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5

14 알라딘: 제국의 구조 - 중심.주변.아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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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구조 - 중심.주변.아주변 |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4
가라타니 고진 (지은이),조영일 (옮긴이)비(도서출판b)2016-07-20

원제 : 帝國の構造: 中心·周邊·亞周邊 (2014년)






































365쪽
147*217mm
622g
ISBN : 9791187036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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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4권. 가라타니 고진은 <세계사의 구조> 이후 그것을 보충하는 형태의 책을 세 권 펴냈다. <자연과 인간>, <철학의 기원>,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제국의 구조>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국의 구조>는 <세계사의 구조>를 완성시키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끊임없이 이동하는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이 <세계사의 구조>를 넘어서 새롭게 전개하는 사상의 시발로서 볼 필요가 있다.

<세계사의 구조>에서 그저 이념으로서 제시된 '세계공화국'이 <제국의 구조>에서는 실제 오랫동안 존재했던 '제국의 고차원적인 회복'으로 보다 실제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근대와 그것의 지배형태인 제국주의의 극복은 아시아적 가치, 제국적 가치의 회복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세계사적 시야'로 제국과 제국주의를 명확히 구분하고 제국적 가치를 재평가함으로써 신자유주의 하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 5

제1장 헤겔의 전도란 무엇인가
1. 왜 헤겔 비판인가 · 17
2. 마르크스가 행한 헤겔 비판의 맹점 · 23
3. 생산양식론의 한계 · 27
4. 교환양식의 도입 · 33
5. 사회구성체와 교환양식 · 40
6. 전후의 전도 · 42
7. 미래로부터의 회귀 · 46

제2장 세계사에 있어 정주혁명
1. 유동적 수렵채집민 · 55
2. 정주의 곤란 · 62
3. 호수성의 원리 · 65
4. 정주혁명 · 69
5. 호수제의 기원 · 72
6. 유동성의 두 가지 타입 · 76

제3장 전제국가와 제국
1. 국가의 기원 · 87
2. 공포에 의해 강요된 계약 · 92
3. 제국의 원리 · 96
4. 전제국가와 제국 · 100
5. 제국과 제국주의 · 108
6. 페르시아제국과 로마제국 · 115
7. 유럽과 제국 · 124

제4장 동아시아의 제국
1. 진제국 · 135
2. 한제국 · 144
3. 수당제국 · 153
4. 유목민의 제국 · 161
5. 몽골제국 · 164
6. 몽골제국 이후 · 168

제5장 근세의 제국과 몰락
1. 러시아·오스만·무굴제국 · 177
2. 제국의 쇠퇴 · 184
3. 유럽의 세계=경제 · 188
4. 제국의 ‘근대화’ · 197
5. 오스트리아·러시아 · 209
6. 중국 · 217

제6장 제국과 세계공화국
1. 제국과 신국 · 227
2. 헤게모니국가 · 233
3. 역사와 반복 · 240
4. 국가연방 · 244
5. 자연의 간지 · 254
6. 자연과 역사 · 262

제7장 아주변으로서의 일본
1. 주변과 아주변 · 275
2. 야마토와 코리아 · 284
3. 황제와 천황 · 290
4. 관료제와 문자의 문제 · 298
5. 한자와 가나 · 302
6. 일본의 봉건제 · 310
7. 도쿠가와체제란 무엇인가 · 322
8. 메이지유신 이후 · 330

후기 · 335
옮긴이 후기 · 337

인명 찾아보기 · 351
사항 찾아보기 · 359
접기


책속에서



▶ 한 페이지로 읽는 <제국의 구조>

“캉유웨이나 그것을 이은 청조 말기 사상가의 작업은 당시 존재했던 제국을 부정했지만, 그 가능성을 고차원적으로 회복하려고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캉유웨이의 ‘대동세계’라는 비전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제국을 ‘지양’하는 것입니다. 물론 캉유웨이 등의 사... 더보기

씨족사회는 유동적 사회에 존재한 중요한 측면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리 억압해도 회귀합니다. 그것은 국가사회나 자본주의사회 안에서도 회귀합니다. 사람들이 잊으려고 하고, 또 실제로 잊어도 그것은 인간의 의지에 반(反)하여 되돌아옵니다. (76) - 가드너

미소의 냉전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노마돌로지는 이 냉전구조를 해체하는 탈영역적 탈구축적인 원리로 주목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되고 자본주의의 글로벌리제이션이 이루어진 1990년대 이후 그것은 ‘자본의 제국‘ 또는 신자유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변화되었습니다. 그것은 국경을 넘고 네이션을 넘어 모든 곳에 침투하는 침입하는 자본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실제 그 결과로 새로운 타입의 유동민이 출현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트세터...라 불리는 비즈니스맨, 그리고 그것과 평행해서 등장한 홈리스가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유동성으로는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82) 접기 - 가드너

다시 말하자면, 정주 이후에 생겨난 유동성, 즉 유목민, 산지민 또는 표박민의 유동성은 정주 이전에 존재한 유동성을 진정으로 회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으로 그것은 국가와 자본의 지배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서는 실마리는 역시 유동성에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수렵채집민적 유동성입니다. (82) 접기 - 가드너

동시에 그리스문명은 아시아...제국의 주변에 있었다는 것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즉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들인 점이 컸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 그리스문명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변부는 중심에 종속되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처럼 선택적 태도가 가능한 주변부를 ‘아주변‘이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세계=경제는 세계=제국의 ‘아주변‘에서 성립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10) 접기 - 가드너

즉 몽골은 ‘질주하는 초원의 정복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목축과 농업을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대륙과 바다를 통합한 것이었습니다. 원에 의해 비로소 중국이 처음 중심이 되었습니다. 중국왕조에서 대륙과 바다의 파워 양쪽을 통합한 것은 원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67) - 가드너

기존에 몽골 치하에 있던 중화본토에서는 몽골인, 색목인, 한인, 남인이라는 네 계급의 신분제도가 엄격히 지켜졌다고 큰 소리로 이야기되어 왔다. 하지만 실은 도중에서 부활한 매우 사소한 과거...에 있어 수험제약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을 전전... 일본의 어느 학자가 당시의 중국사회 전체에 적용된 것처럼 ‘일부러‘ 말하고 그쪽이 몽... 더보기 - 가드너

왜 그랬을가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시아와의 교역에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교통이 곤란했기 때문이 아니라 애당초 그들에게는 아시아에 가서 팔 산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럽인은 아메리카대륙에서 은산...을 얻었습니다. 선주민을 정복하고 가혹한 노동을 강제하여 얻은 것이지만 말입... 더보기 - 가드너

세계=경제가 세계=제국을 능가한 데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령 ‘동양‘의 우위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세계=경제를 넘어서는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당양이 세계=경제의 ‘중심‘이 된다는 것, 즉 그처럼 헤게모니국가가 이동한다는 것이 세계=경제의 특징인 것입니다. 동양이 다시 우위에 선다고 해도 그것이 세계=제국... 더보기 - 가드너

반복하자면, 세계제국은 세계=경제에서 생겨난 세계자본주의에 의해 안팎으로 파괴되어 쇠퇴해 갔습니다. 그리고 ‘민족자결‘ 즉 국민국가로의 분해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제국은 마지막까지 다양한 형태로 저항했습니다. 이와 같은 저항은 단순히 제국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만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근대 서양의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라는 관념을 의심하고 그것들을 넘어서려는 지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198) 접기 - 가드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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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비평가이자 사상가이다. 1941년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나 동경대 경제학부와 동경대 대학원 영문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69년부터 문학 비평가로 활동했으며 대표적인 저서로는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マルクスその可能性の中心≫ (1978),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日本近代文學の起源≫ (1980), ≪은유로서의 건축隱喩としての建築≫ (1983), ≪내성과 회고內省と遡行≫ (1985), ≪탐구 Ⅰ探究 Ⅰ≫ (1986), ≪탐구 Ⅱ探究 Ⅱ≫ (1989) 등이 있다.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과 ≪은유로서의 건축≫이 영어로 잇...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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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2006년 <비평의 빈곤: 유종호와 하루키>를 <문예중앙>에 발표하며 비평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2008), <한국문학과 그 적들>(2009), <세계문학의 구조>(2011)를 쓰고, <세계사의 구조> 등 12권의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과 아즈마 히로키의 <존재론적, 우편적> 등을 번역했다. 일본의 문예지 <문학계>, <겐론>, <스바루> 등에 비평이 소개되었고, <세계문학의 구조>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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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지은이)의 말
내가 ‘제국의 구조’에 대해 생각하게 된 동기로는 몇 가지가 있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동아시아에서 살면서 생각해온 경험에서 나오고 있다. 나는 서양의 학문을 배웠는데, 거기서 상식으로 간주된 사항들에 의문을 품었다. 예를 들어, 헤겔의 <역사철학강의>에서 이념은 동(중국, 인도)에서 발하여, 페르시아에서 그리스로마를 거쳐 유럽에 이르러 실현된다. 그의 관념론이 부정된 후에도 이와 같은 관점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에서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나 동양적 전제국가 이후 고전고대(그리스로마)가 이어지고 있다. 막스 베버도 기본적으로 헤겔적 문명의 서점설(西漸說)을 따르고 있다.
(……)
아렌트는 제국과 관련하여 뛰어난 통찰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로마에서 처음으로 제국이 생겨난 것처럼 생각했다. 그녀도 헤겔 이래의 서양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로마제국 이전에 페르시아·이집트에 제국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기 중국·인도에도 제국이 존재했고, 또 그 후의 몽골제국은 전무후무한 세계제국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검토되지 않았다. 동쪽의 나라들은 동양적 전제국가로 정리되어왔다. 현재도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이 보여주는 것처럼 로마제국이 제국의 이념으로서 간주되고 있다.
(……)
구체적으로 제국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특히 중국을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서아시아에서는 수많은 제국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져서 사료가 충분히 남아있지 않은 데에 반해, 중국에서는 그것이 역사로서 쓰였고 또 음미되어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제자백가의 책에는 제국을 초래한 사상들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중국의 제국을 중심으로 생각한 것은 이 때문이다.
(……)
나는 1980년대부터 그때까지 지배적이었던 일본문화·사회론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본문화를 근대 이전은 중국, 근대 이후는 서양과의 비교에서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름을 들자면, 다케우치 요시미나 마루야마 마사오의 이론이 그것이다. 그때 내가 생각한 것은 중국과의 비교만이 아니라 한국과의 비교가 불가결하다는 것이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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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일(옮긴이)의 말
한국에서 가라타니 고진과 같은 비평가를 찾기 힘든 이유는 비교적 명백하다. 욕심을 갖지 않는 것이 비평가의 미덕으로 간주되고 장려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일본비평가와 한국비평가의 차이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어떤 역설이 존재한다. 즉 일찍이 이어령은 일본문화의 핵심을 ‘축소지향’이라는 개념으로 요약했는데,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한국형’ 비평가들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 지극히 일본적이라 할 수 있고, 가라타니도 “마르크스는 독일인으로서 작업을 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나도 일본인으로서 글을 쓰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는 이제 일본인으로서, 그리고 일본 독자만을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 그가 다루는 것도 일본적 상황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그가 그런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에서 문학비평이 가진 독특한 위상과 관련이 있다. -<옮긴이 후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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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 <트랜스크리틱>, <세계사의 구조>와 함께 3대 주저로 꼽히는 <제국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帝國の構造, 2014)가 출간되었다. 가라타니 고진은 <세계사의 구조> 이후 그것을 보충하는 형태의 책을 세 권 펴냈다. <자연과 인간>, <철학의 기원>,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제국의 구조>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국의 구조>는 <세계사의 구조>를 완성시키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끊임없이 이동하는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이 <세계사의 구조>를 넘어서 새롭게 전개하는 사상의 시발로서 볼 필요가 있다. <세계사의 구조>가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면, <제국의 구조> 역시 같은 관점에서 ‘제국’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는 제국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다시 볼 것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논자들이 <제국의 구조>를 <트랜스크리틱>, <세계사의 구조>와 함께 가라타니 고진의 3대 주저(主著)로 평가하고 있다.

▶ ‘제국의 고차원적인 회복’이라는 미래 전망의 제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세계사의 구조>에서 그저 이념으로서 제시된 ‘세계공화국’이 <제국의 구조>에서는 실제 오랫동안 존재했던 ‘제국의 고차원적인 회복’으로 보다 실제적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근대와 그것의 지배형태인 제국주의(그리고 신제국주의)의 극복은 아시아적 가치, 제국적 가치의 회복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제국의 구조>는 기존의 수많은 제국론과 부딪힐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레닌, 홉슨, 아렌트의 제국(주의)론까지 갈 것 없이 비교적 최근의 국내에서도 널리 읽힌 네그리/하트의 대표작 <제국>과도 큰 대비를 이룬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학자들이 제국이나 제국주의에 대해 논했다. 하지만 여전히 ‘제국’과 ‘제국주의’를 혼동하고 그것을 토대로 논의를 진행하여 불필요한 혼란을 불러일으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바, 이런 현실에서 <제국의 구조>는 ‘세계사적 시야’로 제국과 제국주의를 명확히 구분하고 제국적 가치를 재평가함으로써 신자유주의 하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 ‘유럽중심주의 극복’은 아시아중심주의가 아닌 ‘제국’이라는 정치시스템
이런 의미에서 <제국의 구조>를 읽게 되면 더 이상 이전처럼 제국과 제국주의에 대해 생각하기 힘들게 된다. 아니 비로소 제국과 제국주의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된다. <제국의 구조>는 우리로 하여금 제국에 대한 저항과 독립을 제국주의에 대한 그것과 혼동하게 만든 유럽적 가치에 근본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라타니는 제국에 대한 저항과 독립이란 자발적으로 생겨난 것이라기보다는 제국주의가 조장한 것으로, 결론적으로 제국주의의 지배를 용이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적 가치(제국적 가치)를 부정하고 유럽적(제국주의적) 가치를 내면화시키는 데에 일조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시아적 가치가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생겨난 아시아중심주의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시아라는 지역성이 아니라 ‘제국’이라는 정치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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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읽고 다시 읽고 있다.
많은 긍정의 기대치가 있다. 곰곰이 곱씹어 보니 불안한 내면을 감추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가장 큰 부분은 민중은 없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또 일본의 군국주의 망령의 모습도 어딘지모르게 절어 있는 모습같다
마른하늘날벼락 2016-08-16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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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족사회는 유동적 사회에 존재한 중요한 측면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리 억압해도 회귀합니다. 그것은 국가사회나 자본주의사회 안에서도 회귀합니다. 사람들이 잊으려고 하고, 또 실제로 잊어도 그것은 인간의 의지에 반(反)하여 되돌아옵니다. (76)



미소의 냉전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노마돌로지는 이 냉전구조를 해체하는 탈영역적 탈구축적인 원리로 주목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되고 자본주의의 글로벌리제이션이 이루어진 1990년대 이후 그것은 ‘자본의 제국‘ 또는 신자유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변화되었습니다. 그것은 국경을 넘고 네이션을 넘어 모든 곳에 침투하는 침입하는 자본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실제 그 결과로 새로운 타입의 유동민이 출현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트세터...라 불리는 비즈니스맨, 그리고 그것과 평행해서 등장한 홈리스가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유동성으로는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82)



다시 말하자면, 정주 이후에 생겨난 유동성, 즉 유목민, 산지민 또는 표박민의 유동성은 정주 이전에 존재한 유동성을 진정으로 회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으로 그것은 국가와 자본의 지배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서는 실마리는 역시 유동성에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수렵채집민적 유동성입니다. (82)



동시에 그리스문명은 아시아...제국의 주변에 있었다는 것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즉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들인 점이 컸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 그리스문명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변부는 중심에 종속되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처럼 선택적 태도가 가능한 주변부를 ‘아주변‘이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세계=경제는 세계=제국의 ‘아주변‘에서 성립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10)



즉 몽골은 ‘질주하는 초원의 정복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목축과 농업을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대륙과 바다를 통합한 것이었습니다. 원에 의해 비로소 중국이 처음 중심이 되었습니다. 중국왕조에서 대륙과 바다의 파워 양쪽을 통합한 것은 원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67)



기존에 몽골 치하에 있던 중화본토에서는 몽골인, 색목인, 한인, 남인이라는 네 계급의 신분제도가 엄격히 지켜졌다고 큰 소리로 이야기되어 왔다. 하지만 실은 도중에서 부활한 매우 사소한 과거...에 있어 수험제약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을 전전... 일본의 어느 학자가 당시의 중국사회 전체에 적용된 것처럼 ‘일부러‘ 말하고 그쪽이 몽골의 ‘야만적인 이미지‘에 어울린다고 하자 다른 내외의 학자들도 환영했다. (170)



왜 그랬을가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시아와의 교역에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교통이 곤란했기 때문이 아니라 애당초 그들에게는 아시아에 가서 팔 산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럽인은 아메리카대륙에서 은산...을 얻었습니다. 선주민을 정복하고 가혹한 노동을 강제하여 얻은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 은을 가지고 비로소 아시아와 교역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185)



세계=경제가 세계=제국을 능가한 데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령 ‘동양‘의 우위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세계=경제를 넘어서는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당양이 세계=경제의 ‘중심‘이 된다는 것, 즉 그처럼 헤게모니국가가 이동한다는 것이 세계=경제의 특징인 것입니다. 동양이 다시 우위에 선다고 해도 그것이 세계=제국의 회귀는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세계=경제의 압도적 우위를 의미할 뿐입니다. 이 점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서양중심주의를 비판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190)



반복하자면, 세계제국은 세계=경제에서 생겨난 세계자본주의에 의해 안팎으로 파괴되어 쇠퇴해 갔습니다. 그리고 ‘민족자결‘ 즉 국민국가로의 분해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제국은 마지막까지 다양한 형태로 저항했습니다. 이와 같은 저항은 단순히 제국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만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근대 서양의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라는 관념을 의심하고 그것들을 넘어서려는 지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198)



오스만제국의 붕괴가 보여주는 것은 제국은 근대세계시스템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폐기되어야 할 유물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근대세계시스템에 결여된 중요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따라서 근대의 국민국가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원리는 제국을 어떤 형태로인가 회복하는 것이 됩니다. 물론 그것은 낡은 무언가를 회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래된 사회 관습과 관련이 있는 제국, 또는 제국주의와 관계하는 제국을 부정하지 않으면, 제국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즉 제국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제국을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국을 부정하고 그것을 회복하는 것, 즉 제국을 ‘지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04)



16세기 이후 제국으로부터 떨어진 지역의 민족은 서양열강에 의해 간단히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실제 유럽인이 ‘식민‘했습니다. 하지만 제국의 주변은 제국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식민화되지 않았습니다. 제국의 주변부가 식민지화된 것은 19세기 이후입니다. 그리고 제국의 중심에는 서양열강도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붕괴하고 있었지만 20세기까지 제국은 존속했습니다.
서양열강이 제국을 해체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민족자결‘이라는 이데올로기입니다. 이것은 본래 유럽 내부의 룰로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럽인이 식민지화하고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원리를 오스만이나 청과 같은 제국에 적용시키려고 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제국을 해체하고 그렇게 해서 개별적으로 나뉘게 되는 민족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210)



물론 주권국가는 유럽에서 성립한 것입니다. 그것은 제국이 있었던 다른 지역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것이 세계 각지에 파급되었던 것일까요. ......
첫째로 주권국가라는 관념은 주권국가로서 인정되지 않은 나라라면 침략을 받아도 된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세계 침략 식민지지배를 뒷받침한 것은 이런 사고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국가들은 스스로를 주권국가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서양열강에게 실력으로 승인받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민족의 해방 독립이란 바로 주권국가의 확립이었습니다. (232)



둘째로 서양열강은 오스만, 청조, 무굴이라는 거대한 세계제국에는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에 그 제국들의 통치형태를 야만이라고 비난하고 마치 제국에 종속되어 있는 민족들을 해방시키고 주권...을 부여하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 결과 구세계제국은 다수의 민족국가로 분해되었습니다. 그리고 각각 주권국가로서 독립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이처럼 유럽에서 시작되는 주권국가의 관념이 필연적으로 세계에 주권국가를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233)



내셔널리즘을 거부하고 세계시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조국애가 나오는 것일까요. 그가 여기서 말하는 조국애(patriotism)는 근대국가의 내셔널리즘이 아니라 향토애와 같은 것입니다. 코즈모폴리터니즘은 내셔널리즘과 배반되지만 향토애와는 양립합니다. 코스모폴리스는 수많은 향토가 존재하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제국‘입니다. 제국은 다수의 향토, 언어, 종교를 허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칸트의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제국‘에서 유래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49)



여기서 칸트는 강력한 나라가 중심적인 되는 것을 부정하지 않기는커녕 오히려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헤겔이 말하는 것 같은 ‘세계사적 이념‘을 담당하는 헤게모니국가가 아닙니다. ‘강력‘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힘인지가 문제입니다. 그것은 무력인가, 금력인가. 세계=경제에서는 이 두 가지 힘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국가 이전의 사회에는 그것들과는 이질적이고 압도적인 힘이 존재했습니다. 증여의 힘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교환양식A를 뒷받침합니다. 이것은 교환양식D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한 힌트가 될 것입니다. 교환양식D는 교환양식A의 고차원적인 회복이기 때문에 거기서 작동하는 힘도 일종의 증여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종교에서는 그것을 ‘사랑의 힘‘이라고 부르겠지만 말입니다). (270)



한편 증여는 말하자면 승자 쪽이 무장방기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증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증여의 힘을 가집니다. 그것은 어떤 무력보다도 강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국제 여론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증여로 답례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증여의 연쇄적 확대에 의해 창설되는 평화상태가 세계공화국입니다. (271)



바꿔 말해, 일본에서 일어난 일의 특성은 단순히 제국의 ‘중심‘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주변‘과 비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일본의 역사가 사상가에게 결여된 것이 그와 같은 시점입니다. 그들은 통상 일본의 제도나 사상을 중국과 비교해 이해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인이 중국의 문화, 제도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고찰합니다. 그리고 메이지 이후의 일본에서는 ‘중국‘ 대신 ‘서양‘과 일본을 비교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코리아와 같은 주변국가와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코리아를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279)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해, 일본문학의 특징은 세이 쇼나곤의 계열에 있습니다. 그것은 미적, 직관적, 단편적입니다. 사회적인 현실성이 없고 보편적 이념성이 없습니다. 아니 그것을 배척합니다.
이와 같은 특징은 ‘아주변성‘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심‘에서는 견고한 골격이 되는 이념성이 필요합니다. 또 ‘주변‘에서도 그것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아주변‘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념적 도덕적인 태도를 싫어하고 수작업과 같은 것이 가치를 부여합니다. 그런 점에서 자유롭고 플렉시블...합니다. 하지만 한계도 사실 거기에 있습니다. 이론적 도덕적인 것을 경멸하는 태도가 보편적으로 세계에 통하는 것일 수 없는 법입니다. (309)



노부나가의 지위를 계승한 히데요시는 역으로 황실에 접근하여 관백...이 되었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명을 정복하여 황제가 되려고 했습니다. 실제 그러기 위해 조선반도를 침공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근거 없는 과대망상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의 시도의 배후에는 전국시대를 통해 강화되어온 군사력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에 이르는 광역통상권이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명조는 원과 달리 안에 틀어박히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명을 대신하여 그것을 재패하려고 한 것은 특별히 이상한 생각이 아닙니다. 이 시기 일본은 이미 ‘대항해시대‘의 세계-경제에 관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히데요시의 잘못은 해양국가를 노리는 대신에 육지의 제국을 노린 데에 있습니다. 그 때문에 간단히 좌절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일본국가가 메이지 이후에 하려고 한 것을 히데요시가 보다 일찍 실행하고 보다 빨리 좌절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321)



하지만 역으로 바로 여기에 일본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아주변에 있는 자들은 ‘제국‘과 그 주변의 존재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16세기에 명을 정복하여 제국을 세우려고 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또 메이지 이후의 ‘일본제국‘도 제국의 존재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국주의밖에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전후의 일본인은 그때까지의 제국주의를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제국‘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아시아 인접국가와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없습니다. 결국 안에 틀어박히거나 그렇지 않으면 공격적으로 외부로 향합니다. 즉 내폐적 고립과 공격적 팽창 사이를 왔다 갔다 하게 됩니다. 일본이 앞으로 ‘아시아공동체‘에 들어가는 것은 아마 무리일 것입니다.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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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너 2017-08-29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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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변,아주변으로 바라본 세계사




교환양식 A,B,C,D와 세계=경제,세계=제국을 설명하면서 제국,주변,아주변을 설정하여 세계사의 흐름을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철학자/사회과학자 이론을 혼합하여 자신만의 시각으로 잘 설정했으며 일본을 아주변 그리고 한국을 주변으로 설정하여 설명을 시도한 것이 돋보인다.

늘 가라타니 고진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낀 것이지만, 인용구 대부분이 일본어로 번역된 것임을 보고 언급했었지만, 역자 후기에 같은 내용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나름 번역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의 생각이 향후 어디로 향하지 무척 궁금해지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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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심 2016-11-1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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