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인생과 나라의 참 길을 어디에 둘까? - 금강일보
인생과 나라의 참 길을 어디에 둘까?
금강일보 승인 2020.05.18
한남대 명예교수
어쩌면 이 이야기는 평생 이루지 못할 꿈으로 끝날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한 사람이 되었든, 나라나 사회가 되었든 이루지 못할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참 의미가 깊은 것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자주 꿈을 꾼다. 그런데 꿈에서 깨고 나면 그런 꿈을 꾸었는지, 아니면 꿈을 꾼 것은 분명한데 무슨 꿈을 꾸었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참 안타깝다. 무엇인가 재미나는 꿈을 꾼 것 같은데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참 궁금하다. 도대체 무슨 꿈을 꾸었을까? 그런데 그에 대하여 생각하면 할수록 꿈은 자꾸 멀리 떠나간다. 물론 가끔 꾼 꿈이 기억에 남을 때도 있다. 때로는 부끄럽게 생각되는 꿈, 때로는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인생은 꿈을 꾸고 살아야 한다고 참 많이 들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 어른들로부터 그런 말을 많이 듣고 살았다. 여기서 말하는 꿈은 내가 잠자면서 꾼 그런 꿈은 아니었을 것이 분명한데, 어떤 꿈을 말하는 것일까? 공부 잘하거나, 일 잘하여서, 덕스럽게 살거나, 약삭빠르게 살거나 해서 좋다는 학교에 가고, 모든 사람들이 바라보는 좋은 직장을 잡고, 그곳에서 승승장구 높은 자리에 올라서 권력과 영예와 재부를 누리면서 건강하고 다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 일을 하고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하여 아주 많은 재산을 늘리고 훌륭한 가정을 꾸리는 것, 아니면 아주 멋진 학문을 쌓고 덕망을 쌓고 건강하게 좋은 가정을 꾸리고 오래도록 살면서 자기의 덕을 받아 사는 자손이나 주변 사람들이 많은 것이면 좋겠다고 말을 들으면서 살았다. 그런 것을 듣다보면 내가 꾸는 꿈도 그런 종류의 것들이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개인도 이러하지만, 나라라는 것도 그 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을 공동으로 꾸리며 살면 좋겠다는 꿈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않을까? 이런 꿈이라는 것이 과연 의미 있고 깊이가 있는 것일까? 그것을 이룬 다음에는 또 어떤 꿈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일까?
간디의 자서전 ‘진리의 실험’이란 책을 읽을 때 아주 놀라운 것을 발견한다. 특히 힌두들이 일생을 네 단계로 나누어 산다는 것, 그렇게 살기를 희망하고 바라면서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놀라웠다. 첫째는 물적 소유단계, 둘째는 즐거움과 사랑의 단계, 셋째는 종교적 도덕적 의무의 단계, 그리고 넷째는 해탈, 정신의 해방 단계로 나누어 살아가려고 한단다. 최종 단계인 해탈을 이루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네 단계로 삶을 살아간단다. 1) 어려서 많은 스승들을 찾아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와 지식을 배우고, 2) 혼인하고 직장을 잡고 일을 하고 가정을 잘 꾸리고 좋은 재산을 모은다. 3) 위의 두 가지를 이룬 다음에 고요히 산천경개를 찾으면서 고요히 깊은 명상에 들어가는 것이다. 4) 그것은 마지막 출가의 삶, 즉 해탈과 해방의 자리에 가자는 것이다. 이것이 인도 사람들을 가르치고 이끌어 왔던 힌두의 꿈이었다. 이 글을 읽고 난 다음에 나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살아왔을까? 나의 스승들과 조상들은 어떤 꿈을 꾸고 실현하라고 가르쳤을까? 위의 힌두들이 추구하던 4단계의 인생의 삶의 과정을 살펴보면, 내가 배우고 꿈꾼 것은 겨우 두 번째 단계에 머무는 것을 가장 큰 것으로 알고 살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배웠고 그것을 이루려고 조금 애쓰던 것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참 놀랍다. 우리 역사에서 상당히 긴 시간 동안 해탈을 최종목적으로 하던 불교가 정치와 경제와 일상생활을 이끌어 왔다. 그 뒤 또 굉장히 긴 시간 인, 사랑을 실현하면서 살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금과옥조로 알고 살았다. 그러다가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마지막 구원, 즉 해방의 길을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것을 듣고 살았다. 그런데 왜 우리 인생의 목적을, 사회의 목적을 해탈, 해방에 두고 살아가도록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고, 사회에서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느낄 단계에 다다르면 해탈이나 해방이란 단계에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생각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사회 전체가 그것을 목적하지는 않는 듯이 보인다.
그것을 일찍 어려서부터 인생의 목적, 사회와 나라의 목적은 바로 이런 해탈과 해방에 있는 것이라고 일러주는 교육과 사회문화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종 단계를 ‘출가’라고 하니, 그것은 가정을 떠나 절로 간다거나 심산유곡으로 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본다. 거기서 말하는 출가는 단순히 장소의 이동이나 역할이나 책임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 전환을 의미할 것이다. 삶의 목적을 먹고 싸고 가정을 이루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권력을 쌓고 하는 따위가 아니라,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도 최종으로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해방의 단계, 해탈의 길에 다다르는 것을 꿈으로 삼고 살라는 것을 가르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의 확산으로 온 세계가 긴장하는 것은 바로 그런 삶의 꿈을 새로 정립하라는 말씀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사회와 나라에 대하여는 부국강병이니 경제대국이니 문명선진화니 하는 따위, 핵무기를 가지고 무력으로 전세계를 지배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느니, 창고에 쌓아둔 재산과 기술과 능력이 하늘을 찌를 수 있다는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개인이 승승장구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 인종이니 종교니 국적이니 하는 것들이 무슨 소용이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생명의 본질, 인생의 길의 참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근본에서부터 새로 정립하고 생각하고 가르치고 실천하는데 애를 쓰라는 명령을 우리가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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