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8

알라딘: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라시드 할리디

알라딘: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라시드 할리디 (지은이),유강은 (옮긴이)열린책들2021-11-05

원제 : The Hundred Years' War on Palestine: A History of Settler Colonialism and Resistance, 1917-2017 (2020년)


448쪽

책소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역사학자 라시드 할리디의 신간.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기원과 성격을 <정착민 식민주의Settler Colonialism>로 규정한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인디언을 학살하고 미국을 세운 것처럼, 영국과 미국 등 열강을 등에 업은 시온주의가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몰아낸 뒤 정착민으로서 밀고 들어왔다는 것. 오늘날 두 나라의 빈번한 충돌 역시 100년간 이어져 온 식민지 전쟁의 일부라는 설명이다.

2020년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팔레스타인 민중의 관점에서 분쟁 전반을 기술한 보기 드문 수작>으로 큰 주목을 받았고, 놈 촘스키, 아비 슐라임 등 세계적인 석학들의 찬사를 받았다. 특히 저자 본인이 팔레스타인에 수백 년간 뿌리를 둔 명문 가문 할리디가(家) 출신으로, 역사적 현장에 있던 일가친척의 발언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팔-이 분쟁사 연구에 깊이와 생생함을 더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론
1 첫 번째 선전포고, 1917~1939
2 두 번째 선전포고, 1947~1948
3 세 번째 선전포고, 1967
4 네 번째 선전포고, 1982
5 다섯 번째 선전포고, 1987~1995
6 여섯 번째 선전포고, 2000~2014
결론: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책속에서
P. 10
팔레스타인인을 쫓아내고 그들의 고국을 다른 이들의 민족적 고국으로 바꾸기 위해 벌어지는 이 전쟁은 해묵은 싸움의 일부가 아니라 19세기 말 시온주의 운동의 부상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유서 깊은 유럽의 극악한 반유대주의에 대응해서 등장한 시온주의 운동은 정착민 식민주의 기획인 동시에 민족주의 기획이었습니다.
P. 25
독일 나치 정권의 박해에 따라 유대인 이민자가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인구가 1932년 총 18퍼센트에서 1939년 31퍼센트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리하여 1948년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에 필요한 인구학적 임계점과 군 병력이 마련되었다.
P. 28
팔레스타인은 그곳에 정착하러 온 이들에게 <주인 없는 땅>이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름과 형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헤르츨은 유수프 디야에게 보낸 편지에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을 <비유대인 주민>이라고 지칭했다. 당시 그곳 주민의 약 95퍼센트였는데 말이다.
P. 49
밸푸어 선언은 전면적인 식민지 충돌의 신호탄이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희생시켜 배타적인 <민족적 본거지>의 건설을 목표로 한, 한 세기 동안 이어지는 공격의 시작이었다.
P. 68
히틀러의 부상은 팔레스타인과 시온주의 양자의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임이 입증되었다. 1935년 한 해에만 6만 명이 넘는 유대인 이민자가 팔레스타인으로 왔는데, 이 숫자는 1917년 이 땅에 살던 유대인 인구 전체보다 많은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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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와 21세기 초 팔레스타인의 삶에 대해 가장 잘 연구된 저술. - 네이션 
강탈당하고, 그러면서도 침략에 저항하지 못한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애가(哀歌). - 더 가디언 
단단한 학문적 근거, 생생한 개인적 경험…… 매혹적이고 독창적이다. - 아비 슐라임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 
전 지구적 차원의 정착민 식민주의 연구를 위한 탁월한 틀을 제공한다. - 호미 K. 바바 (인도의 탈식민주의 사상가) 
팔레스타인인들이 온몸으로 겪은100년간의 전쟁 경험. 한 편의 소설처럼 섬세하다. - 아다프 수에이프 (이집트의 소설가)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양쪽 모두가 품은 환상을 잠재운다. 놀라운 책이다. - 유진 로건 
팔레스타인인들의 100년에 걸친 투쟁을 담은 최초의 진정한 민중사. - 록산 던바오티스 (역사가ㆍ정치 활동가, 《미국 원주민의 역사》 저자) 
강렬한 역사를 통해 한 세기에 걸친 실책과 오판, 고의적인 기만이 낱낱이 폭로된다. 강력히 추천한다. - 스티븐 M. 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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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라시드 할리디 (Rashid Khalidi)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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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중동 문제 전문가이자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역사학자. 1948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고, 유엔에서 근무하던 아버지가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 수석 총무(1962~1965)를 맡으면서 3년간 한국의 서울미국인고등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1970년에 예일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 1974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정치인, 판사, 외교관, 언론인 등을 배출한 팔레스타인의 명문 가문 할리디가(家) 출신으로, 대대로 가계 전체가 팔레스타인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 종고조부 유수프 디야 알할리디는 1870~1906년 사이 세 차례나 예루살렘 시장을 지냈고, 큰아버지 후세인 알할리디 역시 예루살렘 시장(1934~1937)을 역임했다. 저자 본인도 1967년 전쟁 당시 휴전을 교섭하던 유엔 회의장에 아버지와 함께
있었고, 1992년에는 오슬로 회담의 일환으로 진행된 워싱턴 교섭에 고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 현대 아랍 연구 담당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Edward Said Professor로 재직 중이며 『팔레스타인 연구 저널Journal of Palestine Studies』 공동 편집인이다. 『팔레스타인의 정체성Palestine Identity』, 『기만하는 브로커들Brokers of Deceit』, 『쇠우리Iron Cage』 등 7권의 저서가 있고, 『뉴욕 타임스』, 『보스턴 글로브 』 등 유력 매체와 여러 학술 저널에 글을 쓰고 있다. 접기
최근작 :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 총 32종 (모두보기)
유강은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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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문제 전문 번역가.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쏟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 『The LEFT』, 『노동계급 세계사』,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불안한 승리』, 『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 『E. H. 카 러시아 혁명』, 『핀란드 역으로』, 『미국민중사』 등이 있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로 제58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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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개미 2>,<오이디푸스왕 외>,<뇌 2>등 총 855종
대표분야 : 과학소설(SF) 1위 (브랜드 지수 976,180점), 고전 2위 (브랜드 지수 1,135,686점), 추리/미스터리소설 10위 (브랜드 지수 298,217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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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단단한 학문적 근거, 생생한 개인적 경험…… 매혹적이고 독창적이다.
— 놈 촘스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기원과 본질
<이스라엘, 가자지구 130곳 공습>, <핏빛 팔레스타인… 하마스 로켓포 쏘자 전투기로 보복>…….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이 국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광경은 너무나 익숙하다. 가장 최근인 2021년 5월 열흘간 벌어졌던 유혈 충돌에서도 팔레스타인인이 300명 가까이, 이스라엘인이 12명 사망했다. 미국의 국제관계 평론지 『포린 어페어』는 이번 분쟁을 <더 폭력적인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팔레스타인은 어쩌다 <중동의 화약고>가 되었을까? 왜 이 전쟁은 한 세기 넘도록 끝나지 않을까?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역사학자 라시드 할리디의 신간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기원과 성격을 <정착민 식민주의Settler Colonialism>로 규정한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인디언을 학살하고 미국을 세운 것처럼, 영국과 미국 등 열강을 등에 업은 시온주의가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몰아낸 뒤 정착민으로서 밀고 들어왔다는 것. 오늘날 두 나라의 빈번한 충돌 역시 100년간 이어져 온 식민지 전쟁의 일부라는 설명이다. 이 책은 2020년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팔레스타인 민중의 관점에서 분쟁 전반을 기술한 보기 드문 수작>으로 큰 주목을 받았고, 놈 촘스키, 아비 슐라임 등 세계적인 석학들의 찬사를 받았다. 특히 저자 본인이 팔레스타인에 수백 년간 뿌리를 둔 명문 가문 할리디가(家) 출신으로, 역사적 현장에 있던 일가친척의 발언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팔-이 분쟁사 연구에 깊이와 생생함을 더했다. 1917년 밸푸어 선언부터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오늘날 가자지구 공격까지 여섯 번의 결정적인 시기를 날카롭게 들여다보는 이 책은 그 자체로 <정착민 식민주의 연구를 위한 탁월한 틀>을 제공한다.

팔레스타인 명문 집안 연구자, 한국과의 인연
라시드 할리디는 국내에 거의 처음 소개되는 학자이지만, 이미 세계적인 중동 문제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CNN, BBC 등 언론에 종종 인터뷰이로 등장하고, 『팔레스타인의 정체성Palestinian Identity』 등 그의 주요 저술들은 20세기 중동 사회의 민족주의‧식민주의 연구자들의 필독서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이력이 놀라운데, 저자는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정치인, 판사, 외교관, 언론인을 배출한 팔레스타인의 명문 가문 할리디가 출신으로, 그의 집안은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현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종고조부 유수프 디야 알할리디는 1870~1906년 사이 세 차례나 예루살렘 시장을 지냈고(예루살렘, 몰타, 이스탄불, 빈 등에서 교육받았다), 큰아버지 후세인 알할리디 역시 예루살렘 시장(1934~1937)을 역임했고, 영제국의 탄압을 받아 외딴 섬 세이셸 제도에서 유형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서문에는 저자가 초기 시온주의 운동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할리디 도서관을 애용했다고 밝히는데, 이 도서관은 1899년 저자의 할아버지가 증조 할머니의 유산으로 예루살렘에 세운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큰 사설 도서관이다(팔레스타인 문학·역사에 관한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한편 할리디의 아버지 이스마일 라기브 알할리디는 19년간 유엔에서 일했고(유엔 정치안보이사회국 소속), 아랍-이스라엘 충돌이 벌어질 때마다 사무총장을 보좌하며 안보리 회의의 실무를 담당했다(덕분에 저자도 1967년 전쟁 당시 휴전을 교섭하던 유엔 회의장에 아버지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할리디 본인도 1982년 이스라엘 공군의 베이루트 공습 당시 가족들과 함께(아내와 두 딸, 어머니, 남동생) 현장에 있었고, 서베이루트 포격과 포위 공격이 진행된 10주간 아이들을 돌보면서 <물과 전기, 신선 식품 부족이 부족한 상황과 쓰레기 태우는 냄새를 견뎌 냈다>. 1992년에는 오슬로 회담의 일환으로 진행된 워싱턴 교섭에 팔레스타인 대표단 고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과의 인연이 눈에 띄는데, 할리디의 아버지가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 수석 총무(1962~1965)를 맡으면서 한국에 근무할 당시, 할리디는 3년간 이태원의 서울미국인고등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한국어판 서문에는 그 시절에 일본 식민 지배에 맞선 한국인의 투쟁에 관한 책들을 탐독했다고 밝히고 있다.

정착민 식민주의
흔히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은 <같은 땅에 대해 각자 권리가 있는 두 민족 사이에 벌어진 충돌로 묘사된다>. 일종의 원조 논쟁이다. 수천 년 전의 선조의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측(유대인)과 그 땅을 수백 년간 점유해 온 측(아랍인), 모두에게 일정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대로라면 과거에 선조들이 어떤 지역을 점유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후손들이 그 지역의 실점유자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구려가 한때 만주 지역을 지배했다고 지금에 와서 중국에 그 땅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을까). 할리디는 이 어처구니없는 역사의 진실을 똑바로 볼 것을 주문한다. 시온주의가 내건 종교적 명분이나 역사적 근거는 착시에 불과할 뿐, 이 전쟁의 본질은 언제까지나 <식민주의>였음을 지적한다. 다만 팔레스타인의 경우엔 식민 본국(영국인)이 아닌 유럽에서 박해받던 유대인들이 정착민으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특별할 뿐이다.
또한 팔-이 분쟁은 최악의 경우에는 <유대인이 하느님이 주신 영원한 고국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주장하자 아랍인과 무슬림이 광신적이고 완강하게 증오한 결과로 묘사된다.> 디아스포라와 홀로코스트……. 이산을 겪고 핍박당하는 민족이라는 시온주의의 서사는 <성경을 끼고 사는 영국과 미국의 개신교도들에게> 대단히 매혹적이었다. 또한 미국으로 몰려든 유대인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1880~1920년 사이에 미국의 유대인 인구는 25만 명에서 400만 명으로 늘어났는데. <현대의 정치적 시온주의는 미국에서, 유대인 공동체 내부와 많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깊이 뿌리를 내렸다.>
결국 영국은 밸푸어 선언(1917)으로 유대 국가를 꿈꾸던 시온주의 운동의 손을 들어 주었다. 팔레스타인에 사는 94퍼센트의 아랍 주민 대신, 6퍼센트의 유대인에게 땅의 권리를 넘겨준 셈이다. 이후 유대인이 새로운 정착민으로 순차적으로 밀려들어오고, 쫓겨난 원주민들은 팔레스타인 외곽과 주변 아랍 국가의 난민촌에 둥지를 틀고, 잃어버린 땅을 찾기 위해 투쟁에 돌입한다. 그렇게 기나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정착민 식민주의가 당대의 강대국(영국과 미국)의 지원 아래 원주민을 몰아내려고 선전포고를 하고, 100년간 전쟁을 이어온 것이 바로 지금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평화를 바라는데,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퇴짜를 맞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적처럼 그동안 시온주의가 <관념과 재현, 언어와 이미지가 문제가 되는 국제 세계에서 팔레스타인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시온주의와 식민주의 기획
할리디는 이 책에 시온주의의 식민주의 기획 가운데 몇 가지 특징을 짚어낸다.
첫째, 원주민을 안심시키기. 시온주의 창시자 헤르츨은 1899년 예루살렘 유력 정치인 유수프 디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들어오더라도 걱정할 게 없다고 교묘한 주장을 편다. 오히려 유대인의 이민을 대거 허용하고, <우리(유대인)의 안녕과 부를 위해 노력하면 그들(팔레스타인 주민)의 안녕과 재산도 늘어날 것>이라고 적고 있다. 일반적으로 식민주의자들이 원주민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 내세워 온 빤한 논리였다. 헤르츨은 <다수의 유대인이 지적 능력과 경제적 재능, 사업 수단을 가지고 이 땅에 들어오도록 이민을 허용하면, 이 땅 전체의 안녕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이후 역사가 증명하듯, 시온주의의 목적은 아랍인(원주민)과 유대인(정착민)의 공존이 아니라, 오로지 유대인이 독점하는 <유대 국가>의 건설에 있었다.
둘째, 원주민의 정체성과 문화 부정하기. 1969년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는 <팔레스타인인 같은 건 없고, 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발언으로 큰 논란을 샀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비가시화해 온 역사는 뿌리가 깊다. 할리디에 따르면, 시온주의 도래 이전에 이미 <팔레스타인은 황량하고 아무도 살지 않으며 후진적인 땅이었음을 입증하는 데 골몰하는> 문헌들이 다수 등장했다. <유목 생활을 하는 소수의 베두인족>이 배회하고, 그들은 <뚜렷한 정체성이 전혀 없고 땅에 대한 애착심도 없었다>는 식이다. 여기서 도출되는 결론은 하나였다. <사람 없는 땅을 땅 없는 사람들에게 주자.> 팔레스타인은 그곳에 정착하러 온 이들(유대인)에게 <주인 없는 땅>이었다.
셋째, 원주민의 경제력과 인구를 희생시키는 급진적인 사회공학.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팔레스타인 토착 사회의 해체는 유대인 정착민의 정치적 자율성과 경제력을 높이는 반면, 원주민의 권리는 제한하고 경제적 차별을 가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영국 위임통치 당국은 유대인 정착민에게 국가에 준하는 자치 구조를 허용했고, 경제 부문에서도 아랍 노동자를 배제시키고 해외로부터 막대한 양의 자본을 유대인에게만 몰아주었다(1922년부터 1947년까지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경제는 매년 13.2퍼센트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인구 비율에서도 급격한 변화가 나타났다. 차별과 탄압으로 팔레스타인 원주민의 수는 줄고(1936~1939년 아랍 대반란으로 팔레스타인 성인 남성의 10퍼센트가 죽거나 다치고 추방당했다), 정착민 유대인의 인구는 대폭 늘었다. 특히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온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면서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인구 비율은 1932년에 18퍼센트에서 1939년에 31퍼센트로 크게 증가했다. 그리하여 1948년이 되면,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에 필요한 인구학적 임계점과 군 병력이 마련되었다. <마침내 시온주의 민병대에 이어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에서 아랍 인구의 절반 이상을 쫓아냄으로써 시온주의의 군사적・정치적 승리가 완성되었다.>
넷째, 무자비한 폭력과 응징. 시온주의 운동과 이스라엘 국가 편에는 언제나 거대한 군대가 있었다. 1939년 이전에는 영국군, 1947~1948년에는 미국과 소련의 지원, 1950~1960년대에는 프랑스와 영국이 있었으며,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는 미국의 무제한적인 지원 외에도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사력이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인의 작은 소요나 폭력(시위, 로켓포, 테러)에도, 무자비한 폭력으로 응징했다. 비례 원칙을 넘어서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민간인 거주지를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이른바 <다히야 원칙>(이스라엘 공군이 약 907킬로그램 폭탄 등 살상 무기로 파괴한 베이루트 남부 교외의 이름에서 따옴)이다. 2008년 이스라엘의 북부 사령관 가디 에이젠코트는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하는 모든 마을에서…… 불균형적인 무력을 가해서 막대한 피해와 파괴를 야기할 것이다. 이건…… 정해진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평화는 가능할까?
할리디에 따르면, 정착민 식민주의와 원주민의 대결은 결국 세 가지 경로를 걷는다. 1) 아메리카 인디언과 오스트랄라시아 원주민처럼 완전히 밀려나고 삭제된다. 2) 알제리처럼 식민 지배(프랑스)를 깨뜨리고 독립한다. 3)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소수 정착민과 아슬아슬하게 공존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이 중 어느 길도 쉽지 않다. 만약 <18세기나 19세기였다면, 팔레스타인인들이 소수였거나 오스트랄라시아와 북아메리카 토착민처럼 완전히 몰살되었다면> 시온주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을 몰아내는 게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등장한 시온주의는 역사학자 토니 주트의 표현대로 <너무 늦게 도래>했다. 또한 오늘날 인구 규모 면에서 이스라엘인의 수와,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까지 모두 합친 숫자가 엇비슷하다. 그 출발이야 어찌됐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서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100년간 계속된 전쟁이 그 증거다.
이제 저자는 팔레스타인의 민족적 목표를 어디에 둬야 할지 공구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스라엘이 <점령을 종식하고 팔레스타인 식민화를 번복하는 것>이지만, <이스라엘에 빼앗기고 남은 22퍼센트 땅에 아랍권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해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는 것>, <국외에서 사는 나머지 절반의 팔레스타인인을 고국으로 귀환시키는 것>, <팔레스타인 땅 전역에서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민주적인 두-민족국가를 창설하는 것> 등(또는 이 선택지들의 조합이나 변형)도 가능하다. 물론 어느 것도 쉽지 않고, 특히 이스라엘이 동의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이 싸움을 멈출 수는 없다. 팔레스타인 내부의 자성도 요구된다. 지난 시기 동안 팔레스타인해방기구,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당대의 지정학적 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내부 분열과 무모한 저항에 몰두했다. 저자는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서사에 맞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지금의 호기를 놓치기 말고, 주변 아랍인과 세계 여론, 심지어 이스라엘 여론에 호소하면서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을 주문한다. 여전히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중이 이스라엘의 통제 아래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인은 물론 이스라엘에도 불행한 일이다. 저자는 <상호 인정>과 평등, 정의를 원칙으로 삼아 국제 사회를 팔레스타인의 편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요청한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가운데서도 오직 이런 정당성을 손에 넣을 때에만 팔레스타인이 세계인의 지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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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라시드 할리디

열린책들



역사는 관주(貫珠)와 같은 것이다, 꿰어진 구슬 목걸이 같다는 말이다. 

어느 하나의 사건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앞뒤로 구슬이 엮여있듯 주렁주렁 엮여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접한 나에게 왜 11세기의 십자군전쟁이 떠올랐을까? 지역적으로 팔레스타인은 중근동(中近东)에 속하며 역사적으로 부침이 많았던 지역이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로마제국령의 세력권과 파르티아(고대 이란제국)제국의 영향권이 맞부딛히는 지역이었고, 이후 중세, 근세로 오면서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과 사산조페르시아, 그리고 뒤를이은 아랍 이슬람, 투르크에까지 온갖 민족의 왕래와 정치/종교 권력이 교차하던 지역이었다.

    11세기,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던 시기는 동로마제국이 중근동과 이집트를 포함한 북부 아프리카지역등 비교적 비옥한 지역을 오스만 투르크에게 빼앗기고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과 그리스를 포함한 발칸반도와 에게해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던 상황이었다. 특히 중근동이 오스만 투르크에게 넘어갔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제1성지로 여기는 기독교권 내에서는 충분한 정치적 이슈를 항상 내포하고 있었다.

  11세기 교황은 교권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종교적 대 이벤트를 벌인다. 바로 '성전(聖殿)탈환'이다. 기독교 제1의 성지인 이스라엘이 이슬람세력권에 넘어가 있어서 이를 찾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성전(聖戰)에 참여한 자들은 모두 이승에서의 죄를 사하여 준다는 약속과 함께. 그런데, 동로마로부터의 군사원조 혹은 지원에 대한 간곡한 요청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소아시아가 몽땅 넘어가고 북부아프리카의 비옥한 영역을 모두 잃을때까지 수없이 군사적 지원 요청을 하였으나, 서로마 제국은 모른척 했었다.


  이슬람과 기독교 그리고 유대교까지 이 말많은 세 영향력이 막강한 종교는 바로 아브라함 계통의 '모세 유니버스'로 묶인 동일한 혈통을 지닌 종교들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교'라는 표현보다는 '이단'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당시 이슬람권의 팔레스타인에는 기독교인들과 유대교인들이 적지않게 살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종교까지 지켜가며 말이다. 그들은 유럽전역과 발칸반도를 포함하는 기독교권에서의 성지순례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며 생업을 지켜 나가고 있었다. 당시, 지중해의 해양 패권을 나누가지고 있던 베네치아에서는 성지순례 패키지까지 있었다고 하니 기독교에서 탈환을 한다느데 조금 의아한 느낌이 드는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슬람치하의 기독교 제1성지, 예루살렘은 항상 성지순례자들로 북적 거렸고, 그들을 상대로 하는 아파, 하이파 등 해안도시가 생겨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생업을 이어나가고, 무엇보다 이슬람 치하에서 일부 차별을 받기는 했으나 기독교와 유대교는 각자의 종교를 지켜나갈수 있었다.


  예루살렘을 탈환하겠다는 십자군은 장장 200년에 걸쳐 10차의 원정을 벌인다. 요즘같으면 전유럽을 아우르는 다국적 연합군인 셈이다. 그들은 1차와 6차 두번을 제외하고는 변변한 전과가 없었으며, 도리어 기독교 도시를 침략하는등 특히 4차원정때는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침공하여 처참하고 무자비하게 도시를 유린하고 수많은 문화재와 보물을 약탈하고 파괴했다. 이후 그들이 유럽으로 돌아가서 정식으로 재판또는 책임을 진 이는 한사람도 없었다는 것은 종교에 대한 믿음과 신의 능력과 역할, 그리고 종교를 빙자한 모든 선동들이 얼마나 사악한 짓인지 명백히 할 뿐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팔레스타인'땅의 작은 도시 '예루살렘'이 기독교와 이슬람 두 종교모두의 성지(聖地)인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중요한 점은 이슬람 점령하의 예루살렘에는 전 유럽에서 성지순례자들이 줄을 잇고, 그들을 상대로하는 도시가 번창하였을 정도이고, 기독교의 성지 탈환 이후에는 전 도시에 대한 살육과 그후 기독교치하에서의 이교적 종교활동은 절대 금지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배타적이며 이기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입으로는 포용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종교라고 한다. 하지만 포용과 용서, 그리고 사랑은 그들, 기독교인 끼리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었고 이교에 대하여서는 철저하게, 그리고 잔인하게 응징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믿는 신 '그리스도'의 뜻인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뜻을 거역하는 개 망나니 같은 대다수 신도들의 뜻인지.

   10세기가 훨씬 지난 옛날옛날 이야기를 들먹이는 이유가 이것이다. 같은지역 같은 도시를 두고 다시금 양 진영이 피를 흘리고 있기 때문이며, 그 모습이 천년전의 그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이다.


  근대의 비극은 오스만의 몰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2차 발칸전쟁을 거치면서 600년을 지배하던 오스만 투르크가 발칸반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오스만이 빠져나간 발칸은 그야말로 무주공산, 야욕과 탐욕이 집중되던 발칸에서 결국은 제1차대전의 불씨가 되는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저격사건이 발발하게 되고, 기다리고 있던 주변 이해국들은 모두 덤벼들게 되는, 인류 최대의 비극과 더불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게는 비극, 유대인들에게는 기회가 시작 되었다.

  1차대전을 치르며 유대인자금이 필요했던 영국은 벨푸어 선언(1917)을 통하여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 설립에 대한 지원을 하겠노라고 하였고, 그 2년전인 1915년에는 뒤늦게 주축국측에 가담한 오스만을 상대로 싸워주는 댓가로 팔레스타인에 아랍국가 설립을 약속하는 후세인-맥마흔 선언을 하는 2중거래, 3중거래를 하는 더러운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물론, 전후의 중근동을 포함한 아프리카지역은 영국과 프랑스가 분할통치 하기로 그들은 책상에 앉아 지도와 자, 그리고 펜을 놓고 선을 그어대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국경이 되고 있었다.


  독서하는 내내 유대인이란 어떤 민족인가에 대하여 궁금증이 폭발 하였다.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팔레스타인 아랍인에 대한 적지않은 관심을 가졌었으나, 정작 문제의 발단 즉 불씨를 품고있는 유대인에 대한 공부는 게을리 하지 않았던가.

  -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죄로 이천년을 유랑하게 되는 민족.

  - 중세를 거치면서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여 어쩔수 없이 금융 고리대업에 매달리게 되었던 민족.

  - 근대1,2차 대전을 거치면서 거의 멸종단계까지 핍박을 받았던 민족.

  - 미국의 이민러쉬를 타고, 핍박을 피하여 도미하여 미국이라는 나라의 경제를 쥐어틀고 있는 민족.

  - 옆집아저씨, 옆자리 친구와 같이 같은 외양, 같은 말을 쓰는 숨겨진 민족.

  - 젖과 꿀이 흐른다는, 그들의 신이 허락하였다는 곳에 모여드는 민족.


  독서에 임할때는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이 피해자라는 마음가짐이 있었고 유대인들이 가장 치밀하고 계산된 악한 가해자라는 생각. 그러나, 독서기간 내내 그들에 대한 동정심 역시 감출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의 불행에 대한 진정한 가해자는 누구일까? 

  영국일까? 프랑스일까? 미국일까?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독일일까? 물론, 관련된 모든 국가들이 저마다의 책임이 있고, 지금도 책임을 감당하기는 커녕 뻔뻔스러운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현실을 차지하고서라도 근본적인 문제의 발단을 쥐고 있는 나라 혹은 사건이 분명히 있기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불행의 책임도 가려내야 겠지만, 목전의 본질적 문제는 현재 이렇게 기형적으로 엉켜있는 불행스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세계의 묵직한 위정자들이 그들의 뛰어난 머리를 발휘해야 하는 순간 이지만, 나는 무엇보다 그들 각자의 신(神)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것이 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가 탄생한 이천년전의 고대 로마제국통치하에서도 제국은 절대 배타적이지 않았다.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신을 믿고 숭배할 자유를 주었다.

  그리스도 역시 포용과 사랑, 용서와 이해의 거울이다.

  이슬람 역시 지난 이천년동안 그들의 통치지역에서의 종교의 자유를 허락 하였다.

  그랬던 것이, 이천년이라는 세월을 겪어오면서 각기 지극적으로 배타적, 폭력적으로 변질되었다.


  우리가 풀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여호와와 알라가 담판을 지어야 하는 문제이다.

  그들이 믿는바대로 그들의 신들이 정말 살아서 역사한다면 말이다.

  이제는 마음을 열고 그들 각자의 신들이 매 순간 우리에게 눈물로 호소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각자의 신들이 정말로 화를 낼것이다.


  '샬롬! 샬롬!' '앗살람 알라이쿰!' '평화가 그대와 함께!'





[라시드 할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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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ola2 2022-02-10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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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라시드 할리디 ㅣ 유강은-옮김 ㅣ 열린책들

 

중동은 무서운 곳, 아랍인들은 분노에 가득찬 테러리스트,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땅이라는 이미지가 다소 과장되고, 때론 조작된 것이라는 생각을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으로 깨달았다. 표지의 저 영토는 팔레스타인일까? 이스라엘일까? 히틀러의 희생자가 된 기구한 민족이라고만 생각했던 유대인들이 어찌보면 히틀러 못지 않게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세계적인 중동 문제 전문가이자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역사학자 '라시드 할리디'가 펴낸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은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민으로 자리 잡았던 유대인들이 어떻게 그 땅의 주인이자 민족이 되었는지 시간의 순서대로,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명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조국이 붕괴되어 공중분해되는 과정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으나 종종 그의 단어, 문장에서 분노가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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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1948

 

대다수의 팔레스타인인이 소유하고, 생활하는 땅에서 그들을 몰아내고, 그곳을 자신들 민족의 터전으로 삼으려는 계획을 실천하게 했던 유대인들의 '시온주의'는 열강들과 자신들의 이익만 꾀하려 했던 주변 아랍국들에 의해 가능했다. 하지만 가장 큰 잘못은 돌아가는 세계 정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상황을 너무 안일하게만 생각했던 팔레스타인 본인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은 1717년 오스만 제국과 영국의 전쟁으로 시작한다. 이 전쟁의 승리로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하게 된다, 이후 영국은 '밸푸어 선언'으로 유대인이 벌이는 시온주의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며 팔레스타인 문제의 발단이 시작된다. 아랍과 유대인들의 오랜 갈등은 어찌보면 영국의 이중적인 모습 때문에 야기된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이후 팔레스타인은 아랍 팔레스타인의 독립, 밸푸어 선언 거부, 다수결 원칙 지지, 무제한적인 유대인 이민 유입과 토지 매입 중단 등을 영국에 요청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이에 다양한 폭력 사태가 발생하고 영국은 가혹하게 진압하며 골은 점점 더 깊어져간다.

 

여러모로 억압을 받던 팔레스타인은 시온주의의 결정판인 '빌트모어 프로그램'으로 자신들의 땅을 두고 난민이 되고, 세계2차 대전의 영향으로 시온주의는 열강들의 지지를 얻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게다가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을 분할하여 넓은 유대 국가와 좁은 아랍 국가로 만들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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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1982

 

유대인이 자신들의 옛 땅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에 이주한 것을 시작으로, 팔레스타인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단계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중동 안에서 이권을 취하려 했던 영국과 미국의 지지와 이리저리 눈치 보기만 바빴던 인근 아랍권 국가들의 책임을 넘어 국가로써 자신들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 팔레스타인인들 본인들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으려 하는 것이 지나친 음모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테러를 행한 것은 사실이니 이는 달게 받을 쓴소리이다. 상대의 잘못을 또따른 잘못으로 되갚아 주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다. 이는 이스라엘도 똑같다. 그들은 팔레스타인무장단체를 테러리스트라 부르며 비난하지만 본인들이 행한 민간인 학살은 테러가 아니란 말인가.

 

1982년 레바논 내전 부분을 읽으며 드뇌 빌뇌브 감독의 영화 [그을린 사랑]이 생각났다. 동일한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이며, 극적인 결말로 큰 파문을 남기는 영화는 그들의 전쟁이 얼마나 인류에게 큰 상처를 남길지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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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2014

 

거리의 저항 '인디파다'는 팔레스타인들에게 여러 모로 다양한 기회가 되었다. 시민들의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 중 이스라엘은 폭력을 자행했고, 이는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불쌍한 피해자 이스라엘이라는 인식을 깨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인정을 받고,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하느님의 양들로 여겨지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테러를 자행하는 집단으로만 여겨졌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세계인들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다. 새로운 세력을 추종하는 사람들과 세계의 언론이 그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 기존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새로운 세력을 시기하며 방해한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기존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세계의 정세에 기민하게 반응하지도, 팔레스타인인들의 어려움을 현실적으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자신들의 권력만을 꼭 움켜쥐는라 어렵게 찾아온 협상의 기회마저 활용하지 못한다. 아니 활용은 커녕 이용 당하며 스스로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팔레스타인은 가자지구에 고립되는 꼴이 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가자지구에 고립시키며 그들을 세계와 차단시킨다. 가지지구는 팔레스타인들의 감옥이 된 셈이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정해진 한 곳에서 팔레스타인들을 관리하기 수월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두 번째 인티파다가 시행되지만 폭력적이고, 내부분열의 양상을 보인 두 번째 저항운동은 팔레스타인들을 다시 테러범으로, 이스라엘은 희생자로 만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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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전을 두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보다 그들을 내쫓는 사람들을 외부에서는 더 걱정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느꼈을 무력감과 분노는 어떠했을까? 이스라엘인들이 자신들을 잘 포장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무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속에서 묘사되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이중적이고, 비열하다. 또한 그들을 지지하며 중동에서 자신들의 이익과 입지를 다지려함이 뚜렷해 보이는 미국도 같은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또한 같은 중동지역, 아랍권 국가이며, 무슬림이지만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협상의 도구로만 이용하려는 인근 아랍국가의 모습들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가장 안타깝고, 가장 한심한건 팔레스타인이 자신들끼리 분열을 일으키며 화합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새삼 다시 깨닫는다. 그들의 충돌을 종교적인 이유라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긴 역사를 가진 분쟁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또한 그들의 모습에서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더 안타까웠다. 무지와 자주, 국권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다시 깨닫는다.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알콩달콩 2022-02-10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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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라시드 할리디는 지난 100년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유혈 충돌은 동등한 두 당사자 사이의 충돌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영국과 미국 등의 지지와 지원을 받고 있는 시온주의가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영토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쫓아내고 그곳을 자신들의 민족적 고국 즉 유대 국가로 바꾸는 정착민 식민주의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했다.



할리디는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의 역사를 1917년 밸푸어 선언부터 2014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까지 크게 여섯 단계의 선전포고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어떻게 야만적이고 비인도적으로 민족적, 정치적으로 말살을 당해오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1917년 11월 2일 당시 세계 최강의 영국이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세워 주권을 확보한다는 시온주의 운동을 지지하는 밸푸어 선언을 발표한다. 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100년 전쟁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가혹한 운명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이 선언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본거지를 수립하는데 찬성한다>는 모호한 구절을 담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상 팔레스타인 전체에 유대 국가를 세워 주권을 확보하고 이민을 통제한다는 시온주의의 목표를 지지한다고 약속한 것이었다.

이 선언은 당시 팔레스타인에 거주하고 있던 94퍼센트에 달하는 압도적 다수의 아랍 주민들에 대해서는 애매하게 언급하며 그들을 한 민족이나 집단으로 거론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어떠한 민족적 권리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고, 6퍼센트에 해당하는 극소수 사람들을 '유대인'이라 지칭하며 민족적 권리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 밸푸어 선언은 영국군의 군정 당국에 의한 뉴스 공개 금지와 검열, 연합군의 해상 봉쇄 등으로 알려지지 않다가 입에서 입으로 소식이 전해지고 외국 신문을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알려진다.



1922년 새롭게 구성된 국제연맹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반포하여 영국의 통치를 공식화하면서 밸푸어 선언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약속을 크게 확대했다. 위임통치령에는 오직 유대인만이 팔레스타인과 역사적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즉 팔레스타인에서 지난 2000년에 걸쳐 축조된 한 민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워버린 것이다.

또한 위임통치령은 민족적 본거지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시온주의 운동에 특권과 편의를 확대했고, <공적 기구>로서 유대인 기구에 준정부 지위를 부여했다. 이 위임통치 권력이 이민 유입을 촉진하고 장려했으며,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시민권을 쉽게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적법도 마련했다.



팔레스타인의 종족 청소는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 국가 선포 한참 이전에 시작되었는데, 1949년에 이르면 신생 이스라엘 국가가 된 지역에 사는 아랍 주민의 80퍼센트가 자기 집에서 쫓겨나고 토지와 재산을 잃었으며, 130만 팔레스타인인 가운데 최소 72만 명이 난민 신세가 되었다.







할리디는 이제 100년을 이어온 분쟁을 종식하기를 바라며 팔레스타인인들 또한 그들의 방법을 신중하게 재평가할 필요성을 재기했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의 민족적 목표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점령을 종식하고 팔레스타인 식민화를 번복하는 것,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에서 이스라엘에 빼앗기고 남은 22퍼센트 땅에 아랍권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해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는 것, 현재 국외에서 사는 나머지 절반의 팔레스타인인을 고국으로 귀환시키는 것, 팔레스타인 땅 전역에서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주권적인 두-민족국가를 창설하는 것, 또는 이 선택지들을 일부 조합하거나 변형하는 것 등 여러 가지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에 이스라엘이 동의를 할까?

앞으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맞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주변 아랍 국가와 미국은 물론 세계 여론과 이스라엘 여론에도 호소하며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직도 이들의 전쟁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살기를 원하지만 이스라엘은 난민 문제나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환 요구를 재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긴다.

유대인들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엄청난 학살을 당하고 고통을 겪었음에도 그들이 나치에 의해 고통받은 것 이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만행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를 하면서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어서 빨리 평화적 공존의 방안이 제시되어 더 이상 고통받는 이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팔레스타인 분쟁을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여 좀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얼음사탕 2022-02-05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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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실상을 2017년 최근까지 알수 있는 책이라 더욱 기대가 됩니다. 그 속에 있는 우리는 모르고 그들은 아는 이야기가 무척 궁금하다 
친절한묘묘씨 2022-01-05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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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전쟁을 식민주의 관점에서 읽은 책이다.
원어로 전에 읽은 적이 있었지만 이 책은 전쟁의 규모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준다.
시온주의를 단순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으로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책을 추천한다.

이름 2021-11-03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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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전쟁을 구체적으로 다룬 많지 않은 문헌이기에 읽고 싶다 
사율 2022-01-05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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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실수 였는지? 계획된 수순 이었는지? 한국인들은 왜 이스라엘에 편애적일까?

tongola2 2022-01-09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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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 하급 외교관(82년 당시 네타냐후)이 버르장머리 없이 대사와 미 국무부 부장관 협의에 끼어들어서 ˝이 문구는 삭제하는 게 좋겠다˝ 운운하는데 미국측에서 아무 소리도 못한다. 미국 정치가 얼마나 이스라엘에 종속적인가 보았다. 남의 나라 하빠리 공무원한테 끌려다니는데 이게 무슨 정치인가  구매
leejon112 2023-07-27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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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을 지칭하는 말 가운데 하나인 '화약고'-

 

국제 뉴스란에 끊임없이 들려오는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 가운데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유혈분쟁에 대한 소식은 지난 5월에 있었던 사건으로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 책은 실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역사학자인 라시드 할리디 박사가 100년이란 시간 속에 담긴  전쟁사를 통해 결코 동등하게 벌어진 일련의 충돌이 아니란 것을 말하는 것으로 총 6개에 달하는 전쟁 포고를 통해 그 사실들을 보인다.

 

 

시발점은 시온주의에 대한 유대인들의 열망이 어떻게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를 다룬다.

 

1917년 영국의 벨푸어 선언으로 인한 본격적인 유대인 정착시기부터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그리고 연이은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유혈사태를 다룬 이야기들은 유대인들의 소망이자 열망인 신이 선택한 민족으로서 받은 땅에 정착한 것이 아닌 철저한 그들의 시온주의에 입각한 점과 유럽과 미국의 이민 규제법에 따른 현황으로 맞물리면서 팔레스타인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던 상황들을 들려준다.

 

 

 



 

 

팔레스타인조차 벨푸어 선언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던 점과 이후 국제변화 속에 이뤄진 국제연맹의 1922년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는 이후 독일의 유대인 박해가 이어지면서 더욱 증가세를 보여 팔레스타인들 수와 거의 같은 임계점을 이루게 된다.

 

 

이런 일방적인 방식에 이어 계속된 그들의 합동적인 계획은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과 뒤이은 아랍-이스라엘 전쟁(이른바 ‘제1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지고, 이는 미국의 지원을 업고 이끈 승리로 결국 팔레스타인 70만 명을 몰아낸다.

 

 

 

계속해서 이어진 1967년 6일 전쟁은  팔레스타인 지배와 점령지 정착촌 건설의 기반을 마련한 계기를 마련해줬고 다시 1982년 레바논 침공은  테러를 주도한 PLO를 쫓아내기 위한 구실로 이어졌다.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초토화, 무수한 생명들이 그들의 가공할 무기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철수 후에도 잔존 세력이 남았다는 거짓을 내세워 다시 무차별 공격을 한 이스라엘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1993년 9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오슬로 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들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결과를 가져온 채 계속된 도발과 투쟁, 무차별 공격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로 진행 중이다.

 

 

당시 시온주의가 대두될 수밖에 없었던 근간에는 유대인 및 이민규제법,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동유럽 유대인들의 핍박이 거세지자 그들만의 나라를 세워야겠다는 절실함은 테오도르 헤르츨이 주도한 일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 그들이 고수하는 정책의 기조는 변함이 없다.

 

 

저자는 총 6번의 포고를  다룬 내용들을 통해 접한 이러한 사실들은 성서에 담긴 조상의 땅을 돌려준다는 종교적인 유대주의가 아닌 철저한 식민주의 정책으로 이뤄진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이스라엘이 행한 행보를 돌이켜본다면, 철저하게 유대인만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목적하에 자신들을 도와줄 국가를 찾는 것, 영국과 프랑스, 미국과 소련의 경쟁하에 최종적으로 미국과의 손을 잡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교묘한 언어의 해석을 통해 이뤄낸 결과물들은 기존의 생각들을 허문다.

 

 

 

-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그들, 과연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특히 읽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은 홀로코스트를 직접 당한 당사자였던 그들이 어떻게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해 존재 자체가 없었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으며, 정착을 이루기 위해선 무력을 통해서라도 사람들의 희생을 감수할 수도 있다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는지, 악에서 배운 악은 그대로 답습하는 것인가? 에 대한 물음이 연신 떠올랐다.

 

 

종족말살에 대한 공포감을 그 누구보다도 처절히 느낀 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는 정말 이런 아이러니도 없단 생각이 연신 들게 했다.

 

 

또한 영상을 통해 접하는 입장에서 바라본 그들의 테러 행동들은 서양의 시각에서 받아들인 모습들을 고스란히 우리들에게도 전달한다는 점이다.

 

 



 

 

국제보도에서 연일 전하는 내용들 속에 담긴 이면에 한 번쯤이라도 그들 나름대로의 항변이라도 들려줬더라면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에 대한 생각을 들게 했다.

 

 

 

PLO, 하마스, 이슬람 자하드의 탄생, 풀뿌리 운동으로 시작된 인티파타 1차 운동의 취지가 왜  2치에선 그렇게도 극렬하게 테러 폭탄까지 감행할 수밖에 없었는에 대해서도  결국은 그들이 뿌린 자승자박의  정책으로 인한 결과물이었고 팔레스타인 내부 자체에서도 서로 분쟁을 하는 틈을 타 분리 전술을 이행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행보는 국제적인 이합집산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린다.

 

 

 

미국의 선거 때만 되면 유대인들의 눈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없을 만큼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그들, 때론 미국인들을 기만하면서까지 불도저식으로 팔레스타인들을 몰아내는 과정은 알면서도 모른 척, 뒤에서 지지하는 강대국의 행보는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허울 좋은 협정을 유도하는 과정 속에 담긴 교묘한 이익 계산과 전방위적 유대인들의 로비 활동(모든 분야에 뻗친 그들의 저력은 공공연한 비밀 아닌 비밀),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아랍국의 독립을 약속한다는 취지의 협정 위반들 속에 팔레스타인 문제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닌 채로 이어지고 있다.

 

 

 



 

 

 

스스로 자신들의 입장을 말할 수없었던 팔레스타인들, 그들이 테이블 석상에서 마주친 모습은 국제 정세에 둔감하고 순진함과 미약함을 동반한, 상대방에 따라 어떻게 협상 테이블을 유리하게 끌 수 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들을 다루는 전문인력이 부족했단 아쉬움을 많이 느끼게 했다.

 

 

 

분할통치 자체 반대, 검문소와 장벽을 만들고 통제와 탄압, 왜곡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과거의 한 역사를 돌아보게 만들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유사함이 너무도 놀랍게 다가왔다.

 

 

 

저자는 기존의 동등한 위치에서 벌어진 일들이 아님을, 불공평이란 전제 하에서 발생한 일임을 알리는 일 이외에 이스라엘 내부 자체에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쉽게  바뀔 수는 없다는 한계를 지적한다.

 

 

 이는 미국 내의 다른 관점과 국제적인 시선들이 조금씩 미세하게 바뀌고 있다는 점, 중동의 국제적인 다각화 정치 변화와 중국과 인도의 관심까지 염두에 둔 정치적인 행보를 이어간다면, 희망적인 모습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관점과 이스라엘이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점에 존중과 이해가 이뤄진다는 희망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오늘도 장벽 밑에 토끼굴처럼 판 미로를 통해 목숨을 걸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 그저 하루 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하는 그들이 언젠가는 과거 속의 한 이야기로 남아지길 바란다.

 

 

 

덧붙이자면, ~국가란 이름으로  불리고, 땅이란 토대  영토에서 그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한 의미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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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산책 2022-01-18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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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라시드 할리디 ㅣ 유강은-옮김 ㅣ 열린책들

 

중동은 무서운 곳, 아랍인들은 분노에 가득찬 테러리스트,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땅이라는 이미지가 다소 과장되고, 때론 조작된 것이라는 생각을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으로 깨달았다. 표지의 저 영토는 팔레스타인일까? 이스라엘일까? 히틀러의 희생자가 된 기구한 민족이라고만 생각했던 유대인들이 어찌보면 히틀러 못지 않게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세계적인 중동 문제 전문가이자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역사학자 '라시드 할리디'가 펴낸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은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민으로 자리 잡았던 유대인들이 어떻게 그 땅의 주인이자 민족이 되었는지 시간의 순서대로,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명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조국이 붕괴되어 공중분해되는 과정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으나 종종 그의 단어, 문장에서 분노가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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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1948

 

대다수의 팔레스타인인이 소유하고, 생활하는 땅에서 그들을 몰아내고, 그곳을 자신들 민족의 터전으로 삼으려는 계획을 실천하게 했던 유대인들의 '시온주의'는 열강들과 자신들의 이익만 꾀하려 했던 주변 아랍국들에 의해 가능했다. 하지만 가장 큰 잘못은 돌아가는 세계 정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상황을 너무 안일하게만 생각했던 팔레스타인 본인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은 1717년 오스만 제국과 영국의 전쟁으로 시작한다. 이 전쟁의 승리로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하게 된다, 이후 영국은 '밸푸어 선언'으로 유대인이 벌이는 시온주의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며 팔레스타인 문제의 발단이 시작된다. 아랍과 유대인들의 오랜 갈등은 어찌보면 영국의 이중적인 모습 때문에 야기된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이후 팔레스타인은 아랍 팔레스타인의 독립, 밸푸어 선언 거부, 다수결 원칙 지지, 무제한적인 유대인 이민 유입과 토지 매입 중단 등을 영국에 요청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이에 다양한 폭력 사태가 발생하고 영국은 가혹하게 진압하며 골은 점점 더 깊어져간다.

 

여러모로 억압을 받던 팔레스타인은 시온주의의 결정판인 '빌트모어 프로그램'으로 자신들의 땅을 두고 난민이 되고, 세계2차 대전의 영향으로 시온주의는 열강들의 지지를 얻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게다가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을 분할하여 넓은 유대 국가와 좁은 아랍 국가로 만들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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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1982

 

유대인이 자신들의 옛 땅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에 이주한 것을 시작으로, 팔레스타인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단계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중동 안에서 이권을 취하려 했던 영국과 미국의 지지와 이리저리 눈치 보기만 바빴던 인근 아랍권 국가들의 책임을 넘어 국가로써 자신들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 팔레스타인인들 본인들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으려 하는 것이 지나친 음모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테러를 행한 것은 사실이니 이는 달게 받을 쓴소리이다. 상대의 잘못을 또따른 잘못으로 되갚아 주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다. 이는 이스라엘도 똑같다. 그들은 팔레스타인무장단체를 테러리스트라 부르며 비난하지만 본인들이 행한 민간인 학살은 테러가 아니란 말인가.

 

1982년 레바논 내전 부분을 읽으며 드뇌 빌뇌브 감독의 영화 [그을린 사랑]이 생각났다. 동일한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이며, 극적인 결말로 큰 파문을 남기는 영화는 그들의 전쟁이 얼마나 인류에게 큰 상처를 남길지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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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2014

 

거리의 저항 '인디파다'는 팔레스타인들에게 여러 모로 다양한 기회가 되었다. 시민들의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 중 이스라엘은 폭력을 자행했고, 이는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불쌍한 피해자 이스라엘이라는 인식을 깨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인정을 받고,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하느님의 양들로 여겨지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테러를 자행하는 집단으로만 여겨졌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세계인들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다. 새로운 세력을 추종하는 사람들과 세계의 언론이 그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 기존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새로운 세력을 시기하며 방해한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기존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세계의 정세에 기민하게 반응하지도, 팔레스타인인들의 어려움을 현실적으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자신들의 권력만을 꼭 움켜쥐는라 어렵게 찾아온 협상의 기회마저 활용하지 못한다. 아니 활용은 커녕 이용 당하며 스스로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팔레스타인은 가자지구에 고립되는 꼴이 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가자지구에 고립시키며 그들을 세계와 차단시킨다. 가지지구는 팔레스타인들의 감옥이 된 셈이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정해진 한 곳에서 팔레스타인들을 관리하기 수월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두 번째 인티파다가 시행되지만 폭력적이고, 내부분열의 양상을 보인 두 번째 저항운동은 팔레스타인들을 다시 테러범으로, 이스라엘은 희생자로 만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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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전을 두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보다 그들을 내쫓는 사람들을 외부에서는 더 걱정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느꼈을 무력감과 분노는 어떠했을까? 이스라엘인들이 자신들을 잘 포장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무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속에서 묘사되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이중적이고, 비열하다. 또한 그들을 지지하며 중동에서 자신들의 이익과 입지를 다지려함이 뚜렷해 보이는 미국도 같은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또한 같은 중동지역, 아랍권 국가이며, 무슬림이지만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협상의 도구로만 이용하려는 인근 아랍국가의 모습들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가장 안타깝고, 가장 한심한건 팔레스타인이 자신들끼리 분열을 일으키며 화합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새삼 다시 깨닫는다. 그들의 충돌을 종교적인 이유라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긴 역사를 가진 분쟁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또한 그들의 모습에서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더 안타까웠다. 무지와 자주, 국권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다시 깨닫는다.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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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 2022-02-10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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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식민주의의 옷을 입다.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1917~2017 새창으로 보기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1917~2017









라시드 할리디(지음) / 유강은(옮김) / 열린책들(펴냄)











늘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 있다. 뉴스 1면을 장식하는 팔레스타인 VS 이스라엘의 무력분쟁은 언제 끝날 것인가? 이 지역은 왜 늘 갈등과 폭력이 계속되는지 근본적인 이유, 역사, 그 뿌리에 대해 몹시 궁금했고 관련 기사나 검색을 통해 알아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이 책은 정말 반가웠다.  기존에 이스라엘 혹은 미국이나 유럽의 관점으로 쓴 책들을 많이 읽었던 나로서는 팔레스타인의 시각으로 본 책은 처음 접하는지라 설레며 읽었다. 그리고 지금 유대인의 시온주의에 관한 책을 병렬하고 있어서 두 권을 함께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 시간 동안 팔레스타인해방기구,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당대의 지정학적 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내부 분열과 무모한 저항에 몰두 했다. 여전히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중이 이스라엘의 통제 아래 기본적인 권리마저도 침해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저자는 냉정한 입장에서 이 100년간 계속된 전쟁을  팔레스타인의 운명을 결정짓는 여섯 가지 전환점에 초점을 맞춰 총 6회의 선전포고로 나누어 서술한다. 팔레스타인을 마냥 옹호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정부의 실책에 대해 냉정히 비판하기도 한다. 잘못을 수정하지 못하면 나아갈 수 없다.



















1940년까지만 해도 팔레스타인은 농업에 의존하는 국가였다. 국민들은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가 없었으며 책의 저자는 유엔에서 근무하는 아버지 덕분에 여러 가지 교육의 혜택을 받았고 아버지의 한국 파견으로 인해 한국에서도 3년간 고교 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다. 







외부에서 오는 충격은 사회의 자기인식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발칸반도와 리비아, 그 밖에 여러 곳의 영토를 덩어리째 상실한 오스만 제국은 20세가 초 점차 허약해진다. 1915년~1918년 사이에 대기근으로 50만 명의 목숨을 잃은 것도 국력 약화에 한몫했다. 전후 상황은 저자의 집안을 중심으로 묘사된다. 팔레스타인과 많은 아랍 세계의 사람들은 유럽 각국 군대에 점령당하면서 그 '정체성'마저 잃어버린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자결주의가 대두되면서 팔레스타인 인들이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했는지는 무엇으로 알까? 언론을 통해서였다. 









1917년을 시작으로 총 여섯 번의 선전포고. 총 6차의 전쟁을 리뷰에 다 쓸 수는 없지만 전쟁은 미국 중앙정보국과 국방부가 예측한 대로 전개되었다. 이스라엘 공군은 선제공격으로 이집트와 시리아, 요르단의 전투기가 이륙하기도 전에 대부분 파괴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공중에서 완벽한 우위에 선다. 

벨푸어 선언을 시작으로 강대국의 팔레스타인에 의한 세 번의 선전포고. 1947년 유엔 결의안. 1967년 미국이 작성해서 승인된 안보리 결의안 SC 242이다. 팔레스타인은 더욱 고립되었다. 저자는 아랍의 문제를 아랍인끼리 해결하지 않고 초강대국이 개입하는 부분. 돈으로 시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매수하는 부분에 대해 강력히 비판한다.







레바논 부대가 저지르는 살인 난민 2000명을 학살한 사건 등 충격적인 부분이 많았다. 글쎄, 기존의 이스라엘, 혹은 미국 중심의 전쟁사만 보다가 팔레스타인 입장의 전쟁사를 처음 읽는 나로서는 기존 가치관이 흔들릴 정도로 다시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아랍에 대한 편견이 워낙 단단했기에... 저자의 문장을 읽으며 이해 안 되는 부분은 검색을 하며 '그동안 내가 읽은 책들은 다 뭐였지'라는 생각까지 해봤다.







저자는 시온주의자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보라고 충고한다. 책의 내용을 건너뛰어 최근의 일만 언급해 보자면 2018년 크네셋은 헌법에서 오로지 유대인에게만 민족자결권을 부여하고 아랍어를 지위를 격하하고 유대인 정착촌을 우선시하는 법이다. 현대의 시온주의자들은 비자유주의적이고 차별적인 본질인 식민주의를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놀이터에서 힘이 센 아이와 상대적으로 약한 아이가 놀 때, 엄마들은 힘이 센 아이가 약한 아이를 때리고 약자의 것을 빼앗아도 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힘이 약한 친구, 약자를 보면 도와주라고 말할 것이다. 하물며 인간 사회의 가장 큰 틀인 국제 사회에서는 어떤가? 강대국들은 지난 세기 동안 얼마나 많은 유무형의 '폭력'을 휘둘렀는가! 약소국은 약소국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힘이 약해서 어쩔 수 없다는 패배의식을 당연히 안고 간다.  당연하지 않은데... ㅜ.ㅜ














일제강점기를 지나온 우리. 내 학창 시절 교사들은 '우리가 힘이 약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우리가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가르쳤다.' 교사들이 패배주의를 학생들에게 가르친 셈이다. 약해서 어쩔수 없다? 약한 나라는 당해도 된다? 그러면 우리가 힘을 길렀을 때 상대적으로 열악한 국가들에게 힘의 논리로 대해도 되는 걸까? 아시아에서 온 결혼이주여성들을 업신여기고 저임금을 받고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 대신 위험한 작업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힘의 논리로 대하고 있는건 아닌가? 







전쟁사를 무척 좋아해서 자주 찾으면서도 매번 읽을 때마다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벨푸어 선언 이전에 외무부 장관이라는 자가 프랑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세 나라에 거짓을 말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행동을 보면 이건 '신사'의 나라가 아니라 '양아치'의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팔레스타인 VS 이스라엘의 100년이 넘는 1차적인 책임을 묻고 싶다.







강건너 불구경하는 국제 사회, 자국의 이익만 챙기는 국제 사회....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정한 관심과 노력이 정말 필요한 시점이다. 서문에 저자가 자신의 손주들에게 전하는 말에서 '너희들은 이제 이 100년 전쟁의 끝을 보게 되리라' 라는 문장에 가슴이 아린다. 100년이 또다른 100년이 되지 않기를 폭력이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되기를 제발, 간절히, 절실히 기도한다. 책은 역사에 약한(?) 분이라도 접할 수 있도록 흥미진진하게 서술된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저자가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기술하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책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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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woojoo1115 2022-02-0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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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대주의와 시온주의 사이의 비극의 땅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새창으로 보기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정착민 식민주의의와 저항의 역사 (1917 -2017)

라시드 할리디 지음 |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세계적인 중동문제 전문가이자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역사학자 라시드 할리디의 책은 그동안 막연하게 알고 있던 팔레스타인 분쟁을 보다 다른 차원에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저자는 한국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는데 저자의 아버지가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 수석 총무를 맡으면서 3년간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의 명문 가문 출신인 그는 대대로 그 가문 전체가 팔레스타인 역사적 현장에 있었다. 그의 증고조부는 세 차례나 예루살렘 시장을 엮임했다고 한다.


과연 팔레스타인 전쟁은 그들만의 리그일까? 나에게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식은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 후 생존할 땅으로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팔레스타인을 택했고, 그곳에서 모두 손가방 하나, 짐 가방 하나씩 들고 세계 곳곳에서 모여들어 나라를 이룬 경이로운 국가라는 점이다. 사실 경이라는 것은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사실보다는 나라 없던 유대인들이 빠른 시간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해서 국가를 이루고 살았다는 점에서 일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팔레스타인 전쟁은 그들에게 유대인 이상의 것을 보게 했다. 스스로 박해받은 민족이면서 타 민족에게 총과 칼을 겨누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하는 아이러니다. 원래 그곳에 살고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고향을 잃었다.


저자는 말한다. 이는 19세기말 시온주의 운동의 부상의 일원으로 철저히 기획되어온 식민주의화라고 말이다. 일명 정착민 식민주의이다. 반유대주의에 맞서는 시온주의... 그 결과로 1932년에는 고작 18퍼센트에 불과했던 유대인들이 1939년에는 31퍼센트로 증가했다. 팔레스트인에 살던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비유대인 주민으로 불리웠다. 라시드는 스스로를 사라질 위험에 처한 민족이라고 말한다. 과연 이는 누구의 작품인가? 저자에 따르면 앞으로 더욱 더 위험해진다. 그들, 팔레스타인 민족들은 말이다. 미국은 시온주의를 응원하며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강력한 우방을 아랍에 두고 동등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애초에 팔레스타인 민족과 유대인 민족은 동등한 민족끼리의 융합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가 낳은 식민주의 기획이었다.


두 민족이 한 땅을 사이에 두고 충돌하는 비극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는 식민주의를 목적으로 기획된거라면? 그리고 그 사이 희생된 힘없는 사람들, 여전히 총성이 들리는 가자지구...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않는다. 바야흐로 100년 전쟁이다.


이런 생각이 든다. 만일 우리가 일제 시대에 독립에 성공하지 못하고 그대로 식민지화가 되었더라면...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들어와서 자기식대로 말과 글을 강요하면서 살았다면... 과연 그것이 민족과 민족의 일대일 동등한 통합이라고 볼 수 있을까? 말과 글을 강요하지는 않더라도 민족성과 기질이 다르다면 충돌은 본질적으로 일어난다.

앞으로 이어질 분쟁...그리고 예견된 고통... 과연 이 곳에, 성경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일컬어진 곳에 제발 획기적인, 기적적인 해결법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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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맘 2022-02-0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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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새창으로 보기




이 책의 저자 라시드 할리디는 지난 100년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유혈 충돌은 동등한 두 당사자 사이의 충돌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영국과 미국 등의 지지와 지원을 받고 있는 시온주의가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영토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쫓아내고 그곳을 자신들의 민족적 고국 즉 유대 국가로 바꾸는 정착민 식민주의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했다.



할리디는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의 역사를 1917년 밸푸어 선언부터 2014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까지 크게 여섯 단계의 선전포고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어떻게 야만적이고 비인도적으로 민족적, 정치적으로 말살을 당해오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1917년 11월 2일 당시 세계 최강의 영국이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세워 주권을 확보한다는 시온주의 운동을 지지하는 밸푸어 선언을 발표한다. 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100년 전쟁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가혹한 운명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이 선언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본거지를 수립하는데 찬성한다>는 모호한 구절을 담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상 팔레스타인 전체에 유대 국가를 세워 주권을 확보하고 이민을 통제한다는 시온주의의 목표를 지지한다고 약속한 것이었다.

이 선언은 당시 팔레스타인에 거주하고 있던 94퍼센트에 달하는 압도적 다수의 아랍 주민들에 대해서는 애매하게 언급하며 그들을 한 민족이나 집단으로 거론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어떠한 민족적 권리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고, 6퍼센트에 해당하는 극소수 사람들을 '유대인'이라 지칭하며 민족적 권리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 밸푸어 선언은 영국군의 군정 당국에 의한 뉴스 공개 금지와 검열, 연합군의 해상 봉쇄 등으로 알려지지 않다가 입에서 입으로 소식이 전해지고 외국 신문을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알려진다.



1922년 새롭게 구성된 국제연맹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반포하여 영국의 통치를 공식화하면서 밸푸어 선언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약속을 크게 확대했다. 위임통치령에는 오직 유대인만이 팔레스타인과 역사적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즉 팔레스타인에서 지난 2000년에 걸쳐 축조된 한 민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워버린 것이다.

또한 위임통치령은 민족적 본거지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시온주의 운동에 특권과 편의를 확대했고, <공적 기구>로서 유대인 기구에 준정부 지위를 부여했다. 이 위임통치 권력이 이민 유입을 촉진하고 장려했으며,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시민권을 쉽게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적법도 마련했다.



팔레스타인의 종족 청소는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 국가 선포 한참 이전에 시작되었는데, 1949년에 이르면 신생 이스라엘 국가가 된 지역에 사는 아랍 주민의 80퍼센트가 자기 집에서 쫓겨나고 토지와 재산을 잃었으며, 130만 팔레스타인인 가운데 최소 72만 명이 난민 신세가 되었다.







할리디는 이제 100년을 이어온 분쟁을 종식하기를 바라며 팔레스타인인들 또한 그들의 방법을 신중하게 재평가할 필요성을 재기했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의 민족적 목표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점령을 종식하고 팔레스타인 식민화를 번복하는 것,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에서 이스라엘에 빼앗기고 남은 22퍼센트 땅에 아랍권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해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는 것, 현재 국외에서 사는 나머지 절반의 팔레스타인인을 고국으로 귀환시키는 것, 팔레스타인 땅 전역에서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주권적인 두-민족국가를 창설하는 것, 또는 이 선택지들을 일부 조합하거나 변형하는 것 등 여러 가지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에 이스라엘이 동의를 할까?

앞으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맞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주변 아랍 국가와 미국은 물론 세계 여론과 이스라엘 여론에도 호소하며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직도 이들의 전쟁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살기를 원하지만 이스라엘은 난민 문제나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환 요구를 재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긴다.

유대인들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엄청난 학살을 당하고 고통을 겪었음에도 그들이 나치에 의해 고통받은 것 이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만행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를 하면서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어서 빨리 평화적 공존의 방안이 제시되어 더 이상 고통받는 이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팔레스타인 분쟁을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여 좀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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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사탕 2022-02-0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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