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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578] "당신은 '이대남'입니다"라고 강요하는 사회
20대 남성, 소위 '이대남' 현상이 정치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 직접적인 계기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20대 남성과 여성의 표심이 극명하게 엇갈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20대 남성의 '보수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 최근 GS25 홍보물을 둘러싼 소위 '남성혐오' 논란은 분노한 청년세대 남성들의 안티 페미니즘 성향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러한 '이대남' 현상 자체가 실체가 없다거나 일부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에 불과하다는 목소리 역시 존재한다. 과연 '이대남' 현상의 실체는 존재하는가? 우리는 지금의 현상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에 대해 어떠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와 관련하여 20대 남성 당사자, 여성주의 학자, 사회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다. 총 6편의 글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① 한국의 '이대남'과 미국의 '브로플레이크'...'백래시의 시간'이 왔다 / 손희정 경희대학교 교수
② '이대남' 허상을 신화로 만든 언론...'反페미'와 취업난이 대체 무슨 상관? / 지우개 충북대학교 학생
③ 이준석이 '82년생 김지영'을 공격하는 이유는? / 권명아 동아대 교수
④ '인국공 사태'의 교훈이 반페미니즘? / 권명아 동아대 교수
⑤ 촛불 이후 우파정치의 재구성과 '이대남' 현상 /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
⑥ "당신은 '이대남'입니다"라고 강요하는 사회 / 조기현 작가
"당신은 '이대남'입니다"라고 강요하는 사회
'이대남' 현상은 실재하는가? ⑥
조기현 작가
4.7 재보선 이후 20대 남성 시민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몇 년 전에는 '이남자'라고 부르더니, 이번에는 '이대남'이라고 부른다. 20대 남성이 보수화되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20대 남성은 정말 보수화되고 있을까? 이런 질문 자체에 반발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왜 20대 남성만 주목의 대상이 되는지, 20대는 보수적이면 안 되는지 말이다. 동시에 질문 속에 내재한 우려도 공감이 간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느끼는 20대 남성들이 이 사회에 해악을 끼칠지 모른다는 짐작 때문이다. 언론과 몇몇 정치인에 의해 안티 페미니즘의 목소리가 계속 커질수록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는 토양도 마련되는 것 같다.
이런 우려가 20대 남성 시민을 악마화하는 데서 그치지 않으려면, 우리는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20대 남성 시민이 사회에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짐작하기 이전에, 그들에게 어떤 '사회'가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란 일상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관계 전반이라고 할 수 있다.
20대 남성은 생애 이행 과정에서 자신이 역차별의 피해자라고 느낀다는 가설이 있다. 군대도 다녀와야 하는 데다, 20대에는 여성이 학업 성취나 취업률에서 앞서기도 한다. 그러다가 30대에 들어 사회적 관계가 확장되면 자연스럽게 역차별을 당한다는 감각이 사라진다. 직장에서나 애인, 배우자를 통해 성차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들의 진로 이행 시기가 점점 더 길어지는 요즘, 30대가 되어도 사회적 관계가 확장될 계기가 쉽게 마련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다양한 20대 남성들을 만났던 순간이 떠오른다. 나는 2017년부터 3년 정도 청년 모임을 진행했다. 참여 인원은 10명 안팎으로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참가비는 무료였다. 참여 대상은 '청년수당'을 받는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청년들로, 대부분 미취업 기간이 긴 상태였다.
모임의 목적은 청년의 '관계망 지원'이었다. 영화 만들기, 서울 탐방, 독서, 보드게임 등 관계망을 지원하기 위한 소재는 다양하다. 이런 소소한 모임을 왜 공공이 나서서 지원하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거나, 불안정 일자리를 전전하다 보면 돈, 관계, 심리 모두 위축된다. 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도 돈이 필요하고, '아직' 준비를 하는 청년에게 인정이나 지지가 있을 리 만무하다. 자존감은 바닥이 나고, 사람을 만날 때 필요한 대면 능력도 고갈된다. 그런 상태는 고립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만약 자신이 어떤 상태이든 상관없이, 안전하게 교류할 수 있는 관계가 있다면 고립을 피할 수 있다. 공공이 나서서 관계망 형성을 지원했던 이유다.
당시 모임을 진행하면서 커뮤니티 게시판이나 인터넷 뉴스 댓글 창의 전파 속도를 실감했다. 이를테면 제주도에 예멘 난민이 도착했다는 뉴스가 나면 다음 모임에서는 그들 중 IS가 숨어있다는 말이 나온다. <82년생 김지영>이 회자가 되면 남성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코로나 1차 유행 때는 중국인과 관련된 가짜뉴스를 친목 단톡방에 퍼 나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은 빠른 만큼 얕게 전파된다. 모임을 시작할 때 차별이 될 수 있는 말에 대해 조심할 것을 요청하고, 타인의 의견에 경청할 것을 부탁한다. 그런 규약은 자신이 본 정보에 대해 말하더라도 순화해서 말하게 하고, 자신이 말한 후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게 한다. 이때의 모임 분위기는 단순히 팩트를 체크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천천히 의견을 나누다보면 감각적인 지점에 가닿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개는 불안이다. 지금 느끼는 자신의 실체 없는 불안에 실체를 부여해주고 구체적인 피해를 보여주는 사건에 이입하게 되는 것이다. 모임에서 상호작용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확신보다 피해가 왜 발생하는지, 내 의견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 내가 느끼던 감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등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안전한 소통 환경에서 학습의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모임이 이렇게 진행된 것은 아니며, 수습하기 급급했던 순간들도 많다. 그럼에도 모임의 사례를 공유하는 것은 인정과 지지, 소속감,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관계를 어떻게 청년들에게 보장할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하기 위해서다. 지금 20대 남성의 논의를 이런 맥락을 빼놓고, 이슈만으로 소비한다면 변화는 없다. 선거 결과와 같은 거대한 수치에 10명 안팎이 모여서 벌인 상호작용을 말하는 게 무색해 보일지 모른다. 세습되는 불평등과 사회보장의 부재 등의 큰 문제를 손보지 않고는 미봉책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일상적 관계에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부족(tribe)의 시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요즘이다.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위원 장석준은 이대남, 이대녀, MZ세대 등 최근 등장하는 용어를 '부족명'이라고 규정한다. "한국 사회의 다른 구성원과는 결코 공유할 수 없다고 '가정되는' 특성으로 집단을 나누고, 한국 사회가 마치 그런 집단들의 무더기인 양 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권이 이대남, 이대녀로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건 결국 20대 시민들에게 이 세상을 그렇게 느끼라는 강요나 다름없다. 이 강요를 벗어나고 감각을 재편하기 위해서는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몇몇 정치인을 탓하는 것을 넘어, 그런 정치인을 거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갈등이 더 심화되기 전에 사회를 만드는 것, '청년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해볼 만한 일이다. <끝>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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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관율 에디터
데이터 분석 김수지 에디터
데이터 시각화 임유나 디자이너
프로젝트 얼룩소, 후반전 이야기
1. 얼룩소로 오고 나서 2000명짜리 초대형 여론조사를 했다. 두 번이나. 6월에 한 번, 9월에 한 번. 6월 조사의 주제는 청년 문제, 좀 더 익숙한 단어로 하면 ‘이대남 현상’이다. 시사IN에서 일하던 2019년, 20대 남자 현상을 다룬 적이 있다. 기사가 상상 이상으로 터져 버려서 책까지 냈다. 당시에 기사가 잡아낸 키워드는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이었다. 이제는 남자가 2등 시민이라는 감각. 권력이 여자를 부당하게 우대한다는 분노. 남자를 2등 시민으로 추락시킨 선봉에 바로 페미니즘이 있다. 2년 전에도 궁금했지만 시간과 예산 제약으로 확인하지 못했던 질문이 있다. ‘이대남’이라는 단일 그룹이 존재하긴 하는가? ‘이대남 현상’을 주도하는 것은 어느 계층인가? 상층? 그럴듯하다. 괜찮은 대학을 나온 중산층의 아들들이 사회에 갈만한 자리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을 때, 강력한 분노가 터져나올 수 있다. 하층? 이 또한 그럴듯하다. 불안정노동자의 아들들...
천관율
alookso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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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만님 외
이 글의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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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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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 부정했다(소수점 첫째 자리에서 반올림). 우리는 “내 미래가 기대된다”와 “내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다” 두 문장 중에 골라달라고도 했다. 상층 청년들은 73%가 “기대된다”고 답했다. 하층 청년들은 58%가 “기대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오늘날 한국 청년들에게, 계층 격차는 단순히 소득이나 자산의 격차를 뜻하는 게 아니다. 미래 격차, 기회 격차, 꿈의 격차다. 2021년 한국...
김태환 ·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습니다
11/08 16:28
<하층 청년인 제가 겪는 문제는 이렇습니다>
청년 안에서의 계급 차이, 사실 저를 비롯한 하층 청년들은 이미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습니다. 데이터로 보니 제 느낌에 대한 확신이 드네요. 그 중 계층에 따른 가족관의 차이는 매우 와닿습니다.
"부모 지원 없이 내 힘으로 해냈다"는 식의 청년 성공 스토리를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콧방귀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 청년이 상층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거든요. 상층 청년에게는 부모가 오히려 짐이 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니까요. 가족의 앞가림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있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인 걸 모르는 거죠.
솔직하게 말하자면, 하층 청년인 제 입장에서 부모는 짐이 맞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꿈과 희망을 버린지는 오래 됐습니다. 대신에, 미래에 언제든지 가족 때문에 불행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상층 부모가 자산을 증식하는 동안 하층 부모는 자식에게 빚을 지기 때문인데요.
제 부모님은 곧 은퇴하십니다. 그러면 소득이 줄겠죠. 하지만, 마땅한 대책은 없습니다. 노후 대비 수단은 오로지 자식입니다. 제가 드리는 용돈으로 살아가셔야겠죠. 부모님도 자기 노후 대비 자금을 털어서 조부모님을 모신 것처럼요. 부모님도 제가 부양하길 기대하는 게 당연하고요. 하지만, 저는 부모님을 끝까지 부양할 자신이 없습니다. 늘어나는 평균 수명도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는 제가 부모가 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연애하고 결혼할 경제적 여유가 없고요. 이제는, 연애를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조차 구분이 잘 안 됩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저는 제 노후를 위해서 손 벌릴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직접 노후 생활을 준비해야 합니다.
사실,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하는 것마저도 운수가 대통한 케이스입니다. 혹여나 가족구성원 중에 한 명이 심하게 아프기라도 하면, 노후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곧바로 가족의 모든 자원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건강도 소득 수준에 영향을 받으니, 하층 가족은 파산할 위기에 자주 노출되는 꼴이네요. 표현하신 대로 "서로가 서로에게 대책 없는 사이"입니다. 저를 키워주신 부모님께는 정말 외람되지만, 부모님과 저의 삶이 양립될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듭니다.
하층 청년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부모의 빈곤과 그것의 대물림'입니다. "이대남 현상"은 상층 청년의 문제가 과대 대표됐을 뿐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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