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9

이재봉 책 이야기: 백낙청, 고승우, 박한식 회고록 [평화에 미치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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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책 이야기: 백낙청, 고승우, 박한식


책 선물 받고 소개하는 글을 매달 한두 번 써오다 10월 말 이후 쓰지 못했습니다. 매달 10권 안팎 받으면서 다 읽고 쓰려다 밀린 거죠. 공짜로 받은 책이라 소홀히 하기는커녕 더 정성스레 읽었다고 은근히 알릴 겸 책값으로 홍보라도 좀 하겠다는 취지거든요.

12월 11-18일 사할린 방문 예정이었는데 12월 초 코로나 급 확산으로 급 취소하느라 밀린 책 읽을 시간 좀 벌었습니다. 선물 받은 순서를 뒤집어 최근 출간된 따끈한 책부터 먼저 두 권 소개하렵니다. 감사하며 재봉 드림.


1) 백낙청,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창비, 2021.11).

백낙청 선생은, 1991년부터 ≪녹색평론≫을 이끌어오다 작년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이 “한국 지식사회의 가장 지성적인 양심을 대변해온 한 사상적 거인”이라고 평한 분이죠. 저는 1990년대 후반 한 국제학술대회에서 ‘평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갈퉁 (Johan Galtung) 교수와 셋이 만난 자리에서 선생을 ‘한국의 노엄 촘스키  (Korean Noam Chomsky)’라 소개했습니다. 30대 초반 MIT 언어학교수가 되어 정치평론과 사회운동을 통해 ‘세계의 양심’으로 불리는 촘스키와, 20대 후반 서울대 영문학교수가 되어 문학은 다른 문제와 격리될 수 없다는 문학관으로 ≪창작과비평≫을 이끌며 정치평론과 사회운동을 통해 ‘한국의 지성’으로 불리는 선생이 비슷하다는 거였죠.

80대 원로학자가 여전히 왕성하게 글쓰고 강의하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작년 7월 ‘백낙청 50년 공부의 결정체’로 ≪서양의 개벽사상가 D.H.로런스≫라는 600쪽 넘는 묵직한 책을 펴낸 데 이어 이번에 거의 500쪽에 이르는 책을 내놨으니까요. 제가 문학과 예술을 소재로 박사논문을 썼는데도 소설가 로런스에 관한 책은 작년부터 띄엄띄엄 읽으며 아직 끝내지 못하다, 이 책은 받자마자 이틀 만에 여기저기 밑줄치며 다 읽었습니다. 대부분 이전에 잡지에 발표하거나 강연한 내용을 옮긴 글이라 쉽게 끝낼 수 있었지요.

책 제목에서 ‘근대’의 핵심은 자본주의입니다. ‘이중’ 과제는 ‘적응 (adapting to)’과 ‘극복 (overcoming)’이고요. ‘근대의 이중과제’는 500년 역사의 자본주의에 적응하면서 극복하자는 거죠. ‘나라 만들기’는 ‘분단체제’를 극복하면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통일을 추구하되, 특이하고 창의적인 ‘낮은 단계의 남북연합’ 또는 ‘촛불혁명에 부응하는 남북연합’부터 실현하자는 겁니다.
이 책에서 선생이 강조하는 통일의 개념과 방법 특히 점진적 통일과 남북연합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 등에 관해서는, 선생이 제 주장을 따른 것 같다는 건방진 착각을 할 만큼, 제 생각과 너무 똑같아 몹시 흐뭇합니다. 

2015년 ≪이재봉의 법정증언≫을 펴낼 때 선생은 추천사에서 “북한의 실상에 관해 나는 이 교수와 약간 인식이 다른 면이 있고..... 남에서건 북에서건 분단체제가 작동하는 실상을 조금 더 ‘독하게’ 읽어내면 좋겠다는 바람이 없지 않다”고 했거든요.

저는 남한 보수.극우주의자들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가장 기본적 개인의 자유조차 맘대로 억압하고 훼손해온 게 분단과 전쟁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는데, 선생은 이 현상을 재미있게 표현하는군요. 

남북분단 상황에서는 반공.반북을 위해 헌법이나 법률을 안 지켜도 된다는 오래된 관행이 계속 작동해왔다. 성문헌법에는 안 보이는 일종의 이면헌법 (裏面憲法)인 것이다. 그 폐해가 극대화된 것이 이명박.박근혜 시대의 민주주의 역행이요 국정농단이었다 (340-341쪽).” 다른 곳에서는 이를 ‘일종의 관습헌법’ 또는 ‘숨은 단서조항’ 이라며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개헌이라면 이 이면헌법의 폐기다”고 주장했고요 (276-277, 302쪽).
 쉽게 말해 국가보안법 폐해 설명과 폐지 주장을 이렇게 문학적으로 고상하게 표현한 겁니다.


2) 고승우, ≪한미동맹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지식공작소, 2021.11).

고승우 선생은 1975년부터 <연합뉴스>의 전신 <합동통신> 기자로 일하다 1980년 전두환 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된 뒤, <말> 잡지 편집장과 <한겨레> 신문 부국장 등을 거쳐 <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 (민언련)> 이사장을 지낸 원로 언론인입니다. 10여년 전 세워진 <주권방송>에 저와 함께 창립이사가 되고, 작년 출범한 <한반도 평화경제회의>에도 같이 참여하고 있으니 제 통일운동 선배이자 동지이기도 하죠.

지난달 이 책 출간 직후 받자마자 읽던 다른 책들 모두 덮어놓고 단숨에 읽었습니다. 제가 관심 갖고 공부해왔으며 평화와 통일에 힘쓰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라서요.

 “무기한으로 유효”하며 “수정 보완 조항이 없고 폐기만 규정되어” 있는 “21세기 최악의 불평등 조약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정상화를 주장하는 내용이거든요.
제가 지난 10일 올린 “미친 후원과 밑지는 장사”라는 글에서 “미국을 제대로 알고, 정책에 따라 지지하거나 추종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비판하거나 반대하기도 하면서, 미국을 이용.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미국을 바로 알기 위한 책’ 3권을 밑지며 팔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이 책도 함께 팔고 싶었는데, 선생을 통해 출판사에 알아보니 저자 가격으로 정가 24,500원의 70%를 고집한다더군요. 1만원 이하로 팔기엔 밑지는 폭이 너무 커 포기하고 말았지요.
그 때 소개한 ≪‘유엔사령부’의 실체와 그 문제점≫과 관련해, 선생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으니 이 책 저자들이나 독자들 모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유엔사의 경우 한국 일부에서 ‘유령단체’라고 하지만 그것은 국제법적으로 타격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고 유엔사에 타격을 주는지도 의심스럽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312쪽). 유엔사 부사령관이 2년 전, “유엔사가 해체될 방법은 유엔의 결의안이나 미국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서 가능할 뿐이다”고 했듯 (46쪽), 한미동맹을 정상화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겁니다.


3) 박한식, ≪평화에 미치다≫ (삼인, 2021.6).

이 책은 선물 받은 것도 아닌데 이미 두세 번 소개했습니다. 공짜로 받기는커녕 지금까지 60권이나 구입해 여기저기 선물도 하고 팔기도 했지요. 지난 8월 이 책을 읽고 몹시 감동 받았다는 이메일을 선생에게 보냈습니다. 많은 가르침과 깨우침을 얻으면서도 몇 군데 오류 또는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을 발견했다는 제 글에 즉각 국제전화를 주시더군요. 
8월 27일 열리는 출판기념회에서 저와 ‘언론 인터뷰’ 같은 대담이 아니라 ‘학술 토론’ 같은 대담을 하고 싶다면서요.

그 때 시간 부족으로 제대로 토론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마침 3주 전 ≪통일인문학≫이란 학술지에서 서평을 부탁하더군요. 비싼 원고료 받고 쓴 것이라 4-5쪽의 짧지 않은 글이지만, 이 책을 읽거나 읽으실 분들 참고해보시겠어요? 이번 주에 간행된다니 지금 공개해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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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식 회고록 ≪평화에 미치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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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식 회고록 ≪평화에 미치다≫를 읽고 | 평화 세상
이재봉 2021. 12. 26. 22:52http://blog.daum.net/pbpm21/584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내가 평화학자와 평화운동가를 자처하는 게 적절할까? 이 글에서도 쓰고 있는 ‘평화학 명예교수’라는 직함을 더 이상 써도 될까? 박한식 선생의 ≪평화에 미치다≫ (삼인, 2021)를 읽으며 품은 생각이다.

선생은 처음 나에게 ‘평화 중재자’로 다가왔다. 1994년 카터 대통령 방북을 주선해 북한과 미국 사이 전쟁을 막고, 2009년 클린턴 대통령 방북을 주선해 북미관계 악화를 막은 분으로 알려지면서다. 다음엔 ‘북한 전문가’였다. 2018년 출간한 ≪선을 넘어 생각한다: 남과 북을 갈라놓는 12가지 편견에 관하여≫ (부키, 2018)를 통해 선생이 50여 차례 평양을 방문해 북한 실상을 직접 보고 연구해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선생이 2019-2020년 <한겨레>에 같은 제목으로 연재할 때는 띄엄띄엄 몇 번 읽느라 재미는 맛보았지만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이 책을 통해, 1940년대 중국 국공내전과 1950년대 한국전쟁을 직접 보고 겪으며 어릴 때부터 ‘평화병’에 걸려 한평생 평화에 미쳐 살아온 ‘평화학자 겸 평화운동가’의 삶을 제대로 알게 됐다. 많은 가르침과 큰 깨우침을 얻지 않을 수 없다.

“학문에 대한 나의 평생 신조는 문제 해결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크고 작은 사회문제들을 발견해내고 원인을 찾아서 처방을 제시하는 것이 학문의 목적이자 학자의 소명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한 대목은 평화학을 공부하고 통일.평화운동을 해온 나에게 특히 인상적이다 (327쪽). 

아울러 ‘통일을 설계하는 학자’로서 ‘한 민족, 두 국가, 그리고 세 정부 (one nation, two states, and three governments)’ 통일모델과 ‘통일.평화대학’ 설립을 제안한 것은 획기적이다 (366-371쪽).

한 민족 두 국가는 분단부터 2021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기에 익숙하다. 생소한 “제3 정부는 한국과 조선의 이질성의 간극을 좁히고 동질성을 진작시켜 합을 만드는 통일 이상촌을 건설하는 새로운 실험 형태의 정부”다. “외교와 국방 같은 강력한 권한을 소유하지는 않지만 남북연락사무소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독자적인 영토를 가지고 입법.사법.행정의 기능과 권한을 행사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정부 형태”라는 것이다 (366쪽).

이와 같은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게 통일.평화대학이다. 이 대학을 비무장지대에 설립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유엔사 동의 없이는 어렵기 때문에, 남북 합의만으로 가능한 개성에 세우자고 제안한다. “분단문화를 철학적으로 해체하고,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통일문화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기 위한 5개 단과대학을 제시한다. 
1) 남쪽의 서양의학과 북녘의 고려의학을 창의적으로 아우르는 ‘건강대학’,
 2) 이질성의 조화를 위한 ‘예술대학’, 
3) 남쪽 자본주의와 북녘 사회주의를 창의적으로 조화시켜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경제대학’, 
4) 물질 중심의 한국 문화와 이념 중심의 조선 문화를 창의적으로 조화시키며 문화적 통일을 준비하는 ‘인문대학’, 
5) 인간과 환경의 유기적 상호 공생을 위한 ‘생태환경대학’ (370-371쪽).
 
- ‘미국에서 배운 미국’에 관해 -
 
선생이 ‘미국에서 배운 미국’에서 “미국의 역사가 곧 전쟁의 역사”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궁극적 원인’으로 미국의 ‘원죄’ 두 가지를 꼽은 것은 몹시 인상적이다. 나처럼 현상 파악에 그치지 않고 그 원인을 찾아낸 게 선생이 강조한대로 ‘학자의 진정한 소명’ 아니겠는가. 노예제도로부터 파생된 인종주의와 ‘인디언 정복’으로부터 파생된 군사주의가 결합해 미국의 전쟁을 끊임없이 조장한다는 대목엔 밑줄을 그어놓았다 (130-131쪽). 미국에서 미국을 공부하고 미국의 호전성을 비판해온 나에게 큰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굳이 흠을 찾는다면 ‘인디언 정복’보다 ‘원주민 학살’이란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나는 오랫동안 다음과 같이 주장해왔다. “미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호전적인 국가다. 미국처럼 전쟁 많이 해본 나라 없고, 좋아하는 나라 없으며, 잘하는 나라 없다. 전쟁으로 나라를 세웠고,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했으며, 전쟁으로 초강대국이 되었고, 전쟁을 통해 세계패권을 유지해왔다. 독립을 선언한 1776년부터 올해 2021까지 245년 가운데 겨우 20년 빼고는 전쟁을 멈춘 적이 없다.” 선생의 친구 같은 카터 대통령도 2019년 <뉴스위크>를 통해 비슷하게 말했다. “우리는 늘 전쟁을 하고 있다. 미국은 242년의 역사동안 전쟁을 하지 않은 기간이 단 16년이다. 역사상 가장 호전적인 나라이다.”

미국의 원죄와 관련해, 미국에서 택시기사와 식당종업원에게 팁을 주는 관습이나 문화가 노예제도에서 유래된 것 같다고 분석한 것은 흥미롭다. 유학생 시절 식당종업원으로 일하며 팁을 독식하디시피 해 동작이 굼뜬 아주머니 종업원들의 불만이 커지는 것을 알고 ‘사회주의 정신’을 발휘해 모든 종업원들의 공동 분배를 제안하고 실시한 점이나, 한국인 교수가 밥값의 몇 배나 되는 20달러를 놓고 떠난 것을 알고 존엄성이 짓밟혔다며 뛰어나가 되돌려주었다는 일화는 존경스럽다 (103-105쪽).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다. 

“미국이 소련과 달리 한국에서 신탁통치를 철저하게 이행”했다는 문장이다 (56쪽). 미국이 1945-1948년 38선 남쪽에서 신탁통치를 실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나는 해방 직후 3년 간 남쪽에서 실시된 건 ‘미군정 (US military government)’이지 신탁통치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미국은 늦어도 1943년부터 한반도 신탁통치를 구상했다. 길게는 40-50년, 짧아도 20-30년 신탁통치하려고 준비했다. 소련의 반대 또는 소극적 지지로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5년간 신탁통치를 결정했다. 그러나 미.소 공동위원회 합의 결렬로 남쪽에서든 북쪽에서든 신탁통치는 전혀 실시되지 않았다.

눈이 번쩍 뜨인 대목도 있다. 

한국전쟁 중 미군이 저질렀다는 황해도 신천 양민학살에 관한 내용이다. 선생은 신천박물관에 여러 차례 가보고 이와 관련해 미 국방부에 학살 지휘자 해리슨 소장의 존재 여부를 확인했지만, 국방부의 답변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261-262쪽).

나는 1998년 신천박물관을 둘러보고 돌아와 방북기를 통해 남쪽에 널리 알렸다. 서울에서 2021년 4-8월 전시된 피카소의 작품 ‘조선에서의 학살 (massacre in Korea)’이 신천 학살을 그린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1951년 신천에서 그 사건을 겪고 내려왔다는 사람들은 북한 당국이 학살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황석영 소설가는 2001년 출간한 ≪손님≫에서 그 학살이 기독교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 사이의 충돌이라고 확신했다.

그 무렵 한 잡지사에서 나에게 황석영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요청하기에 미군의 기록을 찾은 후 하겠다고 했다. 2002년 뉴욕에 머물며 황석영이 소설 주인공으로 삼았던 유태영 목사를 만났는데 황석영이 자신의 얘기를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의 전쟁기록을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2년 전 황석영 선생과 대담하며 그에 관해 얘기했지만 그의 확신엔 변함없었다. 마침 이 학살을 포함한 미국의 전쟁범죄를 다루는 국제민간법정이 9월 8일 서울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이 미군 관련 자료 없이 신천 양민학살이 미군에 의한 것이라고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을까.
 
- ‘조선을 이해하는 길’에 관해 -
 
남북의 정식 국호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약칭은 한국과 조선. 흔히 남쪽에서는 한국-북한으로, 북쪽에서는 조선-남조선이라 부른다. 북한이나 남조선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폭력적 호칭이다. 남한-북한이나 남조선-북조선은 ‘한국’이나 ‘조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동포형제가 지금은 분단돼있지만 언젠가 통일해야 된다는 의식을 가질 수 있다. 한국-조선은 서로 독립국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대신 공통분모가 없으니 남남 같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선생은 2018년 ≪선을 넘어 생각한다≫에서는 ‘북한’이라 쓰고, 이 회고록에서는 철저하게 ‘조선’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지극히 당연하고 객관적 표기이지만 변화의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나는 ‘북한 바로 알기’의 기본 또는 핵심이 김일성과 주체사상이라고 주장해왔다. 북한은 김일성에 의해 세워지고 주체사상에 의해 유지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쪽에서 김일성은 ‘가짜’로 매도되어왔고, 주체사상은 오직 비판만 할 수 있는 ‘불온한’ 사상으로 치부되어왔다.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만들고 황장엽이 이론적으로 다듬었다고 주장해왔는데, 선생은 “주체사상의 창시자는 김일성이고, 구현자는 김정일”이라 했다. 그리고 황장엽과 8년간 만나 주체사상에 관해 토론했다면서, 그가 “주체사상을 세계에 확산시키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고 썼다. 황장엽이 이론을 체계화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193-196쪽).
 
나도 황장엽이 1997년 베이징에서 망명을 준비할 때는 신문칼럼을 통해, 남한에 들어온 뒤엔 1998년 국정원 안가에서 그를 직접 만나 탈북과 망명을 비판했지만, 주체사상 이론화에 관한 그의 역할은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 또한 선생은 주체사상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사람이 물질보다 중요하고, 정치, 경제, 사상, 군사,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주체적으로 자주적으로 살자는 것은 좋다. 그러나 이른바 ‘수령론’을 통해 독재를 미화하고, ‘후계자론’을 통해 세습을 정당화하는 것은 비판해야 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북한은 핵무기를 절대 폐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에게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 계획을 갖고 있겠느냐고 묻는다. 주한미군 철수 없이 북한이 핵무기 폐기할 수 없으리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남한에서는 ‘북한 비핵화’만 앞세운다. 북한에서는 당연히 ‘조선반도 비핵화’를 내세운다. 선생은 이를 분명하게 확인해준다. 조선이 주장하는 비핵화란 “조선 비핵화, 주한미군의 비핵화, 한반도 주변에서 출몰하는 미국 핵항공모함의 비핵화를 아우르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42쪽). 미국이 요구해온 ‘CVID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이 비핵화)’는 “국제정치의 세계에서 실현 불가능한 비현실적 개념”이라면서 (35쪽), “조선의 비핵화는 반드시 조선-미국 수교, 다자간 불가침 조약 등의 정치적 안전장치가 선결되어야만 실현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46쪽).

선생의 서술엔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다. 소련 붕괴시기에 관해서다. 참고로 1980년대 말 동유럽 붕괴가 시작되고 1990년 독일 통일이 이루어질 때부터 ‘북한 붕괴론’이 등장했다.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북한 붕괴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주장하면서, 붕괴의 종류를 얘기했다. 정권 붕괴, 체제 붕괴, 국가 붕괴 등으로 말이다. 선생은 북한 붕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소련 붕괴와 냉전 종식에 대해서는 세 번이나 언급했다. 그런데 그 시기를 다르게 표기하고 있다. 108쪽에서는 ‘1989년 후반’, 113쪽에서는 ‘1980년대’, 337쪽에서는 ‘1990년’이라고. 나는 냉전 종식은 1980년대 말에 시작되었어도 소련은 1991년 붕괴 또는 해체됐다고 주장해왔는데, 선생은 무슨 기준으로 소련 붕괴시기를 1989년이나 1990년으로 잡은 것인지 의아하다.
 
- 남북 체제 비교에 관해 -
 
나는 북한 붕괴와 흡수 통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에,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6.15선언에서 밝혔듯, 남북이 평화공존과 연합 또는 연방을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통일하는 게 실현 가능성도 높고 바라직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자본주의 장점인 자유와 사회주의 장점인 평등이 조화를 이루는 복지국가를 추구하자고 했다. 현실적으로는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선생은 자본주의-사회주의 대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대비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94쪽에서 “유럽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 장점을 수용해 민주주의 단점을 보완한다”거나, 106쪽에서 “냉전은 전 세계를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으로 양분”했다거나, 174쪽에서 “조선의 사회주의 역시 한국의 민주주의를 고찰”했다는 등이다.
 
정치인들이든 정치학자들이든 많은 사람들이 남한은 민주주의, 북한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라고 비교한다. 나는 남한의 민주주의를 자랑하려면 북한은 독재주의라고 하거나, 북한의 사회주의를 비판하려면 남한은 자본주의라 해야 된다고 얘기해왔다. 민주주의와 관련해서는 남한은 헌법1조에서 민주주의를 앞세우고 북한은 국호에서부터 민주주의를 내세운다면서, 민주주의를 잣대로 남북을 비교하려면 남한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해왔고, 북한은 ‘사회의 조화와 평등’을 중시하는 ‘인민민주주의’를 추구해왔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정치철학과 정치사상을 깊이 연구해온 선생이 남한을 민주주의라 하고 북한을 사회주의라 하니 내가 잘못 공부해왔는지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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