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31

1905 손민석 -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에서 보다 확실하게 느낀 점이 있다면 역시나 물가. 항상 지인하고 한국의 물가가 너무...



(7) 손민석 -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에서 보다 확실하게 느낀 점이 있다면 역시나 물가. 항상 지인하고 한국의 물가가 너무...




손민석
28 May at 02:28 ·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에서 보다 확실하게 느낀 점이 있다면 역시나 물가. 항상 지인하고 한국의 물가가 너무 비싸고 특히나 질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정말 형편없다고 많이 얘기했는데 이번 여행에서도 그 부분을 새삼 많이 깨달았다. 특별히 명품, 선물 구매 또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 등과 같이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일을 다 배제하고 외곽을 돌며 최대한 현지의 분위기나 느낌을 경험하려 노력했기 때문에 현지에서의 실생활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물가가 한국의 그것에 비해 좀 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적어도 한국에 비해 실생활에 드는 물가가 더 비쌀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트, 동네 슈퍼 등을 돌아다니며 구매해본 결과 가격 면에서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았고 질적인 측면에서는 이탈리아가 더 우수하다고 느껴졌다. 소비재 전반이 한국보다 괜찮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느꼈던 점인데 여기에 지대 문제까지 넣어서 생각해보면 노동력 재생산 비용에서 한국이 좀 높은 축에 속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소비재 제품의 가격이 높고 질이 낮다는 건 실생활에서도 문제이지만 이론적으로도 생각할 지점이 많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 축적 모델을 구성할 때 소비재 부분의 발전이 생산재 부분의 발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이뤄진다는 걸 전제로 한다. 그래야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축적을 행할 수 있다. 자본론 2권과 3권 모두에서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하다. 실제로 최근에 나오는 경제학 모델링이나 실증 연구에서는 농업에서의 발전이 제조업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빠르고 급속하다고 본다. 농업에서의 생산성 증대가 훨씬 빠르게 이뤄지니까 노동력이 제조업으로 이행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제조업에서의 생산성 증대가 서비스업에서의 그것에 비해 더 빠르다보니 노동력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이행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선진자본주의가 될수록 성장률이 느려지고 저성장하게 된다. 왜냐하면 선진자본주의로 이행할수록 농업과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지고 상대적으로 성장 속도가 느린 서비스업이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모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한국의 저성장은 더더욱 문제적인 것이 된다. 한국은 제조업이 지금도 계속 커지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제조업이 아직 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저성장한다는 것은 역시나 제조업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기업의 경영규모가 커지지 않고 국내시장만을 목표로 생산을 하는 자영업을 비롯한 영세업체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한데 아직 그런 연구가 없다.

위와 같은 입장에서 한국 경제를 바라보면 농업을 비롯한 소비재 분야가 상당히 낙후되어 있고 발전이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문제가 한국 경제의 영락을 설명할 수 있는 주요한 가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의 농업은 박정희기를 거치면서 조석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압축쇠퇴”라 할 정도로 급속하게 소멸하였다. 분명 농업의 생산성은 어느정도 올라갔던 것으로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농촌 자체는 거의 소멸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농업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번이나 지적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무언가를 하기에 늦은 시점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나마 젊은 사람들이나 법인들은 무언가를 좀 해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쌀농사만 짓는 중장년 이상 세대의 농민들은 무언가를 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쌀농사를 지으면 국고보조금이 나오니 농민들이 거기에만 매달리게 되고, 전체적으로 국가차원에서 효율성 있는 농업 경영이 불가능해진다. 전 사회적 차원에서 계획적으로 농업분야를 관리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운데 세계환경조차도 사실 우호적이지 않다.

전에도 지적했지만 1945년 이전과 이후의 세계무역 환경은 농업에 상당히 이질적인 조건을 제공한다. 농업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고 제조업으로 이행할 수 있었던 1945년 이전과 달리 화학비료의 개발, 중공업으로의 이행 등의 요인으로 인해 1945년 이후에는 농산물 무역 규모 자체가 상대적으로 굉장히 작아져버렸다. 게다가 미국의 가족농이라는 압도적인 수준의 생산력을 지닌 생산자 집단의 대규모 등장과 미국 영농 기업들의 활동으로 인해 제3세계뿐만 아니라 일본, 한국, 유럽 등의 선진국 농업 또한 점차 쇠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농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는 더욱 쉽지가 않아 보인다. 그나마 경쟁력 있는 농산물이 아마 딸기, 복숭아, 자두 등과 같은 과일일텐데 결국 자본과 기술이 많이 들어간다. 농민 개개인이 하기는 쉽지가 않다. 공무원의 추천으로 과일농사로의 전업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큰 손해를 보고 다시 쌀농사로 회귀한 이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의 농업이 이렇듯 무너져버리니 자본축적에서 무언가를 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된다. 빵만 놓고 보아도 크로아상 하나가 5천원씩이나 하기도 한다. 이래서야 대체 무엇을 할 수가 있나. 쌀 소비가 갈수록 적어지는 시류에 맞춰서 전체적인 물가를 농업 생산을 통해 제어하려는 시도나 계획이 잘 보이지가 않는다. 전국적인 규모의 분업도 보이지가 않는다. 특산물이라 해봐야 대부분 비슷비슷한 것들만 판다. 생산이 계획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니 농민은 농민 나름대로 수입이 마땅치 않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또 물가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 농업 자체를 대대적으로 개혁해 경쟁력 있고 다양한 농작물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생산력을 갖추게 하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대규모로 수입을 하면서 생활비를 줄여주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주거 문제와 생활비 문제만 낮춰도 굳이 최저임금 올릴 필요 없이 실생활을 개선시킬 수 있다. 공급을 바꿔야 한다.

이 두 부분만 잡아도 상당히 나아질 것 같은데, 굉장히 아쉽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과 같은 정책이 언제까지 가능할까. 결국 생산력의 증대밖에는 길이 없다. 노동시간이 너무 긴 건 그렇게 길게 일해야 겨우 소득을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결국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것밖에 없다. 생산성을 증대시키면서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거비용과 생활비용을 줄여 보다 양질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밖에 없지 않나 싶다. 이런저런 사회를 여행다니면서 항상 느끼는 부분인데 이탈리아에서도 많이 느꼈다. 먹거리의 질이 한국에 비해 훨씬 더 좋았기에 실생활에서 느끼는 삶의 질은 그쪽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인민의 실생활 수준을 높여줄 정치세력이 나타나야 한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점을 느꼈는데 그것은 나중에. 최근의 실증 연구들을 섭렵하고 글을 썼어야 했는데 당장 어제 돌아왔기 때문에 그럴 시간이 없어 주관적인 느낌에 의존해 글을 썼다. 감안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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