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6

이재봉 - 즐거운 책감옥에서 꾸는 평화 돼지꿈 해가 바뀐 지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인사드립니다. 새해엔 더욱...

(1) 이재봉 - 즐거운 책감옥에서 꾸는 평화 돼지꿈 해가 바뀐 지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인사드립니다. 새해엔 더욱...

즐거운 책감옥에서 꾸는 평화 돼지꿈
해가 바뀐 지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인사드립니다. 새해엔 더욱 건강하신 가운데 뜻하시는 일 잘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반도엔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이 더 가까워지길 소망합니다.
작년 10월부터 학교 수업 말고도 여기저기 강연 다니며 글 쓰느라 책을 거의 읽지 못했는데, 12월 겨울방학을 맞아 마침 외부 강연 일정도 크게 줄어 한 달 정도 ‘방에 콕 처박혀’ 그동안 밀린 공부 좀 했습니다. 대하소설을 많이 써온 조정래 선생이 10년 전 발표한 <황홀한 글감옥>을 생각하면서요. 글쓰기를 시작하면 외부와의 연락을 일체 끊고 감옥에 갇힌 듯 집필에만 몰두한다는 거죠. 그런 생활을 조금이나마 흉내내보며 나들이를 자제하고 글쓰기를 중단한 채 책 속에 파묻혀봤습니다. 오랫동안 제 소식을 듣지 못한다며 궁금하다고 이메일이나 전화를 주신 분들이 더러 계셨는데 이제야 새해인사를 드리는 이유입니다.
‘즐거운 책감옥’ 안에서 읽은 10여 권의 책 가운데 “김정일과 만난 최초의 스파이” 흑금성 박채서의 첩보 파일을 바탕으로 쓴 김당 기자의 ≪공작≫ (이룸나무, 2018)은 소설보다 더 재미있더군요. 국정원을 왜 꼭 개혁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책입니다.
제 은사 하아스 (Michael Haas) 교수가 보내준 United States Diplomacy with North Korea and Vietnam: Explaining Failure and Success (Peter Lang, 2018)도 유익했습니다. 미국이 1961-75년 싸운 베트남과는 국교정상화에 성공했으면서도 1950-53년 싸운 북한과의 수교엔 왜 거듭 실패하는지 비교 분석하는 내용이거든요. 하원의원, 유엔주재 미국대사, 에너지 장관, 뉴멕시코 주지사 등을 거치며 1990년대부터 북한을 8번 방문한 리처드슨 (Bill Richardson)이 서문을 쓰고, 평화학 창시자로 불리는 제 은사 갈퉁 (Johan Galtung) 교수가 후기를 덧붙인 책이죠.
참고로 저는 1980년대 텍사스에서 공부하다 하아스 교수와 갈퉁 교수 등이 쓴 Korean Reunification: Alternative Pathways (Praeger, 1989)를 우연히 도서관에서 접하고 그들이 있던 하와이대학으로 옮겨 제자가 되었는데, 두 은사로부터 아직도 분에 넘치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하아스 교수는 지금까지 약 60권의 책을 펴내면서 2012년 위 책의 수정판을 낼 때는 저에게 글 한 편 부탁하더니 표지에까지 제 이름을 올려주더군요. 갈퉁 교수는 약 120권의 책을 썼는데 그 중엔 2011년 저를 공동 저자로 삼아 펴낸 Korea: The Twisting Roads to Unification도 있고요. 노벨평화상 후보로 오르내리며 여전히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는 80대 은사들이 존경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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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2월 말쯤 베트남에서 열릴 것 같다니 재미있군요. 앞에 소개한 하아스 교수의 United States Diplomacy with North Korea and Vietnam 후기에서 갈퉁 교수가 밝히고 있듯, 미군의 폭격으로 1950년대 북한에선 350만 명이 죽고 1960-70년대 베트남에서는 300만 명이 죽었는데, 그 베트남에서 미국과 북한 최고지도자들이 만난다니까요.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쟁에 가장 대대적으로 참가한 나라가 남한이고 그에 맞서 북베트남을 가장 크게 도와준 나라가 북한이었기에, 베트남전쟁은 ‘제2의 한국전쟁’이었습니다. 더구나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거론되는 다낭은 1965년 미군들과 ‘청룡부대’로 불린 남한 해병대가 각각 처음으로 상륙해 베트남에서 가장 큰 군사기지를 설치했던 곳이지요.
저는 2000년 10월 세계를 일주하는 일본 ‘평화의 배 (Peace Boat)’에 올라 강연하며 다낭의 호찌민박물관을 견학할 기회를 가졌는데, 한 전시실에는 커다란 태극기를 앞세우고 다낭에 상륙하는 남한군 사진이 벽에 걸려있고 그 옆 전시실에는 북한 지도자들이 미국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맞서 싸우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베트콩)을 응원하는 편지가 크게 확대되어 걸려있는 것을 보고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를 계기로 몇 년 전엔 미국 비밀외교문서를 바탕으로 남한의 베트남 파병에 관한 논문을 쓰고 2018년엔 <프레시안>에 연재도 했으니 관심 있으시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베트남 파병: 남한의 적극적 제안, 미국의 무리한 요구, 북한의 필사적 대응” 전문: http://blog.daum.net/pbpm21/485 - http://blog.daum.net/pbpm21/488
아무튼 북한과 미국이 한반도에 이어 두 번째로 싸웠던 베트남에서 양국 최고지도자들이 만나 평화를 위한 협상을 벌인다는 자체가 뜻깊은 일입니다. 이를 계기로 북미관계가 크게 진전되리라 기대합니다.
이와 관련해 요즘 미국이 한국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요구하며 한미협상을 결렬시키는 게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위한 트럼프의 술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한미군 철수는 그의 2016년 대선 공약이거든요.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직후에도 공언했고요. 그러나 군산복합체와 연결된 연구기관과 정치세력은 북미협상에 관해 악의적으로 왜곡하며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거세게 반대하지요. 미국의 터무니없는 증액 요구를 한국이 거부하도록 이끌어 이를 명분으로 반대 세력을 누그러뜨리며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려는 게 트럼프의 전략 아닐까요? 미친놈 같은 트럼프를 욕하면서 지지하기도 하는 배경입니다.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 진전 그리고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미국의 군산복합체보다 더 극렬하게 반대하는 남한의 맹목적 숭미 세력도 문제제요. 오늘 2019년 1월 26일자 조.중.동 등에 실려 있듯,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미국의 터무니없는 150% 증액 요구를 넘어 “분담금의 두 배 증액도 아깝지 않다”거나 “분담금 대부분이 우리 사회로 환원된다”며 한국정부가 증액을 거부하면 “분담금 증액분 모금운동”을 벌이겠다는 ‘태극기 부대’보다 더 얼빠진 ‘성조기 부대’ 말입니다.
저는 2006년 10월 북한의 제1차 핵실험 후 북한이 언제부터 왜 핵무기를 개발해왔는지 전국을 돌며 강연했습니다. 10여 차례 법정에서 판검사들을 상대로 설명하기도 했고요 (≪이재봉의 법정증언≫, 들녘, 2015). 미국이 1958년부터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하면서, 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중국, 러시아, 남한, 일본, 미국 등 모든 나라들이 자체 또는 미제 핵무기를 갖고 있는 터에, 남한 국방비의 1/10 또는 미국 국방비의 1/100 밖에 쓰지 못하는 북한이 미국의 위협을 물리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겠느냐는 내용이었지요.
2017년 11월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이후엔 북한 핵무기를 폐기할 수 있는 길을 제안해왔는데 특히 작년 11-12월 여기저기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해 <통일경제> 2018년 12월호에 실었습니다. 김정은의 핵무력 완성과 대미정책 및 트럼프의 중국 견제와 대북정책을 비교하며, 둘의 ‘벼랑끝 전술’과 ‘미치광이 전술’이라는 협상전략을 설명하고, 둘의 공생전략에서 공통점을 찾으며, 북한 핵무기와 미국의 핵위협을 동시에 제거할 수 있는 한반도 비핵화 실현 방안을 제안하는 글이죠. 읽어보시고 좋은 의견 많이 주시기 바랍니다.
“북미 정상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전문: http://okef.org/221431259013
올해가 황금돼지해라는데 저는 ‘황금’ 대신 ‘평화’를 불러오는 돼지꿈을 꿉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관계를,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며, 나라 안팎의 어떠한 저항과 반발에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진전시키는 꿈 말입니다.
2019.1.26., 감사하며 이재봉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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