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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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데올로기 동아시아 라이브러리 
다케우치 요시미 (지은이),윤여일 (옮긴이)돌베개2017-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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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원 (도서구입비 소득공제 대상 및 조건 충족 시)

384쪽
152*223mm (A5신)
667g

책소개
전후 일본의 지식계에는 전쟁과 총력전 체제가 끝났다는 해방감 속에서 여러 새로운 이론과 가치가 유입되어 과거에 대한 해답처럼, 미래를 향한 지표처럼 기능했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그런 가운데서 아무리 온갖 이론으로 덧칠된들 온존해 있는 일본적 노예구조를 직시하고, 그리하여 진정 ‘독립’한 일본 사회로 나아가고자 했다. 평론가 다케우치 요시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책이다.

1952년의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 이데올로기』의 서문에서 자신의 사상이야말로 이전의 도사카 등이 하려 했던 이데올로기 비판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운을 띄우며, 내재하는 일본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탈각을 기도하고자 『일본 이데올로기』를 세상에 내놓는다고 밝힌다. 즉 다케우치는 도사카 준이 일찍이 지적했던 문제적 일본 이데올로기가 “형태를 바꾸어 실제로 부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케우치 요시미가 갈구한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사상’이었다. 그가 말하는 사상이란 ‘생활로부터 나와, 생활을 넘어선 곳에서 독립성을 유지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일본에 아직 싹트지 않은 사상만이, 혹은 아직 생활에 매개되지 않은 따옴표 친(외래의) 사상만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과연 노예구조의 지배로부터도 독립해야 할 새 일본의 진정한 사상이란 어떤 형태와 방법으로 가능한지 고민했다.


목차



지도자 의식에 대하여
일본공산당 비판 1
일본공산당 비판 2
40주년의 일본공산당
노동조합과 관료주의
정치와 지식인


인텔리와 민중의 관계
일본의 민중
리더십
군대교육에 대하여
인간·예술·교육
교사에 대하여


나라의 독립과 이상
위기와 통일
오키나와에서 부락까지
민주인가 독재인가
네 가지 제안
자위와 평화
1970년은 목표인가


근대주의와 민족 문제
국민문학의 문제점
생활과 문학
문학에서 독립이란 무엇인가
권력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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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7년 2월 9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다케우치 요시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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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중국문학 연구자. 1910년 나가노현에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지나철학지나문학과를 졸업했다. 1934년 ‘중국문학연구회’를 결성하고, 기관지 『중국문학월보』를 창간했다. 1937년부터 2년간 베이징에서 유학했으며, 1943년에는 육군에 소집되어 중국에서 패전을 맞이했다. 전후에는 도쿄도립대학 인문학부 교수가 되었으며 1960년 안보조약 반대운동 중에 국회의 조약체결 강행에 항의해 사직했다. 1954년에는 ‘루쉰의벗모임’을 창립하고 그 기관지를 발간했고 1963년부터는 ‘중국의모임’을 조직해 잡지 『중국』을 110호까지 발행했다. 1977년 『루쉰 문집』 번역에 매진하던 중 암으로 사망했다.
저서로는 『루쉰』, 『현대중국론』, 『일본과 아시아』, 『불복종의 유산』 등이 있으며, 1982년 『다케우치 요시미 전집』(17권)이 간행되었다. 역서로는 『루쉰 평론집』, 『루쉰 작품집』, 『루쉰 문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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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일본 이데올로기>,<루쉰 잡기>,<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2: 내재하는 아시아> … 총 23종 (모두보기)

윤여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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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십 년간 수유너머의 일원이었다. 중국사회과학원 방문학자로 베이징에서, 도시샤대학 객원연구원으로 교토에서 체류했으며, 현재 제주대학교 학술연구교수로 제주에서 지내고 있다. 2019년 1월 동료들과 연구자공방 천막을 세우며 천막촌 사람들이 되었다. 『사상의 원점』 『사상의 번역』 『동아시아 담론』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상황적 사고』 『여행의 사고』(하나·둘·셋)를 쓰고, 대담집 『사상을 잇다』를 펴냈다.


최근작 : <광장이 되는 시간>,<제주의 마을과 공동자원>,<공동자원론, 오늘의 한국사회를 묻다> … 총 33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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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처칠, 끝없는 투쟁>,<책임에 대하여>,<좋아하는 건 의자입니다>등 총 577종
대표분야 : 역사 4위 (브랜드 지수 584,537점), 음악이야기 5위 (브랜드 지수 19,826점), 한국사회비평/칼럼 8위 (브랜드 지수 49,397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루쉰 1세대 연구자 다케우치 요시미의 평론가적 면모

『일본 이데올로기』는 루쉰 연구 1세대로도 저명한 중국문학자 다케우치 요시미의 평론가로서의 면모를 깊고도 짙게 음미할 수 있는 책이다. 그는 ‘정신적 모험’에 게으르지 않았고, 그럼으로써 전통 형성의 매개가 되고자 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평론가였다. 그의 평론들은 흔히 접하는 시평과는 호흡과 시간성이 다르다. 당면한 현실 문제에 대한 처방전을 내려 하기보다는 현실을 안고 가는 역사의 유동성에 대한 고도의 감수성을 담고 있다.
마치 루쉰이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그러했던 것처럼, 다케우치 요시미는 당대 일본을 예민하게 관찰하고 신랄한 촌철살인을 마다않는 비평가였다. 또 제대로 된 미래를 건설하는 데 작용하기 위해서라면 치열하게 가설을 세우고 부수기를 주저하지 않는 평론가였다. 과거에 유용했던 가치라 해서 곧바로 도그마로 삼지도 않았고, 틀린 것으로 판명 난 이론이라 해도 존재를 지우는 대신 더 나은 다음 가설을 위한 요소로 삼았다. “어설프게 이기느니 잘 지는 것이 낫다”는 자신의 말대로 그가 내놓았던 전망들은 시간과 사건에 노출되어 때로는 깨져 나갔지만 그렇게 다듬어지면서 특유의 역사성을 띠게 된다.
다케우치가 평론가로서 가장 정력적으로 활동한 시기는 1950년대부터 1960년을 전후로 한 안보투쟁기였다. 그는 이 시기를 일본 국가의 진정한 자주와 독립을 실현할 수 있는 동시에 안으로는 민주의 회복(노예구조로부터의 탈각)이라는 사상사적 의의를 갖출 기회라 보았기에 상황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논평하는 글을 썼다. 당시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현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정권으로 상징되던 일본인 일상감각 깊숙한 곳의 노예근성을 향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의 글 곳곳에는 자신이 속한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그 비판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자신의 사회와 함께 무너지겠다는 절박함이 배어 있다.
현실이라는 진흙탕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지기보다는 두려움 없이 그 속에서 함께 구르고 싸웠던 다케우치는 그런 점에서 니체적이라기보다 루쉰적이라고 할 만한 지식인이었다. 안보투쟁이 사실상 실패하고 일본 사회가 본격적인 고도성장경제 노선으로 접어들던 무렵인 1965년, 그는 평론가 폐업을 선언한다. 현실 속에서의 되먹여짐 없이는 자신의 논평 활동이 의미를 잃었다고 판단한 자기봉인인 셈이었다. 즉 이 책에 실린 글들은 1950년대부터 20여 년간, 다케우치 요시미가 품었던 일본 사회에 대한 치열한 애정이 가장 빛나고 살아 움직이던 시절의 자취다. 좌절의 기록이었다고까지 할 만한 그 사상 역정의 가장 뜨거운 글들이라 할 수 있다.


왜 ‘일본 이데올로기’인가, 일본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일본의 진보주의자들은 진보를 믿는다. 그러나 그 진보란 관념이지 유럽의 진보가 아니며 루쉰이 말하는 ‘인류의 진보’도 아니다. 루쉰의 진보는 절망을 매개로 하지만, 일본의 진보는 그림자가 없는 관념이다. (중략) 진보주의는 일본 이데올로기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지 싶은데, 그것은 부정의 계기를 머금지 않은 진보주의, 즉 노예적 일본 문화의 구조에 올라타고는 안심하는 진보주의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일본 이데올로기』. 이 책의 제목은 일본 전전의 철학자 도사카 준(戶坂 潤)이 내놓았던 『일본 이데올로기론』을, 또 무엇보다도 유물론 철학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명저 『독일 이데올로기』를 떠올리게 하며, 그 정신과도 닿아 있다.
1845년에 지어진 『독일 이데올로기』는 그 당시 유럽의 관념론이나 인간학적 유물론에 토대를 둔 사회 철학이나 역사관을 비판하면서 사회와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이해의 철학적 기초를 세운 저작이었다. 1935년 『일본 이데올로기론』를 집필한 도사카 준은 그러한 유물론으로써 일본주의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 인해 지적 곤란을 보이고 있던 전전 일본의 지식 상황과 정치 전반의 ‘위기’에 맞서려 했었다.
1952년의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 이데올로기』의 서문에서 자신의 사상이야말로 이전의 도사카 등이 하려 했던 이데올로기 비판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운을 띄우며, 내재하는 일본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탈각을 기도하고자 『일본 이데올로기』를 세상에 내놓는다고 밝힌다. 즉 다케우치는 도사카 준이 일찍이 지적했던 문제적 일본 이데올로기가 “형태를 바꾸어 실제로 부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케우치 요시미가 갈구한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사상’이었다. 그가 말하는 사상이란 ‘생활로부터 나와, 생활을 넘어선 곳에서 독립성을 유지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일본에 아직 싹트지 않은 사상만이, 혹은 아직 생활에 매개되지 않은 따옴표 친(외래의) 사상만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과연 노예구조의 지배로부터도 독립해야 할 새 일본의 진정한 사상이란 어떤 형태와 방법으로 가능한지 고민했다.


일본 인텔리와 공산당을 항한 날카로운 비판의식

1950년대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한국전쟁 등 커다란 사건을 겪어 나가며 다케우치 요시미가 줄곧 ‘이데올로기’를 문제로 삼았던 것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상을 만들어 내는, 즉 이데올로기 형성과 관계하는 지식인의 주체성을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지적 권위의 대상을 중화에서 유럽으로 옮겨 놓았을 뿐인 일본 지식인의 ‘기식성’, ‘식민지성’, ‘노예성’ 극복이 그에게는 일본 인텔리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문제였고 사명이었다.
그리하여 다케우치는 전후 일본의 인텔리들, 또 당시 그중 많은 수를 흡수했던 ‘지식인 그룹’으로서의 공산당을 대상으로 가차 없는 쓴소리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정신적 태도의 힘과 문장의 글맛 또한 이러한 가운데서 뿜어져 나온다.
다케우치가 공산당을 비판한 이유는 「일본공산당 비판 1」의 첫 문장 “일본공산당에 대한 나의 불만을 파고들면 결국 일본공산당이 일본의 혁명을 주제로 삼지 않는다는 데 이르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는 말에서 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다. 소련?중국 공산당이 가진 권위에의 맹종을 두고 나온 이 언설은 결국 반권위주의이자 근대주의 비판이기도 했다. 쑨원이 정의한 ‘근대주의’에 따라 그는 자주적으로 자기 사회를 해부하고 개혁하려는 의지가 감퇴해 결과적으로 주체성을 상실하고 개혁의 악순환에 빠지고 마는 일본 인텔리의 상황에 절대로 눈감지 않았다.

“차리즘과 천황제의 전통, 이 전통을 파괴하는 힘을 내부로부터 만들어 내는 것, 뒤집어 말하자면 이단을 배제하지 않는 적극적 정통성을 만들어 내기를 나는 일본의 공산주의자에게 바란다. 그게 가능하지 않다면 일공은 영영 소수당에 머무를 것이다. (중략) 공산당이 합법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원내 활동은 차치하고, 진지하고 선의를 가진 민중의 터전으로서도 집결소로서도 공산당은 없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 정도로 괜찮은지가 문제다. 합법성을 정치적 무력함과 맞바꿔도 좋은가. 나는 일본공산당의 창립 40주년을 축하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남몰래 건배라도 하고 싶을 정도다. 다만 한편에서는 ‘40년 따위 똥이나 처먹어라’ 하는 공산주의자도 있었으면 좋겠다. 역사는 끊임없이 현재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동향에는 민감하나 생활세계로부터의 요구에는 둔감하며 스스로 고심해 만들어 내기보다 만들어진 것을 들여오는 지름길만을 찾는, 근대적 인텔리의 생성을 둘러싼 문제는 한국을 포함한 수많은 지역과 국가사회에서 어느 시기엔가는 겪게 되는 공통의 현상일지 모른다. 아시아 내부의 ‘냉전’을 통한 각축 상황의 극복, 공통된 희망이어야 할 ‘평화에의 지향’, 다케우치 요시미의 작업은 그것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가 던진 물음은 지금도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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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우치 요시미의 주요저작이 하나둘 번역될 모양이다. 선집도 좋지만, 역시 주저의 온전한 번역은 반가운 소식이 아니던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나 <번역의 사상>에서 짜깁기를 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웠는데. 요건 그냥 넋두리고, 주목할 연구자의 번역이라 마음 든든하다! 윤여일, 아자!
우주굴리는지구인 2017-02-09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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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위험함‘, 혹은 ‘고립무원‘의 사상에 대하여..

다케우치 요시미의 <일본 이데올로기>가 번역 출간되었다..

이런 시대에 다케우치에 대한 글을 계속해서 번역해내고 있는 역자에게 우선 경의를 표한다.. 과연 어느 정도의 독자들이 다케우치의 글에 내재하는 아포리아를 읽어내는데 그 바쁜 시간을 할애하려 할까.. 분명히 다케우치의 글은 그다지 '친절한' 글이 아니다.. 더구나 전후 일본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그의 글은 왜곡될 소지도 다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글은 그의 맹우였던 마루야마 마사오가 도달한 정도의 '보편성'을 획득해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사상'이라는 영위에서 다케우치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가 있다..

만약 다케우치 요시미에 대한 글을 쓰게 된다면, 첫 문장을 이렇게 쓰고 싶었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다루기 힘든 사상가이자, '위험한' 사상가이다..

-여기서 '위험한'이라는 형용사는 물론 다케우치 자신이 오카쿠라 텐신이라는 근대 일본의 사상가를 논하는 글의 첫문장에서 텐신을 평하면서 썼던 형용사이기도 하다. 물론 이 형용사가 다케우치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헌사일지도 모르겠다-

그 '위험함'은 바로 그가 '일본 낭만파', '아시아주의', '근대초극론' 등 전후 일본이 팽개쳐놓은 금단의 영역 내부에서 사고했던 사상가라는 데서 나온다..

"'사이비 문명'을 허위화해 가는 작용은 사이비 문명의 내부에 있는 자만이 담당할 수 있으며, 밖에서 힘을 빌려와서는 할 수 없다"는 감각은 일본에서든, 한국에서든 찾기 힘든 다케우치 특유의 독특한 자리이다..



예를 들어 전후 일본에서 파시즘의 한 갈래(公娼)로 비판받는 일본 낭만파에 대해, 다케우치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전후에 출현한 문학평론들이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 일본 낭만파를 불문에 붙이고 있는 양상은, 특히 일본 낭만파에 관계가 있었던 사람들까지 알리바이 제출에 바쁜 양상은 조금 기묘한 일이다."라는 감상을 피력하면서 "비판대상의 발생근거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비판"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근대 초극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1942년에 열린 몇 차례의 좌담회에서 유래한 이 논의는 전후 일본에서 <대동아전쟁>의 악명높은 이데올로기이자 주술로 간주되곤 했다. 물론 근대의 촉극 좌담회는 분명 1942년이라는 시점에서 보더라도 시대착오적이고, 또 그다지 깊이 있는 논의도 이루어지지 않는 다소 '허술한' 논의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다케우치는 전후에도 이 논의가 다시 소환되고 회고되는 상황을 주시하면서 "사상으로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묻혀 있는 기억이 아직 살아남아 곳곳에서 원한과 회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각은 이 책 <일본 이데올로기> 역시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



민중은 바보라서 도조(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총리이자, A급 전범)에게 속았고, 내버려두면 또 속을테니 "정말이지 위험"하다고 마쓰모토는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과연 민중은 도조에게 속을 만큼 바보였다. 그러나 속은 덕분에, 도조를 대신한 '민주주의' 지도자를 함부로 믿지 않을 만큼은 바보가 아니게 되었다. 또 속는 게 아닐지를 의심할만큼 영리해졌다. 그렇게 영리해진 게 지도자의 눈에는 반대로 "도조의 재탕"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속는 데 넌더리가 나서 의심하고 있는데, 이제는 그렇게 의심하는게 나쁘다며 바보 취급하니 민중은 속상하다. 결국 지도자라는 건 모두 못됐다고 여길 것이다. 나는 그리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민중의 진정한 각성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민중이 지도자들만큼 도조를 무조건 신봉한 것은 아니다. 민중의 비협력은 도조조차 알고 있었다. 그 저항이 성장해 오늘의 '민주주의'를 불신하게 되었는데, 그 저항의 계기를 붙들지 않고 도조에게 굴복한 권위주의의 면만을 바라보고서 '민주주의'를 위에서 내리 눌러 저항을 뭉개려 한다면 도조의 실패를 반복할 뿐이다..



확실히 이런 문체로는 보편성을 획득하기 힘들다.. 아니 문체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런 위치 감각은 전후 일본에서든, 아니면 한국에서는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아마 어느 '진영'에서든 제대로 이해받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사상이라는 '영위' 자체가 원래 그렇게 고독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감각은 결코 정치가가 가끔씩 침바르듯 말하는 '선의'와 같은 그런 수준의 깊이가 아니다..

다케우치의 아포리아가 아포리아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우리가 저 머나먼 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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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스뜨 2017-03-0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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