠비시중공업은 한국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인권침해의 사실과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와 배상을 해야만 한다. 중국인 강제연행・강제노동사건인 하나오카(카시마건설) 사건, 니시마츠건설 사건, 미츠비시메트리얼 사건에서는 소송을 계기로 일본 기업이 사실과 책임을 인정, 사죄하고 해당 기업이 자금을 각출해서 기금을 설립하여 피해자 전원의 구제를 도모했다(2000년 하나오카/2009년 니시마츠/2016년 미츠비시). 또한 피해자 개인에 대한 위자료 지불뿐만 아니라, 수난비 등을 건립하고 매년 중국인 피해자와 그 유족들을 초청하여 기념식을 여는 등의 활동을 해왔다. 따라서 일본제철, 미츠비시 중공업도 마땅히 징용 피해자 전체의 해결을 향해 나아가야 하며, 이렇게 하는 것이 곧 기업으로서 국제적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제법에 근거하여 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피해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 「체결국 [일본]은 『위안부』제도에 관한 법적 책임을 받아들일 것, 대부분의 피해자에게 받아들여지고, 존엄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무조건 사죄할 것, 생존해 있는 가해자를 소추할 것, 모든 생존자(survivors)에게 권리의 문제로써 충분한 보상을 하기 위해 신속하고 효과적인 입법, 행정상의 조치를 취할 것, 이 문제에 관해 학생 및 일반 대중을 교육시킬 것,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또는 이 사건을 부정하는 어떤 시도도 반박하고 제재해야 한다.」(자유권조약위원회, 2008년 총괄소견) 한국뿐만 아니라 지금 세계는 일본 정부와 일본 사회를 향해 역사책임에 진지하게 마주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4. 일본 정부의 책임, 우리의 과제 우리는 일본 정부를 향해 한국을 겨냥한 수출규제조치를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그리고 과거 정부가 행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의 희생자에 대해 정부는 인권 침해의 사실과 책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하고,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배상을 할 것을 요구한다. 이웃 나라인 일본과 한국에 있어서 “미래지향의 관계”란 과거의 역사를 직면하고 기억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 일본의 기독교회와 기독교인들은 한국의 제 교회, 기독교인들과 공동의 대응을 더욱 다양하게 진행해 갈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간의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한국의 시민사회간의 다양한 만남과 건설적인 대화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일본의 교회, 기독교인으로서 역사 책임을 바로 보고 갈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확신하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의 선교가 하나님이 요구하고, 하나님 스스로 수행하고 계신 선교(Missio Dei)를 비추는 선교가 되지 못했음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토착 문화를 파괴하고, 공동체를 쇠퇴시켜, 기독교인 사이에서도 분열을 낳는 폭력적이고 제국주의적인 행위를 일으켰고……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식민지주의적인 폭력의 죄를 고백한다.” “우리는 과거의 악행을, 그것이 마치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잊을 수 없다. 희생자에게 잊기를 강요하는 것은 그들의 존엄을 다시 한번 깎아 내리는 일이다.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지만 다른 방식으로 기억할 수 있다. 즉, 우리가 과거와 가해자에 대해, 이제까지와 다른 관계를 만드는 것을 가능케 하는 기억의 방법이다. 그것이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존재하는 이유이다.”(2005년 세계교회협의회 세계선교전도위원회 『화해의 미니스티리로서의 선교』) 2019년 8월 15일 외국인주민기본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전국기독교연락협의회(외기협) 공동대표: 김성제(일본그리스도교협의회 총간사) 마츠우라 고로(일본카톨릭 난민이주이동자위원회 위원장) 아키야마 토루(일본기독교단 총간사) 김병호(재일대한기독교회 총간사) 이청일(간사이 외기련) 요시타가 카노우(일본밥티스트 연맹) [참여단체] 외국인주민기본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홋카이도 그리스도교연락협의회(홋카이도외기련)/ 외국인주민기본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카나가와그리스도자연락회(카나가와외기련)/외국인주민과의 공생을 바라는 중부그리스도교연락협의회(중부외기련)/외국인과의 공생을 바라는 관서그리스도교대표자회의(관서대표자회의)/외국인과의 공생을 바라는 관서그리스도교연락협의회(관서외기련)/외국인 주민과의 공생을 실현하는 히로시마그리스도자연락협의회(히로시마외기련)/외국인주민과 공생을 실현하는 큐슈,야마구치그리스도자연락협의회(큐슈,야마구치외기련)/일본카톨릭 난민이주이동자위원회/일본카톨릭 정의와 평화협의회/일본그리스도교협의회 재일외국인의 인권위원회/일본그리스도교협의회 도시농촌선교(URM)위원회/재일대한기독교회 사회위원회/재일대한기독교회 재일한국인문제연구소(RAIK)/재일한국기독교회관(KCC)/서남한국기독교회관(서남KCC)/재일대한기독교회 서남지방회 사회부/일본그리스도교회 인권위원회/일본그리스도교회 야스쿠니신사문제특별위원회/일본기독교단 홋카이교구 평화부문위원회/일본기독교단 홋카이교구 일본군[위안부]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프로젝트팀/일본기독교단 토우호크지구 사회문제담당위원회/일본기독교단 아사히카와세이코전도소/일본기독교단 서중국교구 선교위원회 사회부/일본YWCA/전국기독교학교인권교육연구협의회/일본복음루터교회 사회위원회/마이너리티 선교센터
Paul Dongwon Goh and 13 others
8 Jun 2020 
Public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입니다. 위안부 문제를 세계적 문제로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美 하원에서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생생하게 증언함으로써 일본 정부의 사과와 역사적 책임을 담은 위안부 결의안 채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프랑스 의회에서도 최초로 증언하였고, 연세 90의 노구를 이끌고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촉구하는 활동도 벌였습니다.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가 없는 위안부 운동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참혹했던 삶을 증언하고, 위안부 운동을 이끌어 오신 것만으로도 누구의 인정도 필요 없이 스스로 존엄합니다. 위안부 운동은 민간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로 성장해온 운동입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스스로 여성인권 운동가가 되어 세계 곳곳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시민사회의 많은 활동가들이 연대 했고, 시민들도 다 같이 힘을 보탰습니다. 어린 학생들까지도 수요집회에 참여했고, 위안부 문제를 숨겨진 과거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30년간 줄기차게 피해자와 활동가들, 시민들이 함께 연대하고 힘을 모은 결과 위안부 운동은 세계사적 인권 운동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결코 부정하거나 폄훼할 수 없는 역사입니다. 시민운동은 시민의식과 함께 발전해왔습니다. 이번 논란은 시민단체의 활동 방식이나 행태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 위안부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운동의 대의를 손상시키려는 시도는 옳지 않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존엄과 명예까지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반인륜적 전쟁 범죄를 고발하고, 여성인권의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헌신한 위안부 운동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 도전입니다. 위안부 운동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피해자들의 상처는 온전히 치유되지 못했고, 진정한 사과와 화해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역사적 진실이 숨김없이 밝혀지고, 기록되어 자라나는 세대들과 후손들에게 역사적 교훈으로 새겨져야 합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의 논란과 시련이 위안부 운동을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특히 정부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기부금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 기부금 또는 후원금 모금활동의 투명성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겠습니다. 자신이 낸 기부금이나 후원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투명하게 알 수 있다면 국민들의 선의가 바르게 쓰이게 되고, 기부문화도 성숙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도 투명하게 관리하겠습니다. 시민단체들도 함께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들께서도 시민운동의 발전을 위해 생산적인 논의가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문재인's post
<수석보좌관회의> 위안부 운동을 둘러싼 논란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기도 조심스럽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굳건히 지켜져야 합니다. 위안부 운동 30년 역사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여성 인권과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숭고한 뜻이 훼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역사적 증언에서부터 위안부 운동은 시작되었습니다. 피해 당사자들이 침묵의 벽을 깨뜨리고 “내가 살아있는 증거다”라고 외쳤고, 거리에서 법정에서 국내와 국제사회에서 피해의 참상을 알리고 정의로운 해결을 호소했습니다. 전쟁 중 여성에 대한 참혹한 성폭력 범죄가 세계에 알려졌고, 한일 간의 역사 문제를 넘어 인류 보편의 인권과 평화의 문제로 논의가 발전되었습니다. 세계 곳곳의 전시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유엔을 비롯하여 국제사회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내며 전세계적인 여성인권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께서 스스로 운동의 주체가 되어 당당하고 용기 있게 행동하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지금은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시고 열일곱 분의 할머니만 우리 곁에 남아 계십니다. 너나없이 위안부 진실의 산증인들입니다. 특히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입니다. 위안부 문제를 세계적 문제로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美 하원에서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생생하게 증언함으로써 일본 정부의 사과와 역사적 책임을 담은 위안부 결의안 채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프랑스 의회에서도 최초로 증언하였고, 연세 90의 노구를 이끌고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촉구하는 활동도 벌였습니다.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가 없는 위안부 운동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참혹했던 삶을 증언하고, 위안부 운동을 이끌어 오신 것만으로도 누구의 인정도 필요 없이 스스로 존엄합니다. 위안부 운동은 민간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로 성장해온 운동입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스스로 여성인권 운동가가 되어 세계 곳곳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시민사회의 많은 활동가들이 연대 했고, 시민들도 다 같이 힘을 보탰습니다. 어린 학생들까지도 수요집회에 참여했고, 위안부 문제를 숨겨진 과거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30년간 줄기차게 피해자와 활동가들, 시민들이 함께 연대하고 힘을 모은 결과 위안부 운동은 세계사적 인권 운동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결코 부정하거나 폄훼할 수 없는 역사입니다. 시민운동은 시민의식과 함께 발전해왔습니다. 이번 논란은 시민단체의 활동 방식이나 행태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 위안부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운동의 대의를 손상시키려는 시도는 옳지 않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존엄과 명예까지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반인륜적 전쟁 범죄를 고발하고, 여성인권의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헌신한 위안부 운동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 도전입니다. 위안부 운동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피해자들의 상처는 온전히 치유되지 못했고, 진정한 사과와 화해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역사적 진실이 숨김없이 밝혀지고, 기록되어 자라나는 세대들과 후손들에게 역사적 교훈으로 새겨져야 합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의 논란과 시련이 위안부 운동을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특히 정부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기부금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 기부금 또는 후원금 모금활동의 투명성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겠습니다. 자신이 낸 기부금이나 후원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투명하게 알 수 있다면 국민들의 선의가 바르게 쓰이게 되고, 기부문화도 성숙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도 투명하게 관리하겠습니다. 시민단체들도 함께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들께서도 시민운동의 발전을 위해 생산적인 논의가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수석보좌관회의>

위안부 운동을 둘러싼 논란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기도 조심스럽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굳건히
지켜져야 합니다. 위안부 운동 30년 역사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여성 인권과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숭고한 뜻이 훼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역사적 증언에서부터 위안부 운동은
시작되었습니다. 피해 당사자들이 침묵의 벽을
깨뜨리고 “내가 살아있는 증거다”라고 외쳤고,
거리에서 법정에서 국내와 국제사회에서 피해의 참상을
알리고 정의로운 해결을 호소했습니다.
전쟁 중 여성에 대한 참혹한 성폭력 범죄가 세계에
알려졌고, 한일 간의 역사 문제를 넘어 인류 보편의
인권과 평화의 문제로 논의가 발전되었습니다.

세계 곳곳의 전시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유엔을 비롯하여 국제사회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내며 전세계적인 여성인권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께서 스스로 운동의
주체가 되어 당당하고 용기 있게 행동하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지금은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시고 열일곱 분의
할머니만 우리 곁에 남아 계십니다. 너나없이 위안부
진실의 산증인들입니다.
특히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입니다.
위안부 문제를 세계적 문제로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美 하원에서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생생하게 증언함으로써 일본 정부의 사과와 역사적
책임을 담은 위안부 결의안 채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프랑스 의회에서도 최초로 증언하였고,
연세 90의 노구를 이끌고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촉구하는 활동도 벌였습니다.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가 없는 위안부 운동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참혹했던 삶을 증언하고,
위안부 운동을 이끌어 오신 것만으로도 누구의 인정도
필요 없이 스스로 존엄합니다.

위안부 운동은 민간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로 성장해온
운동입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스스로 여성인권
운동가가 되어 세계 곳곳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시민사회의 많은 활동가들이 연대
했고, 시민들도 다 같이 힘을 보탰습니다. 어린
학생들까지도 수요집회에 참여했고, 위안부 문제를
숨겨진 과거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30년간 줄기차게 피해자와 활동가들, 시민들이 함께
연대하고 힘을 모은 결과 위안부 운동은 세계사적 인권
운동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결코 부정하거나
폄훼할 수 없는 역사입니다.
시민운동은 시민의식과 함께 발전해왔습니다.
이번 논란은 시민단체의 활동 방식이나 행태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 위안부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운동의
대의를 손상시키려는 시도는 옳지 않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존엄과 명예까지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반인륜적 전쟁 범죄를 고발하고, 여성인권의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헌신한 위안부 운동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 도전입니다.

위안부 운동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피해자들의
상처는 온전히 치유되지 못했고, 진정한 사과와 화해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역사적 진실이 숨김없이 밝혀지고,
기록되어 자라나는 세대들과 후손들에게
역사적 교훈으로 새겨져야 합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의
논란과 시련이 위안부 운동을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특히 정부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기부금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 기부금
또는 후원금 모금활동의 투명성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겠습니다. 자신이 낸 기부금이나 후원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투명하게 알 수 있다면
국민들의 선의가 바르게 쓰이게 되고, 기부문화도
성숙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도 투명하게 관리하겠습니다.
시민단체들도 함께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들께서도 시민운동의 발전을 위해 생산적인 논의가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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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Jan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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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주요 요인이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일본정부가 사죄하고 앞으로 그 문제를 상호 거론하지 않는다는 선에서 합의를 보았다.(2015.12.28.) 그에 대한 논란이 국내외적으로 끊이지 않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한일 양국간의 우정의 바탕과 우호증진을 새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한일 간 선린우호의 관계를 증진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과거사에 대한 일본측의 진심어린 사죄의 실천과 더불어 그에 따른 후속 조치로써 바른 역사교육을 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이 길만이 나는 한일간 진정한 우정의 토대를 쌓는 길이며, 더 나아가 앞으로 미래의 좋은 벗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돌이켜보면, 한일 간의 깊은 원한관계는 가깝게는 20세기 전반기에 이루어졌던 일제의 한국병탄과 폭압적인 식민지배에 기인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임진왜란을 비롯한 수없이 많았던 왜구의 침략과 문화파괴 때문이었다. 이런 불행한 과거사로 인하여 한일 양국 간의 선린우호관계의 회복과 증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화의 시대에 우리는 계속하여 양국 국민 간의 뿌리깊은 원한관계만을 증복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따라서 지금 한일 양국의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실하게 미움 대신 사랑과 평화를 키우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일제 식민시기에 가장 한국과 한국의 에술을 사랑했던 일본인 중의 하나인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을 진실한 한국인의 벗으로 떠올리며, 그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2. 야나기는 일본 도쿄 출생으로서 동경제대에서 공부하고(심리학) 동양대학과 명치대학의 교수를 지낸 분이다. 그는 1915년 한국을 처음 여행한 뒤, 한국의 예술에 매료되어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사람이 되었다. 특히 그는 한국의 민속공예에 관심을 가지면서 민속공예품과 조선자기 등의 수집에 남다른 노력을 하였고, 1922년 조선총독부가 광화문을 철거하려고 했을 때 이에 대한 저지운동을 펼쳐서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그리고 1924년 그는 경성에 조선민족미술관을 개설하기도 하였다. 특히 그가 많은 한국인들에게 감동적으로 알려진 것은 그의 저서, <조선과 예술>(1922, 초반/범우사, 1989)) 때문이다. 야나기의 <조선과 예술>이란 책에는 "조선의 미술", "석굴암의 조각에 대하여", "아, 광화문이여!", "조선 도자기의 특질", "조선의 목공품", 그리고 "조선인을 생각한다"는 짧은 글들이 모아져 있는데, 모든 글 속에 그가 얼마나 한국과 한국의 예술을 사랑하였는지 잘 드러나 있다. 이 글들 중에서 특히 내게 주목을 끄는 것은 마지막 "조선인을 생각한다"라는 글과 맨 처음의 글인 "조선의 미술"이다. 먼저 "조선인을 생각한다"라는 글은 1919년 5월 19일 작성한 글이다. 한국의 3.1운동 소식을 듣고 그에 대한 일본의 폭압적인 진압을 비판하며 쓴 글로 알려져 있다. 당시 살벌한 일제의 폭압정치 하에서 그가 어떻게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는지 그 용기와 한국인에 대한 사랑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의 글 중에 먼저 주목되는 부분은 왜 기독교가 3.1운동 당시 한국에 그렇게 급속히 전파되고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종교가 되었는지 언급한 부분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오랜 역사 동안 중국과 일본의 침략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애정을 갈구하는 국민이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한국인을 위로 하지 못했는데,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애정에 목마른 한국민들을 사랑해 줌으로써, 당연한 결과로 기독교가 한국인들에게 환영받게 되었다고 언급한 점이다.(158, 164) 이처럼 그는 종교의 역할을 잘 지적하였고, 특히 한국에 유독 기독교가 성장하게 된 원인을 잘 집어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어떠했는가? 야나기에 의하면,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화하면서 사랑 대신 칼을 주지 않았느냐고 날카롭게 일갈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조선인들이여, 비록 내 나라의 지식인 전부가 그대들을 괴롭히는 일이 있더라도 그들 중에는 이 한 편의 글을 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 주기 바란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나의 지우는 나와 같은 애정을 그대들에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기 바란다. 이렇듯 우리나라가 올바른 길을 걷고 있지 않다는 분명한 반성이 우리들 사이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 주기 바란다."(167) 그렇다! 일본정부는 한국민족을 괴롭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으로서의 일본인 자신과 많은 지인들은 한국인을 사랑하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집단으로서의 일본정부와 한 인간으로서의 일본인을 구별할 필요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야나기의 언급처럼, 우리가 잘못된 정책을 펴는 나쁜(?) 일본정부에 대해서는 잘못된 역사관을 수정하도록 계속하여 싸우며 투쟁해야 되겠지만,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야나기처럼 착한 일본인에 대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열고 진실한 우정을 나누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3. 야나기가 쓴 책 <조선과 예술>의 백미는 아마도 조선의 예술이 세계적이고 또 영원하다고 언급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당시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그 어느 누구도 조선의 예술이 위대하다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때, 야나기만은 조선의 예술이야말로 세계적이라고 선언하면서, 조선의 예술이 살아있는 한 일본은 결코 조선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얼마나 위대한 선언인가?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일본이 국보로서 세계에 자랑하고, 세계의 사람들도 그 아름다움을 시인하고 있는 작품의 대다수는 도대체 누구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그 중에서도 국보 중의 국보라고 불러야 할 대부분의 것은 실로 한민족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17) "미의 세계에서 민족[한민족]을 이미 영원의 것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예술이 있는 동안 그 민족[한민족]에게 사멸은 없다. 나는 조선의 예술이 신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예술이란 사실을 믿어 의치 않는다."(33) 그리고 그는 계속하여 이렇게 언급한다. "조선의 벗이여, 당신들은 언젠가는 변화하는 정치에서 민족의 독립을 얻는다. 그러나 조선의 변함없는 독립이 예술에서는 달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지금은 영원한 것에 마음을 쏟아야 할 소중한 때가 아닌가. 왜 아직도 주어진 미의 혈액을 다시 데우려 하지 않는가."(48) 위의 글은 놀라웁게도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배하던 1922년 당시의 상황에서 쓰여졌다. 그 때 야나기는 언젠가 한국이 반드시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것을 내다보았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조선은 자신의 예술혼을 더욱 불태울 것을 촉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예술이 하나님(신)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비(슬픔, 한)의 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즉 한국인은 자신이 겪은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하였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동시에 신의 마음은 언제나 그 슬퍼하는 자에게 이끌리는 법이기 때문에 한국의 예술은 영원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끝으로 야나기는 다음과 같이 더욱 강한 어조로 예술의 힘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강조하면서 그의 글을 맺고 있다. "조국의 운명을 유구하게 하는 힘이 예술에 있다고 믿어 버려라. 망하지 않는 힘이 미에 있다고 절실히 느끼라. 칼은 약하고 미는 강하다. 모든 민족은 이 보편적인 원리를 굳게 믿지 않으면 안 된다."(49) 4. 야나기가 예언한 대로, 대한민국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였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 국민들은 최근 한류 등의 영향으로 우리의 예술혼이 세계 어느 나라에 못지 않게 뛰어다는 점을 점차 인식해 가고 있다. 하지만 결코 만족할 수준은 못된다. 더욱이 아직 야나기가 그렇게 부러워했던 신라시대의 석굴암이나 조선의 백자와 같은 불후의 예술작품을 독립한 대한민국은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예술목회의 과제는 분명하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앞장 서서 석굴암과 조선의 백자와 같은 멋진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한국인의 예술혼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예술목회의 과제라고 믿는다. 새해를 맞이하여 (사)한국영성예술협회 예술목회연구원도 이 일에 매진하고 싶다. 끝으로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통해서 큰 고통을 겪었지만, 야나기 같은 혜안을 가진 멋진 일본인 친구를 얻은 것이 그나마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모쪼록 우리의 벗 야나기의 조언 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미의 혈액을 다시 데우기 위해" 다시 한번 예술에 우리의 정성을 모았으면 좋겠다.(20160104)
100.daum.net
야나기 무네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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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Jul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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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련의 사태가 위안부 재협상과 일제강점기 징용관련 배상판결과 관련한 보복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위안부 재협상과 일제강점기 징용배상은 우리나라 우리국민이 양보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그것은 국가와 국민의정신, 정체성과 관련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싸움은 적당히 협상하거나 흐지부지 타결할 일이 아닙니다. 일본 맥주 안 사고, 일본 여행 안 가고, 그거 푼돈 아니냐? 찌질하게 몇 푼이나 되느냐? 찌질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게 시작입니다. 일본과 관련되어 돈이 들어가는 곳 하나하나 찾아서 바꿔갈 것입니다. 그 찌질한 맥주, 알량한 여행에서부터 시작된 개싸움입니다. 누가 시킨 적 없이 국민내부에서 일어난 개싸움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개싸움을 할테니, 정부는 정정당당하게 WTO에 제소도 하고, 국제사회에 일본의 후안무치함과 편협함을 널리 알리십시오. 외교적으로 당당하게 나가십시오. 아마 많은 국민들 속에 있는 생각일 것입니다.
유진규's post
개싸움은 우리가한다 정부는 정공법으로나가라❗️(퍼옴) 정부가 불매운동을 선동한 적 없습니다. 여당이 그런 운동을 시사한 바도 없습니다. 야당은(특히 제1야당은) 우리나라 정당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알만한 네임드 사회단체가 나선 것도 아닙니다. 그냥 국민 하나 하나가 빡쳐서 스스로 하는 불매운동입니다. 방송이나 언론에서 불매운동하자고 붐을 일으킨 것도 아닙니다. 국민의 가슴 내면에서 하나하나 불이 일어나, 그렇지만 밖으로 큰 내색 않고 조용히, 언제나 그러했다는 듯 일상적으로 쓰던 건 안 쓰고 꼭 써야하는 것 다른 제품을 씀으로서 실행하게 된 것입니다. 유치한 놀음이라고, 오래 못갈 것이라고 벌써부터 비아냥거리고 공격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진 그랬을지 모릅니다. 예전에 독도를 걸고 넘어지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가고 했을때 일시적으로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그러다 잠잠해졌나 봅니다. 그렇지만, 이번엔 다른 것 같습니다. 아니 다릅니다. 우리 국민들 제대로 빡쳤습니다. 큰소리가 안 나서 그렇지, 아니, 더 큰 분노를 큰소리를 내지 않고 삭이면서 조용히 행동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냄비근성 아닙니다. 모래알 아닙니다. 제대로 빡치면 백만명씩 촛불 들고 일어나 대통령도 끌어내리는 국민입니다. 역사 속에 시민혁명 한 번 제대로 없는 그들과는 다릅니다. 그런 우리국민을 제대로 화나게 했습니다. G20회담을 개최하면서 의장국으로서 일부러 우리나라 대통령만 빼고 회담하는 유치찬란한 짓을 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 대통령입니다. 혼내고 욕을해도 우리가 합니다. 니네가 감히 우리 대통령을 욕보였습니다. 삼성...애증이 교차하는 우리나라 대표기업입니다. 우리나라 경제의 대표주자이면서 범법행위도 많이 저질렀습니다. 그런 삼성의 옆구리에 비수를 들이대고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아무리 미워도 우리 자식에게 부당하고 비겁한 공격 들어오는 건 못 참습니다. 때려도 우리가 때릴 겁니다. 일본은 이번에 우습고도 황당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무역흑자국이 무역적자국을 상대로 무역보복으로 선제공격을 했습니다. 물건 팔아서 이득을 보는 쪽이 물건 사가는 쪽에 공격을 해서 일시적으로 혼란에 빠지게 됐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사가는 쪽이 공격할 무기는 더 많습니다. 일본한테 물건 못 사면 큰일 나고 넙죽 엎드리리라 생각했나 봅니다. 무역보복을 일으킨 일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현 정부의 실정으로 화살을 돌리고 정부와 대통령을 공격할 것이라고 일부언론과 야당에게 귀띔을 받았나 봅니다. 그러나, 당신들 잘 못 아셨습니다. 이 일련의 사태가 위안부 재협상과 일제강점기 징용관련 배상판결과 관련한 보복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위안부 재협상과 일제강점기 징용배상은 우리나라 우리국민이 양보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그것은 국가와 국민의정신, 정체성과 관련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싸움은 적당히 협상하거나 흐지부지 타결할 일이 아닙니다. 일본 맥주 안 사고, 일본 여행 안 가고, 그거 푼돈 아니냐? 찌질하게 몇 푼이나 되느냐? 찌질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게 시작입니다. 일본과 관련되어 돈이 들어가는 곳 하나하나 찾아서 바꿔갈 것입니다. 그 찌질한 맥주, 알량한 여행에서부터 시작된 개싸움입니다. 누가 시킨 적 없이 국민내부에서 일어난 개싸움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개싸움을 할테니, 정부는 정정당당하게 WTO에 제소도 하고, 국제사회에 일본의 후안무치함과 편협함을 널리 알리십시오. 외교적으로 당당하게 나가십시오. 아마 많은 국민들 속에 있는 생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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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Jul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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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에서 ‘배상’(賠償)과 ‘보상’(補償)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전자는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갚는 것이고, 후자는 ‘적법행위’로 발생한 손실을 갚는 것이다. 근래 일부 정치인과 언론에서 이 점에 대해 무지하거나 또는 알면서도 문재인 정부를 흔들기 위하여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법률보좌가 업무 중 하나인 민정수석으로서(그 이전에 법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법학자로서), 이하 세 가지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1.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는 받았지만, 이는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을 받은 것은 아니다. 당시에도 지금도 일본은 위안부, 강제징용 등 불법행위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2. 2005년 참여정부 시절 민관공동위원회는 (1)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받은 자금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정치적 ‘보상’이 포함되어 있을 뿐, 이들에 대한 ‘배상’은 포함되어 있지 않고, (2)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다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안 되지만, 한국인 개인이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함을 확인하였다. 3. 2012년 대법원(제1부, 김능환 대법관 주심)이 “외교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하여 신일본제철에 대한 ‘배상’의 길이 열린다. 이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청와대 사이의 ‘사법거래’ 대상이 되었으나, 2018년 확정된다. 이러한 1965년 이후 일관된 한국 정부의 입장과 2012년 및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가 ‘경제전쟁’을 도발하면서 맨 처음 내세웠던 것이 한국 대법원 판결의 부당성이었다. “1965년 일본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한국 경제가 이만큼 발전한 것 아니냐?”류의 표피적 질문을 하기 전에, 이상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길 바란다. 일본의 한국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느냐가 모든 사안의 뿌리이다.
Kuk Cho's post
법학에서 ‘배상’(賠償)과 ‘보상’(補償)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전자는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갚는 것이고, 후자는 ‘적법행위’로 발생한 손실을 갚는 것이다. 근래 일부 정치인과 언론에서 이 점에 대해 무지하거나 또는 알면서도 문재인 정부를 흔들기 위하여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법률보좌가 업무 중 하나인 민정수석으로서(그 이전에 법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법학자로서), 이하 세 가지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1.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는 받았지만, 이는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을 받은 것은 아니다. 당시에도 지금도 일본은 위안부, 강제징용 등 불법행위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2. 2005년 참여정부 시절 민관공동위원회는 (1)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받은 자금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정치적 ‘보상’이 포함되어 있을 뿐, 이들에 대한 ‘배상’은 포함되어 있지 않고, (2)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다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안 되지만, 한국인 개인이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함을 확인하였다. 3. 2012년 대법원(제1부, 김능환 대법관 주심)이 “외교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하여 신일본제철에 대한 ‘배상’의 길이 열린다. 이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청와대 사이의 ‘사법거래’ 대상이 되었으나, 2018년 확정된다. 이러한 1965년 이후 일관된 한국 정부의 입장과 2012년 및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가 ‘경제전쟁’을 도발하면서 맨 처음 내세웠던 것이 한국 대법원 판결의 부당성이었다. “1965년 일본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한국 경제가 이만큼 발전한 것 아니냐?”류의 표피적 질문을 하기 전에, 이상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길 바란다. 일본의 한국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느냐가 모든 사안의 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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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Dec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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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일본인, 그러나 나쁜 일본국? 위안부 문제로 참 답답한 세모이다. 서정민 교수님의 글을 우연히 접하고, 답답해 하는 벗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서정민's post
송구영신(送舊迎新) 둘- 한일관계 유감 「서정민 교수의 동경에세이- 종교사학자의 생각」 블로그에 오시면 더 많은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chhistory12/150182206229 일제 하 식민지 한국에서 한국의 민중들과 고통을 함께하다 비운의 생애를 마친 전도자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 1863∼1921)가 있다. 그가 죽어, 그의 시신이 수원에 묻힐 때, 한국인 친구 김태희는 다음과 같은 고별사를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데도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 사랑에 고무되어 노리마츠 형은 조선인을 사랑했습니다. 세상에는 영국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리마츠 는 조선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조선을 사랑해 주었던 저 마음, 죽을 때까지 조선, 조선 하며 하늘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묘비록이 새겨져 있다. “우리들은 토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일본을 미워하다./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일본을 미워한다./그러나 이름 없는 노리마츠의 일본을 사랑한다./노리마츠와 같은 선량한 일본인을 사랑한다...” 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와 일부 보수우익의 일본을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밖의 대부분의 일본, 일본인과는 소통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우리와 일본, 아시아 전체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 리더십과 민중의 삶과 정서사이에 큰 괴리감을 지닌 나라인 것 같다. 가끔 내가 말하듯이 “착한 일본인들이 모여 이루어진 나쁜 일본”, 대개 이것은 정치 리더십이 자신들의 권력과 입지를 위해 선택하는 ‘나쁜 길’의 결과로써 나타난다. 현직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靖国)신사 참배, 언젠가 자세히 쓴 바 있지만, 그것은 그가 국립묘지를 참배한 것과 전혀 다른 의미이다. 근대 일본의 바르지 않은 과거에의 참배이며, 전쟁에의 정당화이며, 군국(軍國)일본에 대한 향수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일본인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다. 다만 정치적 집약도가 높은 보수층 일각의 집결을 위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일본은 이제 또 장구한 내부 갈등과 이념의 소용돌이 과정을 거칠 것이다. 한편 한국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누군가는, “아무리 경제적으로 일등 국가일지라도 자신의 행동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헤아리지 못하고 인류사회 양심에 맞지 않는 행동을 반복하면 경제력이 크고 부강해도 일류국가란 평가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백번 천 번 맞는 말 일이다. 그런데 “인류사회 양심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는 말과, ‘일류국가’라는 말이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말과 같다는 느낌은 나만의 생각일까. 정치의 권력지향성과 민중정서 간의 괴리감은 남의 나라일 만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한일양국 모두 지극히 보수적인 정권의 혜안(慧眼) 부재, 일부 민중 정서 간의 충돌, 한류(韓流)현상의 급락, 일본 자연재앙의 여파 등등으로 인해, 지난 한 해 한일관계는 유래 없는 냉각상태였다. 정치보다는 사회문화이고, 정부보다는 ‘비정부단체기관’이며, 양국의 한 사람, 한 사람 간의 분별 있는 이해와 인식으로 미래는 좀 더 밝아질 수 있다고 여긴다. 새해 한일관계 새로운 희망은 없는 것일까 생각한다. 노리미츠 마사야스, 1912년 그가 활동하던 경기도 수원에서 동지들과, 그의 일대기를 그린 책.
송구영신(送舊迎新) 둘- 한일관계 유감

 「서정민 교수의 동경에세이- 종교사학자의 생각」 블로그에 오시면 더 많은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chhistory12/150182206229

 일제 하 식민지 한국에서 한국의 민중들과 고통을 함께하다 비운의 생애를 마친 전도자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 1863∼1921)가 있다. 
 그가 죽어, 그의 시신이 수원에 묻힐 때, 한국인 친구 김태희는 다음과 같은 고별사를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데도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 사랑에 고무되어 노리마츠 형은 조선인을 사랑했습니다. 세상에는 영국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리마츠 는 조선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조선을 사랑해 주었던 저 마음, 죽을 때까지 조선, 조선 하며 하늘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묘비록이 새겨져 있다.
 “우리들은 토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일본을 미워하다./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일본을 미워한다./그러나 이름 없는 노리마츠의 일본을 사랑한다./노리마츠와 같은 선량한 일본인을 사랑한다...”

 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와 일부 보수우익의 일본을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밖의 대부분의 일본, 일본인과는 소통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우리와 일본, 아시아 전체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 리더십과 민중의 삶과 정서사이에 큰 괴리감을 지닌 나라인 것 같다. 가끔 내가 말하듯이 “착한 일본인들이 모여 이루어진 나쁜 일본”, 대개 이것은 정치 리더십이 자신들의 권력과 입지를 위해 선택하는 ‘나쁜 길’의 결과로써 나타난다.
 현직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靖国)신사 참배, 언젠가 자세히 쓴 바 있지만, 그것은 그가 국립묘지를 참배한 것과 전혀 다른 의미이다. 근대 일본의 바르지 않은 과거에의 참배이며, 전쟁에의 정당화이며, 군국(軍國)일본에 대한 향수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일본인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다. 다만 정치적 집약도가 높은 보수층 일각의 집결을 위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일본은 이제 또 장구한 내부 갈등과 이념의 소용돌이 과정을 거칠 것이다.
 한편 한국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누군가는, “아무리 경제적으로 일등 국가일지라도 자신의 행동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헤아리지 못하고 인류사회 양심에 맞지 않는 행동을 반복하면 경제력이 크고 부강해도 일류국가란 평가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백번 천 번 맞는 말 일이다. 그런데 “인류사회 양심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는 말과, ‘일류국가’라는 말이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말과 같다는 느낌은 나만의 생각일까. 정치의 권력지향성과 민중정서 간의 괴리감은 남의 나라일 만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한일양국 모두 지극히 보수적인 정권의 혜안(慧眼) 부재, 일부 민중 정서 간의 충돌, 한류(韓流)현상의 급락, 일본 자연재앙의 여파 등등으로 인해, 지난 한 해 한일관계는 유래 없는 냉각상태였다.
 정치보다는 사회문화이고, 정부보다는 ‘비정부단체기관’이며, 양국의 한 사람, 한 사람 간의 분별 있는 이해와 인식으로 미래는 좀 더 밝아질 수 있다고 여긴다. 
 새해 한일관계 새로운 희망은 없는 것일까 생각한다.

 노리미츠 마사야스, 1912년 그가 활동하던 경기도 수원에서 동지들과, 그의 일대기를 그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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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Aug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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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NHK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가 탄압을 받아 제대로 방영되지 못했다. 아베의 나팔수로 전락한 NHK는 아베의 심복 모미이 가쓰토(70세)가 신임 회장으로 취임해 작년(2014)에 “위안부는 전쟁을 한 어떤 나라에든 있었다”는 망언을 일삼았다. 8월이 되면 일본 방송은, 초순에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의 참상을 연일 틀어 주다가, 중순이 되면 도쿄, 오사카, 고베 대공습 피해, 혹은 특공대 관련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면 ‘피해자’로서의 일본을 수십 년째 세뇌시킨다. ‘나치 독일’로부터 스스로를 철저히 객체화 시키는 일본의 집단 심리는, 저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장애인들에게 내려진 진단처럼 “치료가 불가능한 것"인가? 더욱 걱정되는 것은, 그런 집단 망각의 일본에 빌붙어, 자국민을 짓밟고 착취하는 세력들에게 나라를 맡긴 조국의 동포들이다. 고국 동포들의 망각 수준은, 군인독재의 폭력을 그리워하며, 삼천리 금수강산의 제 민족에게도 포탄을 발사할 만큼 '난치'의 상태이다. 치명적인 ‘노예상태’의 깊은 수렁이다. (경도동막)
Yipyo Hong's post
「치명적 집단 망각」 패전 70주년을 맞아 일본방송들이 전쟁 관련 특집 다큐멘터리를 쏟아낸다. 어제는 “장애인과 전쟁” 시리즈로 “나치로부터 박해받은 장애인들 – 20만명 대학살은 왜 일어났나?”가 방송됐다. NHK E-tv シリーズ 戦後70年 障害者と戦争 2015年8月25日(火) ナチスから迫害された障害者たち - 20万人の大虐殺はなぜ起きたのか 독일에서 1930년대 말부터 40년대 초까지 이어진 장애인 학살계획인 「T4작전」을 소개하면서, 당시 제작된 나치스 홍보영화의 문구들을 내보낸다. “건강한 국민 동포를 건전하게 돌보기 위한 자금이 백치병 환자들(白痴者)을 부양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시설에는 그런 이들이 우글우글 거린다.” “이런 유전성 질환이 있는 형제(남매)들 돌보는 데만 지금까지 15만 4,000마르크가 소요됐다.” “대체 얼마나 많은 건강한 사람들이 이 비용으로 집을 팔아야 한단 말인가?” “질환의 증상이 심각하여 치료가 안 되는 환자를 안락사 시키는 권한을 (의사들에게) 주기로 한다” 그리곤 마지막 장면에 장애인들을 하나하나 죽여 가던 가스실을 보여준다. 참혹한 내용들을 보고 있자니 아연해질 뿐이다. 그런데 더욱 속이 매스껍고 불편해 온다. 언제나 이 맘 때면 독일 나치로부터 스스로를 객체화하여 별세계 이야기처럼 읊조리는 저 일본의 매스컴이 너무나 기만스럽기 때문이다. 1940년 9월 27일 베를린에서 독일과 일본, 이탈리아가 삼국동맹(Tripartite Pact)을 맺고 세계를 전쟁터로 몰아가지 않았나? 독일은 극서에서, 일본은 극동에서 얼마나 극악무도한 인류에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냐 말이다. 매년 8월이 되면 일본의 매스컴과 그에 세뇌된 일본 국민들은 집단 망각에 사로잡힌다.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자주 방송하여 전국민이 잘 알며, 크게 분노들 한다. 하지만 서대문형무소의 차디찬 형장과, 난징에서의 대학살, 731부대의 생체실험, 일본군 위안부의 죄악상에 대해서는 저와 같은 방송을 틀어준 적이 없다. 그러니 일본 국민들도 알리가 만무하다. 2005년에 NHK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가 탄압을 받아 제대로 방영되지 못했다. 아베의 나팔수로 전락한 NHK는 아베의 심복 모미이 가쓰토(70세)가 신임 회장으로 취임해 작년(2014)에 “위안부는 전쟁을 한 어떤 나라에든 있었다”는 망언을 일삼았다. 8월이 되면 일본 방송은, 초순에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의 참상을 연일 틀어 주다가, 중순이 되면 도쿄, 오사카, 고베 대공습 피해, 혹은 특공대 관련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면 ‘피해자’로서의 일본을 수십 년째 세뇌시킨다. ‘나치 독일’로부터 스스로를 철저히 객체화 시키는 일본의 집단 심리는, 저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장애인들에게 내려진 진단처럼 “치료가 불가능한 것"인가? 더욱 걱정되는 것은, 그런 집단 망각의 일본에 빌붙어, 자국민을 짓밟고 착취하는 세력들에게 나라를 맡긴 조국의 동포들이다. 고국 동포들의 망각 수준은, 군인독재의 폭력을 그리워하며, 삼천리 금수강산의 제 민족에게도 포탄을 발사할 만큼 '난치'의 상태이다. 치명적인 ‘노예상태’의 깊은 수렁이다. (경도동막)
「치명적 집단 망각」 

패전 70주년을 맞아 일본방송들이 전쟁 관련 특집 다큐멘터리를 쏟아낸다. 
어제는 “장애인과 전쟁” 시리즈로 “나치로부터 박해받은 장애인들 – 20만명 대학살은 왜 일어났나?”가 방송됐다. 

NHK E-tv シリーズ 戦後70年 障害者と戦争 2015年8月25日(火)
ナチスから迫害された障害者たち - 20万人の大虐殺はなぜ起きたのか

독일에서 1930년대 말부터 40년대 초까지 이어진 장애인 학살계획인 「T4작전」을 소개하면서, 당시 제작된 나치스 홍보영화의 문구들을 내보낸다. 
 
“건강한 국민 동포를 건전하게 돌보기 위한 자금이 백치병 환자들(白痴者)을 부양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시설에는 그런 이들이 우글우글 거린다.”
“이런 유전성 질환이 있는 형제(남매)들 돌보는 데만 지금까지 15만 4,000마르크가 소요됐다.”
“대체 얼마나 많은 건강한 사람들이 이 비용으로 집을 팔아야 한단 말인가?”
“질환의 증상이 심각하여 치료가 안 되는 환자를 안락사 시키는 권한을 (의사들에게) 주기로 한다”

그리곤 마지막 장면에 장애인들을 하나하나 죽여 가던 가스실을 보여준다. 

참혹한 내용들을 보고 있자니 아연해질 뿐이다. 그런데 더욱 속이 매스껍고 불편해 온다. 언제나 이 맘 때면 독일 나치로부터 스스로를 객체화하여 별세계 이야기처럼 읊조리는 저 일본의 매스컴이 너무나 기만스럽기 때문이다. 

1940년 9월 27일 베를린에서 독일과 일본, 이탈리아가 삼국동맹(Tripartite Pact)을 맺고 세계를 전쟁터로 몰아가지 않았나? 독일은 극서에서, 일본은 극동에서 얼마나 극악무도한 인류에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냐 말이다. 

매년 8월이 되면 일본의 매스컴과 그에 세뇌된 일본 국민들은 집단 망각에 사로잡힌다.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자주 방송하여 전국민이 잘 알며, 크게 분노들 한다. 

하지만 서대문형무소의 차디찬 형장과, 난징에서의 대학살, 731부대의 생체실험, 일본군 위안부의 죄악상에 대해서는 저와 같은 방송을 틀어준 적이 없다. 그러니 일본 국민들도 알리가 만무하다.  

2005년에 NHK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가 탄압을 받아 제대로 방영되지 못했다. 아베의 나팔수로 전락한 NHK는 아베의 심복 모미이 가쓰토(70세)가 신임 회장으로 취임해 작년(2014)에 “위안부는 전쟁을 한 어떤 나라에든 있었다”는 망언을 일삼았다.

8월이 되면 일본 방송은, 초순에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의 참상을 연일 틀어 주다가, 중순이 되면 도쿄, 오사카, 고베 대공습 피해, 혹은 특공대 관련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면 ‘피해자’로서의 일본을 수십 년째 세뇌시킨다. 

‘나치 독일’로부터 스스로를 철저히 객체화 시키는 일본의 집단 심리는, 저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장애인들에게 내려진 진단처럼 “치료가 불가능한 것"인가?

더욱 걱정되는 것은, 그런 집단 망각의 일본에 빌붙어, 자국민을 짓밟고 착취하는 세력들에게 나라를 맡긴 조국의 동포들이다. 고국 동포들의 망각 수준은, 군인독재의 폭력을 그리워하며, 삼천리 금수강산의 제 민족에게도 포탄을 발사할 만큼 '난치'의 상태이다. 치명적인 ‘노예상태’의 깊은 수렁이다. (경도동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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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Jul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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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특히 고노 관방장관의 위안부 군 관여 인정 발언 등을 양국의 비준이 요구되는 국가간 기본관계 문서에 공식화할 기회로 만들도록 하자.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일본의 평화헌법 9조 개정 움직임으로 이미 파탄났고 1965년 한일협정 체제 역시 본질문제의 해결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탈냉전 상황에서 이미 붕괴되고 있다. 새로운 관계 재정립을 위한 외교 그리고 법적 근거의 구축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래야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하는 동북아시아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 ------------------------- "日本のホワイト国リストからの排除と1965年韓日協定体制の崩壊に関して" -どのようにすべきか? 日本が"ホワイト国リストからの排除"を宣言した途端、私たちは"関係正常化と経済協力"を強調していた〈1965年韓日協定〉体制を、日本が一方的に廃棄した宣言としてみなすと予告すればいい。 1.日本は漁業協定改正の論議の過程で、1998年1月23日既存の漁業協定を一方的に破棄宣言したことがあって 2.その後1998年11月19日新漁業協定を締結した経緯がある。 従って今回の事態は、1965年韓日協定に盛り込まれなかった韓日関係の本質的なアプローチを明確にする機会と思った方がいい。 それだけではなくこの間、村山をはじめとする小泉日本の総理たちが行ってきた植民地支配によりもたらされた被害発言と謝罪、そして特に河野官房長官の慰安婦の軍関与認定発言等を、両国の批准が要求される国家間の基本関係文書に公式化される契機にしよう。 サンフランシスコ体制は日本の平和憲法9条改正の動きですでに破綻していて、1965年韓日協定体制もやはり、本質的な問題の解決を要求する声が高まっている脱冷戦の狀況下ですでに崩壊している。新しい関係の再構築のための外交、そして法的根拠の構築が切実な狀況だ。そうすることにより韓半島の平和と共存する東北アジアの未来が保障されることになるのだ。
김민웅's post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와 1965년 한일협정체제 붕괴에 관해” - 어떻게 할 것인가? (아래 일본어 번역 있습니다.) 일본의 “한국 화이트 리스트 배제” 선언하는 순간, 우리는 “관계정상화와 경제협력”을 강조했던 <1965년 한일협정> 체제를 일본이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선언이라고 간주할 것을 예고하면 된다. 1. 일본은 어업협정 개정 논의과정에서 기존의 어업협정을 1998년 1월 23일 일방적으로 파기 선언한 바 있었고 2. 이후 1998년 11월 19일 신 어업 협정을 체결했던 바가 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1965년 한일협정이 다루지 않았던 한일 관계의 본질적 접근을 확실히 할 기회로 여기면 된다. 뿐만 아니라 그간 야마를 비롯한 고이즈미등의 일본 총리들이 했던 식민지 지배에 따른 피해 발언과 사죄 그리고 특히 고노 관방장관의 위안부 군 관여 인정 발언 등을 양국의 비준이 요구되는 국가간 기본관계 문서에 공식화할 기회로 만들도록 하자.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일본의 평화헌법 9조 개정 움직임으로 이미 파탄났고 1965년 한일협정 체제 역시 본질문제의 해결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탈냉전 상황에서 이미 붕괴되고 있다. 새로운 관계 재정립을 위한 외교 그리고 법적 근거의 구축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래야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하는 동북아시아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 ------------------------- "日本のホワイト国リストからの排除と1965年韓日協定体制の崩壊に関して" -どのようにすべきか? 日本が"ホワイト国リストからの排除"を宣言した途端、私たちは"関係正常化と経済協力"を強調していた〈1965年韓日協定〉体制を、日本が一方的に廃棄した宣言としてみなすと予告すればいい。 1.日本は漁業協定改正の論議の過程で、1998年1月23日既存の漁業協定を一方的に破棄宣言したことがあって 2.その後1998年11月19日新漁業協定を締結した経緯がある。 従って今回の事態は、1965年韓日協定に盛り込まれなかった韓日関係の本質的なアプローチを明確にする機会と思った方がいい。 それだけではなくこの間、村山をはじめとする小泉日本の総理たちが行ってきた植民地支配によりもたらされた被害発言と謝罪、そして特に河野官房長官の慰安婦の軍関与認定発言等を、両国の批准が要求される国家間の基本関係文書に公式化される契機にしよう。 サンフランシスコ体制は日本の平和憲法9条改正の動きですでに破綻していて、1965年韓日協定体制もやはり、本質的な問題の解決を要求する声が高まっている脱冷戦の狀況下ですでに崩壊している。新しい関係の再構築のための外交、そして法的根拠の構築が切実な狀況だ。そうすることにより韓半島の平和と共存する東北アジアの未来が保障されることになるの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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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Aug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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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법무장관 지명에 기대하며, 홧팅!
Jungsik Cha's post
*조급증 또는 근시안 조국 전 민정수석이 역사드라마를 보다가 뭉클해져 아픈 식민지 시대의 상흔을 잊지 않고자 링크한 '죽창가'가 일부 언론의 뻥튀기를 통해 졸지에 현재 아베의 경제보복 국면에 무장항일투쟁이라도 벌일 기세로 돌변해 그를 낙인찍고 악마화하는 흉기로 툭하면 도용된다. 강제징용도 위안부 강제모집도 없었고 한일합방도 합법적이었으며 오히려 일제식민지 통치 덕분에 우리가 미개한 수준을 벗고 근대화의 초석을 놓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현재의 한일 경제전쟁 국면도 시종일관 일본 편을 들면서 한국정부를 맹렬히 질타하는 세력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반일이 아니면 나쁜 의미의 매국적 친일 아니냐고 조국 씨가 페북에서 한두 마디 한 걸 두고도 온 국민을 친일과 반일로 갈라쳐 분열시키고 그가 좋은 의미의 외교적 호혜를 위한 친일마저 매도하는 극렬분자안 양 몰아붙인다. 이런 논리로 그가 국민통합을 위해 고위공직을 맡는 것이 부당하다고 고색창연한 예언자의 포즈로 비감하게 부르대는 모습을 대하자니 심히 답답하고 조금 코믹하기도 하다. 제 동족을 무참하게 죽이고도 여전히 오리발 내미는 전두환 같은 세력을 사형에서 면제해주었다고 국민통합 제대로 이루어졌던가. 숱하게 범법을 저질러 감옥 생활해야 마땅한 재벌의 수뇌들 집행유예와 대통령 사면으로 풀어주었다고 절대다수 서민들의 경제형편이 확 풀린 적이 있었던가. 복지부동의 체질로 잔뼈가 굵은 공무원 관료들에게 정책을 맡겼다고 그들의 좌고우면과 기계적 중립으로 나라의 활로가 화끈한 변혁과 함께 시원하게 열린 적 있었던가. 검찰과 법조권력이 그 내부의 수장을 모셔 한 번이라도 자체 개혁의 성공으로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한탄하는 국민의 가슴을 상쾌하게 뚫어준 적 있었던가. 우리 일각의 아둔함은 도대체 사람의 말이 깔아주는 맥락을 온당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고, 그 맥락의 이치(맥리)에 동정적 혜안을 열지 못하는 데서 그 병리적 곤경은 심화된다. 이런 근시안의 편집증과 맥락의 독법에 아둔한 시각으로 제 눈밖에 난 특정 개인을 낙인찍어 악마화하는 데 급급한 두뇌로는 우리나라 정신적 선진국 진입이 어렵겠다. 그림 속의 떡으로서나 가능한 국민통합, 국민화합 떠들지 말고 함께 사는 가족, 형제자매, 주변 이웃들과라도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 법무장관에 지명된 조국 씨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잡소리들에 좌고우면 예민 반응할 것 없이 당당하게 법조개혁에 구체적인 열매로써 화답해주길 기대한다. 다수의 시민들, 온라인 네티즌들은 허구한 날 사사건건 최후의 심판관 노릇 작작하고 자기 얘기, 제 몸뚱이의 욕망 깊이 잠재된 유익하거나 교훈적인 재미난 이야기들 좀 들려주고, 그마저 따분해지면 땀 흘리며 막노동이라도 해서 돈이라도 벌든지, 사는 게 너무 피곤해 실어증 속에 끙끙거리며 힘들어하는 사람들한테 손이라도 내밀어 도와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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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of resul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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