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5

일본 전범기업 강제동원 손해배상 이야기 - (1)(2) - 우리가치 Woorigachi

일본 전범기업 강제동원 손해배상 이야기 - (1) 배상금? - 우리가치 Wooriga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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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9월 2019
Myung Jung Kim
Featured, , 정치
강제동원, 국제법, 김명정, 배상, 전범기업

일본 전범기업 강제동원 손해배상 이야기(1) 배상금? 배상이 말하는 것과 배상의 조건-


돈.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우리와 뗄 레야 뗄 수 없는 원수이자 친구, 죽음과 삶을 갈라놓는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은 돈을 밝히는 것을 저속하게 바라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돈이야 말로 우리에게 가장 실질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돈의 이중적인 성격은 ‘보상’ 혹은 ‘배상’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올 때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는 얼마 전 한 정치인이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먹고,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진짜 징하게 해쳐먹는다.” 바로 세월호 5주기를 앞두고 있던 유가족들에게 남긴 말이다. 굳이 해석할 필요도 없지만 이 글은 유가족들이 바라는 어떠한 ‘배상’이 과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그들을 더이상 위로의 대상이 아닌 일종의 속물로 표현하였다. 이 페이스북 메시지는 큰 질타를 받으며 곧바로 삭제되었으나 이 정치인과 유사한 생각은 꽤나 많은 이들의 마음 속 깊이 뿌리 박혀있다. 예컨대 노란 리본을 보며 눈살을 찌 뿌리는 사람들 중에는 유가족들에게 “돈을 얼마나 더 바라는거냐,” “혼자 슬퍼할 것이지 대체 뭘 바라고 정치화 시키고 공론화 시키느냐,” “언제까지 과거에 머물어 있을 거냐”등의 말을 하곤 한다. 세월호 뿐만 아니라 성폭행 사건, 기업과 노조의 문제, 국가배상 문제 등 사건의 이름만 다를 뿐 우리 주변에 수많은 사건들에서 피해자들이 ‘돈’을 밝히는 속물로 손가락질 받고있다. 오늘 날 한일 간 외교문제로까지 불거진 일본 전범기업 강제동원 손해배상 문제의 피해자들 역시도 한일관계 악화와 경제파탄의 원흉으로까지 손가락질 받고있는 실정이다.

복잡하고 오래토록 얽히고 설켜 있는 일본 전범기업 강제동원 손해배상과 관련된 법적/ 국제정치적 논쟁을 앞으로 세 가지 큰 분류로 나눠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은 그 중 첫 꼭지이다. 이번 글은 ‘배상’에 대한 개념을 여러 각도로 살펴보면서 그 개념에 따라 한일 간 강제동원을 둘러싼 배상 여부에 대한 법적 해석에 대해 정리하고자 한다. 두번째 꼭지에서는 한일 간 외교 협상과 체결, 오고 간 돈을 추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세번째 꼭지에서는 역사문제로 발생된 타국가 자산동결 문제와 WTO 등의 경제공방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한일 역사감정을 넘어 대한민국 내 좌우의 진영논리 싸움이 되어버린 한일 간 이번 문제에 대해 우리가 쉽게 내뱉는 말과 휘두르는 타자 글귀에 잔혹할 만큼의 무지와 가벼움은 없는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글을 시작한다.

강제동원은 불법이었는가?

식민지의 불법성?

배상은 ‘불법적인 행위’로 인해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피해를 주었을 경우 이를 갚는 행위이다. 이와 유사한 단어인 보상은 개인이나 국가, 혹은 단체가 ‘적법한 일’을 하면서 타인에게 어쩔 수 없는 피해를 준 것에 대한 손해를 갚아주는 행위다. 따라서 보상이 아닌 ‘배상’이라는 것은 단순한 돈의 의미를 넘어, 가해자의 행위에 불법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개념이다. 일본 전범기업 강제동원 문제가 과연 ‘배상’의 문제냐 하는 점에서부터 한국과 일본의 입장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차이의 핵심에는 강제징용의 ‘불법성’을 둔 양국의 다른 입장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한일 간 강제징용과 관련하여 체결된 조약이던, 오고 간 ‘돈’을 살펴보기 이전에, 강제징용이 ‘불법’이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양국의 차이를 정리하고, 국제적인 시각으로 일본 강제징용이 ‘불법적인 행위’, 즉 ‘배상의 조건’에 해당되는지를 살펴보자.

강제동원이란 제국주의 일본이 침략전쟁을 벌이기 위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실행한 인적, 물적 동원 및 자금 통제를 말한다. ‘모집’, ‘징용’ 등의 형태로 조선인 역시 동원했으나, 사실상 임금을 지불하지 않거나, 일본인보다 낮은 임금으로 제공된 점, 먹을 것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 이직을 막고 임금을 강제로 저금하게 한 점에 따라 ‘강제동원’ 이라고 불린다. [1] 크게 노무동원[2], 군인/군속동원,[3] 여성동원[4]으로 분류된다. 이렇듯 ‘식민지배’라는 특수한 배경에서 발생한 강제동원이기 때문에, 일제 강제동원의 불법성은 1) 식민지 지배 자체의 불법성, 2)강제징용 자체의 불법성—이 두 가지 차원을 함께 살펴봐야한다.

일본은 전면적인 강제동원을 위해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제정했다.[5] 일본은 이 법령이 식민지였던 조선에도 적용이 된다고 보았고, 이 법을 근거로 조선인 강제동원은 적법했다고 주장하고있다. 그들에게는 강제동원이 아닌, 법적 근거가 있는 ‘징용’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또한, 일본은 한반도 점령 자체를 합법적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을 전제로 일본 법원은 1997년 고 여운택씨가 강제징용에 인한 손해배상금과 미지급 임금을 요구한 소송에서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여씨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평가하며 그를 패소시켰다.[6] 일본은 단 한번도 ‘배상’이라는 이름으로 강제징용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경제협력 자금’, ‘독립축하금’, ‘미지급 임금’, ‘보상금’, ‘위로금’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 측의 불법성을 부인하였고, 한일 청구권 협상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7]

대한민국의 입장은 다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불법 강점으로 본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판결에서 “일본의 불법적 지배로 인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효력이 배제된다고 봐야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일본 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이라 하였다. 다시 말해, 일본의 한반도 점령 자체가 불법적이었으므로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이 한반도에서는 효력이 없고, 따라서 일본의 조선인 강제징용 역시 불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국주의 시절 다른 국가들은 식민지 불법성을 어떤 식으로 해석할까? 범세계적으로 이뤄졌던 식민지배이기 때문에 ‘식민통치’ 그 자체에 대해서 불법성을 인정한다면 식민지 깃발이 꽂혀졌던 세계 곳곳에서 배상문제가 불거질테고, 그렇기에 당시 제국들은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불법성은 외면하고 있다. “나치 만행을 기억하는 것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이라고 말했던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역시도 제국시절 아프리카 국가들의 사과와 보상요구에 대해서는 “그 당시 다른 국가들도 모두 식민통치를 했다”며 과거사 해결에 주춤했다.[8] 같은 이유로 폴란드와 그리스와의 배상문제에서도 발을 빼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당시 세계 2차 대전 후 배상요구권은 침략국가에게만 주어졌고 식민지 국가는 대상에서 제외되었다.[9] 일본은 이를 근거로 한일수교 협상 때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고 경제협력만 내세웠다. 배상이 아닌 일본 안에 남은 재산과 미지불 임금 등에 대해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차원에서 청구권 협정이 맺어진 것이다.[10] 이러한 범세계적인 추세로만 본다면 일본의 식민지배 자체의 불법성 만을 내세워 배상금을 요구하는 것은국제사회 기준으로 봤을 때 한국에게 유리하지 않다. 동시에,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인정하는 태도 역시 우리 헌법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에 이 문제를 명확하게 풀어나가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하시마섬으로 강제동원된 조선인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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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ontonorekishi.blog.fc2.com/blog-entry-37.html

●This is a picture taken at a camp in North Korea, it is completely unrelated to Japan. South Koreans even put the blame of the atrocities caused by the same race on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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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도적 국제법적 불법성

만약 국제사회의 기준에서 일본의 식민지배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힘들다면, 강제동원 배상은 포기해야하는 것일까? 전혀 아니다. 일본의 입장대로 강제징용이 일본 법령에 근거한 ‘징용’이었다고 치더라도, 일본강점기 징용은 강제노동(forced labor) 규제 협약의 위반으로 국제법적 불법행위다. 일본은 처음에 자유의사를 빙자한 강제동원을 하였고, 이후 폭행과 고문, 감금, 연좌제 등을 통해 본인 의사와 상관없는 노동을 시켰으며 임금 미지급과 열악한 환경이 만무했다.[11] 이러한 불법성은 1999년 일본의 조선인 징용(위안부, 정신대, 하시마 등)이 ILO 29호 협약을 위반한 강제노동이라는 판단을 내린 ILO공식 문서에도 기록되었다.[12] 그리고 그러한 노동환경의 본장소였던 미쓰비시그룹, 미쓰이그룹(탄광), 일본제철(야하타 제철소) 등은 버젓이 사과나 배상 없이 일본 경제의 중심에 서있다. 물론 불법노동 자체는 아직 강행규범에 해당되진 않지만, 강행법규가 늘어나는 국제법적 추세로 보았을 때, 그리고 일제의 강제동원은 반인도적 불법행위로도 해석할 여지가 있으므로 그에 해당하는 배상의 논리 개발과 논의는 꾸준히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그 강제노동이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따른 것 이었기 때문에 이 사안이 반인도적 불법행위 문제에 속해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청구권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원고들은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건에서 문제 되는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 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 행위를 전제로 하는 위자료 청구권, 이른바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입니다. 이러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은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최종판결문 일부 (원고: 여운택 외 3명, 피고: 신일본제철 주식회사) –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과 관련한 국제법계의 평가와 동향을 살펴야하겠으나, 만약 일본의 강제동원이 반인도적 불법행위 문제로 해석될 경우에는 2005년 유엔총회결의로 채택된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 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 행위로 인한 피해자들을 위한 구제 조치 및 배상에 대한 기본 원칙과 가이드라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원칙은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에 기초한 것으로 ‘시효규정’에 적용되지 않는다.[13] 그리고2005년 유엔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에 따르면 이에 따른 피해자들은1) 사법접근권(access to justice), 2) 배상(reparation)에 대한 권리, 3) 정보접근권(access to information)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한다. 국제법 상 ‘국가면제’의 원칙에 따라 일본 정부를 피고로 세우기는 힘들 수 있으나, 강제동원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전범기업을 대상으로 한 배상청구는 피해자로서는 포기하지 말아야하는 권리인 것이다.

결론

이 글은 일본 강제동원 배상판결 이후 경색된 한일관계와, 우리나라 안에서 파생된 수많은 논쟁과 소음 속에서, 본 사안에서 논의되는 가장 기초적인 ‘배상’의 개념과 그 개념에 내제된 또다른 개념, ‘불법성’에 대해 이야기 해보았다. 국제사회에서 ‘식민지의 불법성’ 자체는 인정받기 쉽지 않은 추세이지만, 강제동원 자체의 반인도적 불법성에 대해서는 우리의 입장을 국제사회에서도 충분히 피력할 가능성이 열려있다. 국제법적 해석이 아직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규범적/도덕적인 판단을 기반으로 법 형성의 방향성을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끌고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대법원이 그 시발점을 제공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법 형성의 근간에는 법 이전, 옳고 그름에 대한 인간적이고 본능적인 가치판단이 있다. 만약, 진정한 정의와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지성이 모인다면, 아직 포기하기는 이른 피해자들의 권리를 외교와 경제 이득보다 덜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김명정 글 모아보기

[1]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웹페이지 참조

[2] 탄광, 광산 등 각종 산업 현장에 동원된 사람들로7,554,764명 이상의 조선인이 동원되었다. 이 중 많은 여성과 미성년자도 포함됐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3] [1937조선인 특별지원병제] [1938육군특별지원병령]을 공포하여 조선인을 중일전쟁 등 전장으로 동원된 사람들이다. 학도 지원병 4385명, 해군 특별 지원병 및 해군 약 22,000명 중 약 35% 자발지원, 나머지는 강압동원한 것. 그러나 조선 총독부가 숫자를 조작한 결과라는 점에서 진짜 자신의 의지로 지원한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1944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징병제]를 실시하여 1945년 8월까지 20만 9천명(육군 18만 7천명, 해군 2만 2천명)을 동원했다. 군무원을 포함해서 21,699명이 전사하였다. 5만명 이상이 중국전선에 투입되었으며 후생성 통계에 따르면 1,100명이 전사하였다. 이들은 여전히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들과 함께 억지로 합사되어 있다. 군속(군무원)은 일본 육해군에 소속된 민간 인력을 말한다. 군인은 아니지만 최전선 군사시설 건축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아 군인만큼이나 피해를 입었다.약 15만 명이 강제 동원되었다.

[4] 여성동원은 위안부와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나뉜다. 일본군 ‘위안부(성노예)`는 일제가 1931년 만주침략 이후 1945년까지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일본군이 설치한 ‘위안소`에서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을 말한다. 피해자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최소 3만 명에서 최대 40만 명까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여자근로정신대 일제 강점기 말기에 전쟁이 계속되면서 전시체제 하에서 노동력이 부족해지 전쟁 수행을 위한 동원이다.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배우자가 없는 조선 여성이 소속되었으며, 군수공장 등에 투입되었다. 이미 특별한 법적 근거 없이 실시되고 있던 조선의 여자근로정신대는 1944년 8월 23일에 \’여자정신근로령\’이 공포되면서 합법적인 근거를 마련했고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이 법령은 식민지 조선과 대만에도 적용되었다. 동원 방법은 관청의 알선, 공개 모집, 자발적인 지원, 학교나 단체를 통한 선전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근로정신대로서 동원된 일본과 조선의 여성은 20만명이며, 그 중 조선인은 5만에서 7만명이다.

[5]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6] “식민지배 합법이라는 일 법원 판결, 국내효력 없다.” 2018.10.30 조선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30/2018103002772.html

[7] 우리나라 판결문 2018.10

[8]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70301/83114016/1

[9]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인터뷰 일부 내용. (한겨례 2019.05.05) 다른 이야기도 있음: 세계 2차대전 후 얄타회담에서 모스크바에 본부를 둔 배상위원회가 설치되었고, 배상총액과 분배의 해결방안에 대하여 여러가지 제안이 검토됨. “검토”는 했으나, 명확하게 결정된 것은 없었음. 소련의 과도한 요구와 미국의 반대 때문. 이후 시작된 냉전이 시작되며 흐지부지해짐. (위키피디아) 사실 이때 소련은 일본이 설치한 북한에 있던 공장시설도 전쟁 배상의 의미로 대거 반출하는 등 재산을 몰수했는데, 이때 조선에서는 배상을 받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과 함께 책임을 지는 쪽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고, 이때 미국 배상대사가 소문 을 잠재우기 위해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음.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66575#09T0]

[10]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_한겨례 2019.05.05

[11]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피해자 사례집

[12] [단독]ILO “일제강점기 징용은 강제노동 규제 협약 위반” (2015.07.10) https://www.yna.co.kr/view/AKR20150709180600073

[13] 가이드라인 6조항. 적용 가능한 조약에 규정되어 있거나 여타 국제법적 의무로 정해진 경우에는 시효 규정은 국제법상의 범죄를 구성하는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과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에 적용하지 아니한다.

일본 전범기업 강제동원 손해배상 이야기- (2) 일그러진 어제, 청구권 협정과 오늘날 한일외교11월 7, 2019

"Featured"에서

애도의 정치 (Politics of Grief)7월 23, 2019

"Featured"에서

ATS – 해외불법행위피해자구제법

ATS (Alien Tort Statute)는 우리나라 말로 해외불법행위피해자구제법. - 외국인이 어떠한 사람/회사/조직 등에게 고문, 강제살인 등의 국제범죄 피해를 받았을 시 미국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할 수 있다.- 키오벨 사건에서 법원이 미국영토에서 발생한 일에만 ATS 적용 가능하다고 제한시킴. TVPA(Torture Victims Prevention Act) 우리나라 말로 인신매매피해자보호법 - 외국인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도 외국 조직에서 고문, 강제살인 등 국제범죄 피해를 받았을 시 미국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8월 9, 2019

"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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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1월 2019
Myung Jung Kim
Featured, 국제관계, 역사
강제징용, 국제법, 김명정, 한일관계

일본 전범기업 강제동원 손해배상 이야기- (2) 일그러진 어제, 청구권 협정과 오늘날 한일외교


얼마 전 대한민국 대법원은 일제시대 강제징역 피해자분들의 강제노역에 책임이 있는 두 일본 전범기업인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 그룹에 보상 지급을 명령하였다. 그리고 두 기업 모두 판결에 대한 반응이 없자 그들의 국내재산을 동결시켰다.

이 판결에 일본은 강한 불만을 표하며 한국 반도체 산업에 핵심소재 수출을 제한하고 무역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등의 경제 보복을 하였다. 그리고 일본은 박정희 정권 당시 필요한 보상은 다 끝났다고 주장하며, 부당하게 일본 기업의 경제활동을 침해할 경우 국제재판소에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며 맞불을 놓았다.

이 글은 강제동원 손해배상 시리즈의 두 번째 꼭지 글이다. 첫 번째 꼭지에서는 ‘배상’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한일 간에 붉어진 이 사안의 본질에 대해서 짚어보았다. ‘배상’이란 ‘불법적인 행위’가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는 점, 일본은 조선인 강제동원을 불법으로 해석하지 않고 대한민국은 불법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이 사건이 ‘배상문제’인지에 대한 입장 차가 극명하다는 점, 그리고 그 다른 주장의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저자는 이 사안의 불법성은 1) 식민지의 불법성, 2) 강제노동이라는 반인도적 불법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살펴보아야 하고, 현재 국제법적 동향을 살펴보면 첫 번째 일본의 ‘식민지 불법성’에 대한 피력에 국제적인 지지를 얻기에는 한계가 있으나 두 번째 ‘강제노동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반인도적 국제법적 불법행위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고, 따라서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에게 배상을 청구하는 ‘권리’는 보장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지난 글이 이 사안이 ‘배상’ 문제인지 아닌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면, 이 글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한일 간이 입장 차를 보이는 ‘개인청구권’에 대한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은 이 문제가 ‘배상’문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이 사안에 대한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실제는 배상할 필요가 있었으나 이전 한일 간 협상으로 인해 배상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라는 다소 모호한 주장을 하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 대법원은 과거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한 것으로는 볼 수 없으며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결하고 이를 기반으로 일본 기업에 “배상”을 명령했다. 그렇다면 함께 협정을 체결하고 역사를 나눈 두 당사국은 왜, 무엇을 기준으로 ‘개인청구권’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을까? 이번 글은 그 핵심 협정인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1]을 중심으로 한일 간의 외교협상과 체결, 오고 간 돈을 추적하고 이를 해석해보고자 한다.


2.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한일협정까지

한일청구권 협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청구권 협정이 맺어지게 된 배경인 샌프란시스코 조약, 그리고 그 이전 미군정 시기를 살펴봐야 한다. 세계 2차대전 일본 제국의 항복 후, 일본 제국 치하에 있던 한반도 북쪽에는 소련 그리고 남쪽에는 미국연합국이 들어와 통치하였다. 이 시기 미군정은 남한에 있는 일본의 국유재산, 사유재산 모두 미군정에 귀속시켰고, [2] (1945)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한 직후 그 재산은 다시 한국정부에 이양되었다. [3] (1948) 이런 배경에서 1951년 전후 배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1951년 서명, 1952년 발효) 이 조약을 통해 일본은 국권을 회복한 동시에 한반도에 관한 모든 권리와 권한을 포기하였다. 그리고 한반도는 광복을 맞이하였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 을 통해 일본은 한국 정부와 재산 및 청구권과 관련하여 별도로 협정을 맺고 그 의무를 부담하겠다고 미국과 약속하였다. [4] 이 조약이 서명되면서 일본과 한국은 <한일회담>을 통하여 국교 정상화와 전후 보상문제를 논의하였다. 이승만 정권인 1951년에 시작되어 박정희 정권인 1965년에 체결되기까지 무려 14년 동안 7차례의 본회의와 수십 차례의 예비회의를 걸쳐 이뤄졌다. 1952년, 대한민국은 제1차 한일회담 본회의에서 ‘한일 간 재산 및 청구권 협정 요강 8 개항’을 제시하였는데, 이 8개 항목 중 제5항에 ‘피 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5] 이 이유로 최근 강제동원 배상사건에 한일협정 이야기가 계속 붉어지는 것이다.

1960년을 기점으로 그전까지는 한일회담이 지지부진하게 이뤄졌다. 한국은 일제 지배에 대한 반감으로 배일 정책을 취했고, 일본은 회담 수석대표가 “36년간에 걸친 일본의 한국 통치는 한국근대화에 유익한 대목도 많았다”는 망언을 쏟아내고 미군정에 의해 소멸한 일본 재산에 대해 한국에게 역청구권을 들고나오는 등 진정 피해자 보상을 위한 협상이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후안무치이자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였다. [6] 그러다가 1960년이 되어 한국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하며 거액의 외자가 필요했고, 일본은 경제고도성장을 이루고 해외시장 확장이 필요했으므로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일회담이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 한국은 1차 때 제시하였던 8개 항목에 대한 청구를 계속 요구하였으나 일본은 법률관계와 증거관계의 불명확성을 이유로 변제가 힘들다고 주장하였고 이러한 입장은 6, 7차 회담을 거듭하여도 변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법적, 사실관계에 입각한 요구가 어렵게 되자 정치적 타결을 꾀하였다. 이에 따라〈박정희 정권 당시인 1962년 ‘김종필·오히라 회담’〉을 통해 청구권 자금 규모에 관해 무상공여 3억 불, 정부차관 2억 불, 민간차관 1억 불 이상으로 정하게 되었고 명분에 대해서는 각국의 정치적 사정에 따라 달리 설명할 여지를 남기는 방식으로 합의를 보게 되었다. [7] 즉 일본의 식민지가 불법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이 돈의 성격이 보상인지 배상인지 경제협력 기금인지 등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이 합의를 바탕으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일명 한일조약, 1965) 그리고 그 부속협정인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일명 청구권 협정, 1965)이 체결되었다. 미일 간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기반으로 한일조약과 청구권협정이 체결된 것이다.<김종필과 오히라>

3. 한일 간 청구권 협정 해석

청구권협정이 이뤄진 배경지식을 가지고, 이제는 대한민국 대법원이 어떤 이유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 행사가 유효했다고 판단했는지 법리적인 잣대로 따져보자. 먼저, 한일 청구권협정 해석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제2조를 살펴보자.

제2조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 년 9 월 8 일 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 조항의 해석에 따라 우리 대법관 13명 중 2명은 손해배상 청구권의 유효성을 반대하였고 11명은 찬성하였다. 반대의견을 낸 권순일, 조재연 대법관은 개인청구권이 완전히 소멸한 것으로 보기는 힘드나 제2조에 따르면 원고가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되었다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일본 기업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가 피해자에게 보상을 해아 한다는 의견을 냈다. [8] 얼추 봤을 때는 정확한 문언 해석인 듯 들리지만 사실 이것은 국제법상으로 봤을 때 ‘불성실한’ 법 해석이다.

다수의 대법관은 제2조를 더 성실하게 해석하였다. 일단 이들은 제2조에 나오는 ‘청구권’의 모호성을 제기했다. 청구권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는 용어인데 이 협정에서는 ‘청구권’이 무엇을 뜻하는지 따로 정의하지 않고 있다. 가령 징용에 따른 노동의 대가로 지급되는 임금 등 재산상 청구권을 의미할 수도 있고, 혹은 불법적인 강제노역에 따른 위자료 청구권을 의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본 사건이 다루는 것은 바로 두 번째 청구권이다. 본 사안의 원고는 “일본의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로서 일본기업에 대한 ‘정신적 손해배상’, 즉 ‘강제동원 위자료’를 청구하였다.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임금을 물어달라고 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사안의 핵심은 과연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에서 말하고 있는 ‘청구권’에 ‘불법적인 강제징용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 되는지의 여부이다.

협정문에서 ‘청구권’을 정의하지 않았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이를 알 수 있는가?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 32조>에 따르면 조약문의 해석에 모호함이 있을 경우에는 그 의미를 결정하기 위해 조약의 준비작업 또는 조약 체결 시의 사정을 포함한 보충적 수단에 의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비엔나협약이 강조하는 ‘성실한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대법원은 성실한 해석을 위해 한일청구권협정의 전문뿐 아니라 조약의 교섭 기록 및 체결 시의 사정 등을 보충적으로 고려하여 의미를 해석했다.

의외로 답은 매우 명확하다.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문, 협상과정 모두를 살펴보아도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인정한 적이 없다. 이점에 따라 대법원은 “불법행위의 존재 및 그에 대한 배상책임의 존재를 부인하는 마당에, 피해자 측인 대한민국 정부가 스스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까지도 [청구권의 의미에] 포함시켰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9] 실제 한국 측이 제 5, 6차 예비회담에서 8개 항목에 대한 보상으로 총 12억 2천만 달러를 요구하면서 그중 3억 6천여만 달러를 ‘강제동원 피해보상’으로 산정하고 싶다고 요구한 바 있었으나, 일본 측에서 이를 반발하여 협상이 불발됐고, 또한 한국의 요구액에 훨씬 못미치는 ¼ 격의 3억 달러를 총보상액으로 받은 상황에서 강제동원 피해보상액이 여기에 포함됐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또한 한국 측에서 협상 당시 ‘나라로서 청구하는 것이며 피해자 개인에 대한 보상은 국내에서 조치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나, 일본 측은 이와 같은 ‘개인 피해 보상요구’에 반하며 증거자료를 요구하거나 국교가 회복된 뒤에 개별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등 대한민국 측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10]

일본이 불법행위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더 있다. 청구권협정 직전에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한일회담백서’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은 회담 시 불법을 전제로 한 ‘배상’이라는 단어와 적법한 행위로 인한 손실을 전보로 하는 ‘보상’이라는 단어를 구별하여 사용했다. [11] 이런 여러 기록들은 한일청구권협정에서 말하는 ‘청구권’의 해석이 재산상 청구권에 한정되며 불법적인 강제징용에 따른 위자료 청구권까지 포함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애초부터 이 청구권협정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 4조에 근거하여 맺어진 협정으로서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 협정에서 말하는 ‘청구권’의 의미는 미지급 임금 등 재산상 청구권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12] 2005년 청구권협정 일부 문서를 공개한 민관공동위원회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와 군대 등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으며, 사할린 동포 문제와 원폭피해자 문제도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라는 의견을 낸 바 있다.[13] 이후 대한민국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불충분함을 인정하고 2007년 희생자지원법 등을 통해 강제동원 희생자에게 위로금이나 지원금을 지급하기는 하였으나, 해당 법률에서도 그 명목이 ‘인도적 차원’의 것임을 명시함으로써 대한민국이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자에 대하여 법적인 지급의무를 부담하지 않음을 확인시켰다. 따라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과거 정부의 행적과 많은 부분 일관성을 보인다.

4. 나가며

한국은 피해자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그들이 어떤 피해를 받았는지 조사되기도 전에 정치적으로 한일협정을 타결했다. 한국은 체결을 마친 뒤에서야 피해사실 수집과 보상의 기준, 집행 방식 등에 대한 법률을 제정했다.[14] 한국 정부는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과 관련하여1977년 6월까지 총 83,519 건의 신고를 접수 받았고 일본 측으로부터 무상 제공된 청구권자금 3억 달러의 9.7%에 해당하는 91억 9천여만 원의 금액을 피징용사망자에게 보상금으로 지급했다.[15]나머지 금액은 경부고속도로, 소양강댐 건설 등의 경제개발 목적으로 사용됐다. 이러한 법률 제정 및 보상은 꼭 필요했으나, 그 시기와 내용을 볼 때 피해자를 위했다기보다는 협정 체결 후속장조치와 행정적 명분으로써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경제적인 목표가 우선이 되어 급하게 일궈낸 한일청구권협정과 후속조치는 오래도록 한일 갈등을 심화시키고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도 지속해서 상처를 안겨주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 측 잘못이 크다. 그러나 일본 역시 이 모든 과정을 함께 조율하고 공유하였기에 비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협상 과정에서 거증의 책임이 한국정부에게 떠맡겨 진 상황이었지만,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한국은 일본에 불법 식민지배를 받고 거기다가 성노예와 같은 비밀스러운 일본 측 강제동원에서 희생된 피해국이다. 따라서 피해 사실의 규모를 파악하고 조사하는 것을 한국 측에서만 담당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진상조사 위원단을 만들지 않고, 한국에게 증거를 내놓으라는 적반하장 식의 태도는 애초부터 문제가 있었다. 또한 마치 어리고 힘이 약한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심한 해를 가하고 난 뒤, 몇 푼 쥐여주면서 없던 일로 치자는 것과 같이 일본은 이제 갓 국가로 자리매김하려던 한국이 군사반란으로 정권이 교체된 뒤, 그 쿠데타 지도자에게 몇 푼 쥐여 주는 것으로 참혹한 역사를 무마하려 했던 것이다.

일본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기반하여 강제징역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사라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도의적 차원뿐 아니라 성실한 법 해석에 따라서도 동의하기 힘든 주장이다. 그렇다고 이웃 국가인 일본과 계속 적대적으로 지내는 것 역시 현명하지 않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경제적 이득을 위해 한국과 일본은 법적 해석의 여지를 의도적으로 크게 남겨놓은 채 언젠가는 풀어야 하는 숙제를 정치적 타결로 덮어두었다. 그리고 그 미결의 숙제가 우리에게 넘어 온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번에도 눈앞에 보이는 경제적 실익만을 따져 정치적으로만 이 사안을 타결하려 한다면, 이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고 이것은 결국 또다시 가까운 미래에 더 뿌리 깊고 풀기 어려운 문제로 미래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 한일 간에 풀어야 하는 이 오래 묵은 숙제를 어렵고 힘들더라도 절대 회피하고 넘겨선 안 될 것이다.


[1]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2] 1945군정법령 제 33호

[3] 1948 <대한민국 정부 및 미국간의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협정> 제 4조

[4]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 A이 조항의 b 규정에 따라, 제2조에 열거된 지역의 일본국 및 일본 국민의 재산의 처분과, 현재 그 지역을 통치하는 당국 및 그 주민(법인을 포함)에 대한 일본국 및 일본 국민의 청구권(채무를 포함)과, 일본국에서의 이들 당국 및 그 주민의 재산, 일본과 일본 국민에 대한 당국과 그 주민의 청구권(채무를 포함)의 처분은, 일본국과 이들 당국 간 특별협정의 주제로 한다.

[5] 한국측은 대일 재산 청구권 8개 항목의 요구를 제기하였다.⑴ 조선은행을 통해 반출해간 지금, 지은의 반환청구, ⑵ 1945.8.9 현재 일본정부가 조선총독부에 지고 있는 채무 변제 청구, ⑶ 1945.8.9 이후 한국으로부터 이체 또는 송금된 금품의 반환 요구 ⑷ 1945.8.9 현재 한국에 본사, 본점 또는 주된 사무소가 있던 법인의 재일 재산의 반환청구, ⑸ 한국법인 또는 한국자연인의 일본국 또는 일본국민에 대한 일본 국채, 공채, 일본 은행권,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 청구, ⑹ 한국인(자연인, 법인)의 일본정부 또는 일본인에 대한 개별적 권리행사에 관한 항목, ⑺ 전기 제재산 또는 청구권에서 발생한 법정 과실의 반환 청구, ⑻ 전기한 제재산과 청구권의 반환 및 결제는 협정성립 후 즉시 개시하여 6개월 이내 종료할 것 이에 대해 일본 측은 「대일강화조약」 4조 B항은「국제법」상 점령군에게 인정하지 않은 처분까지를 승인하는 것이 아니므로(「헤이그 조약」 제46조) 사유재산에 대하여는 원 권리자인 일본인에게 보상청구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재한국 일본인 재산은 그 처분으로 인하여 발생한 대가 및 과실에 대하여 원 권리자인 일본에 청구권이 남아 있다고 강변하였다. http://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2808

[6] 한일기본조약, 한국민족대백과사전

[7] Ibid.

[8] 국가법령정보센터http://www.law.go.kr/LSW//precInfoP.do?mode=0&evtNo=2013%EB%8B%A461381

[9]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 국가법령정보센터, <4나 (4)>

[10] Ibid. <9 나 (1) (나)>

[11] Ibid. <4나 (4)>

[12] Ibid. <11다>

[13] 2005년 8월 26일 민관공동위원회

[14] 1966.2.19 <청구권자금의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청구권자금법), 1971.1.19<대일 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을 제정, 1974.12.21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

[15] 2005년 8월 26일 민관공동위원회

** 김명정 글 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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