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5

1949年の大東亜共栄圏: 自主防衛への終わらざる戦い 有馬 哲夫

Amazon.co.jp: 1949年の大東亜共栄圏: 自主防衛への終わらざる戦い (新潮新書) : 有馬 哲夫: Japanese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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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마 테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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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대동아공영권: 자주 방어에 끝나지 않는 싸움 ( 신조 신서) Tankobon Hardcover – June 16, 2014
by 아리마 테츠오  (NS)
별 5개 중 4.7개    11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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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자료를 바탕으로 그리는, 전후의 이면사. 패전 후에도, 오모토영 참모, 군인, 코다마 츠요시부 등은 「이상」을 위해서 싸우고 있었다. 반공활동, 재군비, 정계공작… … 그 활동은 언젠가 동아시아 전체로 파급해 간다.
인쇄 길이
253페이지
언어
일본어
발행자
신시오사
다음 페이지
제품 설명
내용(「BOOK」데이터베이스에서)
1949년 중국·산서성에서 아직 일본병들은 싸우고 있었다. 그들만이 아니다. 귀국한 오모토영 참모, 군인이나 코다마 츠요시부 등은, 「이상」의 실현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미국과 손을 잡고 반공 활동에 몸을 바쳤고, 어떤 사람은 일본군 부활을 위해 분주하고, 어떤 사람은 정치 공작에 돌진했다. 그 활동은 언제나 동아시아 전체로 파급해 간다. CIA 문서 등 발굴 자료를 듬뿍 사용하면서 그리는 전후의 뒷사.
저자 약력 ( "BOOK 저자 소개 정보"에서)
아리마/테츠오
1953(쇼와 28)년생. 와세다대학 사회과학부·대학원 사회과학연구과 교수(미디어론). 와세다대학 제1문학부 졸업. 도호쿠 대학 대학원 문학 연구과 박사 과정 단위 취득. 93년 미주리 대학 객원 교수(본 데이터는 이 책이 간행된 당시에 게재되고 있던 것입니다)
제품 세부 정보
출판사: New Tide (2014년 6월 16일)
발행일 : 2014년 6월 16일
언어 : 일본어
단행본 양장본 : 253 페이지
ISBN-10 : 410610573X
ISBN-13 : 978-4106105739
Amazon 베스트셀러: 일본 도서 58,015위(일본 도서 상위 100위 참조 )
#114 중일 및 태평양 전쟁
#174 in Shinchosha Shinsho
일반 일본사에서 1,04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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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마 테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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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7516
별점 5점 만점에 5.0점 새로운 전후 쇼와사의 시점
2017년 3월 10일에 일본에서 작성함
확인된 구매
전후라고 말해 전전과의 단절을 의식시킨 교육을 받았지만, 이 책에 의해 심층적으로는 연속성을 가진
전후 쇼와를 쌓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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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노 하헤이
별점 5점 만점에 5.0점 '종전=1억 총회회'의 그림자로 조국 부활을 위해 암약하던 사람들
2020년 4월 26일에 일본에서 작성함
 거리 일변도의 전후사 교육에서는 알 수 없었던 일본 군인이나 정상들의 자주 방위에의 움직임~미국의 통치하에 있으면서도 구미 지배의 앞을 내다 본 자주 방위력의 부활이나, 방첩 조직의 작성을 획책한 사람들의 움직임과 GHQ, 그리고 일본 정부, 국회의원들과의 얽힘은 “비상사태보다 개인의 인권을 중시”하고 “자국의 방위를 미국이라는 다른 나라에 맡겨” 그리고 “스파이 방지 법도 제정할 수 없어”에 “자국의 영토가 외국인에게 제한 없이 사고 있는 것을 허락” “국가관 없는 경제편중사상에 사로잡혀 있다” 현재의 일본을 사는 우리에게 경종을 준다. 반대로 종전 직후였기 때문에 어느 의미 정당한 국가 의식을 가질 수 있었는가? 평화의 한가운데 있는 현재의 일본 정치가, 특히 여당의 면면은, 왜 헌법 개정의 논의조차 용서하지 않는 게으른 야당의 면들의 주장이나 행동을 면관할 수 없는 것인가? 필자도 말했지만, 종전 직후 그 같은 사람들이 현재의 일본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면, 조금은 현재의 폐색감으로부터는 해방되고 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또 몬다 타카마사씨의 『이 생명, 의에 바친다』의 주인공·네모토 전 육군 중장의 대만 도항에 대해서, 그 움직임 자체는 그 자신의 단독 행동이었지만, 본저에서는 이것과 동조하도록(듯이) 중국 공산당과 대치하는 일본군인의 구출작전도 획책되고 있던 것도 흥미로웠다. “목숨을 의로 바치는” 뜻을 가진 사람은 아무것도 근본 장군 단 한 명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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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의 강 흐름
TOP 500 리뷰어
별 5개 중 3.0개 전후 동아시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2016년 10월 24일에 일본에서 작성함
 일본 패전 후의 중국에서는 장개석의 국민당군과 모택동의 공산당군이 대치한 내전의 상태였지만, 장개석을 지지하고 있던 미국 정부는 전쟁 확대를 우려해, 1946년 1월에, 마샬 사절단 를 파견해 국민당 대표 장군, 공산당 대표 주주래와 미국 대표는 마샬에 의한 '군사 삼인위원회'를 성립시켜 '국공정전협정'이 조인됐다.
 하지만 그런 정전조약 등 없었던 것처럼 국공 양군의 충돌은 멈추지 않았다.
 1946년 12월 트루먼 대통령은 중국 내전에 휘말리는 것을 피해 마샬 장군의 소환과 중국 내전에서 미국 병력의 철수를 표명했다. (소련의 유럽에서의 위협 등을 고려한 것일 것이다)
 소련이 개입했을 경우는 고려한다는 조건부였지만, 이 미국 정부의 결정이 나중에 장개석의 국민당군의 쇠망을 초래한 원인이었다 확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본서에 등장하는 구일본군의 이름인 장군이나 장관들이 GHQ의 지원하에 방공 인텔리전스로 암약하거나 장개석을 지원하는 백군 등 파견해도 역사의 큰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 했다. (조선전쟁 발발 등)
 전후 일본의 황폐를 부감하면, 「대동아공영권」을 이루는 등 당시의 국력을 냉정하게 감안하면 불가능한 것이었던 것은 아닐까.
 점령하에서 주권 회복 후에도 총리를 하고 있던 요시다 시게루가, 자위대의 전신의 경찰 예비대, 보안대에서, 핫토리 타쿠시로 등 구군 본류의 채용에 이상하게까지 거부를 관철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
 현실과 「상념」의 분별이 확실하지 않은 사고의 열화한 구군 본류의 배제야말로 요시다의 본의였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다마 등이 그 강대한 자금력을 가지고 하토야마 정권을 옹립시켜 독립 자위의 군사력을 가진 국가 재건을 완수하려고 했지만, 하토야마는 정권의 자리에 붙으면 소련과 강화 조약을 맺고 코다마를 뒷받침하기로 되었다.
 이 책에서 전쟁의 책임을 강하게 느낀 해군 군령부 차장이었던 오니시 타키지로 중장이,… 그럼 죄송합니다만, 이 경우 그 이외에 사과할 수가 없다. ···(P82)
 오니시가 이렇게 말해 경부 절창(점령군 문서에 의한 기록)으로 자사한 것을 본서에서 읽으면서, 이런 군인도 있었다고 느끼면서 읽어 버렸다.
 “다시 번영한 강국으로서 세계 무대에 등장한다”는 것에 걸려, 만큼 소중한 “주권의 회복”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전후의 놀라운 경제 발전 과정에서 일본인은 '주권의 회복'을 어딘가에 두고 잊어 버렸다. "
 라고 저자의 아리마 씨가 책을 쓰고 완료했다.
 하지만, 옛 어딘가의 정치가가, 일본 열도는 미국의 「불침항모」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미국의 불침항모만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본서를 읽어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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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에서
별점 5점 만점에 5.0점 끝없는 대동아 전쟁 - 제국 군인이 그린 집단적 자위권
2014년 7월 4일에 일본에서 작성됨
본서는, 저자의 구작인 「대본영 참모는 전후 무엇과 싸웠는지」에서도 그려진 고위의 제국 군인들의 패전 후의 군사 활동·책모를, 군인 메인으로 그린 ​​작품이며, 「코다마 존사 남편 거귀의 쇼와사에서의 연구도 살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정하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4 장의 그림과 저자가 평가하는 산서성에서 국민당 군과 함께 중공군과 싸운 장교 쓰지 마사노부에 관련된 사람들, 우가 키 장군을 정점으로 한 사람, 그리고 , 코다마 츠요시오를 거듭해 나가는 것으로 부각되는, 패전이 결코 종전(싸움의 끝)이 아닌 제국군인의 의식이나 활동력은, 어쩌면 악인·바보와 단순히 잘라 버리는 경우가 많은 그들 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을 실로 득심시킨다. 한편, 몬다 타카마사의 역작 「이 명의에 바친다」로 스포트가 맞은 네모토 히로 중장에 대해서도, 대국으로부터 그의 활동을 재평가하고 있어 흥미롭다.

만주사변 이전부터의 대지, 그리고 대서, 대미와 퍼지는 일본군의 전략에는 다양한 시점이 있지만, 소련·지나 그리고 미국과 대치하는 소국 일본의 생존으로서, 국민당 또 한반도를 규합해 이야말로 살아남을 것이라는 발상은 현대에서는 완전히 부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한편으로 많은 장관이 염두에 둔 기본 전략이기도 했다. 이 방침을 완수하기 위해, 전후의 일변하는 국제 정세를 근거로 활동하는 그들, 그리고, 그들을 밟아 전후 일본(요컨대 미국의 우산 아래에 추종해의 부흥·성장이다)을 그리는 사람들, 한층 더 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에서 조선전쟁 속에서 자국 국익을 위해 양자를 능숙하게 움직이는 미국이라는 구도는 실로 다이나믹하고 단순화된 전후사에 새로운 중요한 시점을 주고 있다.

「오모토영 참모는 전후 무엇과 싸웠는지」에서는 볼륨 과다로 미소화의 감도 있었던 군인들의 설명도, 포인트를 짜낸 것으로 꽤 알기 쉬워지고 있다. 본서를 기점으로 하여 과거의 작품이나 개개인을 다룬 저서로 읽어 진행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좌파가 떠들썩한 곳의 '전쟁을 하는 나라' '국방군' 그런 것을 의도하면서도 대미 추종과는 다른 집단적 자위를 추구한 이들이 지금의 상황을 보면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을 기획 행동했을까? 그런 거듭하는 방법도 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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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 바퀴
명예의 전당
별점 5점 만점에 5.0점 "끝나지 않는 싸움 - 대동아 공영권의 꿈"
2014년 7월 4일에 일본에서 작성됨
한때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하나의 '꿈'이 있었다. 단순한 '꿈'이 아니었던 것은 쇼와 18년 11월 도쿄에서 개최된 '대동아회의'에 만주국, 중화민국 난징 정부, 필리핀, 태국, 미얀마가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인도는 가맹이 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찬드라 보스가 '옵서버'로 참여했다.
대동아공영권에 대해서는 구미 식민지 제국주의와 소련 코민테른을 가상적으로 하면서 '일만지 블록 구상'이라는 일본 제국 확대를 위한 은신처라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전후의 영국·불·난·미의 구종주국의 식민지 복귀를 되돌아오는 큰 요인이 되었다. '백인 우월의 인종주의'와 '기독교 문명신화'를 어지럽혔다. 정도의 차이는 얼마든지 많은 일본군인들이 이 이념을 믿고 있었던 것도 틀림없다.

그런데 1945년 8월 일본의 패전으로 모든 전장에서 무사히 전투가 정지한 것은 아니다. 소련은 항복조인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9월 2일까지 만주, 조선, 가타, 치시마를 덮쳤다. 일본군의 사령관에게는 현실에 맞는 적절한 판단을 요구받았다.
주몽군(내몽골) 사령관 근본박은, 종전 후에도 공격을 그만두지 않는 소련군과 팔로군으로부터 장가구 부근에 있던 4만명의 일본인 민간인을 지키기 위해서 「항명죄」를 각오로 백병전을 싸움, 천진까지 귀환열차를 방어하고 식량·의복을 제공해 귀환시켰다. 그리고 주몽·북지방면군 사령관으로서 이듬해 여름 35만명의 일본군의 일본 귀환이 종료되는 것을 전망해 귀국했다.
이것은 아마도 근본의 군인으로서의 본능으로 실시한 것일지라도, 구미 식민지주의로부터의 해방, 공산주의의 위협과의 싸움을 기둥으로 하는 「대동아공영권」의 이념이, 일본 군인들의 가슴 속에서 쉽게 사라져 없어지는 것 같지 않았을 것이다.

본서는 그 군인들이 전후, 국공내전에 시달리는 국민당의 일본군의 지원을 받고 싶은 타산과 요청, GHQ 내부의 첩보기관과 맺어, 어떻게 미완의 전투를 계속 싸우려고 했는지, 그리고, 일본의 재군비까지까지 논의한 그 뜻이 어떻게 좌절당했는지를 밝히려 한다.

저자는, 이 군인들의 전후의 행동의 바닥에 있던 숨겨진 사념과 구상을 이해하려면, 4장의 「그림」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한 장은 종전 직후의 「산서성」에서의 사건이다. 시나 파견군의 총사령관은 오카무라 닝지이며 난징에 있었다. 그는 항복하고 무기·자산을 국민당에 넘기도록 각지의 사령부에 하달했다. 공산군은 소련 지배하에 있었고, 어디까지나 항복하는 상대는 국민당이어야 했다.
야마니시의 사령부에 있던 것은, 스미타라이 시로이다. 스미타 아래에 온 것은, 석석산에서 일본의 육군사관학교 출신, 대형 일본 헛소리로, 일본군도 야마니시성에서는 은밀하게 석석산의 공산군 토벌에 협력해 온 경위가 있었다.
나중에, 스미타와 갈기의 교환이 문제가 되지만, 산서성의 잔류 일본병의 문제는, 공산군과의 전투에 정강한 일본군을 활용하고 싶은 갈석산의 타산과, 전후의 미소의 냉전을 필연 그렇다고 해서, 야마니시를 거점으로 일본군의 부활을 꿈꿨던 일본측 참모들과의 생각이 싱크로 한 곳에 일어났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지원병」이라고 하는 것을 건전에,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남지 않으면, 다른 병은 귀환할 수 없다」라고 하는 갈등 아래에, 국민당군과는 별도로 일본군의 「특무단」이 조직되었다. 이 움직임을 국민당 GHQ는 지지하고 오카무라 닝지는 전범을 묻는 난징의 법정에서 무죄로 여겨지며 대신 귀국 후 일본에서의 '국제의용군' 결성에 분주하게 된다. 1949년 4월까지 6천명의 특무단이 공산군과 싸웠다. 죽은 사람은 550명. 400여명은 전범 수용소로 보내 공산당의 가혹한 조사를 받고, 가상의 조서에 사인시키거나 세뇌를 받거나 해서 쇼와 30년 이후 귀국했다. 2005년 영화화되어 화제를 불렀던 '개미의 병대'이다.

두 번째 '그림'은 국민당의 참모가 된 '츠지 마사노부'로 대표되는 '유용자'들의 존재이다.
츠지는 패전을 태국에서 맞이했다. 츠지는 싱가포르 화교 학살 사건의 책임으로 잡히면 틀림없이 사형이 되었을 것이다. 츠지는 자살을 치고 중국에 잠행하여 충칭에 가서 국민당 대소련 인텔리전스 기관의 담당자가 되었다.
츠지는, 일본의 패배 후, 곧바로 머리를 바꾸어, 본래사와 말하는 이시하라 완치의 「동아 연맹 구상」의 실현을 도모하려고 생각했다. 이시하라의 구상은 만주, 조선 등을 식민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을 원조해, 독립국간의 「동아 연맹」을 결성해, 일본이 그 맹주로서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도모하려고 한다 것이다.
국민당에 있어서 일본은 적이었지만, 소련과 공산당의 위협에 대해서는 동지이다. 츠지의 경험은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똑같이 국민당에 맡겨져 군사부문의 책임자가 된 '유용군인'은 그 밖에도 다수였다. 흥미롭게도 비밀리에 귀국한 츠지의 소식을 CIC(GHQ의 공산당계)는 파악하고 있어도 묵인한 것이다.

세 번째 '그림'은 GHQ 지배하의 전후 일본 총리 최유력 후보였던 우가키 일성과 그 부하의 움직임이다. 우가키와 GHQ의 사이에 밀약이 성립해, GHQ의 원조하에 하변기관, 유말기관, 핫토리기관 등이 만들어졌다. G2의 윌로비가 그들을 보호했다.
1948년경부터 우가키는 국방군 구상에 착수했지만, 신헌법과의 관계로부터 당초는 「의용군 구상」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 구상은 하변 등의 움직임과 연동하고 있었다. 이것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용신군』을 치안 유지대, 대외 인텔리전스 기관, 국방군 재건이라는 분야에 있어서 예비적으로 실천해, 장래의 국방군의 준비를 한다고 하는 것이, 3개의 비밀 기관의 역할이었다」(72p)
여기 그래서 요즘 마침내 귀국한 오카무라, 스미타의 약체인 국민당을 의용군에서 지원하자는 운동과 유말기관의 인텔리전스 활동이 연결되어 온다. 아리마가 오카무라 등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본심은 이윽고 「일본 국방군」을 만들어 미국과는 독립한 제3극을 형성하는 것에 있었다. 미국은 당연히 이 움직임을 가장 경계했다.

 ※ 덧붙여 팀 워너는, 「CIA 비록」으로, 유말이나 하변을 미국으로부터 자금을 속임수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저자는, 그것은 전혀 맞지 않는다고 부정하고 있다.
 
네 번째 '그림'은 국수주의자들의 조국 재건이라는 문제다.
고다마 요시오는 텅스텐 등의 전략 물자와 다이아몬드나 귀금속이라는 형태로 자산을 축적하고 있었다. 그 돈은 고다마 기관원의 퇴직금이나 하토야마의 정치자금이 되었지만 아직 여력은 있었다. 밀무역에 의해 새로운 자금원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49년 코다마는 이장원이라는 대만인과 알게 된다. 리는 대만 총독 아카시 모토지로의 아들 아카시 원장의 원조를 받아 미국의 세력하에 '대만 독립' 공작을 벌였다. 그러나 일본 측에서 대만 독립의 현실성을 믿는 사람은 적고, 국민당을 지원하는 것이 유일한 방책이라고 생각되었다.
장가구의 일본인을 구한 네모토 히로시는 낚싯대 하나 들고 미야자키에서 대만으로 밀입국해 국민당의 장군으로서 김문도 전투에서 공산군을 격퇴했다. 그리고 오카무라의 알선도 있어 '백단'이라는 일본군 고급군인들의 참모집단이 국민당을 위해 대만에서 싸운다는 구도가 완성된다. 국민당은 이 일본의 지원을 비밀로 했다. 그러나 일본인은 스스로 싸움의 장소로 향했다.
그것은 최근 간행된 책처럼 '라스트 바탈리온(나치의 최종 부대)' 등과 근저에 모멸을 꾀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평자는, 전 타이베이 특파원이 쓴 이 책을 다소의 기대를 가지고 읽었지만, 독후감의 나쁜 것은, 저자가 원래 고령을 두고 취재에 협력해 준 구군인들에게 본질적으로 공감이 없는 것에 다할 것이다.공감이 없으면 안 되고, 정직하게 구군인들과 논의를 하고, 비판적으로 쓰면 좋았을 것이다.)

실은, 진짜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국방군 구상'이 어떻게 잡혀가는지, 이것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문제이다. 타츠미 에이치와 핫토리 타쿠시로의 전후 움직임도 참고가 된다.
저자가 철저히 조사하고 있는 이 분야는 좀 더 주목받아도 좋다. 왜냐하면, 전전부터 전후에의 「일본인의 사념의 연속성」, 혹은 「인간이 이념과 행동이라고 하는 영역에서, 어떠한 삶을 선택하는 것인가」라는 본원적인 질문을, 저자는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던져 그렇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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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rt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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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5점 만점에 5.0점 주간 전쟁은 코민테른의 음모
2016년 10월 14일에 일본에서 작성함
일본은 중국, 소련이나 미국과의 전쟁은 얼마나 도발되든 은인 자중으로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국민당 안에 침투하고 있던 공산군은 통주 사건과 제2차 상해 사변 등을 의도적으로 유발해 일중 충돌을 기획하고 있었다. 국공합작에 반대하던 장개석은 서안사건 후반공에서 반일로 전환한다. 소련의 코민테른과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일본과 전면전쟁을 벌인다. 전후국 공내전이 발발하면 장개석은 적군이었던 일본군인에게 도움을 요구한다. 맥아더도 구 일본 군인으로 구성된 의용병을 결성하고 대만에서 중국 본토로 내보내려고 한다. 윌로비는 전 육군 참모들을 결집해 일본 재군비를 시작한다. 육군 싫어하는 요시다는 육군 주도의 재군비에 반대한다. 츠지는 동아연맹에 공명하고 낮에는 싸우지 않고 공동으로 아시아의 맹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을 맹주로 하는 아시아의 신질서를 외우는 동조에서 배격됐다. 일본의 진정한 독립에는 중국과 연계해 처음으로 가능하며 구미와 대결해 나간다. 장개석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왜 그는 일본과의 전쟁에 착수했는가. 국민당 내에 코민테른의 스파이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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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馬 哲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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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年の大東亜共栄圏: 自主防衛への終わらざる戦い (新潮新書) Tankobon Hardcover – June 16, 2014
by 有馬 哲夫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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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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発掘資料をもとに描く、戦後の裏面史。敗戦後も、大本営参謀、軍人、児玉誉士夫らは「理想」のために戦い続けていた。反共活動、再軍備、政界工作……その活動はいつしか東アジア全体へと波及してい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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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pages
Product description

内容(「BOOK」データベースより)
一九四九年、中国・山西省でまだ日本兵たちは戦っていた。彼らだけではない。帰国した大本営参謀、軍人や児玉誉士夫らは、「理想」の実現を諦めずに戦い続けていたのである。ある者はアメリカと手を結んで反共活動に身を捧げ、ある者は日本軍復活のために奔走し、ある者は政界工作に突き進んだ。その活動はいつしか、東アジア全体へと波及していく。CIA文書など発掘資料をふんだんに使いながら描く、戦後の裏面史。
著者略歴 (「BOOK著者紹介情報」より)
有馬/哲夫
1953(昭和28)年生まれ。早稲田大学社会科学部・大学院社会科学研究科教授(メディア論)。早稲田大学第一文学部卒業。東北大学大学院文学研究科博士課程単位取得。93年ミズーリ大学客員教授(本データはこの書籍が刊行された当時に掲載されていたものです)


Product Details

Publisher ‏ : ‎ 新潮社 (June 16, 2014)
Publication date ‏ : ‎ June 16, 2014
Language ‏ : ‎ Japanese
Tankobon Hardcover ‏ : ‎ 253 pages
ISBN-10 ‏ : ‎ 410610573X
ISBN-13 ‏ : ‎ 978-4106105739
Amazon Bestseller: #58,015 in Japanese Books (See Top 100 in Japanese Books)
#114 in Sino-Japanese & Pacific Wars
#174 in Shinchosha Shinsho
#1,045 in Japanese History in Ge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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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out of 5 stars 11 ra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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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out of 5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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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rich 7516

5.0 out of 5 stars 新たな戦後昭和史の視点Reviewed in Japan on March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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戦後と言われ、戦前との断絶を意識させられた教育を受けたが、この本によって深層的には連続性を持った
戦後昭和を築かせてく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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磯野波平

5.0 out of 5 stars 『終戦=1億総懺悔』の影で祖国復活のために暗躍していた人々Reviewed in Japan on April 26, 2020

 通り一辺倒の戦後史教育では知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日本軍人や政商らの自主防衛への動き~アメリカの統治下にありながらも欧米支配の先を見据えた自主防衛力の復活や、防諜組織の作成を画策した人々の動きとGHQ、そして日本政府、国会議員らとの絡み合いは、 “非常事態よりも個人の人権を重視” し “自国の防衛を米国という他国にまかせきり” そして“スパイ防止法も制定できず”に “自国の領土が外国人に制限なく買われつつあることを許し”  “国家観なき経済偏重思想にとりつかれている” 現在の日本を生きる我々に警鐘を与えてくれる。逆に終戦直後だったからある意味正当な国家意識を持つことができたのか? 平和の真っただ中にある現在の日本の政治家、特に与党の面々は、なぜ憲法改正の論議さえ許さない怠惰な野党の面々の主張や行動を面罵できないのか?筆者も述べていたが、終戦直後のあのような人々が現在の日本で活躍することができていたなら、少しは現在の閉塞感からは解放されていたような気がする。また門田隆将氏の『この命、義に捧ぐ』の主人公・根本元陸軍中将の台湾渡航について、その動き自体は彼自身の単独行動ではあったが、本著ではこれと同調するように中国共産党と対峙する日本軍人の救出作戦も画策されていたことも興味深かった。“命を義に捧ぐ” 志をもった人は、何も根本将軍ただ一人だけではなかっ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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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童の川流れ

TOP 500 REVIEWER
3.0 out of 5 stars 戦後の東アジアの歴史を知ることができる書でもある。Reviewed in Japan on October 24, 2016

 日本敗戦後の中国では蒋介石の国民党軍と毛沢東の共産党軍とが対峙した内戦の状態であったが、蒋介石を支持していたアメリカ政府は戦争拡大を危惧し、1946年1月に、マーシャル使節団を派遣して国民党代表の張群、共産党代表の周恩来とアメリカ代表はマーシャルによる「軍事三人委員会」を成立させ「国共停戦協定」が調印された。
 が、そんな停戦条約など無かったように国共両軍の衝突はやまなかった。
 1946年12月トルーマン大統領は、中国の内戦に巻き込まれることを避け、マーシャル将軍の召喚と中国内戦からアメリカ兵力の撤退を表明した。(ソ連の欧州における脅威などを考慮してのことだろう)
 ソ連が介入した場合は考慮するという条件付きだったが、このアメリカ政府の決断が後に蒋介石の国民党軍の衰亡を齎した遠因だったことは間違いないだろう。
 本書に登場する旧日本軍の名だたる将軍や将官たちがGHQの支援のもとで防共インテリジェンスで暗躍したり、蒋介石を支援する白軍など派遣しても歴史の大きな流れに逆らうことはできなかった。(朝鮮戦争勃発など)
 戦後日本の荒廃を俯瞰すれば、「大東亜共栄圏」を成し遂げることなど当時の国力を冷静に鑑みれば不可能なことだったのではなかろうか。
 占領下から主権回復後も首相をやっていた吉田茂が、自衛隊の前身の警察予備隊、保安隊で、服部卓四郎など旧軍本流の採用に異様なまでに拒否を貫いたことは理解できる。
 現実と「想念」の分別が定かでない思考の劣化した旧軍本流の排除こそが吉田の本意だったのだろうと思う。
 児玉などがその強大な資金力をもって鳩山政権を擁立させ独立自衛の軍事力を持った国家再建を果たそうとしたが、鳩山は政権の座につくとソ連と講和条約を結び児玉を裏ぎることになった。
 本書で戦争の責任を強く感じた海軍軍令部次長だった大西瀧次郎中将が、・・・<前文略>特攻機で死んでいってくれた部下やその家族にたいしては、腹を切ったぐらいでは申し訳にならんのだが、しかしこの場合それ以外にお詫びのしようがない。・・・(P82)
 大西がこのように語って頸部切創(占領軍文書による記録)で自死したことを本書で読みながら、こんな軍人もいたのだと感じ入りながら読んでしまった。
 「再び繁栄した強国として世界の舞台に登場する」ことにかまけて、同じくらい大切な「主権の回復」することに執着しなくなった。戦後のめざましい経済発展の過程で、日本人は「主権の回復」をどこかに置き忘れてきてしまった。」
 と、著者の有馬氏が本書を書き終えていた。
 が、昔どこかの政治家が、日本列島はアメリカの「不沈空母」と云ったことがあるが、アメリカの不沈空母だけにはなりたくないと思いながら本書を読み終えた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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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AVI

5.0 out of 5 stars 終わらない大東亜戦争-帝国軍人の描いた集団的自衛権Reviewed in Japan on July 4, 2014

本書は、著者の旧作である「大本営参謀は戦後何と戦ったのか」でも描かれた高位の帝国軍人たちの敗戦後の軍事活動・策謀を、軍人メインで描いた作品であり、「児玉誉士夫 巨魁の昭和史」での研究もいかされている。
一言で云えば、「実に面白く読めた」

4枚の絵と著者が評する、山西省で国民党軍と共に中共軍と戦った将校、辻政信に関わる人々、宇垣大将を頂点とした人々、そして、児玉誉士夫を重ねていくことで浮き彫りとなる、敗戦が決して終戦(戦いの終わり)ではない帝国軍人の意識や活動力は、ともすれば悪人・愚者と単純に切り捨てられることの多い彼らの知られざる姿を実に得心させる。一方で門田隆将の力作「この命 義に捧ぐ」でスポットの当たった根本博中将についても、大局から彼の活動を再評価しており興味深い。

満州事変以前からの対支、そして対ソ、対米と広がる日本軍の戦略には多様な視点があるが、ソ連・支那そして米国と対峙する小国日本の生き残りとして、国民党また朝鮮半島を糾合してこそ生き残れるとの発想は、現代では完全に否定されることが多いが他方で多くの将官が念頭に置いた基本戦略でもあった。この方針を完遂すべく、戦後の一変する国際情勢を踏まえて活動する彼ら、そして、彼らを踏み越えて戦後日本(要するに米国の傘の下に追従しての復興・成長だ)を描く人々、さらには中華人民共和国の成立から朝鮮戦争の中で自国国益のために両者を巧みに動かす米国という構図は実にダイナミックで、単純化された戦後史に新たな重要な視点を与えている。

「大本営参謀は戦後何と戦ったのか」ではボリューム過多で未消化の感もあった軍人達の説明も、ポイントを絞ったことでかなり分かりやすくなっている。本書を起点にして、過去の作品や個々の人々を扱った著書へと読み進めるのもいいだろう。

左派が騒ぐところの「戦争をする国」「国防軍」そうしたものを意図しながらも、対米追従とは異なる集団的自衛を追求した彼らが、いまの状況をみたら一体何を思い、そして何を企み行動しただろうか?そういう重ね方もまた楽し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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閑居人

HALL OF FAME
5.0 out of 5 stars 「終わらざる戦いーー大東亜共栄圏の夢」Reviewed in Japan on July 4, 2014

かつて、「大東亜共栄圏」という一つの「夢」があった。単なる「夢」でなかったことは、昭和十八年十一月、東京で開催された「大東亜会議」に満洲国、中華民国南京政府、フィリピン、タイ、ミャンマーが参加したことで分かる。また、インドは加盟が予定されていなかったため、チャンドラ・ボースが「オブザーバー」として参加した。
大東亜共栄圏については、欧米の植民地帝国主義とソビエト・コミンテルンを仮想敵としつつ、「日満支ブロック構想」という日本帝国拡大のための隠れ蓑だという批判がある。しかし、戦後の英・仏・蘭・米の旧宗主国の植民地復帰を跳ね返す大きな要因となった。「白人優越の人種主義」と「キリスト教文明神話」をぶちこわした。程度の差はあれ、多くの日本軍人たちがこの理念を信じていたことも間違いない。

ところで、1945年8月、日本の敗戦で、全ての戦場で無事に戦闘が停止したわけではない。ソビエトは降伏調印が行われていないことを理由に、9月2日まで、満洲、朝鮮、樺太、千島に襲いかかった。日本軍の司令官には、現実に合った適切な判断を求められた。
駐蒙軍(内モンゴル)司令官根本博は、終戦後も攻撃をやめないソビエト軍と八路軍から張家口付近にいた四万人の日本人民間人を守るために「抗命罪」を覚悟で白兵戦を戦い、天津まで帰還列車を防御し、食料・衣服を提供して帰還させた。そして、駐蒙・北支方面軍司令官として、翌年夏35万人の日本軍の日本帰還が終了するのを見届けて帰国した。
これは、恐らく、根本の軍人としての本能で行ったことだが、欧米植民地主義からの解放、共産主義の脅威との戦いを柱とする「大東亜共栄圏」の理念が、日本軍人たちの胸中から簡単に消えてなくなるようなものでは無かっただろう。

本書は、その軍人たちが戦後、国共内戦に苦しむ国民党の日本軍の支援を受けたい打算と要請、GHQ内部の諜報機関と結んで、いかに未完の戦いを戦い続けようとしたのか、そして、「日本の再軍備」まで目論んだその志がいかに挫折させられたのかを明らかにしようとする。

著者は、この軍人たちの戦後の行動の底にあった秘めたる思念と構想を理解するには、四枚の「絵」が必要であるという。
その一枚は、終戦直後の「山西省」でのできごとである。支那派遣軍の総司令官は岡村寧次であり、南京にいた。彼は、降伏し武器・資産を国民党に渡すように各地の司令部に下達した。共産軍は、ソビエト支配下にあり、あくまで降伏する相手は国民党で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山西の司令部にいたのは、澄田らい四郎である。澄田のもとにやってきたのは、閻錫山で、日本の陸軍士官学校出身、大の日本びいきで、日本軍も山西省では密かに閻錫山の共産軍討伐に協力してきた経緯があった。
後々、澄田と閻のやりとりが問題になるが、山西省の残留日本兵の問題は、共産軍との戦闘に精強な日本軍を活用したい閻錫山の打算と、戦後の米ソの冷戦を必至とみて、山西を拠点に日本軍の復活を夢見た日本側参謀たちとの思惑がシンクロしたところに起きたことだろう。
あくまで「志願兵」ということを建前に、一方では「誰かが残らなければ、他の兵は帰還できない」という恫喝の下に、国民党軍とは別に日本軍の「特務団」が組織された。この動きを、国民党、GHQは支持し、岡村寧次は戦犯を問う南京の法廷で無罪とされて、代わりに、帰国後、日本での「国際義勇軍」結成に奔走させられることになる。1949年4月まで、六千人の特務団が共産軍と戦った。死者は、550名。400名余りは、戦犯収容所に送られて共産党の苛烈な取り調べを受け、架空の調書にサインさせられたり、洗脳を受けたりして、昭和30年以降帰国した。2005年、映画化されて話題を呼んだ「蟻の兵隊」である。

二枚目の「絵」は、国民党の参謀となった「辻政信」に代表される「留用者」たちの存在である。
辻は、敗戦をタイで迎えた。辻は、シンガポール華僑虐殺事件の責任で捕らえられれば間違いなく死刑になっただろう。辻は、自殺を装い、中国に潜行して、重慶に行き、国民党の対ソビエト・インテリジェンス機関の担当者になった。
辻は、日本の敗北後、直ぐに頭を切り換えて、本来師と仰ぐ石原完爾の「東亜連盟構想」の実現を図ろうと考えた。石原の構想は、満洲、朝鮮などを植民地とするのではなく、独立を援助し、独立国間の「東亜連盟」を結成し、日本がその盟主としてアジアの平和と繁栄を図ろうとするものである。
国民党にとって、日本は敵であったが、ソ連と共産党の脅威に対しては同志である。辻の経験は、十分に活用できるものだった。同じように国民党に請われて、軍事部門の責任者になっていた「留用軍人」は、他にも多数いた。興味深いことに密かに帰国した辻の消息をCIC(GHQの共産党係)は把捉していても黙認したことである。

三枚目の「絵」は、GHQ支配下の戦後日本の首相最有力候補だった宇垣一成とその配下の動きである。宇垣とGHQとの間に密約が成立し、GHQの援助の下に河辺機関、有末機関、服部機関などが作られた。G2のウィロビーが彼等を保護した。
1948年頃から、宇垣は国防軍構想に着手したが、新憲法との関係から当初は「義勇軍構想」で始めるしかなかった。この構想は、河辺等の動きと連動していた。このことを著者は以下のように述べる。
「『義勇新軍』を治安維持隊、対外インテリジェンス機関、国防軍再建という分野において予備的に実践し、将来の国防軍の準備をするというのが、三つの秘密機関の役割だった」(72p)
ここで、この頃ようやく帰国した岡村、澄田の弱体の国民党を義勇軍で支援しようという運動と、有末機関のインテリジェンス活動とが繋がってくる。有末が岡村らを迎えたのである。そして、彼等の本心は、やがて「日本国防軍」を作ってアメリカとは独立した第三極を形成することにあった。アメリカは当然ながらこの動きを最も警戒した。

 ※ なお、ティム・ワーナーは、「CIA秘録」で、有末や河辺をアメリカから資金を騙し取ったと非難しているが、著者は、それは全くあたらないと否定している。
 
四枚目の「絵」は、国粋主義者たちの祖国再建という問題である。
児玉誉士夫は、タングステンなどの戦略物資とダイヤモンドや貴金属という形で資産を蓄えていた。その金は、児玉機関員の退職金や鳩山の政治資金になったがまだ余力はあった。密貿易によって新たな資金源を確保していたからである。
1949年、児玉は李しょう源という台湾人と知り合う。李は、台湾総督明石元二郎の息子、明石元長の援助を受けて、アメリカの勢力下に「台湾独立」の工作を行っていた。しかし、日本側で台湾独立の現実性を信ずる者は少なく、国民党を支援することが唯一の方策であると考えられた。
張家口の日本人を救った根本博は、釣り竿一本持って宮崎から台湾に密入国し、国民党の将軍として金門島の戦いで共産軍を撃退した。そして岡村の斡旋もあって「白団」という日本軍高級軍人たちの参謀集団が国民党のために台湾で戦うという構図ができあがる。国民党はこの日本の支援を秘密にした。しかし、日本人は自ら戦いの場に向かった。
それは最近刊行された書物のように「ラストバタリオン(ナチスの最終部隊)」などと根底に侮蔑をしのばせて語れるものなのか?
(評者は、元台北特派員が書いたこの本を多少の期待を持って読んだが、読後感の悪さは、著者がそもそも高齢をおして取材に協力してくれた旧軍人たちに本質的に共感がないことに尽きるだろう。共感がないならないで、正直に旧軍人たちと議論をして、批判的に書けば良かったことだろう。)

実は、本当の物語はここから始まる。「国防軍構想」がどのように潰れていくか、これは現在まで繋がる問題である。辰巳栄一や服部卓四郎の戦後の動きも参考になる。
著者が丹念に調べているこの分野は、もっと注目されて良い。なぜなら、戦前から戦後への「日本人の思念の連続性」、或いは、「人間が理念と行動という領域で、いかなる生き方を選ぶのか」という本源的な問いかけを、著者は現代に生きる我々に投げかけているから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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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rtmd

TOP 1000 REVIEWER
5.0 out of 5 stars 日中戦争はコミンテルンの陰謀Reviewed in Japan on October 14, 2016

日本は中国、ソ連や米国との戦争はいかに挑発されようとも隠忍自重して避けようとしていた。 しかし国民党内に浸透していた共産軍は通州事件や第2次上海事変などを意図的に誘発して日中衝突を企画していた。国共合作に反対していた蒋介石は西安事件後反共から反日に切り替える。 ソ連のコミンテルンや米国からの支援を受けて日本と全面戦争を行う。戦後国共内戦が勃発すると蒋介石は敵軍であった日本軍人に助けを求める。マッカーサーも旧日本軍人からなる義勇兵を結成して台湾から中国本土に送り出そうとする。ウィロビーは元陸軍参謀たちを結集して日本の再軍備を始める。陸軍嫌いの吉田は陸軍主導の再軍備に反対する。辻は東亜連盟に共鳴して日中は戦わず共同してアジアの盟主になるべきと主張した。日本を盟主とするアジアの新秩序を唱える東條から排撃された。日本の真の独立には中国と連携して初めて可能で欧米と対決してゆける。蒋介石も同様の考えを持っていた。なぜ彼は日本との戦争に踏み切ったのか。 国民党内にコミンテルンのスパイがい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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