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5

일제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일본의 양심, 허구 해부하다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일제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일본의 양심, 허구 해부하다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일제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
일본의 양심, 허구 해부하다

등록 :2011-08-12 21:01


일본, 한국 병합을 말하다. 미야지마 히로시 외 지음·최덕수 외 옮김/열린책들·2만8000원
일 사학자 16명 ‘한일병합’ 성찰
“일 문명화 통해 이뤘다는 체제
한·중, 유교 바탕으로 이미 이뤄”
‘탈아입구’ 주장 근본모순 지적
“우리나라와 한국과의 관계는 신대(神代) 무렵부터 시작되었는데 진구황후(神功皇后)가 삼한을 정벌함에 따라 여기를 복종시켰고, 히데요시가 출병하여 일본의 강함을 보여주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국교를 맺었으며, 나아가 보호국으로 삼았는데 위기의 시대를 맞이하여 한국 황제는 국토를 메이지 천황에게 바쳤다.”

1910년 일본이 한국 병합을 자축하며 세운 ‘한국 병합 봉고제비’에 적힌 이 말은 100년 전 일본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 곧 ‘조선반도를 얻어 일본은 강대국의 대열로 들어섰다’는 기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100년이 흐른 지금, 이 비석 앞에 선 미즈노 나오키 교토대 교수는 이렇게 되묻는다. “과연 한국 병합이 일본과 일본인에게 ‘성덕 대업’이었는가?”

일본 제국주의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 엄청난 상처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일본 자신에도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혔다는 성찰이다.



조선 침략의 주역 이토 히로부미. 열린책들·살림 제공지난해 일본의 한국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일본의 진보적 역사학자 16명이 한국 병합의 역사적 의미를 비판적으로 따져 물은 책 <일본, 한국 병합을 말하다>는 잘못된 역사에 대한 일본 내의 성찰이 돋보이는 결과물이다.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초빙교수가 2008년부터 준비한 이 기획은 지난해 일본의 대표적 출판사 이와나미서점(암파서점)이 펴내는 학술지 <시소>(사상) 1월호에 특집으로 실려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올해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왔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야마다 쇼지 릿쿄대 명예교수,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 등 세대를 막론한 일본의 진보적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다.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이 한일병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어떤 문제의식을 통해 자기 반성을 하고 있는지 비교해가며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1901년 일본 후쿠오카 야하타제철소에서 중노동에 시달리고 한푼도 받지 못한 강금순 할머니의 제철소 출입증. 열린책들·살림 제공



미야지마 교수는 “기존에 일국사적 관점에만 묶여 있었던 일본의 역사인식 패러다임을 극복하려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며 “무엇보다 일본 학자들이 일본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라는 점을 감안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일본의 주류적 역사인식이 ‘일본은 중국·한국과 달리 동아시아의 역사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문명화·근대화가 가능했다’는 ‘탈아입구’에 고정되어 있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일찍 문명화·근대화를 이룬 나라라는 생각으로 ‘동아시아의 중심’이 되기 위한 침략까지 저지르게 됐다는 것이다.



강 할머니의 네 자녀 사진. 열린책들·살림 제공


미야지마 교수는 “일본이 근대화·문명화를 통해 이뤄냈다는 체제를, 중국과 한국은 유교를 바탕으로 이미 이루고 있었다”는 점을 논증하려 했다. 일본이 자국사에만 빠져 탈아시아적인 근대화 패러다임을 계속 고집하는 한 한국 병합의 강제성과 모순성을 직시할 수 없으며, “‘동아시아 중심으로서의 일본사’라는 인식을 ‘동아시아 주변부로서 일본사’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책에는 일본 사회 주류의 역사인식을 깨뜨리려는 일본 학자들의 획기적인 학술적 발견과 문제제기가 가득하다. 이노우에 가쓰오 홋카이도대 명예교수는 19세기 청일전쟁 당시 일본 대본영이 ‘동학 농민군을 전원 살육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1894년 청일전쟁 전선이 한반도에서 중국 대륙으로 옮겨가자, 한반도에서는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동학 농민군이 대대적으로 봉기했다. 이해 10월27일 일본의 히로시마 대본영의 가와카미 소로쿠 병참총감은 인천에 있던 일본군의 남부 병참감부에 “모조리 살육할 것”이라는 전신을 보냈고, 그 뒤 동학 농민군 토벌 부대가 투입돼 농민군을 섬멸했다. 동학 농민군 사망자는 모두 5만여명으로 청일전쟁 때 일본과 청나라 사망자보다도 많았다. 이노우에 교수는 “일본 근현대사에서는 ‘군부가 먼저 움직여 기정사실을 만든 뒤 정부를 끌어들였다’는 식의 서술이 많다”며 “그러나 일본 정부·군부가 주도해 이웃나라 정부와 민중의 주권과 생명을 유린한 사실은 불문에 부쳤다”고 고발한다.

일본 근세사 전공인 스다 쓰토무 메이지대 교수는 18세기 에도시대에 인기가 높았던 전통 공연물인 ‘조루리’와 ‘가부키’를 연구해 근대 일본인들이 조선 사람을 멸시하는 시각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짚었다. ‘400년 전의 한류’라 할 수 있는 조선통신사는 일본에서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인기 작가들이 조선과 조선인을 조루리의 소재로 삼는 계기가 됐다. 일본군에 패한 조선 왕이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 진구황후의 삼한 정벌로 삼한 왕이 일본의 개가 되었다는 등의 가상의 이야기들이 생겨났고, 그 뒤 조선통신사의 방문이 줄어들고 끊기면서 ‘일본의 무력에 굴복하는 조선인’이라는 이미지가 민중들에게 자연스럽게 굳어져 조선인 멸시관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미야지마 교수는 “지진과 원전 사고를 계기로 일본 사회는 점점 더 위기로 치닫고 있다”며 “근본적인 자기 성찰, 과거에 대한 비판적 점검 없이는 위기를 결코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이 스스로의 위기를 극복하고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 유지와 협력 확대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역사인식의 전환뿐이라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91631.html#csidxf6987300b1f733aac4d9820c5aec3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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