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8

1901 영화 <말모이> : 영화/드라마가 왜곡시킨 역사

영화 <말모이> : 영화/드라마가 왜곡시킨 역사 : 네이버 블로그



영화 <말모이> : 영화/드라마가 왜곡시킨 역사
지구촌사람
2019.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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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가 역사를 왜곡 포장하여 상품화시키는 경우는 비일비재.
문제는 왜곡 여부를 모르거나, 점검을 생략하기 쉬운 다수의 대중들에게는
그 잘못된 정보가 아주 쉽게 입력되고 고착돼 간다는 것이죠.
영화 <말모이> 또한 그러한 것인데, 기본적인 애국심과 반일 감정을 이용한
장삿속 작품이라 해도 좋을 듯합니다. 너무나 사실(史實)과 동떨어진 구성이어서요.

[제목부터가 영 아닙니다. 1940년대 일이라면서 <말모이>를 제목으로 쓰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말모이>는 1910년대에 주시경 선생을 주축으로 만들려던 우리말 '말광' 의 이름이었습니다. '말광'은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고, <말모이>는 사전 제목으로 정한 고유명사 격]

아래 글에서 그런 것들을 조목조목 사료에 의거하여 반박하고 있습니다.
다만 조선어학회 활동에 대해서 아래 글에서는 충분한 조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특히 주시경/최현배/정인보 선생의 몸수고 부분) 오해하기도 쉬운데,
이에 대해서는 조선어학회 활동사를 최초로 정리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2013)
전직 코미디언 현 한글운동가 정재환의 학위 논문 저서인  <한글의 시대를 열다>를 참조하면 좋습니다.
논문은 해방 후 한글학회 활동이 주내용이지만, 해방 전 조선어학회 부분도
일부 다루고 있습니다. 말모이 과정과 사전 간행 뒷이야기들도 있습니다.
여하간, 아래의 글은 따끔한 채찍이 되고도 남는, 의미 있는 글입니다.
                                                           - 溫草 [Ja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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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공부 사랑방

영화 <말모이> : 영화/드라마가 왜곡시킨 역사

지구촌사람

2019. 1. 18. 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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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행의 역사저널 [2019.1.5.]

영화 『말모이』가 관람객 100만을 넘어 흥행 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자고로 반도에서 반일 마케팅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2월 예정인 『자전차왕 엄복동』은 그 릴레이를 무난히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런 반일 마케팅의 이면에는 우리도 모르게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역사왜곡은 ...물론이고, 국민적 증오의 감정을 소비케하여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치부하려는 세력들의 얄팍한 의도가 숨겨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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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를 보면, "우리말이 금지된 1940년대"라는 타이틀로 광고가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말이 금지된 적은 없다.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에 의거 일본어 상용화가 장려되고 보급운동이 있었던 시기를 그렇게 말하면 왜곡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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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조선말 사전은 1911년 조선광문회에서 편찬을 시작했다가 핵심멤버들의 사망과 망명등 유고 사태를 맞이하면서 거의 완성단계에서 좌절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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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계명구락부라는 단체에서 말모이 사전의 남은 원고를 찾아 받아 사업을 이어가는데, 몇번의 재정난 끝에 다시 조선어학연구회로 넘어갔다가, 최종적으로는 조선어학회에서 이를 간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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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말모이 사전은 친일파 육당 최남선이 주도한 조선광문회와 계명구락부에서 만든 사전이고, 계명구락부는 돈을 대던 회원들이 1930년 후반부터 친일로 변절하면서, 더이상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시발 사전이고 뭐고 때려치운 뒤 결국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에 가입하여 황국신민화 정책에 적극 동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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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을 이어받은 조선어학연구회 역시 사전 편찬사업을 주도하던 박승빈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순회 강연반 연사에 선임되어 강연활동을 벌였고, 1941년에는 조선임전보국단의 평의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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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모이』에서는 사전편찬에 참여한 인사들이 민족혼에 부들부들 주화입마된 애국지사로 그리고 있지만, 실상은 대부분 일제 말에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다 (이극로, 정인보, 오세창, 변영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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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등장하는 조선어학회 지하에 보관된 10년간에 걸쳐 수집했다던 방대한 자료들은 사실 친일로 변절한 계명구락부 소속 위원들이 모은 자료인데다 자료 대부분은 총독부에서 펴낸 조선어사전 표제어 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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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방대한 10만의 어휘를 수집해놓았다고 하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뜻풀이하고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사전편찬 작업은 결국 조선어학회로 공이 넘어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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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모이』에서는 일제의 탄압으로 사전간행 사업이 갖가지 고초를 받게 되고, 주인공 판수는 사전 원고를 지키려다 우체국 창고에 숨긴후 총에 맞아 죽는 걸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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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제는 사전편찬 사업 자체를 방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말모이 사전 편찬사업이 진행되던 1911년에 총독부의 취조국에서 시오카와 이치타로(鹽川一太郞)를 주임 담당 사무관으로 하여 국일문 혼용 『조선어사전』을 관제편찬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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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1911년 말모이 사전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시대적 배경은 1940년대이며, 이 시기에 조선어학회가 간행한 사전은 『조선말 큰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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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2019 영화 <말모이> : 영화/드라마가 왜곡시킨 역사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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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처럼 소매치기 전과자 출신 포함 6명이 동네 만화방 같은 곳에서 모여 만들지 않았고, 전국에서 기라성 같은 대학자들이 참여하여 만든 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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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전은 영화의 내용과는 달리 일제의 공식 허가를 받아 박문출판사(대동인쇄소)에서 200여 페이지 조판이 된 상태로 교정작업 중에 있다가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지면서 사업이 공중분해된 상태로 해방을 맞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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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는 분실하였다가 해방 후 서울역 운송부 창고에서 발견되어 1947년 10월 9일에 그 첫째권을 을유문화사에서 조선말 큰사전이란 이름으로 간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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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한편 보고 느닷없이 애국자가 되신 분들이 많은데, 역사는 영화나 드라마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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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사람
최종희: 작가/저술가. 언어와생각연구소 공동 대표. (사)한국어문학회 정회원 email : jonychoi@naver.com -
저서 <고급 한국어 학습 사전>(2015. 1차 개정판) <달인의 띄어쓰기.맞춤법>(2018. 3차 개정판) <달인의 띄어 쓰기.맞춤법 워크북>(2016) <박근혜의 말>(2016) <열공 우리말>(2017) <셀프 혁명> (번역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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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모이와 조선어 학회 사건

진명행의 왜곡된 주장 비판 (2)

by쉐아르Jan 21. 2019

1. 이전 글에 이어 영화 말모이와 조선어학회 사건에 대해 적겠습니다. 처음 보는 분을 위해 간략히 적자면 <진명행의 역사저널>이라는 페이지에 진명행이 영화 말모이를 언급하며, 영화 속 사건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고 일본은 조선어 사전 만드는 것을 막은 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 글은 영화의 모티브인 43년 조선어학회 회원 33인의 구속을 숨기며 일제가 조선어 사용에 관대했다는 왜곡된 글이기에 이에 대한 비판을 했습니다.



2. 참고로 진명행이 저와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네요. 자신의 글에 반박글 링크를 다는 걸 홍보라 생각하니 읽는 분들에게 제 글을 공유해서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진명행의 원글이 200번 넘게 공유되었으니 해독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3. 제 글에 대한 반박을 하며 진명행은 이미 사전은 허가받고 조판에 들어갔다고 하고, 조선어 학회 사건은 같은 조선인들의 누명에 의한 것이다 그렇기에 일본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반박글은 여기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4. 원글에 대한 제 비판은 "이 사전은 영화의 내용과는 달리 일제의 공식 허가를 받아 박문출판사(대동인쇄소)에서 200여 페이지 조판이 된 상태로 교정작업 중에 있다가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지면서 사업이 공중분해된 상태로 해방을 맞게 된 것이다"라며 조선어 학회 사건이 마치 아무 연관 없는 해프닝인 것처럼 여기며 읽는 이에게 왜곡된 인상을 심기는 잘못된 글쓰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명행은 이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네요. 저라면 참 부끄러울텐데요. 그리고 조선어학회 사건은 같은 조선인의 모함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전형적인 물타기죠.



5. 조선어학회 사건을 간략히 설명하면, 기차안에서 고등학생들의 대화를 엿들은 조선인 경찰관 야스다는 이들을 취조, 이 여학생들에게 민족주의 감화를 준 사람이 조선어 학회의 정태진 임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 조선어학회의 33인을 잡아들입니다.
이들에게 적용된 죄목은 내란죄였죠. 이 과정에서 2명은 옥사를 하고 16명이 제판을 받아 11명이 유죄판결을 받습니다. 이 중 4명은 해방 이후에나 풀려납니다.



6. 진명행은 제가 "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라는 이유로 치안유지법의 내란죄가 적용되어"라고 함으로써, 조선어학회 사건이 마치 사전 편찬 때문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건 제 말이 아닙니다. 당시 함흥지방재판소의 예심 종결 결정문의 문구입니다. 일제의 이런 시각은 고등법원의 판결문에서도 반복됩니다. “피고인 등의 행위가 위법인 이유는 그 수록 어휘의 종류, 주해의 당부(當否) 여하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국체 변혁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 실현의 수단으로 사전의 편찬, 기타 문화 운동을 한 점에 있다고 생각 아니할 수 없다. 행위 자체가 위법이 아닐지라도 어떤 위법적 목적과 결합되어 범죄를 구성하게 되는 것은 반드시 이상하다고 할 수 없다.” 즉 사전 편찬의 목적이 민족의식의 고취를 통한 국가 독립을 위한 것이므로 내란죄에 해당되고, 원심의 형을 유지한다고 되어있습니다. 해방되기 이틀 전인 8월 13일의 판결문입니다. 이래도 조선어학회 사건이 사전 편찬 때문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지 그 의식의 흐름이 참 궁금하네요.







7. 또 다른 왜곡은 조선어학회 사건은 조선인 경찰의 음모로 진행되었고, 일제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식의 주장입니다. 실제로 조선인 경찰들이 활약을 합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8명의 이름입니다.



홍원 경찰서: 나카지마(中島種藏: 일본인, 고등계 주임) 이토오(伊藤輝元: 尹모, 형사) 야스다(安田稔: 본명 安正黙, 고등계 형사 부장) 쓰네가와(恒川謙: 일본인, 형사) 니히하라(新原東哲: 본명 朴東哲, 고등계 형사)

함경남도 경찰부: 미나기(皆木善男: 일본인, 사찰계 주임) 오하라(大原炳熏: 본명 朱炳熏, 수사계 주임) 시바타(紫田健治: 金모, 형사 부장) 마쓰야마(松山茂: 李모, 형사)



일본인 형사 3명에 조선인 형사 5명입니다. 3명의 일본인 중 2명이 수사 책임자입니다. 이런데 시바타와 야스다만을 강조하면서 일제는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글 쓰는 행위... 참 치졸합니다.



8. 조선어학회의 사전 일부가 출판된 것은 맞습니다. 42년 4월에 대동출판사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이는 조선어 수업이 폐지되고, 41년에는 독립운동가로 의심되는 인물을 쉽게 검거할 수 있는 조선사상범 예방 구금령(朝鮮思想犯豫防拘禁令)이 공포되어 위기감이 작용되었기 때문입니다. 42년의 출판을 근거로 일제는 조선어 사용에 관대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39년 2차 대전이 시작된 후 일제는 황국신민화 즉 민족말살정책을 진행합니다. 이런 상황에 42년과 43년의 상황이 같다고 볼 수는 없지요. 그리고 진명행의 주장과는 달리 조선어사전의 남은 원고는 "이미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고 조판에 들어간 상태"가 아니라 검거 후 증거품으로 압수된 것입니다.



9. 조선어를 탄압하지 않았다. 단지 일본어 상용화를 장려했다는 진명행의 주장은 아무리 좋게 봐도 개소리입니다. 39년부터 일제는 조선어 수업을 폐지합니다. 40년에는 조선어 신문이 사라집니다. 42년에는 일본어 보급을 적극 장려하는 '국어 전해(全解) 운동'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국어는 당연히 일본어입니다. 그 의도는 조선인을 더 쉽게 부려먹기 위함입니다. 전쟁에 끌고 나갔는데 일본어를 못 알아들으면 안 되니까요. 당시 학교에서 조선어를 사용했다고 체벌과 징계를 받았다고 증언하는 분들이 아직 살아있는데, '관대한 일본'을 말하는 그 멘탈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아... 좀 점잖게 쓰려고 했는데 쓰면서 계속 열이 받네요. 과격한 표현 죄송합니다.



10. 조선인의 높은 문맹률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지한 조선인이 일제 덕에 교육을 받고 개화되었다는 주장이지요. 조선인의 문맹률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자와는 달리 한글의 경우 꽤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었을 거라는 주장도 있으니까요. 어쨌든 '일제 강점기의 결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혜택을 받았다'는 말과 '그렇기에 일본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살찌게 해서 잡아먹으려는 사람에게 '밥 많이 주어서 고맙습니다'라고 하는 돼지가 될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11. 진명행을 비판하는 저에게 누군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세상은 흑백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연두색도 있다. 연두색을 흑백으로 나누면 증오와 미움만 남게 된다고요. 좋은 말입니다. 연두색을 연두색이라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지지합니다. 단 전제가 있습니다. 진짜 연두색을 연두색이라고 할 때요. 미리 정해놓은 결론을 위해 사실을 숨기거나 왜곡하는 사람 좋아하지 않습니다. 조선말을 사용했다고 벌 받고 징계받은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는데 일제가 조선어를 탄압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겁니다. 다름과 틀림은 다르죠. '연두색도 있어'라며 용납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12. 일본놈들 무조껀 나빠라는 민족주의적 사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일제는 나빴습니다. 이를 구별하기 위해 그리 높은 지능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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