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8

알라딘: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 - 해유록 | 신유한 (지은이) 2011

알라딘: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 - 해유록  |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5
신유한 (지은이),이효원 (옮긴이)돌베개2011
-11-14


































미리보기

정가
8,500원

Sales Point : 467

9.2 100자평(3)리뷰(3)

236쪽
책소개
돌베개 우리고전100선 시리즈의 15번째 책. 조선 통신사행의 견문과 경험을 그려낸 신유한의 <해유록>은 문학성과 기록성을 고루 갖춘 사행록의 걸작이다. 이 방대한 글의 정수만을 모아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으로 엮었다. 1719년 일본에 다녀온 통신사행의 여정을 따라가며 글을 읽되, 때로는 흩어져 있는 내용들을 주제별로 밀도 있게 엮어 <해유록>의 진면목을 담았다.

신유한은 조선 숙종 시절에 태어나 당대에 문장으로 이름이 났던 시인이자 문인이었다. 통신사의 일행으로서 그가 맡았던 임무는 제술관(製述官)이다. 제술관은 시문(詩文)으로써 일본인들에게 조선의 학문과 문화의 첨단을 선보여야 하는 직책이었다. 그러므로 역대로 제술관의 직책은 당대의 문장가 중에서 선발했다. 신유한의 문장가로서의 역량을 반영이라도 한 듯이, ‘기록물’에 가까운 기존의 사행록에 비해 신유한의 <해유록>은 일본에서의 견문을 생동감 있게 그려 낸 한 편의 ‘문학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일본에 관한 풍부한 인문지리적 정보를 담고 있으며 다루는 소재 또한 풍부해서, 박지원·이덕무·정약용·이규경 등이 일본을 알기 위해 이 책을 필독서로 참고하였고, 근대의 대표적인 국문학자인 김태준은 <해유록>을 <열하일기>와 쌍벽을 이루는 기록문학이라 손꼽기도 했다.


목차


해가 뜨는 곳, 일본
신선이 사는 섬 아이노시마
지노시마의 어느 노부부의 초가집
일본의 목구멍 아카마가세키
후쿠젠지의 절경
아름다운 항구도시 우시마도
효오고의 바닷가에서
포로 마을 진주도
비와 호를 지나며
백옥 같은 후지 산

가깝고도 먼 나라
오오사카 기생을 노래한 시
남창을 노래한 시
에도에서 구경한 희극
일본의 음식 문화
밀감 향기로 지은 시
일본인의 기호품 차와 담배
반드시 무릎을 꿇고 앉는 이유
정교하고 청결한 집
아기자기한 생활용품

나니와 강의 황금 배
나니와 강의 황금 배
무지개다리 사이로
천하 으뜸의 도시 오오사카
오오사카에서 출간된 조선 서적들
교오토의 밤거리를 거닐며
폭포가 웅장한 호오타이지의 정원
바닷가에 우뚝 솟은 에도 성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상인

국서를 받들고
한갓 고을 태수에게 절을 하라니
국서를 받들고
관백의 회답서
한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절 다이부쓰지
통역관의 인삼 밀무역

무력을 숭상하는 나라
허수아비 천황
천혜의 군사도시 에도
『산해경』에 그려진 일본
서복이 일본으로 간 까닭
강산의 기운이 사람을 낳으니
일본의 관직 제도
무력을 숭상하는 나라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일본인

꿈같은 만남과 이별
측간 귀신이 사람을 미혹하는 듯한 글
영특한 아이에게 지어 준 자와 호
용맹하고 검소한 요시무네 장군
관변 학자 하야시 가문
일본의 유학자들
한문을 모르는 에도의 벼슬아치
꿈같은 만남과 이별
고결한 처사 도리야마 시켄
대나무를 사랑하는 승려
이별의 선물
아메노모리 호오슈우의 눈물

해설
신유한 연보
찾아보기

접기


추천글
실학적 사고의 단초가 된 통신사행록
- 이효원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조선일보
- 조선일보 Books 북Zine 2011년 11월 18일자 '한줄 읽기'



저자 및 역자소개
신유한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1681~1752. 자는 주백(周伯), 호는 청천(靑泉). 조선 후기의 문장가이자 시인. 1719년 통신사행의 일원으로 일본에 가서 시와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일본을 다녀와서 쓴 『해유록』(海游錄)은 사행록 가운데 백미라 일컬어졌으며, 일본에 관심을 가진 조선 문인들에게 필독서가 되었다. 빼어난 문학적 재주를 지니고 있었으나 서얼이라는 신분적인 한계 때문에 미관말직을 전전하였다. 저서에 『청천집』(靑泉集)이 있다.


최근작 : <송운대사분충서난록>,<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조선 선비의 일본견문록> … 총 5종 (모두보기)

이효원 (옮긴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서울대학교에서 통신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현재 토오쿄오 대학 인문사회계연구과 특임준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 해유록>(편역), <쓰시마 일기>(津島日記)(공역)를 번역하였고, 「일본유학자의 조선연구: 이토 토가이(伊藤東涯)의 <삼한기략>(三韓紀略)에 대하여」, 「통신사와 소라이학파의 교류 양상과 그 의미」, 「‘화이’(華夷)와 ‘예악’(禮樂): 18세기 동아시아의 의관(衣冠) 담론과 문명의식」 등의 논문이 있다.

최근작 : <18세기 통신사 필담 1> … 총 3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돌베개
출판사 페이지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한국고전문학사 강의 3>,<한국고전문학사 강의 2>,<한국고전문학사 강의 1>등 총 588종
대표분야 : 역사 3위 (브랜드 지수 846,972점), 음악이야기 4위 (브랜드 지수 25,746점), 한국사회비평/칼럼 8위 (브랜드 지수 57,272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단순한 ‘기록’이 아닌 ‘문학’으로서의 일본 견문록

역대 통신사행록을 모은 <해행총재>(海行摠載)의 제1권에 실려 있는 신유한의 <해유록>은 다른 사행록들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기존의 통신사행록이 견문을 날짜순으로 쓴 단순한 기록인 데 반해, 신유한의 이 책은 문학적 감수성이 두드러진다는 데 있다. 이러한 차이는 신유한의 이력에서 찾을 수 있다.
신유한은 조선 숙종 시절에 태어나 당대에 문장으로 이름이 났던 시인이자 문인이었다. 통신사의 일행으로서 그가 맡았던 임무는 제술관(製述官)이다. 제술관은 시문(詩文)으로써 일본인들에게 조선의 학문과 문화의 첨단을 선보여야 하는 직책이었다. 그러므로 역대로 제술관의 직책은 당대의 문장가 중에서 선발했다.
신유한의 문장가로서의 역량을 반영이라도 한 듯이, ‘기록물’에 가까운 기존의 사행록에 비해 신유한의 <해유록>은 일본에서의 견문을 생동감 있게 그려 낸 한 편의 ‘문학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후기 당대에도 집집마다 <해유록>을 두고 읽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이다.
일본에 관한 풍부한 인문지리적 정보를 담고 있으며 다루는 소재 또한 풍부해서, 박지원·이덕무·정약용·이규경 등이 일본을 알기 위해 이 책을 필독서로 참고하였고, 근대의 대표적인 국문학자인 김태준은 <해유록>을 <열하일기>와 쌍벽을 이루는 기록문학이라 손꼽기도 했다.
일본이라는 이국(異國)의 산천을 보며 느낀 감회뿐만 아니라 통신사행의 제술관으로서 수행한 업무, 그리고 일본 막부와의 사이에서 겪게 된 일에 이르기까지, 신유한의 글은 유려한 문체와 풍부한 정서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을 통해서 18세기 초 일본의 최첨단을 목격한 한 ‘조선 문인’의 개성과 통찰력을 한껏 음미할 수 있다.

적개심만으로는 일본을 파악할 수 없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지 겨우 100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1719년. 여전히 적국(敵國)인 일본 땅에 발 디딘 조선인의 심정은 편치 않다. 이는 일본을 그려 낸 조선 후기 사행록의 주된 정서이기도 했다. 중화(中華)에 소속되지 않은 미개한 땅, 조선을 유린한 불구대천 원수의 땅이라는 생각은 당시 모든 사행록을 지배하는 정서였다. 적개심이 가득한 눈으로 본 일본은 그저 친척 간에도 혼인을 하고 한자로 된 문학을 제대로 구사할 줄 모르는 문맹의 나라, 야만인의 나라였다.
그러나 신유한의 시야는 당시 조선인이 일반적으로 가졌던 단순한 적개심과 편견에 갇히지 않았다. 물론 임진왜란 당시 포로로 잡혀간 조선 진주 지역 사람들이 일본에서 진주도(晉州島)라는 마을을 이루고 사는 것을 기록하며 일본인의 잔악성에 치를 떨기도 하지만〔 포로 마을 진주도〕, 동시에 일본의 정치 조직과 군사 제도 등을 날카롭게 관찰하였으며, 일본 무사 사회의 구조적 특성이나 천황과 쇼군으로 분리된 이원적 정치 체제를 분석하였다.
한편 화려한 상업 문화 속에 꽃핀 번화한 대도시 오오사카와 나고야, 또 개항된 나가사키를 통해 들어온 서양 문물의 낯선 모습은 선진 문화의 사절로 자부하는 조선인에게 놀라운 광경이었다. 신유한 역시 이 화려한 물질문화에 때로는 압도되고 기탄없이 놀라워하는 동시에 그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따져보는 태도를 잃지 않았다.
일본의 음식 문화, 차를 끓여 물처럼 마시는 풍속, 청결 및 위생 관리 방법 등 신유한의 관찰은 사소한 데까지 이르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무리 높은 관리가 명령을 받들어 길을 가더라도 스스로 반장(飯藏)이라는 조그만 도시락을 들고 다니며 끼니를 해결할 뿐 각 지역의 역참에서 번거롭게 접대하지 않아도 된다고 적고 있다〔 아기자기한 생활용품〕. 신유한이 이것을 기록한 의도가 잘 느껴지지 않는가.
편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관찰을 통해 얻은 정보 속에서 신유한은 일본 사회와 조선 사회를 성찰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일본을 ‘왜국’, ‘오랑캐’라 낮춰 부르던 조선인의 일반적인 인식 속에서도, 여정 속에서 만나는 각종 사물과 현상을 최대한 편견 없이 대하고자 하는 그의 탐구심은 여전히 일본과 마주하는 현대 한국의 독자에게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중세 일본인의 생생한 목소리와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다

신유한의 탁월함은 특히 인정(人情)과 세태를 서술하는 시각에서 잘 드러난다.

남들은 겨울밤 길다 하지만
나는 봄날이 길다 말하죠.
아침부터 저물녘까지
열 번 즐기고도 남으니까요.

사랑하니 훗날을 기약하자며
나더러 정조를 지키라 하네.
주인이 돈 받으러 올 텐데
그 돈을 어찌 마련하라고.
―「오오사카 기생을 노래한 시」

매일 대낮에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유곽의 생생한 모습의 이면에, 포주에게 화대를 뜯기는 기생의 고달픈 삶까지도 기생의 목소리를 빌려 담아 낸 신유한의 풍속 시는 현대인의 시선으로도 파격적이다. 남창(男娼) 풍속이 조선에서는 금기시되었지만, 일본에서는 일반화된 모습이었다. 신유한은 이러한 일본의 성 풍속에 대해서 무작정 배격하거나 입을 닫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순한 흥밋거리나 노리갯감으로 그들을 대상화한 것도 아니다. 호기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며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시를 적었다.
여정 속에서 만나는 여러 일본인들의 모습도 풍부한 대화와 행동 묘사 속에 잘 드러나 있다.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으며 접한 수많은 일본인들을 보며 신유한은 조선의 유학 수준에는 한참 뒤떨어지는 일본인의 전반적 학문 수준을 한심해하다가도 마음을 움직이는 인물에게는 존경을 감추지 않는다. 몇 개월에 걸친 사행에서 서로 정이 든 일본인들과의 관계에서도 신유한의 다감함을 볼 수 있다. 때로는 웃음이 나고 때로는 콧날이 시큰해지는 정감 있는 대화 속에서 당시 일본에 살고 있던 다양한 사람들과 조선 문인이 나눈 생생한 생각과 감정을 접할 수 있다.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 정제된 언어로 <해유록>을 번역하다

이번에 출간된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은 돌베개 우리고전100선 시리즈의 15번째 책이다. ‘우리고전100선’은 품격과 아름다움과 깊이를 갖춘, 그러면서도 21세기 한국인이 부담감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우리 고전을 만들고자 기획되었다. 권위주의적이고 고지식한 고전의 이미지와 레퍼토리를 탈피해, 정확하게 번역하되 고등학생 이상이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대어 문장이 되도록 각별히 신경 썼고, 이해를 돕는 간단한 해설을 붙였다.
이 책은 특히 일본어 고유명사를 일본어로 읽고 표기한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고전 번역에서는 “낭화(浪華)강을 거슬러 올라가 대판(大阪) 시내로 들어가니 풍신수길(豊臣秀吉)을 위해 지은 절이 있었다”라고 표기하는 식으로 일본어 고유명사에 해당하는 한자를 한국어 식으로 읽어 오곤 했다. 그러나 <해유록>과 같이 외국을 기행하며 겪은 일을 적은 기행문학의 경우 그것이 현지의 어느 지명을 가리키는 것인지 바로 알기 어려운 아쉬움이 있었다. 특히 고유의 방식으로 한자를 읽어 온 일본의 경우에는 그런 점이 두드러지며, 그중 다수가 현재에도 남아 있는 지명이거나 한국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이름인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에서는 원칙적으로 일본의 고유명사는 일본어의 독법으로 읽어, “나니와(浪華) 강을 거슬러 올라가 오오사카(大阪)로 들어가니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위해 지은 절이 있었다”처럼 해당 이름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읽히는지 바로 알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더욱 자연스럽고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접기



평점 분포

9.2



돌베개 땀시 책을 끊지 못하고 계속 만나봅니다. 고맙습니다...^^;
들풀처럼 2014-01-10 공감 (2) 댓글 (0)
Thanks to
공감



깔끔한 디자인 좋습니다!
ipsaeya 2017-06-14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해유록

열하일기와 쌍벽을 이룬다는 기행문. 사실 열하일기도 못봤지만 중국쪽은 그닥 현재로는 관심이 없어(특히 청나라는) 당연히 이쪽부터 고민...세가지 판본이 있는데 일단 가장 평도 좋고 가격도 부담없는 이쪽을 골라봤다.

당연하게도 축약본이라 아쉽긴 한데...무튼 왜 고평가를 받는지 알 거 같다. 편견없이 이렇게 꼼꼼하고 잘 묘사한 기행문이 또 있을까? 그것도 임란 후 불과 120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일본으로 간 통신사 일행 중 한명인 선비가? 더군다나 재미있다. 이거저거 안따져도 정말 재밌어서 좋다. 이 번역가가 해유록 전문을 번역했다면 더 좋았을 것을. 마치 내 경우 난중일기 노승석 판을 보고 다른 판본을 볼 생각이 안날 정도로 이 해유록은 좋다. 다른 판본도 조만간 보고 싶긴 하지만(그저 전체적인 걸 보고 싶으니)

- 접기
히버드 2015-07-08 공감(5) 댓글(0)
Thanks to
공감



우리 고전과 놀다.

조선 문인의 일본 견문록 (우리고전 100선 15_해유록)

-----이효원 편역/돌베개/2011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 잠과 휴식의 여유를 쪼개 책을 읽는 빠듯한 일상에서 선뜻 고전을 접한다는 건 여간 의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책 중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게 되는 놈이 있고, 크게 작심을 하고서야 펼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아무래도 고전은 후자에 속한다. 쏙쏙 귀에 잘 들어오는 동시대의 언어가 차고 넘치는 이 시대에, 오래된 언어와 깊이를 모를 함의로 가득한 고전은 역시 까다롭고 어려운 존재다.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해 시대를 거슬러 올라 고전이 ‘현대물’이었던 시절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이런 생각이 얼마나 소심한 편견인지 깨닫게 된다. 그것은 ‘몰이해’다. 분단된 남북의 민중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같은 언어이되 다른 언어를 구사하게 된 것, 그로 인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폭이 더 많이 좁아진 현실과 일맥상통한다. 시간과 공간의 간극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마음, 너른 폭을 뛰어넘어 저편에 있는 사람과 생각에 닿으려는 뜻과 노력 안에서 비로소 고전은 온전히 읽힐 수 있다.

<조선 문인의 일본 견문록>은 나에게 묵은 편견을 버리고 고전을 끌어안게끔 도와주는 책이 되어 주었다. 조선 선비 신유한이 300년 전에 쓴 <해유록>을 옮긴 글인데, 통신사로서 일본에 건너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외국의 풍광과 문물을 기록한 우리 고전은 여럿 있지만 <해유록>에 대해 알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미 일본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만으로 나는 이 책에 충분한 흥미를 느낀 터였다. 이십 대 후반부터 약 팔 년 동안 일본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았던 개인적인 정황 때문이다. 신 선비와 내가 느낀 일본은 얼마나 다른 곳일까, 또 얼마나 닮아 있을까. 자못 궁금함과 아련한 향수가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사실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의 덕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통해 신 선비와 나는 실로 엄청난 수준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나는 그의 시선이 가 닿는 곳의 풍경과 분위기와 사람들의 감정을 손에 잡힐 듯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웅장하고 신비로운 풍모의 후지산에 대한 감상이라든가, 화려하고 복잡하고 다소 천박스러운 오사카의 거리 풍경,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그들의 음식 문화라든가, 남창과 같은 독특한 문화 유행에 대한 감상에 이르기까지,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적극적으로 동감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했고 살짝 머릿속으로 반론을 펼쳐보기도 했다. 신 선비의 생각이나 글은 대체로 객관적이고 공평무사했지만 조선 시대의 유학자답게 일본 문화에 대한 조선 문화의 우월의식을 뚜렷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뉘앙스의 구절이 나올 때마다 나는 살짝 심기가 불편해지곤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런 불편함조차 이 책과 내가 스스럼없이 소통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니 한편 흡족한 기분이 든다.

<해유록>은 어디까지나 기행문이다. 비단 나처럼 일본에서 몇 년을 생활해 본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행자 신유한이 전달하고자 하는 견문을 충분히 읽어냈을 것이다. 그만큼 섬세하고 알기 쉽고 감정이 잘 드러난 기행문이기 때문이다. 현대에도 이만큼 ‘남이 한 여행을 내가 한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글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력이 남다른 조선 선비 신유한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30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그의 글에서 오늘날 못지않은 감수성을 발견하고 길어 올린 기획자와 편역자의 안목과 능력도 높이 사고 싶다.

- 접기
초록색집 2012-06-25 공감(3) 댓글(0)



300여 년 일본을 본 선비의 기록 『해유록』

내가 역사에 관한 이야기도 좋아하고 역사책도 즐겨 보지만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아니 전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일본 역사에 대해서 알 기회라든가 관심이 전혀 없던 것 같다. 다만 학생시절에 역사에 관심을 두면서 일본에 대한 적개심만 키운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무조건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내가 일본에 대해 아는 것은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수백년 전의 일본의 모습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까나. 현재의 일본도 잘 모르면서 수백년 전 과거의 일본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다니. 어쨌든 흥미로운 독서였슴에는 틀림없다.




조선시대 선비하면 공자왈 맹자왈 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여러가지 책을 통해서 선비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긴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의 선비 이미지는 고리타분한 사람, 꼬장꼬장한 사람이 되버렸다. 그런 선비가 일본에 가서 본 풍경은 어떠할지 궁금해하지 않은가? 물론 읽으면서 깨닫겠지만 이 책의 선비는 그런 선비가 아니다. 오히려 트힌 사고를 가진 선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조선사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이 책의 문장을 보노라면 이 책을 쓴 신유한이라는 문인은 당시의 시대사람과는 다른 열린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판단할 것이다. 물론 당시 시대치고는 그렇다는 말이다. '오랑캐'라는 단어로 인해서 금새 '에이..' 할 수 도 있지만...




내가 몇가지 흥미롭다고 여기는 것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는 당시 일본의 풍속이 음란하다고 저자가 기술한 것이다. 신유한은 통신사의 제술관으로서 국서를 전달하는 여정에서 잠시 머무른 오사카에서 일본인의 성풍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통역관이 말해준 것을 듣고 운을 붙여서 일본의 풍속을 시로 읊은 것이 모두 서른 편인데 이렇게 적은 이유는 교화의 한 방편으로 적는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다른 선비 같았으면 온갖 비난만 적었을 터인데 이렇게 시까지 만들어 기술한 것으로 보다 상당히 개방적인 선비가 아닐 수 없다. 이후 일본인들이 연 연회에서 그 공연의 음란함이 너무해서 중단시키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의외의 사실은 그 당시 일본에는 남창이 유행했다고 한다. 귀족이면 너도 나도 남창을 두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다. 도대체 이런 개방적(?)인 풍속은 어디서 기원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바다 하나를 앞에 두고 있지만 조선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는 엄청나니 희한하지 않은가? 아니 희한할 것도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과거가 있으니 오늘날 일본의 그 엄청난 성적개방성은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는 듯 하다.




둘째는 조선통신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열렬한 관심이다. 당시 신유한은 통신사의 제술관이라는 직함으로 일행에 참여했다. 제술관이라 함은 일본과의 문화교류를 담당하는 관직이라고 한다. 배를 타고 일본에 닿은 직후 부터 일행은 곳곳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며 일본인들의 관심은 매우 높았다. 특히 신유한을 만나는 일본인들마다 시를 써주기를 청했으며 어떤이는 자신의 글에 대한 평가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러한 만남은 국서를 전해준 후 조선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계속이어졌는데 당시 일본이 얼마나 문화에 목말라했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일본인이 통신사를 대접하는데만 오늘날 일본화폐로 백억엔에 달한다니 난 정말 놀랐다. 도대체가 이렇게 수많은 돈을 쏟아 부을 정도로 신경을 쓰다니 의아스럽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조선이 일본에 조공을 하고자 왔다고 대중들에게 선전함으로 이득을 보긴 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당시 일본이 얼마나 문화에 대한 욕구가 높았고 이렇게 온 통신사의 선비가 엄청나게 존중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내심 뿌듯하다.




위의 두가지는 내가 흥미롭게 생각한 부문이고 더 중요한 것은 이 기록이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이다. 해유록의 저자인 신유한은 조선을 침략했던 사실을 잊지 않았고 이 여정을 통해서 일본의 군사력을 경계했다. 물론 그 침략을 기억하고 무조건적으로 적대시한 것은 아니다. 유곽의 음란한 정경을 미냥 비판한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보았으며 만났던 일본인들을 무시하지도 적대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실한 마음을 담아서 대하는 일본인들에게는 진실된 마음으로 대했다. 다시 말해서 신유한은 통신사가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마땅히 항의할 일은 당당하게 항의했으며 일본의 군사력에 대해 경계했으며 조선이 낙후되었다고 여겨지는 것은 이러한 일본의 현실을 보고 성찰하며 반성했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것은 버리려는 그 태도를 본 받아야할 것이다. 결코 편협된 시각으로 보지 않았던 저자의 그 냉철한 시각을 잊어야 하지 말 것이다.










- 접기
책수집가 2012-01-02 공감(1) 댓글(0)
Thanks to
공감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