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30

알라딘: 미속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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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속습유   
박정양 (지은이),한철호 (옮긴이)푸른역사2018-05-09
236쪽


책소개

초대 주미전권공사 박정양(1841~1905)이 고종의 명에 따라, 미국 현지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미국의 제도와 문물을 총 44개 항목으로 나눠 체계적으로 정리한 보고서 형식의 미국 견문기.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시찰했던 박정양은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친, 손꼽히는 실무형 개혁파 관료였다. 1887년 9월 조선 최초의 주미전권공사로 임명되어 떠날 때 고종은 그에게 미국 등 각국과의 친목 및 화호 도모 외에 '미국 정부와 인민의 정형을 파악하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박정양은 미국에 머문 11개월 동안의 견문, 경험을 정리해 고종에게 보고했다. 이 보고서는, 비록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정부 요로의 관리들에게 읽혀 미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대미 정책을 수립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 '공식' 미국 탐구서였다. 바로 <미속습유>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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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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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장
지구전도地球全圖를 살펴보면, 서반구에는 아메리카(아미리가阿美利加,America)가 있는데 남·북 두 주洲로 나뉘어 있다.
P. 56
워싱턴이 4년간 재임하고 나자, 많은 사람들이 추대하였으므로 또다시 4년간 맡았다. …… 재임 기간이 끝날 무렵 국민들이 다시 한 번 맡기를 원하였지만, 워싱턴은 “만약 그만두지 않으면 후세 사람 중에 반드시 나를 구실로 삼아, 내가 연임한 전례를 따르는 것으로 시작해서 훗날 대통령을 세습하는 자리로 만들까 두렵다”라면서 단호히 사임하고 고향으로 되돌아가서 한가롭고 편안하게 지내다가 1798년 12월 13일에 사망하였다(〈민주 및 역대民主幷歷代〉)  접기
P. 86
무릇 범죄사건에 관계되는 한 군주와 국민, 관리를 똑같이 대우한다. 비록 현직 대통령이라도 조금도 용서하지 아니하며, (특정한) 사람 때문에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일이 없고, 공평하게 하기 위해 힘쓴다(〈재심원裁審院〉)
P. 106
교육 한 가지 일은 정부가 가장 힘을 기울이고 있어서 …… 의립義立과 사립私立의 구별이 있다. 사립은 각 해당 지역에서 인민이 돈과 재물을 모아 학교를 만든 것이다. 모두 부속 재산이 있어서 해마다 거기에서 나오는 이익으로 학생을 더 많이 뽑으며, 매달 일정한 돈을 학비로 보내준다. 의립은 재산을 축적하고 학비를 보태주는 것은 사립과 동일하지만, 한 사람 혹은 몇 명의 부자가 의연금을 내어 독자적으로 세운 것이다(〈봉교奉敎〉)  접기
P. 138
신문지는 한 나라의 중요한 일인데, 민간회사에서 설립한 것이다. 신문은 정부로부터 그 자유권을 허락받아서 비록 전·현직 대통령의 좋은 말이나 나쁜 행동일지라도 구애받지 않고 싣는다. 일이 있으면 바로 쓰고 들은 바가 있으면 반드시 적어내어 조금이라도 숨기거나 포용해주는 사사로움이 없다. …… 그러므로 관민이 맹호보다 더 두려워하여 각자 근신한다(〈신문지新聞紙〉)  접기
P. 145
이 나라는 바로 여러 사람이 마음을 합하여 만든 나라로 권리가 주인인 백성에게 있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비록 보잘것없는 평민이라 할지라도 나랏일을 자기 일처럼 돌보아 마음과 몸을 다하여 극진히 하지 않음이 없다. 또 친구들 사귀는 도리는 존귀한 사람이나 비천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여서 귀천의 구별이 없다. 이에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주自主를 얻는다. 자주라는 것은 누구나 다 같이 하늘이 부여한 것이고 귀천·존비는 모두 바깥에서 이르는 것이니 바깥에서 이른 것 때문에 어찌 자주를 훼손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한다(〈속상俗尙〉)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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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박정양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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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고종 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으며, 1881년 신사유람단의 조사朝士로 일본을 시찰하였다. 그 후 이용사당상경리사理用司堂上經理事·성균관대사성·기기국총판機器局總辦·협판교섭통상사무協辦交涉通商事務·도승지·협판내무부사協辦內務府事 등을 지냈다. 1887년 주미전권공사駐美全權公使에 임명되어 미국 대통령 클리블랜드Cleveland S. G.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는 등 자주외교를 펼쳤다. 청나라의 압력으로 1889년 귀국한 뒤 전환국관리, 호조판서, 교정청당상 등을 지냈다. 갑오개혁 때에는 군국기무처회의원, 학무대신, 내각총리대신, 내부대신 등을 맡으면서 친미 반일세력인 정동파貞洞派의 핵심으로 활약하였다. 1896년 아관파천 후 내부대신, 총리대신서리로 《독립신문》 창간과 독립협회 설립을 적극 지원했다. 1898년 의정서리로 만민공동회에 참석해 시정 개혁을 약속했으나 수구파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그 뒤 양지아문총재관, 탁지부대신, 중추원의장을 역임했으며, 1905년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병으로 운명하였다. 조선 말기의 불편부당한 온건중립파로서 진보적인 개화사상을 가지고 이상재李商在 등 개화파 인사들을 지원하였다. 편저로는 《죽천고竹泉稿》, 《미속습유美俗拾遺》, 《일본내무성시찰기日本內務省視察記》 등이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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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일본국 내무성 직장사무(전) (부)농상무성 각국 거류조례 제2>,<미속습유>,<미행일기> … 총 3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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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호 (옮긴이)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한림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8년 현재 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이며, 한국근현대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주요 논저로는 〈개항기 일본의 치외법권 적용 논리와 한국의 대응〉, 〈제1차 수신사(1876) 김기수의 견문활동과 그 의의〉, 〈메이지 초기 일본외무성 관리 다나베 다이치田邊太一의 울릉도·독도인식〉, 〈우리나라 최초의 국기(‘박영효 태극기’ 1882)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제작 국기(1994)의 원형 발견과 그 역사적 의의〉, 〈명동학교의 변천과 그 성격〉, 《친미개화파 연구》, 《한국 근대 개화파와 통치기구 연구》, 《한국 근대 주일한국공사의 파견과 활동》 등이 있고, 역서로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일본이라는 나라》, 《동아시아 속의 한일 2천년사》, 《미행일기》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한국 근대의 바다>,<거리에서 국정교과서를 묻다>,<대학생을 위한 한국사> … 총 25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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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130년 전 초대 주미공사의 눈에 비친 미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가 고종께 올린 ‘미국 보고서’
유길준의 《서유견문西遊見聞》보다 1년 앞선 조선 최초의 ‘서양 탐구서’

《미속습유美俗拾遺》는 초대 주미전권공사 박정양朴定陽(1841~1905)이 고종高宗의 명에 따라, 미국 현지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미국의 제도와 문물을 총 44개 항목으로 나눠 체계적으로 정리한 보고서 형식의 미국 견문기이다.

실무형 개화파 관료가 기록한 ‘공식’ 미국탐구서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시찰했던 박정양은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친, 손꼽히는 실무형 개혁파 관료였다. 1887년 9월 조선 최초의 주미전권공사로 임명되어 떠날 때 고종은 그에게 미국 등 각국과의 친목 및 화호 도모 외에 “미국 정부와 인민의 정형을 파악하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박정양은 미국에 머문 11개월 동안의 견문, 경험을 정리해 고종에게 보고했다. 이 보고서는, 비록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정부 요로의 관리들에게 읽혀 미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대미 정책을 수립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 ‘공식’ 미국 탐구서였다. 바로 《미속습유》다.

시대의 고민이 어린 ‘부국강병책’ 자료집
단순한 견문록이 아니다. 지리.역사에서 통치구조, 산업 진흥, 교육제도는 물론 복지시설 등 사회 인프라까지 다룬 박정양의 시선 곳곳에서 부국강병을 위한 고민이 드러난다. 교육을 통해 부국강병을 이뤘다며 ‘학교전學校田’을 언급한다든가 대통령을 비롯한 관료들이 퇴직 후에는 보통사람으로 돌아가고, 신문에선 대통령의 잘못이라도 보도한다든가 하는 대목이 그렇다.

당대의 지식과 발품이 결합된 생생한 ‘미국백과’
사용된 용어의 유사성 등에 비추어 보면 최한기의 《지구전요》, 위원의 《해국도지》, 후쿠자와 유키치의 《서양사정》 등 국내외 자료를 참고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여기에 미국 현지에서 조폐창 견학 등 발품을 파는 한편 미국의 법규집, 교과서, 개인 전기 등을 바탕으로 미국 현황을 꼼꼼하게 정리했다. 말하자면 당대의 지식이 집약된 ‘미국백과’였다 할 수 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에 앞선 조선 최초의 서양 가이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견문기로 알려진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1889년 탈고되어 1895년 발간되었다. 《미속습유》는 내용 중 ‘역법’의 서술로 미루어 박정양이 귀국을 준비하던 1888년 11월 전후에 탈고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책은 《서유견문》보다 1년 앞서 쓰인,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견문기라 할 수 있다.

올해는 박정양이 미국 워싱턴 D. C.에 도착해 공사관을 개설한 지 꼭 130주년 되는 해이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주관한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이 끝나 개관식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앞서 번역, 출간한 박정양의 《미행일기》와 더불어 이 책은 당대의 고민, 미국관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역사적 자료라 하겠다. 상세한 해제, 섬세한 번역에 더해 원문을 수록하여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한편 관련 연구자들에게도 충실한 자료 구실을 하도록 한 것 또한 이 책의 미덕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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