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8

1901 진명행의 역사저널 -영화 『말모이』


진명행의 역사저널

영화 『말모이』가 관람객 100만을 넘어 흥행 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자고로 반도에서 반일 마케팅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2월 예정인 『자전차왕 엄복동』은 그 릴레이를 무난히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
문제는 그런 반일 마케팅의 이면에는 우리도 모르게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역사왜곡은 물론이고, 국민적 증오의 감정을 소비케하여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치부하려는 세력들의 얄팍한 의도가 숨겨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
『말모이』 를 보면, "우리말이 금지된 1940년대"라는 타이틀로 광고가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말이 금지된 적은 없다.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에 의거 일본어 상용화가 장려되고 보급운동이 있었던 시기를 그렇게 말하면 왜곡이 된다.
.
말모이 조선말 사전은 1911년 조선광문회에서 편찬을 시작했다가 핵심멤버들의 사망과 망명 등 유고 사태를 맞이하면서 거의 완성단계에서 좌절하고 만다.
.
그러다가 계명구락부라는 단체에서 말모이 사전의 남은 원고를 찾아 받아 사업을 이어가는데, 몇번의 재정난 끝에 다시 조선어학연구회로 넘어갔다가, 최종적으로는 조선어학회에서 이를 간수하게 된다.
.
아이러니하게도 말모이 사전은 친일파 육당 최남선이 주도한 조선광문회와 계명구락부에서 만든 사전이고, 계명구락부는 돈을 대던 회원들이 1930년 후반부터 친일로 변절하면서, 더이상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시발 사전이고 뭐고 때려치운 뒤 결국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에 가입하여 황국신민화 정책에 적극 동조하게 된다.
.
이 사업을 이어받은 조선어학연구회 역시 사전 편찬사업을 주도하던 박승빈이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순회 강연반 연사에 선임되어 강연활동을 벌였고, 1941년에는 조선임전보국단의 평의원이 된다.
.
영화 『말모이』에서는 사전편찬에 참여한 인사들이 민족혼에 부들부들 주화입마된 애국지사로 그리고 있지만, 실상은 대부분 일제 말에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다 (이극로, 정인보, 오세창, 변영로 등)
.
영화에 등장하는 조선어학회 지하에 보관된 10년간에 걸쳐 수집했다던 방대한 자료들은 사실 친일로 변절한 계명구락부 소속 위원들이 모은 자료인데다 자료 대부분은 총독부에서 펴낸 조선어사전 표제어 카드이다.
.
이렇게 방대한 10만의 어휘를 수집해놓았다고 하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뜻풀이하고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사전편찬 작업은 결국 조선어학회로 공이 넘어가게 된 것이다.
.
영화 『말모이』에서는 일제의 탄압으로 사전간행 사업이 갖가지 고초를 받게 되고, 주인공 판수는 사전 원고를 지키려다 우체국 창고에 숨긴후 총에 맞아 죽는 걸로 나온다.
.
그러나, 일제는 사전편찬 사업 자체를 방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말모이 사전 편찬사업이 진행되던 1911년에 총독부의 취조국에서 시오카와 이치타로(鹽川一太郞)를 주임 담당 사무관으로 하여 국일문 혼용 『조선어사전』을 관제편찬하기도 하였다.
.
영화에서는 1911년 말모이 사전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시대적 배경은 1940년대이며, 이 시기에 조선어학회가 간행한 사전은 『조선말 큰사전』이다.
.
영화에서처럼 소매치기 전과자 출신 포함 6명이 동네 만화방 같은 곳에서 모여 만들지 않았고, 전국에서 기라성 같은 대학자들이 참여하여 만든 사전이다.
.
이 사전은 영화의 내용과는 달리 일제의 공식 허가를 받아 박문출판사(대동인쇄소)에서 200여페이지 조판이 된 상태로 교정작업 중에 있다가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지면서 사업이 공중분해 된 상태로 해방을 맞게 된 것이다.
.
원고는 분실하였다가 해방 후 서울역 운송부 창고에서 발견되어 1947년 10월 9일에 그 첫째권을 을유문화사에서 조선말 큰사전이란 이름으로 간행하게 된다.
.
『말모이』 한편 보고 느닷없이 애국자가 되신 분들이 많은데, 역사는 영화나 드라마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

Comments

김병중 역사를 너무 왜곡하여
영화를 만드는 것은
정치적의도나
사업적 책략이 숨어 있는데
이걸 관람자들은 역사적 사실로 믿고 있으니
걱정이 됩니다

Manage

Reply3d

최기윤 말모이 감독이 택시드라이버 감독이에여.. 말다했져?

Manage

Reply1w

진명행의 역사저널 최기윤 반일민족주의가 반드시 타파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주사파들은 국민의 공적인 반일민족주의를 자양분으로 먹고 자라납니다.
Manage

Reply1w

주정환 일제 시대 일본 경찰은 무조건 총질했나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미국 서부 개척시대 때에
인디언한테 총질하듯 쏴대는
장면이 많아서요.

Manage

Reply1wEdited

진명행의 역사저널 주정환 비무장, 비저항 민간인에게 그렇게 총질을 했다는것도 중대한 왜곡중 하나입니다. 일제시대 경찰이 무슨 악당입니까? 대부분은 조선사람들이 경찰을 했는데요.

Manage

Reply1w

Ji-Hoon Kim 제암리 학살사건은 비무장,무저항 민간인에게 일본군이 총질하고 학살한 대표 사건입니다

Manage

Reply1w

진명행의 역사저널 Ji-Hoon Kim 그건 전국토가 준전시와 같은 폭동의 상황에서 발생한 일본군의 오버였죠. 예외적인 케이스를 일반화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식으로 따지자면 우리나라 군경도 예비적 학살범들입니다.

Manage

Reply1w
Son Jun-su 1910~20년대까지 무장경찰을 동원한 강압정치를 했었습니다.그러다 3.1운동을 기점으로 무력으로만 제압하는게 만사는 아니다 싶어서 '문화통치(내선일치도 비슷한 개념)'명목하에 '수용&포용하는척'하며 총만 안들었을뿐 지능적으로 억압했습니다.(영화 밀정에서 송강호와 송강호 제끼려는 부관이 조선인인점.밀정이 공유와 생사 고락을 함께한 동지였다는점등).

그러다 30~40년대에 1/2차 대전으로 약탈정치를 하게 됩니다.3.1운동하는 조선인을 무력제압한게 왜곡입니까 사실입니까? 40년 강점기간동안 only 무력통치한건 아니지만 '왜곡'이라면서 분명히 있는 학살/총칼정권이 없는게 되는것도 아닙니다.

Reply1w

SungKoo Chang 감사합니다. 우리말큰사전 전 6-7권 되지요. 어릴때부터 집에있어 신기했었습니다. 어머니깨서 결혼전 직장생활할때 장만하셨다고 하세요.

Manage

Reply1wEdited

진명행의 역사저널 SungKoo Chang 사전편찬 작업 자체는 열악했던 당시 여건 때문에 온갖 우여곡절과 고난이 따랐을 것입니다. 편찬자들의 숭고한 뜻과 노고는 역사적이고, 치하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식으로 왜곡하거나 과장한다는 건 그분들을 욕되게 하는 짓이죠.

Manage

Reply1w

SungKoo Chang 맞습니다. 이런식으로 과장 왜곡도 참 싫고, 야생화 이름 찾다보니 1937년에 한국인 최초로 한글 식물명을 정리해서 펴내신 분 친일파로 몰아가는 것도( 우리말 있는데 놔두고 일본어 적당히 번역해서 이름 붙였다고 몰아가는 분들 있습니다) 참 답답합니다.

Manage

Reply1w

진명행의 역사저널 SungKoo Chang 어디 그분 뿐이겠습니까 ^^ 부관참시 당하는 분들도 수두룩한데요.

Manage

Reply1wEdited

이근호 덕혜옹주가 독립운동 했다는 허무맹랑한 영화도 나와서 많이 팔아먹었던 나라니 그냥 그러려니합니다. 에효

Manage

Reply1w

진명행의 역사저널 이근호 덕혜옹주 실물을 보고 ㅂㄷㅂㄷ. MBC TV 에서는 이우도 독립운동했다고 뻥을 칩니다.

Manage

Reply1wEdited

Junghwa Yoo 엄복동도 어린시절에 픽션 에피소드좀 넣고, 그냥 경주에서 일본인 이긴 것까지만 만들고 끝이겠죠. 이제 플롯도 전부 클리셰.

Manage

Reply1w

진명행의 역사저널 Junghwa Yoo 100% 말씀하신대로 전개된다에 518원 겁니다.

Manage

Reply1w

Faith Lee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로 배우고 있지요. 아니라고 하면서도 제대로된 역사적 사실을 알아볼 의지는 없고요..

Manage

Reply1w

진명행의 역사저널 이신영 부화뇌동 하기를 좋아하는 민족성 탓이 아닐까요. PD수첩 보고 너도 나도 길거리로 쏟아져나와 죽기싫다고 외치는 모습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Manage

Reply1w

이세형 일제 이전에 조선인이 교육다운 교육을 받은적이 있던가...

Manage

Reply1w

진명행의 역사저널 이세형 빙고~ 입니다. 일제초기 조선인 문맹률 조사자료를 보면 ㄷㄷㄷ

Manage

Reply1w

김재걸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Manage

Reply1w

진명행의 역사저널 김재걸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Manage

Reply1w

Jeong Chang Hoon 글을 퍼가고 싶습니다. 허락하실려나?

Manage

Reply1w

진명행의 역사저널 정창훈 넵, 퍼가시라고 쓴 글입니다. 출처만 남겨주시면 됩니다.

Manage

Reply1w
Nam-Young Kim 평상시에 쓰는 생활언어와 교과서나 각종 서적에 인쇄되는 문자화된 언어는 차이가 있다.
36년동안 '내선일체' 동화정책에 의해 지배됐던 조선은 지식인 계층부터 일본식 문자언어를 통해 배울 수 밖에 없었다.
'국가', '정부', '국민'등의 개념조차 없었던 패망 군주국가에서 한글사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화란어를 일본어로 번역한 화일사전을 통해서 문자언어를 학습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국어사전'은 애당초 만들어질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 7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도록 한글은 중요한 어원들을 찾아내고 바른 한국어를 만들어가는데 이르지 못한 게으름과 무관심에 의해서 그냥 쓰기에 편한 표음문자라는 평가를 받는 데 머물게 됐다.
해방을 조선인의 힘으로 이루지 못했듯이 한국어 사전도 일본의 영향을 받고서야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본다.

Reply1w

이종석 애초에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이겠죠.솔직히 그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는 수박 겉핥기식 애국이라면 저는 정중히 사절합니다.

Manage

Reply1w

Hwajin Son 말모이가 사전이구만요.
거짓말 대잔치를 오늘도 깨트림
내선일체가 온화한식민지?
좌표 였다는 것을 요즘에야 알게됨요.
감사합니다.

Manage

Reply1wEdited

YoungTon Chun Hwajin Son 온화식민지라기 보다는 식민지 정책에는 약탈형과 토착 착취형이 있는데 일제는 토착착취형을 택하여 교육시키고 훈련시켰다고 봅니다.
영구 지배를 위해서.
그런데 이런 토착착취를 위한 교육과 훈련이 한국의 근대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역사적 팩트는 이것입니다.
그래서 의외로 강압적 억압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덜했다고 합니다.문화나 우리말과 한글 등도 지배를 위해 어느 정도 인정해주고 미개한 미신 같은 풍속은 억압했겠지요.
물론 일제 식민지이니 사회적 신분상승의 인간 기본욕구에 따라 일본의 문화와 제도를 따를려고 노력하고 선생님들도 그렇게 가르쳤을 겁니다.

Manage

Reply1w

Hwajin Son YoungTon Chun 잘 읽었습니디.

Manage

Reply1w

김형회 요즘 오락영화 아니면 볼게 없습니다.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작품(그냥 영화라고 해두죠)은 보고나면 머리가 혼란스러워서...

Manage

Reply1w

박수완 '말해 모해 이년아' 의 줄임말인줄

Manage

Reply1w

강한주 박준용 ㅎ 애국심은 반일에서부터인걸로 합시다

Manage

Reply1w

허미택 사기성이 짙어야 흥미끌고 흥행되고
어쩔시구 ?

Manage

Reply1w

Ji-Hoon Kim 덕혜옹주 영화보다는 말모이가 그래도 괜찮은 영화같습니다.덕혜옹주는 너무과장이 심했죠.

Manage

Reply1w

TaeKwan Shin 반일영화는 뭐 거의 하나의 장르가 되었네요

Manage

Reply1w

김영재 따봉드링니다

Manage

Reply1w
채진철 주장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말씀하시는 내용들의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일본어가 상용화되었다...라고 하셨는데 상용화라는 의미를 제대로 알고 쓰신건가요? 
상용화라는 말자체는 '널리 쓰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널리 쓰이게 된다는 것에는 강압이 아닌 선택과 필요에 의한 '자발적' 사용을 전제로 하는 개념입니다. 
언어는 국가의 존립을 좌우하고 국민(백성)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만약 말씀하신대로 일본어가 상용화되었다면 독립이 없었을 수도 있고, 독립의 필요성 마저도 절실히 느끼는 일이 없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요. 
대체 무엇을 근거로 조선말 사용에 대한 탄압(금지)이 없었다는 등의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역사는 드라마나 영화로 배우는건 아닌게 분명합니다만,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나 출처도 없이 상식을 파괴하는 주장도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Manage
Reply1wEdited
Suktae Oh 채진철 조선어 사용이 전면 금지되었던 적은 없습니다. 당장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가 조선어였죠.
Manage
Reply1w
채진철 오석태 저는 전면금지란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일제시대에 교육기관에서 조선말을 가르치는 교육행위가 금지되었다고 배웠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내용은 지금의 교과서에도 있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피드만 보면 일본이 한글교육을 금지시켰다는 것이 거짓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건 저뿐일까요?
Manage
Reply1wEdited
진명행 채진철 교과서에 나오는 바로 그 얘기가 잘못되었다는 취지로 쓴 글입니다. 상용화에 대한 일반 개념은 님의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빈다. 소위 일제 정책에 국어의 보급과 상용화는 수용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시행된 면은 있지요. 그러나 그 정책적 효용성과 강제성이 법에 의해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않고 무산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Manage
Reply1w
채진철 진명행 교과서에 나온 그 얘기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을 하시려면 그 근거를 제시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제가 배운 역사교과서는 보수정권 하에서 편찬된 교과서였고, 진보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지금의 교과서도 해당내용을 동일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의도가 개입될 문제가 아니기에 역사적 사실을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에 가치를 둔 것이라고 저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상용화에 대한 일반개념이 제 자의적 해석이라고 하셨는데, 상용화라는 단어가 타인의 강압에 의해 이용할 때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건가요? 그게 상식적인 사고이신가요?
만약 제가 말한 교과서에 나온 부분이 잘못된거라고 생각하시면 그것만 말씀하시면 되는데 굳이 상용화를 제가 자의적으로 해석한거라고 말씀하실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요? 교과서가 잘못된 부분만 잘설명하시면 상용화는 굳이 반박하지 않으셔도 자연스레 문제가 해결되는데 그부분까지 상식을 무너트리면서 반론을 제기하시는건 반론을 위한 반론이라는 생각밖에는 안 드는것 같네요.
Manage
Reply1w
Hyun Suh 서현 채진철 상용화를 자의적으로 해석 하시네요.
Manage
Reply1w
채진철 Hyun Suh 서현 그럼 어떻게 해석하는 게 맞나요? 설명해주시죠.
Manage
Reply1w
진명행 채진철 상용화는 일제의 기준으로 보급 및 상용화라고 앞에서 설명드렸습니다. 거기서 무슨 자발적이니 강요니 하는 개념이 나옵니까? 일제가 일본어를 범국민적 사용을 장려하고 권고하겠다는 취지의 상용화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일제의 이러한 상용화 정책은 실패합니다. 강제로 팔모가지를 비틀고, 일본어 안쓰면 무지막지한 법의 철퇴를 가했다면, 저런 처참한 문해독률 성적은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Manage
Reply1w
진명행 채진철 정치권에 의한 반일 민족주의 노선은 좌우 진영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승만의 일민주의 이래로, 우리나라는 단 한번도 반일 민족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난 일이 없습니다. 교과서도 당연히 그렇게 집필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버젓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사진조차 현재 교과서에 싣고 있습니다.
Manage
Reply1w
채진철 진명행 진명행 저는 제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이 틀렸다고 생각하시는 분께 그 근거가 무엇인지 이야기 해주십사 거듭 부탁드리는데 근거는 없고 개인적 주장만 계속 펼치고 계십니다.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설득하지 않으시는건지 못하시는건지 모르겠네요. 
오늘날까지도 일본을 덮어두고 적대국으로 몰아세우는 것에 반감을 느끼는 사람중 하나인데, 설득을 전혀 못하시는 느낌입니다.
올리신 사진과 저와 대화하는 주제의 직접적 관련성이 있나요? 단지 교과서의 오류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으시다면 저 사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뒤따라야겠죠? 
중등, 혹은 고등 교과서에 실린 내용인데 어떤 기관에서 어떤과정을 거쳐서 해당내용과 사진이 관련이 없는 것이 밝혀졌다거나 하는 근거 제시가 안되시잖아요. 
그리고 말씀하신 '일제의 상용화 정책'이란 표현은 일본의 입장에서 표현 가능한 것입니다. 
일본어 사용을 강요당한 우리의 입장에서도 상용화라고 쓴다는 것도 (혹 역사책에 있다하더라도) 우리 입장에서는 올바른 표현이 아니지요.
Manage
Reply1w
진명행 채진철 어떤 근거를 원하시는가요? 저는 님을 설득하고 싶지 않습니다. 동의를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굳이 근거를 달라고 하시면, 당시 총독부 국장회의 훈시내용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상용화란 표현은 일제의 기준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금지라는 표현 역시 일제의 기준입니다. 당시에 국어(=일본어) 사용장려와 상용화, 보급과 관련하여 여러 시책이 나왔는데, 그 중 강제에 해당하는 몇몇 시안은 모두 폐기되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전면금지를 암시하는 일들은 당시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님께서 국어사용 금지를 강요했다던 총독부조차 전쟁말기까지 지키지 못했습니다. 대민 선무 방송과 신문, 교육교재가 모두 한글이었습니다. 

왜냐면 조선 민중들의 조선어 문맹률이 77%에 달하는 상황이었는데, 자기나라 말도 읽고 쓸 줄 모르는 상황에서 외국어나 마찬가지인 일본어를 쓰게 한다는 것이 무리수였기 때문이었죠. 따라서 조선어 말살이라는 표현 자체가 아주 잘못된것입니다.
Manage
Reply1wEdited
채진철 진명행 설득을 안하시겠다는 의미인가요. 본인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과만 소통하겠다는 의미같이 느껴지네요. 문맹률과 조선어 교육금지와의 상관관계가 있나요? 교육기관은 말 그대로 교육하는 기관입니다. 교육받는 이가 문맹이더라도 한글자체를 배우는 기관이 될 수 있는거죠. 한글을 배우지 못하게 하고 일본어만 가르치게 하는게 불가능하다고 여기시는겁니까?
Manage
Reply1w
진명행 채진철 조선말도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본어 교육이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위에 충분히 설명드렸다고 생각되네요. 총독부는 국어보급 장려운동을 위해 초기에 이런저런 정책을 시행했지만, 결국은 모든 관변방송과 홍보를 한글로 했으니, 더이상 그런 논의는 의미없다고 생각됩니다.

도움은 안되시겠지만(그보다, 인정을 안하시겠지만) 당시 조선총독부 국장회의 훈시내용(1942년 4월 14일자)을 보내드릴께요.

1942년 4월 14일 조선총독부 국장회의에서의 훈시에서 일반 민중에게 국어(일본어) 전해(모두 알아듣기) 운동을 열심히 하도록 하라는 언급을 한 후, "다만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실질적인 문제로서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국어(일본어)를 이해하지 못 하는 작금의 상황에 있어서는 국어(일본어) 장려를 조선어 폐지라 오해하게 하는 것과 같아 급격하고 또한 무리한 강제가 되지 않도록 준비함이 긴요하다."
Manage
Reply1w
채진철 진명행 조선말도 이해를 못한게 아니고, 교육이 일반 서민들에게 가깝지도 않았을 때였고 조선의 양반들은 한글을 천시했기에 조선말을 몰랐던겁니다.
'무지=지능이 낮은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Manage
Reply1w
Hyun Jae Cho 조선 사대부가 한글을 천시했단 것도 조선 중기때나 이야기지 말기쯤 되면 한글은 그냥 공용어에요. 고종 칙령 제86호가 앞으로 법령은 모두 국문을 바탕으로 삼거나 혼용하란 겁니다. 물론 안 쓰겠다고 버틴 사람도 있는데 그게 고종 칙령을 무를 수준은 못 됐던 거죠.

그리고 아래 문장도 어폐가 있는게, 한글을 모르는(안 쓰는) 것과 조선말을 모르는(안 쓰는) 것은 별개입니다. 사대부도 당연히 조선말 썼어요. 중국어 쓴 게 아니라요... 괜히 역관, 통사가 있겠나요.

더불어 막 태어난 신생아에게 계속 일본어만 가르치면 몰라도, 이미 조선말을 잘 쓰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조선어 문맹이다, 그럼 그 사람에게 새로 일본어를 가르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죠... 이 라인의 논쟁이 말로써의 언어 개념과 문자로써의 언어 개념을 혼용하는 바람에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때리고 있네요.
Manage
Reply1w
채진철 조현재 조선후기에는 한글이 보편화 되었다는 데 공감합니다. 물론 보편화는 전국민적인 것이 아닌, 지식인계층에 제한된 보편화라고 수정하고 싶습니다.
말의 언어와 문맹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야기 하는 부분은 말의 언어가 아닌, 글자적인 부분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문맹률이 높았던건 당시의 시대적, 환경적 배경 탓이 컸던 것이지 당시 국민들이 지능이 낮아서가 아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말과 문자의 혼용, 인정합니다.
Manage
Reply1w
강기봉 채진철 님 야그가 억지스럽게 느껴지네요. 그냥 저는 국뽕입니다. 하시면 될듯도.
Manage
Reply1w
이성호 제가 느끼기도 억지스럽네요. 자꾸 근거를 대라시고, 대면 교묘하게 돌아가려하고..반론이나오면 또 인정하면서 돌아가고...믿고싶은데로 믿으면 되는 세상입니다
Manage
Reply1w
김응석 여기가 무슨 학회도 아니고 댓글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근거를 상식적으로 제시한거 같습니다. 얼마나 더 근거와 사례를 제시해야 할지...
Manage
Reply1w
류상욱 참 시비 오지네 그리 잘아는분이 해방을 독립이라고 그러나
Manage
Reply1w
류상욱 채진철씨를 보니 피해역사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보는듯 하네요
그리고 이해력 부족인듯
Manage
Reply1wEdited
채진철 소류 예 알았습니다~😅
Manage
Reply1w
Youngwookk Kim 자신은 근거없는 반박을 하며, 사료를 제시하며 설명하는 이에게 근거를 대라고 말하는걸 보고있자니.. 음... 웃음만..
Manage
Reply1w
유상호 채진철 국사교육의 적폐의 예
Manage
Reply1w

Reply1w

-------------

SungKoo Chang 일제말기 기록한 글들을 보면 상황이 어떠했을지 짐작될테고, 일제시대 살았던 분들께 이야기 들어도 될텐데 역사 전달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1940년 국민학교 입학해서 해방당시 국민학교 6학년. 동네에서 친구들과 한국어로 이야기 하며 등교하다가 교문근처오면 일본어로 이야기 하고 학교에서는 일본어로만 했다시고 한글을 배운 기억이 없으시지요. 구구단도 일본어로 배우셨고. 입학하고 한달정도는 한국어를 사용하게 하다가 이후부터는 일본어만 쓰게 했다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1920년대 경기고녀 다니신 외할머니는 수업시수는 적지만 한국어, 한글을 학교에서 다 배우셨습니다. 당시 문법체계로는 아래아까지 기본모음으로 배웠다고 일러주셨어요. 일본으로 수학여행가셨던 이야기도 들려주셔서 깜짝 놀라기도 했지요. 

유종호선생님 나의 해방전후를 보면 당시 상황이 잘 나옵니다. 유종호 선생 1935년생. 해방당시 국민학교 5학년. 충주에서 학교 다니셨지요. 일본인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하셨는데 어머니가 일본어 잘하신다고 놀랐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일반적으로 학부모의 일본어 실력은 변변치 않았다는 이야기겠지요.
Manage
Reply1w
여인선 교육기관에서 조선어, 역사에 대한 수업을 점차 줄이다 결국 전부 폐지하엿지만? 조선어 사용이 금지되진 않앗지요. ㅎㅎㅎ 저희 외할머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그당시엔 조선어보다 알본어를 더 잘햇다고요(지금도 일본어로 쓰인 책을 주로 읽으십니다)
말하고자하는 바는 알겠는데 저 영화나 당신이나 별 차이는 없네. 끗
Manage
Reply1w
진명행 본인 생각이 있으시면 본인 생각을 말씀하시면 됩니다. 비아냥 하실 시간에 좀더 건설적인 토론을 하시든가, 대거리를 말든가 하시는 편이 님을 위해서 더 좋을 것 같군요.
Manage
Reply1w
Jinhyeon Im 영화 뿐 아니라 역사교과서도 판타지 망상 수준인 나라인데 말 다했죠...
Manage
Reply1w
Hyun KI Kim 강요와 장려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보니 "그럼 일제가 뒷짐지고 서있었냐"라는 반응이 나오는듯. 사실은 강요라고 보긴 좀 어렵지만 그렇다고 뒷짐지고 서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Manage
Reply1w
정인억 역사는 사실로 배워야하는데 세태에 편승해 녹여가고 있으니.. ㅉㅉ.
Manage
Reply1w
윤강인 반일은 돈이 된다! 감사합니다.
Manage
Reply1w
안재홍 개구라 반일 종족주의 영화..!
대책없는 개구라..악질한국영화인들!
Manage
Reply1w
Kang Minwoo 영화나 드라마로 역사를 배우는건 아니지만, 역사를 배울 계기를 만들 수는 있다.
Manage
Reply1w
Shin Dong Yep 이아론 어찌생각하시옵니까
Manage
Reply1w
Arron Lee 학교 커리큘럼에도 조선어 수업 구성이 40년대로 갈 수록 줄어드는 것을 볼 수가 있고, 실제로 30년대부터는 교내에서 조선어 사용을 금지했던 적이 있었죠.
그 외적인 부분들은 자세히 공부를 안해봐서 모르지만 조선어 탄압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Manage
Reply1w
Arron Lee 그리고 상용화 라는 단어가 굉장히 거슬리네요. 일본어가 상용화 된 것이 아니고 '강압적'으로 교육을 시킨 건데;;
상용화를 적용 할 수 있는 것은 오늘날에 유행을 타고 있는 영어학습 및 중국어학습같은 경우에 상용화 라는 말을 사용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Manage
Reply1w
Arron Lee 그리고 궁금한게 이분 사료를 어디서 가져와서 인용하시는 건지 궁금하네요.
Manage
Reply1w
진명행 이아론 일제가 학교교육에서 조선어 교육을 배제한 것은 일제 통치기 전기간을 통해 고작 2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조선어 전면금지로 혹세무민하는 것은 왜곡에 가깝죠. 일제의 국어보급과 상용화 정책은 일제의 기준에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시행책에 있어 장려와 권고, 그리고 강제의 방법을 두고 여러가지 시안이 나왔으나, 강제로 시행할 경우 부작용을 우려하여, 제도적인 강제는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출처가 궁금하신 부분은 따로 문의하시면, 각주를 달아드리겠습니다.
Manage
Reply1w

---------------
----------------



영화 말모이와 조선어 학회 사건

진명행의 왜곡된 주장 비판 (2)

by쉐아르Jan 21. 2019

1. 이전 글에 이어 영화 말모이와 조선어학회 사건에 대해 적겠습니다. 처음 보는 분을 위해 간략히 적자면 <진명행의 역사저널>이라는 페이지에 진명행이 영화 말모이를 언급하며, 영화 속 사건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고 일본은 조선어 사전 만드는 것을 막은 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 글은 영화의 모티브인 43년 조선어학회 회원 33인의 구속을 숨기며 일제가 조선어 사용에 관대했다는 왜곡된 글이기에 이에 대한 비판을 했습니다.



2. 참고로 진명행이 저와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네요. 자신의 글에 반박글 링크를 다는 걸 홍보라 생각하니 읽는 분들에게 제 글을 공유해서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진명행의 원글이 200번 넘게 공유되었으니 해독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3. 제 글에 대한 반박을 하며 진명행은 이미 사전은 허가받고 조판에 들어갔다고 하고, 조선어 학회 사건은 같은 조선인들의 누명에 의한 것이다 그렇기에 일본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반박글은 여기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4. 원글에 대한 제 비판은 "이 사전은 영화의 내용과는 달리 일제의 공식 허가를 받아 박문출판사(대동인쇄소)에서 200여 페이지 조판이 된 상태로 교정작업 중에 있다가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지면서 사업이 공중분해된 상태로 해방을 맞게 된 것이다"라며 조선어 학회 사건이 마치 아무 연관 없는 해프닝인 것처럼 여기며 읽는 이에게 왜곡된 인상을 심기는 잘못된 글쓰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명행은 이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네요. 저라면 참 부끄러울텐데요. 그리고 조선어학회 사건은 같은 조선인의 모함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전형적인 물타기죠.



5. 조선어학회 사건을 간략히 설명하면, 기차안에서 고등학생들의 대화를 엿들은 조선인 경찰관 야스다는 이들을 취조, 이 여학생들에게 민족주의 감화를 준 사람이 조선어 학회의 정태진 임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 조선어학회의 33인을 잡아들입니다. 이들에게 적용된 죄목은 내란죄였죠. 이 과정에서 2명은 옥사를 하고 16명이 제판을 받아 11명이 유죄판결을 받습니다. 이 중 4명은 해방 이후에나 풀려납니다.



6. 진명행은 제가 "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라는 이유로 치안유지법의 내란죄가 적용되어"라고 함으로써, 조선어학회 사건이 마치 사전 편찬 때문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건 제 말이 아닙니다.

당시 함흥지방재판소의 예심 종결 결정문의 문구입니다. 일제의 이런 시각은 고등법원의 판결문에서도 반복됩니다. “피고인 등의 행위가 위법인 이유는 그 수록 어휘의 종류, 주해의 당부(當否) 여하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국체 변혁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 실현의 수단으로 사전의 편찬, 기타 문화 운동을 한 점에 있다고 생각 아니할 수 없다. 행위 자체가 위법이 아닐지라도 어떤 위법적 목적과 결합되어 범죄를 구성하게 되는 것은 반드시 이상하다고 할 수 없다.” 즉 사전 편찬의 목적이 민족의식의 고취를 통한 국가 독립을 위한 것이므로 내란죄에 해당되고, 원심의 형을 유지한다고 되어있습니다. 해방되기 이틀 전인 8월 13일의 판결문입니다. 이래도 조선어학회 사건이 사전 편찬 때문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지 그 의식의 흐름이 참 궁금하네요.




7. 또 다른 왜곡은 조선어학회 사건은 조선인 경찰의 음모로 진행되었고, 일제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식의 주장입니다. 실제로 조선인 경찰들이 활약을 합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8명의 이름입니다.



홍원 경찰서: 나카지마(中島種藏: 일본인, 고등계 주임) 이토오(伊藤輝元: 尹모, 형사) 야스다(安田稔: 본명 安正黙, 고등계 형사 부장) 쓰네가와(恒川謙: 일본인, 형사) 니히하라(新原東哲: 본명 朴東哲, 고등계 형사)

함경남도 경찰부: 미나기(皆木善男: 일본인, 사찰계 주임) 오하라(大原炳熏: 본명 朱炳熏, 수사계 주임) 시바타(紫田健治: 金모, 형사 부장) 마쓰야마(松山茂: 李모, 형사)



일본인 형사 3명에 조선인 형사 5명입니다. 3명의 일본인 중 2명이 수사 책임자입니다. 이런데 시바타와 야스다만을 강조하면서 일제는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글 쓰는 행위... 참 치졸합니다.



8. 조선어학회의 사전 일부가 출판된 것은 맞습니다. 42년 4월에 대동출판사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이는 조선어 수업이 폐지되고, 41년에는 독립운동가로 의심되는 인물을 쉽게 검거할 수 있는 조선사상범 예방 구금령(朝鮮思想犯豫防拘禁令)이 공포되어 위기감이 작용되었기 때문입니다. 42년의 출판을 근거로 일제는 조선어 사용에 관대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39년 2차 대전이 시작된 후 일제는 황국신민화 즉 민족말살정책을 진행합니다. 이런 상황에 42년과 43년의 상황이 같다고 볼 수는 없지요. 그리고 진명행의 주장과는 달리 조선어사전의 남은 원고는 "이미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고 조판에 들어간 상태"가 아니라 검거 후 증거품으로 압수된 것입니다.



9. 조선어를 탄압하지 않았다. 단지 일본어 상용화를 장려했다는 진명행의 주장은 아무리 좋게 봐도 개소리입니다. 39년부터 일제는 조선어 수업을 폐지합니다. 40년에는 조선어 신문이 사라집니다. 42년에는 일본어 보급을 적극 장려하는 '국어 전해(全解) 운동'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국어는 당연히 일본어입니다. 그 의도는 조선인을 더 쉽게 부려먹기 위함입니다. 전쟁에 끌고 나갔는데 일본어를 못 알아들으면 안 되니까요. 당시 학교에서 조선어를 사용했다고 체벌과 징계를 받았다고 증언하는 분들이 아직 살아있는데, '관대한 일본'을 말하는 그 멘탈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아... 좀 점잖게 쓰려고 했는데 쓰면서 계속 열이 받네요. 과격한 표현 죄송합니다.



10. 조선인의 높은 문맹률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지한 조선인이 일제 덕에 교육을 받고 개화되었다는 주장이지요. 조선인의 문맹률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자와는 달리 한글의 경우 꽤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었을 거라는 주장도 있으니까요. 어쨌든 '일제 강점기의 결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혜택을 받았다'는 말과 '그렇기에 일본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살찌게 해서 잡아먹으려는 사람에게 '밥 많이 주어서 고맙습니다'라고 하는 돼지가 될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11. 진명행을 비판하는 저에게 누군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세상은 흑백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연두색도 있다. 연두색을 흑백으로 나누면 증오와 미움만 남게 된다고요. 좋은 말입니다. 연두색을 연두색이라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지지합니다. 단 전제가 있습니다. 진짜 연두색을 연두색이라고 할 때요. 미리 정해놓은 결론을 위해 사실을 숨기거나 왜곡하는 사람 좋아하지 않습니다. 조선말을 사용했다고 벌 받고 징계받은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는데 일제가 조선어를 탄압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겁니다. 다름과 틀림은 다르죠. '연두색도 있어'라며 용납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12. 일본놈들 무조껀 나빠라는 민족주의적 사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일제는 나빴습니다. 이를 구별하기 위해 그리 높은 지능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왜곡

독립운동

역사

댓글

쉐아르변호사



인생의 세 번째 라운드를 살아가며, 네 번째 라운드를 준비하며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