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명예훼손 무죄’ 박유하 교수, “한국사회 ‘지성의 힘’ 보여준 판결… 학문의 정치화 유감”
김도언 시인(소설가)
2023-10-28
고발했던 나눔의집 소장은 감옥에
기소했던 검사는 다른 데 가 있고
저만 남은 아이러니한 상황이에요

근 10년을 기다린 판결 아닌가. 대법원에 사건이 올라가 있던 기간만 6년. 결국 오랜 기다림 끝에 무죄취지 파기환송 선고를 받아낸 박유하 교수의 목소리는 소녀처럼 상기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들뜬 기운에도 자신의 감정을 계속 제어하려는 특유의 중용적 태도도 느껴졌다. 그는 대법원에 동행해준 변호사 및 지인들과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신 후 막 집에 들어온 참이라고 했다.
나는 다분히 박 교수의 인간적 소회가 제일 궁금했다. 법정에서 선고를 들은 직후의 감정은 어땠을까.
“먼저 안도감과 기쁨을 느꼈어요. 일본에서 일부러 들어온 아들도 옆에 있었거든요. 같이 했던 분들에 대한 고마움도 느꼈고요. 법정에 앉아 있을 때도 전혀 안심이 안 됐어요. 대법관이 여러 건을 선고했는데, 다른 건들은 대부분 기각이 선고되더라구요. 그런데 파기환송이 나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순간 옆에 있던 분들과 손을 잡았어요.”
박 교수는 그간 대법 판결 지연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면서 어서 손과 발이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말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파기환송된 2심 등 아직 남은 재판들이 있지만 이제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얻게 될 터,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사실은 미국 모 대학교와 이야기가 되어 1년 정도의 예정으로 나갈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아 계속 유보 상태였죠. 자유가 없으니 삶의 계획을 세울 수 없었던 거에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한일관계를 좀 들여다보고 싶어요. 한국과 일본은 너무 가까운데, 좀 멀리서 두 나라의 역사를 톺아보고 싶어요. 오늘 대법 판결이 났고 이제 다시 2심 판결이 나와야 하고 민사도 시작되는데 그게 다 끝나면 나갈 수 있겠죠.”
복기를 해보면 2014년 나눔의집 안신권 소장의 돌연한 고발로 시작된 <제국의 위안부> 사태는 이후 예상치 못한 검찰의 기소, 그리고 1심 무죄를 뒤집는 2심 유죄 선고의 불운으로 이어졌다. 대법원의 무죄취지 파기환송 선고를 받은 지금, 자신에게 고난을 안겨준 그 당사자들에게 박 교수는 어떤 감정을 갖고 있을지 궁금했다.
“감정 같은 앙금은 없고요. 지금 보니 고발을 했던 나눔의집 안 소장은 횡령죄로 감옥에 가 있고, 나눔의집을 대리했던 고문변호사도 지금은 위안부 관련해서 현장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고, 저를 기소했던 검사도 다른 데 가 있는 것 같더라구요. 당사자들은 모두 사라지고 저만 남아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에요.”
정말 상징적이다. 한 사람의 양심적 학자에게 삶이 망가질 수도 있는 고초와 모욕을 안길 정도로 강고한 신념을 가진 것으로 보였던 사람들이 지금은 모두 증발된 듯 사라졌고 오로지 박 교수만이 여전히 가시밭길을 헤쳐온 자부심으로 다시금 위안부 문제, 한일역사문제를 파고 들겠다는 것이.
끝으로 박 교수에게 자신을 응원하고 지지했던 분들, 그리고 오해하고 반대했던 분들에게 한마디씩 해달라고 했다.
“대법원 판결이 내년 여름쯤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늘 판결이 나온 것은 여론이 조금씩 바뀌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저를 지지하고 응원해준 분들의 반짝이는 생각과 지성 덕분에 이런 결과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일본에게도 우리 한국 사회 지성의 힘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를 오해하고 반대한 분들 중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반 대중이나 언론, 그리고 운동가들에 대한 감정은 별로 없어요. 다만 학문을 정치화했던 일부 학자들에게는 다소 유감을 표하고 싶어요.”
판결이 있기 전 박 교수는 사흘을 앓았다고 했다. 전날 밤에는 잠도 못 이뤘다고. 그가 이제 평안 속에 거하기를 나는 바라지만 내 직관으론 박 교수는 다시 학자적 양심의 명령을 받아 또 다른 가시밭을 찾아 헤맬 것만 같다. 거기에 이제 영광만 있기를.
김도언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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