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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조부 이종만] 조선 일보 기자 박종인이 이종만에 대하여 기사를 쓰겠다고 하여 조금 염려되었는데, 아무 문제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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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후 그는 금광이 있는 북한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후 이종만은 북한 정부 광업부 고문이 되었고, 1977년 죽었다."라고 썼다.
- 그 말이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닌데, 중요한 정보가 빠저있다.
- 금광이 북쪽에 있어서 금광을 찾아서 북으로 간 것처럼 이해가 되게 쓰여있는데,
1] 해방 후 군정기에 남한에서 노사관계에 있어서 조선산업건설협의회 회장으로서 노동자편을 든 것과,
2] 북으로 가서 김일성이 이종만을 어떻게 맞이하였는지, 그리고
3] 북에서 왜 조국통일상을 받게 되었는지,
그런 것들이 설명이 되지 않으면 결국 왜 <가족을 두고> 북으로 갔는지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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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의 곽병찬 기자는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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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5월 말 남한 최대의 탄광이었던 삼척탄광에서 노동쟁의가 벌어졌다. 노동자 자주관리제를 좌절시키려는 미군정청과 군정 대리인 하경용에 맞선 것이었다. 요구사항은 군정의 대리인 하경용을 철회할 것, 사장을 유임시킬 것, 임금이나 인사 등 결정사항을 승인할 것 등이었다. 당시 이 회사의 사장은 바로 이종만이었다. 그는 자주관리제를 통해 ‘대동’의 정신을 구현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도전도 실패했다. 결국 약삭빠른 자들의 모략으로 쫓겨난다. 그렇다고 포기할 그가 아니다.
이종만은 1949년 월북한다. 당시 북한 정권은 새로운 대동 세상 건설을 호언하고 있었다. 그는 광업상 고문 등을 역임하며 새로운 도전을 한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대동 세상과 거리가 멀다. 노동자나 농민의 이상향도 아니었다. 31번째 도전도 실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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