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문제가 꼬인 이유 1 <잘못된 이해틀>210905
그동안 미뤄왔지만, 더이상 시간이 가기 전에, 위안부문제가 30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 볼까 한다. 소재는 위안부문제이자 정대협 문제지만, 현정권의 중추가 위안부문제에 깊이 관여해 온 만큼, 현정권의 문제를 정리해 두는 글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제는 한일관계 복원을 원하면서도 방도를 모르고 있는 듯 한 정치인들에게도 참고자료가 되기를 바라면서 쓴다.
사실 나는 앞으로 할 얘기를 지난 6월까지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 이미 대충 썼다. 신문이니 주독자는 물론 일본인이지만 주로 진보층인 마이니치 독자중엔 위안부문제를 이끌어 온 일본인 진보학자와 운동가들, 그리고 그들의 생각에 영향을 받은 재일교포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향해서 쓴 부분이기도 하다.
(저작권문제도 있어서 번역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번역문을 일부 사용하면서 최대한 간단히 정리해 보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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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잘 알려진 것처럼 위안부 문제를 한국에서 본격제기한 건 정대협의 초대공동대표였던 윤정옥 교수다. 윤교수는 또한사람의 공동대표 이효재 교수와 함께(작고 전에 문대통령이 청와대에 초청한 인사이기도 하다) 위안부 문제를 일본의 “조선민족 말살정책”으로 생각했다. 여기서 첫단추가 잘 못 꿰어졌다.
사실 윤교수는 한겨레 르뽀 연재에서 병사와 위안부간의 “인간적”관계에도 언급했으니 조선인 위안부문제를 민족말살로 이해한 건 ‘사실’에 무지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잘못된, 혹은 부족한 해석(분석)의 결과였다.
윤교수는 여성들이 임신할 수 없게 된 걸 “재생산 기능”을 말살시킨 것으로 이해했고, “견딜 수 없으면 ‘죽어라’는 식의 제도”라거나 “살아남은 사람은 버리거나 죽이거나 하는 제도”(「‘조선식민지정책’의 일환으로서의 일본군‘위안부’」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진상』 ,역사 비평사, 1997)로 이해했다.
물론 위안부 체험을 한 여성 중 많은 이들이 신체의 훼손을 경험했고 임신할 수 없었던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일 뿐 원인(목표)이 아니다. 그런데도 윤교수등 초기 관계자들은 그 자체를 식민지를 타깃으로 한 일제의 목표라고 생각했고,
이후 이들의 뒤를 이어 정대협을 맡아 유엔에서 위안부문제를 호소하는 중심 역할을 했던 정진성 교수 역시 같은 틀로 이해하게 된다. 심지어 연구가 많이 진전된 최근까지도, 정진성 교수의 제자와 그 팀 들이 내놓는 연구는 크게는 여전히 같은 이해틀 안에 있다.
분명 동남아 등지에서 패전전후에 연합군 공격을 받아 일본군조차 각자도생 방식으로 흩어지는 와중에 버려진 이들도 있었고 폭격사 당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연합군과의 전투가 맹렬했던 일부 지역에 국한된 일이다. 여러 자료들은, 자신의 의지로 귀국하지 않았거나 돌아온 이들이 훨씬 많았다는 걸 오히려 보여준다.
물론 일부니까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2] 의식/무의식을 떠나, 일부 이야기를 전체인 것처럼 일반화해 온 것이 위안부문제 주류 연구자와 운동가들이 해 온 일이라는 이야기다.
이른바 ‘강제연행’역시 마찬가지. 자신들이 만든 증언집에서조차 명백히 소수임에도 대다수 사람들 케이스인 것처럼 이들은 설명해 왔다. 최근의 연구나 전시에서도 오로지 <끌려가다, 버려지다>만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식민지란 전쟁터에서의 적과 달리 섬멸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포섭하고 이용하는 관계, 그래서 (관리자/지배자로서)쉽게 죽일 수도 있지만 ‘자원’으로서 살려야 하는 존재였다. 그것만 생각해도 이들의 이해틀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다.
위안부 문제의 불행은, 냉전 종식후 탈식민주의적 동향 속에서 나왔고 식민지의 문제로 목소리를 내면서도, 식민지와 제국의 관계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문제’ 로 제기된 데에 있었다.
*사진은 박원순 서울 시장 재임당시 서울시 지원으로 서울대 정진성 연구팀이 행한 연구 결과물. 이들의 인식이 한국사회의 위안부 인식을 만들었고, 이후 세계에서의 위안부 인식을 만들어 왔다.
20 comments
Sun Lee
역사의 인식에 감정이 이입되면 정확한 실제를 파악할수가 없는데, 저들은 감정을 넘어서 그것을 사욕으로 이용하려는 더욱 사악한 위도가 있습니다. 우리 후손에게 들려주어야 하는 역사는 실제를 보고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토대가 되어야 하는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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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Sun Lee 감정이입 자체가 나쁜 게 아닙니다. 분노를 만드는 사실이 옳은지, 얼마나 옳은지 여부가 문제지요.
‘ 처음부터 사욕을 위한 이용이었다’는 건 본문에서 제가 비판한 목적론과 똑같은 이야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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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bum Sung
교수님 말씀이
반일종족주의 식의 레토릭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독자 청자들도 그것을 염두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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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 YoonYoung
저도 위안부 팔이 선동에 속아서 소녀상 크라우드 펀딩도 참여하고 그랬는데. 그걸 제작한 작가들이 저작권 장사를 하고 심지어 지방 초등학교에 세우는 동상까지 막았다는(저작권료내지 않아서) 기사를 보고 소녀상을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정의연의 추악한 두얼굴을 알게 되면서 어린시절 할아버지나 어르신들 말을 돌이켜 보면 3.1운동 창씨개명 유관순 이야기는 들었지만 위안부 이야기를 들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어르신들이 친일파거나 무지해서 그럴 수 도 있지만, 그런 일들이 일반인들이 인지 할 정도의 흔히 자행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증거를 수집하고 손을 좀 보면 팩트가 완전히 달라 질 수도 있겠구나 라는 의심을 하게 되었죠. 이번 대선도 한일전으로 몰아가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하니 염려스러운 상황입니다. 더욱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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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Hyang Hoon
Cha YoonYoung 저도 90세의 저의 이모에게 여쭤보았으나 위안부 연행같은 건 전혀 인식하지 않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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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Lee
당장 감정적으로 힘들어도 진실을 보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공동체의 발전이 있고 후손과 미래에 희망이 생겨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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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문제가 꼬인 이유 2 <정치의 개입—북한과의 연대>210906
조선인 위안부문제가 일본과 세계에 잘 알려진 건, 일본의 이른바 ‘양심적’ 시민들과의 연대덕분이기도 하다. ‘성노예’ 라는 단어조차 처음 만든 건 일본인 변호사였고, 정대협의 유엔에서의 활동도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이루어졌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정대협관계자들은 북한과도 연대하고 교류했다. 물론 모두 냉전붕괴가 가능케 한 일이었다.
그런데 북한의 위안부문제단체는 “사실상 정부의 일부분”(정진성)이었고, 유엔에서 위안부문제를 한국단체와 함께 어필했던 일본단체 <조선인강제연행 진상조사단>도 대표들의 “국적은 북한”이었다. 즉 조총련계 사람들이었다. 이후 이들은 “긴밀하게 협력하는 관계”(신혜수)가 된다.
북한은 위안부문제가 발생한 시기에 일본과 북일국교정상화 교섭에 들어갔고, ‘배상’을 일본에 요구했다. 한국이 일본과 맺은 1965년 한일 협정에서는 미처 하지 못했던 방식--식민지지배를 ‘불법’으로 간주해 보상 아닌 배상을 받는 과거청산—을 지향했던 것.
1992년 8월, 아직 젊었던 윤미향씨가 “북한은 정치적으로 북일협상을 진행하면서 전쟁범죄 배상을 확실하게 받아내려 하고 있다. 지금은 어느 때 보다도 남과북 모두 일본으로부터 정신대 문제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배상을 받아내기에 충분한 주체적 역량이 갖추어지고 있는 때다” 라고 말하게 된 배경이자, 이후 정대협의 주장이 30년동안 변하지 않았던 이유의 ‘기원’이다.
이후, 학자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조선인 위안부문제가 식민지지배 문제임을 알면서도 위안부문제를 ‘전쟁범죄’ 로 자리매김하고, 재판에서도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점령’관계로, 조선인을 ‘교전국 국민’으로 주장하게 된다. 그건 “한일 협정을 바로 세우기”위한 것일 뿐 아니라 “북한의 대일 협상력 “(도시환)을 높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자세히는 생략하지만, 보상 아닌 ‘배상’을 받으려면 해당행위가 “불법”행위여야 한다. 동시에 한일관계가 대등한 전쟁을 한 관계, 그러니까 교전국관계라야 한다.
올 봄 판결에서 갑자기 드러난 ‘교전국’ ‘불법’’배상’논리도 그런 과정의 결과다. 물론 이미 오래된 일이라 그런 ‘기원’을 아는 이들은 극소수일 것.
냉전붕괴 이후 수십년만에 이루어진 남북연대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다.
오로지 ‘불법’이라는 틀을 유지하기 위해 크고작은 기만이 행해졌다는 사실, 국가간 처리는 무효!’라며 한일합의반대와 피해자중심주의를 외쳐 왔던 이들이 실제로는 위안부 할머니 개개인의 목소리보다 북한이라는 ‘국가’의 입장을 더 우선시해 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그동안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다.
7 comments
김 헌
아, 참 닮았습니다. 항일빨치산 유격대국가관과 상해임정독립전쟁론이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생각이듭니다.그래서, 교전국의 입장에서, 전쟁범죄 배상문제로 접근한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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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김 헌 맞아요. 그런데 그렇게 된 건 또하나의 이유가 있지요. 또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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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득
모순된 주장의 밑바닥에는
종북의 그림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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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교전국/식민지 문제는 사실 억지는 있어도 하나의 주장에 지나지 않지만,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불법’주장을 놓지 않았고 바로 그 부분 때문에( 강제다 아니다) 일본과의 관계가 엉망이 된 셈. 북일교섭이 잘 됐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2002년 평양선언에서 북한은 결국 한국방식으로 북일교섭을 하기로 했었으니 그게 성사되었다면 한일관계도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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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헌
박유하 북한의 대외관계 인식와 태도가 우리 대한민국의 외교사안과 깊이 연결되어 있군요. 반전평화, 자유주의 원칙과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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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김 헌 물론 외교 관계자들은 그런 걸 몰랐겠지요. 정대협 내부자들조차 그 구도를 명확히 인식한 사람은 극소수였을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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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헌
박유하 네, 북한의 선전논리와 이율배반적인 암울한 체제실체를 직시해야 하는데. 극단적 민족주의 선전논리를 내면화 해버린 이들이 통진당이란 주사파 정치세력이죠. 그 분들의 논리와 감각으로 우리의 외교가 휘둘린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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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comments
Dohyung Kim
재일동포 사회의 일부는 시간이 멈춰있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미 10여년전에도 과거 강력했던 총련의 모습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왜소화 일로를 걷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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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Dohyung Kim 글쿤요. 그렇기 때문에 더 위기감을 느끼고 투쟁의식을 불태우는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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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dong Kim
말씀하신 내용이 저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에 대해 실망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입니다. 덕분에 박선생님은 뜻하지 아니하게 양심과 진실의 투사(鬪士)가 되었고 가시밭길을 사서 걷는 사람이 되었다는 게 제 인식입니다. 바라건대 선생님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우리들의 마음과 정성이 모여, 사필귀정(事必歸正)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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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김성동 양심도 진실도 투사도 저와는 좀 먼 단어지만( 저로서는 그들에 대한 말걸기였지요)그래도 주신 마음과 응원, 감사히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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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dong Kim
박유하 그러게요. 전혀 의도치 아니 하였던 사태의 전개지요. 성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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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joo Yoon
재일동포 한 단어에 너무도 폭넓은 계층이 존재합니다.
국적도 한국, 일본이 섞여 있으며
극우적인 성향부터 극좌를 넘어 친북까지...
그리고 흔히 뉴커머라고도 불리우는 이민 1세대부터 어린 5세대까지..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도 대부분은 무관심이라 보이는데 정대협을 응원하는 세력의 목소리는 주변에 메아리치지만 그 상대방은 침묵적인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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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Iljoo Yoon 이미 5세대가 나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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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joo Yoon
朴 裕河 어린이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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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과거를 둘러싼 인식이 '본질적으로도' 충돌해. 잡다한 미시적 차이들말고도 너는 근본적으로 '제국'이라는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보니까. 대법원 판사들의 미루기는 그들이 역지사지를 못해서 그렇고. 무책임한 사람들이지. 냉전체제의 종식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말은 이해가 안 가는데, 나아중에 깊은 가을날 설명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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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고종석 하지만 나역시 식민지지배를 비판해 온 입장이니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구조에 집착하는데 (그게 올바른 비판이라 생각하는데) 나는 주체의 문제도 생각하는 거고(거기까지 봐야 진짜 설득적인 비판이 가능하다 생각).
냉전체제 종식 운운은, 그래, 곧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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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박유하 결정론자들은 구조에 집착하지. 그들이 다수파이기도 하고. 그걸 자기기만(mauvaise foi)라 비난하며, 주체를 또 지나치게 강조한 게 사르트르. 주체를 강조하는 이들은 대개 우파고 소수파인데, 사르트르는 극좌파인 것도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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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noranti Quem
아놔....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어 버리면 길거리에 나앉는 사람이 몇인데, 그걸 윤미향 사태를 보고야 깨달으시다니.... 순수하신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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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Ignoranti Quem 김부자씨도 그렇고 정영환도 그렇고 그 옛날에 같은 연구모임에 앉아 있던 사이예요. 그래서도 선의로 보려고 했죠. ㅠ
윤미향씨 경우는 이미 10년전브터 신뢰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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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g Lee
학자는 증거를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들이미는 사람이라 들었습니다. 여태 해 오신댜로 앞으로도 의연하게 차곡차곡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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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이명신 고맙습니다. 근데 대법원은 새로 자료를 제시하는 곳이 아니더군요. 기존 재판이 잘 됐는지 보는 곳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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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yeop Song
조국 씨를 옹호하는 사람 중에 새 기득권 아닌 사람도 많습니다. 그 점이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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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Taeyeop Song 물론 옹호자들이야 그런 문제와는 상관 없이 지지하는 거겠지요. 정권 유지가 목표일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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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yeop Song
박유하 정권유지는 아닌 것 같네요. 나쁜 정권 또 나올까봐 걱정하는…어느쪽이든 정권 덕 본 적 없는 착한 친구들입니다. 조국 씨가 그들을 속이는 것 같아 화 나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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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chäus Sük
윤종옥 교수의 회고 가운데 1973년 센다 가코오의 논픽션(나중에 픽션이라고 인정한) 종군위안부를 읽고 거기에 적힌데로 종군위안부 20만명설을 지금까지 고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윤교수도 일정시대에 중등교육을 받아서 이런 일본서적을 많이 탐독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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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석광원 센다는 8만명이라고 했어요. 아무튼 윤교수가 센다책을 읽고 자신이 갈 뻔한 정신대가 위험을 하고 착각하게 된 건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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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센다가 픽션으로 인정한 사실은 없습니다. 그건 요시다세이이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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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kyung Lee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내는 슬픔이네요. 탐욕을 내려 놓기가 목숨 버리는 것 만큼 어려운가 봅니다. 더 가지려 하고 더 지키려 하는 것들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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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이나경 이 경우는 그렇게 만도 생각할 수 없는 거 같아서 좀 서글프지요. ‘내 거’를 지키려고 나머지를 비난해 온 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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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고종석 선생 댓글에 단 내용을 좀 덧붙여 옮겨 둔다. 210908
어제 언급한 재일교포들이 내게 적대적인 이유가 여전히 강한 냉전체제적 마인드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건 분명하다.
나를 처음 비난한 이들이 ‘북한 얘기는 왜 없느냐’’ 일미동맹에 도움되는 책이다’’라고 했던 이유가 정치적 의도 전혀 없었고 북한 아닌 일본 전문가인 나로서는 오래도록 이해되지 않았는데, 그들이 일종의 소외감 혹은 위기감을 느낀 것이라는 걸 금년 들어서야 명료하게 알았다.
바로 그런 이유로 그들은 90년대 이후 떠오른 최대 과거현안인 위안부문제를 어떻게든 ‘불법’으로 인식시켜야 했고, 그래서 ‘법적책임’이어야 한다고 주장해 온 것. 다시 쓰겠지만, “20만 소녀 강제연행설’도 북한 발 인식이었다.
거기까지야 인식상의 문제는 있어도 시대적 불행의 결과로 이해가능했는데, 이들의 인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일본이 행한 ‘도덕적 책임’의 의의를 생각해 보자고 한 나를 엉뚱한 프레임을 씌워 “위안부문제 해결에 방해되는 활동을 한다”면서 고발한 나눔의집과 그들 의도에 넘어간 언론에 말을 보태 마녀사냥에 적극가담한 사실은 그들이 지식인연하는 만큼 인간적으로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조국사태와 윤미향 사태를 겪으면서 비로소 이들이 지키려 한 게 단순히 나름의 정치적 충정 뿐 아니라 개인적 이익과 그걸 기반으로 재구축한 (정치적/경제적/학문적)기득권이기도 하다는 걸 알았다.
조국 지지자들이 불리한 건 안보이고 안 들리는 척 하는(혹은 진짜로 귀를 닫다 보니 눈까지 멀게 된)것과 마찬가지 구조.
사실 대법원의 담당판사가 이나영/양현아교수등 정대협관계자와 지인인데도 유죄판결 내지 않는게 한 때 고맙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세월도 10월이면 4년이라 그 마음조차 흔들리는 중이다.
아무튼 관계자들에게는 위안부문제가 ‘불법’이어야 하는 정치적/개인적 이유가 있었다.
결국 현재 내가 놓인 상황도 단순히 과거를 둘러싼 인식의 충돌이 아니라(심지어 본질적으로는 충돌하지 않는다) 냉전체제 붕괴라는 역사적 맥락이 만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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