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7

손민석 - 박유하 교수 “‘제국의 위안부’ 소송, 할머니 아니라 주변인들 일으킨 소송”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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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어놓고 말해보자면] 학자에게는 비판자들의 주장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의무가 있다 - 박유하에 관하여
박유하 선생이 무죄를 받았다고 한다. 당연한 결과이고 만족하셨기를 바란다. 나는 그녀의 주장이 할만한 주장이었다 생각한다. 오히려 너무 평범하기 때문에 문제였고 그녀의 주장이 지닌 특질이 있다면 위안부의 문제를 일본제국과 미제국주의 사이, 다시 말해서 "두 제국 사이"에 놓인 모순관계로 보았다는데 있다고 보았다. <제국의 위안부>의 아래의 인용문에 담긴 그녀의 뜻이 지속되기를 바라며 내면의 평안을 찾으셨기를 바란다. 이제 무슨 한국의 한나 아렌트니 뭐니 하는 주변의 날파리들과 결별하시길 바라겠고 본인도 스스로를 성녀화하는 유아스러운 발상에서 벗어나셔 정상인이 되시길 바란다. 그녀에 대해 과거에 적은 글을 옮기는 것으로 갈무리 하고자 한다.
“불화는 보수를 우경화시키고, 냉전적 사고는 기지를 존속시킨다. ‘위안부’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기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도 일본과의 화해는 필요하다. 진정한 ‘아시아의 연대’는 그렇게 일본의 제국주의에 앞서 시작된 서양의 제국주의와 그들이 남긴 냉전적 사고를 넘어설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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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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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1

박유하 교수 “‘제국의 위안부’ 소송, 할머니 아니라 주변인들 일으킨 소송”

"(박유하 교수는) “대한민국과 일본의 관계는 전쟁범죄가 성립될 수 있는 교전국이 아니라 엄연히 종주국-식민지 관계였다”고 했다. 북한의 “독립투쟁을 바탕으로 국가를 만들었다는 자기인식”을 한국이 이어받은 것이라고 했다."
"‘강제연행’ 문제를 두고는 “강제연행을 부정하지 않았다. ‘공적으로는’ 강제연행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을 뿐”이라고 했다. 일본인 진보학자 도노무라 마사루 도쿄대 교수의 논문을 예로 들며 “‘일본 군부에 의한 직접, 그리고 계획적인’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말한다. 학계에서도 더이상 강제연행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https://www.khan.co.kr/.../sch.../article/202208311146011...
지금은 차단했지만 나름 박유하 선생으로부터 후의(厚意)를 받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건 이영훈 선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박유하 선생의 경우에는 정말로 그렇게 하실 의도가 있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일본 유학을 주선해주겠다 선뜻 말씀해주시기도 하셨고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나의 이해를 두고 상찬하며 다른 이들도 그렇게만 이해한다면 바랄 게 없겠다고 한 게 기억에 남는다. 본인이 주관한 세미나에 고작 학부생 나부랭이였던 나를 불러 발표자리를 마련해주셨으며, 사적으로 따로 만나 식사까지 대접해주시는 과분한 호의를 베풀어주셨다. 소송까지 당한 분이 나만을 따로 만나 사적으로 부탁을 하시며 식사 대접을 해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가끔 되새겨본다. 그래서 나름의 애정이랄까, 연민이랄까 이런 게 있는데 나는 이분이야말로 "주변인"들이 문제라고 본다. 주변의 이상한 인간들이 사람을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어떻게 북한의 자기인식을 한국이 이어받았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지, 이건 정치꾼의 언어다.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은 북조선의 인식을 계승한 사람들이라는건데 본인부터가 상대를 정치적으로 비난하면서 상대가 본인의 주장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사적으로 뵈었을 때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나같은 좌파도 선생님의 '제국의 위안부'를 '국민국가 비판론'의 차원에서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느냐, 굳이 그런 식의 편견으로 쉽게 보수우파 쪽으로 넘어가 비판자들의 편견을 사실로 입증해줄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몇년 뒤에 극장에서 만난 그녀는 일반 관중들, 예를 들어 박유하나 위안부에 대해 잘 모르는 내 애인마저 분노하게 할 정도로 처참한 몰골을 보이고 있었다. 저 노老문학도를 일반 관객들이 야유하는 모습은 나로서는 실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그랬지만 관객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일본인 감독에게 자신의 책을 읽어보았는가, 내 책이 일본에서 얼마나 호평을 받는지 알고 있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는 모습에 그녀를 최대한 옹호하던 나조차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던 그 참담한 시간이 계속 생각난다.
어느 순간 이분은 본인이 부당하게 비난받고 있으며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위에 발췌한 부분에도 그런 인식이 여실히 드러난다. 예전에 데이트 폭력으로 폭로를 당한 몇몇 진보논객들이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을 때도 나름의 호의를 발휘해 조언했던 것이지만, 진보진영에 속하는 이들이 나를 비난한다고 해서 여태까지 지지해왔던 진보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부정이다.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이를 남들이 부정하지 못할 이유가 대체 뭔가? 이미 스스로 망했거늘 누가 망칠 수 있단 말인가? 제발 스스로를 지켜라. 정치적 비난을 받았다고 입장을 휙휙 바꾼다면 오히려 부당한 비난이 정당한 것이었다 인정하는 꼴이 된다. 적을 상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내 스스로가 당당해질 수 있다. 정당성과 정당성이 부딪히는 싸움이 될 때 논의가 되고 그러는 것이다. 아니, 자신의 학술적 업적으로 사람들 개개인의 생각을 바꾸겠다는 사람이,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이 세간의 반발에 직면했다고 가치를 바꾸고 그러면 이걸 어디다 써먹나?
게다가 박유하는 이미 많은 역사학도들이 비판했듯이 방법론의 차원에서나 이론적인 문제로나 여러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위에 인용한 강제연행의 문제에 대한 언급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하나는 "전쟁범죄" 적용에 대한 여러 논의들, 배경을 생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강제연행에 대한 개념적 규정의 문제이다. 먼저 후자부터 다뤄보자. 두 번째 인용문을 보면 박유하는 비논리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적어도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강제연행을 부정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강제연행을 학계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배경지식이 있거나 비논리적인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박유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기존의 위안부 담론이 상정하고 있던 폭력적인 형태의 강제연행, 말 그대로 군인과 관헌들이 폭력적으로 개입해 납치하듯이 연행하는 방식의 '강제동원'은 현재의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증명될 길이 없다.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병직의 경우에도 "협의의 강제동원"과 "광의의 강제동원"으로 나누어서 논의를 한다. 앞서 말한 강제동원은 '협의의 강제동원'에 속하는 것으로 이것은 부정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의 개입이 없었는가? 안병직 교수의 <위안부 관리인의 일기 해제>에 따르면 그렇지가 않다. 사료적 가치를 지닌 일기에 "제4차 위안단"이라는 표현이 나오기 때문이다. '제4차'라는 표현은 제1차, 제2차, 그리고 제3차를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서 순차적으로 위안부를 조직해 동원했다면 그것은 단순한 "관여"의 수준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전시동원의 한 유형으로 위안부 동원을 파악할 수밖에 없게 한다. 즉, 일본제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위안부를 조직하고 동원하였던 것이다. 일본 군부와 조선군사령부가 긴밀하게 협력하여 식민지 조선에서 차례차례 위안단을 조직해 동원했을 것이라는 추측 또한 성립하게 된다.
물론 문제는 어느정도까지 일본군이 개입했는가? "광의의 강제동원"이라고 할 때 '자발적'으로 "응모"하여 위안부가 된 이들도 있는데(<일기>를 참고하시라) 이런 이들의 존재도 "강제동원"의 틀에 포섭될 수 있는가? 예를 들어서 버마나 이런 곳에는 기존의 매춘시설을 위안소로 바꾼 경우가 있는데 이 "기존의 매춘시설"에 속해 있던 '위안부'는 위안부가 아닌가? 이들은 배제되어야 하는가? 위안부를 제국"의" 위안부로 보는 박유하의 시각에서는 제국 - 젠더 - 계급 등이 '교차'하는 위안부를 국가적 동원으로 환원하여 파악하는 이런 식의 이해가 부족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강제동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생기는 이미지의 효과가 '협의의 강제동원'과 '광의의 강제동원' 간의 차이를 사상해버릴 위험을 낳기 때문에 박유하는 강제동원이라는 틀을 벗어던지고 "제국 - 식민지"라는 틀로 위안부를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녀는 가장 급진적으로 나아가서 (조선인을 포함한) 위안부가 정말 자발적으로, 제국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국민적" 열정과 충성으로 제국에 협력했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이 위안부를 무시해야 하는가? 이 위안부도 엄밀하게 말하자면 일본 제국의, 국민국가의 내셔널리즘에 희생된 존재가 아닌가? 이런 이들도 일본으로부터 사죄를 받을 자격이 있지 않은가?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더 문제는 이런 논의들이 정말로 합법적으로 행해진 국민동원과 다소 느슨한 위안부 동원 간의 차이를 사장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위안부들 개개인이 증언하였던 동원과정에서의 그 무수히 많은 폭력, 불법성을 논할 수가 없다. 국민국가 체제는 가부장제와 뗄 수가 없을 정도로 강하게 결속해 있는 것이기에 '국민국가'인 일본제국은 위안부를 비롯한 성매매 종사자들, 여성들을 보호하지 않았다. 조선인 업자들의 '범죄'는 바로 그러한 '느슨한' 동원의 영역을 활용했기에 가능했다. 박유하가 주관한 세미나에서 나는 이것을 "일상화된 하청폭력"이라 명명하는 글을 발제한 적이 있다. 내 경우에는 박유하와 달리 위안부 업자들을 비판하기보다 일본제국의 책임성을 보다 강하게 따져묻는 것에 초점을 맞췄는데 그렇다보니 충분히 서로 결합할만한 논의인데도 딱히 상호작용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박유하는 분명 일본제국이라는 국민국가를 엄격하게 비판하면서도 묘하게 그 책임성의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의 직시가 한국 내셔널리즘을 자극한다는 우려 때문이라 생각한다. 박유하의 문학 연구 자체가 내셔널리즘에 대한 경계와 해체, 그리고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학을 전공한 섬세한 감각으로 '예민한 시대'를 살아온 그녀가 내셔널리즘의 폭력성에 반발하는 건 납득할만한 일이다. 개인적으로 이정도의 논의는 우리가 "너그럽게" '학자의 논의'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한국사 전공자들은 현존하는 거의 모든 위안부를 "제국의 위안부"라는 틀 속에서 독해하려 했던 박유하의 급진적인 국민국가 비판론을 역사왜곡으로 받아들인다. 당연하게도 일본인 위안부와 조선인 위안부, 그리고 중국인 위안부를 비롯한 중국 - 동남아 등지에서 현지 "조달"된 위안부들 간에 존재하는 위계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인 위안부의 심정을 묘사한 소설이라든지 이런저런 기록들로 미루어 조선인 위안부도 "일본제국의 국민/신민"이었기에 비슷한 감정상태, 신념체계 등을 지녔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것을 역사학 전공자들은 실증적 근거가 없는 망상이라며 조소하고 비판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지만 전체 패러다임 자체가 얼마나 다양한 유형, 현대 사회과학의 기본인 대수의 법칙에 따라 얼마만큼 설득력이 있는지 여부를 보아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라는 패러다임은 협의/광의의 강제동원이라는 기존의 개념틀에 비해 많은 지점을 포괄하는 게 있다. 협의/광의 나눈 것 자체가 이미 개념의 설명력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적인 독해와 대화가 필요한 지점인데 정치적인 비난을 주고받아버렸다.
개인적으로 박유하는 이제 자신은 강제연행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본다. 이영훈은 그렇게 했다. 강제연행은 없었으며 자신은 위안부를 일종의 성노동자로 본다고 <반일종족주의>를 통해 선언해버렸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적으로 정직하려 노력했다는 그의 발언의 진정성을 믿어줄 정도는 된다. 박유하는 언어가 정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인들의 지적 혼란을 가중시키면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판을 자신에 대한 정치적 음모로 치환해 피해자 의식을 강화하는데 사용한다.
더 문제는 학술적으로도 조잡해져버렸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인용문에서 드러나듯이 북조선과의 인식의 공유를 지적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종주국 - 식민지 관계에서는 전쟁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것은 기존의 법학계를 중심으로 이뤄져온 논의, 국제법에 "식민지 여성"의 자리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국제법을 통해 식민지배와 식민지에서의 '전쟁범죄'를 증명해낼 수 있는가? 이런 실천적인 질문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8년의 '맥두걸 보고서'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무력충돌 중의 체계적인 강간, 성노예제와 다름 없는 관행"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기존의 국제법적 질서가 남성 중심의 관습적 행태를 용인하고 심지어 조장한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면서 위안소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어떻게 입증하고 소추할 수 있는지를 주장하는 것이다.
국민국가 - 가부장제 간의 결속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며 '제국의 위안부'라는 틀을 제시한 박유하와 마찬가지로 국제법의 남성중심성을 비판하고 페미니즘적 실천행위의 일환으로 식민지에서의 '전쟁범죄'를 다루려는 법학, 페미니즘 등의 여러 교차적인 학제간 연구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이런 흐름들과 자신의 논의를 어떤 식으로 결합시킬 것인지에 대한 사유나 고민은 보이지 않고 피해자성만 강조하고 있다. 위안부의 성노예성의 입증, 일본 국가의 법적 책임 입증 등은 단순히 민족주의적인 욕망에서만 비롯된 게 아니라 이런저런 활동가들, 학제적 협력 등의 여러 층위들이 얽혀 있는 상황에서 국가 대 국가의 내셔널리즘의 충돌이라는 복잡한 상황까지 개입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실천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자꾸 정치적인 접근을 해서는 안되고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꾸준히 지켜야 한다, 중립적인 위치를 점하려고 해야 한다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박유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내 말을 안 듣고 비난하기만 한다. 세상이 원래 그런거다. 내가 왜 당신 말을 섬세하게 해석해줘야 하는가? 뭐 대단한 학술적 업적이라고. 나는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과장됐다고 본다. 흔해빠진 국민국가 비판 담론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휩쓸고 간 이 남한 사회에서 저정도 주장을 못 받아들이겠다고 난리치는 것이야말로 희극 중의 희극이다. 당신네들의 이론적 기반이 내 논리요! 이렇게 말해도 모자랄 판국에..
나름의 호의로 길게 설명했지만 이 복잡한 문제에 발언권을 행사하겠다고 하면서 고작 정치적 비난, 민형사 재판 좀 받았다고 세상이 이래서.. 이러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이 고난이 오는 걸 두려워 하면 뭐 어쩌겠다는건가. "고소고발을 했어? 오히려 더 좋아. 내가 역사적인 인물이 될 기회를 주는구나. 감사하다. 고맙다 최고민수.. 아니, 고맙다 윤미향." 이런 태도를 지녀야지. 왜들 이렇게.. 어디다 써먹을 데가 없다 인간들이. 그리고 제발 좀 메타인식을 해야 한다. 이제 박유하는 일본인 리버럴 지식인들이 한국은 역시나 반일국가, 민족주의 국가 운운하는 '재료'로 사용되며 한일관계 악화에 기여하고만 있다. 이런 메타인식이 돼야 한다. 그래야 내 주장, 내가 내세우는 가치 이런 게 보편화되고 실현되는 것이지.. 언제까지 이런 피해자성 주장하며 살건지.. 주변인들이 피해 경험에 침잠해 자기연민하는 걸 말려야 하는데 되려 성녀로 만들면서.. 그 나이 먹고 그러고 싶나 싶지만 저 나이 먹었는데 어떻게 고치겠나. 박유하는 계속 저렇게 살 것이고, 잊혀질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솔직한 내 심정이다. 내면의 평화를 찾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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