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30

산하의 오역 - 아닌 건 아닌 것일 뿐이죠 -박유하 교수 무죄 파기 환송에 부쳐 비전향 장기수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 Facebook

(9) 산하의 오역 - 아닌 건 아닌 것일 뿐이죠 -박유하 교수 무죄 파기 환송에 부쳐 비전향 장기수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 Facebook

아닌 건 아닌 것일 뿐이죠 -박유하 교수 무죄 파기 환송에 부쳐

비전향 장기수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송환>에 보면 백발이 성성한 장기수들이 야유회 비슷한 걸 가설랑 한 명이 쉰 목소리로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그 장면을 찍던 카메라맨은 손이 흔들릴 정도로 무서웠다고 토로했지요. 뭐 제 나이 또래나 언저리라면 ‘김일성 장군의 노래’가 무슨 의미인지는 잘 알 테니까요. 휴전선 이남에서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함부로 부르다가는 그 목덜미에 피가 수십 줄기 솟구칠 일이니까요.
.
그 무서운(?) 장면 이후 등장한 참 선해 보이는 인상의, 논두렁에서 흔히 마주칠 것 같은 평범한 인상의 한 할아버지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는 ‘비전향 장기수’였죠. 간첩으로 넘어와 장기수가 된 뒤 무지막지한 ‘전향 공작’을 받지만 끝내 그걸 거부한 사람이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는 대충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죄를 지었다면 벌은 받겠다 이거야. 그런데 왜 내 머리 속을 바꾸려고 하냐고.” 그러면서 자기 머리를 가리키지요.
.
비전향 장기수들을 몹시 비판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경멸적으로 바라보는 처지입니다만 그 순간 저는 그들이 ‘민주주의의 표상’으로 보였습니다. 누가 무슨 생각을 하든 그 생각을 강제로 바꿀 수는 없고, 그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든 그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일진대, 그들이 김일성을 애비로 삼든 김정일을 할애비로 삼든 이를 강제로 ‘전향’시키겠다는 것은 ‘사상의 자유’를 짓밟는 것이고, 그들이 충심을 담아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부른다고 빨갱이로 몰아 처벌하는 것 역시 ‘표현의 자유’를 유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사상의 자유는 내가 용납할 수 없는 사상의 자유까지 보장하며 표현의 자유는 내가 역겨운 표현조차도 그게 허위 사실이거나 범죄적 소지가 있지 않은 경우 받아들여야 하는 영역에 존재합니다. 이건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이 기본을 무너뜨리는 것이 부당한 검열, 불합리한 규제, 그리고 반민주적 악법입니다.
.
국가보안법은 그래서 악법입니다. 남의 머리 속을 들여다보려는 만용과 그걸 바꾸겠다는 오만과 안 바꾸면 죽여 버릴 수도 있다는 야만을 겸비하고 있으니까요. 동시에 남의 머리 속을 들여다보고, 그걸 바꿔 보겠다고 나서고, 안 바꾸면 처벌하겠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국가보안법의 정신적 테두리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
동시에 서울 한복판에서 ‘천황 폐하 만세’를 부르면서 일제 강점기가 썩어빠진 조선왕조보다 백 번 나은 우리 민족에 대한 축복이었으며, 평균 수명도 길어졌고 우리 근대화를 완성시킨 은혜로운 기간이었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를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
허허 이 친구가 아침에 개구리 반찬을 먹었나 웬 헛소리를 하느냐고 나무랄 수는 있고, 그가 내세우는 근거를 하나 하나 박살내며 훈계할 수도 있고, 뭣하면 찬물 마시고 자빠져 자라고 욕설을 퍼부을 수는 있을지언정 그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 정권 때 ‘일제찬양 금지법’인지 뭔지가 제기됐을 때 코웃음을 친 이유입니다. 이유는 위에 적은 바와 같습니다.
.
서설이 너무 길었네요. <제국의 위안부>로 들어와 봅시다. 저는 그냥 그렇게 읽었습니다. 딱히 무릎을 치는 부분은 없었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지도 않았습니다.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어 이 논리는 이상한데. 에이 이건 견강부회다 싱긋 웃을 뿐이었죠.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였습니다.
.
위안부 할머니들 일반을 모욕했다거나 위안부 사실 자체를 왜곡했다거나 전시 일본 군국주의를 적극 비호했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설사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사실’로 까 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고 이 교수님아 어디서 이런 거짓부렁을 근거랍시고!” 하면 되는 거죠.
.
그런데 갑자기 이게 '법'의 문제가 됩니다. 명예훼손이 제기되고 판매금지 소송이 들어갑니다. 이를 안 순간 박유하 교수의 시덥잖은 독자는 박유하 교수의 ‘무죄’와 ‘출판의 자유’를 응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분의 주장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주장이 금지돼서는 안된다는 명제 때문입니다.
.
그 주장이 금지된다면 금지를 면할 주장은 사라집니다.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대중의 호오에 따라 특정한 주장이 합법적으로 묻히거나 ‘법에 의거하여’ 불살라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과는 전혀 어울리지만 본인은 좋아한다고 우기는 '자유'의 박탈 내지 제한입니다.
.
여기서 반드시 튀어나올 반론 하나. “나치의 만행을 옹호하는 표현의 자유도 인정되느냐.” 답은 같습니다. ‘하일 히틀러’를 외친다고 해서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엄연한 사실과 증거와 증인과 영상 앞에서 그냥 머리에 꽃 꽂은 미친 놈 만들면 되지 콩밥 아깝게 감옥에 넣을 이유가 없지요. 다만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누구를 해치려고 들면 당연히 처벌돼야죠.
.
뭐 그래도 인류의 공적 나치의 만행을 옹호하는 표현의 자유를 부정한다고 칩시다. 그런데 저 유명한 조갑제 기자 역시 이 논리를 써서 북한에 대한 일체의 옹호를 배격합니다.
.
“김일성은 외세를 끌어들인 남침 전쟁으로 300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갔다. 김정일은 개혁 개방을 거부함으로써 300만이 굶어죽도록 했다. 어제 영국의 인권단체는 나치의 유태인수용소보다도 더 악질적인 북한 강제수용소에서 약 100만 명이 죽었을 것이란 추정을 내어 놓았다.” 이러니 그의 시각으로는 이런 ‘반인도적인’ 범죄자들‘을 옹호하거나 그들로부터 자유를 지키는 보루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자는 행위는 ’나치 옹호‘처럼 보이겠지요
.
여기서 조갑제의 북한관이 맞다 틀리다를 얘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역시 박유하의 말이 맞다 틀리다를 얘기하고 싶지도 않구요. 단지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누군가의 주장을 무슨 먹기 좋은 곶감처럼 인류 최대 빌런 ’나치‘에 빗대고 입을 막아 버리기를 즐기고, 나치 옹호자 취급하는 일이 우선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
세상에 절대불변의 진실 같은 건 없습니다. 어떤 사안이든, 어떤 사건이든 사람에 따라 바라보는 눈이 다르고 해석하는 각도가 어긋나며, 주장의 근거와 내세우는 ’사실‘이 정확한가 아닌가의 문제가 있을 뿐이죠.
.
그냥 누가 어떤 주장을 하고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주장의 진위를 우선 파악하고, 논리를 파탄내면 됩니다. 그러려면 그 주장을 일단 이해해야죠. 그 후 반박하면 됩니다. 허접하면 망신을 주고 정교한 거짓이면 더 정교하게 창피를 주면 됩니다.
.
그 주장이 위험하고 불온하고 불손하다는 이유로 금지하는 것은 과거 우리가 그렇게 혐오해 마지 않았던 검열과 금지의 시대로 회귀하는 발걸음이 될 뿐입니다. 저는 모든 주장의 진위를 떠나고 의도를 차치하여 그 반동에 반대합니다. 밀턴이 그랬습니다. “독서와 생각을 규제하는 것은 천사를 가장한 악마의 행위다.”
.
동일한 맥락에서 “북한과 일본이 수교할 경우 ‘법적배상’을 받기 위한 목적이, 그토록 오래 이어진 위안부문제의 배경에 있었으며 한국이 공식적으로 받지 못했던 식민지 배상을 북한이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 위안부 문제 운동의 감추어진 목적."이었다는 박유하 교수의 악의적인 딱지에도 단호히 반대합니다.
.
친일 프레임에 고통받았다는 이가 상대에게 종북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는 행태를 미러링이라 해야 할지 늦게 배운 도둑질이라 해야 할지 알 수는 없으나 그저 이것도 지극히 싫고 짜증납니다. 아닌 건 아닐 뿐입니다.
.
맹렬하게 논쟁하고 핏대 세우며 갑론을박하면 좋겠습니다. 사실을 사실로써 반박하고 근거를 들어 근거를 치고, 논리를 세워 다른 논리를 꺾는 것은 어떻게 하든 관계없습니다. 법으로, 딱지로, 폭력으로, 위협으로 상대방의 입을 틀어막는 세상은 지겨운지 오래니까요.
May be an image of 1 person and text
All reactions:
21
2 comments
5 shares
Like
Comment
Share

2 comments

Most relevant

  • Keun Reu 
    Follow
    마약도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사용자 처벌 불갑니다. 자기를 파괴할 권리를 법으로 단죄한다는 것 어불성설이지요.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