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이 돌아왔다 - 이대남 현상이라는 착시
datalook-데이터 좀 볼까요? 우리 사회의 약자는 누구일까요?

11/08 13:42
모두가 '이대남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대체 ‘이대남’은 누구인가? '이대남'이라는 단일집단이 존재하긴 하는가? 바꿔 말해, ‘이대남 현상’을 주도하는 것은 어떤 20대 남자인가? 취약계층인가 중산층인가? 고졸인가 괜찮은 대학 졸업자인가?
우리는 직접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프로젝트 alookso, KBS 시사기획 창,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가 공동기획했다. 18~34세 남녀 1000명과, 35세 이상 남녀 1000명, 총 2000명이 응답하는 대형 웹조사를 실시했다. 중앙대 신진욱 교수(사회학과)와 인천대 박선경 교수(정치외교학과)가 조사 설계와 분석을 총괄했다.
어떤 숫자는 영화나 소설보다 슬플 수 있다. 우리에겐 이 숫자가 그랬다.
ⓒalookso우리는 18~34세 남녀에게 이 두 문장을 주고 선택해달라고 했다.
- “내 미래는 내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미래에 희망을 갖고 있는지, 희망을 거둬들였는지 묻는 질문이다. 2021년 한국 청년들은 어느 쪽을 골랐을까?
답은 ‘계층에 따라 다르다’였다. 응답한 청년들의 계층을 상중하로 나누었을 때, 상층 청년들은 61%가 미래 희망을 긍정했고, 39%가 부정했다. 그러나 하층 청년들은 37%만 미래 희망을 긍정했고, 64%가 부정했다(소수점 첫째 자리에서 반올림).
우리는 “내 미래가 기대된다”와 “내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다” 두 문장 중에 골라달라고도 했다. 상층 청년들은 73%가 “기대된다”고 답했다. 하층 청년들은 58%가 “기대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오늘날 한국 청년들에게, 계층 격차는 단순히 소득이나 자산의 격차를 뜻하는 게 아니다. 미래 격차, 기회 격차, 꿈의 격차다. 2021년 한국이 풀어야 할 청년 문제의 본질은 ‘이대남’이나 ‘이대녀’라는 신인류의 등장이 아니다. 미래를 꿈꿀 자격마저 계층에 따라 갈라지는 격차 문제다.
계층 격차는 청년의 삶을 내내 따라다닌다. 꿈의 격차는 그 결과다.
계층이 낮으면 성인으로 살아갈 삶의 출발선인 대학 입시부터 꼬인다. 하층 청년은 고졸로 학업을 마치는 비율이 상층 청년보다 3.7배 높다. 괜찮은 대학으로 분류되는 ‘인서울’에 진학하는 비율은 상층 청년이 하층 청년보다 2.7배 높다.
입시 격차는 다시 노동시장 격차로 이어진다. 좋은 일자리는 보통 경력이 쌓일수록 소득이 올라간다. 불안정‧취약노동은 경력이 쌓여도 ‘월급 200만원의 덫’에 걸려서 제자리를 맴돌곤 한다. 18~34세 청년들 중 일을 해서 월급을 받는 근로소득자는 세 명 중 두 명 꼴이다. 이들에게만 물어봤다. “지금 일은 경력이 쌓일수록 소득이 높아지는 직업인가?” 이 응답을 보면 ‘괜찮은 일자리’에 들어간 비율을 대략 알 수 있다. 상층과 하층은 딱 두 배 차이가 난다.

2021년 한국, 어떤 청년들은 이제 취약계층이다.
이것은 우리 시대가 맞이한 새로운 숙제다. 어느 시대에나 청년은 돈과 집이 없다. 하지만 미래 가능성만큼은 청년이 가장 부자다. 그래서 과거에 우리는 청년이 취약계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청년 최대의 자산인 미래 가능성마저 원천봉쇄당한 청년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기회빈곤층이다. 기회의 총량이 계층에 따라 명확히 갈라지고 있다. 하층으로 갈수록 기회빈곤 청년은 늘어난다.
기회빈곤은 계층의 문제고, 계층은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물림된다. 신진욱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세대가 20대와 50대입니다. 하층 20대의 부모가 바로 하층 50대입니다. 이게 어떻게 세대 문제인가요?”
지난 1일 부산 해운대구에서 열린 청년 채용박람회 현장. 연합뉴스
또 한 번, 영화보다 슬픈 숫자가 등장한다. 한국의 가족주의는 끈끈하기로 명성이 높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한국인들은 가족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매우 높다고 답한다. 그러나 고통이 대물림되고 있다면? 내 고통의 뿌리에 부모가 있다면? 가족에 대한 마음도 계층에 따라 갈라질까? 우리 데이터는 ‘그렇다’고 답했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부모님이 내 삶에 도움이 되었는지 짐이 되었는지’ 물었다. 상층은 94%가 도움이 되었다고 답한다. 하층은 41%만 그렇다. 짐이 되었다는 응답은 상층 청년이 1%, 하층 청년이 22%다.
가족에서 마음의 위안을 느낀다는 응답도 상층 청년은 91%, 하층 청년은 43%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은 옛날 얘기다. 따뜻한 가족을 얻는 데도 돈이 든다. 우리는 가족의 화목이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정반대다. 그 어떤 다른 차이보다도, ‘따뜻한 가족’의 계층 격차가 가장 크다.
그럴 수밖에 없어 보인다. 예를 들면 부모의 노후 문제를 보자. “부모님 스스로 노후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응답이 상층 청년은 81%인 반면, 하층 청년은 31%다. 하층 청년들은, 부모의 노후 문제에 부모도 나도 대책이 없다. 가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대책 없는 사이’의 다른 말이다.

이 모든 궤적이 짓누른 결과, 계층 격차는 삶 그 자체를 가른다. 현재 삶의 만족도를 0점(매우 불만족)부터 10점(매우 만족)까지 응답을 받아봤다. 하층 청년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4.7점이다. 중층은 5.7점, 상층은 6.8점이다. 하층과 상층은 삶의 만족도에서 2.1점 차이가 난다. 이것은 매우 큰 차이다.
학력을 기준으로 가장 만족도가 낮은 집단인 ‘고졸’ 응답자는 5.2점, 가장 만족도가 높은 집단인 ‘인서울’ 응답자는 6.4점이다. 그러니까 계층상 하층과 상층의 삶의 만족도 격차(2.1점)는, ‘고졸’과 ‘인서울’의 격차(1.2점)보다도 크다.

상층은 7점을 고른 응답자가 25%로 가장 많다. 그래프가 ‘만족함’에 해당하는 6점 이상으로 기울어있다. 하층은 5점을 고른 응답자가 23%로 가장 많고, 그래프 전체 모양도 만족과 불만족에 고루 분포돼있다.
어떤 숫자를 들여다보아도, 한국의 청년 문제는 ‘이대남 문제’로 요약할 수 없다. 일단 ‘이대남’이라고 묶을 만한 단일집단이 없다. 계층 격차는 오늘날 청년의 삶 전반을 강력하고 일관되게 설명한다. 하층과 상층은 삶의 출발, 삶의 궤적, 미래 전망, 가족에 대한 태도, 삶의 총체적 만족도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다르다. ‘이대남’은 고사하고 같은 나라를 살고 있는 게 맞는가를 물어야 할 결과다.
격차가 문제의 본질이다. 그러나 몇몇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들 사이의 격차를 무시하고 한 세대를 묶어 부르려 한다. 몇몇 언론과 정치인들은 ‘586 대 이대남’ 구도를 즐겨 짠다. 586 세대가 자리를 깔고 앉아있어서 청년들이 힘들고, 그게 ‘이대남의 분노’로 폭발했다는 얘기다.
이것은 너그럽게 봐줘야 오류이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공격이다. 존재하는 격차를 무시하고 한 세대를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 부를 때,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은 격차 구조의 상층인가 하층인가? 압도적으로 하층이 사회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하층이야말로 사회가 지켜보고 문제를 풀어야 할 핵심 대상이다. 주목받아야 할 대상을 뒤틀어서,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지워버리기. 우리 시대에 가장 목소리 큰 청년 담론은 이런 식으로 하층 청년을 공격하고 있다.
증거를 보자. 흔히 말하는 ‘이대남 현상’이 과연 청년세대 남성의 보편적 현상인가, 아니면 특정 계층의 목소리만 지나치게 크게 들리는 현상인가? 계층의 렌즈로 들여다보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18~34세 청년 중에서도 남성들의 응답을 분석한다.
우리는 “정규직은 시험을 통과했으니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보다 월급이 더 많은 게 공정하다” 등 ‘이대남 현상’의 전형적인 태도로 간주되는 의견 몇 개를 문장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동의 여부를 물었다. 결과가 아래 표다.

시험을 통한 선발을 무엇보다 공정하다고 보는 태도. 그 결과로 드러나는 능력주의. 우리 사회가 ‘이대남 현상’이라고 불러온 여러 태도다. 우리 조사 결과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른바 '이대남 현상'은 실제로는 상층 청년 남성들이 주도하는 현상이다.
상층은 괜찮은 대학을 나와서 괜찮은 일자리를 잡고 수도권에 거처를 마련하고 정치나 시사 문제에 적극 목소리를 낸다. 눈에 잘 보인다. 반면 하층의 삶은 여론 주도층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는 노동계급이 같은 점퍼를 입고 같은 공장에 다니며 노동조합으로 조직돼있기라도 했다. 우리 시대의 하층은 그마저도 사라졌다. 플랫폼 노동과 하청 공장과 영세 자영업과 미숙련 서비스업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서울 아파트에 사는 여론 주도층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이 ‘사라짐’은 계층 구조라는 렌즈로 비춰봐야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비정규직 문제 해결 집회. 연합뉴스
그러나 이쯤에서 의문이 들 수 있다. 혹시 우리가 원인과 결과를 반대로 말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계층 격차 때문에 청년들 사이에서 입시 격차, 노동시장 격차, 미래 격차, 삶의 격차가 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로, 공부를 잘 못했거나 직장에서 성실하게 노력하지 않은 결과로 계층 격차가 나는 건 아닐까? 매사에 부정적이어서 가족에게도 불만이 많고 삶에 만족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부정적 태도 때문에 입시와 사회생활에 실패해서 하층으로 떨어진 것은 아닐까?
이처럼 원인과 결과를 반대로 뒤집어도 지금까지 살핀 데이터를 설명할 수 있어 보인다. 만약 이 반론이 옳다면, 하층 청년은 계층 격차의 희생자가 아니라, 성실하지 못한 탈락자다.
이번 조사 설계의 최대 난관도 바로 이 대목이었다. 삶의 태도가 나빠서 계층 격차가 벌어졌는지, 계층 격차가 발목을 잡아서 삶의 궤적이 나빠졌는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것은 계층 격차를 어떻게 측정하느냐의 문제다. 소득이 얼마인지 물어보는 걸로는 안 된다. 태어난 계층이 발목을 잡아서 지금 돈을 못 버는지, 무능하고 불성실한 결과로 계층이 추락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사회학자들은 학력이 계층 격차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본다. 대학을 갔는지, 갔다면 좋은 대학을 갔는지 등에 따라 이후 삶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그리고 학력은 출신 계층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낮은 계층 출신일수록 대학을 못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학력을 기준으로 보면 계층 격차가 원인이고 삶의 궤적이 결과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학력은 다른 문제가 있다. 학계를 한발만 벗어나면, 대학 입시 결과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결정된다는 믿음이 만만치 않다. 따라서 계층 격차가 학력을 가르고 이후 삶을 가른다고 설명하면, 여론은 원인과 결과가 거꾸로 되었다고 느낀다. “그게 아니라, 공부를 안 해서 학력이 갈라지고, 그 결과로 계층 격차가 생기는 것 아냐?”
게티이미지코리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청소년기에 공부환경이 어땠는지 물어보자”라는 결정을 내렸다. 왜? 우리가 세운 가설은 이랬다. 공부환경은 학생 개인의 노력과는 사실상 무관하다. 돈이 많은데도 자녀 공부에 투자하지 않는 부모는 한국에는 거의 없다. 공부환경 차이는 부모의 관심이나 교육철학 차이라기보다는 부모의 계층 차이를 뜻할 것이다. 또한, 주관적인 자기평가가 아니라 객관적인 성장환경을 묻기 때문에, 삶의 태도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비교적 정확한 답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환경으로 계층을 측정하면, 개인의 능력과 노력과는 무관한, 믿을 만한 계층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공부방 계급론’ 문항 6개가 나왔다. 6개 문항에 18~34세 청년세대 남녀는 아래와 같이 답했다.

18~34세 청년들은 세 그룹으로 갈렸다. 첫째, 대부분의 질문에 "매우 그렇다"로 답변한 그룹(상), 주로 "그런 편이다"로 답변한 그룹(중), 그리고 "다소 그렇지 않다"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이 어딘가에 있는 그룹(하). 그룹의 크기는 상층이 33%, 중층이 43%, 하층이 19%였다(모르겠다 응답 5%).
이렇게 해서 우리는 개인의 책임을 넘어서는 ‘맥락의 차이’를 숫자로 측정해냈다. 그 결과가 바로 우리가 앞서 본 일련의 데이터다. 우리가 분석한 모든 데이터는 이 ‘공부방 계급론’으로 추출해낸 계층 격차에 기반을 둔다.
이제 우리는 꽤 확신을 갖고 답할 수 있다. 삶의 태도가 나빠서 계층 격차가 벌어졌는가, 계층 격차가 발목을 잡아서 삶의 궤적이 나빠졌는가? 답은 후자다. 우리는 개인의 태도, 능력, 노력과 무관한 청소년기 공부환경의 격차만으로 ‘공부방 계층’을 추출했다. 그리고 이것으로 대학 입시부터 미래 전망까지 오늘날 한국 청년들이 겪는 삶의 격차를 총체적으로 잡아낼 수 있었다. 삶의 만족도를 기준으로, 공부방 상층과 하층이 보여주는 격차는 심지어 ‘고졸’과 ‘인서울’(한국 사회에서 늘 강력하게 작동해온 학력 격차의 양극단이다)의 격차보다도 컸다.
2021년 청년 문제의 분출은 ‘이대남 현상’이라는 엉뚱한 이름을 너무 오래 달아왔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고전적인 계층문제가 한국 정치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다. 그 신호가 특정한 세대‧성별에서 먼저 분출했을 뿐, 격차 자체는 특정 세대‧성별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문제다.
by 천관율 에디터
데이터 분석 김수지 에디터
데이터 시각화 임유나 디자이너



프로젝트 얼룩소, 후반전 이야기
1. 얼룩소로 오고 나서 2000명짜리 초대형 여론조사를 했다. 두 번이나. 6월에 한 번, 9월에 한 번. 6월 조사의 주제는 청년 문제, 좀 더 익숙한 단어로 하면 ‘이대남 현상’이다. 시사IN에서 일하던 2019년, 20대 남자 현상을 다룬 적이 있다. 기사가 상상 이상으로 터져 버려서 책까지 냈다. 당시에 기사가 잡아낸 키워드는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이었다. 이제는 남자가 2등 시민이라는 감각. 권력이 여자를 부당하게 우대한다는 분노. 남자를 2등 시민으로 추락시킨 선봉에 바로 페미니즘이 있다. 2년 전에도 궁금했지만 시간과 예산 제약으로 확인하지 못했던 질문이 있다. ‘이대남’이라는 단일 그룹이 존재하긴 하는가? ‘이대남 현상’을 주도하는 것은 어느 계층인가? 상층? 그럴듯하다. 괜찮은 대학을 나온 중산층의 아들들이 사회에 갈만한 자리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을 때, 강력한 분노가 터져나올 수 있다. 하층? 이 또한 그럴듯하다. 불안정노동자의 아들들...

천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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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만님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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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 20:15
소득의 부족으로 인한 기회의 부재, 기회의 부재로 인한 소득의 부족
이 악순환의 고리를 부모 대에서 끊어내지 못하면, 자식에게까지 계속하여 이어지게 됩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하나요. 어렸을 때부터 가난에서 살게 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됩니다.
물론 깨달음을 얻거나, 살아가는 지혜를 깨우친 소수는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해쳐나가지만요.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힘으로 가난을 이겨 낸 사람들에게도 한 가지 고민이 남아있습니다.
자식이 사라지면 계속하여 가난에 허덕일 부모들이 바로 그 고민입니다.
정말 슬픈 말이지만, 고민이라고 아무리 잘 포장한들,
부모 도움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가난에서 잡초처럼 자란 자식에게 그들은 짐에 불과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사회적 현상이 결국에는 전통적인 가정상을 붕괴시키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선시대부터, 어쩌면 고려시대 때부터 이어져 왔을 '끈끈한 가족애' 는
소득의 차이로 인해 일어난 새로운 계층의 분...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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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 18:53
애초에 노력만 한다고 뭔가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세상에서 상식적으로만 생각하더라도 가난한 청년들이 능력주의를 신봉할 이유가 마땅찮죠.
전쟁직후 옛날이야 모두가 다 공평하게 못살았으니 노력하면 올라갈수 있다지만 현대에서는 말도 안되는 천재라도 부유한 집안의 자녀들에 비해 교육이나 여러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가난한 청년들은 그저 끝도 없는 가난의 연쇄에 결국 포기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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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08 17:59
후반전이 기다려집니다.
시사IN 특집 기사와 책 <20대 남자>에서 포착한 '20대 남자 현상'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 담긴 '학벌/능력주의'와 '반페미니즘'이었죠. 그리고 두 가지 주제 중 더 핵심적으로 다뤄졌던 것은 반페미니즘 의식이었습니다.
'페미'라는 말이나 낌새(!)에 마치 자동스위치처럼 반응하는 이대남의 반페미니즘 의식은 '공부방 계급'에 상관없이 공유되고 있지 않을까요. 이대남이 시사IN에서 다룰 만큼 주목받은 이유는, '페미 정당' (이라고 느껴지는)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그로 인한 선거 결과가 아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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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

11/08 17:54
아주 공들인 통계와 분석이었습니다. 생각할거리가 많고 허점이라고 비판받을 부분도 보일만한데, 단점보다 장점위주로 보도록 하는게 좋겠죠.저는 ‘이대남 현상’ 상층이 주도 하층이 시큰둥 표에 눈이 갔습니다.상중하 계층으로 나눴을 때 각각의 사안에 대해서 하층 청년은 매우 일관된 30-40%정도의 반응을 보였는데 (모든 사안에 동일하고 균질한 분포의 대답), 중층 청년의 의견이 상층과 하층에 동의하는 비율을 보면 사안에 따라 갈리는 패턴이 보였어요. 중층 청년이 상층과 의견을 공유하는 질문은 : 좋은 대학 졸업, 정규직이 더 많은 월급 받아야, 능력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이 공정하다 중층 청년이 하층과 의견을 공유하는 질문은: 능력은 시험성적으로 보면 알 수 있다, 공공기관 저소득층 채용할당제에 대한 의견 이었습니다. 저는 이 중층 청년들의 패턴을 잘 분석해보는 것이 전반적 경향성을 보는데 중요한 것 같고요, 더 나아가 상중하 모두가 45%이상 공히 동의하는 부분에 대해서는...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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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1/08 17:53
2030이 영끌해서 아파트 산다고 했을 때부터 …
작년인가요.
부동산이 시끌시끌 아파트값이 시끌시끌 하기 시작한 뒤 뉴스에서 나오더라구요.
“2030이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고 있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했습니다.
영끌해서 아파트를 산다는 말이 너무 낯설었습니다. 저는 끌어올 영혼을 이미 모두 팔아 매일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거든요. 주변 친구들도 영끌해서 생존하지,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는 친구는 없었어요.
대체 누가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는 걸까?
궁금하던 차에, 친구의 친구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전셋집을 알아보는데, 영 맘에 드는 집이 없다구요. 저도 마침 혼자 독립할 전세를 알아보던 시기여서 이야기에 참여했어요. 우리 동네도 많이 비싸져서 원룸이 전세 1억3천이다, 갈 곳이 없어 걱정이다, 라고 토로했지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 ‘5억 선으로 알아보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그냥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기로 했대.’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해준 친구도,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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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08 17:41
[기회의 빈곤]청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이나라에
진정한 어른, 스승의 부재가 통감되는 표현이십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부끄럽고 미안하고
"청년, 너희들의 잘못은 1도 없다" 다독이고싶습니다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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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1/08 17:27
가난함과 계급을 다루는 이슈는 누군가에게는 상처와 고통이 될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겉핥기로 끝나서는 안 될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심도 있는 결말과 내용으로, (끝장을 볼 마음으로) 접근하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대하고 살펴보겠습니다.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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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1/08 17:15
저에겐 상당히 놀라운 결과입니다.
공부방 이론에서 1, 2번을 제외하면 모두 아니다가 나옵니다.
그래도 운 좋게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에서 아둥바둥 삶을 꾸려내고 있는 20대 초 남성입니다.
그래서인지 제 주위에서 이대남 현상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는데요.
현 사회 구조에 불만이 많은 제가 돌연변이 인가 싶었습니다.
댓글들에 여유있는 청년들의 과대대표된 이대남현상에 분노하시는 분들이 보여서,
위로와 동질감이 듭니다.
뿔뿔히 흩어진 사회구조에 분노하는 청년들이 어떻게 조직화 될 수 있을지,
사회에 자신들의 몫 만큼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이어질 시리즈도 기대가 됩니다.더 보기
1
4

11/08 16:54
잘 읽었습니다.
결론은 상층, 중층 계급이 청년을 과대 대표하고 있다는 것인데, 실제 (공부방 기준으로 본) 상층, 중층 비율이 높고(합계 76%) 최근 정당 지지도나 선거 결과로 드러난 청년 표심을 보면 상층, 중층 계층의 정서와 유사한 것 같습니다.
상층, 중층이 온라인 활동, 여론조사 응답만이 아니라 실제 투표율도 높다면 현실적으로 청년 정책은 이들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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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1/08 16:52
세대별, 계급별로 소위 이대남 현상에 대한 답변을 분석해준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다만 아래 다른 분들이 말씀해주신 것 처럼 상-중-하층 계급을 나눈 기준이 초반에 명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또, 해당 문항들에 대한 답변으로 나누는 '공부방 계급론' 자체가 자산이나 부모의 교육 수준 등으로 측정하는 사회 경제적 계층을 기준으로 분석했을 때와 얼마나 차이가 날지도 의문이 듭니다. 세 계층을 나눈 항목의 문항들 모두 사회경제적 계층을 반영하는 항목들로 보이는데, 굳이 새로운 이름을 붙일만큼 차별점이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공부방 계급'으로 분석한 결과와 사회경제적 계층으로 분석한 결과를 비교해서 봐도 흥미로울 거 같아요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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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계층에 따라 다르다’였다. 응답한 청년들의 계층을 상중하로 나누었을 때, 상층 청년들은 61%가 미래 희망을 긍정했고, 39%가 부정했다. 그러나 하층 청년들은 37%만 미래 희망을 긍정했고, 64%가 부정했다(소수점 첫째 자리에서 반올림).
우리는 “내 미래가 기대된다”와 “내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다” 두 문장 중에 골라달라고도 했다. 상층 청년들은 73%가 “기대된다”고 답했다. 하층 청년들은 58%가 “기대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오늘날 한국 청년들에게, 계층 격차는 단순히 소득이나 자산의 격차를 뜻하는 게 아니다. 미래 격차, 기회 격차, 꿈의 격차다. 2021년 한국이 풀어야 할 청년 문제의 본질은 ‘이대남’이나 ‘이대녀’라는 신인류의 등장이 아니다. 미래를 꿈꿀 자격마저 계층에 따라 갈라지는 격차 문제다.
계층 격차는 청년의 삶을 내내 따라다닌다. 꿈의 격차는 그 결과다.
계층이 낮으면 성인으로 살아갈 삶의 출발선인 대학 입시부터 꼬인다. 하층 청년은 고졸로 학업을 마치는 비율이 상층 청년보다 3.7배 높다. 괜찮은 대학으로 분류되는 ‘인서울’에 진학하는 비율은 상층 청년이 하층 청년보다 2.7배 높다.
입시 격차는 다시 노동시장 격차로 이어진다. 좋은 일자리는 보통 경력이 쌓일수록 소득이 올라간다. 불안정‧취약노동은 경력이 쌓여도 ‘월급 200만원의 덫’에 걸려서 제자리를 맴돌곤 한다. 18~34세 청년들 중 일을 해서 월급을 받는 근로소득자는 세 명 중 두 명 꼴이다. 이들에게만 물어봤다. “지금 일은 경력이 쌓일수록 소득이 높아지는 직업인가?” 이 응답을 보면 ‘괜찮은 일자리’에 들어간 비율을 대략 알 수 있다. 상층과 하층은 딱 두 배 차이가 난다.

2021년 한국, 어떤 청년들은 이제 취약계층이다.
이것은 우리 시대가 맞이한 새로운 숙제다. 어느 시대에나 청년은 돈과 집이 없다. 하지만 미래 가능성만큼은 청년이 가장 부자다. 그래서 과거에 우리는 청년이 취약계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청년 최대의 자산인 미래 가능성마저 원천봉쇄당한 청년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기회빈곤층이다. 기회의 총량이 계층에 따라 명확히 갈라지고 있다. 하층으로 갈수록 기회빈곤 청년은 늘어난다.
기회빈곤은 계층의 문제고, 계층은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물림된다. 신진욱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세대가 20대와 50대입니다. 하층 20대의 부모가 바로 하층 50대입니다. 이게 어떻게 세대 문제인가요?”
지난 1일 부산 해운대구에서 열린 청년 채용박람회 현장. 연합뉴스또 한 번, 영화보다 슬픈 숫자가 등장한다. 한국의 가족주의는 끈끈하기로 명성이 높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한국인들은 가족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매우 높다고 답한다. 그러나 고통이 대물림되고 있다면? 내 고통의 뿌리에 부모가 있다면? 가족에 대한 마음도 계층에 따라 갈라질까? 우리 데이터는 ‘그렇다’고 답했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부모님이 내 삶에 도움이 되었는지 짐이 되었는지’ 물었다. 상층은 94%가 도움이 되었다고 답한다. 하층은 41%만 그렇다. 짐이 되었다는 응답은 상층 청년이 1%, 하층 청년이 22%다.
가족에서 마음의 위안을 느낀다는 응답도 상층 청년은 91%, 하층 청년은 43%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은 옛날 얘기다. 따뜻한 가족을 얻는 데도 돈이 든다. 우리는 가족의 화목이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정반대다. 그 어떤 다른 차이보다도, ‘따뜻한 가족’의 계층 격차가 가장 크다.
그럴 수밖에 없어 보인다. 예를 들면 부모의 노후 문제를 보자. “부모님 스스로 노후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응답이 상층 청년은 81%인 반면, 하층 청년은 31%다. 하층 청년들은, 부모의 노후 문제에 부모도 나도 대책이 없다. 가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대책 없는 사이’의 다른 말이다.

이 모든 궤적이 짓누른 결과, 계층 격차는 삶 그 자체를 가른다. 현재 삶의 만족도를 0점(매우 불만족)부터 10점(매우 만족)까지 응답을 받아봤다. 하층 청년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4.7점이다. 중층은 5.7점, 상층은 6.8점이다. 하층과 상층은 삶의 만족도에서 2.1점 차이가 난다. 이것은 매우 큰 차이다.
학력을 기준으로 가장 만족도가 낮은 집단인 ‘고졸’ 응답자는 5.2점, 가장 만족도가 높은 집단인 ‘인서울’ 응답자는 6.4점이다. 그러니까 계층상 하층과 상층의 삶의 만족도 격차(2.1점)는, ‘고졸’과 ‘인서울’의 격차(1.2점)보다도 크다.

상층은 7점을 고른 응답자가 25%로 가장 많다. 그래프가 ‘만족함’에 해당하는 6점 이상으로 기울어있다. 하층은 5점을 고른 응답자가 23%로 가장 많고, 그래프 전체 모양도 만족과 불만족에 고루 분포돼있다.
어떤 숫자를 들여다보아도, 한국의 청년 문제는 ‘이대남 문제’로 요약할 수 없다. 일단 ‘이대남’이라고 묶을 만한 단일집단이 없다. 계층 격차는 오늘날 청년의 삶 전반을 강력하고 일관되게 설명한다. 하층과 상층은 삶의 출발, 삶의 궤적, 미래 전망, 가족에 대한 태도, 삶의 총체적 만족도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다르다. ‘이대남’은 고사하고 같은 나라를 살고 있는 게 맞는가를 물어야 할 결과다.
격차가 문제의 본질이다. 그러나 몇몇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들 사이의 격차를 무시하고 한 세대를 묶어 부르려 한다. 몇몇 언론과 정치인들은 ‘586 대 이대남’ 구도를 즐겨 짠다. 586 세대가 자리를 깔고 앉아있어서 청년들이 힘들고, 그게 ‘이대남의 분노’로 폭발했다는 얘기다.
이것은 너그럽게 봐줘야 오류이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공격이다. 존재하는 격차를 무시하고 한 세대를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 부를 때,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은 격차 구조의 상층인가 하층인가? 압도적으로 하층이 사회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하층이야말로 사회가 지켜보고 문제를 풀어야 할 핵심 대상이다. 주목받아야 할 대상을 뒤틀어서,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지워버리기. 우리 시대에 가장 목소리 큰 청년 담론은 이런 식으로 하층 청년을 공격하고 있다.
증거를 보자. 흔히 말하는 ‘이대남 현상’이 과연 청년세대 남성의 보편적 현상인가, 아니면 특정 계층의 목소리만 지나치게 크게 들리는 현상인가? 계층의 렌즈로 들여다보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18~34세 청년 중에서도 남성들의 응답을 분석한다.
우리는 “정규직은 시험을 통과했으니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보다 월급이 더 많은 게 공정하다” 등 ‘이대남 현상’의 전형적인 태도로 간주되는 의견 몇 개를 문장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동의 여부를 물었다. 결과가 아래 표다.

시험을 통한 선발을 무엇보다 공정하다고 보는 태도. 그 결과로 드러나는 능력주의. 우리 사회가 ‘이대남 현상’이라고 불러온 여러 태도다. 우리 조사 결과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른바 '이대남 현상'은 실제로는 상층 청년 남성들이 주도하는 현상이다.
상층은 괜찮은 대학을 나와서 괜찮은 일자리를 잡고 수도권에 거처를 마련하고 정치나 시사 문제에 적극 목소리를 낸다. 눈에 잘 보인다. 반면 하층의 삶은 여론 주도층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는 노동계급이 같은 점퍼를 입고 같은 공장에 다니며 노동조합으로 조직돼있기라도 했다. 우리 시대의 하층은 그마저도 사라졌다. 플랫폼 노동과 하청 공장과 영세 자영업과 미숙련 서비스업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서울 아파트에 사는 여론 주도층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이 ‘사라짐’은 계층 구조라는 렌즈로 비춰봐야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비정규직 문제 해결 집회. 연합뉴스그러나 이쯤에서 의문이 들 수 있다. 혹시 우리가 원인과 결과를 반대로 말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계층 격차 때문에 청년들 사이에서 입시 격차, 노동시장 격차, 미래 격차, 삶의 격차가 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로, 공부를 잘 못했거나 직장에서 성실하게 노력하지 않은 결과로 계층 격차가 나는 건 아닐까? 매사에 부정적이어서 가족에게도 불만이 많고 삶에 만족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부정적 태도 때문에 입시와 사회생활에 실패해서 하층으로 떨어진 것은 아닐까?
이처럼 원인과 결과를 반대로 뒤집어도 지금까지 살핀 데이터를 설명할 수 있어 보인다. 만약 이 반론이 옳다면, 하층 청년은 계층 격차의 희생자가 아니라, 성실하지 못한 탈락자다.
이번 조사 설계의 최대 난관도 바로 이 대목이었다. 삶의 태도가 나빠서 계층 격차가 벌어졌는지, 계층 격차가 발목을 잡아서 삶의 궤적이 나빠졌는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것은 계층 격차를 어떻게 측정하느냐의 문제다. 소득이 얼마인지 물어보는 걸로는 안 된다. 태어난 계층이 발목을 잡아서 지금 돈을 못 버는지, 무능하고 불성실한 결과로 계층이 추락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사회학자들은 학력이 계층 격차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본다. 대학을 갔는지, 갔다면 좋은 대학을 갔는지 등에 따라 이후 삶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그리고 학력은 출신 계층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낮은 계층 출신일수록 대학을 못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학력을 기준으로 보면 계층 격차가 원인이고 삶의 궤적이 결과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학력은 다른 문제가 있다. 학계를 한발만 벗어나면, 대학 입시 결과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결정된다는 믿음이 만만치 않다. 따라서 계층 격차가 학력을 가르고 이후 삶을 가른다고 설명하면, 여론은 원인과 결과가 거꾸로 되었다고 느낀다. “그게 아니라, 공부를 안 해서 학력이 갈라지고, 그 결과로 계층 격차가 생기는 것 아냐?”
게티이미지코리아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청소년기에 공부환경이 어땠는지 물어보자”라는 결정을 내렸다. 왜? 우리가 세운 가설은 이랬다. 공부환경은 학생 개인의 노력과는 사실상 무관하다. 돈이 많은데도 자녀 공부에 투자하지 않는 부모는 한국에는 거의 없다. 공부환경 차이는 부모의 관심이나 교육철학 차이라기보다는 부모의 계층 차이를 뜻할 것이다. 또한, 주관적인 자기평가가 아니라 객관적인 성장환경을 묻기 때문에, 삶의 태도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비교적 정확한 답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환경으로 계층을 측정하면, 개인의 능력과 노력과는 무관한, 믿을 만한 계층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공부방 계급론’ 문항 6개가 나왔다. 6개 문항에 18~34세 청년세대 남녀는 아래와 같이 답했다.

18~34세 청년들은 세 그룹으로 갈렸다. 첫째, 대부분의 질문에 "매우 그렇다"로 답변한 그룹(상), 주로 "그런 편이다"로 답변한 그룹(중), 그리고 "다소 그렇지 않다"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이 어딘가에 있는 그룹(하). 그룹의 크기는 상층이 33%, 중층이 43%, 하층이 19%였다(모르겠다 응답 5%).
이렇게 해서 우리는 개인의 책임을 넘어서는 ‘맥락의 차이’를 숫자로 측정해냈다. 그 결과가 바로 우리가 앞서 본 일련의 데이터다. 우리가 분석한 모든 데이터는 이 ‘공부방 계급론’으로 추출해낸 계층 격차에 기반을 둔다.
이제 우리는 꽤 확신을 갖고 답할 수 있다. 삶의 태도가 나빠서 계층 격차가 벌어졌는가, 계층 격차가 발목을 잡아서 삶의 궤적이 나빠졌는가? 답은 후자다. 우리는 개인의 태도, 능력, 노력과 무관한 청소년기 공부환경의 격차만으로 ‘공부방 계층’을 추출했다. 그리고 이것으로 대학 입시부터 미래 전망까지 오늘날 한국 청년들이 겪는 삶의 격차를 총체적으로 잡아낼 수 있었다. 삶의 만족도를 기준으로, 공부방 상층과 하층이 보여주는 격차는 심지어 ‘고졸’과 ‘인서울’(한국 사회에서 늘 강력하게 작동해온 학력 격차의 양극단이다)의 격차보다도 컸다.
2021년 청년 문제의 분출은 ‘이대남 현상’이라는 엉뚱한 이름을 너무 오래 달아왔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고전적인 계층문제가 한국 정치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다. 그 신호가 특정한 세대‧성별에서 먼저 분출했을 뿐, 격차 자체는 특정 세대‧성별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문제다.
by 천관율 에디터
데이터 분석 김수지 에디터
데이터 시각화 임유나 디자이너



프로젝트 얼룩소, 후반전 이야기
1. 얼룩소로 오고 나서 2000명짜리 초대형 여론조사를 했다. 두 번이나. 6월에 한 번, 9월에 한 번. 6월 조사의 주제는 청년 문제, 좀 더 익숙한 단어로 하면 ‘이대남 현상’이다. 시사IN에서 일하던 2019년, 20대 남자 현상을 다룬 적이 있다. 기사가 상상 이상으로 터져 버려서 책까지 냈다. 당시에 기사가 잡아낸 키워드는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이었다. 이제는 남자가 2등 시민이라는 감각. 권력이 여자를 부당하게 우대한다는 분노. 남자를 2등 시민으로 추락시킨 선봉에 바로 페미니즘이 있다. 2년 전에도 궁금했지만 시간과 예산 제약으로 확인하지 못했던 질문이 있다. ‘이대남’이라는 단일 그룹이 존재하긴 하는가? ‘이대남 현상’을 주도하는 것은 어느 계층인가? 상층? 그럴듯하다. 괜찮은 대학을 나온 중산층의 아들들이 사회에 갈만한 자리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을 때, 강력한 분노가 터져나올 수 있다. 하층? 이 또한 그럴듯하다. 불안정노동자의 아들들...

천관율
alookso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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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만님 외이 글의 작성자

alook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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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글11/08 20:15
소득의 부족으로 인한 기회의 부재, 기회의 부재로 인한 소득의 부족
이 악순환의 고리를 부모 대에서 끊어내지 못하면, 자식에게까지 계속하여 이어지게 됩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하나요. 어렸을 때부터 가난에서 살게 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됩니다.
물론 깨달음을 얻거나, 살아가는 지혜를 깨우친 소수는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해쳐나가지만요.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힘으로 가난을 이겨 낸 사람들에게도 한 가지 고민이 남아있습니다.
자식이 사라지면 계속하여 가난에 허덕일 부모들이 바로 그 고민입니다.
정말 슬픈 말이지만, 고민이라고 아무리 잘 포장한들,
부모 도움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가난에서 잡초처럼 자란 자식에게 그들은 짐에 불과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사회적 현상이 결국에는 전통적인 가정상을 붕괴시키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선시대부터, 어쩌면 고려시대 때부터 이어져 왔을 '끈끈한 가족애' 는
소득의 차이로 인해 일어난 새로운 계층의 분...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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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 18:53
애초에 노력만 한다고 뭔가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세상에서 상식적으로만 생각하더라도 가난한 청년들이 능력주의를 신봉할 이유가 마땅찮죠.
전쟁직후 옛날이야 모두가 다 공평하게 못살았으니 노력하면 올라갈수 있다지만 현대에서는 말도 안되는 천재라도 부유한 집안의 자녀들에 비해 교육이나 여러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가난한 청년들은 그저 끝도 없는 가난의 연쇄에 결국 포기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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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08 17:59
후반전이 기다려집니다.
시사IN 특집 기사와 책 <20대 남자>에서 포착한 '20대 남자 현상'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 담긴 '학벌/능력주의'와 '반페미니즘'이었죠. 그리고 두 가지 주제 중 더 핵심적으로 다뤄졌던 것은 반페미니즘 의식이었습니다.
'페미'라는 말이나 낌새(!)에 마치 자동스위치처럼 반응하는 이대남의 반페미니즘 의식은 '공부방 계급'에 상관없이 공유되고 있지 않을까요. 이대남이 시사IN에서 다룰 만큼 주목받은 이유는, '페미 정당' (이라고 느껴지는)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그로 인한 선거 결과가 아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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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1/08 17:54
아주 공들인 통계와 분석이었습니다. 생각할거리가 많고 허점이라고 비판받을 부분도 보일만한데, 단점보다 장점위주로 보도록 하는게 좋겠죠.저는 ‘이대남 현상’ 상층이 주도 하층이 시큰둥 표에 눈이 갔습니다.상중하 계층으로 나눴을 때 각각의 사안에 대해서 하층 청년은 매우 일관된 30-40%정도의 반응을 보였는데 (모든 사안에 동일하고 균질한 분포의 대답), 중층 청년의 의견이 상층과 하층에 동의하는 비율을 보면 사안에 따라 갈리는 패턴이 보였어요. 중층 청년이 상층과 의견을 공유하는 질문은 : 좋은 대학 졸업, 정규직이 더 많은 월급 받아야, 능력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이 공정하다 중층 청년이 하층과 의견을 공유하는 질문은: 능력은 시험성적으로 보면 알 수 있다, 공공기관 저소득층 채용할당제에 대한 의견 이었습니다. 저는 이 중층 청년들의 패턴을 잘 분석해보는 것이 전반적 경향성을 보는데 중요한 것 같고요, 더 나아가 상중하 모두가 45%이상 공히 동의하는 부분에 대해서는...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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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1/08 17:53
2030이 영끌해서 아파트 산다고 했을 때부터 …
작년인가요.
부동산이 시끌시끌 아파트값이 시끌시끌 하기 시작한 뒤 뉴스에서 나오더라구요.
“2030이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고 있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했습니다.
영끌해서 아파트를 산다는 말이 너무 낯설었습니다. 저는 끌어올 영혼을 이미 모두 팔아 매일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거든요. 주변 친구들도 영끌해서 생존하지,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는 친구는 없었어요.
대체 누가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는 걸까?
궁금하던 차에, 친구의 친구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전셋집을 알아보는데, 영 맘에 드는 집이 없다구요. 저도 마침 혼자 독립할 전세를 알아보던 시기여서 이야기에 참여했어요. 우리 동네도 많이 비싸져서 원룸이 전세 1억3천이다, 갈 곳이 없어 걱정이다, 라고 토로했지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 ‘5억 선으로 알아보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그냥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기로 했대.’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해준 친구도,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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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 17:41
[기회의 빈곤]청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이나라에
진정한 어른, 스승의 부재가 통감되는 표현이십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부끄럽고 미안하고
"청년, 너희들의 잘못은 1도 없다" 다독이고싶습니다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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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1/08 17:27
가난함과 계급을 다루는 이슈는 누군가에게는 상처와 고통이 될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겉핥기로 끝나서는 안 될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심도 있는 결말과 내용으로, (끝장을 볼 마음으로) 접근하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대하고 살펴보겠습니다.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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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1/08 17:15
저에겐 상당히 놀라운 결과입니다.
공부방 이론에서 1, 2번을 제외하면 모두 아니다가 나옵니다.
그래도 운 좋게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에서 아둥바둥 삶을 꾸려내고 있는 20대 초 남성입니다.
그래서인지 제 주위에서 이대남 현상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는데요.
현 사회 구조에 불만이 많은 제가 돌연변이 인가 싶었습니다.
댓글들에 여유있는 청년들의 과대대표된 이대남현상에 분노하시는 분들이 보여서,
위로와 동질감이 듭니다.
뿔뿔히 흩어진 사회구조에 분노하는 청년들이 어떻게 조직화 될 수 있을지,
사회에 자신들의 몫 만큼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이어질 시리즈도 기대가 됩니다.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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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1/08 16:54
잘 읽었습니다.
결론은 상층, 중층 계급이 청년을 과대 대표하고 있다는 것인데, 실제 (공부방 기준으로 본) 상층, 중층 비율이 높고(합계 76%) 최근 정당 지지도나 선거 결과로 드러난 청년 표심을 보면 상층, 중층 계층의 정서와 유사한 것 같습니다.
상층, 중층이 온라인 활동, 여론조사 응답만이 아니라 실제 투표율도 높다면 현실적으로 청년 정책은 이들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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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1/08 16:52
세대별, 계급별로 소위 이대남 현상에 대한 답변을 분석해준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다만 아래 다른 분들이 말씀해주신 것 처럼 상-중-하층 계급을 나눈 기준이 초반에 명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또, 해당 문항들에 대한 답변으로 나누는 '공부방 계급론' 자체가 자산이나 부모의 교육 수준 등으로 측정하는 사회 경제적 계층을 기준으로 분석했을 때와 얼마나 차이가 날지도 의문이 듭니다. 세 계층을 나눈 항목의 문항들 모두 사회경제적 계층을 반영하는 항목들로 보이는데, 굳이 새로운 이름을 붙일만큼 차별점이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공부방 계급'으로 분석한 결과와 사회경제적 계층으로 분석한 결과를 비교해서 봐도 흥미로울 거 같아요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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