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원폭 투하와 기억]
나는 기억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기억이란 존재를 하나의 근대적 혹은 현대적 다중의 언어로 교육받은 인간이 갖는 게 하나의 개별적 퍼스널리티이자 집단(집체)적 기억과 민족성이라고 여겨서다. 하여 전후 일본의 `후쿠시마 핵투하`에 대한 전후란 시대를 열어내고 `평화국가`란 현재를 계승하게 한 `전쟁의 기억`은 현재의 일본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거대한 축으로서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해 왔다.
현재에도 일본 언론 등을 통해 묘사되는 일본의 큰 두 개의 양상 중 하나는 전후 요시다 체제 하에서 버블 폭락전까지 누렸던 경제 성장 시대의 영화에 대한 기억이며, 다른 하나는 평화헌법(맥아더 헌법)을 받아들이게 된 기폭제로서 `히로시마 원폭 투하`이후 동아시아의 맹주 일본제국에 대한 향수와 이후 평화국가에 대한 양가적 시선이 그러하다.(평화헌법 개헌과 찬/반)
`기억의 정치`에 대한 일본 사회를 구성하는 동류적 가치관에 대해 알아보면서 느낀 게, 일본인들은 `피해자 의식`으로서의 히로시마 원폭에 대한 집단 기억과 이를 추모하는 마음, 그리고 `피해자 의식`을 극복하기 위한 방식으로서 다시금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이 가졌던 영화를 되찾자는 우익적 사관이 갈등과 대립의 측면을 보이며 상호발전한단 것인데. 이 때문에 일본은 끊임없이 비교되는 독일의 전쟁기억(전쟁 재발 금지, 평화유지)과 다른 양가적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라 본다.
`양가적 의미`를 갖게 된 이유는 뭘까. 미국에 대한 두 개의 마음 때문이 아닐까싶다. 그 가장 상징적 의미가 바로 `히로시마`에 묶여 있는 데,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가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지만, 그러므로 미-일동맹과 전후 요시다체제 그리고 미일안전보장조약이 이루어지게 만든 곳이기도 하다. 전후 원폭 피해자들의 마음을 되집어야 하지만, 다시금 태평양 전쟁의 진전, 진주만 폭격,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수용 등 모두가 일련의 `원폭 투하`라는 하나의 거대한 빅뱅적 사건으로부터 돌출됐기 때문이다.
독일이 `역사청산`과 `피해자 보상`에 초점을 맞춘 게 전후 흐름이었다면, 일본의 경우 자신들에게 `원폭피해`를 준 미국이란 공공의 적과 아군을 안고 그 집체적 기억을 극복해야만 했던 양가적 감정이 있기때문에(한국이 일제강점의 일본의 차관, 지원, 기술력 도입을 통해 성장 할 수 있었던 것 과 마찬가지로) 결국 `히로미사의 원폭 투하`는 일본에 `피해자`, `희생자`이면서도 `미국에 편승한 일본`, `대동아공영의 경제 강국으로 올라서게 된 교두보 적 계기`의 집단 기억으로 승화했고.
현재에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의 영화`를 위한 `평화헌법개헌과 해외파명`, `미일 동맹 강화와 경제 성장`, `반중 노선을 통한 인도-태평양 전략에서의 우선권` 그리고 `전범국가로서의 통렬한 반성에 대한 의미퇴색`(우리도 원폭 피해자국이자, 전 후 재건)등의 현재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히로시마의 기억`으로 흘러 온 일본. `피해자, 희생자`에 대한 자기애착적이지만 다시 혐오적인 착종의 마음들이 현재의 `평화국가를 부정하냐 혹은 긍정하냐`의 평행선상의 흐름을 가진 일본의 모습을 잉태하지 않았으려나 한다.
▼2021.0.06/ 히로시마 원폭 76주년 (히로시마 교도=연합뉴스) 히로시마 원폭 투하 76주년인 6일 오전 일본 히로시마(廣島)시 평화기념 공원에서 추모행사 참가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뒤쪽에 원폭 돔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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