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31

(9) Jaewon Choi | Facebook귀멸의 칼날

(9) Jaewon Choi | Facebook

<귀멸의 칼날>은 괴물 혈귀와 이에 맞서 싸우는 검사 집단 귀살대의 대결이 폭주하는 무한열차에서 벌어지는 재페니메이션입니다. 이 작품 꼭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작품 보는 동안 전통과 근대 그리고 현대철학을 가뿐히 관통하는 세계관의 깊이와 상상력의 폭주는 정말이지 놀라움과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날로그 시대 필선과 달리 거칠고 초등학생 타켓의 어법으로 그려진 듯한 거친 디지털 필획이 가진 그 매력에도 젖어 드시기를 권합니다. 서구 철학가들이 발견한 무의식의 영역을 이렇게 놀랍도록 내러티브에 출렁이도록 표현해 낸 작품이 또 있을까요? 장담하건데 이건 서구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자 차원입니다.
작가는 아무리 비판하고 극복하려 해도 결국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는 프로이트의 무의식 발견, 라캉의 유령 이미지, 퐁티와 에피페노멘epiphenomena, 브루노 라투르 행위자 연결망 이론 등을 물론 모두 섭렵하고 그 깊이에서 건져 올리는 형상화와 세계관으로 펼쳐지는 활극과 카타르시스, (나쁜 의미가 아닌)신파와 교훈들은 충격적이고 감동적이며 몇 번이고 감탄하고 전율을 느끼게 했습니다. 극장에 나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저는 한국 관객과 토론할 수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 세계관과 창작(소위 '작화'라 하는), 검법, 신파 문제를 얘기하며 역시나 한국 관객들의 프로그래밍된 맹점과 장애가 반복되어 비판부터 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런 프레임을 좀 내려놓고 보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경우 편견과 이념 때문에 작품 그 자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단 예술이나 문화는 창작하고 쓸 수 있기 때문에 볼 수 있고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이 생깁니다. 이 말은 해석학적 주장으로서 "아는 만큼 보인다"가 아니라, 구성론적 관점인"아는 만큼 보이지만 보이는 만큼 아는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저의 이 말은 좀 썰렁한 사실을 말하는데, 에술에서의 수와 경지, 세계관의 깊이와 차원을 창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작품을 볼 수 있는 경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술작품의 창작은 장담하건데 앞으로 한국이 100년이 지나도 결코 도달하지도 따라갈수도 흉내낼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유는 <귀멸의 칼날>을 관통하는 세계관, 고전과 철학에 대한 통찰, 서구철학과 일본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와 귀신 이야기 전통과 애니미즘과 저패니메이션의 축적해 온'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의 풍요로운 세계관과 아카이브, 영감의 창고가 비옥하게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엇보다 작화와 스타일, 개인의 취향과 기호가 그 어느 의미화 이전의 실천적 다양성과 창작의 영역으로 존중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그러한 세계관도 없고 실천도 없습니다. 왜냐면 창작과 표현 영역에서는 이미 추방하고 검열되고, 작가들은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귀멸의 칼날에서 한국 관객들은 그것마저 신파이자 교훈 따위라고 밟아버리는데 제가 보기엔 한국이 갖지 못하거나 이미 숨을 끊어놓은 공동체의 가치들이 언술되고 있었습니다.
귀멸의 칼날에서는 적어도, 악과 싸우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자기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처절하게 싸우며 성장해 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선배들과 선임자들이 아랫 사람을 이용하고 갈취하고 밟는 것이 아니라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고 희생하는 선배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뒷 자리의 초등학생 관객들이 울던데 코쥬로가 죽을 때 그랬습니다.
저는 코쥬로 엄마가 "약한 사람을 돕는 것은 강하게 태어난 이의 책무"란다.라고 할 때, 한국에 그런 세계관이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신념과 책임이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더군요. 가족에 대한 믿음.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려 하는 것. 내 앞에 다가오는 장벽과 그걸 극복하고 이겨 나가려는 정신. 아버지가 인정하든 말든 절망만 하지 말고 마음 속의 불꽃을 꺼뜨리지 말고 잘 살아보자는 말. 그런 것들이 아무리 초등학생 대상의 교훈적 세계관의 주입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가슴에 남는 대사가 있어 한 개만 옮기겠습니다.
악한 혈귀인 아카자가 렌고쿠에게 말합니다.
"인간은 결국 늙고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약한 존재다
렌고쿠, 넌 선택받은 존재니까 같이 혈귀가 되어 (영생하며)싸우자" 라고 했더니 렌고쿠는 말합니다.
"늙는 것도 죽는 것도 인간이라는 덧없는 생물의 아름다움이다"
.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예고편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마지막 예고편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