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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7월 2020
hodujang
사회과학, 역사, 정치
6.25전쟁, 반일, 북한인권, 한국전쟁
‘South Korea’이란 오명, 우리 세대에서 끝내자 (6·25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장혜원(hodujang@naver.com)
“우리 대(代)에서 끝내야 한다” 6·25 전쟁(한국전쟁) 70주년을 맞는 올해 분단국가를 물려 받아 평생을 북한의 도발과 핵위협 속에 살아 온 자식·청년세대 내가 가장 앞서 하고 싶은 한 마디다. 2020년 올해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촉발시켰으며 분단체제가 시작됐고 남남갈등의 도화선이 된 한국전쟁 70주년의 해다. 1989년 6월에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ROK South Korean)에 태어난 나는 단 한번도 Korean이었던 적이 없다. 분단국가에 태어난 나의 본래 국적은 Republic of South Korea다. 해외 사이트에서의 사소한 상거래 행위라도 할라치면 나는 나의 국적이 다시 Korean이 아닌 South Korean임을 확인 받는다.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나는 항상 ‘South Korean’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역설적이고 반어적으로 존재해 온 North Korea(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DPRK)를 주목했어야만 했다.
풀어 말하면 나를 비롯해 우리 부모 세대는 자식세대에게 1953년 ‘통일한국(Korea)’가 아닌 ‘분단한국(Divided Korea)’을 물려주고 있는 꼴이다. 한국전쟁 발발 ‘n’주년을 기억하는 것을 우리 부모 세대 또한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도 분명 나와 같이 그들의 부모 세대로부터 분단국가와 분단체제를 이어 받았고 그 아래에서 동일선상의 고민과 딜레마를 부둥켜안고 살아 왔을 테니까 말이다. 다만 ‘한국전쟁’과 ‘분단’을 다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지향점이 ‘통일’이고 ‘통일한국’이며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우리 자녀 세대에겐 우리와 같은 고민과 고통을 물려 주는 것을 중단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분단의 원흉, 살아 있는 적(敵) 북조선 김씨 왕조가 아닌 종결된 역사 ‘일재잔재 청산’에 집중하는 답답한 현 세대
6·25 전쟁은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쯤 북한군이 선전포고 없이 242대의 탱크와 170대의 전투기를 통해 서부, 중부, 동부에 걸친 전면 남친을 개시하며 시작 됐다. 당시 거의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던 남한군은 북한군의 기습에 부산일대까지 밀렸다.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이 미국 맥아더 장군의 지휘 하에 성공했고 9월28일 서울 수복이 이루어지며 전세가 역전됐다. 그럼에도 북한의 동맹군인 중국군이 1950년 10월 전쟁에 개입하며 압록강 일대까지 북진하며 통일을 코 앞에 둔 상황에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1년 1·4 흥남철수 작전 끝에 결국 북진통일은 실패했다. 난항 국면은 1953년 7월27일 휴전 협정으로 이어져 정전협정이 체결되며 일단락 됐고 전쟁은 휴전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학계에 따르면 6·25 전쟁으로 우리 군 13만7899명이 전사했고 민간인 24만4663명이 목숨을 잃었다. UN군, 중공군, 북한군 등을 포함한 전체 희생자 수가 300만여 명에 달하고 이산가족은 1000만명 가량이 발생했다. 전쟁 발발 70주년, 우리 사회는 해마다 6월25일이 되면 당시의 비극을 상기하며, 순국영령을 기리고 UN참전 용사들에게 조의를 표하며 이산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행사를 거듭 해 왔다.
‘끝나지 않는 전쟁’의 탄화 속에서도 전쟁의 원흉으로서 북조선 정권은 ‘백두혈통’으로 지칭 되는 북한식 지배이데올로기를 만들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이어 3대 세습을 이어갔고 그들의 ‘핏줄’을 중심으로 권력 요직을 나누어 먹었다.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은 34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단지 ‘핏줄’만으로 정권 최고 수뇌부의 자리에 단숨에 뛰어 올라 2018년 4월과 9월 있었던, 한반도 종전체제의 초석을 두었단 평가를 받는 ‘판문점 선언’과 ‘남북군사합의’가 사문화 됐다고 으름장을 놨다.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잘난 척, 정의로운 척, 평화의 사도처럼 처신머리가 역겹고 꼴불견”이라며 가감 없는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온갖 막말에 끝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며 남북경협과 금강산관광재개 및 물자지원을 요구하며 ‘돈을 달라’고 협박 중이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강경대응을 알려도 부족할 마당에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통일부 장관과 외교안보라인을 전면 친북 성향의 인사들로 갈며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로 성난 김여정의 심경을 위로했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스스로 헌법 제1조에 천명된 ‘국민의 주권’을 북한에 직접 상납한 꼴이 아닌가 싶다.
북한은 1990년대 탈냉전과 데탕트 무드가 무르익던 시점부터 단지 체제 생존을 위해 NPT 체제를 탈퇴하고 핵개발을 시작했다. 핵 수송 비핵화, 군축, 자유주의에 기반 한 세계화의 추세를 역행하고 2018년까지 6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함께 핵탄두의 소형, 경량화를 이루었고 대륙간탄도 미사일(IC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등 ‘전술유도무기’로서 핵 수송 수단까지 완성했음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뿐만 아니라 이스칸데르형, 에이태킴스형, 초대형방사포 등 다양한 종류의 신형전략무기시험을 통해 전술적, 전략적 강압행동을 이어왔다. 이들의 주기적이고 지속적이며 확대일변도의 군사도발은 6·25 전쟁을 촉발시켰던 ‘남침 야욕’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우리가 6·25 전쟁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는 전쟁의 원흉으로서 북한 정권이 핵무기와 온갖 종류의 미사일, 발사포를 굶어 죽어가는 인민들의 고혈을 쥐어 짜 만들어 ‘오직 체제 유지’를 위해 도발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한반도의 모두는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서 6·25 전쟁이 만든 분단 체제 속의 희생양이나 다름 없는 것이며 반성 한 마디 없는 원흉들의 침략야욕의 위험의 정 가운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 일재 잔재 청산→북한 인권 문제 관심 재고 하고 주체적 ‘통일 운동’ 나서야
우리 세대는 어떠한가? 김정은의 장난감이 된 핵무기를 그 손에서 빼앗아 ‘비핵화 체제’를 앞당기고 영구 불변한 ‘평화체제’를 하루 속히 달성하여 자식세대에게 전쟁과 분단의 비극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한 시를 그치지 않고 진전해야 할 이 때에도 ‘반일 놀음’에 심취해 있는 어리석은 모습 그대로 아닌가. 한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약 35년 동안 일본 제국(일제)의 식민통치를 받아 일본령 조선으로서 존속했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이 미국의 히로시마 원자폭탄투하로 인해 태평양전쟁에서 무조건 항복을 하며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한국은 배제 됐고 이후 1965년 박정희 정부에서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은 국민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단 후폭풍에 휘말렸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 없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빌미를 줬단 것이다.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 후 한국 사회에서 ‘한일 갈등’은 ‘친일잔재 청산’, ‘친일파 숙청’ 등의 개념으로 프레임화 됐고, 이후 분단 문제의 본질을 보게 하는 눈을 가리고 귀를 닫게 하며 진보계열의 보수우익을 공격하고 이들을 ‘적’으로 돌리는 분열의 원인으로 작동하는 주요 수단이 돼 왔다. 진보진영은 ‘친일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대한 특별법(2005)’와 친일인명사전 등을 편찬 해 일본과 관련이 있는 조상을 둔 민간인을 ‘친일파’로 규정해 적으로 돌리는 ‘현대판 연좌죄’를 몸소 실천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위안부상을 세워 전범국가로서 일본 ‘낙인찍기’에 들어가 일본 정부의 극우세력을 자극시켰고, 한일갈등 분란을 고조시켜왔다. ‘고노담화’(1993년), ‘무라야마담화’(1995년), ‘고이즈미담화’(2005년) 등을 통해 일본은 전후 식민지배 침략과 위안부 강제 연행 등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표현했다. 1965년 무려 3억달러의 차관(당시 외화보유고 14억달러의 약 30%)을 통해 배상을 한 일본에 대해 끊임없는 진보세력은 “사죄와 반성”을 주장했다. 또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중심으로 ‘수요 집회’ 등의 반일 집회를 강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가려지고 닫혀진 건 무엇인가. 바로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 재고 아닌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간 소녀들이 위안부상 앞의 길바닥에 주저 앉아 “일본은 사죄와 배상을 하라”면서 목청이 울리도록 외치는 실정이다. 정부와 대기업 그리고 사회 문화계 전면에서 지원을 해 줘 이젠 주거, 의료, 복지 혜택을 차고 넘치게 받는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을 위한 동일한 호소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핍박받고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위한 목소리는 음소거 됐다. 북한에선 현재 친일잔재를 주장하는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닫힌 역사로서 강제 징용공 배상 문제(러시아, 베트남 등지에 외화벌이를 위한 불법 노동자 파견), 정치범 수용소(종파사건 이후 숙청된 이들을 주로 가두는 곳으로 적대계층을 가둬놓는 교도소), 북중 접경 지대의 탈북 여성 인신매매(위안부 피해자 사건)등이 일제 시대 만큼 혹은 더욱 강한 수위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같은 답답한 현실에도 문재인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를 완전 포기했을 뿐 아니라 ‘먼저 온 통일’로 불리던 탈북자들을 처절하게 외면하며 국민들의 입과 귀를 호도하고 있다. 2018년 국회가 통과시킨 북한 인권 재단은 결국 출범하지 못한 채 사무실이 폐쇄되는 굴욕을 맛봤다. 지난해엔 61개국이 공동 제안하며 우리 정부 또한 11년 동안 참여했던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 제안국에서 빠지며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북한 정권의 입맛 맞추기에 나섰다. 국제 대화에서도 입을 다물었다. 외교부는 3년 가까이 북한인권 국제 협력 대사를 공석으로 두고 있다. 지난해엔 통일부가 북한선원 2명을 국민들 몰래 강제 북송한 사건이 밝혀져 3만3000여명에 달하는 탈북민 사회에 거센 비판 여론이 불었을 뿐 아니라 국제인권단체등도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북한에선 탈북자들이 ‘배신자’로 취급되며 강제북송 당했을 경우 공개처형 등 가혹한 형벌로 다스려진단 문제를 고려 할 때 탈북자를 송환 했단 것은 북한인권 문제를 사실상 포기 했을 뿐 아니라 북한과 입을 맞추겠단 모략으로 밖에 비추어지지 않는다. 지난해 사망 후 2개월 만에 아사(餓死)한 채 발견 된 한성옥-김동진 모자는 탈북자를 외면해온 현 정부의 민낯을 전 국민에게 표출한 극명한 사례였고 안타까운 비극이었다.
최근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나눔의집 후원금 운영 논란은 한국 현대사에서 이들이 주도해온 위안부 기림 운동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정의연은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가 한국과 일본의 최고 지도자 간의 합의로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를 파기하고 소녀상을 세우고 수요집회를 주도했으며 국회의원까지 배출한 정의연이 뒤에선 피해자 할머니들을 앞장세워 거액의 후원금을 자기 뱃속을 채우는데 활용해 왔다는 치졸한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더불어 정의연 사태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지점이 더 이상 ‘끝난 역사’로서 ‘일제 잔재 청산’이 아닌 북한 인권 개진과 통일운동임을 알려줬다. 6·25 전쟁 70주년을 맞는 올해, 더 이상 80주년을 기념하지 않게 되길, 통일 1주년을 기념하는 원년이 도래하길 기도한다.

분단체제론 통해 바라본 미국의 한반도 전략과 남북분단9월 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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