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4

14 김희교 “지금 중국의 무엇을 말할 것인가”



SSK 동아시아지역질서연구회 초청강연 


“지금 중국의 무엇을 말할 것인가”

연사: 김희교(광운대 동북아대학 교수)

사회: 신욱희(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일시: 2014년 11월 24일(월) 4:00 – 6:00 장소: 서울대학교 사회대 소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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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교: 연세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하고 중국 복단대학교에서 박사를 했다. 박사 때 의 주요 관심은 중미관계, 중미관계가 동아시아 질서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것이 었다. 1900년, 2000년 세기를 전환시키는 시기에 미국이 급하게 중국으로 들어오는 문화혁명. 의화단운동이 일어났다. 중국의 근대적 민중, 외교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한 근대적 민중이 중 미관계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관심있게 보았다. 미국의 새로운 문호개방 독트린(Open Door doctrine)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 박사논문을 집필하였다. 귀국 후 한국에서 중국담 론이 어떻게 형성되고 진행되었는가에 대한 글들을 써왔다. 그런 관점에서 몇 가지 오늘 토론 의 문제제기 했던 저의 생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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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복합적이다. 사실 누가 어떻게 말해도 틀렸다고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1년 해외연 수만 다녀와도 중국은 이러하다고 쓰는데 그런 글들을 봐도 딱히 문제를 지적하기 어려울만큼 그런 중국의 모습도 있다. 동시에 한반도를 모든 문제의 총체적 집합소이라고 하는데 중국도 또 다른 세계라고 할 만큼 모든 문제가 중층적으로 복합되어 있다. 그래서 쉽게 말하기 어려 운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중국을 한국에서는 주로 어떻게 보아왔는 가에 관심이 들었다. 스마트폰 제조기업 샤오미가 중국시장에서 1위로 등극했는데 몇 가지 측 면에서 시사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을 보는 한국의 주요 언론들, 끈이 끊어지는 핸드폰 생산업체들, 임원진들의 이야기, 언론의 이야기들을 검토해보면 여전히 한국 의 대중인식은 큰 것이 부재하거나 왜곡되어 있거나 결핍되어 있다. 샤오미가 중국에서 만들 어진지 6년 된 회사인데 삼성을 눌렀다. 그 원인들을 기업, 언론들도 분석하고 대중들도 나름 대로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시작하는데 그런 분석틀에서 크게 결핍되어 있는 점 하나를 지적하 자면 샤오미의 등장 배경으로서 중국국가의 사회주의적 토대가 중요하다. 중요한 사회경제적 배경인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쪽은 거의 없다. 이 또한 한국이 중국을 보는 시각, 중국담론의 큰 구조적 결함을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의 중국담론에서 보여져온 것들과 보여지지 않은 것들을 관심있게 보았다.

한국에서 중국에 보여지는 것은 주로 문화대혁명, 티벳문제, 중국 인권문제, 중국의 베트남 침 공, 낙후된 중국의 산, 미개한 중국인들의 모습. 이런 것들이 주로 드러나고, 말해지고, 비춰 지고 인식되고 있다. 문제는 그 인식 자체가 비교적 보편타당하고 근거있는 인식이라면 문제 가 되지 않으나 그 인식체계에서 크게 결핍된 것들이 보인다. 사상이라는 것은 역사적 관점으 로 볼 때, 공시성과 통시성이 동시에 검토되어야 한다.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다분히 서구적 세계관, 서구적 민주주의관에 입각하여 중국의 취약한 부분을 드러내서 비춰주고 그것이 중국이라고 말해지는 문제들이 있다. 공시성과 통시성 문제의 대표적인 예는 현재 중국, 중화패권국가로 등장했다고 하면서 동시에 패권국가로 승리하는 미국과 비교하거나, 둘 다 패권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 미국 패권과의 상호비교는 없다. 이런 비교의식이 없이 중화 패권의 성립불가능한 담론이 결합되어 있다. 전근대의 중화와 근대의 패권을 결합해서 중국이 가장 나쁜 나라를 만들어간다는 시각으로 간다. 이는 공시적 시각의 부재이고 통시적으로 봐 도 일본 식민지와 전통적 조공체제를 비교해서 전통적 조공체제가 식민지 체제보다 더 가혹하 고 폭력적이었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보인다. 그리고 중국이라는 사회를 볼 때, 하나의 연속적인 측면과 단절적인 측면이 있는데, 연속적인 틀과 단절적인 틀이 중국의 내재 적 특징과 반대로 간다. 조공체제가 부활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 조공체제가 사회주의 중국일 때 얼마만큼 자기 스스로 단절시키려고 노력해왔고, 얼마나 단절되었는지 검토하는 글은 별로 없다. 중국의 조공체제의 부활을 논의하는 일종의 글들을 읽어보면 청말에서 현재로 바로 구축되어 버린다. 그래서 ‘중화’라는 개념, 중국에서 일어나는 민족주의적 분위기를 뭉뚱그려서 중화의 부활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특히 사회주의 중국 시기에 전통과 얼마나 단절하려고 했는지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냉전시기를 거치며 보려고 했던 것을 보지 않은 이데올로기적 편견이 극복되지 않은 채, 온존, 잔재된 상태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중국에 대한 글들에서 무슨 목적으로 쓰는지 자기주장이 없는 글들이 많다. 은연중에 강요받거나 하고 있는 것들,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이를 퇴색시 키고 정치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글이라는 학계 분위기도 있고, 더 중요한 문제는 어떤 글이든 분명한 정치성이 있다. 자기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데 자기가 무슨 글의 주장이 없다고 해서 주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글이든 현상적 권력시스템, 권력체계에서 자기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대한 관심의 부재. 자기 글의 정확한 공간찾기의 실패에 비롯한다. 특히 중국논문들은 그것이 상당히 심하다. 그래서 많은 중국 글들이 쏟아지고 이야기되고 있 는데 주류의 시각이 하나고 다른 목소리, 의견, ‘중국의 총체상 복원’, 중국의 이면, 다른 면, 중국의 내재적 관점을 복원시켜서 중국 상을 만들 수 있다고 보는데 그런 노력들이 부족하다. 학문, 글이 권력망 속에서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이 글을 쓰고 현실권력에서 한중관계에 어 떤 영향을 미칠 것을 기대하고 쓰는 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자신이 무슨 글을 쓰고 있는 지 알고 쓰는 글들이 많지 않다. 


이런 일이 왜 한국에서는 중국 담론, 중국 연구자들에게 계 속 진행 중인지를 보면 중국은 재미있게도 북한문제, 한국의 진보진영으로 비춰지는 부분과 보수진영의 대립적 시각이 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해선 그런 시각의 차이가 그렇게 드러나지 도 않는다. 중국담론의 추이에서의 이념체계를 보면 냉전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온존하고 있다. 여기에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주의, 중국의 부상 이후 중국을 하나의 시장으로 보는 물상주의의 주류 시각들이 있다. 여기에 문제제기하고 다른 각도에서 중국을 이해하려고 하는 부분은 건강하고 복합적으로 중국 복원이 어렵고 그런 노력이 부족하다

중국담론의 형성 주체, 냉전 시대는 정부가 중국담론 형성, 이를 중국과의 관계에 대입해서 실제적으로 이곳의 삶을 결정. 이후 경제권력, 중국연구자, 언론, 대중도 중국담론에 참여했으나, 이 주체들 간의 차별성이나 구별성이 크지 않다. 독자적인 담론 지형의 부재가 나타난다. 중국의 주류 담론에 국한에서 보면 중국 위험론과 중국 붕괴론이 95% 이상인데 미국 학계에서 주도한 대로 중국 은 만들어져도 안 되고, 만들어지면 위험하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편견으로 자 기를 지키려는 분들은 결국 상아탑 속에 숨어서 정치성을 안 드러내고 객관성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면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정치 상황의 큰 세계적 흐름 속에서 일어난 불행한 징후들인데, 문제는 그 이후이다. 

수교 이후에 그런 중국 위협론, 중국 붕괴론으로 이어진 주 류담론이 결핍된 것을 반성, 회고, 새로 보충하는 시기들이 있고 그런 글들이 쏟아져 나왔어 야 하는데, 이는 덮어두고 중국을 시장으로 생각하여 중국을 기회라는 구호 하에, 중국, 자본, 원료, 상품시장으로서의 가치와 실익을 첨가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부상하는 중국이 얼마 나 위협적인지를 드러내는 글들이 쓰여졌다. 중국의 부상이 급속화되면서 G2라는 새로운 용어 가 사용되기 시작하자 주류담론을 중국을 기회의 국가로 다시 형성해가고 있다. 문제는 최근 미국이 여러 국내외적 정치적 상황에 따라 아시아로의 회귀를 설파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한 국의 중국담론의 권력지형을 보면 다시 불안한 논의들을 제시한다. ‘동상이몽’을 하는 미중관 계의 사이에서 자기입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일시적인 호황을 누리는 상황에 빠져있다. 이는 정치는 미국으로, 경제는 중국으로 가는 ‘양다리 걸치기’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한중 FTA도 양다리 속에서 중국으로부터 비교적 큰 피해 없는, 양보를 받아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엔 중국이 한국을 좀 더 미국의 전선으로부터 끌어내고자 하는 욕심, 희망이 결부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한국으로서는 양다리 걸치기를 쓸 필요는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까지 중미가 동상이몽을 할 수 있는가, 미중이 동상이몽을 하지 않고 그 판이 좀 위 기로 치닫거나 둘이 또 어느 순간 완전한 화해로 돌아섰을 때, 우리는 과연 정치는 미국, 경 제는 중국이라는 형태를 지속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여전히 주류 담론 속의 고민으로 남아있 다.

중국학계의 상황을 보면 수교 이전, 학문의 객관주의를 내세우게 됨. 실증주의라고 하는데 이 는 연구방법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열악한 정치상황 속 ‘객관주의’를 표방하면서 한 편으로는 버티기라고도 볼 수 있음. 여전히 시대의 왜곡된, 뒤틀린 중국상을 그대로 수용해낼 수밖에 없는 정치성이라고 생각한다. 


수교 이후, 중국학계에서는 중국 시장에 대한 분석, 긍정적 또는 부정적이든 시장에 대한 분석글이 증대하고 있다. 

중국 부상 이후, 중국 위협론과 더불어 소 위 중국도 미국도 다 문제라는 식의 보편주의적 관점에서 국가, 민족,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다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 들을 고민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 대안들에 대한 고민들이 그렇게 많지 않는 비판적 중국담론의 생성을 하는 한국의 진보진영들의 지적실험을 하는, 상상속의 동아시아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또 한편으로는 기존의 중국담론의 권력지향과 결과적으로는 교묘하게도 공조하거나 상호인정하는 시스템으로 가게 만들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로서 복합적 중국진영의 총체성을 복원해내는 것이 중요 하다. 서구담론의 재생산 수준에 있고, 우리가 어떻게 중국을 봐야하는가, 이를 복원해내서 뭘 이야기할 것인지 고민이 부족하다. 시진핑이 중국의 부패청산을 하는 것을 여전히 서구 정치 행태 속에서 분석해내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실태들이 대단히 많이 있다. 시진핑은 중국의 집 단지도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고 있고, 그 집단 지배, 지도의 시스템은 여전히 사회주의적, 중 국적 토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 자본주의가 공교롭게 동거하는 중국을 복원해내는 것이 연구의 급선무이다.

한국의 중국담론을 분석하면서 지나치게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신화적 단계로 간 면모들을 많 이 발견했다. 특히 티벳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수 있다. 티벳은 저의 판단으로 세 가지 기표 로 구성되어 있다. 


1] ‘샹그릴라’, 박완서의 <모독>,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이야기>이다. 박완서 의 모독은 신화로서 중국, 티벳을 말하는 가장 잘못된 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사 고를 분석해보면 티벳은 여전히 샹그릴라라고 상징되고 있다. 티벳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 은,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지상낙원이라고 생각한다. 티벳의 정치적 지형도와 현실을 보면 단 한번도 티벳은 샹그릴라였던 적이 없다. 모든 것이 죽어있고, 드문드문 거주하고 있 다. 이를 샹그릴라고 명명할 때, 연원은 미국, 영국에서 소설과 영화로 각색되어져 우리 사회 에 심어져 온 것을 우리 지식인들이 비판, 재생산하면서 만들어왔다. 

2] 또 다른 티벳담론은 그 런 샹그릴라를 파괴시킨 파괴자로서 중국이다. 자신들이 꿈꾸던 샹그릴라라 존재하지 않을 때, 1950년대 티벳을 침공시킨 중국이 파괴시켰다고 한다. 

3] 세 번째가 달라이 라마인데 파괴된 샹그릴라를 달라이 라마가 복원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신화적 체계 속에서 신화가 이야기되고 있음. 

하나하나 구체적 역사 속에서 복원시키면 파괴자인 중국이 파괴자로서만 규정하기 어려 운 복합성이 숨어있고, 달라이 라마가 티벳에 간다고 티벳이 샹그릴라가 될 가능성도 낮다. 그것이 불가능한 신화체계 속에서 여전히 한국의 주류 언론들, 주류 논조들은 티벳에 대해 쓰 고 있다. ‘티벳을 자유롭게 하라’는 그러한 현실적 주장이 어떤 정치적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 검토는 부족한 것 같다.

그리고 조공시스템이라고 부르는 전통시대 동아시아 질서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 생각들을 말 씀드리고 싶다. 


첫째, 조공시스템의 권력망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혹은 각 권력주체들의 연구, 주장도 연구의 일부로 인정할 필요성에 있다. 아직도 연구사 정리에서는 한국 연구자들의 글 은 형식상 동일한 비중을 두고 연구자의 업무라고 쓰는데, 연구사로서는 의미가 있지만 그 용 어가 어떻게 쓰여질 것인가의 권력의 문제로 보면 잘못되어 있다. 조공시스템의 문제가 한국 의 언론, TV, 정치권력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가는 연구에서 분석되어야 되고 그 안에서 연구입지를 잡아야 현실적으로 균형이 잡힌 글이 될 수 있다. 특히 조공시스템에 대해 선 특히 주류의 조공시스템에 대한 인식은 제국의 폭력성을 강조하는데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 다. 심지어 조공시스템이 일제 식민지하보다 더 나빴다고 하는 것이 주류의 생각이다. 이것들 이 연속극, TV 등의 매체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주류담론을 염두해 둔 조공시스템에 대한 연 구가 필요하다.

둘째, 중국이라는 국가는 스스로도 전근대에서도 천하다고 했고, 주변국들도 중국이 천하임을 인정하는 천하질서 속에서 움직인 복잡한 세계라고 생각한다. 조공시스템이라고 말해지는 것 조차도 천하를 천하라는 세계가 돌아가는 일부, 조금 중요한 질서 중의 하나가 아니었는가라 는 생각을 해야 한다. 하나의 예, 1421년 영락제, 정화가 남해원정을 떠나는데 게빈 멘지스 (Gavin Menzies)의 분석에 의하면 남해원정을 갔을 때 이끈 선단은 역사상 엄청난 규모였다 고 하고 마젤란보다 먼저 세계일주를 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북극, 남극까지 선단의 능력으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논의를 하면서 세계를 돌고 나서 결국 멘지스는 근대 자본주의의 식 민지 건설이라는 것을 생각조차도 안 했거나, 생각을 했어도 실행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결론 내리고 돌아온다. 이것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당시 중국의 국가, 세계 그 세계인식을 드 러내는 또 하나의 지표이다. 중국이라는 당시 동아시아 질서가 제국의 폭력성이라는 하나의 키워드, 조공 시스템이라는 기존의 상하관계로 기의되지 않는 다른 것들이 존재한다. 홍대용, 중국의 1766년 조선말에 가서 중국을 보고 친구를 사귀고 돌아와서 친구에게 편지를 썼고 1 년이 걸려서 도달했다. 당시의 조공시스템이 현재의 식민지, 인터넷 상의 미국과 한국의 패권 적 촘촘한 권력망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홍대용이라는 사대부가 중국 친구에게 편 지를 써도 1년이나 걸렸다는 것, 현재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 어떤 현재적 함의를 지니는 지 생각해야 한다.

조공책봉시스테의 중국의 폭력성, 재부활의 가능성이 현재에서는 대단히 시의성 있는 아젠다 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검토해야 할 것은 공시, 통시적인 관점이다. 과거의 일제시대와 중화체 제를 비교할 때, 어떤 지표로 비교하는가? 현재 미국의 패권체제와 어떤 상호 차이가 있는가 라는 생각. 폭력성의 문제에 대한 꼼꼼한 비교가 필요하다.

또한 중화의 단절 문제를 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사대’의 문제로서 중국이 중화를 스스로 극 복해내고 새로운 근대적 민족주의 개념으로 바꾸려는 노력에 비해 그렇게 많이 극복하려는 노 력이 없다. 사대 극복의 노력은 청말 지식인들의 논의에서 드러나는데, 식민화되면서 그 논의 가 이어지지 못하고 사대를 어떤 의미에서 근대적으로 재생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국가 간 권력의 힘의 차이 속에서 뭘 중 요시하고 어떤 것에 의해 움직여져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중국 사회주의의 전통과의 청산 문제에서 이해가 결여되어 있고 곧 바로 연속적으로 중국을 전통시스템과 결합시키는 인식은 몸통 없는 다리만 연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중화 패권 부활문제현재 중국담론 속의 화두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동아시아론 비판논 문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중국의 팽창 가능성은 열려있고, 강대국으로서 나쁜 힘을 쓸 가능성도 있는데 이를 검토할 때, 미국이라는 실제적 패권이 연동되거나 어떤 관계를 맺을 것 인지에 대한 동시적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 속에서 중국과의 관계에 대한 담론을 이야기해야 한다. 많은 담론들은 미국을 배제하고 중국이 패권으로 갈 것이라고 본다. 금세기 내 중국이 미국과 같은 패권으로 갈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한다. 과거처럼 전쟁으로 승리하는 결과로서도 안 됨. 중국의 패권적 경향, 위협을 고민할 때 미국과의 관계망 속에서 그 틀 속에서 어떻게 이해할지를 봐야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한 이해가 될 때,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논의도 가능하 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패권으로 치닫고, 동아시아 질서의 새로운 체제로서 검토할 때, 핵심 검토사항 중 하나는 현재의 중국 자본이 어떤 성격을 띨 것인가의 문제에 놓여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자본이 행보, 미국의 자본과는 또 다른 성격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중국자본의 성격은 미국과 다른 행보들이 있다. 보라카이 사건으로 부각된 ‘충칭’에서 충칭의 실 험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충칭실험 중 토지문제를 농민과 시민들이 토지개발 이익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었는데 제 3의 길의 하나의 시도로 보일만큼 재밌는 시도들이 진행 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전기자동차 부상이 일어나고 전폭적인 국가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모든 전기자동자의 station을 각 가정에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중국은 그 시내에 국가, 정 부가 만개 이상의 station을 세우겠다는 사회주의적 시스템 속에서 기업이 움직이고 기업이 이익을 내면 절반 정도의 이익을 국가가 가져가는 시스템이다.

결론적으로 저의 문제제기는 이런 저런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들을 가지면 좋은 연구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하고 우리가 쓰는 글, 중국담론에서 지표 찾기를 해야 한다. 연구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함과 동시에 중국담론의 제대로 된 길을 찾는 역할 을 해야 한다. 개인의 세계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고, 어떤 세계관에서 어떤 중국을 말할 것 인가, 보다 분명하게 자신의 권력지형도를 그려야 한다. 그것이 필요한 것이 현재 중국담론의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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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손지오: 조공시스템과 일제 식민지 체제의 비교를 언급하시면서 국내의 평가가 그 두 시스템 을 동일시하거나, 조공체제를 더 나쁜 것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보셨다. 조공시스템이 더 나빴다고 보기 어려운데 조공시스템에 대한 중국과 한국의 시각 차이가 있을 것 같다. 한국의 시각으로 본 역사적 평가로 보면 중국은 황제국가로서 조공시스템을 요 구하고 한국의 국내정치에 개입을 하려고 했을 때 자율적으로 우리가 조공시스템을 활용했다 는 입장도 있다. 중국에서는 조공시스템을 어떻게 평가를 했는지, 중화시대의 단절을 언급하 셨는데 과거 중국, 중화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자발적으로 한 것인지, 당시 세계정치의 구조 적 측면에서 봤을 때 미소의 양극체제의 국제정치 구조 하에서 중국이 영향력이 제약되어서 중화가 단절되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김희교: 일제 시대 때 보다 조공체제가 더 나았다는 기준이 무엇인가, 두 가지 동일하게 비교 가 가능한가? 조공시스템은 장기적으로 이루어졌고, 여러 왕조들을 걸쳐서 이루어져 왔고 그 런 과정에서 한국이 조공시스템의 아시아의 국제체제에 어느 한 부분으로서 자발적으로 순응 을 하면서 중국의 보호를 받는 동시에 조공을 보내고 국내정치에 대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 었는데, 일제 시대 때는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의 침략을 받고 중국과의 조공관계에 비해선 단 기적이었으나 수탈, 침략을 겪으면서 공격적, 폭력적 지배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중국에서 조공시스템이 역사적으로 일제 침략기보다 더 길었다. 당연히 길었는데 우리가 진대부터 청말까지 쭉 지속된 것은 아니다. 단순 수치로 봐도 조공시스템이 자율적인 지역 시스템으로 움직일 시기는 짧았다. 동아시아 조공 시스템이 명확히 된 것은 명, 청대라 고 스스로도 규정한다. 역사적으로 그런 시스템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고 진대 이후 계속 차별적으로 지역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쭉 관철된 것은 명, 청 시대 이후이다. 장기지속의 문 제를 지속적인 수탈인가, 지속적인 폭력인가라고 생각하는데 장기지속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 것이다. 조선은 왜 장기적으로 조공을 저항하지 않고 바쳤을지의 문제도 있다. 조선은 한 번이라도 더 조공을 하려고 했다. 조공은 식민시스템과 달리 경제적 수탈이 아니라 경제적 시혜 시스템인 측면이 있고 경제적으로 명확한 위계질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삼성 교수 나 다른 연구자들을 보면 독자적으로 움직임인 것처럼 설명된다. 조공시스템은 위계질서에 대 한 상하관계, 결국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서로 간의 문화적 위계질서, 세계관의 공유라는 시스템이다. 그것을 어떤 형태로든 위계질서가 분명하다. 한국의 진보진영처럼 보편주의적 관 점에서 보면 국가 간 위계질서는 조공체제는 식민체제는 패권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비 판에서는 조공체제는 없어져야 하는데, 어쨌든 우리는 미국 패권체제 하에 있고, 일종 위기의 시스템 하에서 어떤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겠는가? 원론적인 입장이 있어서 주체적, 독 자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도 있는데 한미일 동맹체제, 싸드(THAAD)를 받아들이고, 패권을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담론에 종속, 복종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가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이 어떤 정치적 역할을 하나 생각해봐야 한다. 조 공체제의 문제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경우 다른 쪽으로 주류 담론에 봉사, 공조할 가능성이 있다. 또 하나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는 침묵, 보수적 형태를 만드는 기능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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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조공, 사대질서 하에서 그것이 이뤄지기 위한 여러 매커니즘이 있었는데 조공은 물자만 이 아니라 사람도 가고 처음에 시작할 때 중국이 복합적이라고 시작하셨다. 우리가 중국 담론 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중국을 비판, 옹호, 제 3의 의견이라고 할 때 전통질서에서 중국은 어 떤 중국을 다룰지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명, 청은 다르게 봐야 하지 않을까. 명, 청이 조공제도를 활용한 것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병자호란의 이전, 이후의 시기에서 조공제도는 질적, 양적으로 달랐다고 생각한다. 조공이라는 것이 피폐화, 조선 초기와 명의 관 계에서는 우주가 돌아가게 하는 조화로운 시스템으로 보려고 하는데, 시기별, 왕조별 조공이 라는 제도를 일반화하기 어려운 호혜적 관계였다. 또는 일방적, 폭력적 관계였다고 어려웠다. 일반화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사례별로 상세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있지 않는가. 지금까지 일본, 서구식의 중국담론이 한국 학계에 이식이 되면서 문제점들이 확연히 드러나는데, 동시 에 이런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균형. 건강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지만 이런 담론 들을 탈정치화하려는 노력들이 더더욱 정치적일 수 있다. de-politicization의 노력이 re-politicization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희교: 조공시스템이 다양하고 시대별로 다르다고 하는 내용은 주류에서도 하나의 색깔, 하 나의 시스템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는데 동의한다. 일반화의 어려움은 어렵다는 데까지 는 동의하나, ‘어렵다’의 정치성에 대해선 고민해야 한다. 어렵지만 이 프로젝트 끝나면, 뭔가 말 할 것이다. 무슨 말이든 한다는 말, 무엇을 말하는 것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의 지형도를 그려야 한다. 비판하는 저도 정치적이라는 수 준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정치적이라는 주장이다. 저는 기존 담론에서 이것이 문제라는 이야 기가 되어야만 현재 중국담론의 편향성을 극복할 수 있는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일 수 있다는 것의 반 비판이면 정치적 결과로 나갈 수 있다. 실제적으로 정치적이다. 정치적이 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한국의 역할에 대한 논의들을 제기하시는데 주장이 없다. 분석, 나열해 놓고 연구자 가 그 다음의 한 챕터가 궁금하다. 그 결론이 없다고 결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학계의 동향, 현실은 냉전과 시장주의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공존한다. 내 말은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 다는 생각을 하면서, 개입하지 않고 학문의 위치를 지키겠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학문의 위치 를 지킨 것이 아니라 동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독일 나치 시대의 일상사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일상사 연구에서 독일 나치만 문제 가 있었나? 일상사 연구자들은 침묵한 대중들도 나치의 생각, 무슨 행동들을 하고 어떤 의미 를 지니는지 대부분 의식하고 있었다. 독일의 ‘나치’ 시대를 예외적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다 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결국 어떤 이야기든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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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정: 몰주체성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de-politicization이 re-politicization이라고 생각하 는데, 극단적인 시각. 중국을 대변 혹은 중국을 보는 서구적 시각 둘을 사이에서 제 3의 주체 적 시각 정립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 두 중간에 어떤 시각이 가능한가, 이에 대해 이미 연구 가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것이 중국의 시각이기만 할까, 제 3의 시각에 대해서는 손에 잡 힐 정도 뭔가 와 닿지 않는 감이 있다. 또한 제 3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동의해도 한국 의 주체적인 시각에 따른 연구는 어떤 방향으로 되어야 하는가? 각자의 170여 개국의 독자적 시각이 있을 텐데, 한국이 중국, 서구 대변의 시각이 아니라 한국이 우리가 100퍼센트 주체적 이라는 시각이 있을 수 있는가의 질문을 드리고 싶다.

김희교: 상당부분 중국학계는 객관주의, 학문순수주의에 입각한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저의 입 장으로면 서구주의면 어떻고 중국주의면 어떠한가? 이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식의 글을 쓰는 데는 중요하지만 현실 권력망의 개입에는 또 다른 차원의 글쓰기가 되던지 아니면, 이 글을 통해 어떤 중국담론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의 문제이다.

조은정: 누구에 따라 다른가로 봐야 한다면.. 다원성을 생각한 토론의 장을 여는 것은 어떠한 가? 한국적 중국담론에 기여하는 글이 있다면 그런 글의 예는 무엇인가?

김희교: 중국 쪽 시각들을 많이 듣는 쪽이라고 볼 수 있다. 주류 담론에 대해 비판적이고 중 국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중국 이야기를 하는 것들이 많이 쏟아지고 있다. 서구에서 중국의 변 화를 새롭게 보는 시각들도 존재한다. 이야기의 핵심은 글이란 것은 모두 편파적이라고 보인 다. 어떤 편파적인 일을 할 것인가의 논점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 있어서 저의 경 우는 글을 보면 친중주의자라는 비판들을 받을 정도로 중국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서구에서 보지 못한 중국에 대해 논의하는 글들을 써왔다. 이는 중국이 좋아서가 아니다. 한반도에 사 는 내가, 나의 입장에서 볼 때 한반도가 어떻게 가는 것이 중요한가? 빨리 북한을 양지로 끌 어내어 평화지대로 만드는 것이 시급한 국가적 아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 안에서 긍정적 역 할, 시스템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중국이라고 본다. 6자 회담에서의 역할, 미북 갈등에서 한 역할 등이 그러하다. 중국의 부상으로 우리는 다원외교의 하나의 현실적 가능성 을 얻은 상태이고, 그 안에서 한반도를 평화의 지대로 만들어나가는 작업들을 개인적으로는 하고 싶다. 그렇다면, 중국을 나쁜 중국, 못된 중국으로 보는 시각을 깨야 한다. 언론의 태도 는 중국위협론을 부추기고 있다. 중국위협론의 획일적 사고는 저에게 좋은 결과를 줄 것 같지 않은 세계관이다. 중국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결국 중국이 조공시스템을 부활시켜서 더 나쁜 역할을 하는 데는 넘어가지 않도록 중국담론이 건강해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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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미:
교수님의 청말 기의 미국의 대중정책과 중국민중들의 대외정책에 대한 담론분석이라 는 박사논문에 관심이 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이 “진보와 발전 사이의 모순”이라고 생각 이 든다. 제국주의에서 시작된 동아시아적 근대, 냉전으로 이어지고 일정하게 모순이 남겨져 있고 그런 관점에서 대외적 주권을 강조하다보니 근대국가가 대내적 주권형성 과정에서 대내 적 합의나 사회계약의 문제들이 왜곡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저는 민중과 엘리트 관계라는 것 이 오늘날 중국에서 어떻게 전개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여전히 중국도 G2로서의 중국도 자유롭지 못한 국제적 압력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이 가진 아시아적 모순의 구조적 조건이 기도 하다. 그것을 어떻게 잘 개혁하고 헤쳐나가려고 하는 상황에서 국가-사회, 민중과 엘리 트의 관계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잘 변화되어갔는가에 대한 생각을 한다. 한국의 민족주의, 중 화담론이 국제정치든 국내정치에 대한 것이든 연동되어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청말의 변법 운동 등이 실패하고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는데 성격에 대한 말이 많았다. 절반의 성공 등 문화대혁명, 오늘날 중국의 민중관계에 대한 이야기와도 연관된다. 우리의 중국담론에 결 여된 부분은 중국적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전근대의 조공체제와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 속의 중국의 지위, 패권론과 연결시켜서 중화적 패권이라 는 몰역사적인 착각이 대중적, 외교적 수사로 사용되는 것이 문제적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적 정체성과 관련되어서 우리도, 중국도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라는 것은 대내적 주권의 형성에서 보이는 엘리트-민중 관계에 중국의 대내적인 것에서 어떻게 해소되고 있는가? 우리에게 그것 이 어떻게 작용될 것인가의 논의는 아니지만..중국에서의 엘리트-민중 관계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김희교: 중국 공산당 조직을 역사상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로 보인다. 소위 근대시스템 중 하나인 중국의 언론, 민의를 반영하는 언론의 문제도 구조적으로 어떻게 봐야 하는지의 문제와 연결된다. 중국 공산당은 한국에서 가장 왜곡된 핵심 대상 중의 하나라고 생 각한다. 지금 중국공산당의 조직을 보면 조직규모, 조직을 재편하는 방식들이 주로 집체주의 라고 말해지는 것에 상당히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왕후이의 최근의 책이 나왔다. 외부에서는 보시라이 사태를 언론이 차단, 편향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시기 언론 이 밀실정치였다고 한다. 저자는 사회주의를 밀실정치라고 보는 것에 대한 반감을 갖고 글을 썼는데 그 반감에 동의한다. 중국 공산당이 계급정당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하나의 관 료정당으로 나가면서 대단히 소위 민중이라고 말해지는 사람들의 욕구, 현실을 반영해내려고 하는 정책을 여전히 국민들이 만족하는 수준으로 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목표, 사회주의 시스템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많이 되었다고 하지만 국 가정책, 서구 언론에서 중국의 삼농문제를 다루는데 농업의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다고 생각한 다. 사실 통시적으로 보면 중국이 굶어죽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 개혁개방 이후 처음이다. 전체적 그래프에선 더 나아지고 있다. 소위 농민들의 저항, 지역갈등으로 붕괴할 수준이라 고 논의하는 일부 서구의 예측에서는 잘못되었다. 중국의 헤게모니를 보면 완벽히 중국을 대 변하는 정당으로서 공산당은 아니나, 거대한 중국을 당분간 합의된 권력의 정당성을 갖고 끌 고 나가는데 충분한 대중들의 의사가 반영된 관료정치를 진행해나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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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욱희: 중국에 가서 장예모의 작품과 장 샤오방이라는 화가의 작품을 보았는데 장예모의 실 경, 뮤지컬, 영화 등을 보면 이것이 중국적이라고 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한다. 내가 중국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모두는 다 중국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더라. 근데 장 샤오방도 중 국적인가? 중국의 가족, 나약함이 독특함이 있지 중국적인가? 사실은 복합적이라고 생각되는 데 그렇다면 복합적이라는 말은 또 무엇인가? 우리가 어떤 진짜인(authentic) 것을 중국적이 라고 봐야 하는가?

연구과제와 연관되어 위협인식에 관심이 있다. 권력관계와 세력균형 안에서 학자들이 대부분 위협균형을 보고 있는데 저의 견해로는 위협의 형성(transform)이라고 생각한다. 위협인식은 제가 보기엔 본질적(primordial)인 부분이 있다. 군사비 지출, 계량화되는 부분이 있고 구성 적, 만들어지는 부분이 있고, 도구적인 부분으로서 잘못 쓰여지거나 편파적인 부분이 있다. 과 연 주류담론의 중국위협론은 얼마만큼 본질적, 구성적, 도구적인가? 지금까지 저는 중국 위협 론이 도구적이라고 보았었다. 미국에 의한 투사가 있거나, 미국을 내세운 일본에 의한 투사라 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중국에 가서 보니까 아주 편하지는 않았다. 2002년 일본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6개월 이후로 있자 뭔가 불편하다. 결국 idea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 학자들은 내재화된 선민의식이 있는데 소위 시민사회(civil society)에 대한 믿음과 21세기의 새로운 계몽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계몽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중국은 다 른 한편으로는 내재화된 자기중심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양쪽 다 나를 대등하게 봐주지는 않 는다. 이를 우리는 얼마나 염두해두고 있는지는 불명확하다. 중국의 국제관계에 한반도 전문 가가 별로 없고 모두 미중관계 하는 쪽에서 한반도를 곁다리로 한다. 즉, 한반도가 별로 안 중요한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위협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지리적 인접성을 가장 먼저 이야 기함. 어쨌든 코끼리가 뛰면 개, 고양이들은 조심해야 한다. 중국이 공격적이지 않은 것은 아 는데, ‘방어적’이라고 이야기할 때 느끼기엔 섬뜩한 부분이 있다. 이를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하는가? 일본은 ‘적극적 평화전략’인데 공격적이고 중국은 ‘확장된 방어’라는 말을 쓰는데 이 것은 무엇인가? 징기스칸도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다 보니 제국이 건설되었다고 한다. 굉장히 그쪽에서 중요시하지 않은 입장에서 봤을 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다시 말하면 본질 구성, 도구적 측면에서 국제정치학을 논의하는 쪽에서의 중국위협론을 볼 때 어느 정도로 평 가 절하하는 것이 적절한가?

그리고 어떤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가? 북한문제에 대한 평가에 동의한다. 그동안 중국역할을 별로 기대하지 않고 우리는 계속 미국역할을 기대해 왔다. 6자회담은 방법이 없는 중의 방법 이다. 이는 북미가 풀어야 하는데, 미국은 풀 생각이 없다. 중국 역할에 큰 기대는 안 하나, 현 상태에서 전략적 모색을 했을 때 노무현 동북아 균형자론은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 떤 입장에서 중간자인지 모호하고 문화적인 입장에서도 그렇고, 막연히 그런 이점이 있지 않 을까를 해왔다. 미중 간의 헤징 또는 균형은 말도 안 되고 지역이 중요하므로 중일 사이에서 유사한 매개자,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나? 북한이 매개가 되면 더 좋은데 그럴 가능성에 대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를 보면 중국이 위기를 잘 극복해왔고, 중국 나름의 체제를 impose하려 고 해온 것같다. 작년 CCTV에서 집단지도체제의 등장을 보았는데 이전엔 나오는 사람들의 비중이 유사했었는데 최근의 CCTV를 보면 시진핑의 비중이 10분을 차지한다. 시진핑이 민중 주의, 서민행보 등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시진핑을 우러러 보고 있다. 뭔가 변화하고 있지 않는가? 또한 중국의 당에 대한 연구 이외에 일상 생활세계의 권력망 이해를 위해서는 어떤 연구가 있는지 예가 있으면 들어주길 바란다.

김희교: 무엇을 중국적인 것으로 보나? 사회주의, 자본주의, 전통 중국적 중국이 있다. 전통 중국의 중국에서는 문화, 역사적. 세 가지가 복합되어 있는 것이 중국이라고 본다. 하나만 보 고 중국을 해석하면 실패라고 생각한다. 특히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우려져야 잘 볼 수 있다. 사회주의적 중국의 토지국유화, 국가가 정책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거대한 능력이 있는 것들, 당이라는 일당 독재 시스템부터 아주 자본주의적인 국내시장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 는 것이 중국이라고 생각한다. 실경연극에서 복합이 그대로 들어나는데 천하의 문화의 꽃인 중국의 재부활할 가능성을 느꼈다. 촌스럽지 않고 볼만한 수준이었고 동시에 이것이 중국이라 고 느꼈던 것이 있다. 10만도 안 되는 시골도시인 핑야오에서 보았는데 그 도시의 무대를 만 드는데 천억이 들어갔다. 그런 것을 지구상에서 누가할 수 있나? 결국 사회주의적 정치지평의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무서운 중국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그것에 등장하는 무용수들인데 현지인들이 채용되고 학교들을 만드는 시스템, 자본주의 시스템과는 다르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통시대의 동아시아의 공동체적인 부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위협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거대한 국가의 존재 자체가 불편하고, 일정 정도 위협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불행일 수도 있고, 안정을 누릴 수 있는 동아시아 체 제 속의 안주할 수 있던 행복의 측면도 있다. 지리적 위협부분에서는 20세기 이후, 태평양이 시멘트화되었지만 미국의 항공모함이 여기 있고 인터넷 시대를 맞아 지리적 위협은 훨씬 약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리적 위협을 더 강조하는 쪽은 전쟁이 일어나면 한반도가 핵심지역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20세기, 전근대에 비해선 지리적 위협의 요소는 크기가 줄어들었다는 생각 이다. 또 하나 평가해야 할 것이 중국의 자기중심성인데 이것이 중화주의의 부활로 평가되는 데,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라고 보인다. 시스템이 부활을 위해서는 중화의식이 화/이를 나누는 상하질서의 이념인데 이는 조공-책봉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중국은 여전히 타국을 파괴 안하 고, 위협적 지배 안한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 적어도 근대에서는 이를 실천해왔다. 한국전쟁 에서도 군대를 철수시켰다. 티벳에서도 다양한 역사적 문제가 있지만 과거 중화주의 복귀는 아닐 것 같다. 청말의 민중들이 청이라는 것을 어떻게 보았는가, 반청공명을 내세운 신해혁명 시에도 청이 흉노, 오랑캐라는 생각이 있었고 동시대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홍대용이 조선 말 청에 가서 친구를 사귀고 돌아왔을 때 사대부들이 엄청 비판했었다. 어떻게 오랑캐와 친구하 냐에 대한 생각이었다. 한족중심의 세계가 첫 번째 구호인데 민족운동에서는 재미있는 현상들 이 일어난다. 민중에서도 반청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모순을 청나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점점 일종의 national의 형태로 변질되어가면서 ‘부청’의 입장과 청을 지탱, 의지한다는 ‘대청’의 개념도 등장했다. ‘대청’으로 민족을 초월한 근대적 민족주의 등이 등장하게 되었다. 저는 지 금 중국인들이 갖는 중국에 대한 자부심, 100년간의 고난, 수난에 대한 자기 민족주의의 회 복, 복귀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근대적 국민국가가 가지고 싶은 일종의 nationalism의 한 형 태일 수도 생각한다. 한국에서 보면 이를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중국과 우리는 어쩔 수 없는 힘의 비대칭적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동안 창비, 동아시아론자들도 중국이 왜 우리한테 관심없는가에 대해서 논의했었다. 한편으로 는 중국이 우리한테 관심 없는 것이 좋지 않나? 중국이 왜 동아시아 평화로 한반도 관심을 갖게 되는가도 그들의 목적, 이익에 부합하기 위한 것인데 강대국이 약소국에 대한 관심은 간 섭으로 갈 수 있다. 그런 측면으로 무관심 자체는 큰 문제 아니라고 보고 중국 입장에서 자연 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한국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는 측면은 한국이 자초한 측 면도 있다. 중국이 보면 한국은 독자적 외교노선을 걸은 적이 없다. 북한 문제도 미국과 정리 하면 되는데 2등 국가로서 한국의 평가역할을 우리 스스로 가져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아직은 중국 위협론이 현실적으로 기능할 가능성, 중미관계에서 힘의 크기에 따라 면 밀히 따져보야아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반도의 중간자적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특히 시진핑의 방한에서 보이듯 중국 지도자가 한국에 오는 것이 이상한 일일 수도 있는데 왔다. 핵심에는 싸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반도의 미사일 설치를 확인하고 싶었고, 설치하지 말아달라는 일종의 제스처를 취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아젠다는 시진핑이 올만한 수준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지 금 당분간은 중미관계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따라 상당한 큰 역할을 할 가능 성이 있다. 한중 FTA에도 그런 측면에서 득을 봤다고 하는 입장인데 강대국과 협상하면서 불 리하지 않은 협상을 한 속내, 중국이 가능한 한 한반도를 중립지대로 만들려는 정치적 선택을 했다. 가능한 한 연결고리를 만들고자 하고 그런 것들을 적절히 활용해 내는 방향이 필요하다. 일본이 힘을 보태고 북한이 좀 더 투명하게 나오면 한국이 그 과정에서도 중요 역할을 할 수 있고, 이후에도 중요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우리의 역할 중요하다. 미국도 크게 변할 변수가 별로 없고, 중국도 별로 변수가 되기 어렵고 북한, 한국의 변수가 중요할 듯하다. 특히 한국의 변수가 소위 ‘중간자’적 역할을 논의할 만큼 중요할 수도 있다.

집단지도체제에서 시진핑 권력 강화는 예상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의 행보를 적 극적으로 해왔는데, 상당한 문제를 일으켰고 많은 시위, 인터넷을 통한 비난 등을 방치할 수 없는 수준으로 놓았다. 핵심고리를 푸는데 있어서 일당 집단지도체제를 하는데 중국 정통성 확보를 중심으로 하였다. 당은 공평, 공정한 인민에 복무하는 당이라는 역할을 부여하고 시진 핑이라은 강력한 드라이버(driver)에 힘을 실어준다는 생각이다.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보다 강 한 1인 지배체젤 가면 미국의 대중압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미국의 ‘아시 아로의 귀환’에 대항하여 패권의 폭력성을 드러내면서 미국에 대한 경계심을 보이면 효율적 지배체제를 만드는 길로 갈 수도 있다. 시진핑에게 더 힘을 실어주고 더 적극적, 대응적 역할 을 해나가고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마오, 덩샤오핑 정도의 권력지도자로 넘겨주기엔 이미 많은 부분이 지방분권화, 권력들이 흩어져있다.

권력망, 일상생활 연구에 대해서는 부족하다. 한국에서 학문하는 자들의 글은 주장이 없는 글 과 결부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중국담론은 여전히 특정한 관료, 특정 언론이 전적으로 실제 현실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중국전문가들의 견해가 반 영되기 보다는 기존의 주류들이 하는 것이 지속되고 있다. 현실적 판단들이 결여되는 경우도 많다. 한중관계를 회고해보면 체제적이고 논리적으로 대응했기보다 오히려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반사이익 등을 얻어오는 수준에 있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반사이익은 중국이 어느 단계 오르기 이전까진 가능했으나, 이제는 불가능하다. 이제는 중국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 해서는 심층적, 복합적인 부분의 고려가 필요하다. 중국의 정체성 복합적으로 보고 대중정책 을 집행하는 권력체계의 힘을 부여하는 시스템에 좀 더 많은 연구자들, 글들이 참여하고 문제 를 제기하고 새로운 문제의 장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역사학의 일상세계사는 논문, 헤게모니를 부여받은 일상생활의 권력 속에서 뭔가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용채영: 근대이행, 근대 냉전기에도 제국질서가 유지되었고 탈냉전기 미 제국에 대한 논쟁이 있어왔고, 국제질서 상의 제국의 몰락 또는 패권의 쇠퇴에 대한 논쟁들이 있다. 국제의 질서 와 동시에 제국의 위계질서가 존속할 때, 중국의 모습은 미국 패권과의 비교했을 때 어떤 모 습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김희교: 어떤 관점으로 서는가의 문제에 달려있다. 한반도의 주요 아젠다를 생각해보면 좀 더 적극적인 국익을 추구하려고 한다면, 미국의 한미일 삼각 공조체계 보다는 다각외교로 돌아가 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미국의 일방적 힘의 작동을 견제하면서.. 우 위는 점하지 못하지만 권력제한 역할을 한 중국이 손을 내밀고 있을 때 활용해보자는 입장이 될 수 있다. 한반도가 평화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보는데 과연 미국과 중국 중 뭐가 더 나쁜가? 중국은 하루아침에 한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 가능성은 없다. 미국은 북미관계가 어 떻게 되는가, 미국은 늘 전쟁위기로 몰고 가고 있고 그 것은 계속 진행하고 있고 우리에게 유 리한 상황은 아니라고 보고 한반도의 핵심 위기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중국을 핵심 파트너라 고 생각하면 어떤 문제가 있는가? 중화주의, 조공 시스템의 부활은 근대 자본주의 시스템 하 에서는 불가하다. 미국 자본과 같은 중국. 소위 중국 자본시스템도 등장할 수도 있다. 절대적 인 한국 주권의 행사문제여서 상하관계가 형성 안 됨. 중국 자본이 스스로 그런 역할을 하거 나 다른 행보 갈 가능성도 있다. 주류의 자본이 미국의 자본처럼, 특이 이익 자본으로 갈 가 능성도 없지만 세심한 검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다. 당분간 우리가 힘을 쓸 수 있는 폭이 있다면 중립자적인 입장에서 그 호기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몇 가지 아젠다들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 필요하고 그러한 필요성에서 중국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헌미: 국가 사회-엘리트의 일당독재가 더 가능한가? 국제적 시스템과 국내적 시스템이 보편 화되지 않고 지금은 미국적 국제적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외형적으로 싸우는 상황이고 언젠가 자기의 힘을 투사(projection)할 것을 기다린다고 보인다. 중국적인 새로운 베이징 컨센서스에 대한 논의도 있지만 중국경제가 호황일 경우만 유지될 것이고 경제성장률 유지 안되면 공산당 정당성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장예모의 실경연극도 엄청난 비용이 들고 시장논리로는 이득이 안 되지 않나?

김희교: 만들 때는 돈을 벌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시행 후에는 외국 관광객들을 포함하여 상 당한 관람객이 동원되고 실제 이익은 많이 남는다. 그 바탕에는 저렴한 인건비, 중국식의 사 회주의 토대가 남아있다고 본다. 지금은 뮤지컬이기도 보기보다 중국적이지도 않고 짬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신욱희: 경제가 정치를 받혀줬다 또는 중국식 체제여서 위기를 잘 넘겼다는 견해가 대립되는 데 허술하게 보는 시스템이 사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위기관리에 더 적합하다. 경제가 좋아 서 중국이 잘 됬다고 보기만도 어렵다.

이헌미: 하지만 여전히 국가주의적(nationalistic)이지 않은가? 민주화된 국가는 시장 통제력 상실된 상황인데 중국은 시장 통제의 비교우위가 있다. 그게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가?

김희교: 공산당의 지속 여부의 문제인데 시진핑 시대 이후를 보면 오래 갈 듯하다. 적절히 중 국인들이 필요한 것을 배치해 놓았다. 덩사오핑 이후의 중국은 못사는 것 이외엔 별로 문제없 었다. 대부분 큰 문제들은 해결했다가 못 살아서 자본주의를 추구하였다. ‘선부론’이 성공을 어느 정도 거두었고, 되다 보니까 관료부패가 대두되어서 손 보고 있다. 누구 한명이 이끄는 것이 아니라 상무위원 등등이 아니라 실제 하부조직들이 모든 세포조직들에 다 있어서 위의 명령을 하달하는 기능도 하지만 민의 수렴하는 기능도 있다. 그런 점에서 무서운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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