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7

1943년이면 조선에는 징용이란 것 자체가 없었어요



李宇衍
1 May at 21:35 ·



나, 참. 뭐 좀 알고 말하쇼. 1943년이면 조선에는 징용이란 것 자체가 없었어요. 1944년, 빨라봐야 9월부터 징용 실시. 그러니깐 당신 할아버지는 모집이나 관알선이라는 형태로 가신거지. 그땐 누가 가라고 해도 그냥 안가면 그만이었지.

징용자체가 강제지. 강제 아닌 징용이 이 세상에 어딨어? By definition 강제지. 조선에선 영장 받고 출두 장소, 일시에 안나오면 1백엔 이하의 벌금이나 1년 이하의 징역이었지.이런 게 강제야. 지금 군대 영장처럼.

근데 왜 ''강제징용''이라고 하냐고? 조선인 근로자 모집이 시작된 1939년 9월 이후 일본에 간 모든 모든 조선인을 강제의 피해자로 만들고 싶어서지. 왜? 숫자나 시간을 뻥튀겨 일본 나쁜놈들! 이러고 싶거든. 10만 이하를 73만으로, 7개월을 72개월로, 일본놈 나쁜 놈들! 이렇게 말야.


일본에서도 이젠 그걸 알아. 전에는 ''구 징용노동자(원 징용공)''라고 하다가 11월 말 이후론 아베나 고노씨가 ''구 조선반도출신 노동자''라고 하잖아? 나중에 그런 거 문제 삼으면 쪽팔려서 어쩔려고 그러는지...

둘째, 그러면 일본에 돈 달래기도 쉬워. 지금 문제 시작은 작년 10. 30. 대법 판결인데, 그 원고들도 모두 지금 누구처럼 1943년 이전에 갔는데 강제징용으로 갔다고 주장해서 판결받아냈잖아? 월급도 못받았다고 공갈 치기도 쉽고. 참고로 군함도 같은 탄광 가면 월급이 조선에 있는 일본인 순사의 4배!

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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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young Kim 저희 할아버지 44년 징용 만주벌판에 군대로 끌려가셨었습니다. 빠지면 도망자 신세에 가족에 누가 될까해서 신혼에 장손이지만 그냥 수송열차에 몸을 실으셨습니다. 이후에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중국군 거쳐서 광복군에 편입되셨습니다. 같이 탈출한 5분 중에 귀국한 분은 3분... 그 외 같은 수많은 부대원 중 조선인들 생사 모릅니다. 일본인들 중 빽 없고 돈 없는 이들도 지원해서 같은 부대에 있었다는 점은 있지만...

또 한분 저의 외할아버지를 말씀드리자면 6.25 에도 징병은 있었고, 외할아버지는 그때 소한마리 값 내고 빠질 수 있었으나 집안 사정으로 딸과 임신(저희 어머니)한 아내 놔두고 참전해서 함흥차사 되셨습니다. (함흥에서 편지온 후 행방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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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에 있었던 일이 옳다는 건 아니지만 죽을 고생 하시고온 할아버지는 의지에 반하는 징용의 부당함과 군생활의 고단함, 그리고 일본군 내에서의 민족차별적인 발언이나 식민지백성의 억울함은 표현하셨지만, 일본에 대한 남아있는 적개심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 시절은 그런 시절이었다는 것과... 6.25 에서도 동족의 위험도 목격하고 겪으셨고 어쨌건 살아남으셔서 이후 열심히 살아 자녀들 키우고 대학 보내고 하셨다는 것이죠.

역사와 민족적 자긍심은 광복과 함께 다시 세워졌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눈부신 경제 발전도...
그러나 반복되어 이어진 일본 책임론 왈가왈부로 인해 오히려 정당성은 희박해지고 오히려 일본에 부끄러워지는 상태에 도달할 정도인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이용해먹는 정권과 정치인들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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