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31

210330Jaewon Choi ‘동학농민항쟁’은 ‘동학난’으로 표기되어야 합니다.

 Jaewon Choi

1tsoSp6onushorehmd  · 

<‘동학농민항쟁’은 ‘동학난’으로 표기되어야 합니다.> 

- “근대에의 거부와 저항”을 위한 서사조작을 비판하며 

210331

먼저 박유하선생님께서 “일제강점기”용어에 대한 저의 제안과 비판에 공감해주시고 반론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봉준이 들고 일어난 것은 당시 백성의 고혈을 짜내던 탐관오리 고부군수 조병갑을 징취하자는 것이었지만 봉건제도 개혁과 같은 청사진은 제시되지 못했습니다. 전봉준이 썼다고 하는 <무장창의문茂長倡義文>은 전형적인 유교 관념에 입각한 “나쁜 놈들을 임금이 처단해주시오” 하는 내용이며, 이는 기원전 202년에 세워진 중국 한나라 문경의 치세를 바라는, 당시 선비와 유학자의 전형적인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근거일 뿐입니다. 

동학난을 동학농민운동과 항쟁으로 날조하는 근거로 제시되는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안(弊政改革案) 또한 1940년 오지영(吳知泳) 쓴 <동학사>에 나오는 내용으로 소설에 등장한 것을 마치 사실처럼 착각하게 하는 대표적인 거짓말이라 볼 수 있습니다

19세기 초 평안도에서의 “홍경래의 난” 이후에도 조선의 통치질서는 뚜렷하게 무너지며 왕조체제의 모순이 극한에 다다랐고, 백성들이 저항하는 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동학 이전부터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고종이 즉위한 후에는 크고 작은 민란이 대략 100차례 이상 일어났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동학은 그 마지막 임계점이었습니다. 

고종이 청나라에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사람”을 보내달라는 요청으로 오게 된 스물 세살의 원세개가 총독으로서 부임한 뒤, 조선은 청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에서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이 12년의 청나라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 각지에서 자원이 수탈되고 내부적으로 어떤 개혁도 추진하지 못했던 시기에 참고 참아왔던 농민들의 분노가 응축되어 터져나온 민란이 동학난이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 중앙군인 경군이 동학 농민들의 민란을 진압하지 못해 고종이 청에 파병을 요청했을 때, 고종은 당시 국제정세에서 이 판단의 결과가 무엇을 초래할지에 대해 과연 얼마만큼이나 숙고를 했었을까요? 제가 보기에 이때의 결정으로 인한 결과는 청나라의 속국이었던 당시 조선이 이제는 청나라만이 아니라 일본제국, 러시아제국, 대영제국 등 열강들의 전략적 이익과 패권다툼을 본격적으로 한반도로 끌어들인 상황을 촉발시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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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에서 식민지가 된 것은 1882년 임오군란에 왔던 3000명의 청군이 한양을 점령하고 대원군을 납치하고 간 이후에 1894년 일청전쟁이 벌어질 때까지 총 12년 동안입니다. 이 기간 동안 청나라가 조공국인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억지 차관으로 빚을 지게 하고 온갖 이권을 빼앗아가고 양민을 괴롭히고 강간하는 내용들이 많은데 저에게 의문은, 왜 우리는 부전 조약이나 국제연합의 보편적 인권수호 개념이 생기기 전에 일어난 어떠한 국제법적 근거나 담론으로도 불법성을 주장할 수 없는 1905년의 을사조약 1910년의 한일합방만을 문제시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대체 어떤 국가의 관점에서 당시 일본제국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까? 왜 청나라 식민 치하의 원세개 총독(監國大臣)이 조선의 근대화를 가로막고 벌였던 끔찍했던 행위들은 말하지 않고 왜 청나라와 러시아제국의 관점에서 일본제국을 바라봤던 그 관점과 정서에 이입해서 당시 상황을 해석하고 있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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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밀려오는 1894년 11월 9일부터 12일까지 4일간. 동학난은 이렇게 청나라의 파병 소식을 알고 먼저 들어온 조일연합군에게 죽창과 농기구를 들고 저항하며 이로인해 총 3만 6천 명이 공주 우금치에서 미국제 신식화기 앞에 도륙당함으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이때 사망한 일본군은 단 1명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은 “우금치 전투”로 평가하기 보다는 사실 동학 농민군 지도부가 조선 경군의 기관총 앞으로 농민들을 유인 학살한 사건이자 일방적인 도륙으로 보는 것이 맞다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안타깝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에 저항하고 전근대적 지배질서와 엘리트들의 거짓 선동에 세뇌당한 백성들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비극이자 현실이었습니다. 

이러한 거짓과 선동은 2021년의 한국에서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일본이 구축하고 남긴 적산과 일제시대에 국제화된 교육을 받은 인적자산이 있었기 때문에 그 바탕에서 기적과도 같은 경제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모던, 근대화, 산업화에 대한 상식적인 개념의 긍정조차 제대로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반일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근대에 대한 거부와 저항“이 386운동권을 중심으로 사회, 교육, 시민단체 등을 통해 꾸준히 세뇌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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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은 현재의 인권과 자유민주주의 개념으로 볼 때는 동상을 세워 기릴 영웅이 아닙니다. 일본과 서구의 근대적 무기체계를 이해하지 못한채 현실의 모순에 분노하며 봉기한 농민들을 대량 학살로 유인한 어리석은 학살의 유인자(collaborator)일 뿐입니다. 청나라의 졸개에 불과한 고종과 민비를 견제하기 위해 대원군이 배후에서 전봉준을 이용해 획책한 기획된 민란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동학난은 전근대 의식구조에 기인한 봉기가 가진 태생적 한계를 보여주었던 사건으로서, 현재의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는 전근대 민란으로 규정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 정권이 선동하는 독립운동 이미지 표상도 문제가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과거 3·1절을 맞아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독립문 앞에서 (일제로부터의)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재현했던 그 모습 말입니다. 마치 일본 순사가 든 근대 무기 앞에 태극기를 든 인민들이 궐기하는 모습으로 재현되었었죠. 그것은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침략과 팽창적 국제질서 속에서, 독립문을 세운 사상과 이념이었던 근대국가와 시민 공화정을 꿈꾸고 추구했다는 차원의 비전을 모으는 것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일본 제국근대로 표상되는 근대에 대한 저항과 거부를 촉구하며 근대화기 앞에 목숨을 걸고 죽음을 선동하는 듯한 위험한 표상조작의 프로파간다였다라는 것을 저는 밝히고 이것이 매우 대단히 위험하며 잘못된 선동이라고 비판하고 싶습니다. 

죽창과 농기구를 들고 참전한 농민들은 전봉준, 김개남 등 지도부가 말한 대로 동학 부적을 가슴팍에 붙였습니다. 총탄이 날아와도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라고 주문을 외우며 돌격하면 총알도 피해갈 것이라는 동학 지도부의 말을 농민들은 믿었습니다. 농민들은 주문을 외우며 돌진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제 기관총인 '개틀링 기관총(Gatling Gun)'앞에서 모조리 학살당했습니다. 우리가 막연히 연상하거나 알고 있는 바대로 일본 제국군대가 사살한 것이 아닙니다. 조일 연합군 편성에서 후비보병을 맡고 있던 일본제국 군대가 아니라, 조선 경군이 운용한 미국제 기관총에 의해 조선인들이 조선 경군에 의해 사살된 것입니다. 동학난과 고종의 전근대적 위기대응 ‘감정’은 외세를 끌여들여 자기 백성들을 죽이고 한반도를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저는 동학난을 설명하고 있지만, 동시에 현재의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한반도를 가리키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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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 종전 후에 유럽과 미국은 항구적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부전조약(Renunciation of War Treaty, Anti-War Treaty, 不戰條約)’을 체결하고 방어전쟁(국가의 정당방위권)은 유보되어도 ‘국가의 정책수단으로서 조약 당사국 국민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모든 전쟁을 규탄·포기한다’는 취지로 국제법을 통해 침략전쟁과 전쟁발발을 방지하자고 합의합니다. 이것이 최초로 국제법적으로 침략전쟁과 전쟁을 막자는 취지의 개념이자 합의였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승전국이었습니다. 미국과 프랑스의 제안에 주요 열강인 영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이 동의함에 따라 같은 해 15개국의 서명으로 파리에서 1928년에 부전조약이 체결됩니다. 제가 부전조약을 말씀드리는 까닭은, 고도화된 첨단기술 무기와 대량살상, 인명피해를 초래하는 현대 전쟁에서의 야만적 행위를 규탄하자는 의미의 이러한 부전 조약이나 국제연합의 보편적 인권수호 개념이 생기기 전의 세계에서는 국가의 합법적인 수단으로서의 전쟁 수행이나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공권력에 의한 팽창주의와 제국주의에 의한 그 지배는 모두 불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환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위안부문제며 징용문제에서 나온 판결들이 다 ‘불법지배’와 ’강제점령’을 전제로 한 판결들”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미 설명드린대로 저는 1905년의 을사조약과 1910년의 한일병합조약을 불법이며 강제라고 하는 전제자체가 잘못된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고 앞선 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국제법적으로도 이러한 제국주의 식민 지배와 병합이 불법이 아니었다는 것은 위에 말한 바와 같이 부전 조약이나 보편적 인권 수호에 대한 개념을 이러한 개념이 없던 시기로 소급할 수 없다는 소급효 금지의 원칙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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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선생님께서 물어보신 <근대화 자체가 갖는 문제점>을 논하기 전에, 

저는 위의 우금치 학살, 동학 지도부에 대한 우상화 조작과 항쟁으로서의 서사 조작, 컴플렉스와 정서에 기반한 혁명 및 저항 서사 조작을 먼저 “근대적” 관점에서 사실관계를 정리하며 반성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제가 한국 사회에서 민감하고 예민한 문제인 일제시대와 반일 민족주의 등에 반성적 성찰을 제안하는 포스팅을 한 까닭은, 이러한 친일파니 위안부니 하는 문제가 한반도 주변 4대 열강과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서 미래 한국의 비전을 위한 개방된 사고와 비전을 모으기는 커녕, 고립되고 폐쇄적인 내파와 자폐적 과거 소비에만 매몰되어 소모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고 위태롭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 사회에서 민감하고 예민한 문제인 일제와 관련한 얘기를 최대한 국제법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잘못된 사실관계를 지금부터라도 바로 잡고 나아가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저의 글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과 근거를 말씀해주시기 보다는, 마치 판결처럼 제 글의 내용에 대해 분류와 평가를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일본 문제에 대해 새로운 견해와 시야를 제시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제안이 나올때마다 친일파니 식민지 근대화론이니 기존의 이분법적인 틀로 분류하여 사회적 낙인과 신뢰성credivility을 무너뜨려 온 기존의 악습이 그대로 반복되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요?

제가 일제강점기를 쓰지 말고 일제시대를 써야 한다는 관점에서 펼쳤던 논점을 <최재원님식 ‘근대화 인정론’>으로 규정하고 저의 제안을 단지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규정하려 하신다면 최소한 그렇게 규정하신 이유를 말씀해주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선생님 지인과 페친들이 모인 플랫폼에 제 글의 일부분을 충분한 전후 맥락 설명없이 발췌하여 인민앞에 재판하듯 비판하신다면 토론자에 대한 수평적인 태도와 존중은 아닌것 같습니다. 

제 글을 대상화하여 페친 분들과 한 마디씩 평가하시는 건가요? 고백드리자면 저는 조금 불쾌함을 느낍니다. 뉘앙스가 아니라, 명확하게 긍정해주시던가 근거를 제시해주시며 비판을 해주시면 그러한 모습이 아니라 생산적인 담론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제안이 “용어를 바꾸려면 먼저 해야 될 일은 그런 담론 자체에 대한 검증이자 비판”그 자체의 행위가 아닌가요? 제가 제도권 역사학계로 들어가 논문이라도 써야 그런 담론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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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문제며 징용문제에서 나온 판결들이 다 ‘불법지배’, ’강제점령’을 전제로 한 판결들이기 때문”이라면 국민감정과 한국 국내의 사투리로 ‘불법지배’, ’강제점령’을 규정해 왔던 근본적인 사실관계와 담론을 엄격한 사실과 국제적 보편성과 맞게 바꾸어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담론이 87체제 30년동안 정착된 것이고 잘못된 것이라면 지금 제가 제안하고 있는 담론들 바탕에서든 어디에서든 토론을 시작하고 논의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애초에 잘못된 전제와 정치적 목적에 종속된 학자들의 논문 양산으로 이뤄진 담론이었다면 그런 담론 자체를 검증하고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관점의 제시와 담론 또한 중요합니다

전체적인 패러다임 설정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든 사실과 국제적 보편성에 근거해서 바라보려는 저의 노력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추종”하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이시는지요? 

저에게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자본주의 맹아론>이라는 틀 자체도 흥미롭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폐쇄적인 학자들의 이분법적인 정치 논쟁이 아니라 철저히 사실과 국제적 보편성에 근거해 시민들과 토론속에서 집단지능을 증대시키면서 역사적 스펙트럼을 조망하는 작업이 훨씬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그것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한국의 학자들이 철저히 정치권력과 돈의 논리에 종속되어 민족주의 선동에 이념자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미 정치적 진영의 시녀들로서 정치선동에 필요한 논거와 자원을 납품하는 행위자인 학자들이 일제의 ‘불법지배’, ’강제점령’의 관념을 형성해 온 근본적인 오류를 지적하고 있나요? 그러한 관점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 아닐까요? 아마 그러한 이유는 일제가 남긴 적산과 인적자산의 바탕에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미래의 국제정세를 통찰력있게 사고하는 젊은이들의 제안이 석박사 논문 지도와 심사과정에서 충분히 배제되거나 묵살되어 왔을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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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Jaewon Choi

박유하 선생님의 글 링크입니다.210327

https://www.facebook.com/100000507702504/posts/4601315896561955/?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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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송

만주국에 남긴 적산과 인적자산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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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김효송 만주국은 한국 근대사에서 뺴놓을 수 없는 공간이자 무대인데 당장 존경하는 박정희 대통령과 백선엽 장군님도 떠오릅니다.^^

우리가 흔히 일식가옥을 “적산가옥”이라 부르는데, 저는 "적산'개념에 대해 동의하지 않지만 편의상 쓴다면, "적산"은 물리적 기반 뿐 아니라 인적 자산이 정말 핵심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게다 만주국은 한국 근대 산업화를 미리 투영pre-visualisation해보고 실천할 수 있는 장이기도 했습니다. 만주국에 대한 연구가 많은 부분에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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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seok Hwang

김효송 대표인물이라 할 건 없지만 일반 민중사에 가까운 저희 집안 이야기가 생각나서 남겨봅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0152936395689374&id=639209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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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seok Hwang

추가로 90년대 한중수교가 되고 중공국 여행이 가능해지면서 저희 집안 어른들이 추진한 일이 이산가족 상봉입니다. 남북상봉에 비해 우선순위가 아니다보니 전혀 지원받지 못 하고 자체적으로 추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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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Junseok Hwang 감동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당시 반도와 만주의 관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글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결론이 더욱 와 닿았습니다. 만주국이 아니라 중국으로 이주했던 양반 사대부 출신들은 자신들이 했던 조선에서의 위정척사 운동이 망국을 초래하자 중국이나 만주로 이주하였고, 특히 중국 국경 내로 이주했던 분들은 중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거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설과 6.25남침의 선봉에 섰던것 같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한국 역사 드라마는 정말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는것 같습니다.

정말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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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

김효송 물적자산의경우 3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인 최대 이민커뮤니티는 조선에서 만주로 변했고 패망시 대외자산이 가장 많았던곳도 물론 만주였습니다. 대공황과 만주사변의 여파로 일본내에선 만주의 자원과 인구를 통해서 개발하자는 군부파들이 적극적으로 기업들을 유치시키곧 했죠. 패망후 만주로 진주했던 소련군은 전후복구를 위해 만주의 시설을 대거 뜯어서 자국으로 가져갔죠 북한이 지금도 자랑하는 수풍댐같은경우 일본이 지은건데 그것도 발전기 몇개정도 떼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은 자산의 경우는 중국 공산당이 국공내전과 전후 경제발전에 잘 써먹죠. 물론 삽질하다가 다칭유전발견한것도 컸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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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

김효송 북한의경우 2차대전시 극소규모의 폭격이 있긴했지만 전체적으론 안정적으로 일본의 시설을 유지한편이었습니다. 일본 패망후 기술자들을 억류해서 기술이전도 강제로 받기도 했고요. 그러나 한국전쟁때 대규모 공업단지가 미국의 폭격으로 거의 소멸화됩니다. 변희재와 진중권의 nll관련 사망유희 토론에서도 언급된 내용인데 지상에서나 공방전이 계속 벌어졌지 해상에서는 un군의 압도적인 우세로 귀결된 상황이라 특히 해안포격이 엄청나서 북한의 주요 항구도시들은 거의 잿더미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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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

김효송 만주국에 남긴 재산들은 거의 소련이 전쟁배상금 명목으로 가져갔죠. 그리고 인적자원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거기서 일본치과의사의 사생아로 태어난 장옥봉이 나중에 모택동의 가장 가까운 비서가 되어 몸과 마음, 그리고 시간을 지배했다는 것이 번듯 기억에 들어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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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김용우 잘 몰랐던 부분인데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제가 구축한 한반도 북단의 중공업 시설들도 그렇지만 일제시대 당시 최고급 휴양도시이자 중공업 도시였던 원산이 <원산폭격>으로 쑥대밭이 되버린 것도 참 안타깝습니다. 원산을 중심으로 한국 근대화가인 이중섭, 한묵, 박수근 등이 살고 교류했었는데 당시 미군의 폭격과 일본에 투하했던 무시무시한 원자폭탄도 투하 계획 중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본격 월남이 감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토론도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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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

최재원 원산이 일본인 위주 도시였기때문에 휴양시설이나 이런게 많이 생길수밖에 없긴하죠 한국에서 호랑이사냥관련해서 하는 헛소리가 일본인의 안전을 위해 잡았다고 하는데 실제 군인 경찰을 제외한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도시에서 거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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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1952년의 원산지역 사진을 보면 시가지와 중화학 공업 인프라는 모두 사라지고 크레이터만 좀 남아 있네요. 원산은 6.25 내내 집중 공습을 당한 북한의 대표 항구 및 교통 요지이자 전략 요충지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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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김용우 호랑이 그 얘기도 지금 보면 거의 설화수준의 각색과 조작같아요 ㅎㅎㅎ 원산이 일본인 위주의 도시인줄은 몰랐습니다. 일제시대 모던에 관심이 많은데 모던의 흔적을 깊이 갖고 있던 도시 중 하나가 원산인데 이러한 일제 모던이 6.25전쟁 중 극단적으로 파괴되면서 근대에 대한 거부 서사를 반박할 수 있는 증거들이 같이 휘발되어 버린 셈이라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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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

최재원 함흥같은경우 약간 한국인들이 어느정도 있긴했지만 원산은 거의 일본인도시였죠. 일본이 식민지배할때 몇개 도시를 위주로 거점으로 해서 운영을하기도 한지라. 전라도의 경우 기존의 양반도시 나주는 일제에 대한 반발이 심해져서 도시개발을 포기하고, 그대신 밀어준도시가 광주인데 학생운동이 벌어졌다는거 자체가 근대화된 도시로 갔다는 의미이죠, 한국전쟁중 미국의회가 국방부상대로 질의한내용중에서 포탄사용이 과도하다고 여러번 지적받긴 했는데. 실제로 국군이 중공군상대로 선전할수있었던게 미국의 엄청난 폭격 + 화력지원인지라. 실제로 의심가는 지역 있으면 포격요청부터 했다고 할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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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

최재원 개성의경우 조선시대 초기에는 전왕조의 수도라고해서 약간 천시하는분위기가 있었지만 상인들이 특유의 수완+ 폐쇄성이 잘 결합해서 조선시대 중기 후기에는 엄청난 상업도시로 자라게 됩니다. 그러나 일제시때 폐쇄성을 계속 유지한 결과 오히려 상업에서 밀려버리는 결과로 나타나게되고 인천같은 항구들이 개성의 역할을 거의 다 뺐어갔죠. 제가본 기록에선 개성에서 일본인 인구는 5퍼센트도 되지 않은걸로 알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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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

최재원 호랑이사냥한게 해수구제정책인데 이거 원조가 유럽이거든요, 루이15세때 제보당의괴수라는 늑대?때문에 아이들, 여성들이 살해당하는일이 벌어졌는데 프랑스가 이거 처리 못해서 온 유럽의 망신을 당한적이 있어서 . 유럽에선 근대화과정에서 대규모로 맹수를 사냥했습니다. 그게 나중에 일본의로 가게되면서 일본의 늑대는 거의 멸종하고 곰도 엄청 많이 줄어듭니다. 근대화를 보면 일단 유럽에서 한두번 시행되었던 정책이 일본에서 시행된후 시행착오를 거쳐서 한국에 시행된것이 정말 많습니다. 대만에서의 정책도 비슷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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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joon You

잘 읽었습니다. 용기있는 주장에 적극 공감하며 응원합니다. 왜 지금까지 우리의 근대에 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접근이 없었던 걸까요. 단지 이땅에 만연한 반일의 풍토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구차한 변명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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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Shinjoon You 우금치 학살 장면을 쓰며 제가 가슴속에 눈물이 흐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통탄하는 심정이지만, 바로 그 공주 우금치에도 근대가 있었고 전근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외세의 등에 업힌 조선 조정은 조선 백성을 스스로 타자화하고 부정하며 학살했죠. 그 반역과 자기 타자화와 부정은 현재 한국에도 존속되어 있다 생각합니다.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반일의 풍토, 반일사상, 반일 민족주의 때문이 아니라, 근대인이란 나와 세계가, 나와 타자가 분리되는 ‘타자화’에서 시작하는 것인데 여지껏 우리는 그 타자를 인질로 붙잡고(레비나스) 반대급부로 자신을 기민하게 위장해 왔을뿐, 개체로서 개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직면하고 진술하지 않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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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han Lim

참 아이러니 하죠?

썩어빠진 왕실과 탐관오리에 대한 반발로 봉기했다는

구조는 동일한데

서북인들의 봉기는 홍경래의 난

전라도인들의 봉기는 민중항쟁 내지는 농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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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임요한 네 맞습니다. 어느 누구의 입장에서 그 민란을 규정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서북인들은 조선 내내 한양의 세도가문과 양반사대부들의 헤게모니에 처절하게 밀려나고 외면받고 생존을 위한 상인정신으로 무장해 살아온 한국 근대사의 핵심 인재들입니다.

현 정권은 일련의 서사조작을 통해 자신들의 “근대에의 거부”서사를 위해 반일 및 항쟁서사로 조작해서 왜곡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 다시 서북인들에 대해 다시 평가해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내용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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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jai Jung

현재의 인권과 자유민주주의 개념으로 동상을 세울 조선-대한제국시대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하네요. 혹시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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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Hojai Jung 전봉준이 현재의 인권과 자유민주주의 개념으로 동상을 세워 기릴 인물이 아니라고 썼습니다^^

 · Reply · 15 h

Hojai Jung

최재원 그러니까요....누가 있는지 여쭙는 겁니다. 공격적인거 아니니 안심하세요.

 · Reply · 15 h

Jaewon Choi

Hojai Jung 물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떠오르는 인물도 있지만 그렇게 여쭤보시는 이유와 배경을 혹시 제가 안다면 좋을것 같습니다.^^ 긴 글을 쭉 쓰고 났더니 당도 좀 떨어진 상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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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jai Jung

최재원 저는 그나마 녹두 전봉준 이라는 인물이 가장 근대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고종이나 민비 동상을 세우는 것 보다는 훨씬 더 근대적이고 현대적이지 않나 해서요.

 · Reply · 15 h

Jaewon Choi

Hojai Jung 저는 선생님의 생각을 존중합니다. 사람에 따라 존경하는 인물과 가치관이 당연히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동상 자체를 극혐합니다만^^ 만일 굳이 근대적인 인물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면 일본에서 종두법을 도입해 온 지석영 선생님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는 소위 "근대"를 관념이나 사상으로 접근했던 개화파 등의 인물보다도, 일본에서 <종두귀감>이라는 책을 통해 우두법에 대한 지식을 익히고 병원에서 직접 군의관들에게 기술을 배워 종두법을 들여온 지석영 선생님에 대한 깊은 감사함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근대”의 출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마라고 부르며 이 병마와 주술에 대해 가졌던 전근대인들의 공포와 미신으로부터 벗어나 실질적으로 근대적 의술을 통해 그들을 병으로부터 구원해줬던건 담론이 아니라 바로 의술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존경하는 지석영 선생님의 동상을 세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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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Hojai Jung 마침 제가 정읍의 전봉준 동상을 철거해서는 안된다고 쓴 포스팅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https://www.facebook.com/100003192182175/posts/3647617115354659/?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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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Kwan Kim

크게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Reply · 15 h

Tune Rhee

저도 근본적으로 한국인들이 한일합방을 마치 불법이고 강제병합이라고 단정 및 인식을 한채로 이야기를 자꾸 진행해나가는 것이 반일주의의 핵심적인 모순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제군주로서 모든 권력을 행사하는 왕이 전쟁 한번 하지 않고 자신의 가산인 조선이라는 국가를 일본제국으로 양도한것이 사실인데, 이것이 어떻게 강제이고 강탈이 될수가 있나요?? 당시 국제사회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도, 엄연히 대영제국과 미국의 허가와 동의를 얻어 진행된 합병이므로,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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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Tune Rhee 그러니까요 가부장적 절대군주제에서 백성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고종이 일본 황실로 편입되고 얼마를 지급받는 등의 실무적이고 세부적인 협의를 거쳐 (백성들 빼고) 자기들은 챙길 것들 잘 챙기고 차분하게 체결한 조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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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ne Rhee

최재원 이토 히로부미가 고종과 담판을 짓기위해서 마주앉아 주고 받은 적나라한 대화만 들여다 보아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피해자인척 할 수는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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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Tune Rhee 을사조약이 체결된 다음날 매일신보 보도가 여론 형성에 결정적이었어요. 고종이 을사조약을 알리는 보도의 프레임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을사5적이라는 타겟을 생산해 내었고, 또 성리학 관념에서 백성들은 왕을 탓하지 못하니 대신들에게 그 증오의 표적을 돌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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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ne Rhee

최재원 을사오적도 가만 생각해보면 참 말도 안되는 선동이지요. 권력과 권한은 전제군주가 오롯이 가지고 있는데, 밑의 신하들이 작당해서 집문서 팔아 넘기듯이 나라를 팔아넘겼다는게 가능할리가 없는데 말입니다. 권력은 책임과 함께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조차 싹틀 수 조차 없었던 나라였기에 을사오적 같은 선동이 그 당시에는 먹힐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 그 당시 사람들은 그렇다고 쳐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도 그 선동이 아직도 설득력이 있다는것이 바로 이 사회가 유교 성리학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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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Tune Rhee 선생님 말씀에 정말 깊이 동감합니다. 저도 부족하고 무지 투성이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존경받아야 할 위인과 인물들이 모두 “친일파”낙인으로 즉 더이상 학습하지 않는 영역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이 우연히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편향 인식과 무지가 아니라, 특정한 퍼스펙티브의 의도된 조작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근대에의 거부와 저항을 하는 386운동권과 래디컬한 친중종북 세력의 일본 타자화 전략에도 기반을 두고 있다 생각합니다.

유교성리학을 철저히 파괴하고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철저히 서구화total westernization와 근대화, 개인주의화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20대는 어쩌면 그러한 방식에 이미 익숙할수도 있고, 어쩌면 더 선호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성세대도 두려움을 가지면 안됩니다. 서구화하면 할수록 한국 전통과 유교 성리학 조차도 획기적이고 참신한 새로운 관점의 학문 성과로 터져 나올 수 밖에는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낯설게 하기 없이, 자신에 대한 인식도 없습니다.

지금 을사오적 같은 선동이 먹히고, 유교성리학적 세계관의 지배가 간교한 조작과 기만으로도 공고하게 유지되는 까닭은 그만큼 우리들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말씀이 정말 맞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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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d Bon-Hyun Koo

이씨조선 왕조가 일본 황족에 편입되어 호의 호식하다가 일본의 1945년 태평양전쟁 패망후 모든 편의 제공이 중단된 사실도 제대로 알리고, 예술계도 사실에 입각해 오페라 명성황후 재해석해야 합니다. 우리와 일본을 알기 위해 국사 공부 다시 해야 됩니다.

8부작 한명기 교수의 임진왜란을 얼마나 아십니까? 부터 시작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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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구본현 중요한 말씀입니다. 고종이 나라와 백성을 내팽개쳐두고 쥐새끼처럼 각국 공사관에 파천과 파천을 다니던 길을 <고종의 길>로 조성하겠다는 수준입니다. 정말로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우리가 역사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계도 당장 돈 되고 인기 된다고 국뽕 빠는 민족주의 서사조작에 편승하기 보다 지금 저와 얼마든지 관점이나 해석이 다르더라도, 사실에 입각한 다른 콘텐츠가 창작된다면, 한국 국민 뿐 아니라 일본인들과 미국인들과 외국인들과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로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생각합니다.

한국은 이제 경제강국이고 얼마든지 자신의 과거 모습의 상처와 콤플렉스도 당당히 직면하고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조국이 아직 부끄럽다면 저도 이런글 쓰지 못할 것입니다. 의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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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신

저는 최재원님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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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최한신 감사합니다. 큰 격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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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신

최재원 힘내세요 소수지만 최재원님같은 분에 있어야 발전합니다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 Reply · 14 h

Soyeon Yang

식민지근대화론VS 자본주의 맹아론이면,이건 경제학적 관점일텐데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식민지근대화론하면 경제학적에서만 접근하기보다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켜줬다구?'하면서 화부터 내는 사람들 많던데요,

철도 공장같은 산업적인것 이외에도 신분제철폐, 사법제도, 행정 및 관료 제도, 은행 등의 금융제도, 교육 제도 ,근대의 학문등이 일제에 의해 조선에 이식된게 명백한데 이게 부정이 가능할까요?

심지어 위안부의 모태가 된 공창제조차 '근대적 공창제(관리매춘)'라고 하면서 전근대적 공창제(관기)와 구별하던데요.

경찰제도와 함께 공창제를 유럽으로부터 수입했다고 하더군요.

일제가 근대화시켜줬다라기보다 '일제에 의해 근대화되었다, 혹은 양국병합에 의해 조선에 여러가지 근대시스템이 도입되었다'라고 쓰면 반박의 여지가 없을것 같습니다.

참고로 미국에서 모대학다니던 어느 분은, 교수가 '조선의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해서 뒤에 '론'이 붙는게 이상하다고 일제에 의해 조선이 근대화된게 명백한데 거기에 왈가불가할게 뭐있냐고 했답니다 ㅋㅋ

어렸을때는, '식민지근대화론=뉴라이트의 주장, 뉴라이트=역사왜곡하는 극우놈들 '이란 소릴 하도 많이 들어서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하나하나 알아가다보면 식민지근대화론이 무엇이 그렇게 잘못되고 나뿌다는건지도 도통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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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Soyeon Yang 저도 그 모대학 분과 의견이 비슷합니다. 애초에 일제시대에 근대화된 것이 명백하고 그것은 얘기 자체가 필요없는, 아니 테마 자체도 되지 않는 문제라 생각합니다.

다만 식민지 근대화 ‘론’으로 분류한 다음 뉴라이트 진영이라는 표적을 덧씌우고 역사 왜곡한다는 극우에 대한 증오로 민족주의 위정척사 세력이 단결하여 공격하는 지리멸렬한 방식에 저는 반대한다는 의미로 썼던 것입니다.

저는 일제가 구축한 모든 도시 인프라와 소위 적산이라고 하는 기반 위에 무엇보다 일제시대의 교육을 받은 인적 자산 위에 한국의 경제강국으로의 도약이 이뤄진 것이라는 점을 저는 더욱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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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Kwan Kim

최재원 당연한 것도 못받아들이니 이모냥이꼴로 사는 거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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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eon Yang

최재원 네덜란드는 아프리카의 식민지였던 (이름도 기억안남;;;) 신생독립국에게 자기들이 남겨놓은 자산에 대해 보상청구해서 그 나라는 그거갚느라 피똥싸고 있다는데,

그런경우에 비하면 한국은 완전 럭키한편이죠 ㅋㅋ

미국 및 유럽의 경제학계에서는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은 제국주의와 냉전의 수혜라고까지 한다는 소릴 경제학전공자들이 떠드는거 주워들었는데, 더 짧게 말하면 일제와 미제 덕이란 소린데,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ㅋㅋ

 · Reply · 12 h

Chee-Kwan Kim

Soyeon Yang 대한민국의 번영에 미국은 충분조건은 아니더라도 필수조건이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일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라는 제국의 질서에 포섭된 것이 한국의 번영의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무지하거나 위선적이거나 둘다일겁니다.

 · Reply · 12 h · Edited

Soyeon Yang

김치관 그나마 미제덕봤단 소리는 해도 되는데 일제덕봤단 소리 했다가는 큰일납니다 ㅋㅋ

암튼 나쁜 건 다 외세 탓, 잘 된건 다 지들이 우수하고 뛰어난 민족 덕이라고 하는 국뽕사관에는 결사반대~~!!

 · Reply · 12 h · Edited

Jaewon Choi

김치관 현 정권은 대통령 특보부터 국립외교원장까지 어떻게든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것 같습니다.

"한미군사동맹 약화가 국익 부합"이라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하네요

"7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미동맹은 신화가 됐고, 한국은 동맹에 중독돼왔다. 이는 압도적인 상대에 의한 '가스라이팅' 현상과 닮아 있다." 이 사람은 지금 북한의 가스라이팅과 미국의 그것을 정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https://m.mk.co.kr/news/culture/view/2021/03/303025/

"한미군사동맹 약화가 국익 부합"…김준형 외교원장 파격 주장 논란

MK.CO.KR

 Reply · 11 h

Junseok Hwang

경제사에서 경제의 근대화 : 근대적 경제성장은 총생산의 증가 즉 경제성장률이 인구증가율를 넘어서는 상태의 지속입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사이먼 쿠즈네츠)

이러한 이론에 부합하는 현상은 언제 일어났을까요? 1.조선시대 , 2.조선말 개화기, 3.일제시대, 4.해방이후:

1번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매우 환상적이며, 2번이 소위 맹아론인데 한국경제사학자들이 통계도 없는 이 시기를 여러 방향으로 추정해봤으나 그렇지 못 했다는 것이 단지 방법이나 이념의 문제는 아닐 것이고, 3번은 통계에 근거하고 있으나 그 통계가 작위적이라는 비판을 하는 쪽은 그런 국가운영이 이상향인가 싶고, 4번은 123 모든 시기에 비해 경제성장이 명확해서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것이 시작인지 한참 진행된 결과인지 따지기에는 그 기간 전세계적인 국제무역 활성화와 그로 인한 경제성장세를 염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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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eon Yang

Junseok Hwang 배만 타시는 줄 알았는데, 이런것까지 알고계셨다니 스고이스고이~!!

 · Reply · 11 h

Stanley Suh

일본의 역활을 청나라가 했더라면.... 끔찍하죠 일본이라 다행이란 측면이 아니고 정말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고종의 무능함 우둔함은 문제인이 뺴다 밖았습니다.

 · Reply · 6 h

Jaewon Choi

Stanley Suh 당시 조선은 독립국이 아니라 청나라의 속국에서 식민지로 전락한 상태였습니다. 원세개의 폭정을 논하기 전에 고종이 일 잘하는 사람보다 세고 강력한 사람을 보내줘서 전반적으로 나라의 업무를 봐주면 좋겠다고 청나라 조정에 요청을 해서 원세개가 왔던 즉 자발적 식민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를 모르고 고종을 반성적으로 성찰하지 않으면 다시 고종이 나타나고 어리석은 백성이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당시 원세개는 난폭하고 수탈이 극심했지만 그를 비판하기 전에 먼저, 조선의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차갑게 직시해야 합니다.

 · Reply · 58 m · Edited

Stanley Suh

Jaewon Choi 현 정부의 화교에게 투표권을 준것은 고종보다 더한 매국행위로 봐야겠죠..

 · Reply · 45 m

Jaewon Choi

Stanley Suh 네 저도 잘못된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 Reply · 41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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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eon Yang

'불법지배와 강제점령' 이 위안부와 징용공에게 배상해야 할 근거라면, 한국군위안부와 미군위안부 그리고 징병제에 의해 징병된 한국인들은 영원히 사죄와 배상을 받을수 없게 되는거로군요.

대한민국헌법에는 북한을 불법적인 괴뢰국가라고 규정하고 있다던데 김씨정권에 의한 징병과 징용은 사죄와 배상을 요구할수 있게 되겠구요.

 · Reply · 12 h

Jaewon Choi

Soyeon Yang 저는 한국인이 사죄와 배상을 받아야 한다는 자체를 이제 그만하고, 자신이 자행했던 행위에 대해 성찰하면서 미래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헌법과의 괴리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 한국이 북한을 괴뢰국이라 해도 유엔동시가입으로 북한을 적어도 국제적으로는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게 되었지만 북조선과 한국은 아예 다른 국가이고 김씨정권이 강제 징용을 했건 사죄와 배상은 없고 북조선 스스로 알아서 잘살면 된다 생각합니다.

한국은 북한을 타자화하기 시작해야 해요. 공산당들의 이러한 공작이 한국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정말 깊고 끔찍합니다^^

 · Reply · 11 h

Soyeon Yang

최재원 저는 북조선 김씨정권에 사죄, 보상 책임의 유무를 꼭 따지려는게 아닙니다.

일본에게 '불법지배 강제점령'을 근거로 해서 반드시 사죄와 배상을 받아야만 한다면, 북조선에게도 적용될수 있다는걸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만약에 한국에 의해 북한이 흡수되어 통일이 된다면, 일본한테 들이대었던 잣대로 그들에게도 책임을 물을수 있다는거죠.

 · Reply · 11 h

Jaewon Choi

Soyeon Yang 네 저도 그렇게 읽었어요^^ 그런데 만일 그렇게 된다 해도 북조선에게는 배상을 받는게 문제가 아니라 북조선에 들어가는 돈 때문에 더욱 문제일걸요?

전 독일 살면서 통일에 대한 막연한 환상적 기대와 시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일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제 감정과 관성이 아니라 정말로 사실과 진실에 근거해서 한일 양국이 잘 공조해 갔으면 좋겠어요.

 · Reply · 11 h

Soyeon Yang

최재원 허나 현실에선 북한이 중국에 먹히기 전에 한국이 북한을 잘 구워삶아 통일을 이루어내야 풍부한 자원과 싼 노동력을 이용해서 경제적으로 개이득을 얻을수 있다라고 당당히 외치고들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제국주의(일본제국 포함) 를 왜그리도 증오하는지 도통 알수가 없는 一人입니다 ㅋㅋ

 · Reply · 11 h · Edited

Jaewon Choi

Soyeon Yang 한국인들은 지금 북한이 쉽게 구워삶아 질 거라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경제적 개이득은 중국이랑 경제협력 잘하고 일본과 미국하고는 더욱 긴밀하게 상호 이익을 고수하면서 가야 한는데 지금 통일이나 무슨 상황 되면 부동산도 투자하고 인력 쓸 수 있다는, 지극히 기능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관점에서 판타지처럼 문제에 접근하고 있어요.

그래서 주사파들은 더욱 반일민족주의 선동에 열심인 거구요^^ 북한이 경제난 때문에 대남한 공작자금을 못 쓰는것 같던데 입금 안해줘도 알아서 북한 빨아주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힙니다. 🙂

 · Reply · 11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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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Hyo Kim

1. 동학란은 조선말의 여타 민란과 달리, 대원군이 정권 탈취 쿠데타를 위해 전봉준을 시켜 호남에 사태를 부추겨서 발생한, 이조말 “광주사태”입니다.

2. 당시 호남은 조선 후반 3백년동안 발전한 모내기농법혁명이 마지막으로 보급/진행되어, 역사상 최초로 곡창으로 새로 나기 시작한 “신천지”였고, 조병갑은 흔히들 덧씌워진 탐관오리가 아니라, 농업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만석보를 개량한 개혁관리였는데, 전봉준과 그 후예들이 자기들 작당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탐관오리로 낙인씌운 겁니다.(120년 뒤 똑같은 수법으로 박근혜대통령을 탄핵했죠.)

3. 당시 동학을 빙자한 전봉준 무리들의 심리적 배경은, 이후 우리 사회를 좀먹어온 박헌영류의 소위 “서얼들의 삐뚤어진 깽판 심리”와 동일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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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 Ho Cho

김동효 그래서 조기숙이 조병갑 가렴주구 건에 대해 자기가 할 말이 있다고 했었군요.

 · Reply · 10 h


Jaewon Choi

김동효

1. 제가 아직 그 부분에 공부가 부족한 상태라 위의 글에서는 “설”이라고만 표현해 두었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추정하고 있는 유력한 시나리오는 말씀하신 기획민란의 가능성이 클 것 같다는 쪽입니다. 즉 청나라를 등에 업은 고종과 민비, 민씨척족 세력으로부터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일본을 등에 업은 대원군이 청나라의 감시가 있으니 배후에서 전봉준을 사주하여 호남지역에 민란을 획책했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대원군과 전봉준이 접선을 했고 긴밀한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까지는 접근했지만 이는 기존의 동학란의 존재론을 근본부터 뒤엎는 주장이라 아직 확정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닌 것으로 후에 고증을 통한 새로운 가설의 가능성으로 남겨둔 상태입니다.

2. 저는 선생님 말씀이 상당히 일리있는 근거라고 봅니다. 호남지역의 농업 생산성 향상과 부의 증대가 기술적으로 진화된 농법으로 인한 것이고, 현재 소위 “일제 모던과 근대화 지식인들”이나 “대한민국 건국 위인들”을 ‘친일파’로 표적삼아 사회적으로 죽이는 행위가 이미 당시에도 교활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었을거라 봅니다. 지역의 토호세력과 서원을 중심으로 한 압도적 다수의 위정척사 세력에 의한 낙인찍기와 정죄의 형태였을 것이고, 그 대상은 개혁적이거나 보다 근대적인 방식을 추구했던 사람에게 타겟팅되었을 가능성이 컸을거라는 점입니다. 제가 좀 더 깊이 공부해서 들여다 보겠습니다. 좋은 인사이트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3. 좀 더 공부하고 고민해보겠습니다. 정말이지 하나의 퍼스펙티브가 아닌, 고종과 대원군, 일본제국과 청나라 사이 갈등이 증폭되는 시점의 적극적 공작 차원에서 입체적으로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동학은 이후 일진회와 천도교 등으로 이어지거나 분파되고 해체되기도 하는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당시 사람들은 조선 왕조체제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거나 요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Reply · 10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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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글 잘 읽었습니다. 최선생님 글에서 제가 “새로운 생각을 억업하는 꼰대 교수가 된 듯 하네요. 저는 최선생님의 시도를 지지하는 편이었고 나름 민주적이려고 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받아들여졌다니 안타깝네요. 아무튼 이하 간단히 답변하겠습니다.

1.

저의 “지인과 페친이 모인 플랫폼”이라 하셨는데, 최선생님과 저의 함아친은 375명이나 됩니다. 함아친이 가장 많은 페친이 500명 넘는 정도이니 이정도면 많은 편 아닐까요?

제 페친이 5천 가까워도 글에 반응하는 사람은 보통은2,300. 최 선생님 페친과 겹치는 사람이 많을 것이고 따라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판할 생각은 없었다는 걸 먼저 말씀 드려둡니다. 저는 웬만해서 다른 분을 태그하지 않고, 당연히 보실거라고 생각하고 쓴 글입니다.

대화가 아니라 “재판하듯 비판”했다고 느껴지셨다면 그 부분 사과하지만, 사실 논쟁을 하기 위한 글은 아니었으니 그런 논조가 된 것도 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반론이 있으시면 이런 식으로 써 주실 거라고 생각했지만 금방 쉽게 접점을 찾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2.

이 글이 저에 대한 반론이라면

<근대에의 거부와 저항”을 위한 서사조작>이라는 제목은 적절하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이해하시는 의미에서의 “근대에의 거부와 저항”을 한 적이 없으니까요.

이미 잘 아시겠지만 최선생님의 문제 제기와 제기방식 자료 등에 대해서 저는 기본적으로 공감합니다. 하지만 근대이해나 지향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었고 지난번에 쓰신 글에서 그게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에쓴 글이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쓴 글이었죠.

<명확하게 긍정해주시던가 근거를 제시해주시며 비판을 해주시면 그러한 모습이 아니라 생산적인 담론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원래 글은 일제 강점기 라는 말을 바꾸자는 제안이었고 저는 그 취지에 찬성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효과적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 것인데 “명확히 긍정”하라는 건 부분비판이나 제안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로 들리네요. 제가 굳이 나선 건 실은 그 문제가 요즘 제가 생각중인 문제이기도 해서였습니다. 논문이라도 써야 하냐고 말하셨지만 취지는 인정하되 좀 더 구체적인 방식이 필요하다고 했을 뿐인데 그게 왜 논문쓰라는 얘기가 되는 걸까요. 또 제가 근대비판근거를 쓴 부분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으셨네요. 말씀하신 “생산적인 대화”가 되려면 제가 한 말에 대해서 먼저 반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써 주신 글은 아쉽게도 제 글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과 태도만 문제시한 셈이 되었네요.

. <왜냐하면 “반일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근대에 대한 거부와 저항“이 386운동권을 중심으로 사회, 교육, 시민단체 등을 통해 꾸준히 세뇌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

예를 들면 이런 말이 왜 저에게 향하는지도 이해하기 어렵군요. 저는 20년 전에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 라는 책을 쓴 바 있습니다.

3.

지난번에도 그랬고 가장 공감하기 어려운 건 제국주의 점령을 “합법”으로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저는 불법 /합법론 양쪽다 문제를 느끼고 있고, 그런 얘기도 20년 전부터 해 왔습니다.

<부전 조약이나 국제연합의 보편적 인권수호 개념이 생기기 전의 세계에서는 국가의 합법적인 수단으로서의 전쟁 수행이나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공권력에 의한 팽창주의와 제국주의에 의한 그 지배는 모두 불법 아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환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라고 하셨는데 그 법이 강대국들만의 “그들만의 법” 이라는 인식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이 부분은 결코 접점을 찾을 수 없겠지요.

최선생님 생각이 구조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일 수 밖에 없다는 저의 비판을 부정 하시려면 제가 한 말에 대한 직접적인 반론을 쓰셔야 할 듯 합니다. 근대=문명화 선전과 인식이야말로 제국주의자는 물론 식민지인들조차 제국주의를 내면화시킨 것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이런 비판이 근대를 전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일본에 의한 근대화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잘 아실 겁니다.

4.

한가지 오해하신 듯 합니다.

“위안부문제며 징용문제에서 나온 판결들이 다 ‘불법지배’와 ’강제점령’을 전제로 한 판결들”이라는 말을 한건, 그게 옳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그런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아실 줄 알았는데요.

저역시 <1905년의 을사조약과 1910년의 한일병합조약을 불법이며 강제라고 하는 전제>에 대해 일찍부터 문제제기를 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합법이라고 말할 생각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부당성에 대한 인식이고, 법에 위배 되는지 여부가 아니니까요. 그런 생각은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수많은 문제들을 허용합니다. “국제적 보편성”이란 강대국간의 ‘그들만의’ 보편성이 기도했습니다.

<제가 일제강점기를 쓰지 말고 일제시대를 써야 한다는 관점에서 펼쳤던 논점을 <최재원님식 ‘근대화 인정론’>으로 규정하고 저의 제안을 단지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규정하려 하신다면 최소한 그렇게 규정하신 이유를 말씀해주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

댓글에 제가 썼던 구체적인 이야기를 보지 못 하신 듯 합니다. 저는 근대의 긍정적인 부분을 수긍하지만 무조건적인 근대수긍론을 비판해 왔습니다. 우연이지만 어제 올렸던 책도 바로 그런 책입니다. 문명론자 소세키가 어떻게 제국주의자가 되어 갔는지를 썼지요.

제국일본은 확장전략을 유지하려 근대적 질서를 만들고 결국 자국민 수백만명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래도 근대화를 100% 인정할 수 있는 건가요.? “근대국민국가”라는 개념이 말해 주는 것처럼 근대야말로 내셔널아이덴티티를 주입시켜 모든 개인을 국민화한 시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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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ply · 10 h

Jaewook Jeon

Park Yuha

“제국일본은 확장전략을 유지하려 근대적 질서를 만들고 결국 자국민 수백만명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래도 근대화를 100% 인정할 수 있는 건가요.?”라고 하신 대목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근대적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확장전략이 수반되었고 통제불능의 상태로 진행되어 크나 큰 비극을 초래했다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근대화에 대한 불편한 생각도 완화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근대로의 진행은 글로벌한 관점에서 볼 때 필연적인 것이었고, 그 부작용에 대해서는 개별적 이슈에 대한 corrections 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야하는 것이지 근대를 수긍하느냐, 또 어느 정도 수긍하느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반근대, 회고적 흐름에 올라탈 것이 아니라면요.

 · Reply · 43 m

Park Yuha

전재욱 제가 말한 근대적 질서는 국가통합을 말합니다. 근대국가로 거듭나면서 ‘국민’이라는 개념을 창출하고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는 교육을 했지요. 그외 여러가지 많지만 생략합니다. 근대를 문명화로 생각하고 선진국이 후진국을 계도/해방시킨다는 명목으로 지배가 정당화 되었고요

. 어떤 미명을 내세우든 지배는 차별을 낳고 인간간의 불평등을 초래합니다. 지배/종속 관계여도 문명화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 지점의 차이일 뿐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그런 관계는 일상에서는 종속이어도 비일상국면에선 희생을 강요 당하거나 제거당합니다. 따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그렇다는 얘기 입니다. 그래서 동시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구요.

 · Reply · 33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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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5.

<박유하 선생님께서 물어보신 <근대화 자체가 갖는 문제점>을 논하기 전에, 저는 위의 우금치 학살, 동학 지도부에 대한 우상화 조작과 혁명사건으로서의 서사 조작, 잘못된 전근대적 판단의 오류와 잘못, 콤플렉스에 기반한 혁명 및 저항 서사 조작을 먼저 “근대적” 관점에서 사실관계를 정리하며 반성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

어떤 문제를 논하는데 선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비교적 많은 문제들을 ‘동시에’ 묻는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택일을 좋아하는 사람들(학문이 운동/정치화 되면 그렇게 됩니다)한테는 답답할 수 있지만 그런 “유보”적 자세야말로 평화의 첫걸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6.

<저는 한국 사회에서 민감하고 예민한 문제인 일제와 관련한 얘기를 최대한서 바라보고 잘못된 사실관계를 지금부터라도 바로 잡고 나아가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저의 글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과 근거를 말씀해주시기 보다는, 마치 판결처럼 제 글의 내용에 대해 분류와 평가를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일본 문제에 대해 새로운 견해와 시야를 제시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제안이 나올때마다 친일파니 식민지 근대화론이니 기존의 이분법적인 틀로 분류하여 사회적 낙인과 신뢰성credivility을 무너뜨려 온 기존의 악습이 그대로 반복되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 글에 쓴 것처럼 아주 심플한 글이었고 “우선” 쓴다고 썼지요. 그래도 필요최소한도의 “생각과 근거” 는 썼습니다. “새로운 견해”를 억누른 게 아니라 그런 견해가(제국주의 긍정, 근대화 무조건 긍정)더 확산 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서 쓴 겁니다.

최 선생님과 비슷한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미 많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역사 기술과 새로운 자료제공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반갑게 생각했고요. 그런 제가 최선생님 의견을 억누를 이유가 없고 제가 비판한 건 논지와 지향방향입니다.

구체적으로 좋은 말씀 많이 하셨고 앞으로도 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만 가능하다면 비판을 억압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여유될 때 귀기울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7.

<그리고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제안이 “용어를 바꾸려면 먼저 해야 될 일은 그런 담론 자체에 대한 검증이자 비판”그 자체의 행위가 아닌가요? 제가 제도권 역사학계로 들어가 논문이라도 써야 그런 담론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인가요? >

역사적 검증은 당연히 필요하고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가 충분히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끝없는 대립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논지를 뒷바침 하는 인식과 배경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한 겁니다. 이미 썼지만 강제성을 주장하는 이유는 불법 등을 강조해서 배상을 받기 위한 것이고, 멀리는 북한의 조일수교를 의식한 것이기도 합니다. 관계자 모두가 거기까지 의식했다는 건 아니고, 이런 담론이 만들어지는 초기를 보면 그렇다는 얘기 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시 쓰지요. 거기까지 가지 않으면 최선생님 제안이 현실화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겁니다. 최선생님 시도를 제가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받아들이신 듯 하지만 인정하기 때문에 지향하는 방향에 대해 문제제기한 겁니다.

8.

<위안부문제며 징용문제에서 나온 판결들이 다 ‘불법지배’, ’강제점령’을 전제로 한 판결들이기 때문”이라면 국민감정과 한국 국내의 사투리로 ‘불법지배’, ’강제점령’을 규정해 왔던 근본적인 사실관계와 담론을 엄격한 사실과 국제적 보편성과 맞게 바꾸어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담론이 87체제 30년동안 정착된 것이고 잘못된 것이라면 지금 제가 제안하고 있는 담론들 바탕에서든 어디에서든 토론을 시작하고 논의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

말씀하시는 사실관계 확인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장 최선생님 말씀하시는 ‘젠틀맨’적 조약을 읽어 보셨지요? 조선이 먼저 일본에게 조선을 바친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일본이 그러면 받겠다고 얘기 하죠. 이 순서를 누가 정했는지 몰라도 아주 교묘한 조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선생님 문제제기의 의의를 인정하고 평가하는 저조차 인정하기 어려운 담론이라면 어떻게 확장성이 있겠습니까? 다시 말해 지금 목소리 큰 양쪽 담론중 한쪽과 어떻게 다른지를 말씀하실 수 있을지요? 식민지 근대화론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니까 여쭤보는겁니다.

<저에게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자본주의 맹아론>이라는 틀 자체도 흥미롭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폐쇄적인 학자들의 이분법적인 정치 논쟁이 아니라 철저히 사실과 국제적 보편성에 근거해 시민들과 토론속에서 집단지능을 증대시키면서 역사적 스펙트럼을 조망하는 작업이 훨씬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그것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한국의 학자들이 철저히 정치권력과 돈의 논리에 종속되어 민족주의 선동에 이념자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미 정치적 진영의 시녀들로서 정치선동에 필요한 논거와 자원을 납품하는 행위자인 학자들이 일제의 ‘불법지배’, ’강제점령’의 관념을 형성해 온 근본적인 오류를 지적하고 있나요? 그러한 관점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 아닐까요? >

<아마 그러한 이유는 일제가 남긴 적산과 인적자산의 바탕에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미래의 국제정세를 통찰력있게 사고하는 젊은이들의 제안이 석박사 논문 지도와 심사과정에서 충분히 배제되거나 묵살되어 왔을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위의 학자 비판이 저를 겨냥한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제가 썼던 글 중 언급하지 않으신 부분 덧붙여 둡니다.

답변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

당시 일본 사람들조차 조선을 “식민지”(외지란 식민지와 점 령지를 모두 포함한다)로 규정했고, 그런 전제하에 포섭과(동일화) 차이화(차별)정책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말하자면 “근대적 개인”으로 보이는 모던 걸/보이들이 받았던 교육 역시도 ‘충량한 황국신민’이 되는 교육이었다.

실은 최재원님이 비난하는 민족주의자들도 강점론을 바탕으로 (‘식민지’ 아닌)교전국이었다고 주장하면서(이 논지가 성립해야 임시정부법통론도 성립한다)도 실질적으로는 ‘식민지 피해’를 주장한다. 말하자면 이끌어내고 싶은 결과를 염두에 두면서 논지에는 일관성이 없는게 현재 진행 중이거나 끝난 역사청산 재판들의 문제점이다.

교전국이라거나 아군이었다는 식으로 주장은 완전히 다르지만 ‘식민지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이 양쪽 역시 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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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ply · 10 h

김용우

천주교같은 외국종교 배척, 서양문물거부, 국가 고유의 정신회귀, 이런걸 보면 그냥 의화단이랑 비슷한 수준같습니다.(물론 의화단처럼 대량학살은 안함) 근대화에 밀려서 사라질 사람들이 기존 정치세력과 연합해서 들고 일어난거라고 봐야죠.

 · Reply · 9 h

Stanley Suh

글 잘읽었습니다 21세기 문재인 정부의 정체가 더 선명해졌습니다. 대한민국 학자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

 · Reply · 6 h

Hiromi Kobayashi

글 잘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열심히 한국어 읽었습니다;;

 · Reply · 6 h

Jaewon Choi

Hiromi Kobayashi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한국어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을텐데 제가 능력이 부족해 더 짧고 간결하게 쓰지 못했습니다.

 · Reply · 3 h

Stanley Suh

세번을 읽으면서 읽을수록 화가 납니다...좌우를 떠나 대학교수들 정말 화납니다... 현 정권 정말 화납니다. 전교조 세대들 스스로 화를내고 무었이 문제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 Reply · 6 h

Jaewon Choi

Stanley Suh 지금 한국은 좌우 문제가 아니라, 전근대의식과 조선 유교성리학이 더욱 문제입니다. 한국 대학 교수들의 이 깊은 엘리트 부패 카르텔은 마치 절대 깰 수 없는 것처럼 자기들끼리 공고히 유지되고 있고, 정권 선동의 반일 민족주의에 이념자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국가권력과 돈에 학자들이 누에처럼 딱 붙어 어떠한 생각의 다양화나 새로운 관점의 제안도 하지 않고 한반도 주변 4강의 국제질서에 나라의 운명이 항상 뒤흔들리는 국가가 국사와 세계사와 외교사를 각각 따로 갈라놓고 자기 밥그릇 공부만 하는 한심한 작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마저도 근대적 교육이 아니라 자기 정신승리법 투성이입니다. 그게 망국으로 유인했던 우물안 전근대 개구리의 한계였던 것을...아 모든 것을 나쁜 일제 탓을 하니 자기는 다시 조선을 회복해서 사서삼경을 읽거나 태종태세문단세 하고 있으면 되나요?

대한제국 망국사를 공부하고 토론해야 하고 망국과 병합, 일제패망과 공산당들의 온갖 공작과 방해속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투쟁과 도전을 아직까지도 벗어나지 못한채 휘청거리는 나라가, 과연 어떻게 국사 세계사 외교사를 따로 나눠놓고 자기 밥그릇만 안전하게 유지되면 된다는 이런 안이한 의식으로 버티는 것인가요?

제가 소명을 갖고 이러한 주장을 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이 카르텔에서 꿀빨고 계시는 학자분들이 새로운 의견을 존중하거나 듣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면서 제 글 카피해다가 정보적으로 취사선택해 자신의 논문에 쓰거나 드시기는 하죠. 글 잘 읽었다는 인사 조차도 없이 말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모든 걸 조선신분제의 틀로서 보고 캡처해다가 뒤에서나 보고, 역사를 전공도 안 한 놈이 떠든다고?...전 대한민국에서 대학과 교수집단의 끔찍한 부패보다 한국에서 더욱 최악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이 마치 개화기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고 우물안에서 도덕적인 척하며 제국주의 나뻐. 그래도 강대국 힘의 논리는 무뚝뚝하게 청구되고 행사될 것이란 점입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있다면 그 폐쇄와 고립으로 되돌아올 댓가 앞에서도 조용히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죽으려면 위정척사 세력만 죽으라는 겁니다. 왜 젊은이들까지 피해를 봐야 하죠?

 · Reply · 3 h · Edited

Park Yuha

최재원 이 글에서의 주장, 많은 부분 공감하고 교수들의 문제도 공감하지만 그런 문제라면 민족문제연구소 같은 곳이 한 역할을 간과할 수 없고, 대학만 비난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우용선생도 대학교수는 아닌 걸로 알고 있구요.

글을 가져다가 “정보적으로 취사선택해 자신의 논문에 썼”다는 건 누구를 말하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 Reply · 1 h

Stanley Suh

Jaewon Choi 정말 참담한 심정으로 읽습니다...나라를 이꼴로 만든 원인이 여럿 이겠지만 대학교수들 깊이 반성해야ㅠ합니다.

 · Reply · 1 h

Jaewon Choi

박유하 제가 미술계에서부터 겪었던 대학교수들의 행태에 대한 것을 전반적으로 얘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서로 존중하지 않는 학문 풍토에 대해서 같이 얘기하고자 하는 맥락에서 썼습니다^^ 대학교수들의 도적질 노략질에 당한 것이 많지만 이곳에서 쓸 맥락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같은 곳이 가장 문제라는 것을 알지만, 이러한 연구소같은 곳에 비난할 가치를 느끼지 못합니다. 반일 민족주의 이념자원 납품해서 연명하는 기관이니까요. 전우용같은 민족주의 파시스트 선전꾼들도 비판할 가치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만 비난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대학과 대학교수들에 대해서 제대로 된 비판이 있었었나요? 제가 보기에 한국처럼 이토록이나 안일하고 부패하게 돌아가는 대학과 대학교수들도 없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말한 “없어도 너무 없다”는 너무나 극단적으로 편향되었고 대세에만 편승해있는 논문(반일 민족주의)의 분포만 놓고 보더라도 말입니다.

 · Reply · 1 h · Edited

Park Yuha

최재원 미술계 얘기였다면 다행입니다. 충분히 상상이 됩니다. 얼마나 억울하셨을지도 알 것 같네요. 저 역시 분명 기득권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적 없고 제가 표절 당한적은 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비판하는 글에서 그런 얘기를 쓰시니 저도 그렇고 사람들도 오해할 것 같아서요.

교수들의 ‘도적질’도 공개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학폭고발이나 Me too 처럼 또 다른 목소리들이 공명해서 듣는 사람이 많아질 수도 있으니까요.

민족주의 비판논문 숫자는 그렇게 적지 않습니다. 물론 일본 관련해서는 아주 적고, 그런 정황이 제가 고전하고 있는 이유라는 것도 말씀 드려 둡니다.

한국에서 민족주의 문제를 제기해 주목 받았던 임지현교수같은 분조차,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서 기존연구자/운동가들 말만 믿었다는 사실이 그 척박한 풍토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 Reply · 1 h · Edited

Jaewon Choi

박유하 네 선생님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여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좀 난처하고 몹시 송구합니다. 선생님 비판하는 글로서 쓴 것이라기보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부분에서 제가 반론을 주장하는 부분이 있는 글이라, 글의 제목과 주요한 내용들 중 선생님을 언급하는 부분 외에는 별도로 제가 별도의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라 보시는 분들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이에 대해 폐 끼치지 않도록 극히 조심해서 써야 겠습니다.

제가 위의 글에서 논문과 대학의 연구풍토를 비판했던 것은 민족주의 비판 그 자체보다는 일제의 ‘불법지배’, ’강제점령’을 전제로 한 확증편향에 기반한 관점으로 국제법적인 근거나 1차 대을 전후로 한 제국주의, 팽창주의에서 인식했던 전근대 민족 및 국가에 대한 관점 등을 통해 일제와의 병합을 논거하는 관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취지로 말씀드린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의 연구와 헌신에 대해 항상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큰 틀에서 이러한 접근과 토론이 궁극적으로 선생님 연구가 왜 중요했던가를 논거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도 갖고 있습니다.^^

 · Reply · 1 h

Jaewon Choi

Stanley Suh 선생님 의견에 적극 동의합니다. 성리학을 벗어던지고, 직업인으로서 교수들이 비판되어야 하는데 한국사회에서는 사대부와 유생 교수에 대한 비판을 잘못 해석된 유교적 태도에 근거해 비판을 못하거나 하면 안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다양하고 국제적인 관점의 생각과 제안들이 제시되고 공유되어야 합니다. 소위 국민정서라는 것으로 일본과 관련된 것들은 틀어 막는 풍토가 학문의 자유를 막고, 유일하게 희망을 걸 수 밖에 없는 대학에서 또한 차단당해 있으니 다들 우물안에서 똑같은 생각을 권력 앞에 공유하고 있으면 당연히 위기가 와도 진단과 시그널이 안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조차도 안되면 선생님처럼 여기 우리 시민들이 집단지능을 구성하고 학습하고 공유하며 함수를 증대시키면 됩니다. 제도권 학계와의 공조는 물론 중요하죠. 그런데 제게는 거의 가망이 없는 상황으로 보이니....

 · Reply · 1 h · Edited

Jaewon Choi

Stanley Suh 대한제국의 망국은 고종에게 1차 책임이 있지만 양반 사대부와 유생들도 적극 협력해서 만들어진 결과이기도 합니다. 위정척사 운동을 벌이며 우물안 개구리에서 더 우물안으로 들어가 자멸하려 했던 그들은 중국과 만주 등지로 이주한 뒤 중공군 최전선에서 총알받이가 되어 6.25에 참전하거나, 소련이 기획한 북조선 체제의 하수인으로 부역했고, 현 정권과 한국 사대부와 유생으로서 식자층의 주를 이루며 다시 중인(의사,검사,과학자 등)을 천시하며 중화를 숭상하고 개화 및 근대에 대한 적개심과 저항감을 갖고 위정척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다른 기회가 될 때 쓰도록 하겠습니다. 북조선 주사파와 한국 지식인들의 원류는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한 갈래이기 때문에 그들이 선동하는 소위 “통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혼동해서 이해하면 안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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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삼

저는 최재원님의 의견에 적극 동감합니다.

 · Reply · 2 h

Jaewon Choi

김용삼 감사합니다 큰 격려와 힘이 됩니다. 대기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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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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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번역이 나온 <일본인 위안부>에 대해서 쓴 글.

지금은 위안부동원에 인신매매가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는게 어느정도 상식이 되었지만(램지어교수사태로 관심이 높아진 계약서 얘기는 사실 인신매매 얘기이기도 하다. 누가 썼는지가 다를 뿐.)6년 전만해도 우리사회에선 펄쩍 뛰던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그런 말 한 사람을 무차별 공격했다.

Park Yu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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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문제>

아베수상이 "위안부는 인신매매희생자"라고 말한 걸 두고 "물타기""본질 흐리기"라고 비난하는 언론들이 많다.  

하지만 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해 중심에서 활동해온 일본의 지원단체장과 연구자들도 이 달에 낸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위안부문제에 대해, "공창업자뿐 아니라 민간… See more

Comments

Ki Young Kim

"매춘부면 피해자가 아닌가?" 이게 더 폭넓게 피해자를 규정한 것이고 이게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훨씬 유리한건데 말이죠. 현대적 관점에서도 더 맞는 거겠고요.

 · Reply · 1 d

Park Yuha

Ki Young Kim 아니에요. 아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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