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31

[주목! 이 사람].볍씨학교 제주학사 교사 이영이씨 “아이들이 삶의 주인이 되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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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사람]볍씨학교 제주학사 교사 이영이씨 “아이들이 삶의 주인이 되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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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2019.05.20. 오전 11:20

볍씨학교 제주학사
교사 이영이씨(58)의 교실은 널따란 밭이다. 벌써 7년째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에서 먹고 자면서 산다. 이씨의 하루는 새벽 6시30분에 시작한다. 눈을 뜨면 동백동산 먼물깍까지 내달린다. 왕복 3㎞가 족히 되는 거리다. 뜀박질이 끝나면 ‘밥지기’ 학생들이 지은 아침밥을 나눠먹고 학생들과 수업에 나선다. 주요 과목은 돌집 짓기와 농사. 수업은 오후 5시까지 꼬박 이어진다. “밭에서 일할 때 가장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어요. 일하고 난 뒤 인간의 몸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됐다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요.”



대한민국 최초 초등대안학교인 볍씨학교는 2001년에 문을 열었다. 이씨는 학교 설립 이후 2012년까지 줄곧 교장을 맡았다. 그러다 2013년, 제주도에 중3 과정을 신설하면서 이씨도 섬으로 건너왔다. “1994년 광명YMCA를 설립하고 교육개혁운동을 했어요. 열린 교육과 촌지 없애기 운동을 벌였죠. 활동을 하다보니 한계가 보이더군요. 현재 제도교육에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고 대안학교를 열게 됐습니다.”

볍씨학교의 교육철학은 확고하다. 아이들에게 학교를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생활공간’으로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제도교육은 아이들이 지시에 잘 따르도록 훈련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지만 볍씨학교는 다르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짠다. 아이들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더 많이 줘야 한다는 게 이씨의 교육철학이다. “아이들은 이미 준비가 돼 있지만 우리 교육은 아니에요. 여전히 아이들을 삶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죠. 볍씨에서는 교사에게 질문하기 전에 스스로 답을 구한 뒤 그 답에 따라 움직이도록 합니다.”

학교를 벗어난 일상도 오롯이 아이들 스스로 계획하고 책임을 진다. 여행경비와 일상에서 필요한 경비도 아이들이 스스로 벌어서 충당한다. 자신의 삶을 사는 아이들은 곧 변하기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잃었던 자존감을 되찾는다. 소심하고 이기적이었던 아이들은 훌쩍 자라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아이들은 볍씨학교를 통해 알게 된 진리를 곧 자신의 삶에 투영시킵니다. 귀찮아서 혹은 자신이 없어서 자존감을 포기했던 이전 모습을 버리고 당당하게 주인이 되는 거예요. 일상에서 내내 씨름하다가 어느 순간 결단하고 일어서는 아이들의 기운이 저는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이씨는 볍씨학교를 마치고 청년이 된 학생들이 자본에 압사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은 ‘협동’에 있다고 말한다. 청년들이 협동해서 함께 살아야 자신이 원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앞으로 일하는 청년 공동체가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 제주학사를 마친 청년들이 함께 살 집을 짓고 있는데, 이곳에서 다양한 실험이 이어지고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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