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6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 화가 1000명도 넘어…외면하면 반쪽 미술사” : 네이버 뉴스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 화가 1000명도 넘어…외면하면 반쪽 미술사” : 네이버 뉴스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 화가 1000명도 넘어…외면하면 반쪽 미술사”
기사입력 2019-01-26 05:02 기사원문 스크랩

‘일본 화가들 조선을 그리다’낸 황정수씨 인터뷰가타야마 탄 '구(언덕)'. 운보 김기창의 '엽귀'와 구도와 색감 등에서 유사성이 느껴진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에는 극악했던 식민지 통치 관료층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많이 살았다. 사업가, 교사 등 다양한 직종이 있었지만, 화가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은 우리에게 여전히 거의 백지상태로 남아 있다. 자료의 부족 때문이기도 하지만, 금기시된 탓이 더 클 것이다. 올해는 1919년 3·1만세 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콤플렉스로 점철됐던 한일관계에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점에 의미 있는 책 한 권이 나왔다. 미술품 컬렉터이자 근대미술 연구에서는 재야의 고수로 통하는 황정수(61) 씨가 최근에 낸 ‘일본 화가들 조선을 그리다’(이숲 출판사)가 그것이다.

황 씨를 최근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36년간 1000명 이상의 화가들이 식민지 조선에 왔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배제한 미술사는 반쪽 미술사다. 누군가는 그 나머지 역사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책은 일제강점기 한국 미술계를 주도한 일본인 화가들의 활동을 조사 연구한 것이다. 조선총독부 통치에 협력하러 내한한 일본인 미술 교사부터 순수하게 화가로 활동하기 위해 온 화가,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화가, 여행과 관광을 위해 찾아 풍경 그림을 남겼던 화가 등 몇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운보 김기창 '엽귀'.

이를테면 1904년에 통감부 관료이자 일한인쇄회사 고문격으로 내한한 뒤 일본에서 배운 미술을 바탕으로 사설 미술 아카데미인 화숙(畵塾)을 차린 시미즈 도운, 일본인 화가로서 한국 학교의 미술 교사로 처음 부임한 코지마 겐자부로, 1932년 경성의 시장 풍경을 그린 야마구치 호슌, 조선미술전람회 초대 심사위원을 지낸 가와이 교쿠도, 금강산 그림을 많이 남겨 ‘금강산을 사랑한 화가’로 불리는 도큐다 교쿠류 등에 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저자 황정수씨.

일제강점기 미술 연구는 그동안 활발했지만, 일본인 화가들에 관한 연구는 배제돼온 측면이 있다. 강민기, 황빛나 등이 2000년대 중반 관심을 가지기는 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고 지속해서 이어지지도 못했다. 반일 감정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일본인 화가 연구는 사실 썩 매력적인 연구 주제는 되지 못했다. 또 그림은 빠진 채 문헌 중심의 연구에 머무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등장하는 일본인 화가만 80여 명이 되고, 그들이 그린 그림은 120여 점이 수록됐다. 한국 작가까지 포함하면 총 도판은 500점 정도 돼 한일 작가가 영향 관계를 독자들의 눈으로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 가운데 저자의 일본인 화가 컬렉션은 100여 점이 된다고 했다.



미술애호가인 그는 어쩌다 연구자들도 외면하는 일본인 화가들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그는 “김환기, 이중섭, 이중섭, 이규상 같은 우리 근대 화가를 좋아했다. 이들이 모두 일본에 유학을 한 사람들이라서 점차 일본 미술로 관심을 넓혀가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제강점기에도 한국에 많은 일본인 화가들이 있었다. 예컨대, 조선총독부가 만든 공모전인 조선미술전람회에는 일본인 화가들이 더 많이 참여했는데, 우리 학계에서는 한국 화가만 다루고 일본인들의 미술은 거의 언급하지 않더라. 이를 다루지 않는 한국미술사는 반쪽 밖에 안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중등학교 미술 교사를 다 일본인들이 했다. 장욱진 유영국 권옥연 이대원 등 유명한 화가들이 경성 제2 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모두 미술 선생인 사토 구니오 선생의 영향을 받았다. 한국에서 서양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유학 간 게 아니었다. 그들을 격려해준 일본인 화가들이 있었다. 그런 현실을 알아야 한다. 하늘에서 천재가 떨어진 것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토 쇼린 '조선 여인'.

돌이켜보면 이 책의 출간으로 이어진 계기는 도쿠다 교쿠루의 금강산 그림의 발견이다. 조선 후기 선비들 사이에서도 금강산 유람 열풍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인들의 금강산 기행 열풍이 있었다. 이런 수요를 겨냥해 금강산 사진첩을 낸 덕진사진관도 있었고, 일본인 화가들도 금강산 그림이 즐겨 그렸다. 도쿠다는 그런 화가 중의 한 명이다.

황 씨는 “미술품을 수집하다 보니 일본 사람들이 그린 한국 풍경을 보게 됐다. 단지 식민 통치의 협조하기 위해 한국에서 산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살면서 우리의 자연과 풍속을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한국미술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한 점 두 점 모으기 시작했고, 다 조선미전에 참여한 사람들이라서 그러면 일제강점기 한국미술사의 한 부분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야마카와 슈호 '조선 부인'.

일본인 화가들이 그린 식민지 조선의 그림은 20년 전부터 모으기 시작했다. 특히 금강산을 그린 도쿠다 교쿠루, 조선미술전람회에 제1회부터 23회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품하고 상을 받은 가토 쇼린의 글을 쓰면서 이런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10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미술 애호가 미술 연구로 확장된 경우다. 저자는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했고 고교교사로 10여 년간 근무했다. 퇴직 후 에는 미술애호가로 사는 삶이 밑천이 돼 고미술 경매회사인 옥션 단에서 일하기도 했다.

도쿠다 교쿠류 '금강산'.

이런 미덕에도 불구하고 책은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분명 일본인 화가들을 주제별로 분류할 수 있음에도 1장에서 45장까지 평면적으로 목차가 구성돼 입체적인 읽기를 방해한다. 또 미술책에서는 실린 도판의 실제 크기와 재료, 소장처 등이 분명히 표시해야 함에도 제대로 되지 못했다. 이는 ‘최초’의 의미가 있는 이 책을 다른 연구자들이 참고할 때 결함이 될 수 있다.

책은 인터넷 미술정보회사 홈페이지에 3년간 연재했던 것을 묶은 것이다. 원고는 3년 전 완성이 됐지만 마땅한 출판사를 구하지 못했다. 저자는 “한일관계가 좋지 않아 출판사마다 출간을 꺼렸다. 다행히 이숲 출판사와 연결이 됐으나 다급하게 내는 바람에 디테일이 부족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3·1만세 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에게 한일문제에 관한 이분법적 사고의 극복을 요구하는 책이다.

도쿠다 교쿠류 '금강산'. 모두 저자 제공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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