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3

반일 종족주의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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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

최근 수정 시각: 
반일 종족주의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파일:반일 종족주의.jpg
장르
정치/외교[1]
역사, 한국사[2]
작가
이영훈김낙년, 김용삼
주익종, 정안기, 이우연
출판사
미래사
발매일
쪽수
413쪽
ISBN
9788970873268

1. 개요2. 출판사 소개3. 공동 저자 소개4. 베스트셀러 등극5. 평가
5.1. 호평5.2. 논란
5.2.1. 식민지 근대화론5.2.2. 독도의 역사적 영유권에 대한 논란5.2.3. 일본 우익단체의 저자 지원 논란
5.3. 비판
5.3.1. 박근혜 탄핵 여성혐오설5.3.2. 저자들의 비전공 분야에 대한 미숙함5.3.3. 일부 저자들의 정치적 주장5.3.4. 확증편향적 통계 인용5.3.5. 이승만의 과격 반일성향 문제 회피5.3.6. 육군특별지원병 모집 과정에서의 강제성 서술 부재5.3.7. 과거사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
6. 반응
6.1. 긍정적 반응
6.1.1. 정치인6.1.2. 언론인
6.2. 부정적 반응
6.2.1. 학계6.2.2. 정치인6.2.3. 언론인

1. 개요[편집]

2019년 7월 10일 미래사에서 출판한 역사학 서적. 이영훈, 김낙년, 주익종 등과 같은 경제사학자들을 비롯하여, 김용삼 기자 등이 공저로 집필한 책이다.

일본을 악(惡)으로 간주하는 세계관을 반일 종족주의로 간주하며, 한국사회에서 등장한 반일 종족주의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확산 과정을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소설 아리랑식민지 수탈설강제징용학도병일본군 위안부 등 식민지배와 관련된 문제 뿐만 아니라, 한일 청구권 협정백두산쇠말뚝설독도 등 한일관계 및 한국근현대사의 주요 쟁점별로 저자들의 주장을 담고 있다.

2. 출판사 소개[편집]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기억과의 투쟁,
그 진실된 역사에 대한 명쾌한 응답!”

아무런 사실적 근거 없이 거짓말로 쌓아올린 샤머니즘적 세계관의,
친일은 악(惡)이고 반일은 선(善)이며 이웃 나라 중 일본만 악의 종족으로 감각하는 종족주의.
이 반일 종족주의의 기원, 형성, 확산, 맹위의 전 과정을 국민에게 고발하고 그 위험성을 경계하기 위한 바른 역사서!

― 교보문고
아무런 근거 없이 거짓말로 쌓아올린 샤머니즘적 세계관의, 친일은 악이고 반일은 선이며 이웃 나라 중 일본만 악의 종족으로 감각하는 종족주의. 이 반일 종족주의의 기원, 형성, 확산, 맹위의 전 과정을 고발하고 그 위험성을 경계하기 위한 책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그 후의 한일 관계에 대한 오늘날 한국인의 통념을 이 책에선 정면 부정한다. 오늘날 대다수 한국인이 학교 교과과정이나 여러 영화, 각종 역사서적에서 접한 대로 “일본이 식민 지배 35년간 한국인을 억압, 착취, 수탈, 학대했으며, 그럼에도 그 후 일본은 그를 반성, 사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통념이 사실에 근거한 게 아니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 알라딘

3. 공동 저자 소개[편집]

  • 이영훈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신대학 경제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7년에 정년퇴임을 하였다. 현재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 김용삼
    중앙대 문예창작과, 경남대 북한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조선일보 기자와 시사월간지 <월간조선> 편집장을 역임했다.
  • 정안기
    고려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교토대학 경제학연구과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하여 경제학 박사학위(일본경영사 전공)를 취득했다. 고려대학교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4. 베스트셀러 등극[편집]

‘반일 종족주의’가 국내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국내 최대 인터넷 서점인 YES24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8월 1~2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는 주간 베스트 집계 2위를 유지중이다. 출처

교보문고 집계로는 남성 독자의 구매가 압도적으로 높은 가운데, 특히 60대 이상 남성 독자가 23.4%로 가장 높았다. 50대,60대 남성을 합치면 41.8%로 압도적이라고 한다. 출처

마침 출간 시기와 맞물려 한일 갈등이 극고조에 달하면서 매우 시사성이 높은 책이 되었고, 책의 호불호 여부와 무관하게 정치인들과 언론에서 많이 알려져 판매량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저자들의 언행과 더불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구역질 나는 책"이라고 비판하면서 주목을 받게 되며 여러 곳에서 이슈를 만들게 되었다.

5. 평가[편집]

5.1. 호평[편집]

자료를 가지고 서술한 부분은 볼만하며 기존 역사에 대한 비평과 인식을 넓히고 싶으면 다른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일독할 가치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

특히 쌀 수탈론 같은 계량 경제학을 이용한 검증이나 확실한 자료가 나와있는 부분은 분명 학계의 통계적 논의에 기여한 바가 있고, 기존 학계에서 오래전부터 논의를 거쳐온 것이므로 논쟁 여부와 별개로 읽어볼 가치가 있다. 특히 대중들의 경우 식민지 시기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에 관해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평이다. 과거 운동권의 역사인식을 담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판하는 책을 이 책의 저자들과 함께 저술한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토지조사사업의 긍정적 측면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언급했다. # 다만 후술할 비판 논의들 때문에 '반일 종족주의'를 학술 저서로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중서로서 이런 위치에서 말하는 책이 필요하다는 시각에서 좋게 봐주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의미를 들자면 아래편에 서술된 바와 같이 토지 조사 사업 결과 전 조선 농토의 40퍼센트가 일제에 의해 빼앗겼다는 등 예전 국사 교과서에 실렸으나 이미 이영훈 등에 의해 논박되어 사라진 설을 아직도 사실로 알고 있는 많은, 사실 대다수의 기성 세대들에게 그들이 가진 고정관념을 깨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책이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는 독자들이 많다.

실제 기존 30대 이상 성인 대부분은 일제가 토지 조사를 강행 하면서 한손에 측량기 한손에 권총을 들고 농민들의 토지를 강점 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농민들이 죽어 갔다고 알고 있는 등 민족주의적인 사관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영훈 등은 이 책을 통해 잘못된 사관을 바로잡으려고 시도하고 있다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저자들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경제사 관련 내용(주로 책의 1부)은 자료에 근거하여 민족주의적이면서 전체주의적인 사관을 비판하는 의미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5.2. 논란[편집]

5.2.1. 식민지 근대화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식민지 근대화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사실 조선말기 자본주의 맹아론과 일제강점기 수탈론이 사실은 근거가 미약하며, 민족주의 역사관에 의한 확대과장이라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나오던 것이었다. 현재는 김용섭 연세대 교수, 강만길 고려대 교수, 신용하 서울대 교수 등으로 대표되는 일방적인 수탈론은 수많은 연구에 의해서 무너진 상태이다. 이 과정에서 통계분석, 실증자료를 강조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가 상당히 탄탄한 논리를 구축했고, 이들은 연구를 더욱 발전시켜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들고 나오게 된다. 이후 학계에선 허수열 충남대 교수처럼 수탈론도 과장이지만, 식근론도 문제라는 반박이나 아예 근대화의 의미가 뭐냐는 문제제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학계의 논의와는 별개로 이런 내용이 오랜 기간 국사교과서에 실리면서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이렇게만 알고 있는 현실에서, 이영훈 교수는 이런 대중들의 무지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게 문제다. 학계에서 이미 수십 년 전에 참으로 결론이 났거나 더는 학계의 주 관심사가 아닌 학설들을 끌고와서 학계주류의 반일프레임에 도전한다는 식의 인상을 주고 있다. 그리고 이영훈 교수가 이런 내용의 책을 처음 쓴 것도 아니다. 단독 저작만 쳐도 대한민국 이야기(2007)와 대한민국 역사(2013)가 있고 공저작으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2006)이 있는데 밀도는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쪽이 훨씬 낫다. 책 앞부분에 나오는 토지 조사 사업 비판의 경우, 신용하[3]가 주장하던 '한 손에 측량기, 한 손에 권총 든 토지수탈' 주장에 반대되는 연구가 국사학계에서 나온지도 30년도 넘은[4] 상황이다. 아울러 김제 벽골제에 관한 조정래 비판과 벽골제를 둘러싼 충남대 허수열 교수와의 논쟁도 2000년대 후반의 일로 10년이 훌쩍 넘었다.[5] 심지어 최근에는 방조제였다는 이영훈의 주장과 달리 벽골제에서 담수 식물의 흔적이 나오거나[6] 이곳이 수리시설이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 상황이다. 물론 해당 학설이 정설은 아닌만큼 학계에서 흔히 보이는 서로 반대되는 여러 논문들이 발표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으나 여기서 이영훈이 문제가 되는 것은 불리한 근거에 대해 적절한 반론을 제시하지 않고 그냥 퉁치려 한다는 점이다.

경제학자들이 대부분인 저자들에게서 전문성이 담보되는 부분이 수탈론 부분인데 교과서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수탈이란 용어나 각정 정책설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지만 10여년전 제기되어 다른 학자들과 논의를 거쳐 받아들여질 부분은 받아들여지고, 반박될 부분은 다 반박된터라 학계 입장에서는 새로울게 거의 없다.[7] 쉽게 말해 했던 말 하고 또 하고 있는데 그에 반해 자신들의 주장에 대해 제기되었던 반박들은 모호하게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려는 경향이 강하다. 위에 언급된 벽골제 건도 그렇고, 쌀 수탈 프레임 비판의 경우 수탈이 아니라 수출이며 자본주의 제 관계의 성립을 수탈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은 한참전에 인정받고 결론났다. 하지만 산미증식계획으로 조선의 농촌구조가 완전한 부익부 빈익빈으로 변화, 조선의 자소작농이 대거 몰락하여 소작농이 되었다는 점은 학계에서도 지적하고 있다. 산미증식계획은 농업잉여의 증대와 농업잉여의 자본 전화로 인한 공업화 토대 마련 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조선 농업구조의 완전한 변화로 인한 소작농 증가와 부익부 빈익빈 심화라는 부정적 평가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이 책은 이런 것들에 대해선 대강 뭉갠다.

5.2.2. 독도의 역사적 영유권에 대한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영훈 문서의 s-3.2.1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저자들은 독도가 현재 대한민국의 고유영토임을 부정하지 않으나, 그동안 한국 사회의 통념이던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도서이고, 신라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이래로 한민족의 고유영토'라는 통념은 사료를 잘못 해석한 결과이며, 오히려 사료에 나온 소위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도서인 관음도와 죽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는 일본측의 주장이 타당성이 높다고 본다. 독도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확정한 것은 이사부나 대한제국이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의 1952년 평화선 선포를 통한 것으로, 독도 영유 또한 결국 이승만의 업적인 것으로 보며, 따9라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도 타당성이 있음을 이해하고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하게 내세울 필요 없이 low key로 실효지배만 하면 되었는데, 노무현 정부 이래로 대통령들이 정치적으로 반일을 이용하면서 독도 영유권 주장이 강화되고 일본의 반격도 더 거세지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8]

우산도 명칭 논란, 이승만 라인설 등 일본 우익들의 대표적인 주장만을 실어 놓고, 1900년 대한국 국제로 독도가 대한제국 영토임을 공표했다는 점은 무시하고 오히려 1905년 시마네현 고시에 왜 반박하지 않았는지 의문시한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행정권은 남아있었지 않느냐며...[9]
게다가 태정관 지령[10]이나 SCAPIN 제677호처럼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불리한 사안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고도 서문에서는 "객관성"과 "진리" 추구가 지식인의 자세라며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

5.2.3. 일본 우익단체의 저자 지원 논란[편집]

[단독] '반일 종족주의' 학자의 민낯..."日 극우 지원받았다" / YTN
이우연 박사, 최근 日 우익방송 출연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었다"
유엔까지 간 '반민족' 발언…뒷배엔 日 극우 자금
'반일 종족주의' 공동저자 이우연, 日 극우단체 지원 받고 UN 갔다

일부 저자들의 편향적인 정치적 주장외에도 또다른 논란이 생겼는데, 반일 종족주의 저자중 한명이였던 이우연이 일본 우익단체에서 항공료와 체류 지원을 받아 UN에 참석, 일본의 식민통치와 강제징용에 대해 부정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기사가 나오고 있다.[11]

그외에도 일본 방송에 출현, 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부인하며 식민통치를 적극 옹호했다.

해당 논란에 대해 이우연 본인은 역사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릴 기회라고 판단해 UN에 가자는 제안에 응했다고 주장하며 극우단체이건 극좌단체이건 역사적 사실을 공유하고 그것을 알리는 사람과 앞으로도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 변론했다.

5.3. 비판[편집]

5.3.1. 박근혜 탄핵 여성혐오설[편집]

박근혜 탄핵은 한국인의 여성혐오로 인해 만들어진 거짓말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영훈 주장에 따르면 "한국의 거짓말 문화는 국제적으로 널리 잘 알려진 사실"이며 "2014년에만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이 1400명"이며 "일본에 비해 172배"이며 "인구수를 감안한 1인당 위증죄는 일본의 430배"이며 "허위 사실에 기초한 고소, 곧 무고 건수는 500배", "1인당으로 치면 일본의 1,250배"이며 "보험사기가 만연해 있"고 "2014년 자동차 보험, 생명보험, 손해보험, 의료보험 등 보험사기의 총액은 4조 5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어느 경제신문은 미국의 100배"[12]라고 말하며 정치에서 대표적 피해자가 박근혜라 주장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거짓말에 쓰러지고 말았"고 "세월호가 침몰하는 그 시간에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미용 수슬을 했느니, 마약을 했으니, 애인과 밀회를 즐겼으니 등등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 온 나라에 가득하였"고 "여성 대통령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여성을 우습게 여기거나 비하하는 한국인의 집단 심성이 만들어 낸 거짓말"이며 "최순실 사태가 터졌을 때 전국은 그야말로 거짓말의 광란"였고, "그 거짓말의 행진"은 "지금"(2019년)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13]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거짓말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여성 대통령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여성을 우습게 여기거나 비하하는 한국인의 집단 심성이 만들어 낸 거짓말이었습니다.

이영훈 외,『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미래사, 2019, 13쪽

다음은 이영훈이 주장하는 여성혐오 사례이다.
얼마 전 광화문에 나갔더니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란색 천막이 아직도 쳐 있는 가운데 "왜 안 구했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벌써 몇년입니까. 5년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진상은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직도 "왜 안 구했나"라니요. 아직도 그 시간에 여성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애인과 밀회를 하거나 마약을 즐겼다는 겁니까. 그런데 아무도 그 거짓말의 천막에 항의하지 않습니다.

이영훈 외,『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미래사, 2019, 13쪽

"청와대에서 애인과 밀회했다"는 내용은 세월호 사고 당시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의 보도를 시작으로 떠돌았던 박근혜-정윤회 밀회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영훈의 주장은 사실관계과 맞지 않는 내용들이다.

대통령(박근혜) 탄핵(전원재판부 2016헌나1, 2017. 3. 10.) 현재결정례를 보면 알겠지만 이영훈의 주장과 맞지 않는다. 이영훈이 주장한 여성을 우습게 여기거나 비하하는 습성 때문에 탄핵된 게 아니다. 그리고 반박하는 명제가 세월호 7시간검찰 발표##와 전혀 맞지도 않는 비판인데 이영훈은 이에 대한 반박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5.3.2. 저자들의 비전공 분야에 대한 미숙함[편집]

이 문단은 토론을 통해 문단명을 순화하기(으)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제재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이 말하는 '종족'이라는 개념은 학술적으로 정제되지 않은 개념으로, 저자들은 이를 사실상 '부족(tribe)'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두 집단을 하나로 묶는 '공통의 모집단'을 상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학적으로 잘못된 개념이다. # 저자들이 경제사 전공이라 벌어진 문제점이다.

5.3.3. 일부 저자들의 정치적 주장[편집]

이 문단은 토론을 통해 문단명을 순화하기(으)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제재될 수 있습니다.

아예 역사를 이용한 정치 선동 도서라는 비난도 있다. 2부는 대놓고 북한에 대한 정부의 태도나 친북 종북인사 척결을 언급하는 등 정치적인 주장과 개인 견해가 다수 섞여있다. 나중에는 정치적인 문제를 좌파[14]와 한국인들의 반일 현상과 엮어 망국론을[15] 이야기 하는 등 중립성이 크게 결여되어 있다. 즉 역사와 정치의 인과관계 메커니즘이 매우 부실하다. 또한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반일정서를 이용하고 민족주의 사상을 교육을 통해 주입했다. 그나마 진보진영의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문화 개방등의 결단을 내리며 일본에 대해 가장 열린 태도를 보여줬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보수진영 대통령의 행태를 비판하지 않으며, 김대중대통령의 업적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다. [16]. 다만 애초에 극우 성향을 띈 뉴라이트 관련 인사들이 김대중이나 노무현 같은 진보 진영 대통령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예전에도 없었다.[17]

5.3.4. 확증편향적 통계 인용[편집]

첫부분부터 한국은 '거짓말의 나라'로, 한국인은 '거짓말하는 국민'으로 단정지으며 출발한다. 통계에 입각한 사료비판을 주장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통계적 거짓말을 다수 동원하는 한편, 거기에 민족주의와 한국인의 태도를 매도하기 위한 자극적인 표현이 많아 독자가 주화입마에 빠지기 좋다. 첫장부터 위증과 무고죄가 일본보다 500배 이상 많으며 인간에 대한 신뢰성이 반일 민족주의가 막 시작된 1980년[18][19] 보다 낮아졌음을 근거로 한국은 특유의 거짓말 문화가 만연한 사회이며 거짓된 반일 또한 이것의 연장선임을 어필하며 시작한다.

"한국은 거짓말의 나라" 라고 주장하며 인용한 위증, 무고죄 500배 운운 부분에는 출처가 나와있지는 않지만 2016년 일본 언론 기사 日언론 "거짓말 만연한 한국, 숨쉬는 것처럼 한다"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도 이건 악의적인 통계 장난이라는 지적과 반박이 있었다. [팩트체크] "한국인은 숨 쉬듯 거짓말"…정말 그럴까? 팩트 체크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영훈이 그러한 주장을 하는 데 참고한 한국의 사기, 무고, 위증죄 기소 수와 일본의 사기, 무고, 위증죄 기소 수의 숫자 자체는 사실이지만, 애초에 국가별로 범죄 통계의 집계 기준, 기소를 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 등등이 다르므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통계가 지니는 함정을 무시해 버린 채 편의대로 자료를 사용한 것으로 경제학 원로들이 쓴 글이라면서 서문부터 이런 통계 장난으로 시작하고 있으니 그 뒤부터 나오는 통계들도 통계의 거짓말이 아닌가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5.3.5. 이승만의 과격 반일성향 문제 회피[편집]

일본인 선전가들은 종종 한국의 과거 정부가 통치를 잘못한 예로 들거나, 현재 일본 통치 아래에서 진행되는 한국의 현대적 발전을 그들의 우월함의 예로 든다.

과거 한국을 현대화된 일본과 비교하는 것은 과거 일본을 현대화된 한국과 비교하는 것처럼 불공정한 것이다. 일본 자체를 예로 들자면 과거 페리 제독이 일본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일본은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물질적으로 한국보다 훨씬 못했다. 정치적으로 일본은 수많은 분국으로 쪼개져 서로 싸움을 일삼고 있었으나 한국정부는 통일된 완전한 통치를 하고 있었다.

이승만 뉴욕타임즈 사설, 1919. 5. 18. 출처: 이승만학당이승만기념관
일인들이 저의 죄를 회개해서 우리와 평화롭게 살자하며 친일하는 한인의 남녀들을 시켜서 다 한국에 충성하는 백성이 되도록 힘쓰게만 한다면 아무리 아프고 쓰린 것도 차차 잊어버리고 양국이 평화로이 지내기를 도모하기로 하고, 이 뜻을 공포해서 일인들도 다 알만치 만들어준 것인데, 그동안 지낸 경과를 보면 일인들은 여전히 한국을 병탄할 목적을 변치 않고 공개적으로 혹은 비밀적으로 모든 행동과 선전하는 것을 볼 때 한국을 무시하고 한인들을 모욕하는 것이 전만 못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중략)...
여섯째로는 모든 친일분자들을 일본에 모아다 보호해놓고 이 분자들을 통해서 우리나라 국권 요란을 선동하기를 마치 이전 이조 말년에 들을 모아다놓고 남의 국모를 암살하며 침략하던 악습을 행하고 있으니 일인들의 야심을 우리가 더 말할 것 없이 보고 앉은 것이다.

...(중략)...
이런 야심가진 침략자들에게 뒷문을 열어놓고는 우리가 자유를 보존하지 못할 것이오, 나라를 잃어버리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을 기왕 사십년 경험으로 다 알고 있으니, 공산당과 친일반역분자는 다 분간해서 후환을 막아야만 될 것이다.

1954년 5월 13일 이승만 담화, 동아일보, 1954. 5. 14. #
지금 우리나라의 걱정은 공산당보다 더 음험한 것이 일본의 야심이다. 그러므로 일인을 걱정하여야 하며 일인이 선전술이 있어서 미국인이 그것을 들어 주고 일본을 부강하게 하고 타국을 거기다 따라가게 하자는 것이 동양의 문제다 그러므로 어려운 것이고 또 한인 중에도 친일(親日)하는 자가 있어 일본에 의뢰하는 생각을 가진 분자가 적지 않다. 그러니 그러한 자를 잘 분간하여야 한다.

1954년 10월 7일 이승만, 인하공전 개교식에서 #

위의 소개에 적힌 "친일은 악(惡)이고 반일은 선(善)이며 이웃 나라 중 일본만 악의 종족으로 감각하는 종족주의. 이 반일 종족주의의 기원, 형성, 확산, 맹위의 전 과정을 국민에게 고발하고 그 위험성을 경계하기 위한 바른 역사서!"라는 반일 종족주의란 책의 주제의식에 근거한다면 사실 한국 대통령 중에서 제일 심각하게 비판받아야만 하는 대통령은 이승만이다.

폭력성의 수준을 따져봐도 이승만이 한국의 대통령 중에서 반일이 제일 심하며 다른 누구도 아닌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므로 "반일 종족주의의 기원, 형성, 확산, 맹위의 전 과정"에 매우 중요하게 거론해야 할 인물이기 때문에 반드시 한 챕터 이상을 할애하여 이승만 대통령 집권시기 이루어졌던 행보를 심도있게 다루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저자의 명확한 의견표명을 확인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이승만 찬양만 도배되어있다.[26]

이에 대해서 이영훈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승만이 지나치게 경직된 반일정책을 폈다'며 이승만이 강력한 반일정책을 실행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주장하며 변론하였는데 미국은 일본이 공산품을 한국에 수출하고, 한국은 농·수산물을 일본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개발하라고 요구를 했으나, 이승만은 그렇게 되면 한국 경제가 일본에 종속될 것을 우려하였다고 한다.[27][28] 또한 독립한지 얼마 안 된 신생국으로써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반일정책을 펴야 했다고 답했다. #

그러나 이영훈이 이승만의 반일정책에 대해 인정한 것은 그의 학문적 정체성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29] 그의 사상적 가치의 중심은 이승만 재평가와 일제강점기에 대한 국민 저변적인 '오독'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기준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기원이자 최고권력자인 이승만에 의해 반일 감정과 정책이 주도적으로 이뤄졌다는 이 아이러니한 사실은 자신이 추구하는 두 가지 중요 가치를 한번에 묶어서 헝클어놓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당장 위 인터뷰에서도 본인이 추구하는 두 가치를 동시에 충족하려다 보니 모순과 이중잣대가 생긴다. 한국의 반일을 비판한다는 사람이 유독 이승만의 극렬반일행보에 대해서만은 불가피한 측면이라느니 대안이 없었다느니라며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다른 사람들의 반일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면죄부나 변명이 가능하다.

사실 박정희 또한 일본 엔카를 금지하는 등 한국인들 앞에선 반일 코스프레를 했다.

5.3.6. 육군특별지원병 모집 과정에서의 강제성 서술 부재[편집]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정안기는 '1부 08 육군특별지원병, 이들은 누구인가?'파트에서 자발적 지원자들에 대해 서술하면서, 이들을 단순 친일파로 생각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30] 문제는 해당 파트의 서술 방식이다.

처음에는 지원병 모집을 강제 동원과 호구 지책에 의한 지원으로 설명한 기존 한국사의 서술 방식을 단순하고 왜곡된 것이라 비판한다. 이후 일제가 육군특별지원병 제도를 실시한 배경을 설명 -> 일제가 높은 지원율에 '자기도취'되었다는 서술과 함께 누적 약 80만명에 달하는 지원자가 적혀있는 표를 제시 -> 자발적 지원자들의 지원 동기 및 수차례 지원이나 혈서까지 쓰는 열정적 지원 사례 제시 -> 특별지원자들의 참전 경험과 이를 통한 변화 -> 해방 이후 이들이 국군의 장교가 되는 등 대한민국에 기여한 점 서술 -> 지원자들을 단순 친일파로 보는 것의 부당함 역설 이라는 순서로 내용이 진행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엄연히 존재했던 육군특별지원병 모집 과정에서의 강제성은 전혀 서술되지 않는다. 자발적 지원자의 수가 결코 적었던 것은 아니고 최종적으로 선발된 17000여명은 대부분 자발적 지원자들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조선지원병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누적 지원자가 80만명에 달한다는 일제의 통계는 과장된 것이며, 모집 과정에서 일선 관청과 경찰의 할당량 및 실적 채우기를 위해 수많은 당시 청년들이 강제적으로 육군특별지원병에 '지원아닌 지원'을 하게 되었다는 것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31] 제79회 제국의회 설명자료에 의하면 정안기가 본 책에서 제시한 표의 41년도 지원자 약 145000여명 중 자발적 지원자는 약 5만명이며 그보다 많은 8만명에 달하는 지원자는 '관청 종용'에 의한 것이다. 이외에도 모집 과정에서 일선 관청과 경찰에 의한 강압적인 '지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미 '당대'의 일제 기관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정안기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자발적 지원자'들에 대한 내용이니 굳이 비자발적 지원자들에 대해 서술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해당 파트의 구성 방식을 다시 살펴보자. 육군특별지원병 모집 과정에서의 강제성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이 이를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강제 동원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고 자발적 지원자들의 사례만을 언급한 해당 내용을 읽으면 '80만명이나 되는 조선 청년들 대다수가 열정적으로 일본군이 되려 했으며 모집 과정에서 강제성은 전혀 없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정안기가 '육군특별지원병 모집 과정에서 강제성은 없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해당 서적에 대한 친일 및 일제 정당화 논란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강제성에 대한 서술 부재와 독자들의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서술 방식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5.3.7. 과거사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편집]

공동저자인 주익종은 '1부 10. 애당초 청구할 게 별로 없었다' 파트의 마지막 부분에서 일본은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과거사를 청산했으며 그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주장을 했다.

이는 과거사 청산의 의미를 단지 '배상'이라는 좁은 부분에 국한하고, 한일협정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본 정부와 유력 정치인들의 잘못을 외면하고 면죄부를 주는 발언이다.

일본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나름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한일협정 당시 일본이 준 돈이 '배상금'인지의 논란과 협정 체결 당시의 국제 정세는 둘째 치고서라도, 일단 일본 정부가 한국 측에 어느정도 양보하고 꽤나 큰 금액을 준 것은 사실이다. 이후에도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같은 정부 차원에서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들도 종종 나왔었다. 심지어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경우 고이즈미 담화 발표나 서대문 형무소 참배, 아베 신조의 경우 현충원 참배를 하기도 했었다.

문제는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의 이런 태도가 일관성이 있었는가이다. 잊을만하면 일본 정부와 유력 정치인들(전현직 총리 포함)에 의한 각종 망언, 역사왜곡, 독도 도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위안부 강제성 부정 등의 문제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 중 정치인들의 문제를 살펴보자. 아소 다로같은 망언 제조기야 말할 것도 없고, 위에서 언급했던 고이즈미, 아베는 취임 초기의 파격적 행보를 보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한국인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행보를 보여왔다. 특히 아베 신조의 경우 재집권 이후 고노 담화 수정 검토한다던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든지 아베 담화에서 러일전쟁을 미화한다든지 하는 여러 논란을 일으켰다. 결정적으로 일본 해상초계기 저공위협 비행 사건과 한일 무역 분쟁을 유발하며 한일관계를 역대 최악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과거사 청산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주익종은 이러한 일본 측의 잘못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돈 몇 푼 쥐어줬으니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비판의 여지가 다분한 주장을 할 뿐이다. 사실 이건 이 책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반일을 비판한다면서, 정작 한국 내 반일 문제의 주요 원인 중 가장 큰 원인인 일본 정부와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의 하지 않는다.

6. 반응[편집]

6.1. 긍정적 반응[편집]

6.1.1. 정치인[편집]

  •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몰랐던 부분을 일깨워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라고 경의를 표했다. #
  •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100만권이 팔려서 전 국민이 정말 눈을 뜨고 더 미래지향적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며 감탄하였다. #

6.1.2. 언론인[편집]

  •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주필은 "이 책이 백만부 정도 팔리면 대한민국이 바뀌지 않겠는가"라며 호평을 하였다. #

6.2. 부정적 반응[편집]

6.2.1. 학계[편집]

  • 전강수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당신들이 유포하는 건 '혐한 종족주의'라며 비판하였다. #
  •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책에서 저자는 식민지근대화론자의 학술적 주장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독선적 표현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고 비판하였다. #
  •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평화를 바라는 합리적인 양국 시민들의 소리는 묻히고, 이런 책들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와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두 극단적 관점의 충돌을 견인하며 커다란 소음을 유도한다고 비판했다. #
  •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저자들이 책에서 반일 종족주의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았으며 "거짓말에 관대한 문화가 반일 종족주의 때문이라는 주장, 물질주의가 반일 종족주의의 원천이라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

6.2.2. 정치인[편집]

  •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구역질 나는 책"이라고 비판을 하였다. #
  •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우리 국민의 반일 감정을 폄훼하고 일본 식민 지배에 면죄부를 주는 내용으로 가득하다"라며 질타했다. #
  •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두통을 유발한다", "역사에 대한 자해행위"라며 불쾌감을 표했다. #
  •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비상식적이며 동의할 수 없다", "이건 아니다"라며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32]

6.2.3. 언론인[편집]

  • 주진우 기자는 "독일에서 정치인이 이렇게 얘기한다면 사법처리될 것"이라며 분노하였다. #

[1] 교보문고에서는 정치/외교로 분류하고 있다.[2] YES24와 알라딘 서점에서는 역사 및 한국사로 분류하고 있다.[3] 이 사람은 이제 학자라고 할 수도 없는 완전히 갈때까지 간 사람이다. 역사 전공이 아니라 사회학 전공하다 넘어온 사람이라 역사학적 방법론에 충실하다고 보기도 힘든 사람이었는데, 2010년대까지 독립신문 갖은거 가져다 청산리 '대첩'을 밀고, 아예 전공도 아닌 고조선까지 건드려서 고조선이 황화문명보다 앞선 인류 3번째 문명이라는 소리를 하고 다닌다. 그냥 환빠와 차이가 없으며 사학과에선 연구사 언급할때 아니면 논문인용도 안한다.[4] 이영훈이 최초로 반박했다 오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배영순, 「韓末·日帝初期의 土地調査와 地稅改正에 關한 硏究」,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박사학위 논문, 1988 ; 「조선토지조사사업에 있어서 김해군의 토지신고와 소유권 사정에 대한 실증적 검토」, 『인문연구』8권2호,1987 등을 본다면 식민지 근대화론이 등장하기 전인 80년대 후반부터 한국사학계 내에서도 신용하와 반대되는 의견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5] 다만, 이영훈과 허수열 둘 다 풍요로운 벽골제를 일제가 수탈했다는 조정래의 주장은 완전한 허구라고 지적한다.[6] 담수 식물이 나온다는 말은 민물이 차있었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해수가 밀려오는 방조제로 보기는 어려워진다.[7] 물론 역사학 지식이 전무한 독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대중들은 반일 종족주의에서 논의되는 학설들을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이유로 반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8] 그러나 한국과 국교를 맺기 직전인 1965년 4월 일본은 한국 정부에 "다케시마(독도)의 불법 점거에 관하여 엄중 항의 한다."라는 문서를 보내, 한국과의 국교 정상화에도 결코 한국의 독도 지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출처: 강준만 저/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3권/ 29쪽 이런 사례로 보건대 과연 한국이 조용히 있는다고 해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조용해졌으리라는 <반일 종족주의>의 주장에 의문이 제기된다.[9] 1905년부터 1909년 기유각서를 쓰기까지 매년 대한제국은 주한 외국인 관할권, 감옥사무권, 경찰권, 사법권, 군권을 순차적으로 박탈당한다. 1905년에 외교권만 잃은 상태로 멍하니 있다가 1910년에 바로 주권을 잃은게 아니다.[10] 하지만 일본측의 공식 입장은 여기서 언급한 울릉도 외의 섬 1곳은 울릉도의 부속도서인 죽도라는 것이다. 이 섬을 독도라고 해석하는 것은 한국측만의 입장이다.[11] 후지키 슌이치는 이우연 박사에게 UN에 가자고 제안한 건 자신이라며 스위스 제네바 왕복 항공료와 5박 6일 체류 비용도 모두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해당 인물은 위안부 관련 다큐멘터리 '주전장'에 등장해 궤변을 쏟아낸 인물로 소녀상을 조롱한 혐한 유튜버인 토니 마라노의 후원자이다.[12] 이영훈 외,『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미래사, 2019, 10~11쪽[13] 이영훈 외,『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미래사, 2019, 13쪽[14] 한국의 반일을 좌파와 결부시켜서 비난하면서 정작 이승만의 반일 성향은 외면하며 반공 성향만 가져와 찬양하는 뉴라이트들은 사실 한국의 정통 보수 우익이 아니며, 1980년대 이후에 형성된 신우익에 속한다.[15] 한국 현대사에서 반일 감정이 가장 강했던 때는 이승만 집권기인데, 저자들의 주장대로 과연 이승만 집권기에 한국이 망국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는가? 또,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 책의 저자들을 포함한 뉴라이트 인사들은 도대체 왜 이승만을 찬양하는 것인가? 그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반일 성향이 가장 강렬했던 인물이 이승만이었는데? 아울러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을 비롯한 뉴라이트 인사들이 반일을 좌파와 결부시키는 것 또한 터무니없는 행위다. 한국 대통령들 중 가장 반일 성향이 강한 이승만은 "비록 부모형제라고 해도 공산당이면 용서하지 말고 처단하라."고 성명을 발표할 만큼 강경한 반공주의자였는데, 이승만도 좌파란 말인가?[16] 심지어 김대중 집권기의 일본 총리인 오부치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을 통해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 "통절(痛切)한 반성과 사죄", "대북 햇볕정책 지지"를 밝혔고, 그 덕분에 김대중 집권기 한일 관계는 역대 가장 우호적이었다. 링크[17]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데, 뉴라이트 같은 극우 진영에서는 자신들에 반대하는 진보 진영을 모두 싸잡아서 좌파-악으로 간주하는데, 그 진보 진영에 속하는 김대중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자신들의 세계관 자체에 심각한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18] 그러나 정작 이승만 집권기인 1952년에 이미 독도를 둘러싸고 일본과 영유권 다툼이 벌어졌던 평화선 사건이나, 이승만 집권기에 강경한 반일 성향이 한국 사회에 가득했던 일을 감안한다면 반일 민족주의가 1980년에 막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다분히 근거가 없으며, 이는 뉴라이트 관련 인사들이 존경하는 이승만에게 반일 성향의 책임을 지우지 않기 위한 교묘한 거짓말이다. 한 예로 1954년 3월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스위스 월드컵 예선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일본 대표팀과 축구 경기를 했을 때,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 대표팀을 가리켜 "일본에 지면 현해탄에 빠져 죽으라!"는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출처: 강준만 저/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2권/ 166~168쪽[19] 아울러 1964년 6월 3일, 박정희 정부의 한일국교정상화회담에 반대하여 전국적으로 수많은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시위를 벌이자, 박정희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여 강제로 진압했을 만큼 반일감정이 강렬했던 6.3 항쟁의 사례에 비춰봐도 반일 민족주의가 1980년에 시작되었다는 <반일 종족주의>의 지문은 설득력이 없다.[20] 이때 이승만은 해군을 동원해서 독도 영해를 넘어오는 일본 어민들을 체포하고 필요하면 발포하라고까지 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약 4천 명의 일본 어민들이 한국 해군에 체포되어 한국 형무소에 감금되었고 그들 중 44명이 죽었다. 역대 한국 대통령들 중에서 이렇게까지 일본을 상대로 강경하게 나간 인물은 없었다.[21] 이승만 정권은 임기내내 대일본외교에 대한 뚜렷한 목표나 전략없이 감정적인 행동으로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장을 약화시켰다. 대표적인게 국제법을 무시한 평화선 선포와 일본 어선에 대한 무차별 나포이다. 또한 일제강점기 시절 구체적인 재산피해, 인적피해에 대한 통계조사 등 일본과의 외교협상에 필수적인 자료조차 준비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이승만이 일본과 국교를 재개하라는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권유를 "내가 권좌에 있는 동안에는 일본과 결코 상종하지 않겠다."라고 끝까지 거부하자 빡친 아이젠하워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즉, 국내에선 맹목적인 반일감정만을 자극하면서, 대일외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이승만의 일관된 전략이었다.[22] 대마도는 역사적으로 한번도 우리 민족의 영역이었던적이 없다. 오히려 이런 억지 주장은 미국이 한국을 불신하게 된 계기가 된다.[23] 이승만이 무슨 일이 있어도 일본 축구 대표팀은 한국 땅에 들어올 수 없다고 강경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원래 서울과 도쿄 두 곳에서 열리기로 한 예선전은 어쩔 수 없이 도쿄에서 두 번 모두 치러져야 했다. 출처: 강준만 저/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2권/ 166~168쪽[24] 그리하여 1954년 3월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스위스 월드컵 예선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일본 대표팀과 축구 경기를 했을 때,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 대표팀을 가리켜 "일본에 지면 현해탄에 빠져 죽으라!"는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출처: 강준만 저/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2권/ 166~168쪽[25] 당시 언론은 이승만 정권의 경제단교 조치에 대해 그것은 일본을 제재하는 게 아니라 한국을 제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출처: 강준만 저/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3권/ 236쪽[26] 이영훈은 이승만 팬사이트 '이승만학당'의 주필이다.[27] 다만 그런 식의 주장대로라면 박정희 시절에 한국 경제가 일본 경제에 종속되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한 예로 박정희 집권기에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다가 미국으로 망명한 김형욱의 회고록에서도 박정희 시절, 한국 경제가 일본 경제에 종속되었다는 비판을 기술했다. 그런데 이승만 시절에 한국 경제가 일본에 종속되면 나쁘고, 박정희 시절에 종속되면 어쩔 수 없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 출처: 혁명과 우상 김형욱 회고록 5권/ 김경재 저/ 인물과사상사/ 2009년 7월[28] 이런 식의 이승만이 한국 경제가 일본에 종속될 것을 우려하여 반일 정책을 펼친 것이라고 변론하는 것은 또다른 어폐가 있다. 이영훈은 이승만의 사례와 달리 현재 한일 무역분쟁에 대해 맹목적인 반일에 의한 결과물로만 판단하고 있지만 한일 무역분쟁의 근본적인 문제점중 하나는 한국의 차세대 산업중 하나인 반도체, 메모리 산업에 대한 아주 치명적인 정책을 실행했기 때문이고 이는 한국에게 있어 일본의 경제종속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고 이에 한국이 당연히 일본에게 반감을 품을 만한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원인도 일본이 제공했는데 지금까지 한일간에 이루어져오던 산업간의 국제분업을 일본 정치권에서 정치적 사안을 이유로 개입해서 인위적인 제재 정책으로 헝클어놓은 것이다.[29] 다만 이영훈 본인은 2004년 9월 5일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구 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하여 여성을 강제 동원하고 감금하여 병사들에게 성적 위안을 강제한 행위는 국제사회가 협약으로 금하고 있는 성노예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라고 해명했다가(https://news.joins.com/article/385601), 15년 후인 2019년에는 위안부 강제 동원의 증거가 없고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고 자발적인 자영업자였다며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했던 주장을 정반대로 뒤집었고, 이에 대해 MBC 스트레이트 기자가 해명을 요구하자, "당신은 15년 전과 같으냐?"라고 윽박지르며 폭력을 행사한 일이 있다. 이영훈이 이승만의 반일정책에 대해 인정을 했다고 해도 나중에 가서 위안부 문제처럼 그건 사실 반일이 아니었다느니 하는 식으로 말을 바꾸거나 할 가능성도 있다.[30] 정안기가 미디어 워치에 기고한 글로 본 책의 내용과 유사하므로 참고할 것.[31] 일본 경찰들이 청년들의 집을 찾아와서 일본군에 자원하라고 마구 닦달을 했으며, 거부하면 구타 같은 폭력도 서슴치 않았다. 한 예로 1943년 2월 26일 일본 내무성은 "응모자는 진심으로 지원한 것이 아니라 경찰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지원하였다."라고 인정하였다. 또한 말이 지원병일 뿐, 경찰서를 비롯한 각 행정기관과 어용단체, 홍보기관 등이 총동원되어 지원을 강요하고, 또 직장별·지역별 지원경쟁을 부추김으로써, 해당자들은 지원하지 않고 배겨낼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출처: http://blog.daum.net/timur122556/3053[32] 이에 윤서인이 댓글로 "명확한 근거와 논리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반문하자, 홍준표는 "그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적었는데 달려드는 것을 보니 좌파들보다 더하네요."라는 본인이 유지해온 주장에 대한 입장에서는 굉장히 강경한 태도로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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