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린의 고조선 연구
리지린 (지은이),이덕일 (해설)도서출판 말201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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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765쪽
책소개
북한 사학계는 광복 후 '반도고조선설'과 '한사군=한반도설' 즉, '낙랑군=평양설'을 주장하는 고고학자들과 '대륙고조선설'과 '낙랑군=요동설'을 주장하는 문헌사학자들 사이에 오랜 논쟁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961년 북경대에서 통과된 북한 사학자 리지린의 박사학위 논문 '고조선 연구'가 소개되면서 '대륙고조선설'과 '낙랑군=요동설'이 북쪽 사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았다.
일제식민사학자, 조선봉건사학자뿐만 아니라 중국의 사학자들을 '대국주의', '중화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민족의 주체적인 사관을 펼친 리지린의 논문은 지금도 여전히 일제 식민사학의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남쪽 사학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목차
해제 대륙 고조선사의 진실을 찾아낸 연구에 경탄 ___ 6
화보 고조선 유물 ___ 26
머리’말 ___ 41
제1장 고조선의 력사 지리
제1절 고대 문헌 자료상에서 본 고조선의 위치 ___ 60
제2절 고대 문헌상에서 본 고조선 령역의 변동 ___ 80
제3절 기원전 2세기 말(한4군의 설치 시기)까지의 료수의 위치(연, 진의 장성의
동단과 관련하여) ___ 123
제4절 고조선의 패수의 위치에 대하여 ___ 175
제5절 왕검성의 위치에 대하여 ___ 197
제2장 고조선 건국 전설 비판
제1절 단군 신화 비판 ___ 222
제2절 기자 조선 전설 비판 ___ 271
제3장 예족(濊族)과 맥족(貊族)에 대한 고찰
제1절 예족과 맥족에 대하여 ___ 300
제2절 예, 맥과 고조선과의 관계 ___ 354
제3절 《삼국지》와 《후한서》의 《예전》과 《옥저전》에 기록된 《예》의 위치에
대하여 ___ 394
제4절 맥국의 사회 경제 구성 ___ 405
제4장 숙신에 대한 고찰
제1절 고대 숙신(肅愼)의 위치 ___ 420
제2절 고대 숙신(肅愼)과 고조선과의 관계 ___ 438
제5장 부여(夫餘)에 대한 고찰
제1절 부여는 어느 종족의 국가인가? ___ 444
제2절 부여와 고조선과의 관계 ___ 456
제3절 부여의 사회 경제 구성 ___ 472
제6장 진국(삼한)에 대한 고찰
제1절 삼한 동천설에 대한 비판 ___ 528
제2절 진국의 북변 ___ 537
제3절 삼한인은 어느 종족인가 ___ 553
제4절 진국의 사회 경제 구성 ___ 556
제7장 옥저에 대한 고찰
제1절 옥저에 관한 자료에 대하여 ___ 596
제2절 옥저의 위치에 대하여 ___ 605
제3절 옥저인은 어느 종족인가 ___ 619
제8장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 본 고대 조선 문화의 분포
제1절 석기 유물의 분포 ___ 624
제2절 토기 유물의 분포 ___ 632
제3절 거석 문화의 분포 ___ 641
제4절 청동기 유물의 분포 ___ 648
제9장 고조선의 국가 형성과 그 사회 경제 구성
제1절 고조선 사회의 생산력 ___ 664
제2절 고조선의 문화 ___ 686
제3절 고조선의 국가 형성 ___ 695
제4절 고조선의 사회 경제 구성 ___ 708
맺는말 ___ 737
도판 ___ 746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우리 옛날 고대 국가들에도 적지 않은 력사 서적들이 있었으나 그것들은 일찌기 인멸되어 유감스럽게도 오늘 우리 손에 남아 있는 것이 단 한 권도 없다.
P. 44필자는 지금까지의 일본 부르죠아 력사가들의 조선 고대사 연구 성과들을 남김없이 검토 비판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은 처음부터 고조선을 조선 고대사로 인정하지 않았고 고조선 력사를 더욱 흐리게 하였다. 그들의 황당한 학설이 오늘도 외국 학계에 일정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그들의 부당한 견해들을 될수록 폭로하고 비판하는 립장을 취하였다. 접기
P. 54고조선의 위치에 대해서 필자는 기원전 3세기 초까지 오늘의 료동, 료서 지역에 걸쳐 있었고, 서변은 우북평 지역에까지 이르렀다가 기원전 3세기 초 연에게 패전한 후는 오늘의 대릉하(패수) 이동以東으로 축소되였다고 인정하며,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은 오늘의 중국 료녕성 개평蓋平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P. 204오늘 고조선 력사 지리를 론함에 있어서 《사기·조선 렬전》과 《위략》의 기록을 무시할 권리가 없다. 국경선인 패수가 압록강이라면 압록강 이남 백여 리는 위만을 비롯한 수다한 중국의 피난민들이 거주한 지역으로 돼야 한다. 또 방향으로 보아도 《위략》에는 조선왕이 그 서부 지방 백여 리를 위만에게 봉하였다고 썼다. 오늘 평양에서 압록강 이남 지역을 서부 지방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 않는가? 어쨌든 압록강 이남에서 연, 진, 전한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 이러한 유물들이 우리의 주목을 끌수 있도록 출토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접기
P. 402우리가 한4군의 각 현의 소재지를 일일이 고증하지 않더라도 우선 이상의 간단한 자료들에 근거하여서도 전, 후한 및 3국 위魏의 락랑군이 모두 압록강 이북에 위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위의 락랑군을 현 평양 지방으로, 그리고 대방군을 황해도 지역으로 비정한다면 우리들은 위에 인용한 문헌 자료들을 모조리 말살해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내외의 이 사료들을 자의로 말살해 버릴 권리가 없는 것이다. 이 시기 락랑군을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가들은 이 문헌 사료를 말살할 만한 근거를 내놓아야 한다. 접기
P. 495맑스의 아세아적 공동체의 규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내용은 토지의 사’적 소유가 존재하지 않고 토지는 오직 공동체의 소유이며 매개 성원들은 공동체를 떠난 독립적 생존이 불가능하며 오직 공동체의 일원으로서만 생존할 수 있다. 공동체의 소유도 실제는 세습적 점유이며 국가적 소유와의 이중적 소유로 되여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부여에 이러한 특성을 가지는 아세아적 공동체가 존재하였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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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리지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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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평남 강동군에서 태어나 1935년 평양 광성보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41년까지 일본 와세다대학 철학과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했으며 석사과정을 공부했다. 귀국 후 평양 광성중학교, 선천중학교 등에서 교사로 근무했고, 해방 직후에는 경성법학전문학교(서울대 법대 전신)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946년부터는 평양고등사범학교에서 근무했다. 한국전쟁 이후 과학원 력사연구소 고대사연구실에 근무하면서 1959년 〈 광개토대왕비의 발견 경위에 대하여《( 고력사과학》1959년 5월)〉를 발표했다. 1960년에는 〈 고조선국가형성에 관한 측면의 고찰(상·하:《력사과학》(1960년 2월, 4월)〉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고조선 연구자로서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학계는 광복 후 ‘반도고조선설’과 ‘한사군=한반도설’ 즉, ‘낙랑군=평양설’ 을 주장하는 고고학자들과 ‘대륙고조선설’과 ‘낙랑군=요동설’을 주장하는 문헌사학자들 사이에 오랜 논쟁이 계속되었다. 이런 와중인 1958년 3월경부터 리지린은 북경대 대학원에 들어가 고사변학파의 고힐강(顧詰剛)을 지도교수로 고조선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1961년 6월 말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된 후 같은 해 8∼9월 평양에서 열린 ‘고조선에 관한 과학토론회’에 참석해 논문을 발표했다.
〈고구려의 서변《(력사과학》 1964년 3월)〉,〈《삼국사기》를 통해 본 고조선의 위치《(력사과학》, 1966년 3월)〉,〈《삼국사기》와《 제왕운기》를 통해 본 고조선의 위치《(력사과학》, 1966년 5월)〉,〈고구려의 영주제《( 력사과학》, 1967년 5월)〉 등의 논문을 발표했고, 1976년에는 강인숙과 공저로《고구려사연구(사회과학원 출판사)》를 발표했다. 이후의 행적은 더 이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접기
최근작 :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고조선연구>,<고조선에 관한 토론 논문집> … 총 4종 (모두보기)
이덕일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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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학교 사학과와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를 창립한 이래 우리 사회 양대 사대주의 역사관인 조선 후기 노론사관과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해체하는 한 길을 걸어왔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등의 저서를 통해 남한 강단사학의 노론사관을 비판했고,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우리 안의 식민사관》 등을 통해 남한 강단사학의 정설인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비판했다. 현재 《조선왕조실록 1~5》(10권까지 근간)을 집필 중에 있고,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해역), 《신주사기》 등 수많은 저서가 있다. 황국사관을 추종하는 역사학자들은 임나를 가야로 보고, 그 임나를 야마토왜가 지배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였다고 주장하는데, 《조선사편수회 식민사관 비판 Ⅱ- 임나일본부는 일본열도에 있었다》는 임나일본부는 한반도 남부에 없었고 일본열도에 있었음을 밝혀내어 황국사관의 논리적 모순을 조목조목 밝혀 해체한 책이다. 접기
최근작 : <조선사편수회 식민사관 비판 2>,<환단고기에서 희망의 빛을 보다>,<조선왕조실록 5 : 연산군·중종·인종> … 총 161종 (모두보기)
이덕일(해설)의 말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가 1962년 북에서 간행되면서 북한 사학계에서 ‘낙랑군=평양설’은 자취를 감추었다. 중국의 방대한 문헌 사료는 물론 중국에서 출토된 여러 고고학 사료들을 가지고 고조선의 강역이 때로는 중국 하북성까지 걸쳐 있다가 요녕성으로 후퇴했다고 논증했는데, 평양 부근의 일부 고고학 유물들, 그것도 일제의 조작설이 만연한 고고학 유물들을 근거로 ‘낙랑군=평양설’을 펼치는 주장은 더 이상 학문적으로 설 자리가 없었다.
《고조선 연구》 8장의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 본 고대 조선 문화의 분포〉에서 리지린은 중국 요서·요동지역 의 고고학 발굴결과까지 광범위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중국 요령성 지역에서 발굴된 여러 유물들을 가지고 고조선 강역이 지금의 요서지역까지 차지했다고 주장했으며, 방대한 문헌 사료는 물론 다양한 고고학 자료를 가지고 대륙 고조선설과 한사군 요동설을 주장했다.
이처럼 북한 학계는 해방 후 거의 15년 이상에 걸친 치열한 논쟁을 거쳐 ‘낙랑군=요동설’을 확립시키면서 ‘낙랑군=평양설’을 무너뜨렸다. 남한 학계가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한 논쟁다운 논쟁 한 번 하지 않고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낙랑군=평양설’을 100년 전에 확립된 ‘정설’이라고 우기는 사실에 비춰보면 이채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를 번역하면서 느낀 것은 북한의 역사학자 들은 해방 직후부터 자신들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 초반에 일제 식민사관은 말할 것도 없고, ‘대국주의 사상’, ‘대국주의 사가’ 등의 용어로 중화패권주의 사관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나아가 중국의 대국주의적 봉건 사가들과 조선의 사대주의 사가들의 학설이 일치한다고 비판한 것도 새로웠다.
지도교수인 북경대 고힐강 교수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맥은 흉노’라는 고 교수의 설도 조목조목 비판하는 학문적 기개 앞에선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남한과 북한을 막론하고 우리의 눈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면 갖게 되는 필연적 역사관이지만 그 시기가 1960년대 초반이었던 것이다.
《고조선 연구》가 우리 학계의 고질병이 된 친일·친중 사대주의 역사관을 청산하고 우리의 관점으로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는 한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그간 교과서에서 주입시킨 북한의 역사학, 고조선의 실체가 궁금했던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북한 사학계는 광복 후 ‘반도고조선설’과 ‘한사군=한반도설’ 즉, ‘낙랑군=평양설’을 주장하는 고고학자들과 ‘대륙고조선설’과 ‘낙랑군=요동설’을 주장하는 문헌사학자들 사이에 오랜 논쟁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961년 북경대에서 통과된 북한 사학자 리지린의 박사학위 논문 <고조선 연구>가 소개되면서 ‘대륙고조선설’과 ‘낙랑군=요동설’이 북쪽 사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았다.
일제식민사학자, 조선봉건사학자뿐만 아니라 중국의 사학자들을 ‘대국주의’, ‘중화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민족의 주체적인 사관을 펼친 리지린의 논문은 지금도 여전히 일제 식민사학의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남쪽 사학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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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자에 의한 가장 위대한 고조선 연구서!
한국강단의 친일 토착왜구 역사학자들은 뭐하냐?
바우 2019-10-07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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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히 추천합니다.
카르마소년 2020-05-27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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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반드시 사야한다.
책값 그 이상의 값어치가 넘치는 책. 고조선 조선상고사에 관심있는 분이면 반드시 소장해야할 책
클래시사랑 2022-01-03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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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다! 한국의 고대사는 다시 쓰여져야한다.
배사장 2022-05-04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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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고 학술서 같이 생겼는데 은근 재밌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천손사상(예족)과 난생설화(맥족)의 주체가 다른데 고구려에서 합쳐졌다는 부분이 흥미롭더군요. 교과서에서 자세히 배울 일 없는 숙신, 부여, 옥저, 예맥에 대한 이야기도 상세하게 나옵니다.
artemis 2023-08-2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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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대륙 고조선‘을 찾아서 -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
'대륙 고조선(古朝鮮)'을 찾아서
- [고조선 연구](1962), 리지린, 이덕일 해역, <도서출판 말>, 2018.
"필자는 우리 고대국가들에서의 계급투쟁의 력사를 찾아보려고 시도하였다. 계급투쟁은 결코 계급적 모순이 첨예화된 때에 비로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대립이 생긴 첫날부터 진행된 것이다...
필자는 위만정권의 수립은 고조선 사회의 발전의 계기로 되었다고 인정하며, 그의 정변은 고조선 사회의 계급투쟁의 반영이라고 보려고 한다...
고조선의 위치에 대해서 필자는 기원전 3세기 초까지 오늘의 료동, 료서 지역에 걸쳐 있었고, 서변은 우북편 지역에까지 이르렀다가 기원전 3세기초 연에게 패전한 후는 오늘의 대릉하(패수) 이동으로 축소되었다고 인정하며,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은 오늘의 중국 요령성 개평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종래 옥저는 다만 함경남북도에만 위치한 것으로 인정한 설에 대하여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문헌사료를 세밀히 검토한 바, 옥저는 옥저, 동옥저, 북옥저의 3개 옥저가 있었고, 옥저 지역은 오늘의 중국 즙안(집안)에서 압록강 밑으로 위치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예맥'이 강원도에 위치했고, '예'는 그 밑(압록강 하류지역)에서 료동반도 동변에 걸쳐 위치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예맥'이 강원도에 위치했다는 력대의 설이 근거가 매우 박약함을 인정하면서 필자의 견해를 내놓으려 한다. 그리고 고대 숙신은 3세기 이후 읍루, 물길, 말갈족과는 완전히 다른 종족이며, 그것은 곧 '고조선족'이였다는 것을 론증해 보려고 시도하였다."
- 리지린, [고조선 연구], <머리'말>, 1962.
1961년 6월부터 9월까지 북한의 과학원 '력사연구소'는 7차례에 걸쳐 '고조선에 관한 과학토론회'를 개최하여 '낙랑군=평양설'과 '고조선=요동설' 사이의 끝장토론을 벌인다. 도유호와 같은 고고학자들은 평양 일대의 청동기 유물를 중심으로 고조선의 중심지는 대동강 유역의 평양이며 '패수'는 청천강이라는 주장, 반대편 문헌사학자들은 고조선의 영역이 요동 지역이라는 주장의 일대 격돌이었다. 일제강점기 제국주의자들이 축소시킨 고조선의 강역을 벗어나려는 북한 역사학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도 고고학 유물을 근거로 하는 '실증주의' 역사관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 '력사과학토론회'에 한 역사학자의 논문 한 편이 제출되면서 결국 '고조선=요동설'로 급작스레 종결된다.
북한 세습정권이 반동화되면서 '평양' 중심의 '대동강 인류문명설' 따위의 어용 역사학이 지금 이북에서 득세하고 있다지만, 해방 후와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설하려던 역동적인 시대인 1960년대에는 '과학'적이고 '진보'적인 역사학자들이 북한의 역사학계를 이끌었다.
'실증주의' 역사과학를 넘어서 고대 문헌들과 당대의 정치경제 사회구성체 분석을 통한 '과학'적 역사유물론을 토대로 고조선의 강역을 최대한으로 넓히면서 위 토론에 종지부를 찍은 논문이 바로 1960년대 북한 역사학자 리지린 박사의 [고조선 연구]다.
북한 역사학자 리지린 박사(1916~?)는 1958년부터 중국 북경대에서 위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그는 중국의 '고사변학파'로 불리는 고힐강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았다는데 이 학파는 중국내에서는 진보적 학파였으나 대외적으로는 '중화주의'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대륙고조선설이 마뜩치 않았음에도 리지린의 철저한 중국 고대문헌 분석에 반박하지 못한 채 박사학위 논문을 승인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즉, 리지린은 중국으로부터 '배우기' 위해 북경 유학을 간 것이 아니라, 역사왜곡의 본산지에서 당당하게 우리 고조선의 영역을 확인하기 위해 북경대 박사학위에 도전한 것이었다. 그는 결국 중국의 대역사가 고힐강조차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철저한 문헌조사와 고증을 통해 중국을 딛고 귀국하여 '실증주의' 역사학을 무릎 꿇렸다.
위 <머리말>은 결국 이 논문 [고조선 연구]의 요약 서문이자 결론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리지린 박사는 '고조선=평양설'을 뛰어넘은 '고조선=요동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고대의 요동과 요서 지역 자체를 서쪽으로 더 확장하였고, 그에 따라 옥저와 진국(辰國/삼한:三韓)까지도 한반도 북부로 더 끌어올렸다.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는 우리가 아는 고조선 강역도 중 가장 넓은 영토를 그리고 있다.
"... '습(濕)'자 음이 '숙(肅)', '식(息)', '직(稷)' 음과 통하며, '숙신(肅愼)'(식신,직신; 息愼,稷愼)이 '습수(濕水)', '렬수(洌水)', '선수(汕水)'가 합하여 '렬수(洌水)'를 이루는 강 명에 유래했다는 고대의 설이 '조선(朝鮮)'의 명칭의 유래로 된 것으로 바뀌여졌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 리지린, 같은책, <1. 고조선의 력사지리>.
우리 역사의 시작 고조선(古朝鮮)은 기원전 2,333년에 단군왕검이 건국하여 청동기 시대를 거쳐 철기 '열국시대'를 지나 고대국가 '삼국시대'의 기초가 되는 우리 역사 고대 노예제 사회였다. 원래 국명은 '조선'인데, 이후 이씨 조선과 구분을 위해 '고조선'이라 부른다. [사기], [한서] 등의 중국 고대문헌에는 '조선'이라 부르면서 <조선열전>을 따로 전한다. 물론, '조선'의 이야기가 아니라 중국 한나라 왕조 및 전국시대 왕국들과 관련된 역사로서 서술되고 있다.
'조선(朝鮮)'.
14세기말에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정도전 등의 급진적 사대부들은 우리 역사의 뿌리이자 '동방의 해뜨는 나라'라는 식의 국명으로 '조선'을 채택했을 수도 있으나, 애초 중국 고대 문헌에서 부른 '조선'은 뜻을 지닌 말이 아니라 동북방의 고대 '조선어'의 음을 한자로 옮긴 것이었다. '렬수'라는 큰 강을 중심으로 번성한 '습수(濕水)' 등의 음과 그와 비슷한 '숙신(肅愼)' 등의 음을 중국의 한자로 번역한 말이 '조선'이라는 것인데 우리글이 아직 없던 시절의 이두식 표현인 것이다. [사기] 등에는 '조선', '발(發).조선' 식의 표현도 있는데, 고대 조선어로 '발(發)', '불(不)'은 '국가' 또는 '지역'을 뜻한다. 고구려의 기원후 1세기 수도 '국내성'은 '불내성'이라고도 쓰며, '부여'라는 고구려 이전 열국 중 하나의 국명은 '지역국가'라는 의미의 '불여(不與)'라는 설도 있다.
그리하여 '(고)조선'이라는 국명이 등장하기 전 오랜 문헌에 나오는 '숙신'은 한참 후 두만강 유역에서 야만생활을 하던 '여진족'의 선조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고조선족'을 이르는 말이었다.
나는 중국의 '동북공정' 따위 제국주의 역사관에 대항한 우리의 주체적 역사관은 긍정한다. 반면, 식민사학자 이병도 무리의 '실증주의 사학'은 맹목의 '과학'에 불과하며 심각한 '철학의 빈곤'이 그 본질이라 보고 있다. 한편으로 '대동강 인류문명설'이나 고조선 또는 고구려 '대제국설' 따위는 문헌이나 고고학의 역사과학적 성과를 정치로서 왜곡하는 '유사역사학'이라 불린다. '고조선 연방제국'이 이후 흉노와 섞이고 결국 훈족의 일부로 유럽 문명까지 만들었다는 식의 몽상이 아니라 사료로 말하는 '과학'으로서 역사학의 본연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 [고조선 연구]의 리지린 박사와 이 논문을 역해한 <한가람역사연구소>의 이덕일 소장의 한목소리 주장이다. 그만큼 리지린의 중국 고대문헌 분석은 중국인 역사학자도 반박 못할 정도로 철저했다고 한다.
리지린의 고조선이 서쪽으로 더 나아간 이유는 바로 '조선(숙신)'이라는 국명의 바탕이 된 강물, 즉 '열수(洌水)'의 위치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열수'는 '요하' 또는 '요수'인데 현재의 요동과 요서를 가르는 '요하'가 아니라 그보다 더 서쪽에서 흐르는 '난하'라고 한다. '난하'는 북경에서 가까운 북쪽의 강이다. 기존 '고조선=요동설'은 고대의 요동과 현재의 요동을 같은 지역으로 보았으나, 리지린은 '열수(요수)'를 더 서쪽의 '난하'로 보면서 고대 요동을 현재 요동보다 훨씬 더 서쪽으로 비정한 '대륙 고조선설'의 주요 이론가였다. 리지린에 따르면 기원전 7~5세기경 고조선은 극동아시아의 동북지역 전체를 석권하고 있다. 중국 고대 문헌에 "열수는 요동에 있고, 열수 동쪽에 왕검성이 있다"고 하는데, 그러므로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은 '평양'이 아니라 고구려의 개모성 또는 개평으로 발해만에 인접한 도시였다.
기원전 5세기에는 청동기 말기로 '구리의 나라', '고리국'이 고조선의 서쪽에 인접해 있었다. '고리국'의 민족은 '맥(貊)'족으로 표범 비슷한 '맥(貊)'이란 짐승을 사냥하던 민족이었다는 설도 있는데, 중국 전국 중 연나라 장군 진개(秦開)에 의해 멸망한 듯 하다. 이때 흩어진 '맥족'이 고조선을 이루던 '예(濊)'족과 섞여 '예맥(濊貊)'족을 이룬다. 이들이 바로 선비족, 부여국, 오환족 등의 선조가 되는 동호(東胡)족(동쪽 '오랑캐')이며 고조선인들이었다. '예(濊)'족의 한자는 '더럽다'는 뜻인데 고조선인들이 스스로 이런 한자를 썼을리는 만무하다. 북방 유목민 '흉노(匈奴:흉칙한 노예)'처럼 중국인들이 지칭한 차별적 언어였을 것인데, 고조선족인 '예'족은 원시야만의 나라가 아니라 주도적 철기 문명을 지닌 동북방 일대의 거대한 고대 '연방국가'를 이룬 사람들이었다. 단군왕검의 고조선은 이미 '8조 금법' 등을 보아도 '원시공동체'를 벗어나 국가권력이 인민 개인을 법으로 통제하던 고대 국가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결국, 고조선의 지배민족은 엄밀히 따지면 '예'족이었고, 부여와 고구려의 지배민족은 '맥'족이라는데 '예맥'족으로 섞인 이들은 아시아의 동북방 또는 고대 요동을 지배한 민족들이다.
"예와 맥은 일찍이 신석기 시대, 늦어도 기원전 2천여 년 이전에 오늘의 료동, 료서 지역에 정착하였다고 보여진다. 예는 료동 개평을 수도로 하여 국가를 형성하였다. 예의 여러 부족들은 국가 형성 이전에 이미 료서와 조선반도로 퍼져 나갔고, 그 일부는 오늘의 하북성 남부인 청장수 지역에까지 진출하였던 것이다. 맥은 처음부터 예의 지역의 북방에 거주하면서 기원전 10세기 이전 시기에는 이미 그 일부가 중국 북부에까지 진출하였던 것이며, 늦어도 기원전 5세기에는 료서의 열하, 릉원, 조양 지역, 고 료동의 고조선 지역 북부에 걸쳐서 계급국가인 맥국을 건립하였던 것이다."
- 리지린, 같은책, <3. 예족과 맥족에 대한 고찰>.
후대 조선을 건국한 사대부 '혁명가'들조차 사대주의로 인해 '기자조선'을 근본으로 삼았다. 원래 천제 환인의 아들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왕검이 건국한 '(고)조선'이 아니라 중국 은나라의 신하 기자(箕子)가 요동으로 망명하여 세운 중국식 왕조인 '(고)조선'이라는 것인데, 리지린의 문헌 분석에 따르면 '기자'는 동북방 요동으로 오지 않았다. 고조선의 왕족 성씨가 '기'씨였기에 혼동이 전설이 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원전 3세기 북방 유목민의 대명사 '흉노'족의 왕은 '선우(單于)'인데, 동북방 정착민 '예맥(동호)'족의 왕인 '단군(檀君/단간:單干)'의 한자가 비슷하다. 즉 1,900년 동안 고조선을 다스렸다는 '단군왕검'은 개인이 아니라 곰을 숭상하던 부족의 왕을 뜻하며 고조선이 1,900년 이상 지속되었다는 의미다. '단군'은 '선우', '왕'은 '왕', '검(험)'은 '곰'을 의미한다.
이후 맥국(고리국)을 멸망시킨 연나라 장수 진개는 중국 한족이 아니라 연에 귀순한 맥족이었고, 고조선 준왕을 진국 마한으로 쫓아낸 위만도 중국 한(漢)족이 아니라 맥족이었기에 고조선에 귀순한 후 준왕이 위만에게 맥의 지역을 지키게 한 것이었다.
결국, 동북방 요동과 요서 지역을 장악한 민족은 중국 한족이나 한반도인들이 아닌 그 지역의 오랜 정착 '예맥족'이었다. 요동은 요동만의 역사와 문화가 이어져 왔으므로 '요동사' 자체가 인정되어야 하는 이유다.
위만의 반란 후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과 한반도 일대에서 이 부족국들을 망라한 '진국'으로 고조선의 예맥족이 넘어와 '한(韓)'족과 섞이면서 '요동사'는 우리 역사가 된다. 북방의 역사는 중국보다는 한반도와 더 가깝다.
고대 아시아 동북방의 '예맥(동호)' 이전의 원시민족은 '조이(鳥夷)'족이었는데, 하늘의 새를 숭상하던 풍습으로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를 새에게 바치는 '조장(鳥葬)'을 시행하기도 하며 건국신화의 영웅들이 전부 '알'에서 태어나는 '난생(卵生)' 신화의 공통점이 있다. 부여와 고구려, 신라와 가야의 시조들은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
우리말 '아씨'는 흉노 선우의 부인 '알씨'와 같은 어원이다. 또한 고조선의 뒤를 이은 부여의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등의 '제가회의(諸家會議)'에서 '가(加)'는 '가한(可汗)', 즉 '칸(Khan)'이며 이후 돌궐, 몽골 등의 서북방 유목민과도 연결되는 증거다. 고구려 또한 이러한 '칸국'을 거느린 '5부족 연맹체'를 정치체제로 물려받았다.
"위만이 들어온지 얼마 안되어 왕권을 탈취했다는 사실은 고조선의 계급투쟁이 첨예화되였으며, 거기에는 그 계급투쟁을 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급, 즉 봉건 지주계급이 형성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요컨대, 고조선에서는 기원전 3세기 말에는 호민 계층이 지주계급을 형성하기 시작하였으며, 위만은 그 계층과 결합하여 하호와 노예의 폭동을 리용하여 고조선 왕권을 전취하였다고 인정된다."
- 리지린, 같은책, <9. 고조선의 국가 형성과 그 사회 경제 구성>.
고조선은 기원전 12세기 중국 서주 시대부터 흩어져 있던 부족국가들이 기원전 8~7세기경에는 '고조선'으로 '예맥'의 통합국이 된 '고대 노예제 사회'였고, 독자적인 철기 문화를 주도하면서 중국 제나라와 활발한 교역도 했다. 노예와 같은 처지의 소작빈민인 '하호(下戶)'가 기본계급이었으나 중소지주에 해당하는 '호민(豪民)'들이 봉건 지주계급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위만은 이 '호민'과 '하호' 세력의 지지 하에 고대 노예제 국가 고조선을 뒤집어 엎고 '봉건지주 혁명'을 완수하면서 과도기적 정치경제 체제를 건설했다는 것이 리지린의 주장이다.
즉, 위만(衛滿)은 '예맥'인으로서 고조선인이었고, 고조선 왕조의 교체는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봉건제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진보적 '력사학자'답게 리지린에게 우리의 역사, 고조선의 고대사 또한 "계급투쟁의 역사"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존 문헌 자료 상의 고조선 사회 경제 구성은 아세아적 공동체가 파괴되였으나 여전히 총체적 노예제의 유제가 강인하게 잔존한 노예 제도가 지배적 지위를 차지한 노예제 사회이였고, 위만 이후 점차적으로 봉건사회에로 이행하였다고 인정한다."
- 리지린, 같은책, <9장>.
***
- [고조선 연구](1962), 리지린, 이덕일 해역, <도서출판 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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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rice1007 2020-10-2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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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 이덕일 역사서, 소설 모아보기 알라딘 북플의 ...
천고 이덕일 역사서, 소설 모아보기알라딘 북플의 훌륭한 기능중 하나인거 같다.작가, 테마별로 책을 한페이퍼에 모아 놓을 수 있는 기능47권 소장 중(2권방출), 33권 독. 많이 사고 읽은거 같은데 못읽은 책이 더 많은듯. 고금통의까지가 구매한 책.천고 이덕일 선생을 처음 접한 책이다.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97년 6월에 1쇄가 나왔지만 5년 지난 02년에야 겨우 읽게 되었고 ˝사화로 보는 조선역사도 함께 읽고, 그 뒤부터 이덕일 선생의 팬이 되었다.유사역사학자라고도 불리고 역사 왜곡을 일으킨다며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그러... + 더보기
대장정 2022-02-23 공감 (29)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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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최근에 받은 책, 받을 책... 들이다. 장르소설에 많이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세계문학도 있고, 에세이도 있고 현대소설, 한국문학... 의외로 책을 가리지는 않는구나 라는 생각에 잠시 안심을 했다. 하지만 좀 더 잘 들여다봐야 한다. 이건 내가 소장하고 있는, 곧 소장하게 될 책들일뿐이지 다 읽게 되는 책이라... + 더보기
chika 2018-11-08 공감 (2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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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고조선과 단군은 만들어진 신화일까?

안 보는 책들을 정리하다가 <단군, 만들어진 신화>(산처럼, 2004)가 굴러 떨어졌다. 내가 이 책을 언제 샀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도 일본 국사 교과서 파동이 날 때 즈음 일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바로 위에 이형구의 <한국 고대문화의 기원>(까치, 1991)이 있었으니 비슷한 시기에 구입했던 듯하다.
단군과 고조선이 만들어진 신화라는 송호정의 주장을 담은 책이 <단군, 만들어진 신화>인데, 앞부분을 조금 보다가 참으로 이상했다. 국내 고조선 박사학위 1호라는 양반의 글이 주장만 있지 논증이 없었기에. 읽다가 어의가 없어 덮었다. 좀 더 논증적인 고조선 관련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고조선’관련 책들을 찾았다. 역사 책 더미 어딘가에 분명히 몇 권 있었을 거다. 내 기억에 이덕일 저서 몇 권하고 고대사학 매국 어쩌고 하는 책을 분명히 사두었었다. 30여 분 가량 찾았나 보다. 통사하고 고려 관련 책들과 함께 고조선 관련 책을 찾았다.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도서출판 말, 2018)와 김상태의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책보세, 2013).


도대체 내가 왜 리지린의 책을 갖고 있는지 도무지 몰랐는데, 갑자기 5년 전 지인이 동북아 고조선 연구 최고의 책이라고 해서 바로 구입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덕일의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는 책도 찾았다. 이 중에서 가장 자극적인 제목을 단 김상태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거 제대로 짚었다.
김상태의 책은 바로 송호정과 그 무리들(이병도-이기백-노태돈-송호정-이형구)의 책들을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너무 재밌어서 단숨에 읽었다. 김상태의 책을 읽은 최고의 소득은 바로 윤내현이라는 고조선 전문가의 발견이다.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학자였는데, 김상태의 책을 통해 윤내현이 얼마나 위대한 학자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한국 고대사와 그역적들>이라는 책은 저자 김상태가 윤내현의 저서들을 읽고 하도 빡이 쳐서 이기백과 송호정을 비롯한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를 신랄하게 비판한 책이다. 윤내현이 이들에게 당한 학문적 숙청을 김상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윤내현을 대신해서, 윤내현의 이론을 통해 허접한 주류 고대사학계(서울대 라인)를 맹렬히 공격하기 위해 쓴 책이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김상태의 책을 읽다가 보면 나도 모르게 격한 감정이 올라온다. 도무지 고대 사학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이론을 보존하기 위해 새롭게 발굴된 학자의 신선한 이론을 무시하고 비방하며 왕따를 시키는 행태가 꼭 양아치의 짓거리와 닮아 있기에, 도저히 학자들이 세계가 아닌 것처럼 여겨져서다.
김상태의 저서들을 이전에 이미 읽어서 그가 어떤 책을 주로 쓰는지 이미 알고 있었긴 하지만, 이 책에 담긴 비판의 수위는 김상태의 저서들 중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논증이 약간 미비한 지점도 있긴 하지만 이기백-노태돈-송호정-이형구-이덕일 등을 비판하는 저자의 공격 수위는 비판서들 중 단연 발군이라 하겠다.
궁금하신 분들은 꼭 일독해 보면 좋겠다. 정말 재밌고 고조선을 둘러싼 논쟁점과 어떤 게 진실에 근접한 이론인지 이 책을 읽어보면 대충 가닥이 잡힌다. 그리고 고조선에 대해 진실을 파해쳐 보고 싶은 사람들은 윤내현의 저서들을 구입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고조선과 단군은 신화가 아닌 실제한 국가였고, 유물과 사료가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아, 서론이 너무 길었다. 내가 이 페이퍼를 쓴 목적은 김상태가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에서 윤내현을 21세기의 신채호라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의 책들은 독보적이고 위대하다! 김상태의 책을 읽으면 그럴 수밖에 없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윤내현의 책을 살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 페이퍼는 김상태가 윤내현의 저서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나같이 잘 몰랐던 분들에게 윤내현의 저서들과 그의 가치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2013년) 한국 고대사학계가 고조선에 대해서 쓴 논문은 대략 19쪽 분량밖에 안된다. 정식 학술 논문으로 말이다.
그런데 윤내현 한 사람은 그의 첫 논문인 <기자신고>에서부터 시작해서 <한국고대사신론>, <고조선연구>, <한국열국사연구>로 이어지는 고조선 연구서가 자그마치 약 2000페이지를 넘는다. 19쪽 vs 2000쪽, 어디가 밀도가 높고 치밀한 논증구조를 보여주는지 중학생이 봐도 알아본다. (기자신고는 한국고대사신론에 한 장으로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에 관심이 옅은 평범한 대중은 전혀 모른다. 19쪽을 쓴 주류 고대사학계가 통설의 위치를 차지하고 2000쪽이 재야사학(엄연히 단국대 학장을 하고 있었던 교수를!)을 대표하는 이설이 된지가 오래다. 이를 바로 잡아야할 주체가 바로 우리 대중이다. 김상태의 바람도 이와 마찬가지. 그래서 여기 윤내현의 주저들을 김상태의 서평으로 소개하는 바이다.
“윤내현이 어떤 일을 했기에 40년간이나 요지부동이던 주류 고대사학계가 변했는가. 답은 하나다. 윤내현이 하버드대학 옌칭도서관에서 새로운 자료들을 접하고 1983년 제출한 <기자신고>라는 놀라운 논문 때문이다. 이 논문은 중국 고대국가시대, 북경 근처 중국 동북지방 역사(기자조선으로 알려진 고조선 지역의 역사)를 다룬 것으로 남북한을 통틀어, 아니 전 세계를 통틀어 오로지 윤내현만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중략) 평소 조용히 연구에만 몰두해온 것으로 유명한 윤내현의 모든 학문적 역량이 결집된 성과, 바로 이것이 <기자신고>다.” (189-190쪽)
윤내현은 <기자신고>를 발표하고 내심 기대에 차 있었다고 한다. 새로운 사료와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기존의 통설을 뒤집는 논의가 많아 공동연구하자고 제의가 많이 들어올 둘 알았단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학계에서는 통설을 뒤집는 논문이 나오면 그 반향이 커서 그 논문을 검증해 보거나 논의를 확대시키기 위해 공동연구를 하는 경향이 많다.
헌데 한국 고대사학계는 달랐다. 윤내현은 대중을 위한 <한국고대사> 책 말미에 이에 대해 토로했다. 원로 학자에게 논물 발표장에서 심한 욕을 들었고, 후배 학자들에게도 무시당하며 학계에서 완전히 따돌림을 당했다고. 아무리 치밀한 논문을 써도 거들떠도 안 봤다는 거고, 엄연히 단국대 학과장을 하고 있는 강단사학자를 재야사학자로 낙인찍었다.
윤내현은 이를 통해 깨달았다. 공동연구는 먼나라 일이라는 걸. 그래서 이 막대한 작업을 그 스스로 해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기자신고>의 핵심내용이 기자조선이라는 곳이 고조선의 작은 변방이었고 기자조선이 위만에게 멸망당한 곳도 바로 변방의 그 지역이기에 다른 지역에서 생겨난 국가들, 즉 부여, 옥저, 동예 등과 같은 열국이 한반도가 아니라 만주지역에 있었던 걸 증명해야 하기에 그렇다.
“이후(학계로부터 무시당한 이후) 윤내현은 혼자서 나머지 연구를 완성하기로 작정하고 수십 년에 걸쳐, 서기전 2000년 이전의 고조선 시기부터 서기 300년에 이르는 한국 고대사 전체를 재구성했다. <한국고대사신론>, <고조선 연구>, <한국열국사연구>로 이어진 그의 작업은 경이 그 자체다. 이런 인물과 저술은 차후 30년 간 다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신채호 이후 리지린이 등장하기까지 30년이 걸렸으며, 리지린 이후 윤내현이 나오기까지 또 30년이 필요했으니, 남북한 통틀어 이런 인물이 다시 나오려면 다시 30년이 지나야 될 것이다.” (190-191쪽)
여기서 김상태는 윤내현의 연구를 신채호와 리지린과 동일선상에서 놓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조선 연구의 3 거두로 윤내현을 올려놓은 것이다. 이 평가는 책의 후반부에서 더 강조된다.
“윤내현은 이러한 대고조선의 필연성을 거대하고 완벽한 학문체계로 완성했다. 불세출의 거인 신채호의 수원으로부터 시작하여 폭포처럼 격렬한 리지린의 계곡을 지나 윤내현은 대고조선의 평온하고도 광활한 호수를 이루었다. 이것은 그의 대표 3부작으로 연결되는데 규모 또한 엄청나다. <한국고대사신론> 412쪽, <고조선 연구> 904쪽, <한국열국사연구> 734쪽 등의 저서인데 도합 2000쪽이 넘는다. 학술적 활자체로 인쇄된 책이라 이 책들을 소설책 정도의 활자 크기로 다시 출간한다면 분량은 두 배로 늘어날 것이다.” (334쪽)
헌데 이 책들이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김상태에 따르면 지극한 상식 위에 이론이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논증은 상식으로부터 시작할 때 매우 강력하다는 걸 나는 이미 베르그손의 저작들에서 느껴봤기에 김상태가 논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 그가 자신의 저작들을 얼마나 상식적으로 구성했는가를 말해준다. 정말로 강력한 이론은 상식의 치밀성에 있다는 것이다. 윤내현이 이렇게 한 이유의 절반은 대중의 접근을 쉽게 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학문 자체를 위한 것이다. 간결한 상식의 누적이야말로 견고한 이론의 최고 무기임을 웅변한다. 그의 저작에는 현학적 비약이라는 게 없다. 기질이 신채호나 리지린과 달라 격한 감정이나 문체의 유별난 윤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독자를 자극한는 법이 없지만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도무지 지루함이 없는 천일야화에 육박한다. 빈틈없는 학술논문임에도 그렇다.” (336쪽)
나는 김상태가 윤내현의 저서들이 명저가 된 지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한영우의 <우리역사>를 보면 치밀한 통사가 중학교 2학년생이 읽어도 무리가 없게 평이한 서술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술서적의 밀도를 잃지 않고 있다. 윤내현의 저작들도 바로 이러하다는 것이다.
김상태가 자신의 이 책에서 윤내현의 저작들을 극찬해마지 않아 나 또한 윤내현의 책을을 안 살수 없었다. 과장인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3권을 모두 주문해서 그 대표작인 <기자신고>의 10여 페이지를 읽어 보았다. 정말 김상태가 왜 그렇게 윤내현을 상찬해 마지 않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머지 저서들도 차근차근 읽어나갈 것이다. 사실 이 3권만 읽으면 고조선의 실체가 꽉 잡힐 듯하다. 교과서의 어느 부분이 부실한지 주류 고대사학계가 어떤 맹점을 갖고 있는지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확실한 도구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 이 책들보다 더 자세한 고조선에 관한 연구는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윤내현의 저서들을 읽어 보기 바란다. 그런 후 주류 고대사학계의 저작들을 읽어 보고 비교 판단해 보자.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책들을 읽으면 밝혀질 거다. 고조선과 단군이 과연 만들어진 신화인지 윤내현의 저작들을 읽고 나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게 정설이 될 거니까.
덧.
1. 윤내현의 주저 3권과 저서들을 모두 꼼꼼히 읽는 데에는 1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김상태가 직접 읽고 내린 판단이니, 각자 3권만 읽으면 1년도 안 걸린다는 얘기다. 이 1년의 장벽이 현재 주류 고대사학계가 거짓으로 활개치고 다니는 현실이라니, 어여 읽어보고 그 말이 맞는지 판단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독서활동이지 않나 생각한다.
2. 만일 한 나라의 역사의 뿌리를 증명하는 학문적 검증에서 1설이 3개 정도의 증거가 있고 2설이 3개 정도의 증거가 있다고 할 때, 1설은 자신의 역사를 축소하는 증거고 2설은 자신의 역사를 확대하는 역사적 증명이라면,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 나라 학계는 어떤 학설을 정초시켜야할까? 어려운 질문일까? 당연히 2설이지 않을까? 그러지 않는 나라가 이상한 나라다. 그런데 2설의 증거가 1설의 10배라면? 당연히 2설이 통설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헌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는 1설의 통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2설은 재야설로 치부되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정말 이상한 학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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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9-26 공감 (21)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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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가 1962년 북에서 간행되면서 북한 사학계에서 ‘낙랑군=평양설’은 자취를 감추었다. 중국의 방대한 문헌 사료는 물론 중국에서 출토된 여러 고고학 사료들을 가지고 고조선의 강역이 때로는 중국 하북성까지 걸쳐 있다가 요녕성으로 후퇴했다고 논증했는데, 평양 부근의 일부 고고학 유물들, 그것도 일제의 조작설이 만연한 고고학 유물들을 근거로 ‘낙랑군=평양설’을 펼치는 주장은 더 이상 학문적으로 설 자리가 없었다.
《고조선 연구》 8장의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 본 고대 조선 문화의 분포〉에서 리지린은 중국 요서·요동지역 의 고고학 발굴결과까지 광범위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중국 요령성 지역에서 발굴된 여러 유물들을 가지고 고조선 강역이 지금의 요서지역까지 차지했다고 주장했으며, 방대한 문헌 사료는 물론 다양한 고고학 자료를 가지고 대륙 고조선설과 한사군 요동설을 주장했다.
이처럼 북한 학계는 해방 후 거의 15년 이상에 걸친 치열한 논쟁을 거쳐 ‘낙랑군=요동설’을 확립시키면서 ‘낙랑군=평양설’을 무너뜨렸다. 남한 학계가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한 논쟁다운 논쟁 한 번 하지 않고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낙랑군=평양설’을 100년 전에 확립된 ‘정설’이라고 우기는 사실에 비춰보면 이채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를 번역하면서 느낀 것은 북한의 역사학자 들은 해방 직후부터 자신들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 초반에 일제 식민사관은 말할 것도 없고, ‘대국주의 사상’, ‘대국주의 사가’ 등의 용어로 중화패권주의 사관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나아가 중국의 대국주의적 봉건 사가들과 조선의 사대주의 사가들의 학설이 일치한다고 비판한 것도 새로웠다.
지도교수인 북경대 고힐강 교수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맥은 흉노’라는 고 교수의 설도 조목조목 비판하는 학문적 기개 앞에선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남한과 북한을 막론하고 우리의 눈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면 갖게 되는 필연적 역사관이지만 그 시기가 1960년대 초반이었던 것이다.
《고조선 연구》가 우리 학계의 고질병이 된 친일·친중 사대주의 역사관을 청산하고 우리의 관점으로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는 한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그간 교과서에서 주입시킨 북한의 역사학, 고조선의 실체가 궁금했던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이덕일 (해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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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에 관한 리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김*영 | 2019-09-15
원문주소 : https://blog.yes24.com/document/11626314
학창 시절 국사 시간. 한 두 페이지로 배웠던 고조선.
2000년 이상 장대한 기간 동안 존속하였지만 그 장대한 기간에 비해 고조선에 대한 지식이나 고찰은 백지장 수준이었다. 독자는 무지한 고조선의 역사를 고찰하기 위해 이 책을 구매한 것이다.
고조선 연구로 저명한 북한 학자가 있다. 그는 바로 리지린이다.
남한 학계에서 고조선을 연구하는데 큰 파장과 영향을 준 논문이 바로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이다.
리지린은 고조선은 평안남도에 존속한 소국이라 주장한 남한 학계의 주장과 상반된 주장을 하였다.
그는 요하 일대에 존속한 대국이라 주장하였다. 실제로 요하 일대에 다수의 고조선의 문물이 출토되었고
남한 학계는 고조선 영역 범위를 요하로 수정하였다. 이와 같이 리지린은 설득력 높은 학설을 주장하였고
남한 학계 고조선 연구에 큰 파장과 영향을 준 것이다.
중화주의, 일제식민사관에 의해 말살 되고 파괴된 우리 한민족의 고대사를 광정한 데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욱 더 활발한 고조선 연구로 우리 민족의 뿌리인 국가 고조선의 정체성과 올바른 고조선사가 제작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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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우리 역사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장* | 2021-04-19
원문주소 : https://blog.yes24.com/document/14234322
남한의 주류 역사학계는 일제 식민사학에 지배당하고 있다. 그에반해서 북한은 다른거 같다. 우리보다는 훨씬 주체적이지 않나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소수지만 고조선을 부정한다거나 단군왕검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예전에 뉴스를 통해서 보았듯 단군 동상을 훼손하거나 하는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교육도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 주류역사 학자들이 식민사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식민사학에 반격하는 민족사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아직 미약한게 사실이다. 신채호 박은식 등 민족사학자들께서 지금의 우리 역사학계를 보시면 분통을 터트릴 것이다. 올바른 우리 역사를 찾자.이건 민중의 열의와 각성과 힘과 응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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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고조선 연구에 리지린이 있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스*류 | 2021-10-17
원문주소 : https://blog.yes24.com/document/15255747
한참을 별렀던 책을 마쳤다. 북한 역사학자 리지린의 <고조선연구>이다.
우리 고대사에 흥미를 가진 독자라면 리지린은 한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고조선 등 고대사 분야에 있어서 한발 앞선 독보적인 연구성과를 냈을 뿐만 아니라 고대사 연구의 방향을 정립한 학자이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 학자라는 이유로 그의 연구와 저서를 접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은 여러가지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첫째, 무엇보다 북한학자의 연구저서를 올곧이 접할 수 있었다. 단국대 윤내현 교수가 리지린의 저서를 읽었다는 이유로 당국의 조사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만큼 북한의 학문은 가깝고도 멀었다. 지금 리지린의 책을 공개적으로 읽을 수 있는 건 독자로서 행운이고 다행스런 일이다.
둘째, 고조선 연구의 기본 줄기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간 국내에서도 다수의 학자들이 고조선에 대해 연구하고 책을 썼지만 아쉬운 점이 많았다. 연구의 토대가 부족하거나 이슈 논쟁으로 치우쳐버리기 일수였다. 리지린의 책을 읽고, 이어서 윤내현의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그런 아쉬움과 갈증 때문이다. 기대했던 것만큼 <고조선 연구>는 고조선 연구의 뿌리를 보여주었고, 앞으로 고대사 연구가 나아갈 방향까지 정확히 제시해주고 있었다. 특히 남한 학계가 여전히 일제의 역사학에서 한발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그가 정리한 고조선과 주변국의 역사, 예족과 맥족의 뿌리, 중국 봉건사가들과 한반도 사대주의자의 그릇된 사관, 식민사관의 맹점 등은 책이 나온지 반백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정확하고 날카롭다.
셋째, 북한 역사학의 한계도 파악할 수 있었고, 남북간 교류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리지린이 왕성한 학문활동을 하던 1950~1960년대는 남북간 정치군사적 대립이 격렬했던 시기이고, 북한의 모든 학문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경도되어 있던 시기이다. 따라서 리지린의 저서에서도 고대의 정치적 흐름과 변화를 마르크스-엥겔스의 유물사관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자주 목격된다. 전제군주가 나타나기 이전의 군사민주주의, 계급국가의 출현과 민중의 계급투쟁, 아세아적 공동체 등의 낯설은 어휘와 해석은 독자를 부담스럽게 한다. 뿐만 아니라 1961년에, 그것도 북한에서 쓰여진 논문인 탓에 이덕일 선생의 해역과 편집이 없었다면 독서는 더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이 있고, 갖고 싶은 책이 있다.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는 후자이다. 오랫동안 곁에 두고 자주 펼쳐볼 책이다. 윤내현의 책을 읽고 비교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역사공부는 어렵기도 하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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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군부독재 시절이였다면 읽을 수 없는 명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골드 b******6 | 2021-07-08
원문주소 : https://blog.yes24.com/document/14694762
1960년 북한학자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깊이 있고 발전적인 연구를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다행히 이런 시대에 살고 있어서 이런 명저를 읽을 수 있군요! 이책을 읽으면서 남한은 식민사학자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따름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식민사관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고조선의 역사가 하루 빨리 바로 잡히고 우리 국민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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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 2022-06-29
원문주소 : https://blog.yes24.com/document/16491125
대륙 고조선을 찾아서
- 잃어버린 대륙을 되살린 고조선 연구 -
일제식민사관, 중화대국주의사관을 뿌리째 뽑아버린
북한역사학자 리지린의 명저를 역사학자 이덕일의 해제로 만나다
중국 봉건 사가들에 의하여 왜곡된 사료에 일방적으로
의거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우리나라 봉건 사회의
조건하에서는 아무리 선진적인 학자일지라도 그 영양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일제 통치기에는 실학자들이 시도했던
고조선 연구는 중단되었고
우리 고대사는 완전히 말살되었다.
그들은 봉건 사가들이 왜곡해 놓은 사료를 자기들의
이익에 맞게 다시 손을 대어 더욱 왜곡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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