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5

18 김유익 "차는 모름지기 여자가 따라야 !" — Steemit



 "차는 모름지기 여자가 따라야 !" — Steemit

일간지에 올린 글... 세상 읽기 - "차는 모름지기 여자가 따라야 !"

macondo2 (31) in metoo • last year


얼마전, 며칠을 신세졌던 광저우 근교의 한 농장에서 습관대로 공복에 아침 차를 홀로 내려 마셨다. 아침부터 농장일로 바쁜 농장주의 어머니인 60대 아주머니는 내가 권하는 차를 사양하면서 혀를 찬다. 광동사람들이 어지간히 차를 좋아하는데, 아침부터 ‘차로우' (딤섬집)에 죽치고 앉아서 차를 마시며 신문을 보는 노인들도 죄다 ‘할아버지'들이란다. 어쩌다 한국 남자인 나도 그러고 있느냐는 약간 힐난조의 눈빛이라서 조금 의외였다. 홍콩을 비롯한 광동성의 노인들이 아침에 공원에서 태극권을 연마하고, 들리는 곳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딤섬집이다. 그래서 원래 딤섬집은 새벽부터 문을 열고, 점심 시간에 피크를 맞았다가, 딤섬영업을 종료한다. 태극권 연마에 참여하는 이들은 남녀 구분이 없는데, 왜 아침 차로우엔 할아버지들 뿐일까 ? 생각해 보니, 할머니들은 또, 가족을 위해 아침식사 준비하러 부엌으로 총총히 돌아가신 모양이다.

한국에서는 다른 오천만 동포들처럼 하루 꼬박 두잔씩 아침과 오후 들이키는 원두 커피가 인생의 큰 낙이었고, 그 습관을 신주단지처럼 모셔온, 수동식 커피밀과 함께 이곳 중국에서도 2년간 꼬박 지켜왔다. 그런데 ‘차’로 갈아 탄지 어느새 삼개월째다. 이젠 대신 ‘차기'를 모시면서, 매일 아침 기상하자마자 공복을, 정성스레 내리는 전통차로 달랜다. 그러니까 소위 ‘쿵푸차’.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국인 친구들에게 좋게 뒤통수를 얻어 맞고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하게 됐고, ‘중국통’이라 불리던 게 머쓱해져서, 중국 사람들을 다시 깊이 이해해보고 싶어진 탓에, 그들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차를 제대로 공부해보기로 한 결과이다.

그런데 늘 궁금했던 것은, 남녀노소 불구하고, 중국인이라면 유전자에 새겨진 듯이, 사랑하는 그 차 수업에 왜 여자들만 참가하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참여한 클라스도, 그리고 그 전의 클라스도, 모두 8:2의 비율로 여성 수강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어차피 퇴근 후 시간이었기 때문에, 참여한 여성중에 전업주부는 한명도 없었고, 모두 직장인인데도. 그러고 보니, 전통찻집에서 멋진 전통 의상을 입고, 단정하게 차를 내려주던 이들은 모두 여성들이었고, 집을 방문하면 차를 대접하는 이들은 또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중국 친구들에게 집요하게 물었더니, 결국 솔직히 대답해준다. 마치 한국의 아재들이 여자가 따라주는 술이 맛있다고 하는 것처럼, 친구간의 차담교류가 아닌, 서비스업으로서의 차따르기는 남자가 할 일이 아니고, 여자들의 임무가 됐단다. 그러다 보니 일정한 형식을 갖춘 차수업은 알게 모르게 남자들의 기피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역시 그렇군."

중국에서 제법 헷갈리는 것중의 하나가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이다. 십수년전, 베이징에서 일할 때, 중국인 부하직원이 자신은 저녁에 집에 가서 아이를 봐야 하기 때문에, 절대 야근을 못하니, 일거리가 있으면 차라리 집에 가서 하겠다고 주장하기에, 부인도 일하냐고 물었더니, 전업주부란다. 요는 하루 종일 부인이 아이를 돌봤으니, 저녁만이라도 자기 순번이 돼야 한다는 애기를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 역시 여권 측면에서 중국은 아시아의 선진국. 실제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여성이 적기로 소문난 업계였는데도, 중국인 동료중엔 여성이 유독 많았고, 또 대부분의 여성 동료들보다 남성 동료들이 요리를 포함한 집안일에 능하다고 자랑을 늘어 놓는 것이 조금 지나니 매우 익숙해졌다. “너희 한국남자들은 모두 마초라며 {大男子主义 따난즈쥬이)"라는 그들의 놀림에 부정도 못하고.

그런데, 십여년만에 다시 돌아온 중국에서는 좀더 밀착된 현지인들과의 생활속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했다. 특히, 도시와 달리 농촌의 가부장제, 그 중에서도 북쪽 사람들의 남존여비 태도는 타임머신을 타고 달나라로 날라가는 수준이었다. 또, 낯선 젊은 남녀를 부를 때, 미남총각 (솨이꺼), 미녀아가씨 (메이뉘), 몸이 좀 되는 이들은 어김없이 뚱보 (팡즈)라고 스스럼 없이 부르는 그들의 외모 감수성에, 나름 페미니즘 그룹에서 알게 모르게 훈련을 받은 나는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이것은 실화?” 얼마전, 한 중국인 페미니스트 활동가의 영문 인터뷰 기사를 찾아 읽고 드디어 해답을 찾았다. “마오쩌뚱은 중국역사상 여권신장에 최대의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그는 하루 아침에, 전족을 없애고, 여성들이 가정을 벗어나, 일터에 참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페미니즘 의식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고, 공산주의 혁명의 부산물로서 얻어진 결과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갈수록 공산주의를 대체하며 전통가치를 강조하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 또, 인구노령화 등, 사회복지 문제를 가정이 더 많이 부담하고, 특히 여성에게 더 많은 돌봄노동의 책임을 지우는 풍조가 뚜렷해짐에 따라 여성의 사회 참여가 퇴조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탈공업화로 연안지역 공장의 노동인력 수요가 줄면서,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해고되는 것도, 이런 흐름에 일조합니다.”
중국은 실용적인 측면에서 가정과 직장에서의 상당한 남녀 평등을 이뤘지만, 근본적인 의식 측면에서는 한국보다도 낙후되어있는 것이 현실이다. 언론과 정치적 참여의 자유에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확실히 생활진보와 의식진보는 괴리를 보인다. 생활진보도 중요하지만, 의식이 뒤떨어지면 제도와 안정된 규범이 형성될 수 없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쉽게 퇴보를 경험하게 된다. 두 사회가 서로 배우고 성장하며, 우리에겐 더 많은 생활진보가, 중국에겐 더 많은 의식진보가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블로그에는 원문을 올리고 신문에 나간 글은 (약간의 수정 ㅎㅎ) 링크를 공유합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4433.html

인연이란 참.... 한겨레의 신윤동욱 기자를 알게 된 것은, 2006년 베이징에 있을 때였다.
한겨레21을 즐겨 읽었는데, '피터팬 신드롬'에 대한 그의 글을 읽고 무릎을 쳤다. 그리고, 팬이 되었다.
팬심에 메일을 써보냈는데, 답장을 보내줬고, 귀국한 후에 몇번 같이 식사를 하게 됐다.
마침 공통의 친구가 있어서 (당시 한겨레 21에 필자로 참가했던 방송국에 다니는 PD 친구) 얘기 하기도 쉬웠고...
이후에 다시 한국을 떠나 싱가폴에서 일할 때, 그의 기사의 소재가 된 적도 있고 ("남쪽으로 튀어" ㅎㅎ), 토쿄에서 컨설팅 업계를 떠난 이후, 하자센터에서 일하면서, 역시 공통 지인들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하자센터에 다닐 때는, 집이 공덕동이어서 한겨레 신문사가 코앞이었고, 몇번 밥을 얻어 먹기도 했는데, 신성각을 알려줘서 그 후에 단골이 되었다. 뭐 그 때는, 집앞 카페나 식당에서 한겨레 기자들을 자주 마주치다 보니, 이상하게 한겨레 신문사 기자들이 다 친구 같았다ㅎㅎ. 지금도 가끔 연락하는 단골 커피집은 역시 한겨레 기자들이 단골이라서, 주인장이란 한겨레 신문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했다.

신윤은 하자를 그만 두고 내가 다시 중국에 온 것도 알고 있었고, 혹간 연락을 하곤 했는데, 얼마전 갑자기 연락이 와서, 혹시 칼럼을 써 볼 생각이 있냐고 물어 봤다. 이게 왠 떡이냐 싶어서, 무조건 오케이 ㅎㅎ.

내가 가진 특이한 경험을 좀 공유해 달라고 했는데, 다만 시의성이나 한국사회와 연관이 있어야 한다고 하기에, 미투 운동을 떠올렸다.
미투 운동은, En선생의 여자가 술을 따라야 한다는 일화에서 발화되어 (최영미 시인의 첫 고발) 딱 그때쯤 이글을 생각했는데....

불과 몇주만에 겉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지면서, 이 글은 그야말로 한가한 차담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블로그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억지로 짜낸 글이 아니라, 내 생활에서 느낀 것, 내가 정말로 궁금했던 것에 대한 진실한 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현실이 초현실적인 한국적 상황에서, 그리고 한국의 날카로운 젊은 지성이나 원숙한 지혜가 모이는 이런 곳에 그야말로 '졸고'를 내고, 창피해서 죽을 것 같다.

차마 페북에서 공유도 못하겠더라 ㅎㅎ.

그래서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는, 여기서 주저리 주저리 뒷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이거 몇번 더 쓰고 잘리는 것 아닌가, 싶긴 한데 (한달에 한번 5~6번 정도 쓸 수 있게 해준다고 했지만 ㅎㅎ) 그래도, 모든 인연에 정말로 감사드린다. 신윤기자님, 조한혜정 선생님, 그리고 중국에서의 많은 인연들....

그나저나 다음엔 정말 아재 감수성을 벗어나, 나만이 겪은, 생활인들의 일상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들을 들어서, 자극적으로 써야 할 까 ? ㅎㅎㅎ. 그런 게 뭐 있기는 한가 싶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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