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3

다케우치 요시미 다시 읽게 하는 아베의 일본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다케우치 요시미 다시 읽게 하는 아베의 일본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다케우치 요시미 다시 읽게 하는 아베의 일본
등록 :2017-02-09

일본 이데올로기
다케우치 요시미 지음, 윤여일 옮김/돌베개·1만8000원


평생 루쉰을 천착했던 일본의 중국문학 연구자요 문예평론가 다케우치 요시미(1910~77)의 <일본 이데올로기> 초판이 나온 것은 1952년. 그해 4월 말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됐는데, 일본은 그때 비로소 패전 뒤 이어진 약 7년간의 미국 점령군 통치에서 ‘해방’된 ‘독립국’이 됐다. 그런데 그때 출간된 <일본 이데올로기>는 그 해방과 독립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왜 가짜인가? 주로 1950~52년에 쓴 글들을 엮은 이 책은 그 주제를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시종일관 노예·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 진짜 해방과 독립을 이루는 방법, 진정한 주인·주체로 서는 방법을 고민한다.

해제를 쓴 마루카와 데쓰시 메이지대 교수에 따르면, <일본 이데올로기>는 1935년에 출간된 도사카 준의 <일본 이데올로기론>을 의식하고 썼다. 1945년 8월에 옥사한 도사카는 만주침략 뒤 야만으로 치닫던 1930년대 일본에 만연한 ‘일본주의’와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유물론 도입을 시도했고, 그때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를 염두에 뒀을 것이라고 마루카와 교수는 썼다. 다케우치는 <일본 이데올로기> 초판 서문에서 “일본 이데올로기는 형태를 바꿔 실제로 부활하고 있다”며 ‘내재하는 일본 이데올로기로부터 탈각’하기 위해 이 책을 냈다고 밝혔다.

일본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옮긴이가 따로 인용한 ‘굴욕의 사건’이란 글에서 다케우치는 ‘8·15패전’은 전쟁에 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패전의 자세, 정신 상태 때문에 굴욕적이었다고 썼다. 일본인들은 잠시 통곡했으나 금방 언제 그런 일 있었느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갔다. 전쟁으로 치달았을 때도 파시스트 체제에 대해 제대로 저항 한 번 없이 따라갔다. 그 노예성, 식민지성에서 굴욕을 느낀 것이다. 그 핵심에 천황제, 천황주의가 들어앉아 있었다. 일본 이데올로기는, 성공함으로써 오히려 실패한 메이지 유신 이래 천황제가 양육한 일본 인텔리, 기생성과 식민지성과 노예성을 특성으로 지닌 그들 인텔리가 양산해내고 대중을 감염시킨 생각과 사고와 언술, 즉 사상이다. 패전 뒤 미국은 그것을 억제하려다가 중국 공산화와 한국전쟁 뒤 일본을 냉전 기지로 만들기 위한 ‘역코스’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오히려 그것을 온존시키고 부추겼다. 다케우치가 고민한 것은 내부의 천황제와 외부의 미국이 합작한 보수반동적 현실과 그것을 치장하고 있는 정신 상태의 극복이었다. 그런 면에서 다케우치에겐 신해혁명이야말로 실패함으로써 중국인들이 처절한 절망을 뚫고 스스로 일어서게 만든 진짜 성공한 혁명이었다.

1930년대 일본의 위기에 유물론으로 맞서려던 도사카를 의식한 다케우치의 <일본 이데올로기>는, 패전 뒤의 일본이 미 점령군 통치하에서 민주주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내실은 전혀 바뀌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사실상 들러리 내지 끼워팔기로 만든 미일 안보조약(미일 군사동맹)이 상징하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고 있던 현실에 맞서려던 지적 시도였다. 아베 신조 총리가 상징제 천황을 통치력을 지닌 명실상부한 국가원수로 다시 앉히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21세기 일본 상황은 70년 전보다 더 열악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도 <일본 이데올로기>는 충분히 읽어볼 만한 현재적 가치를 지녔다.

그런데 다케우치의 의식 속에 조선(한반도)과 그 식민지적 참상, 저항, 그것을 초래한 일본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대로 발견되지 않는 것은 기이하다. 이 역시 일본 이데올로기 탓인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82073.html#csidx0661e697577d721a72ea144b53488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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