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8

[책과 삶]중국의 정치 격변 촉발한 경제위기, 그 고비마다 ‘향촌’이 안전판이었다 - 경향신문



[책과 삶]중국의 정치 격변 촉발한 경제위기, 그 고비마다 ‘향촌’이 안전판이었다 - 경향신문




[책과 삶]중국의 정치 격변 촉발한 경제위기, 그 고비마다 ‘향촌’이 안전판이었다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공유 더보기

입력 : 2016.07.08 20:40 수정 : 2016.07.08 20:46인쇄글자 작게글자 크게


여덟 번의 위기
원톄쥔 지음·김진공 옮김 |돌베개 | 428쪽 | 1만9500원



현대 중국 역사의 변곡점이 된 사건들을 꼽아보자. 대약진운동, 문화혁명, 마오쩌둥의 죽음과 덩샤오핑의 등장, 톈안먼 사태 등 정치적 사건이다.


하지만 중국인민대학 교수인 원톄쥔(65)은 이들 사건의 이면엔 경제 위기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마오쩌둥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힌 젊은이들의 난동 정도로 이해되는 홍위병 운동의 배경에는 청년 실업 문제가 있었다.


1960년대 미국, 소련으로부터 봉쇄당한 중국은 전쟁 위기를 느꼈고, 연해 지역의 공업화 설비를 내륙으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공업 효율이 떨어져 청년 실업이 급증했다. 마오쩌둥은 좌절한 청년 실업자와 학생을 농촌으로 내려보냈는데, 이것이 문화혁명의 시작이었다.


톈안먼 사태는 1980년대 내내 누적된 경제 모순의 영향이었다.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으로 인해 외자가 유입되면서, 중앙정부는 그때까지 중국을 지탱하던 농촌과 국유기업에서 손을 놓기 시작했다. 물가는 폭등했고, 이를 조정하려는 정책 때문에 시장은 다시 얼어붙었다. 1980년대 후반의 스태그플레이션은 톈안먼의 도화선이 됐다.


<여덟 번의 위기>는 현대 중국이 겪은 경제 위기들을 다룬다. 상술했듯이, 이러한 경제 위기는 정치적 격변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그때마다 위기를 극복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물론 이 과정에는 부작용이 있었다.


원톄쥔은 이 부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의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끌어온다. 월러스틴은 세계의 거의 모든 민족이 중심 국가의 힘에 의해 점차 세계경제 체제로 편입됐고, 주변의 과실은 중심으로 흘러들어 중심의 힘을 더 강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중국 역시 도시 공업화의 위기를 향촌에 전가했고, 그 대가로 도시의 경제 위기가 극복될 수 있었다.


이처럼 중국이 공업화를 시작해 산업자본을 확장하고 글로벌 자본화에 도달하는 과정엔 고통이 수반됐다. 원톄쥔은 “공평은 사회주의의 덕이고 정의는 자유주의의 덕이며, 죄악은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말하면서도, 경제발전 과정의 고통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원톄쥔의 별명은 ‘원삼농’이다. ‘삼농’이란 농민·농촌·농업을 뜻하는 말로, 원톄쥔이 이를 늘 강조한다 해서 붙은 별명이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발했을 때, 도시에서 일자리를 잃은 수천만명의 인민을 받아준 곳은 농민공동체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농민들의 소비 여력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원톄쥔은 금융위기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향촌 사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607082040005#csidxbbb7047bc020312830bc5fc1d3a57ad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