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3

[책과 삶]본심 감춘 인민들의 ‘무대’ 북한을 고발한 그, 누구일까 - 경향신문

[책과 삶]본심 감춘 인민들의 ‘무대’ 북한을 고발한 그, 누구일까 - 경향신문


[책과 삶]본심 감춘 인민들의 ‘무대’ 북한을 고발한 그, 누구일까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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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17 20:45 수정 : 2017.02.17 20:51인쇄글자 작게글자 크게


고발
반디 지음 | 다산책방 | 276쪽 | 1만3800원




얼굴도 없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북한 작가의 소설이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반디’라는 필명으로만 알려진 북한 작가의 소설집 <고발>(다산책방)이다. 이 소설집은 2014년 5월 조갑제닷컴에서 출간된 바 있지만, 발간 당시에는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연이은 해외 출간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고발>의 해외판권 수출을 대행하고 있는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는 지난 1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한국, 프랑스, 일본, 포르투갈에서 출간됐으며, 앞으로 이를 포함해 19개 언어 20개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 번역으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작가와 공동 수상한 데버라 스미스가 지난해 12월 <고발> 번역으로 펜(PEN) 번역상을 받은 것이 관심을 증폭시킨 결정적 계기다. 때맞춰 국내에서도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됐다.


■ 어떤 소설인가



<고발>에는 ‘탈북기’ ‘유령의 도시’ ‘준마의 일생’ ‘지척만리’ ‘복마전’ ‘무대’ ‘빨간 버섯’ 등 모두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해당 작품 말미에 적힌 날짜에 따르면, 원고를 완성한 것은 1989~1995년 사이다. 김일성 사망 후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전후한 시기다.


소설집 첫머리에 놓인 ‘탈북기’는 아내를 의심했던 한 남자가 북한을 탈출할 결심을 하고 그 과정을 친구에게 알리는 편지 형식의 소설이다. 주인공 리일철은 아버지가 부르주아 반동으로 몰려 압록강 유역으로 이주당한 적이 있는 ‘이주자’ 신분이다.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던 그는 아내가 출신 성분이 나쁜 남편을 위해 노동당 간부의 노골적인 성희롱까지 감수해왔음을 발견하고 자괴감을 느끼며 탈북을 결심한다. 계급 없는 사회를 내걸었음에도 실제로는 차별과 연좌제로 주민을 옥죄는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작품이다.


‘유령의 도시’는 그러한 모순적 체제의 뿌리가 김일성 가계와 노동당의 독재에 있음을 직접적으로 겨냥한다. 국경절을 앞두고 행사 준비 등으로 평양 시내 전체가 술렁이는 가운데 한경희의 어린 아들이 심한 발작 증세를 보인다. 공교롭게도 아들은 마르크스와 김일성의 초상화를 볼 때마다 경기를 일으키는데, 한경희의 가족은 결국 “공산주의 시조인 마르크스의 초상화를 비속화하고 수령님의 초상화를 솥뚜껑에 비기는 등 당의 유일사상 체계를 세우는 사업에서 심히 엄중한 과오를 범한 것으로 하여” 지방으로 추방된다. 한경희는 김일성 가계와 당에 충성해야 하는 연기에 실패해 추방된 셈인데, 김일성 사후 완성된 단편 ‘무대’는 보위부 소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북한 사회를 모든 주민이 본심을 숨기고 ‘연기’를 하며 살아가는 ‘무대’에 비유한다. 다른 작품들 또한 북한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 뒤에 공기처럼 스며 있는 억압적 분위기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 반디는 누구인가


그동안 상당수 탈북 작가들이 국내외에서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소설이나 논픽션을 펴냈다. 현재 북한에 살고 있는 작가의 소설이 나온 경우는 매우 드물다. 2002년 북한에서 출간돼 당시 “평양의 독서계를 석권하고 있다”고 알려졌던 홍석중의 <황진이>(북한 문학예술출판사)가 한국에 수입돼 2004년 출간됐으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황진이>와 달리 <고발>은 현대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작가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1950년생으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 남성 현역 작가이며, 신변이 위험해지는 것을 무릅쓰고 친척 여동생을 통해 원고를 외부로 반출했다는 게 전부다. 이상은 2013년 원고를 입수한 피랍탈북인권연대의 설명인데, ‘1950년생 남성 작가’라는 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해당 정보만으로도 작가가 특정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피랍탈북인권연대는 원고 원본은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은 주민 2400만명의 필체만으로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어 작가의 신원이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탈북작가인 이지명 망명북한펜센터 이사장은 반디가 북한 작가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내용을 보면 북한 작가인 건 맞다.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지금처럼 밖에서 이렇게 떠드는 건 작가를 죽이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필명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작가동맹 소속 작가가 몇백명 정도이기 때문에 북한처럼 조직화된 사회라면 누군지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남한에 있는 탈북 작가들끼리는 분명히 북한을 떠난 사람이거나 사망한 사람이 아닌가라고 얘기한다. 나는 이미 사망했다고 본다. <고발>에 실린 작품이 쓰인 게 20여년 전인데, 그 뒤의 작품들이 입수된 게 없다. 또 중국이나 제3국에 있다면 아직까지 한국에 오지 못했을 리가 없다.”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그러나 “생존 작가이며 관광객이 접근하기 용이한 지역에 살고 있다. 작가가 밖에 나올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미리 약속된 표시를 통해 안전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까지는 안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 문학성에 대한 평가는?


문학성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이지명 이사장은 “작품 수준만 놓고 보면 북한의 일급 작가다. 단순한 고발이 아니라 심오한 알맹이가 들어 있다”며 “외국에서도 화제성보다는 문학성에 중점을 두고 번역되고 있다”고 말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고발>의 영국 판권을 확보한 출판사 서펜트 테일 발행인 한나 웨스트랜드는 “권력 앞에서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는 솔제니친을 떠올리게 하고, 통렬한 풍자는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거장 미하일 불가코프를 연상하게 한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 문학비평가 브라이언 마이어스는 “문학적으로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솔제니친과 비교하는 건 말이 안된다”(더타임스, 2017년 2월6일)고 했다.




문학 전문가인 김종회 경희대 국문과 교수는 “기교적 측면에서는 한국 현대작가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문학의 공식적 목표가 김일성 가계의 위대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기교만으로 수준을 판단할 수는 없다. 체제를 정면으로 고발하는 저항정신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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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702172045015#csidx85904821ad7a01299ea0101931001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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