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8

기생이 위안부 원류? 이영훈 전 교수는 춘향전을 거꾸로 읽었다 : 인권·복지 : 사회 : 뉴스 : 한겨레모바일

기생이 위안부 원류? 이영훈 전 교수는 춘향전을 거꾸로 읽었다 : 인권·복지 : 사회 : 뉴스 : 한겨레모바일

교수가 거론한 사례들은 기생제의 아주 특수한 면모를 제외하면 현실에서 발생한
불법일 따름이지 제도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줄곧 제도로서의 기생을 논했다.
성을 둘러싼 폭력과 위선의 현실을 평가하려면 시야를 훨씬 넓혀야 한다. 크리스트
교가 지배하던 서유럽 세계, 근대를 이루었다고 하는 자본주의 초기에 횡행하던 성
폭력과 위선은 어떠했던가. 우리가 목도하는 오늘날의 사정은 또 어떤가. 그런데도
이 교수는 제도가 아닌 현실의 불법을 기생제라고 잘못 설명하고, 세계사의 다양하
고 처참한 현실은 돌아보지 않은 채 조선시대의 위선만이 인간사회의 기이한 일인
것처럼 과장하였다.
사회
8/28/2019 기생이 위안부 원류? 이영훈 전 교수는 춘향전을 거꾸로 읽었다 : 인권·복지 : 사회 : 뉴스 : 한겨레모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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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기림일(8월14일)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 앞마당에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김학순(1924~1997) 할머니와
피해 할머니 열한분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광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춘향전’의 저항성엔 눈길도 안 줘
이 교수는 <춘향전>을 설명하면서 조선시대 기생제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했다. 위
의 오류들이 자연스럽게 거기 모였다. 이 교수는 춘향의 꿈은 기생제 폐지가 아니라
첩이라도 좋으니 서울 사는 양반이 되는 것이며, 기생제는 서민 대중의 생활문화에
서도 오히려 내면의 가치로서 집요하게 추구되었다고 평했다. 그는 춘향전을 소설
이 아니라 정치 팸플릿 분석하듯 독해했다는 점에서 자신이 비판하는 선행 연구와
동일한 오류에 빠졌다. 통속소설이자 대중소설인 춘향전에서 기생제 폐지와 같은
사회 개혁을 직접 찾는 것은 무리다. 춘향전은 지금도 문학은 물론 음악, 발레에 이
르기까지 여러 형식으로 재창작되고 있다. 이 교수의 논리대로라면 오늘날 사람들
도 조선시대 기생제를 내면적 가치로 추구한다고 할 것인가.
설령 춘향전을 정치 선언문으로 읽는다고 해도 이 교수의 평가는 잘못되었다. 춘향
전의 작자와 독자들에게 춘향에 대한 사또의 수청 강요는 명백한 불법이었다. 춘향
은 부당한 권력에 항거했으며, 그것이 법적으로 정당했고 국가의 표창을 받았다. 춘
향전의 논리적 결말은 이 교수가 주장하듯 기생제 추구가 아니라, 사또가 기생 춘향
의 성을 유린할 수 없다는 법질서의 재천명이다.
그러나 춘향전의 의미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소설 춘향전이 독자들에게 펼쳐 보
이는 사회적 메시지는 논리나 이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춘향을 비롯한 등장인물들
의 삶의 현장이었다. 춘향은 사회 최하층 나이 어린 여자의 몸으로 남원 고을 관아
마당에서 최고 권력자에게 정면으로 맞섰다. 인격 모독을 감내하지 않고, 협박과 회
유에 굴하지 않고, 한마디 말도 밀리지 않고, 유혈이 낭자하고 생명이 가물거리는 가
운데 사납고 거칠게 저항했다. 작품 속 남원 민중과 독자들은 그런 춘향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춘향전에서는 논리가 아닌 그 장면 자체가 조선 체제의 종말을 고했
다. 그 처절하고도 찬란한 저항의 현장에 이 교수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춘
향전을 잘못 읽었다.
이영훈 교수는 최근 연구들만 성실히 검토했어도 위와 같은 오류를 피할 수 있었다.
그 주장의 실증성은 신뢰하기 힘들며 그에게서 두드러지는 것은 한국 역사에 대한
학문적 비판이 아닌 혐오다. 그 오류와 혐오가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다. 해방 후
기지촌의 참혹함이란, 그지없이 충성스러운 일본군 장교로서 해방을 맞이했던 인물,


민주주의를 말살하려 한 인물들이 대통령으로 통치하던 사회에서, 친일파와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가운데 벌어진, 일본군에게서 보고 배운 식민지 경험의 업보
였다. 이 교수가 그 참혹함을 되뇌며 그것이 군 위안부를 공권력으로 보호한 일본과
달랐기 때문이라고 역설하는 대목에 이르러, 이영훈 교수가 군 위안부제의 역사적
원류가 조선시대 기생제였다고 주장하는 대목에 이르러, 필자는 학문에 대한 회의
를 피할 길 없다.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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