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31

일본은 지금 책의 미래로 회귀한다


일본은 지금 책의 미래로 회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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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2019.05.29.
[한겨레21] 헤이세이가 저물고 레이와가 시작되는 도쿄 ‘북앤베드 신주쿠’에서

책의 과거·현재·미래를 생각하다


원본보기일본 도쿄 ‘북앤베드 이케부쿠로’에서 책을 읽는 숙박객들.일본의 복합 서점 체인 ‘쓰타야’가 2018년 2월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점의 문을 닫았다. 같은 해 6월 롯폰기 ‘아오야마 북 센터’가 폐점 소식을 알렸다. 한 달 뒤 1980년 문을 연 기치조지 ‘파르코 북 센터’가 38년이란 긴 시간에 마침표를 찍었다. 올 3월부터 지금까지 문을 닫은 쓰타야 점포는 전국 10곳에 이른다. 30년의 헤이세이(平成)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 레이와(令和)가 된 지금, 도쿄의 풍경이다.

새로운 비앤비, 북앤베드



지하철엔 문고본 대신 스마트폰을 손에 쥔 사람들이 눈에 띄고, 책방 혹은 편의점에서 다치요미(사지 않고 서서 책을 읽는 행위)를 자제해달라고도 호소한다. 중고서점 체인 ‘북오프’는 대여 시장이 줄어들고 휴대전화 내 벼룩시장 ‘메루카리’가 인기를 끌면서 2018년에만 30여 곳의 점포를 정리했다. 책의 황금기라던 쇼와 초기부터 근대 100여 년의 독서 문화를 자랑하는 일본 서점은 어제의 서점이 아니다. 일본에서 하루 3개씩 책방이 없어진다고 한다. 남은 서점 모습도 어딘가 수상하다. 100여 년 전통의 ‘기노쿠니야 신주쿠’는 지난해부터 카페를 겸한다. 3대 대형 서점 ‘마루젠’과 ‘준쿠도’가 잡화를 팔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북오프 역시 잡화를 팔아 침체의 구멍을 메워간다.

출판 시장은 11년 연속 하락을 거듭하는데 그럼에도 해마다 신간은 8만 부 가깝게 쏟아진다. 북 코디네이터 소메야 다쿠로가 “제가 느끼기에 책방은 죽어가고 있지 않아요”라고 말하듯, 지금 일본 책방은 단순히 하향선의 그래프로 설명되지 않는다. 거대 출판사의 ‘밀어주기’ 베스트셀러가 유명무실해지고, 출판사와 서점을 잇는 출판유통회사가 책을 임의로 나눠서 서점으로 보내는 중개 관행을 거부하는 서점이 늘어났다. 올해로 70년 된 오사카의 ‘류쇼칸 서점’도 이 관행을 거부한다. 그곳의 주인 후타무라 사코토가 읽고 감동해서 적극적으로 서점에 진열한 오노 마사히로의 <우주를 향해 바다를 건너다>는 일본 전역의 서점에서 2017년 판매 부수 1위를 기록했다. 그런 흐름을 큰 유통회사가 따라간다. 2017년 아마존은 중개를 거치지 않고 책을 파는 시스템을 발표했다. 이 흐름에 대형 출판사 ‘가도카와’가 가장 먼저 합류했다.

카페와 갤러리, 호텔과 영화관 등 경계를 지우고 장르를 오가는 변화는 대부분 책방을 경유하거나 함께한다. 카페를 겸하는 서점에서 보듯, 책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 나타났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에선 쓰타야 다이칸야마 지점인 ‘티사이트’(T-Site)의 현재가 책방의 내일처럼 비치기도 한다. 티사이트는 업종 간 융합이 활발하다. 카페를 겸하고 여행책 코너에서 여행 예약 서비스를 하고, 예술 서적을 소개하면서 관련 전시를 한다. 이름도 요상한 책방 ‘북앤베드’(Book and Bed)도 책의 새로운 얼굴 중 하나다. 2019년 4월30일 북앤베드에 짐을 풀었다.


원본보기북앤베드는 신주쿠 가부키초 혼잡함의 한가운데 있다.

독서의 확장, 숙박의 확장



‘북앤베드 신주쿠’는 가부키초에 자리하고 있다. 관광객의 현관이자 유흥가와 도청을 비롯해 고층 건물들이 혼재하는 가부키초는 무엇도 별 위화감 없이 섞여 공존하는 거리이다. 93년의 역사를 지닌 기노쿠니야 본점이 있는 신주쿠도리는 동양 최대의 환락가 가부키초가 자리한 야스쿠니도리와 고작 한 블록 차이다. 아침을 맞은 가부키초 거리엔 신주쿠 구청으로 향하는 공무원들이 출근을 서두른다. 최근 침체된 책방 업계와 선을 긋듯 가파른 기세로 점포를 확장하는 부동산 회사 ‘아르스토어’(R-Store)가 책이 있는 호텔 북앤베드의 다섯 번째 점포를 신주쿠 가부키초에 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신주쿠의 또 하나 ‘혼재’된 풍경이 되리라 생각했다.

북앤베드 신주쿠는 걷는 내내 휴대전화 지도 앱을 보지 않으면 찾지 못할 정도로 골목 구석에 숨어 있다. 고작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 도착했을 뿐인데 전혀 딴판의 공간이, 신주쿠스럽게 펼쳐진다. 러브호텔이 즐비한 거리의 핑크빛을 벗어나자 책에 둘러싸인 호텔 로비가 오렌지빛으로 맞는다. 공간을 계획한 아르스토어의 리키마루 사토시 부장은 일본의 패션 주간지 <더블유더블유디>(WWD) 인터뷰에서 “신주쿠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 공간의 빛을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북앤베드는 숙박과 시간별 이용이 모두 가능하다. 책을 서서 읽거나 앉아서 읽거나, 방에 가져가 보다 잠들어도 무방하다. 북앤베드는 ‘독서와 숙박 사이’ 좁은 공간이 아니라 ‘독서를 확장’하고 ‘숙박을 확장’하는 개념이다. ‘잘 수 있는 책방’이란 콘셉트는 숙박하는 방 안에 독서를 끌어들이고, 독서 안에 잠을 품는다. “조금 더 놀고 싶고, 자고 싶지 않았지만, 잠들어버렸다”는 리키마루 부장의 장난 어린 말 속엔 ‘독서’에 스며든 ‘잠’의 시간이 자리한다.

북앤베드는 자거나 책을 읽으러 가는 곳이다. 모두 1천여 권이 진열됐는데 이 책은 살 수 없다. 사는 물건으로서 책이 아닌, 읽고 만지고 함께하는 시간으로서 책이다. 침대가 책장 선반과 선반 사이에 숨어 있다. 천장까지 이어지는 계단을 책들이 채우고 있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어, 어디를 둘러봐도 책과 마주한다. 여기서라면 높은 밀도의 ‘책과의 밤’이 완성될 듯하다. 그런 책 속에 ‘숙박객’이 묻혀 있다. 한 여자는 구석 창가에 홀로 두 발을 길게 뻗고 잡지를 넘긴다. 계단 중앙에 앉은 남자는 책에 파묻혀 노란 머리만 보인다. 한 20대 남자는 잡지 서너 권을 테이블 위에 두고 두 번째 맥주캔을 따고 있다.

몸과 피부로 느끼는 독서



북앤베드를 기획한 아르스토어는 부동산 회사다. ‘삶을 디자인하고, 셀렉팅한다’를 모토로 삼고 있다. 책방은 이제 책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닌, 의식주 어느 한켠에 작은 주거 공간으로 자리했음을 보여준다. 리키마루 부장은 “앉아서 책을 읽는 것만이 독서가 아니다”라고도 한다. 얼핏 꽤나 도발적으로 들리지만, 책은 이미 오래전부터 거실 소파 구석에, 화장실 선반에, 침대 머리맡에도 있었다. 테이블과 의자가 아닌 소파와 계단, 객실은 물론 호텔 이곳저곳, 심지어 화장실에도 책 포스터와 표지 이미지가 붙어 있다. “잠자러 간 호텔에서 자고 싶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때 최적인 게 책이라 생각했고, 그냥 책을 진열하는 건 재미없으니까 ‘독서’에 초점을 두었다. 침실과 세면 공간은 극단적으로 작고 심플하다.”(리키마루 부장) 이 모든 것은 몸과 피부로 느끼는 독서를 재현한다. 로비에 들어서면 눈을 가득 채우는 천장의 만화 <아키라> 페이지 수백 장은 몸으로 느끼는 독서의 일부분이다.

북앤베드에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신간을 보는 스피드는 없다. 잡지 과월호들이 진열돼 있다. 만화 전편이 시간의 무게를 이고 있다. 동네 서점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디자인 서적들이 기분 좋은 밀도를 채운다. 교토, 오사카에 이어 세 번째로 북앤베드 신주쿠에서 일하는 미카는 밤 12시를 넘긴 카운터에서 커피를 내리며 얘기했다. “점포별로 책이 다 다르고, 좀처럼 보기 힘든 책들이 있어 오는 재미가 있다.”

시부야의 오래된 서점 ‘에스피비에스’(SPBS)에서 만난 후쿠이 세이타 에스피비에스 대표가 북앤베드 신주쿠의 책을 선별했다. “가부키초라고 해서 모리야마 다이도(신주쿠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 사진작가) 사진집 같은 것만 가져다놓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가부키초, 신주쿠란 거리의 문화를 조금 다른 문맥에서 이해하고, 표현하려고 했죠.”

북앤베드는 절반 이상의 책을 표지가 위로 향하게 진열해놓았다. 후쿠이 대표는 “지금 필요한 건 독서를 비일상으로 데려오는 일”이라고 여러 인터뷰에서 얘기했다. 밤에 시작되는 거리, 불이 꺼지지 않는 가부키초에 ‘잘 수 있는 책방’ 북앤베드는 그 자체로 일상의 비일상이다. 호텔이 들어선 건 흔한 상업 빌딩 8층이고, 바로 위엔 야키니쿠 가게, 근처엔 파친코가 있다. 그곳에서 책을 펼친다는 건 초현실에 가까울지 모른다. 하지만 가부키초에도 어김없이 혼자의 시간이 있다. “가부키초라고 해도 혼자 오는 사람이 있다. 잘 수 있는 호텔, 쉴 수 있는 책들을 의식했다.” 후쿠이 대표의 말이다.

너와 내가 아른거리는 서점으로 회귀



새로움과 새로움이 쌓여 하나의 카오스를 이루는 신주쿠에서 이곳은 현실을 잊게 한다. 헤이세이에서 레이와로 하루 사이 변하는 때, 여기는 시대를 조감하기 가장 좋은 곳인지도 모른다. 과거가 현재와 혼재돼 현재에서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 일본 출판업계가 맞이한 새로운 국면은 머나먼 어제를 떠올리게 한다. 새로운 책방은 책과 경계를 허물고 사람이 느껴지는 서점, 너와 내가 아른거리는 서점으로 회귀인지도 모른다.

트렌드 잡지 <브루타스>의 1980년 창간 5월호 등 초창기 잡지가 책장 하나를 메우고, 최근 주목받는 나카야마 마사라 작가의 사진집이 책장 중앙을 차지하는 서점을 나와, 2012년 12월 발매된 잡지 <미술수첩>을 들고 방에 들어가 불을 껐다. 그곳의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해브 어 북 나이트’(Have a book night). 4월의 마지막 날. 밤은 아직 오지 않았다.

*최근 도쿄에서 들려오는 ‘서점의 몰락’은 심상치 않다. 하지만 전통적 의미의 서점은 몰락했지만, 책과 함께하는 공간 ‘책방’의 미래는 이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일본 서점 기행’은 시대가 오가는 길목에서, 책방의 지금과 어제 그리고 내일을 얘기하는 3부작 연재다.

도쿄(일본)=글·사진 정재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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