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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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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나눔의집에서 제작한 일본군 위안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 홍보 영상은 매우 고약했다. 지난 5월 방송됐던 <PD수첩> 나눔의집 편에 잠깐 등장한 홍보 영상 말이다. 그 홍보 영상에서 나눔의집 안신권 소장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지도 못하는 할머니들을 자기 옆에 앉혀 놓고 할머니들에게 자기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도록 재촉한다. 내 눈에는 안신권 소장이 꼭 재주 부리는 곰을 채찍질하는 서커스 단장 같았다. 게다가 그 홍보 영상의 중심에는 할머니들이 아니라 안신권 소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당사자를 주변으로 밀어내고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안신권 소장은, 사실 하나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우리사회가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대했는지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
아무리 정의롭고 선한 목적이라고 해도 위안부 피해자를 그런 식으로 동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가시화된 이후 위안부 피해자를 매번 그런 식으로만 동원해왔다.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꾸짖거나 친일파와 토착왜구를 선별하고 싶을 때마다 위안부 피해자를 필요로 했다. 당사자의 고통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면서 그걸 최선의 공감과 연대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사회가 그러는 동안 정작 당사자의 “복장(가슴의 한복판, 속으로 품고 있는 생각)”은 어떻게 곪아갔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5월 이용수 인권운동가의 문제 제기가 있었고, 그와 같은 문제 제기는 그게 처음도 아니었다. “이용만 당했다”던 이용수 인권운동가의 절규에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는 건 윤미향 씨나 정의연뿐만 아니라는 얘기다.
이용수 인권운동가처럼 운동의 간판으로 이용당할 기회조차 없었던 위안부 피해자도 적잖았다. 가계에 부담이 되지 않으려고 친구와 함께 직업소개소를 찾았다가 위안부로 동원됐던(강제로 끌려가지 않았던) 배춘희 할머니도 그중 하나다. 배춘희 할머니의 기억은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꾸짖거나 친일파와 토착왜구 선별에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배춘희 할머니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면 오히려 어느 쪽이 더 나쁜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배춘희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나서야 부고 기사로 자기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그 부고 기사는 일본 정부가 진정한 사죄와 보상을 하지 않아서 끝내 한을 풀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식이었다. 물론 그건 듣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에 따라 왜곡된 얘기다.(관련 얘기는 일전에도 한 번 한 적 있다:
https://www.facebook.com/yongdeuk77/posts/4615294091830045)
배춘희 할머니 말에 따르면 안신권 소장은 “인간도 아니다”. 안신권 소장을 비롯한 몇몇 나눔의집 관계자는 “뒤에서는(남들 안 보는 데선) 인정이고 나발이고 없었다”고 한다. 내부고발로 밝혀진 여러 정황, 요컨대 사람들의 후원금이 위안부 피해자의 복지에는 한 푼도 쓰이지 않은 정황이나 나눔의집 이사진과 운영진이 위안부 피해자를 앞세워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려던 정황이나 고인의 유품을 함부로 다룬 정황은 배춘희 할머니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한다. 배춘희 할머니 말에 따르면 그들만 그런 게 아니다. 윤미향 씨와 정대협(정의연의 전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윤미향 씨와 정대협은 자신들의 운동에 당사자 대신 “인형(배춘희 할머니는 소녀상을 인형이라고 표현했다)”을 앞세우는 편이었으니 나눔의집 이사진과 운영진보다는 인간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와 같은 실상, 그러니까 배춘희 할머니처럼 비가시화된 위안부 피해자가 전하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우리사회)에 관한 이야기는 얼마 전에 출간된 『일본군 위안부, 또 하나의 목소리』에 낱낱이 실려 있다. 이 책은 배춘희 할머니와 박유하 교수가 아홉 달 동안 나눴던 대화를 박유하 교수가 정리한 것인데, 배춘희 할머니는 생전에 둘의 대화가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적은 백만, 나는 혼자”라고 여겼던 배춘희 할머니는 박유하 교수가 불이익을 당할까 봐 줄곧 걱정했다. 한번은 배춘희 할머니의 건강이 악화되자 박유하 교수가 나눔의집에 병원을 모시고 가달라는 부탁을 했다 배춘희 할머니에게 크게 야단맞기도 했다. 배춘희 할머니는 박유하 교수와의 내밀한 관계가 들통 난 것이 못마땅했던 것인데, 그만큼 배춘희 할머니는 곁에서 자신을 돌보던 사람들까지 경계했다.
그랬던 배춘희 할머니에게 박유하 교수가 각별한 존재가 되면서 박유하 교수는 나눔의집 경계의 대상이 됐다. 박유하 교수는 법적 보호자가 아니라서 병문안과 면회가 제한되기도 했고, 나중에는 박유하 교수가 배춘희 할머니의 보호자를 자처했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았다. 결국 배춘희 할머니의 걱정은 현실이 됐고(고발을 당했고), 박유하 교수는 배춘희 할머니 이야기를 지난 6년 동안 품고만 있다 얼마 전 세상에 공개했다. 박유하 교수가 배춘희 할머니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하기로 한 배경은 이용수 인권운동가의 기자회견과 배춘희 할머니 사망 직후 나눔의집 관계자의 기부약정서 위조 사건이 크게 한몫했던 것 같다. 이대로 두면 당사자의 복장이 왜곡된 채로 우리사회는 가공된 당사자만을 기억할 테니까.
배춘희 할머니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면 나눔의집에 계셨던 할머니들의 평소 생활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나눔의집은 애초에 당사자끼리 서로 사이 좋게 지낼 수 없는 시설이다. 당사자는 서로 비슷한 피해를 겪었더라도 저마다 다른 욕망을 가졌을 테고, 그 욕망은 때때로 부딪히면서 여러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그와 같은 갈등은 좀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자는 뼛속까지 서로 다른 사람이지만, 가해자를 규탄하기 위해 일심동체가 되기를 끊임없이 요구받았다. 또한 나눔의집은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시설이고, 그 방문자 수만큼 당사자에게는 공허하고 외로운 시설이다. 아마도 나눔의집 관계자들은 때때로 있는 그대로의 당사자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시 말해 위안부 피해자가 왜 굳이 나눔의집 같은 시설에 함께 모여 있어야 하는지 우리사회는 되물은 적이 없다. 누군가 자기 할 일을 대신해주는 것처럼 고마워했고, 나눔의집 이사진과 운영진은 사람들의 그 부채감을 철저히 이용했다.
배춘희 할머니는 특히 돈 타령에 진절머리가 났던 것 같다. 배춘희 할머니 이야기 속 위안부 피해자는 대부분 돈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 정부가 우회적으로 관여했던 민간기금 논란이 그런 경향을 부추긴 게 아닌가 싶다. 책에서는 당시 떳떳하게 받을 수 없었던 그 돈을 지금 가치로 환산해서 다시 받아내야 한다는 얘기가 자주 반복되고, 실제로도 관련 소송은 진행 중이다. 배춘희 할머니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의 원고로 포함돼 있다. 배춘희 할머니는 그 소송에 동의한 적 없지만, 망자가 된 지금도 재판에 소환되고 있는 셈이다. 문득 민간기금 논란 당시 그 돈을 굴욕적이라면서 당사자보다 더 큰 목소리로 받지 말라고 했던 사람들은 지금 다들 어디에(어느 위치에) 계신가 싶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이 공분의 땔감으로 쓰이지 않았으면 한다. 이미 앞에 실컷 공분의 땔감 삼은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이 책을 빌미로 누군가를 비난만 한다면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의미와 가장 멀어지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의미는 첫 번째로 박유하 교수의 의도가 다분히 섞여 있겠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박유하 교수는 배춘희 할머니 이야기를 듣는 첫 번째 청자에 불과하다. 두 번째 청자, 세 번째 청자, 네 번째 청자는 박유하 교수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배춘희 할머니 이야기는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n개의 서로 다른 견해가 당사자의 복장(모든 논의의 중심)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을 때 배춘희 할머니는 비로소 온전히 해방된다.
다만 이 책에서 너무 아쉬운 점은 기술의 부재로 배춘희 할머니의 육성이 생략된 것인데, 공교롭게도 나는 경상도 사투리 전문가로서 어쭙잖은 자문을 보태는 바람에 배춘희 할머니의 육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육성을 들으면서 얼마나 웃고 울었는지 모른다. 웃을 만한 일이 아닌데 웃음이 저절로 터졌고, 어느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지랄한다”를 입에 달고 사셨던 배춘희 할머니가 얼마나 재밌는 사람인지, 그건 문자로는 도무지 전달이 안 된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이 책에는 위안부 피해자로 박제되지 않으려는 한 사람의 가공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그 한 사람은 야만의 세월을 끈질기게 살아남았지만, 엉뚱하게 기억되고 있다. n번째 청자가 이 책을 통해서 그 한 사람이나마 있는 그대로 기억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게 진짜 역사 아닌가 싶다.
*“복장”은 “지랄한다”와 함께 배춘희 할머니가 즐겨 쓰던 말입니다.
**위에 소개해 드린 책을 구매하신 독자 제현께서는 필요하다면 전화 주십시오. 성대모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배춘희 할머니의 사투리를 최대한 재현해 드리겠습니다. 특히 욕 재현 자신 있습니다.
Comments
Park Yuha
페친 언론 통틀어 첫 서평이네요.
길이길이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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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박유하 배춘희 할머니의 역사관이 다소 불편할 독자도 적지 않을 듯요. 배춘희 할머니의 복장을 헤아리려면 배춘희 할머니의 "해방당했다"는 아이러니한 말부터 곱씹어봐야 할 텐데, 그게 저 같은 비국민 아니면 곱씹다 체하지 않을까 싶네요ㅠㅠ
· Reply · 2 d
권용득
언어(경상도 사투리)의 장벽도 한몫할 테고...
· Reply · 2 d
Park Yuha
권용득 해방당했다는 말이 있었나요. 인식 못했네요.
· Reply · 2 d
권용득
박유하 32쪽에 나와요. 근데 그럼 저자도 인지 못한 표현 발견한 건가요? 왠지 개뿌듯ㅎㅎ
Image may contain: text that says "争が、大東亜戦争が(전쟁이 대동아전쟁이), 1941年から45年まで (1941년부터45년까지) 45년까지) 전쟁을 치렀거든. 戦争があったわけやん(전쟁이 었다고). 그러니까, 시절이니까. 결국은 내가 여기서 중국에서 해방 을 당하고 나중에는 1950年(년)에 (남북전쟁:6 전쟁)이 붙 었잖아. 붙어가지고 이북도 못 가고 이남도 못 가고 どうにもならんか 5(어떻게도 해볼 방도가 없어서) 어찌어찌 해가지고 일본에 들어갔다 했 잖아. 그래서 일본에 들어가가지고 月が流れて、 56歳のとき、 偶然に(세 월이 흘러, 원여섯에, 우연히), 몸이 아파가지고, 運命 (운명)을 점하는 길 가다가 벤치에서 만나가지고, 그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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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권용득 아하. 😅
· Reply · 4 h
Park Yuha
워낙 주목해야 할 말이 많았던지라.
· Reply · 3 h
권용득
박유하 네. 안 그래도 제 책은 밑줄투성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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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홈리스운동을 하면서 안신권, 윤미향 같은 이로 전락하지 않도록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 Reply · 2 h ·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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