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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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전에 누군가의 소개로 하루키에 관한 에세이를 출판사에 보냈었다. 여러 필진을 모으고 있었고 바로 출간한다해서 하루키에 대해 할 말도 없어 어거지로 쥐어짜서 보냈는데 1년째 소식이없다.
풍문으로 이 글 쓴사람 누구냐고 출판사사람들이 돌려봤다고 들었다.
김마리아다 이것들아, 짜증나서 걍 페북에 올린다.
* 21세기 상실의 시대
이 고상한 아저씨를 처음 만난 건 말도 안 되는 포르노물이 극장 간판에 난무하던 세기말이었다.
신흥 종교 교인들이 날마다 초인종을 누르며 밀레니엄 대비책 같은 설명을 하고 다녔었다. 심지어 나의 할머니는 내일이 정말 안 올수도 있으니 휴거에 대비해야한다는 말씀도하셨다.
(할머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신데 어찌된 일인지 이상한 모임에 빠지셔서 세기말을 준비하셨다. 실제로 하늘에서 불비가 내린다 믿고 동대문시장에서 가장 두껍고 검은 천을 사와 커튼으로 만들고 성수를 뿌리셨다.)
싱겁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새천년 밀레니엄을 맞이했다. 그리고 나는 예술대학 입학원서를 샀다.
원서에 적힌 학과중 가장 만만해 보이는 실기시험을 골라제출했다.
문예창작 과였고 시험은 소설과 시 둘 중 하나를 골라 시험을 보면 되었다.
“시. 짧고 좋아. 오케이 시”
그 시절엔 아메바처럼 생각하며 살았다. 원서를 냈고 시험 날 열심히 시를 쓰고 나왔다.
문제는 구두로 진행되는 면접이었다. 그저 용감하기만 했던 여자는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쓰러뜨리고 이기고 돌아오리라는 비장함을 가지고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노련한 교수들이 천둥벌거숭이를 보고 야수처럼 달려들었다.
질문의 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황당한 횡설수설이 이어졌고 ‘망했다’란 환청이 귀전에 울릴 때 말없이 지켜만보던 여자 교수가입을 열었다.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예요.”
드디어 이해할 만한 질문, 잃어버린 자신감을 찾으며 교과서의 시인들을 떠올렸다. ‘백석, 이상, 윤동주’
대답 하려는 순간 한마디를 덧붙인다.
“살아있는 사람으로 말하세요.”
아주 짧은 순간 고도의 기억력을 끌어올려 한 사람을 찾아낸다.
“류시화요.”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의 여자교수가 말했다.
“오 류시화. 또 또 다른 시인.”
‘또 라니…….’
나는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나.
그래 이 모든 재난의 시작은 밀레니엄 맞으며 시작된 쓸데없는 흥분 감이었어.
멈추지 않는 자학 속에서도 이상한 비장함은 사라지지 않았고 힘을 주고 대답했다.
“다 죽었는데요.”
노련한 야수들이 동시에 웃음 터뜨렸다.
그렇게 나는 굴욕과 찝찝함을 안고 대학교 신입생이 되었다. 우울한 피해의식을 가진 여학생은 지루한 봄날의 캠퍼스를 어슬렁거렸다.
때는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광풍이 지난 시점이었고 나만큼 우울해 보이는 같은 과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너 미도리 같구나.”
당연히 미도리가 누군지 몰랐다.
“그게 누구야.”
그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를 읽어보라는 말을 하고 사라졌다.
누군가를 닮았다는 말은 기분 좋은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소설 속 인물과 닮았다는 말이 뭔가 나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상실의 시대>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시작했다. 책장은 빠르게 넘어갔지만 줄거리와 문장들이 내 이해의 수준을 넘어 더 빠르게 달려갔다.
나중에는 점점 속도도 느려지고
‘그래 미도리라고 그랬지’ 하면서 미도리가 나온 부분만 골라내서 읽었다.
결국 소설을 끝까지 읽지도 못한 채 책을 덮어버렸다.
20살 아메바에게 <상실의 시대>란 술자리에서 징징거리며 지나간 연인의 추억을 무한 반복하는 친구처럼 지겨웠다.
무엇보다 미도리와 나의 공통점이 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억지로 갖다 붙이자면 짧은 커트머리였다는 정도…….
* <해변의 카프카>의 저주
아무도 소설을 읽지 않는 시대. 그러나 하루키의 신작이 나오면 너도나도 서점으로 간다. 그의 소설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에 대해서 의심하진 않는다.
하지만 한국문단이 바라보는 하루키에 대한 시선은 냉랭하기만 했다.
이상하리만치 말을 아꼈고 누구하나 그에 대에 이렇다 저렇다 할 평가도 없었다. 기껏해야 나오는 말들은 회의적인 표현뿐이었다.
“소설이 10만 부 팔렸을 때,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지지받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숲]이 백 몇 십만 부나 팔리게 되자, 나는 아주 고독해졌다. 그리고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혐오의 대상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 <하루키,하루키>하루키의 인생, 하루키의 문학 / 히라노 요시노부 -
그는 스테디셀러 작가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남자가 되길 선택한 듯 보였다.
하루키의 소설을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고 그의 소문을 듣고 싶지 않았다. 이 고독한 아저씨에게 최소한의 예의라도 차리고 싶어졌다.
<해변의 카프카>가 한국에 출간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긴 휴가를 떠나게 되었고 아름다운 해변이 보이는 휴가지에서 그의 신간을 읽는 모습을 상상했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제목도 해변의 카프카라니…….
내가 상상했던 그곳은 보통의 휴양지 모습과는 좀 거리가 멀었다. 섬 전체가 갯벌로 이루어져 있고 해변이라 불릴 만한 곳이 전혀 없었다.
적도와 가까운 위치여서 한 낮의 기온이 40도까지 오르고 이글거리는 그 아래에서 무언가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숙소의 야외 정원에 앉아 책을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몇 분도 버티지 못하고 에어컨이 나오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낮에 한 일이라곤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수영장에서 잠깐 수영을 하거나 면세점에서 사간 술을 열대과일과 섞어 마시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오후 5시가 되자 해는 급하게 사라졌고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러 산책을 나선 순간 컴컴한 허공에서 박쥐가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이름 모를 벌레와 파충류를 이길 재간 없이 방으로 돌아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해변의 카프카>를 끝까지 읽었고 한 달 내내 하루키 욕을 하며 긴 휴가를 보냈다.
시작은 언제나 경쾌했다. 빠르게 책장이 넘어갔고 이해 못할 문장도 없었다. 지루할 틈 없이 재밌게 읽어갔다. 그런데 책을 읽은 후 몰려드는 피로함이 당혹스러웠다.
휴가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초조함과 휴양지의 우울을 배경에 두고 비범한 취향의 음악과 미술, 건축 등이 쏟아지고 그 방대한 박식함이 피곤함에서 다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범벅 된 판타지소설로 읽혀졌다.
* 그리고 맥주회사에서 만든 맛있는 우롱차 무라카미 하루키
동네에 새로운 맥주집이 생겼다. 맥주가 맛있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자자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기웃거렸지만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했고 앉을자리도 없었다.
굳이 줄을 서서 맛을 봐야할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맥주 집은 인기가 더 좋아졌고 점점 사업을 넓혀가는 듯 보였다.
단골손님이 많아 보였지만 맛이 변했다는 식의 소문도 들려왔다.
듣고 싶지 않은 소문까지 들어가며 그 앞을 지나다니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는 윤리의 문제였다.
줄을 선 사람들 뒤에 서서 순서가 되길 기다렸다.
기다리는 일은 성가시지만 왠지 모를 기대감으로 들뜨게된다.
드디어 차례가 돌아왔고 자리에 앉아 맥주를 주문했다. 구름을 얹은 듯한 거품과 투명한 황금빛 잔이 놓여졌다. 천천히 한 모금을 마시고 주변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혼자 조용히 맥주를 마시는 사람,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술잔을 부딪치는 무리들 심각한 표정으로 말없이 맥주만 마시는 커플.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공간속에서 같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소문대로 맥주맛은 독특했다.
많은 맥주를 마셔보았지만 보통 맥주와는 다른 이 집만의 풍미가 느껴졌다.
천천히 들이키며 맛을 음미했다. 절반 정도 마셨을 때 처음에 느꼈던 맛이 남아있지 않았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맥주가 있고 특히 이 집만이 맛있다고 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였고 사람들의 소문은 지극히 주관적인 말들이었다.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맛을 다시며 시원하고 독특한 풍미를 떠올렸지만 입안은 텁텁하기만 했다.
맥주는 사람이 만들고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음료이다. 세상의 맥주종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즐긴다. 만약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마셨다면 아마 맥주의 맛이 다르게 느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마음에 드는 책을 읽으면 그 작가와 친구가 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잊을 만하면 다시 꺼내서 친구를 만나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마치 처음 듣는 다는 듯이…….
세상에 이런 우정도 없다 싶을 만큼 좋아하는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
하루키는 친구라기보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인연들중 하나이다. 그가 재미난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나의 친구는 아니었다.
그런 내게 하루키가 다시 찾아왔다.
하루키 에세이 책 한 권을 선물받았고 책은 그대로 책장에 꽂아두고 한참을 잊고 지냈다.
시간이 지나고 책장의 책을 살펴보다 독특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한 때 알던 지인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책을 꺼내 아무 곳을 펼쳐 읽었고 그대로 빠져들었다. 몇 번을 다시 읽고 나도 모르게 얼굴은 미소로 번졌다. 이토록 시답잖은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쓰다니.
매력 없는 고독한 남자는 사실 교양 있고, 우아한 식견으로 삶의 지루함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만약 여기에 단단하고 커다란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혀 깨지는 계란이 있다고 한다면, 저는 언제나 계란 쪽에 서겠습니다. 바르고 바르지 않고는 다른 누군가가 결정하는 일입니다. 혹은 시간이나 역사가 결정하는 일입니다. 만약 소설가가 어떤 이유로 해서 벽 쪽에 서서 작품을 쓴다면, 도대체 그 작가에게는 얼마만큼의 값어치가 있을까요.
- <하루키,하루키>하루키의 인생, 하루키의 문학/ 히라노 요시노부 -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커다란 벽을 마주 보고있다. 그리고 언제나 깨지는 쪽에 서서 거대한 두려움을 바라본다. 그것에지지 않을 수 있
는 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 된다는 평범한 진실을 하루키는 이미알고 있었다.
옛날 미국 서부의 술집은 대부분 전속 피아노 연주자를 두어 밝고 티없이 맑은 춤곡을 연주하게 했다.
그 피아노에는 ‘피아니스트를 쏘지말아주세요. 그도 열심히 연주하고 있습니다.’ 하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술에 취한 카우보이가 “저렇게 시원찮아빠진 피아노 연주자가 있다니, 이런 빌어먹을!”하고 피스톨을 빵 쏘아버린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을 당하면 연주자도 곤란할것이다.
피스톨, 갖고 있지 않으시죠.
-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중 ‘에세이는 어려워’ -
나는 가슴에 피스톨 한 자루를 품고 사는 총잡이다. 무서울 것 없는 20대에 언제나 총을 꺼내들었고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었다. 총 쏘는 일은 습관이었고 날아간 총알은 이상하게 부메랑처럼 돌아와 내가슴을 명중시켰다.
총잡이들에게 자비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총에 맞으면 얼마나 아픈지 알고 있다.
텅 빈 공간에 피아노 한 대가 놓여있고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남자가 열심히 연주를 하고 있다. 아름다운 듯 서툴게 그러다 틀린 부분이 나오면 혼잣말을 하며 머쓱한 표정을 짓고 다시 묵묵히 연주를 한다.
조용히 그 옆으로 다가가 귓속말을 해주고 싶다.
“하루키. 이 시원찮아빠진 아저씨. 당신의 우롱차는 정말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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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won Jung
스무살의김마리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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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Kim updated her cover photo.
tSpo15f MnnhuarSchcgsri or2e0dai1lhd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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