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8

알라딘:표해록, 조선 선비 중국을 표류하다 - 기행문 | 최부 (지은이) 2006

알라딘: 표해록, 조선 선비 중국을 표류하다


표해록, 조선 선비 중국을 표류하다 - 기행문  | 겨레고전문학선집 14
최부 (지은이),김찬순 (옮긴이)보리200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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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양장본
344쪽
152*223mm (A5신)
619g
ISBN : 9788984282476

주제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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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최부는 멀리 제주도에서 임금의 명을 받들어 공무를 보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급히 고향 나주로 오다가 풍랑을 만나 바다를 표류하게 되는데, 닿은 곳이 중국 외딴 섬. 그곳에서 해적에게 가진 것을 몽땅 뺏기고 돛까지 꺾인 채 바다 한가운데 버려진다. 다시 끝없는 바다를 표류하다 천신만고 끝에 중국 절강성에 닿자 이번에는 왜구로 오인 받는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함께 3대 중국 여행기로 꼽힌다. 표류한 전말과, 역경을 헤치고 귀국하기까지 행로를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하게 기록했다.


목차


겨레고전문학선집을 펴내며

끝없는 바다에 표류하다

제주도에 부임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를 떠나 고향 집으로
끝없는 바다에 표류하다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소서."
무시무시한 고래
배에 몸을 든든히 묶고
방향을 잃지 말라, 키를 바로 잡아라
창해 만 리에 갈매기 떼
비야말로 생명수다
파선의 찰나

천신만고 끝에 중국 땅에 닿다

섬에서 해적을 만나다
또다시 표류하다
만신창이가 된 배
인가가 어데쯤인가
왜적으로 의심받다
도저소에서 천호의 신문을 받다
"북경으로 보내 귀국토록 할 것이오."
진술서를 고쳐 쓰다

양자강과 회하를 지나

건도소에서 간곡한 대접을 받다
가마에서 내려 물길로 접어들다
소흥부에서 다시 진술하다
소흥부를 떠나 항주로
항주에 머물다
"벗이 주는 것이니 사양치 마오."
제일가는 향락지 소주
양자강을 지나
회하의 갑문을 통과하다
"여간한 물은 두렵지 않소."
조롱 속 앵무새
"수차 제작법을 가르쳐 주시구려!"

황성으로 들라는 부르심을 받고

북경에 닿아 회동관에 들다
조선 사신 소식을 듣다
"그들을 안전하게 호위하라."
옥하관에 머문 지 보름
"상복을 벗고 황제를 배알하시오."
병이 나서 꼼짝 못하다
북경의 이모저모

반가울손, 압록강!

드디어 길을 나서다
어양에서 우리 사신을 뵙다
중국 사신을 만나다
난하를 지나 산해관을 통과하고
광녕에서 우리 사신과 주찬을 나누다
나라의 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동벌을 지나
반가울손, 압록강!

내가 본 중국 땅 중국 사람

지나온 노정
지나온 길의 천연 지세
물길 이용 제도
살림살이와 옷차림새
인정과 풍속


최부 연보
<표해록>에 대하여 -문예출판사 편집부
표해록 원문
접기


책속에서


“바다를 본 사람은 여간한 물은 물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요. 이미 몇 만 리인지 모르는 망망한 바다 모진 파도에서 험악한 시련을 다 겪은지라 이 내륙 지방의 강 따위는 두렵지 않습니다.” - 본문 중에서



저자 및 역자소개
최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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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4년에 태어나서 갑자사화에 휘말려 1504년에 죽임을 당했다. 본관은 강진이고, 자는 연연이며, 호는 금남이다. 아버지는 진사 최택이다. 1487년에 제주 등 3읍의 추쇄 경차관에 임명되어 제주로 건너갔다. 이듬해 정월에 거기에서 부친상 기별을 받고 고향으로 급히 가는 도중에, 풍랑을 만나 중국에 표류했다가 6월에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그가 귀국하자 성종은 8000리 길을 거쳐 지나온 중국 땅에서의 견문을 적어 바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남대문 밖에서 8일간 머무르면서 견문을 기술해 ≪표해록≫ 3권을 완성했다. 1497년 연산군의 잘못을 극간하고 책임을 망각한 공경 대신들을 통렬히 비판했기 때문에, 1498년 7월 무오사화 때 화를 입어 함경도 단천으로 유배되었다. 여기서 6년 유배 생활을 하다가, 1504년 10월 갑자사화 때 참형을 당했다. 선생은 의연하여 형을 받을 때에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향년 51세였다. 1506년 중종반정이 성공하자, 임금은 통정대부 승정원 도승지 벼슬을 추증해 주었다. 접기

최근작 : <[큰글씨책] 최부 표해록>,<최부 표해록>,<왕오천축국전> … 총 15종 (모두보기)

김찬순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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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국문학자로, '조선고전문학선집' 가운데 <표해록> <간양록> <해유록>을 비롯한 기행문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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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월간 개똥이네 놀이터 2023.11>,<뗏목>,<월간 개똥이네 놀이터 2023.10>등 총 669종
대표분야 : 교육학 13위 (브랜드 지수 105,409점), 청소년 인문/사회 26위 (브랜드 지수 33,67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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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것을 너무 홀대하는 것은 아닌지

중국의 한 교수는 ‘과거 중국인들은 마르코폴로의 이탈리아 여행기만 알고 있었지 조선에 최부란 기막힌 여행기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표해록은 중국에 대한 이웃나라의 가장 친절한 묘사라 할 수 있다.’라는 말로 그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500여년 전 성종18년 전라도 나주 출신의 최부는 제주도로 부역이나 병역을 기피한 자들을 잡기 위한 임무를 띠고 파견된다. 그런데 바로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일행 42명과 함께 나주로 향한다. 폭풍이 있을 것이라며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출항을 강행한다. 결국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고 13일간의 표류 끝에 그들이 도착한 곳은 중국대륙 강남지방의 영파부였다. 여기서 해적을 만나 물건을 모두 빼앗기고 바다로 다시 탈출한다. 다시 3일간의 표류끝에 다시 육지에 도착한다.

최부 일행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표착한 곳은 강남 절강성 태주부 삼문현으로 추정되는데 도착하자마자 관가로 끌려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조선의 관리이며 이에 대한 심문을 받는 데 조선과 중국간의 거리, 조선의 역사와 도읍에 관한 질문에 막힘이 없이 대답하자 그들의 일행의 말을 믿게 된다. 오해가 풀린 후 조선에서 온 손님으로 격상되어 보호를 받으며 중국 황제가 있는 북경으로 향하게 된다.

풍부한 독서력으로 무장한 최부, 그의 지식과 당당함으로 천자가 있는 북경으로 향하면서 소흥, 향주, 소주 등 중국의 강남지방과 회안, 제령, 천진을 거쳐 황제를 알현하게 된다.

그 후 산해관을 거쳐 만 5개월만에 조선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중국에서 돌아온지 8일만에 초선판 동방견문록이라 할 수 있는 5만 자 분량의 표해록을 완성한다. 그가 동국통감이나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는데 참여했던 것이 해박한 역사의식과 조선의 상황을 잘 알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때의 경험이 자신의 힘든 여정속에서도 빛을 발휘한 것이라 하겠다.

표해록은 15세기 중국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불가결한 1차 사료로 활용이 되고 있다니 우리가 너무 홀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복식에 관한 내용, 강남과 강북의 도시 차이점, 관리에 대한 인물평, 해안의 방어체계 까지 방대한 자료가 남아 있다.



- 접기
여__왕 2006-12-15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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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 최부, 표류하다



이 책은 성종 18년(1487) 최부(崔溥, 1454~1504)가 제주 세 읍의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1)으로 임명되어 제주로 파견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성종 19년(1488), 최부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이야기는 급진전된다. 이 소식에 최부는 수행원 42명과 함께 배를 타고 서둘러 고향인 전라도 나주로 향했다. 하지만 오늘날과 달리 그 당시에는 제주도를 오가는 것이 목숨을 걸 각오까지 해야 할 정도로 험난한 일이었다. 문제는 날씨를 가늠하기 어려워 출항여부를 놓고 다투다가 진무(鎭撫) 안의(安義)가 동풍(東風)이 좋으니 떠나자고 권하자, 부친상을 빨리 치르고자 하는 최부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러니 조금만 상황이 안 좋아지면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 밖에. 그래서일까? 최부의 나주행은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바람이 약해지면서 비가 쏟아졌다. 추자도의 배 대는 자리가 가까워졌을 때 썰물은 몹시 급하고 하늘은 매우 캄캄하였다. 군인들을 지휘하여 노를 젓게 하였으나,

“이런 날에 배를 떠나게 한 것이 누구 잘못인데…….”

하고 모두 중얼거리며 반발심을 품고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이 제멋대로 노질하여 뒤로 밀려나 초란도(草蘭島)에 이르러 서편 언덕 아래에 닻을 내리고 배를 대었다. [p. 20]



이 무렵 닻이 부서져서, 이를 확인하고 급히 노를 저었으나 북풍에 휩쓸려 바다 가운데로 불려 나갔다. 본격적인 표류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다가 간신히 닿은 절강(浙江) 영파부(寧波府) 하산(下山)에서 해적을 만나 약탈을 당하고, 다시 큰 바다에 버려져 표류하다가 태주부(台州府) 임해현(臨海縣)에 닿았다. 하지만 최부 일행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상륙 후 그 곳을 담당하는 사자채(獅子寨)의 관원이 그들을 왜구(倭寇)로 몰아 머리를 바치고 공훈을 세우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부 일행이 배를 버리고 마을로 진입하는 바람에 그 흉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왜구라는 의혹은 풀지 못해, 임해(臨海) 도저소(桃渚所), 소흥부(紹興府), 항주부(杭州府)에서 각각 조사를 받았다. 가까스로 왜구가 아닌 표류한 조선의 관리임이 확인된 후에야 대운하를 따라 북경으로 향했다. 북경에서 명(明)나라 홍치제(弘治帝)를 알현한다.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답게 최부는 황제에 알현하는 과정에서 상복을 벗고 관복을 입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나



나는 차마 길복을 입을 수가 없었다. 이상은 직접 내 굴건을 벗기고 사모를 씌우더니

“나라에 일이 있게 되면 기복(起服)2)하는 제도도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지금 이 문에서 길복을 입고 들어가서 사은의 예를 마치고는 다시 문밖으로 나와서 도로 상복을 입을 테니 그저 잠시 동안일 뿐입니다. 하나만을 고집해서 예절을 잃어서는 안 되지요.” [pp. 212~213]



결국 잠시나마 상복을 벗고 알현을 했다. 그 후 귀국 길에 올라 요동과 압록강을 거쳐 귀국했다. 귀국했다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하루속히 부친상을 치르고자 했던 최부에게 성종은 중국에서 있었던 일을 우선 기록으로 남기라 명한다. 이에 최부는 단 8일만에 중국에서 겪었던 거의 모든 일들을 꼼꼼히 기록해 바친다. 그것이 바로 이 책 <표해록>이다. 이 책은 일기를 적듯 하루 하루 최부가 겪은 내용을 엮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들어,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 위한 중국 관원과의 문답과정에서 조선의 제도, 조선과 명의 문화적 차이 등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마지막 부분에 대운하를 따라 이동하면서 본 중국 각지의 기후, 도로, 방죽과 갑문 등 물길 이용 제도, 살림살이와 옷 차림새, 인정과 풍속 등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의 강남과 강북의 문화적 차이도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면,



강도질을 하는 자들은 재물에 눈이 어두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물론 사람 죽이기를 거리낌 없이 한다. 그러나 여기 강남 사람은 비록 사사로운 이익에 사로잡혀 강도질은 할지언정 그렇게 마구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하산의 도적들도 우리를 죽이지는 않았고 먹을 것도 주었으며 선암리 사람들은 자기들이 빼앗은 것을 숨기지 않고 말안장을 도로 내놓지 않았는가. [p. 95]



부영은 “중국의 인심을 논한다면 북방 사람은 모질고 남방 사람은 유순합니다. 영파의 도적은 강남 사람이므로 아무리 도적이 되었다 해도 물건만 빼앗을 뿐 사람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들도 목숨을 보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북방 사람은 약탈하고는 반드시 사람을 죽여 구렁텅이에 던지기도 하고 강이나 바다에 띄우기도 하니 오늘 강에 떠 있는 시체를 보고도 알 말하지 않은가요?” 하였다. [pp. 178~179]



처럼.



또한 생사가 걸려있기에 섣불리 조선으로의 이주를 시도하지 못하는 해외유민의 모습도 묘사된다.



계면(戒勉)이라는 중은 우리 나라 말을 잘하였다. 그가 나더러,

“저는 중인데 본래 조선 사람입니다. 역시 중이었던 저희 할아버지가 여기로 들어왔으며 지금 이미 삼대째입니다.

이 지방은 옛날 고구려 땅이었으나 지금은 중국 땅이 된 지 천 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고구려의 풍속이 아직도 남아 있어 고려사를 세워 제사를 정성껏 지내며 전통을 잊지 않습니다. 새가 날면 고향으로 가고 토끼가 죽으면 굴 쪽으로 머리를 둔다지요! 언제나 본국이 그리워 돌아가 살고 싶지만, 본국에서 나를 도리어 중국 사람이라 하여 중국으로 돌려보낸다면 분명히 다른 나라로 탈출한 죄를 받아 몸과 머리가 따로 구르게 되겠으니 마음은 가고 싶어도 발이 주저합니다.” [p. 251]



이렇게 일기체로 구체적인 내용을 적었기에 <표해록>은 명나라 초기의 중국 실정을 확인하는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래서일까? 일본에서는 1769년 유학자 세이타 겐소[淸田??, 1719~1785]에 의해 <당토행정기(唐土行程記)>란 이름으로, 미국에서도 1965년 컬럼비아 대학의 존 메스킬(John Meskill, 1925~ )이 <최부의 일기 표해록(Diary: a record of drifting across the sea by Pu Ch’oe)>라는 이름으로 각각 번역본이 나왔다.

심지어 우리에게는 여전히 낯선 이 책을,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의 <동방견문록>과 일본 승려 엔닌[圓仁, 794~864]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와 함께 3대 중국 여행기로 꼽는다고 하니 우리 스스로 우리의 것에 무관심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처럼 우리가 우리 옛 문헌에 수록된 우리 역사를, 옛 유물에 서린 우리 역사를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최부는 상복 일화에서 드러나듯이 꼬장꼬장한 면도 있지만, 관찰력도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소흥부에서 수차(水車)를 돌리던 것을 보고 부영(傅榮)에게 수차 제작법을 알려달라고 했고, 결국 그에게 배운 수차의 형태와 운용법을 가지고, 조선에 돌아와 수차를 제작, 호서지방의 가뭄 해소에 기여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서 행동함에 거침이 없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던 15세기 조선선비의 진취적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그가 지나온 길을 지도로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출판사에서 조금만 배려를 해주어 지도를 첨부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1) 경차관(敬差官)은 왕명을 받아 지방에 파견되어, 지방 행정을 감찰하는 관직이고, 추쇄(推刷)는 제 고장에서 도망하여 숨어든 자를 송환하는 일을 말한다. 따라서 추쇄경차관은 제주도로 도망간 노비나 범법자들을 송환하기 위해 파견된 감찰관인 셈이다.


2) 상중에는 벼슬을 하지 않는 법이지만 나라에 일이 있을 때, 불러 상복을 벗고 출사하는 것을 말한다.



- 접기
KOEMMA 2022-12-09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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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감흥은 빠지고 위용과 열정을 채운 젊은 정치인의 표류기]



일전에 조선 선비 일본 기행문을 하도 재미나게 읽어
같은 출판사, 같은 시리즈, 같은 옮긴이의 책을 꺼내 읽었다.

일전이 기행문이라면 이것은 엄연히 표류기이다.
한유롭게 경치를 감상하기보다는 "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하며
불안에 떨며 휘둘러보는 처지다.

또한 '문인'의 감흥이 아니라 행정공무원, 중견정치인이
풍파 속에서도 위엄을 잃지 않고 패닉에 빠진 일행들을 카리스마 있게 대하고
표류지인 당시의 대국, 중국에서도 당당하고 용기있게 행동하는 것이
이 글의 감상포인트라면 포인트랄까 문장 자체의 수려함은 없다.

나는 이런 차이가 생긴 또 하나의 큰 이유를 연륜이라 생각하는데
일전의 글쓴이는 표해록의 최부보다 나이가 곱절이나 많은 노인으로써
오색찬란한 일본 상차림을 보고서도 놀랄 것이 없는 양반이었다.

대신 생에 대한 성철과 끈끈하게 잘 조려진 충정이
그저 검박한 붓끝으로 솟아나온데 반해
서른 다섯의 최부에게는 아직 끓고 있는 충정과 야망,
그리고 파도같은 희노애락의 높고 낮음으로 인해
그전에 느꼈던 흐뭇한 감동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박애와 용서, 통찰과 평정으로 가득찬 글쓴이가 되기에는
결국 세월이란 성실한 관문을 거쳐야 하는 것인가.

(2008.03.12)
- 접기
aranie 2008-03-1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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