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나는 진중권이라는 사람을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통해 처음 접했다. 그의 모든 저서를 읽은 건 아니지만 그가 자신을 어떻게 정체화하는지를 보고 좀 흥미가 생겼다. 내가 이해하기로 진중권은 철학자로서, 미학자로서의 자신을 '한국의 디오게네스'로 정체화한다. 디오게네스가 견유학파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중 속에서 대중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철학적 메시지를 전했듯이 진중권은 인터넷 가상공간을 일종의 놀이공간으로 만들면서 대중과 함께 나아가고자 한다고 이해했다. 그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등의 공간을 두고 일종의 놀이공간, 즐겁고 재밌고 대중의 기발하고 창조적인 시위문화가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공간이라 주장했던 것에서 그의 미학자로서의 입장이 잘 드러난다고 본다.
나는 그가 봉건적, 파시즘적 미학과 투쟁하며 보다 나은 사회를 미학적으로 구상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고 봤기에 학위로 증명되는 학술능력이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봤다. 100권의 학술서보다도 진중권에게는 '놀이'라는 형태의 실천으로 세계를 미학화하는 게 중요할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중권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논객'에 어울리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다른 멍청한 논객들과 달리 정치에 얽매이지 않으며 세상 모든 걸 희화화 해버리는, 놀이로 만들어버리는 논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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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진중권이 조국 사태를 계기로 놀이라는 미학화를 멈추고 갑자기 '진지'해졌다. 우국충정을 논하는 애국지사로 급격하게 변모하면서 미학적으로 그가 신랄하게 조롱한 조갑제 등의 국가주의자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졌다. 입으로는 여전히 파시즘(적 미학)에 반대하는 말을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유쾌하지 않다. 세상을 미학화하지 않는다. 즐기지 않는다. 철학자이자 미학자로서의 진중권은 이미 파산했다. 저잣거리와 다름 없는 인터넷 공간에서 키배를 뜨던 한국의 디오게네스가 어느날 갑자기 대선후보를 검증하겠다며 엄숙한 판관의 의복을 입고 나서고 있다.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으나 학술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 하나 해내지 못했으며, 실천적으로도 파시즘적 미학에 대항하는데 실패하고 파산했다. 그는 실패한 인생이다. 한때 의미 있다고 보았던 한국의 지식인이 파산하는 걸 실시간으로 보는 일은 참 여러모로 안타까운 일이다. 저 머리 좋은 사람이 내가 말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앞서 통찰하지 못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알고 있으니까 괜히 더 비장해지고 쓸데없이 멍청한 짓을 더 많이 하는 것이겠지.. 이 진중권의 바보 같은 길을 같이 걷겠다고 하는 금태섭, 권경애 등이 안타깝다고 해야 하나, 원망스럽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여러모로 아쉽다. 진중권은 더 이상 재밌는 지식인이 아니다. 앞으로 언급할 일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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