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정원
최영미 (지은이)은행나무2014-11-01
기본정보
반양장본320쪽150*210mm450gISBN : 9788956608099
책소개
시인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로 활동 중인 최영미의 장편소설. 저자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2013년 여름부터 1년 간 계간 「문학의오늘」에 연재한 글을 묶은 것이다. 1988년에 써놓았던 초고를 새롭게 정리하여 발표한 것으로 격동의 시대에 꽃다운 이십대를 보낸 386세대에게 바치는 헌사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뜨거웠던 80년대, 폭압적 정권에 맞서 싸우지도 못하고 뒤로 숨을 용기도 없었던 모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홈커밍데이를 맞아 모교인 S대에 방문하게 된 이애린은 자신의 대학 시절을 떠올린다. 81년 4월, 선배들이 주는 술을 묵묵히 받아 마시며 파쇼, 광주, 투쟁과 같은 말들을 나누는 동안 애린은 명문대학에 다니는 딸을 자랑스러워하는 군인 출신 아버지, 열 아들 부럽지 않다면 자긍심을 느끼는 어머니로부터, 착한 딸과 착한 학생이고자 했던 자신으로부터 결별을 선언한다.
독재 권력에의 저항 의지는 있지만 용기는 없었던 그녀는 경계인(회색인)으로서 대학 생활을 영위해나가던 중 운동권 선배이자 정치학과 대학원생 동혁에게서 백마 탄 기사의 모습을 발견하고 학생 신분으로 결혼을 한다.
집안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애린은 그와 동거생활을 해나가지만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던 동혁이 애린에게 가하는 신체적, 정신적 폭력은 독재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고 애린은 이혼을 하게 된다. 그 후 한 선배의 권유로 마르크스의 <자본>을 번역하는 역사적인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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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1장 아름답게 꽃 필 적에
2장 훌라훌라
3장 강을 건너
4장 아무도 위로해줄 수 없는 저녁
5장 쇠와 살
6장 누구도 해치지 않을 농담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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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책속에서
오빠라면 또 모를까. 나는 여자니까,나보다 일찍 태어난 남자는 나의 형이 아니라 `오빠`가 맞는다. `형`은 남자 형제들끼리의 호칭 아닌가. 사전적인 정의에도 맞지 않는 야만적인 관계를 내게 강요하는 저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대학 캠퍼스는 모두가 친척인 씨족사회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남학생 위주로 돌아가는 대학 문화에, 위계질서가 또렷한 운동권의 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언어에 아주 민감한 동물이다. (66쪽) 접기 - iamjune
음식이든 책이든 한번 붙들면 뿌리를 뽑을 때까지, 지겨워질 때까지 하나에 골몰했다. 내 인생은 하나의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의 질주였다. 유년기의 극심한 허기를 경험한 자의 특징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141쪽) - iamjune
불편하며 부당한 현실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그녀가 민중을 사랑하는 법을 나는 알고 싶었다. 분노를 표현하는 게 부끄럽다 생각해서인가, 아니면 정말 분노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일까. 분노 없이 혁명에 대한 열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222쪽) - iamjune
사회주의란 대체 무엇인가. 이웃에 대한, 약자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던가. 내게 사회주의의 출발은 계획경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었다. 이론이 아니라 가슴으로 사회주의에 접근한 이들에게 소련의 몰락은 `해석`의 차원을 넘어선 무엇이었다.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상실이었다. (258쪽) - iamjune
80년대가 내게 남긴 것은 이념이 아니라 `정서`이다. 이념이나 사상은 변할 수 있지만, 정서는 변하지 않느낟. 옷을 고르는 취향, 타인을 대하는 태도, 말버릇이나 헤어스타일은 한번 굳어지면 평생을 간다. 작은 것들에 대한 연민, 정의에 대한 갈증, 돈과 악수하지 않는 손, 권련게 굽실거리지 않는 허리를 그 시절은 내게 물려주었다... 더보기 - iamjune
추천글
시작부터 거침이 없고 자유분방한 이 소설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멈출 수가 없다. 소설 전체에서 풍겨나오는 생생하고 젊은, 디테일이 세세하게 살아있는 이야기의 힘 덕분이다. 지난 세기 80년대의 청춘이 짙푸르게 되살아나 지금, 이곳 우리 모두의 삶과 운명에게 응답하라고 노크한다. - 성석제 (소설가)
젊은 우리는 그랬다. 숨쉬기도 어려웠던 묵직한 공기 속에서 시대를 익히고 세상을 살았으며 청춘을 펼쳐나갔다.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를 헤엄쳐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 돌아보고 있다. 4월의 신록처럼 싱싱했으나 ‘청동정원’에 갇혔던 그 시절 우리의 고뇌는 오늘날에도 유효할까? 최영미 작가는 묻는다. 이 시대는 무슨 색이며, 그런 정원 안에서 당신은 어떤 빛으로 살고 있느냐고. - 이금희 (방송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저 1980년대의 뜨거운 화인에 데여 신음하던 영혼들을 위로해주던 최영미 시인. 그녀가 오래, 그치지 않고 써온 일기장에서 뽑아올린, 그 오래된 청동정원의 사랑과 절망을 이제 우리 앞에 펼쳐놓았다. 저 회색빛 시대가 선사한 순수한 감수성을 무기로. - 방민호 (문학평론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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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최영미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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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했고, 홍익대 대 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창작과비평》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꿈의 페달을 밟고』『돼지들에게』『도착하지 않은 삶』『이미 뜨거운 것들』『다시 오지 않는 것들』, 장편소설『흉터와 무늬』『청동정원』, 산문집『시대의 우울: 최영미의 유럽 일기』『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화가의 우연한 시선』『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내가 사랑하는 시』『시를 읽는 오후』가 있다.『돼지들에게』로 이수문학상을 수... 더보기
수상 : 2006년 김준성문학상(21세기문학상, 이수문학상)
최근작 : <아무도 하지 못한 말>,<돼지들에게>,<The Party Was Over> … 총 31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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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4월에 이미 우리는 5월의 냄새를 맡았다……
싱그러우며 황폐했던 젊은 날, 우리 모두의 이야기
시인 최영미가 26년 만에 완성한 청춘소설 《청동정원》 출간
“쇠와 살이 부딪치던 청동시대를 통과하며 어디에 있었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모두 개인이었습니다. 이애린의 이야기이지만, 그녀의 영혼에 각인된 흉터와 무늬를 그려내는 작업에 성공한다면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_‘작가의 말’에서
시인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 최영미의 장편소설 《청동정원》이 출간되었다. 1994년 한 해 동안 50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이후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등의 시집과 산문집 《시대의 우울》 《화가의 우연한 시선》,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 등을 펴내는 등 장르를 넘나드는 문학 활동을 펼쳐왔다.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청동정원》은 2013년 여름부터 1년 간 계간 《문학의오늘》에 연재한 글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군사 쿠데타에 맞서 민주화의 불꽃이 뜨겁게 타올랐던 80년대, 폭압적 정권에 맞서 싸울, 그렇다고 뒤로 숨을 용기도 없었던 ‘경계인의 초상’을 그려냈다. 제목으로 쓰인 ‘청동정원’은 쇠붙이로 무장한 전경들이 교정의 푸른 나무들과 겹쳐지는 풍경을 묘사한 표현으로, 쇠와 살이 부딪치던 시대의 분위기를 은유한다. 소설가의 눈, 시인의 가슴으로 그려낸 싱그러우며 황폐했던 젊은 날의 풍경이 작가의 섬세한 언어로 되살아난다. 단행본으로 출간하면서 작가는 퇴고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고, 서사 구조를 재구성하여 연재 당시와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재 초 지면을 통해 작가는 이 소설의 초고를 1988년에 이미 써놓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기 훨씬 전이다. 그는 원고지 200장 남짓한 원고를 25년 동안 간직해왔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고치고 다시 쓰며 여러 개의 파일이 만들어졌다. 《문학의오늘》에 발표하기로 마음먹고 파일을 정리하는 데만 한 달 넘게 걸렸다. 작가에게 ‘80년대’라는 화두는 언젠가는 끝내야 할 숙제 같은 것이었다. 마침내 26년 만에 완성한 《청동정원》은 작가 최영미가 격동의 시대에 꽃다운 이십대를 보낸 386세대에 바치는 헌사다.
늘 다양한 콘텐츠로 독자를 만나왔던 은행나무는 이번 《청동정원》 출간을 기념해 《청동정원》 오디오북을 자체 제작해 선보일 예정이다. 아나운서와 배우로 활동 중인 임성민 씨의 목소리로 낭독되는 《청동정원》 오디오북은 소설의 일부를 담은 시디를 통해 초판에 한해 무료로 제공된다.
사랑과 혁명의 불꽃이 지나간 자리에서 돌아보다
유신의 위세가 삼엄하던 여학교에서 수업거부의 선봉에 섰던 내가, 뭘 해도 용인되던 ‘서울의 봄’에 캠퍼스의 순한 양으로 지낸 이유를…… 나를 이해하기 위해 이 소설을 쓴다. _본문에서
어느 날 홈커밍데이를 맞아 모교인 S대에 방문하게 된 이애린은 젊음의 열기, 활기로 가득한 교정을 둘러보며 자신의 대학 시절을 떠올린다. 관악산 유원지 입구에 자리 잡은 ‘강 건너’라는 주점이 추억의 물꼬를 튼다. 81년 4월, 선배들이 주는 술을 묵묵히 받아 마시며 파쇼, 광주, 투쟁과 같은 무시무시한 말들이 가슴으로 흘러드는 동안, 애린은 명문대학 다니는 딸을 자랑스러워하는 군인 출신 아버지, 열 아들 부럽지 않다며 자긍심을 느끼는 어머니로부터, 또한 착한 딸, 착한 학생이고자 했던 자신으로부터 결별을 선언한다. 그날 이후 그녀는 저녁 귀가가 늦어졌고 치마보다 바지를 즐겨 입게 되었고,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는 ‘나쁜 딸’이 되었고, 시위대에 섞여 한강을 건넜다.
소설은 애린의 70년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공부 잘하고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란 애린은 수업 거부 운동을 펼칠 정도로 반골 기질이 다분하지만, 대학에 가면 연애소설의 주인공처럼 운명적인 사랑을 하리라 꿈에 부풀어 있는 평범한 여고생이기도 하다.
80년 봄 대통령 사후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시국. S대 인문대에 입학한 애린은 잔디밭에 화인으로 새겨진 ‘자유 민주주의 만세’를 보고 의아해한다. 청바지와 통기타뿐일 것 같았던 현실의 대학 풍경이 그녀의 눈엔 너무나 살벌해 보인다. 애린은 예쁜 옷과 맛난 음식에 탐닉하고, ‘백마 탄 기사’를 기다리며 낭만적인 대학 생활을 꿈꾼다. 여학생들 중에 가장 키가 크고 눈에 띄는 미모를 가진 그녀는 곧 남학생들에게 여러 번 프러포즈를 받는다. 그러나 연애만 하기에, 사랑만 하기에 학교는 집회로, 시위로 연일 시끄럽다. 그러한 현장을 보고도 못 본 척 지내던 이듬해 어느 날, 그녀는 운동권 선배 언니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된다. 이론적 지식이 없어 백치미, 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뒤로 숨지 않았고, 독재 권력에의 저항 의지는 있지만 용기는 없었던 그녀는 경계인(회색인)으로서 대학 생활을 영위해간다.
그러던 중 그녀는 운동권 선배이자 정치학과 대학원생 동혁에게서 백마 탄 기사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의 매력에 빠져 학생 신분으로 결혼을 한다. 그러나 집안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하게 된 그와의 동거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던 동혁이 애린에게 가하는 신체적, 정신적 폭력이 독재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서였다. 결국 그녀는 수개월 만에 이혼하고, 한 선배의 권유로 마르크스의 《자본》을 번역하는 역사적인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는데……
사랑과 혁명의 불꽃이 지나간 자리에서 돌아보는 자의 애수가 소설 전체를 관통하며 도도하게 흘러나온다.
쇠와 살이 부딪치던 청동시대를 통과하며 그 어디에 있었든……
데뷔 이후 20여 년 동안 작가 최영미가 유일하게 청탁을 거절해온 주제가 한 가지 있다. 바로 ‘80년대’다. 386세대 시인으로 알려진 작가에게 ‘80년대’는 몇 매 또는 몇십 매의 분량으로 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청동정원》이 시가 아닌 소설로 쓰여진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시로 못다 한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고 싶었다는 게 작가의 집필 의도다.
작가는 소설에서 “스무 살의 자유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었다”고 말하며 시대의 비극성과 함께 청춘의 아픔과 사랑, 절망을 섬세하고 생생한 언어로 그려낸다. 뜨겁게 치열하게 분노하지 못했던, 그럼에도 변혁을 꿈꾸며 이십대를 보낸 수많은 경계인들에게 작가는 이제 그만 부채감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듯하다. 쇠와 살이 부딪치던 청동시대를 통과하며 그 어디에 있었든, 각자의 방으로 돌아오면 쓸쓸하고 불안한 개인일 수밖에 없었던 청춘들에게……
역사는 집단의 기억을, 문학은 개인의 기억을 다룬다. 역사보다는 문학이 더 깊게 시대를 드러낸다. 애린의 기억에 의해 《청동정원》에 새겨진 세계는 그로부터 삼십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젊은 독자들에게도 너무나 익숙하다. 시대는 변했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싱그러운 청춘을 옭아매는 도구는 모습만 바꿨을 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여전히 황폐하고 고통스럽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청동정원》은 어쩌면 지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의 세태를 풍자한 소설일지도 모른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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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속의 청동정원 새창으로 보기
최영미의 소설 <청동정원>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자의 자서전? 한국적 성장소설? 이 소설 아닌 ‘소설’의 스토리가 그녀의 직접적인 경험에, 근접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밀착된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은 이런 분류를 어렵게 만든다. 1990년대 초 어느 날인가, 한겨레에 실린 그녀의 시 ‘선운사’를 본 순간, 아, 이거 예사롭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녀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나 역시 남들처럼 흥미로운, 그리고 신선하고도 도발적인 시집으로 읽었다. 그녀의 시는 저 만치 떨어진 관조의 자리가 아니라 제 삶에서, 제 몸뚱아리로 겪고, 그 몸뚱아리에 얼룩져 있는 것들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시는 가장 직접적으로 제가 겪어온 삶을 정직하고 투명하게 보여주는 장르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최영미의 시는 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라 말해도 좋다. 그녀만큼 그녀의 시와 한몸임을 보여주는 시인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 <청동정원>을 세모의 끝, 바람 불어 추운 겨울날 새벽에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 잠시 끊었던 담배를 피다 끄다 하면서, 착잡하고 안타깝고 그립고 아쉬워하면서, 재미있게(라기보다 차라리 어이없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순식간에 넘겨 버렸다. 왜 소설 속 이애린(아니 최영미)는 이 모양 이 꼴로 살았던가. 그녀의 지난 삶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 살았다는 판단이 아니다. 개인에게 주어진 역사의 무게를 나름의 방식으로 짊어졌고, 그것과 불화하는 그녀의 욕망과 끌려가지 않으려는 그녀 자신에게서 비롯된 원심력을 팽팽하게 오가면서 그럭저럭 그녀는 ‘잘’ 살았다. 누구보다도 예민한 신경증을 지닌 그녀가 80년대 운동권의 한복판에서 버텨왔다는 것이 차라리 신기할 정도다. 제 욕망을 스스로 거세한 채, 집단의지에 몸을 내 맡기는 방식의 삶을 살았던 것이 그 시절의 삶의 윤리(?)일 진대, 그녀는 대체 왜 자신의 길이 아닌 길로 갔던 것일까.
그래, 나는 그녀가 말하는 서울대 건너편 ‘강건너’를 잘 알지 못한다. 대학시절, 어느 봄날 그 언저리에서 막걸리에 파전을 먹었던가 아니던가. 흐드러진 봄꽃과 걸쭉한 막걸리에 취해 휘청휘청 걸었던가, 아니던가. 하지만, 거기는 내가 놀던 곳도 아니고 술 마시던 곳도 아니었다. 그녀는 70년대 막바지에 서울대에 입학하여 80년대를 지나고, 짧은 결혼을 하고, 운동권에 몸을 담고, 자본 1권을 번역하고, 출판사에 들어가고, 소설을 쓰고, 시를 썼다.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그런 얘기다. 여기에 대학입학을 위해 보내야 했던 모진 고3 시절과 부동산으로 돈을 번 아버지, 차림새에 유난히 집착하던 여대생, ‘미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작은 에피소드들, 가난한 정치학도(철학도가 아니었던가)와의 결혼과 그로부터 받은 폭력, 사랑에 굶주린, 아니 사랑에 기꺼이 투신하는 저돌성, 욕망을 긍정하는 ‘여자’, 감옥, 고급한 취향의 독재자 아들이 경영하는 출판사에서의 경험, 그리고 소설가로서의 삶이 나란히 병치돼 있다.
그래, 뒷표지에 실린 방민호의 발문처럼,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그녀가 오랫동안 묵혀왔던 ‘일기’다. 80년대를 지나고 이제 중년을 넘은 ‘여자’의 내밀한 일기다. 그녀가 대학에 들어가서 패셔너블한 여대생이 되고, 중산층의 삶에 걸맞는 직업과 결혼을 하고, 우아한 중년으로 늙어갔다면 어떠했을까. 운동화를 신고 거리를 내달리며, 감옥에 갇혀 칸막이 없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운동권 사내’에게 매질을 당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처단하려던 독재자의 아들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밥벌이를 하지 않고 말이다. 남학생들이 곁눈질을 하며 쫓아올 정도의 미모이던 그녀가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았다면 말이다. 운명이 타고난 기질의 다른 표현이라면, 그녀는 다시 80년대가 오더라도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역사구속적 존재로서 몸을 내던졌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랑과 결혼에는 거의 백치에 가까운 판단력을 보여주는 ‘여자’, 그녀의 삶은 그렇게 운명지어졌을 것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그녀의 벗들은 국회의원이 되고, 각료가 되고, 유명 언론인이 되고, 벤처기업가가 되고, 이상한 ‘전도사’가 되고, 여전히 바닥에서 박박기는 또다른 운동권으로 살아가지만, 그녀는 시를 쓰고 소설을 쓴다. 글을 써서 제 몸의 새겨진 얼룩의 내력을 보여주고, 실패한 사랑의 기구한 역사를 들려주고, 혁명가 아닌 혁명가로 살았던 시절을 말하고, 이제야 갓 눈을 뜬 욕망을 솔직하게 토로한다. 중년을 넘어 이토록 정직하게 자기 삶을 속살까지 보여주는 것도 참으로 큰 용기다. 그녀의 삶에 연루된 자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음에도 그토록 투명하게 속생각을 뒤집어 보여주는 것도 용기다. 누군가는 만용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그녀의 한 대학동문처럼 “아직도 80년대에 갇혀 있구려”라고 지적질할 지도 모른다. 80학번은 여든 야든 단 한명의 국회의원도 없다는 소설 속 문장처럼, 대학새내기 시절에 ‘광주’를 겪은 자들의 운명은 “오래 붙들려 있었다”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광주와 역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단 한번으로 기억되는 스무살의 청춘, 이후의 삶이 그 시절로 인하여 ‘경로의존적’이 되는 시간에 사로잡히지 않을 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최영미의 시가, 그녀의 소설이 늙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그녀는 소설의 형식속에 거의 직접적인 사실과 경험들을 집어넣었으리라. 그녀는 여전히 과거진행형인 것이다.
그녀의 서가에 옛책들이 그대로 있듯이 내 서가에도 옛 책들이 그대로 있다. 한때 밑줄을 그으며 읽었던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 없는 것도 같다. 그러니까, 이 소설이 내게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동반했다면, 그것은 이 소설이 다른 사람에 의해 쓰여진 내 일기 같아서였을 것이다. 비록 삶의 경로가 전혀 달랐으며, 생물학적 연대가 훨씬 더 멀었고, 고뇌의 깊이와 교유의 폭이 사뭇 달랐다 해도 말이다. 윤동주의 참회록이 ‘구리거울’속에 비친 모습이듯이, 과거의 반추는 일그러지고 거친 청동거울이라야 외려 잘 보이는 법이다. 그런 청동으로 만들어진 정원이라니, 그 정원의 꽃들은 시들고 지친 모습일 것이며, 예쁘고 아름다운 것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그럼에도 청동으로 만들어진 정원은 낡고 때에 절어 있어도 눈물겨운 그리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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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사이 2015-01-08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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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을 살았던 내 아내와 내 누이들 이야기 새창으로 보기 구매
교문을 돌아가기 귀찮아 개구멍을 통해 건너가던 관악산 등산로 초입의 강건너집... 일미집, 녹두집과 더불어 자주 가던 학교 앞 막걸리집. 카아바이트 냄새가 나던 막걸리와 신김치, 젓가락으로 하도 두드려 결이 다 보이고 그 결 사이에는 담배재가 켭켭이 쌓여 있던 호마이카 상... 국물만 남은 감자탕에 찔러넣은 숫가락을 공유하며, 우리는 알엠(혁명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에스엠(학생운동)에 대해 논의하였었지...
고전연구회, 문학연구회, 새문학연구회 등 많은 동아리들을 놓고 고민했던 친구는 한 동아리를 선택하고 1년이 지나서야 모든 동아리의 소위 "커리큘럼"이 똑같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심지어는 기독학생회조차 같은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동아리 선택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는데!
운동권이 되기에는 용기가 부족하고, 운동권이 안되기에는 더욱 용기가 부족했던 많은 학생들은 그 무엇도 아닌 채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가투(가두투쟁)를 나가면 앳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우리의 유일한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보도블럭을 열심히 깨주던 그 여학생들... 물론 내 주위에도 여학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 동생과 내 아내가 언뜻언뜻하는 회상을 듣기도 했지만, 여성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가혹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혁명가의 아내? 명문대학을 다녔지만 돈도 못벌고 감옥에 가기도 하는 사람의 아내가 되어 세속적인 욕망에 초연한 헌신적인 아내? 남편을 이해할만큼은 진보적이나 남편에게 반대하지 않을만큼 순종적인 아내?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오래된 일기이다. 우울한 시대의 우울한 일기이다. 너무 우울하고 너무 힘들어 2010년대 초반까지는 다시 꺼내고 싶지도 않은... 광주에 없었던 우리는 여전히 용산에도 없고 팽목항에도 없다. 그 때 가졌던 죄책감조차 사라지고, 우리가 경멸하던 그 시스템을 더 잘 돌리기 위한 부품이 되어 바빠졌다. 작가는 80년대 이념은 없어지고 정서만 남았다지만,우리는 죽을 때까지 약자를 배려하던 마음, 강자와 싸우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던 정서를 계속 가질 수 있을까?
사족이지만 작가는 의대생과 의사에 대해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몸에만 관심이 있는 보디빌더, 전공분야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모르는 J가 의사의 전형이 아니라는 것, 작가가 읽었다는 "자본주의발달연구: The Theory of Capitalist Development"는 모리스돕이 쓴 것이 아니라, 그와 자분주의 이행에 대한 논쟁을 했던 폴 스위지가 쓴 책이라는 것, 그리고 자본주의발달연구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마르크스의 자본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을 말하고 싶다. 구치소에서 미팅제안을 하는 의예과생도 등장하는데, 81년 봄에 시위와 관련해 구치소에 있었던 우리 3명 중에 여학생의 미모를 살필 정도의 여유와 배짱이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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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jyuh 2015-02-21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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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잊혀질 수 없는 80년대의 아픔. 새창으로 보기
제목을 보면서 청동거울이란 말이 떠올랐다. 거울이긴 한데 비춰볼 수 없는 거울. 그저 상징적인 의미로써의 역할만 하는 거울.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거울이 안고 있는 커다란 의미를. 그런데 청동정원이란다. 제목부터가 알 수 없는 쓸쓸함을 만들어내고 있다. 박제되어진 듯한 냄새를 풍기며 내게 다가왔던 이 책속의 배경이 나를 저 먼 기억속으로 이끈다. 80년대... 7080세대, 7080문화... 어쩌자고 다시 그 시대인가! 옳다고 믿었던 것만을 좇았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어떤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앞장섰든, 뒤로 숨었든 그것은 하나의 방편이었을 뿐 그것으로 인해 어떤 의무감이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는 말이다. 소개글을 보니 이런 말이 보인다. 데뷔 이후 20여 년 동안 작가가 유일하게 청탁을 거절해온 주제라고.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주제가 아니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가슴속에 숨겨두기만 할 이야기도 아닌 것이다.
영화 <26년>이 생각났다. 그 시절을 온 몸으로 겪어냈던 세대를 부모로, 형으로, 누나로 두었던 그들의 이야기. 주머니에 29만원밖에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던 그 남자가 그들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속에서는 그 남자를 다루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흘러가야 했던 청춘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같은 시대를 겪어냈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어쩌면 작가처럼 미안함 하나쯤은 표현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최루탄 냄새에 눈물 콧물 흘리면서 뿌연 시내를 바라보던 그 때의 시민들을 나는 보았었다. 앞장 서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동조하던 그들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두려움의 대상중 하나다. 그들이 만들어낸 시간과 공간을 바탕으로 지금의 시대가 서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소설이다. 그런데 마치 소설을 빙자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아무리 소설이라해도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자전적인 요소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 때에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빚을 진 듯한 느낌으로 살아왔던 것일까? 어쩌면 모두가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념'이란 말이 이제는 먼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려오는 작금의 시대에서 우리에게 잊혀져가고 있는 건 무엇인지 다시한번 짚어보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속에서 보여지고 있는 상황들이 전체적인 모습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는 일부의 이야기가 늘 회자되어진다. 그러나 그 일부로 인해 전체적인 모습이 바뀌기도 한다. 미안하게도 이토록이나 서럽고 쓸쓸한 이야기속에서 나는 지나간 20대의 추억을 더듬게 된다. 책속에서 언급하고 있는 노래 'One way ticket' 은 '날보러 와요' 라는 가요로 불리워지기도 했다. 'One Summer Night' 라거나, Scorpions의 'Holiday', Black Sabbath의 'She's Gone', Kansas 의 'Dust In The Wind', John Lennon 의 'Imagine' 같이 팝송은 지금까지도 즐겨듣는 노래들이다. 80년대라고 해서 아픔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젊은이들의 문화는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개성있었다. 저마다의 특성과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문화였다는 말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할 줄 알았고 그 다름을 존중해줄 줄 아는 그런 시대이기도 했다. 청춘뿐일까? 모든 세대는 그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다. 그 흐름을 거부하며 저마다 내가 살아온 시대만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한다면 서로에게 간격이 생기고 다툼이 생겨나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앞선 세대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지금의 세대가 겪어야 할 시대의 모습이 생겨나는 까닭이다. 영화속에서조차 차마 죽일 수 없었던 그 남자의 존재는, 영화라는 이름을 빌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왔던 많은 사람을 위해 잊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던 까닭이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함에도 책임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항거이기도 할 것이다. 청동정원... 박제되어진 채 늘 우리 곁에 머물. 그 봉인이 풀릴 날이 오기는 올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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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 2014-10-28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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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정원 새창으로 보기
1980년대엔 너무 어렸다. 초등학교 시절이니 아무것도 몰랐다. 90년대 대학에 입학하고서야 80년대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책을 통해서..... 주로 소설을 통해 알게 된 80년대 대학생들의 사회를 향한 치열한 고민을 90년대 대학생인 내가 한 편으론 존경스럽다고 여긴건 새로운 신세대인 X세대가 비록 새로운 문화의 바람을 몰고 온 건 사실이지만 어쩐지 사회를 향한 정의의 외침과는 거리가 있어 80년대 대학생들의 뭔가 영웅적인 모습이 사실 부럽기도 했다.
최영미의 청동정원은 주인공 이애린이 과거를 회상하며 쓴 추억 소설이다. 소설이 비록 허구적 이야기가 하더라도 작가 자신이 경험한 일을 쓰게 마련이다. 왜 굳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임을 밝힙니다"라는 걸 써 놓았는지 모르겠지만 독자들이 이런 걸 모르고 읽을까? 물론 가끔 소설을 읽다가 너무나 생생한 인물 묘사에 실존 인물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진정한 소설의 맛은 가공의 인물이지만 살아있을 법하거나 혹시 살아있었던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아니라 실제 살아있는 인물이거나 살았던 인물 같은 느낌일 때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이애린 역시 마치 살아있는 인물 같았다. 물론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마음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자전적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창조된 인물이다. 이애린의 회상 속엔 80년대의 기록이 있다. 80년 서울의 봄, 광주의 이야기 그리고 87년 민주화 운동과 노태우 대통령 당선까지 이 많은 이야기를 한 권의 소설에 담겨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단지 80년대 대학생들의 영웅담만 그리지 않은 것이 오히려 소설의 멋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마음 속엔 마치 형이상학적인 거대 담론을 가지고 투사가 되어 운동을 하더라도 삶에 있어 미숙한 면을 드러내는 것이 이애린의 남자친구인 동혁을 보며 느꼈던 것이다. 동혁은 사람을 대할 줄 몰랐던 너무나 미성숙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좋은 소설을 읽었다. 정이현의 안녕 내 모든 것이란 90년대의 젊은이들 이야기보다 오히려 80년대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건 90년대는 공감을 할 수 있으나 80년대는 공감하지 못해 오히려 신비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의 삶은 앞으로 어떤 정원을 만들어 갈지 과거의 추억 속에서 미래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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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늘 2014-10-26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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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0-81-12 새창으로 보기 구매
《 2018-80-81-12 》
“어머, 이 언니가 빨갱이구나!” (131쪽)
이 멋진 책의 서평을 어떤 문장으로 시작해야 할 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인용을 택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거의 일분동안 폭소를 멈추지 못했는데, 놀랍게도 이 말은 주인공이 누군가로부터 들은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다른 누군가에게 던진 말이기 때문이다. 명절만 되면 친척 어른들로부터 ‘저, 저 빨갱이 좀 봐라.’ 라는 말을 연례행사처럼 듣던 책 밖의 또 다른 빨갱이는 131쪽에서 멈춰 한참동안을 으하하핫 소리내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들의 ‘우리’라는 표현은 너무나 일상적인 표현이지만 그 ‘우리’의 집단성이 시대의 물꼬를 크게 바꾼 비일상성의 표지들이 있다. 난기류 속의 80년대에서 시작하여 97년의 외환위기, 2002년 월드컵과 주한미군 장갑차 사건, 2008년 미국 수입소 반대, 그리고 2016년의 박근혜 정부의 민간인 국정농단에 맞선 전국적 촛불집회까지 우리는 ‘우리’로 모여 부정의한 국면들을 타개해 나가야 했다. 이 흐름의 변동을 우리는 소위 운동(movemnet)이라고 부른다. 불의에 맞서 정의를 사수한 것도 우리들이지만, ‘꿘’이나 ‘빨갱이’의 심각한 노이로제에 걸린 이들 역시 한국인들이다.
이 책은 격동의 근현대사를 오롯이 겪어낸, 80년대를 20대로 살아낸 한 사람의 기억이다. 이 기억은 운동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르짖지도, 운동의 혐오에 대한 항변을 외치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 자신이길 바라는 몸부림을 담은, ‘정의’만이 유일한 정의라고 모두가 그토록 철썩 같이 믿었던 시절의 한 사람의 진술서다. 시대와 ‘우리’의 집단성이 요구한 옷을 벗어던지고 온전히 스스로의 맨몸이길 바라는 간절한 욕망의 진술서다. 나는 여태까지 이토록 날 것의 80년대를 그린 어떠한 영화나 드라마, 시, 소설, 글을 본 적이 없다.
“강렬하다. 섬뜩하다. 발랄하다. 세련됐다. 야하다. 비유가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평이 제일 맘에 들었다. 살아서, 여기 있다는 증거. 살아남기 위해 모욕을 견뎠다.” (296쪽)
소설을 읽는 내내 토막 난 생선회의 가장 두툼한 살점을 떠올렸다. 축축하고 비릿하고 핏기가 채 가시지 않은 물컹함. 작가는 아마도 그 살아 있음의 감각을 글로 승화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때로는 글만이 구원해낼 수 있는 삶의 구덩들이 있다. 핏기 어린 한 토막 상처의 그 화끈거리는 단면을 시간이 ‘흉터’로 덮어 진정시키고 나면, 그 흉터를 자신만의 활자들로 피부의 ‘무늬’로 새겨 넣어야만 구원될 수 있는, 그런 단면들 말이다.
따라서 기억의 복원을 위한 이 소설의 노력은 지나간 시절에 대한 작가의 미련 때문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이미 끝난 잔치’에 다시 흥을 불어넣으려는 김빠진 시도 역시 아니다. 애린은 스스로의 구원을 위해 기억을 복원한다. 그 시절을 정말로 진지하게 살았던 사람만이 써낼 수 있는 구원이다. 그저 달력의 페이지가 넘어가는 박자에 맞추어 착실히 생활인의 면모를 닦고, 그 역할을 수행해온 사람들은 그 시절로부터 자신을 영영 구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절, 그러니까 시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해낸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함께 호흡한다 하더라도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순간을 산다. 그런데 시대적, 사회적으로 모든 것에 우선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데에 동의하면, 우리 일상의 고유성은 지워지고 대신 시대의 얼굴이 우리의 얼굴을 대신하여 들어선다. ‘정의’라는 카드섹션을 들고 있는 두 손만 남은 채 그 손이 누구의 어떤 이의 것인지는 영영 알 수 없게 된다. 개인은 시대가 만들어내는 풍경의 일부로, 소품으로, 정해진 위치에 서 있는 정물화 속 구성요소 같은 위치로 전락하고 만다. 구원은 이 모든 엔트로피의 진행을 역행하여 카드섹션 뒤의 숨겨진 얼굴을 되살려내는 작업이다. 인격성의 회복이다.
< naked truth를 찾아서 : 시대가 지운 얼굴 >
나는 ‘IMF키즈’다. 초등학교 6학년의 여름은 학교 전체가 빨간 티셔츠를 입고 네 박자 구호(대-한민국)를 외쳐댄 소란스러움으로 남아있다. 고3이 될 때 MB는 대통령이 됐고 친구들은 광우병 시위에 나가느라 야간자율학습을 빼먹었다. 내가 태어난 해의 여아 낙태 수치는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치에 해당하며 우리 세대는 역대 최악의 실업난을 겪는 중에 삼포세대 아니 N포세대라는 별명을 얻었다. 대충 어떤 모양새로 살아온 인간인지 짐작이 되는가? 하지만 내 인생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그 무엇을 상상하더라도 그 짐작과는 결코 들어맞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집집마다 금붙이를 긁어모으느라 바빴던 90년대 후반과 그 이후 몇 년동안은 내 인생에서 가장 유복하게 보낸 시절이었고, 고등학생 땐 수능 점수와 싸우느라 광우병 그거 소고기 안 먹으면 그만 아닌가 하는 생각보다 더 깊은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장녀라서 형제들 중 가장 많은 것을 누렸고 희생이나 차별은 내가 경험한 단어가 아니었다. 여성혐오가 무엇인지,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채로 대학에 들어갔다. 젊은 시간강사의 사회학 수업을 듣고 내가 살아온 모든 날들은 실은 내 것이 아니었음을, 실체도 없는 누군가들이 주입한 가치들을 내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살아왔음을 깨달은 후에도,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옆 학교 이대에서 학생들이 전투경찰들에게 밀쳐지고 다칠 때에도 달려나가지 못했다. 그 무렵의 나는 뒤늦게 발견한 질환의 수술 때문에 대학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나는 스스로가 장애인인 줄도 모른 채 살아왔던 장애인이었고 내 세대의, 나의 시대의 모든 외침들은 병실 벽에 걸린 텔레비전 스크린 너머로 송출되는 영상에 불과했다. 서울역에서 광화문으로 넘어가는 중이라며 친구들이 보내온 시위대의 깃발 사진들이 다만 핸드폰에서 울려댈 뿐이었다.
위에서 나를 소개한 ‘IMF 키즈’라는 시대적 표어가 암시하는 모습과 실제 내 인생의 장면들은 얼마나 맞아들어 가는가? 시대가 개인의 모습을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 없으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삶의 결을 지니고 있으며 그 결은 무슨 일이 있어도 훼손당해선 안 된다. 그 삶의 결들을 시대라는 이름의 불도저로 깔끔하게 밀어버리고 도덕적인 미학을 추구하는 것은 폭력이다. 나는 나와 직접적인 접점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는 이 <청동정원>에 연대감과 소속감을 느낀다. 애린의 십대와 이십대, 현실에선 아직 닥치지 않은 오십대마저 마치 내가 살아낸 것같은 착각이 내 안에서 공명함을 느낀다. 엄청나게 강력한 이 공감의 자기장은 똑같은 옷을 입을 것을 강요한 시대의 힘에 저항한 한 사람의 삶의 결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생물학적 번영, 번식, 자손의 개체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짜 중요한 것은 공감의 자기장을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건 우리 각자의 ‘흉터와 무늬’를 지키는 일이다. 거기에서부터 현세대와 미래세대 간의 소통이, 과거와 현재의 화해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가 현재의 얼굴 위에 군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 복원된 기억 : 대모험시대 >
우선, 이 소설은 세부장르 구분은 상당히 다양하게 가능한데 우선 특정 시대를 주요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역사(시대)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주인공 애린의 성장소설로도 볼 수 있으며, 작가 최영미의 자전적 소설의 성격도 짙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여성문학으로 포섭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감히, 이 책에 모험소설이라는 라벨을 붙여주고 싶다고, 과감하게 속내를 발설해 본다. 한국에서 쓰인 소설들 중 이토록 멋지고 역동적이고, 눈을 떼기 어려운 모험담을 읽어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가 만난 한국소설들은 시대 앞에서 좌절해버린 개인의 양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담고 있지 않았다. 작가도 독자도 모두 함께 우울의 심연을 파고 또 파고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슬픈 공감과 위로의 상호작용만이 한국소설을 읽는 행위에서 얻을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오늘부로 나는 한국 현대소설에 모험 혹은 탐험 장르가 있다고 과감히 선언하고 싶다. 실제로 읽으면서 박장대소 했던 대목들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소리 내어 웃고 탄식하며 책을 읽었던 경험은 매우 드물 것이다. (각자 떠올려 보라. 어쩌면 전무할지도 모른다.) 주인공의 무모함과 대범함에, 그리고 무지를 가장한 순진함과 귀여운 철없음에 대하여 나의 웃음들을 기꺼이 내주었다. 단, 동혁이 애린의 시절에 끼어 든 순간부터 빠져나갈 때까지는 웃을 수 없었다. 비통했다. 애린의 결혼생활은 마치 내 심장을 동혁이 방망이로 마늘 찧듯 진물이 나올 때까지 짓이기는 고통이었다. 애린이 겨우 결혼에서 탈출할 수 있었듯이 나 역시 겨우, 정말 겨우 그 대목을 읽어 넘겼다.
고등학생 애린부터 대학생, 그리고 제국출판사에서 소설을 탈고해내기까지의 그녀의 모든 삶의 장면들이 모험의 연속이지만 그 중에서도 형광펜으로 색칠하고 싶은 몇 대목이 있는데 주로 139쪽에서 142쪽 사이에 쓰인 일들이다. 고대사 공부를 위해 아버지가 권한 그리스 유학을 그는 조국을 위해 택하지 않는다. “여자로서, 내게는 조국이 없다. 그 어떤 국가도 원하지 않는다. 여자로서, 이 세계 전체가 나의 조국이다.” 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목소리가 당시 애린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친구들과 동지들이 모두 “여기, 지금, 이곳”에서 싸우고 있을 때 그에게 유학은 곧 도피와 같은 말이었을 테다. 내게는 그런 연대의식이 없다. 아마 나 뿐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가치를 열심히 내면화함으로써 성장한 우리 세대 전반에게 연대란 ‘은하수’의 뿌연 매연처럼 흐리멍덩한 것일 것이다.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라면 유치장 한 가운데 뻥 뚫린 변기구멍도, 지옥마저도 추억으로 웃어넘길 수 있다는 그의 확신이 몹시도 부러웠다. 탐났다. 내게 80년대는 민주화의 물결이 가득했던 시대라기보다, 함께하는 일은 그토록 당연하던 휴머니즘의 시대로 다가온다. 1x학번의 대학생들이 갖지 못한 ‘끈’을 8x학번들은 멋지게 두르고 있었다. 개인의 단위에서 더 쪼개져나가 자기 자신 한 몸마저 파편화된 채 널브러져 부유하는 시대를 사는 1x학번인 나는 그들이 몹시 부러웠다.
“ (…) 우리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계집애가 감옥 가고 담배질 하라고 내가 새벽같이 일어나 밥해 받쳤다든?
안 되겠다. 너 차라리 수녀원에나 가 있어라.” (140쪽)
어쨌든, 그리스 유학을 거부하고 나서 애린은 엄마에 의해 부산의 수녀원으로 연행된다. 거기서 괴롭고 자괴감에 빠지고 불행하게 사느냐면 또 그렇지도 않다. 마치 진짜 수녀처럼 규율에 따르는 기도생활을 하고, 예비수녀들과 탁구를 치고 찬송가를 부른다. 원장수녀가 애린에게 수녀체질이라며 수녀가 되라고 꼬드기지만 그는 유학과 마찬가지로 제안을 거절한다. 이번의 이유는 조국이 아니라 주전부리 때문이었다! (주전부리 때문이라니!) 조국과 주전부리가 그의 신념의 근거였다. 이 정직함과 소박함에 매료되고 말았다.
“내 얼굴이 맑아 세상에 나가면 살기 힘들 거라는 예언이 솔깃했지만, 주전부리를 끊지 못해 나는 수도자의 길을 걷지 않았다. (…) 친하게 지내던 예비수녀와 나는 몰래 수녀원을 빠져나와 길거리에서 붕어빵이며 튀긴 고구마를 사먹었다.” (140쪽)
의연하게 예비수녀와 붕어빵을 사먹고, 수녀원을 나와서는 ‘탐식의 시대’를 맞이한다.
“외부와 단절된 수녀원에서 통제되었던 식욕이 집에 오자 폭발했다. 파운드케이크와 소설에 빠져, 읽기와 먹기 외에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었다. 김밥, 파운드케이크, 옥수수빵, 스틱파이, 짜장면, 강냉이…… 무기정학과 더불어 내게 정열적인 탐식의 시대가 열렸다.” (141쪽)
탐식의 미학에 골몰한 나머지 불어난 10킬로그램을 빼기 위해 단식원으로 또다시 돌입한다.
“봄이 되자 몸무게가 10킬로그램이나 늘었다. 맞는 바지가 없어 엄마 바지에 단을 내어 입고, 머리를 짧게 깎았다. 열흘 만에 몸무게를 5킬로그램 감량한다는 신문광고에 혹해 단식원에 들어갔다. 단식원에서 주는 변비약을 먹고 2킬로그램이 빠지면서, 나는 둘코락스에 중독되었다. 80년대, 나의 진짜 적은 군부파쇼가 아니라 둘코락스였다.” (141쪽)
애린은 하는 일 없이 책이나 음식에 빠져 자신을 탕진했다고 자조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 격동의 연대기를 모험이 아닌 다른 낱말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다.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저항하기, 삶의 조건들이 속박하는 굴레에 스스럼없이 자기를 내어주는 일, 180도로 변해버린 환경에서 터져나오는 욕구들을 막아서지 않고 충실히 수행하기 등 이 모든 행위들은 삶에 대한 육체와 정신의 건강하고 적나라한 생물적 반응의 총체인 것이다.
영웅의 모험담이 그러하듯, 독자는 영웅의 유년시절부터 뿜어져 나오는 남다름과 비범함에 매혹된다.
혹은 그런 면모들에 격렬히 공감하는 독자 스스로의 모습을 영웅의 모습과 겹쳐보기도 하면서 울렁이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읽는다. 사력을 다해 오버코트의 차이나칼라를 사수하려다 끝내 좌절할 때, 군부체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제식훈련 수업에 맞서 문학의 방패를 치켜들고 시와 소설로 도망할 때, 나 역시 그와 함께 가슴이 끓어올랐다.
대한민국 역사가 아무리 굴곡지다 할지언정 그 어떤 시대성이라도 초월하여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단 하나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데, 그건 바로 대학입시다. 애린의 말처럼 “하늘이 무너져도 대한민국의 대학들은 신입생을 모집한다.” (31쪽) 그에게 대학은 출세나 입신양명의 발판이 아니라 ‘말이 통하는 친구들’을 더 만날 수 있으리라는 최후의 희망, 루이제 린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과 함께할 거라는 기대로 가득한 꿈이다. 나 역시 그랬다. 대학에 가면 교육방송 교재가 아니라 오지선다가 아니라 주관의 진리와 지식의 보물들이 반짝거리며 나를 맞아줄 거라고,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학우들과 함께 그 빛을 좇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과연 대학은 정의와 도덕, 지식의 공간일까?
< 정의라는 이름 뒤의 위악 : 여성혐오 >
앞의 ‘시대가 지운 얼굴’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한데 어울려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물리적 차원의 논의다. 인간적 차원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간과 각자의 공간을 점유하며 산다. 단지 그 파장의 영역이 서로 겹쳤다 사라졌다 할 뿐이다. 성냥갑 속의 성냥개비들이 그저 ‘성냥’으로 불리더라도 사파에 제 머리를 긁어 밝힌 빛은 어디까지나 한 개비의 몫이다. 그 한 개비의 빛이 모두 다 다른 빛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선이야 말로 허위이며 거짓이다.
상당수의 (특히 남성)독자들이 이 책을 두고 ‘우리가 언제 그랬느냐’, ‘이건 사실이 아닌 날조다.’는 식의 감상들을 남긴 것을 봤다. 파쇼는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파쇼의 이빨들이 아직도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음을 확인한다. 파쇼의 이빨은 당시 대학생 운동권 내부의 위계질서와 이중성을 의미하는데, 나아가 운동이 열기를 더해갈 수록 마치 작용-반작용처럼 심화되던 내부의 여성혐오 역시 지적을 피해갈 수 없다.
“어째서 생판 남인 남자들이 내게 ‘형’이 되냔 말이다. (…) 사전적 정의에도 맞지 않는 야만적인 관계를 내게 강요하는 저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대학 캠퍼스는 모두가 친척인 씨족사회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남학생 위주로 돌아가는 대학 문화에, 위계질서가 뚜렷한 운동권의 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언어에 아주 민감한 동물이다.” (66쪽)
그 어떤 회고나 인터뷰에서도 당시 운동에 대한 이런 증언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땐 다 그랬어.’라며 지나간 옛추억에 대한 그리움은 발에 치이도록 들었지만 말이다. 그리움으로 위장한 파쇼의 이빨들이 애린과 같은 이들의 목소리를 먹어치운 것이다. 운동권 내부의 여성들은 스스로가 철저하게 지워질 것을 강요당했다.
“(문무대에서)고생하는 남학생들을 위문하자고 누군가 제안해 1학년 여학생들이 학교버스를 타고 성남의 훈련소에 갔다. 스커트 차림에 (남자애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복장을 치마로 통일하자는 내부 요청이 있었다) 뒷짐을 지고 일렬로 선 깜짝 방문객들. 흙 묻은 교련복에 새까맣게 탄 얼굴들이 운동장에 도열해 여학생들을 환영하더니, 스크럼을 짜고 구호를 외치며 연병장을 돌았다.” (86-87쪽)
어디서 참으로 많이 본 것 같은 장면이 아닌가? 결코 낯선 대목이 아니다. 2012년 정봉주 석방요구와 관련한 나꼼수 비키니 사건의 원형이다. 소설 속 시대를 주도한 대학생들이 여전히 살아있다.
“ ‘너도 그랬니? 나도 걔한테 당했어.’ 마치 동네 개한테 물린 듯 담담하게 말하며, 경혜는 내게 그만 잊어버리라고 충고했다. (…) 욕했지만, 우리는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당시 분위기가 그랬다. 운동권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경미한 성범죄를 용인했다. 서클 회장의 추행을 고발하면 저들에게 이용당할 테니 참았지만, 그날 이후 서클룸에 가기 싫어졌다. 운동을 하려면 그보다 더한 일도 견뎌야 한다는 경혜도 보기 싫었다.” (143-144쪽)
야당 당원간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고 말한 장관 출신의 유명 스타정치인의 발언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아직도 가슴을 후벼 판다. 가장 진보적이라고 가장 바르고 옳은 말을 한다고 생각해온 이의 입에서조차 스스럼없이 나온 문장이었다. 그 말은 봄날 하늘에 난데없이 출현한 UFO같은 것이 아니었다. 좌파 ‘지식인’들 내부에서 수 십 년도 더 전부터 마치 거룩한 진실처럼 숭배되어온 여성혐오가 그저 살짝, 비쳐보였던 것일 뿐이다. 다수가 합의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바로 그것을 위해서라면 혐오 따위는 혐오가 아니라 대의를 위한 ‘정의로운 희생’이 되고 만다. 시대가 지운 얼굴이다. 이 ‘정의로운 희생’은 전설의 고향 이야기처럼 아직까지도 유령처럼 남아 우리에게 공포탄을 던진다. 바로 지난겨울, 모 정책 포럼에서 자신의 인권을 외치던 성 소수자에게 포럼에 참석해있던 다수의 시민들이 “나중에! 나중에!”를 연발해 입을 막았던 경악할 사건이 있었지 않은가. 인권에서 조차 더 중요한 의제와, 덜 중요한 의제로 위계를 나누는 소위 ‘깨어 있는 시민’들은 아마 80년대에도 ‘조개 줍기’를 타박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운동이 마냥 그 숭고한 대의만을 위해, 대가없는 헌신으로만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 시대가 지워버린 얼굴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나타난 새로운 ‘진실’이다. S대 운동권을 ‘얼굴마담’ 미스터 심은 지상파 방송국의 기자가 되고, 가슴에 금배지까지 달게 된다. 5월의 광주가 그려지는 장면에서는 단지 군용 장갑차를 타보고 싶다는 ‘소박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 시위대에 섞여 장갑차에 올라 시내를 돌았다는 의대생이 나오고, 그리고 “광주가 피로 물들 때, 내 위는 끈적끈적한 카페인으로 물었다.”는 애린의 고백이 이어진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종로서적에 가서 동서추리문고를 가방에 넣고, 오는 길에 적선동 시장에서 김밥과 파운드케이크를 샀다. 오리엔트특급살인, 예고살인, 나일 강에서 죽다...... 책 속의 죽음에 빠져, 광주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Y의 비극’에 열광하면서, 우리 집에서 삼백킬로 떨어진 남도의 비극에 눈을 감았다.” (105쪽)
“프랑스문화원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미스유니버스대회를 보며 6월이 지났다. 오월의 피비린내를 지우려 저들은 세계의 미녀들을 세종문화회관에 모아놓고 쇼를 벌였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카펫을 걷는 하이힐, 춤추는 젖가슴과 엉덩이들, 출렁거리는 36-24-36이 ‘5-18’의 신음을 파묻었다.” (107쪽)
80년대는 동시에 문화적으로 가장 부유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최초의 올컬러 텔레비전과 프로 야구단의 창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음악다방과 그곳을 꽉 채운 사람들, 디스코장, 붐비던 의상실 그리고 각종 연예 잡지는 부정할 수 없는 80년대만의 아이콘들이다. 이런 것을 밀어내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 서술한다면 그건 서술자의 죄의식에 의한 과민반응일 뿐이다. 어떤 시대든지 명과 암이 공존한다. 물론 그 시대를 겪었던 이들 중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회색분자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아직도 끙끙대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애린은 당시 자신을 짓누른 그 흑과 백의 질문의 무게를 담담하게 고백한다. 티끌 하나 없는 흰색이 아닌, 모든 색을 집어삼키고 아닌 척 하는 검정도 아닌 고뇌로 가득찬 회색이야 말로 바로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인간적인 진실의 색이다.
< 더 큰 정의라는 말의 이중성 : 구별짓기 >
“도배지가 떨어져나간 흙방에 주름투성이의 노파가 홀로 앉아 있었다. ‘애린아, 너 이런 데 처음 와보지? 이렇게 늙은 사람 본 적 없지?’ 동행한 선배의 ‘너는 없지’라고 단정하는 말투에서 우월감이 느껴졌다. 나는 서클 사람들에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들지 않았다. 나도 신문지로 도배한 흙방에서 살았었다고 출신성분을 자랑했다면, 나를 보는 부정적인 시선이 걷혔을까. ‘이렇게 늙은 사람’이 내 귀에 걸릴 때, 노파의 방문은 열려 있었다.” (127쪽)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위의 대목을 꼽겠다. 스스로가 유일한 정의의 구현자들이라 생각했겠지만 실은 그들이야말로 같잖은 선민의식으로 무장하고 계급의식으로 똘똘 뭉친 자들이 아니었나? 켜켜이 접힌 주름 속에 지난한 인생의 순간들을 구겨 넣은 노파의 인생 앞에서 고작 스물 몇 살 남짓한 대학생의 멍청한 발언을 보며 나는 몹시 괴로웠다. 타인의 고통과 시간과 늙음을 대상화하여 자신이 정치적, 도덕적 우월성을 증명하는 도구로 삼다니. 게다가 애린에게 범한 무례는 또 어떻고? 완벽한 부르주아가 되지못해 프롤레타리아들을 가리키며 비아냥대는 쁘띠-부르주아에 지나지 않는 찌질함이란!
그 어디에서도 80년대의 대학생들을 이렇게 날 생선처럼, 털이 비죽비죽한 갓 잡은 사냥감처럼 툭 던져주는 작품을 보지 못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1987>(2017, 장준환), 그리고 소설 <L의 운동화>(2016, 김숨), <소년이 온다>(2014, 한강) 등 80년을 주요하게 다루는 작품들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지만, 모두 비슷비슷한 공기와 비슷비슷한 인물들과 비슷비슷한 정의감으로 얼룩덜룩하다. 그들은 항상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계몽에 고취된 상태이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낸 주역들로 여겨지므로 독자나 관객들은 항상 그들 편에서 그들이 옳음을, 열렬한 눈물의 감상으로 증명해야 했다. 위의 저 장면에서 나는 비로소 그간 내 목을 조르던 넥타이이의 매듭을 풀 수 있었다. 숨통이 트였다. 80년대가 지나치게 ‘80년대’스럽게 느껴지던 위화감과 불편감이 그제야 납득이 됐다. 정치적 사건의 인과를 규명하고 열거하는 데에 그치는 서술은 진짜 역사가 아니다. 정말로 살아있는 역사는 살아있는 그 시대의 개인들이 토해낸 산물들의 보존이다. 그런 진술과 서술이, 회고와 고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내가 동원한 단어들, 운동(運動)과 파이팅(fighting)이 절묘하다. 스포츠(sports)와 무브먼트(movement)의 차이만 있지, 같은 운동 아닌가. ‘제국’을 ‘투쟁’으로 바꾸면 변혁운동권의 술자리와 비슷하지 않나. 지향하는 바만 다를 뿐, 여럿이 의기투합하는 놀이문화는 마찬가지.” (274쪽)
< 삼각형 80-81-12 >
“ (…) 내 인생에서 가장 불안했던 시기. 스물두 살에서 스물네 살까지의 의식의 흐름을 잡지 못해 사건들의 앞뒤가 몽롱하다. (…) 다만 문장들이 튀어나오고 흐릿한 영상들이 어른거릴 뿐.” (165쪽)
삶의 특정 토막을 글로 써낸다는 것은 결단코 그것을 잊고 싶지 않다는 욕망의 적극적인 발현, 혹은 “바르게” 기억하고자 하는 윤리적 의식의 작용이다. 그리고 이러한 글쓰기의 행위를 떠받치고 있는 기저에는 용기 자리한다. 순수하고 내재적인 예술적 가치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 외에 또 한편으로 문학이 복무해야 할 다른 의무가 있다면 그것은 이 세계를 어떤 미화나 가식의 덧칠 없이 진실하게 그려내는 일이다. 문학 안에서 우리는 살아오면서 잃어버린 것들과 버린 것들 그리고 주운 것들, 얻고 싶어 하는 것들을 찾으며 돌아다니고 방황하고 정착한다. 쓰는 이와 읽는 이 모두가 그러하다. 애린이 80년대를 지나보내는 과정은 배설 능력을 회복하는 과정과 나란히 진행된다. 유주미의 재판정에 달걀을 투척하고 나오는 순간, 비로소 애린의 둘코락스 복용은 끝이 나고 그는 “과거의 터널”에서 탈출한다.
애린의 젊은 날에서 내 오늘의 이십대를 만난다. 애린의 80년대와 나의 오늘은 경계선 위에 존재한다는 공통점을 갖기 때문이다. 경계에 있는 사람들은 불안하다. 하지만 동시에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고 양 시야를 모두 바라볼 수 있다. 위태로운 경계선 위에서 비범함과 남다름, 돋보임의 또 다른 얼굴은 아웃사이더다. 외로움이다. 제 손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괴리감 앞에서 의연한 표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애린은 80년대가 자신에게 남긴 것은 이념이 아니라 다름 아닌 ‘정서’라고 말한다. 나는 그 정서가 남긴 흉터와 무늬를 37년 뒤의 지금 이 순간 그의 청동정원에서 다시 발견한다. 이념은 청동처럼 녹슬고 빛이 바래지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호르몬의 상승과 하강이 만들어내는 정서는 펄떡이는 혈관과 투명한 피부처럼 언제나 살아있다.
거의 40년의 간극을 두고 내가 애린을 이해하는 것이 이토록 직관적인 차원에서 가능한 이유는 바로 엄마 때문이다. <사노라면>이 아니라 <다시 만난 세계>를 시위현장에서 목청껏 부르는 우리 세대는 피라미드처럼 불가사의하게 태어난 존재들이 아니다. 80학번의 애린과 12학번의 나 사이에는 81학번의 (작가 최영미가 아니라) 또 한 명의 ‘영미’가 있다. (공교롭게도 엄마는 작가와 성만 다른 같은 이름이며 거의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녔다.) 작가를 엄마의 책꽂이에서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처음 만났다. 부정확하지만 기억으로는 99년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엄마의 책꽂이에도 이사야 벌린이나 마르크스, 사회주의 서적들, 그리고 김초혜, 최영미와 같은 여성 시인들의 시집들이 즐비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와 애린, 최영미의 만남은 그러니까 사실 99년이 최초였던 거다.
애린이 지나온 흔적 속에서 나는 나의 소수자성과 외로움을 보았지만, 실은 애린과 함께 그 시절을 살았던 엄마의 이십대도 같이 보았다. 그래서 애린이 빠져나온 이 연대기가 소설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기 혹은 고백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일기, 애린의 일기, 그리고 엄마의 일기. 대학생이라면 마땅히 시대의 등불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왔고 그래서 늘 엄마의 대학시절 앞에서 나는 죄의식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애린의 일기를 통해 그 죄의식을 조금 덜어본다. 그들도 나처럼 유치하고 어린 날들을 수없이 흘려보냈던 이십대들이었다. 고생해 공부시켜 대학에 겨우 보내놨더니 연애도, 성취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방황하는 애린을 타박하는 정순정 씨와, 그런 나를 한탄스러워하는 또 다른 영미 씨를 번갈아 보면서, 마치 그 시절의 애린이 종이 밖으로 현현하여 나를 나무라는 것일까 하는 착각과 공상에 입술사이로 쓴웃음이 슬몃 흘러 나온다.
소설이 시대극인 만큼 배경이 되는 대학교의 장소들과 서울 곳곳의 모습들, 그 시절의 청년들이 읽었던 책의 제목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나오는데, 나는 읽는 내내 그 모든 것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삐삐가 있기도 한참 전의 대학생들이 쓰던 ‘개발새발’ 알림장 노트와 독수리다방이 부러웠다. 나 역시 현재 신촌에 적을 두고 있지만 애린이 학교에 마음을 쏟았던 만큼 (‘자무연’에서 내려다본 이미지로 청동정원이라는 제목을 지었듯) 신촌을 사랑할 수 없다. 이유는 아마 소설 속 그들이 지녔던 ‘끈’의 부재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시대의 우울’이 아니라 ‘각자의 우울’속에서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아도 인류가 멸망하지 않아.”라고 시크하게 담배연기를 내뿜던 유주미, 애린이 동경해 마지않던 전혜린을 “나르시스트, 자의식 과잉, 지적 속물”이라며 애린의 세계를 가차없이 부숴버린 선배 지연 또한 내겐 없는 존재들이다. 정신과 감상이 계속해서 새로운 물방울들로 솟아날 수 있도록 나를 내리쳐줄 카프카의 도끼를 손에 든 이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꼭짓점 12가 80과 81을 올려다보며 부러워한다.
소설 말미에서 애린은 서른을 나의 서른은 아직 오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이렇다 할 경력도, 성취도 전무하다. 학력란에는 아직 고졸이라고 기입해야 한다. 이력서에 투병경력을 경력으로 쓸 수는 없잖은가.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애린이 처음부터 투철한 선민의식으로 운동에 가담한 게 아니라 학내 분위기와 친구들에 떠밀리듯 발을 담갔듯이, 내 인생 역시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떠밀리듯 여기까지 왔다.
앞서 말한 나의 장애는 천만 명의 태아 중 한 명 꼴로 발생하는 아직 원인을 알 수 없는 유전질환이다. 다행히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수술로 극복할 수 있게 됐고 (시대를 잘 만났다고 해야할까?) 신촌의 모 대학병원에 입원하기 직전 독수리 다방에 갔었다. 거기서 나는 애린이 대학생이 되어 카페에서 처음 마신 그 비엔나커피를 마셨다. 그의 청동정원을 구경하기도 한참 전부터 나는 비엔나커피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독다방에서는 왠지 그를 따라 비엔나커피가 아닌 다른 커피는 마시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가 이십대의 문을 처음 열어젖히고 마신 설렘가득한 크림을, 나는 수술을, 내 신체에 닥칠 큰 변혁을 앞두고 착잡한 마음으로 삼키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괴로운 재활과정을 거쳐 지금은 거의 정상인에 가까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간혹 여섯 군데의 수술 흉터가 일 년 동안 점점 부풀어 올라 나를 간지럽게 한다. 이 부푼 자국들이 피부에 스며들어 나의 무늬가 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흘러야 할까. 담당의는 레이저로 흉터를 제거할 수 있다했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없다. 인위적으로 태워 없애지 않고 병과 투쟁한 나의 무늬로 고스란히 새겨둘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결코 잊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나는 수십 년에 걸려 끝내 이 청동정원을 탈고한 애린에게 큰 환호성을 보낸다. 단지 내가 그와 비슷한 환경과 조건에 처한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 출신이 아닌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생,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의 몸으로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면 나는 어떤 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니 어느 서클에라도 끼일 수 있었을까? 농활에서 만난 주름진 그 노파처럼 대학생들이 계몽의식과 선민의식을 뽐내게 해주는 수단적 존재로 전락해버리진 않았을까? 등등 소외에 관한 물음들 역시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다. 나는 이 나라 어디에서나 소수자일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공감은 동일성의 재확인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너무도 다른 자취를 살아온 존재들임을 각성하는 그 순간에 연대의 가능성은 불꽃처럼 파박-튀어오른다. 신자유주의가 극에 달한 2018년의 한국을 버텨내고 있는 이십대 여성으로서, 주류의 면모라고는 애린의 바바리코트 주머니 속에 있던 돌가루들만큼도 없는 나의 이 맨얼굴로, 애린에게 무한한 애정과 격려와 지지를 보낸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살아갈 용기가 솟아났다. 그 어떤 위로와 격려도 진실한 경험의 공유만큼 거대한 힘을 갖지는 못한다. 애린이 청동정원에 벗어둔 허물에는 그가 온몸으로 겪은 시대의 압력과 자유의 몸짓이 비늘처럼 박혀있다. 그것들을 한 땀 한 땀 어루만지자 현실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해받지 못한 나의 비늘들이 날개처럼 돋아남을 느낀다.
“꿈에서 멀어졌고,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도 희미했고, 옆에 짝이 없었고, 현재에 만족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막막함을 공유했기에 우리는 근본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자리에 모였다.” (269쪽)
2018년의 80-81-12가 모인 청동정원에서 12가 방명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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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별 2018-01-26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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