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4

Park Yuha 위안부문제가 꼬인 이유 3 [북한(위안부)의 극단적 주장] 210912 분노의 강 이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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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문제가 꼬인 이유 3 <북한(위안부)의 극단적 주장>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협상재료로 위안부문제를 사용하기로 한 북한은 일본이 “20만명의 조선인소녀를 강제 연행”했다고 주장하게 된다. (일본 정부는 ‘종군 위안부’문제의 진상을 밝히고 사과해야 한다”-‘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 대책위원회의 고소장) 「월간朝鮮資料」1992 년 11 월호、『検証 朝鮮植民地支配と補償問題』)

사실, 이 숫자는 이미 70년대에 재일교포 김일면이 낸 책에 근거없이 등장한 숫자다. 하지만, 유엔에서 함께 활동한 일본인변호사조차 이 숫자에 의문을 표했는데도 93년에 나온 한국에서의 첫 구술집에서 정진성 교수는 “8만에서 20만으로 추정되는 위안부중 절대다수가 조선인”이라고 쓴다. 나중에는 ‘아시아 전체’숫자로 수정하게 되지만 이후 한국사회의 상식이 된 20만이라는 숫자도 북한 발 주장이었던 셈.
그리고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나타난 북한의 전’위안부’들의 증언은 함께 활동한 일본 지원단체조차 훗날 “너무 끔찍한”“너무 이질적인 증언” 이라면서, “북한 정부의 역사 인식을 강요당한 것은 아닐지 의구심” 을 가지게 되었다고 토로하도록 만든 내용들이었다.

“아기와 함께 강에 처넣어졌”다거나 “3명의 소녀가 살해당하는 것을 보았다” 거나, 일본군이 패전 직후 위안부의 “목을 베었다”는 식의 이야기들, 그리고 위안부의 목을 잘라 국을 끓이라고 군인이 명령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90년대 초에 일본은 물론 국제법률가위원회등와 유엔등이 충격을 받은 이야기들 중엔 이런 이야기들도 있었다.
북한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관계자들 역시 일본이 위안부들의 “사지를 찢어 죽였다”“유방을 도려냈다”“태아를 칼끝에 걸어 치켜올렸다”(조선인 강제 연행 진상 조사단『조선인 위안부 강제 연행 진상 규명과 보상을』、「조선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종군 위안부 태평양 전쟁 피해자 보상 대책위원회의 고소장」 1992)면서 ‘위안부’란 주로 “조선여성으로 충당할 것을 정책화”한 “조선민족 말살정책“이었으며 거의 “대부분을 섬멸” 하고 “장기간 구금”하고 “노예로 연행”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한국인 위안부들의 이야기에도 간혹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유방을 도려냈다거나 배와 자궁을 군도로 찢겼다거나 하는, 명백히 ‘적’을 대상으로 행해지곤 하는 잔혹한 이야기들은 북한 위안부들 이야기에 압도적으로 많다. 현재 한국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문신’등 가장 끔찍한 류의 이야기들도 대부분 북한 위안부들 이야기다.
이런 사태는 2000년 여성국제전범법정에까지 이어졌고, 북한의 위안부는 “(저항하면) 칼을 뽑아 목을 찌르면서 제국군의 맛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고, (목의) 피를 삼키고 있는 동안 강간 당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법률가들이 모여 진행한 이 모의법정에서 “12명중 8명은 포격으로 죽고 4명만이 생존, 중국인에 의해 포로가 되었다”는 증언도 있었음에도 남북 검사들은 함께 작성한 기소장에 일본군이 위안부의 “대량 학살”을 저질렀다면서 위안부문제는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공격/집단강간/노예사냥”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선도한 이들은 당시 검사로 참여한 박원순 변호사, 양현아교수 등이다.

이들이 말하는 “체계적””조직적””집단강간”이라는 단어들은 전부 90년대 이후 발생한 유고슬라비아/아프리카 등지에서 일어난 사태를 둘러싼 재판에서 배운 개념이었다. 그래야만 “법적으로” “적에 대한 집단공격”의 예로서 “불법행위”가 되고 ‘배상과 처벌’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남북한법률가들은 도쿄재판과 한일협정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 일을 자신들의 손으로 이루어 보려 한 것이다.
위안부문제가 “인도에 반하는 죄”라는 ‘전쟁범죄’로 국제사회에 인식된 건 이런 과정을 통해서였다. 물론 앞에 쓴 것처럼 그 전제는 ‘교전국’이라는 위치였고, 그렇게 인식되도록 관계자들은 식민지의 문제를 의식하면서도 애매하게 주장했다. 정의연이 주장했고 이제는 언론도 아무생각없이 따라하는 “국제사회 인식”이란 이렇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일본군은 위안부들에게 때로 폭행을 가했고, 때로는 폭력적인 동반자살 사건조차 일으켰지만, 일본인, 조선인이 중심인 위안소는 북한 위안부들이 말하는 행위가 행해질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이용규범을 무시하는 군인을 위안부들은 헌병에게 말해 제지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안소 규정은 음주도 폭행도 기본적으로는 금지했다. 버마등지에서의 위안부의 죽음은, 예외도 있을 수 있지만, 북한 출신 위안부가 다른 한편으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기본적으로는 폭격사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최근까지도 그렇게 보려고는 하지 않았던 이들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주류다. 그때문에 여전히 진짜 비극—본질이 보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북한 위안부들 이야기와 사진이 기록된 이토 타카시 책의 번역.
May be an image of text that says "기억하겠습니다 일본군 위안부가 된 남한과 북한의 여성들 노청자 盧清子 1922-2004 남한 이귀분 李貴粉 1927-2004 남한 김영실 金英賞 1924-2003 북한 리상옥 李相玉 1926-2005 북한 심미자 沈美子 1924-2008 남한 김대일 金大日 1916-2005 북한 강순애 姜順愛 1927-2005 남한 황금주 黃錦周 1922-2013 남한 곽금너 郭金女 1924-2007 북한 문옥주 文玉珠 1924-1996 남한 리계월 李桂月 1921-2005 강덕경 姜德景 1929-1997 남한 리복녀 李福汝 1919-1993 북한 김학순 金學順 1924-1997 남한 심달연 沈達連 1927-2010 남한 리경생 李京生 1917-2004 북한 유선옥 廣善玉 1923-2003 북한 정옥순 鄭玉順 1920-1998 복한 김영숙 金英淑 1927-2010 북한 박영심 朴英深 1921-2006 이토 다카시 안해통· 옮김"
Chee-Kwan Kim, Nara Jang and 190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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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ngdong Kim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단상은, 의도를 담아 사실 혹은 진실을 왜곡하거나 비트는 행위는 제대로된 정의구현에 장애가 된다는 점입니다. 설사 충분한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좋은 그리고 올바른 결실을 만들 수는 없다고 느낍니다. 그런 점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진실은 밝혀져야 하고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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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김성동 의도도 있었겠지만 그 이상으로 오랜 세월 축적된 어떤 감정들이 이런 방식으로 나타난 거 아닐까 합니다. 북한을 특별히 비난할 생각은 없고, 이런 과정에 조금은 거리를 두어야 했던 ‘지식인’들의 정의의식과 기만이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같이 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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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ngdong Kim
      박유하 아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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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yun Ju Kim
    "90년대 유고슬라비아/아프리카 등지에서 일어난 재판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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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국제사회는 또다른 착각도 했다. 그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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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문제가 꼬인 이유(번외) <잘못된 이해>2
번외로 학도병이었던 조선인 군인이 쓴 소설 일부를 올려 둔다. 시중에서 구할 수 없어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인데 이제 반환해야 해서.
여러가지 의미에서 읽는 분들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지만 이 자료를 올리는 이유는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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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90년대 초에 만들어진 위안부상을 여전히 고수하며 ‘예외’적인 사항을 일반화해서 조선인 위안부의 전체상인 것처럼 주장하는 학자들이 참고했으면 하는 바람.

또 하나는 90년대 이후 세계를 향해 주장해 왔고, 몇년 전에는 언론매체까지 불러 대대적으로 유포했던 위안부 ‘학살’설이 학계에서도 재고되고 이제부터라도 국민들을 향한 주장에서 조금 더 신중해졌으면 하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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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자료를 사용하는 걸 ‘역사’학자들께서는 또 비웃고 싶겠지만, 이가형은 자신의 체험은 물론 당시사료도 참조하며 이 책을 썼다.
국문학자 김윤식은 이런 소설을 ‘고백’이라 했는데, 실제로 소설이란 허구이기도 하지만 때로 ‘허구의 형식을 빌어 표현한 사실/진실’이기도 하다.

또 자신이 쓴 교과서가 검정제도에 의해 불합격당하는 사태를 맞자 일본정부 상대로 30년 소송을 한 유명한 역사학자 이에나가사부로도 ‘사료만으로는 역사의 전체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역사연구에는 소설이나 르뽀등도 적극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 책엔 세 곳에 위안부들이 등장한다. 전부는 너무 많으니 가게 된 경위와 경로, 군인과의 관계, 그리고 어제 쓴 것처럼 이 지역에서의 위안부의 죽음은 폭격사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만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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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이 삽입된 전후도 찍어 두었으니 앞뒤를 보고 싶은 분들은 메시지 주시면 보내드립니다)
*페미니즘이 획득한 중요한 언어중 하나는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지 말라’였다.
위안부 문제를 생각할 때도 그 말을 떠 올렸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제국의 위안부>에서 한 얘기도 그런 얘기였다.
그러니 결국 이후 나에게 벌어진 일은, 여성인권을 주창하는 이들이 앞장서서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해 온 결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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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崔明淑, Yoshiko Hatano and 180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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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책 발간 당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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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이가형교수가 쓴 내용은 오늘의 위안부상을 염두에 두고 보면 불편하겠지만, 그녀들을 직접 본 이교수는 ‘조선인 학병, 포로감시원, 위안부’를 같은 피해자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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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h

  • Park Yuha
    전에 두어번 올렸던 영화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의 “사르빈강”이 바로 “분노의 강”이라는 뜻이라는 걸 이 책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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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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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achäus Sük
    이가형 작가의 군경력이 정확히 나온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일제시대 학병은 상당수가 갑종 장교, 을종 하사관으로 거의 절반 가까이 군간부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분도 소위나 조장으로 근무했을 것 같은데 아직 자료를 더 찾아봐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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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h
    • Park Yuha
      석광원 말단사병이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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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h
    • Zachäus Sük
      박유하 이 정도 학력이면 육군예비사관학교에 갈 수 있었을 텐데 입대후 훈련 성적이 나빴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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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h
    • Park Yuha
      석광원 정확한 기술이 눈에 띄면 다시 쓰지요. 용산기지에서 훈련 받았고 말을 끄는 사병으로 떠나던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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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h
    • Zachäus Sük
      박유하 정말 감사드립니다 김수환추기경도 일본육군예비사관학교의 장교교육생이었던 사실이 있어서 실제로 학병출신들이 예비사관학교 출신인 것을 쉬쉬하는 경우가 많아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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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h
    • Park Yuha
      석광원 이 분은 도쿄대 다니다가 사회주의자 만난 게 알려져서 그 글 무마하는 조건으로 지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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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h
  • Park Yuha
    그렇다고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만 쓰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폭격을 둘러싼 정황은 참고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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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h
  • Park Yuha
    이런 글도 있었다. 연합뉴스 김태식기자. 그가 인용하는 자신의 기사에 따르면 위 기술내용은 전부 ‘사실’.
    “그렇다면, 나는 어찌하여 그런 이가형의 전력을 접하게 되었는가? 역시 아래에 첨부하는 기사 중에 '위안부' 혹은 '종군위안부'라는 명칭이 잘못임을 지적한 강만길 선생 논문이 있다. 그의 이 논문은 1997년 역사문제연구소가 발간한 단행본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상》이라는 책에 「일본군 '종군위안부'의 개념과 호칭문제」라는 제목으로 수록됐으니, 이 글에서 강만길 선생이 이가형 선생의 저 글을 인용했다.
    그 무렵, 내가 고려대 연구실로 직접 강만길 선생을 찾아갔다. 그 면담 내용은 우리 공장에서 인터뷰 형식으로 나갔는데, 여담이나 이 인터뷰가 심각하게 문제가 되었다. 내가 잘못 보도해서가 아니라, 그의 발언을 그대로 전재했다가, 강 선생이 정대협에서 엄청 얻어터진 것이다. 강 선생이 내 기사로 당신이 매우 곤란해졌다고 하면서, 기사를 좀 바꿔 달라 해서 대체 기사가 나가고 난리 블루스를 추어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정대협에 대한 감정 안 좋다. 난 이 단체 순수한 인권운동 단체로 보지 아니한다. 암튼 그 얘기는 나중에 여유가 되면 하기로 하고, 아무튼 이 사건에서 다시금 정대협이 권력으로 작동하는 그 어떤 확연한 낌새를 여지없이 확인했다.
    https://historylibrary.net/.../%EC%9D%B4%EA%B0%80%ED%98%95
    영문학자·불문학자 고 이가형 선생이 겪은 위안부
    HISTORYLIBRARY.NET
    영문학자·불문학자 고 이가형 선생이 겪은 위안부
    영문학자·불문학자 고 이가형 선생이 겪은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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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h

  • https://pan-asian.blogspot.com/2021/09/1908.html
  • Soo-Young Kim
    생각보다 먼 과거가 아닌데 전혀 기억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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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h
  • 박찬형
    이가형 교수님 외국의 명추리소설을 많이 번역하신 분 아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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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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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Yuha
      박찬형 그런 듯 합니다. 불문학 전공하다 영문학 하셨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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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 h
    • 박찬형
      박유하 구글검색해보니 수백권의 추리명작을 번역하셨고, 80년대 추리작가협회회장도 지내셨군요. 이선생님의 책을 읽고 긴장감에 가슴 벌렁벌렁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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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 h
      • Edited
  • Jimmy Strain
    예전에 뤼팽 시리즈 읽을 때 알게 되었던 분... 이렇게 또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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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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