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7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A Brighter Summer Day, 牯嶺街少年殺人事件, 1991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A Brighter Summer Day, 牯嶺街少年殺人事件, 1991

개봉2017.11.23장르드라마국가대만등급15세이상관람가러닝타임237분
평점7.8누적관객10,47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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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소녀를 만나다
“이제 너에게 남은 희망은 나 밖에 없어”

14살 소년 샤오쓰(장첸 분)는 국어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중학교 주간부에서 야간부로 반을 옮기게 되고 ‘소공원’파와 어울려 다닌다. 그러던 중 샤오쓰는 양호실에서 밍(양정이 분)이라는 이름의 소녀를 만나게 된다. 소녀는 ‘소공원’파의 보스 허니의 여자로 허니는 샤오밍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조직인 ‘217’파의 보스를 죽이고 은둔 중이다.
보스의 부재로 통제력을 상실한 ‘소공원’파는 보스 자리를 두고 혼란에 빠지고 돌연 허니가 돌아오게 되면서 ‘소공원’파 내부와 ‘217’파간의 대립이 격해진다. 그리고 밍을 사랑하게 된 샤오쓰도 이들의 싸움에 휘말리게 되는데…
[ ABOUT MOVIE ]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 1001’
BBC 선정 ‘21세기에 남기고 싶은 영화 100편’
전세계가 극찬한 전설의 걸작
탄생 26년 만에 국내 최초 개봉


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제작된 지 26년 만에 국내에서 최초로 개봉된다.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한 소년이 소녀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으로 1961년 대만 최초의 미성년자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에드워드 양 감독이 5년 넘게 준비하여 만든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1960년대 전후 대만을 배경으로 중국 대륙을 떠나 온 부모세대의 불안 속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자녀세대의 사랑과 폭력을 담아낸 대작이다. 청춘 영화이자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며 하나의 사회와 시대를 투영한 이 작품은 보는 시각에 따라 느낌과 해석이 달라 최초로 세상에 공개된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전세계에서 꼭 봐야 할 영화를 소개하는 도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BBC가 1995년 선정한 ‘21세기에 남기고 싶은 영화 100편’ 에 대만영화로 유일하게 선정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발표된 ‘아시아 영화 베스트 100’의 Top10에 오르는 등 세계적인 영화제, 언론, 평론가들에게 영화사 걸작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영화제 등에서 몇 차례 상영된 것 외에는 극장에서 만날 수 없었고 국내 DVD등도 발매되지 않아 제대로 된 자막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오는 11월, 26년 만에 국내 최초 정식 개봉 확정으로 국내 영화 팬들이 이 전설적인 걸작을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복원
수년간에 걸친 작업과 노력
완벽하게 부활한 3시간 57분의 전율
이번 국내 최초 개봉되는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3시간 57분(237분) 오리지널 네가 필름을 4K 디지털 리마스터링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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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가 설립한 필름 파운데이션(Film Foundation)의 월드 시네마 프로젝트(World Cinema Project)와 크라이테리온 콜렉션(Criterion Collection)의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진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디지털 복원은 필름 파운데이션이 2009년 처음 복원을 시작한 이래 수년간의 노력에 걸쳐 완성된 결과물이다.
이번 복원은 필름의 흠집과 먼지를 제거하는데 리퀴드 게이트(liquid gate)를 사용하여 오리지널 네가 필름을 4K 해상도로 스캔, 디지털화했다. 그리고 스캔한 이미지를 안정화 시킨 뒤 보정작업을 통해 섬세하고 선명한 컬러와 공간감을 되살렸다.
이전까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좋아했던 관객들은 1991년 홍콩에서 출시된 좋지 못한 화질과 자막의 레이저 디스크 복사 영상들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처럼 수년간의 노력 끝에 에드워드 양 감독의 빛과 어둠의 세계가 완벽하게 부활한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빛과 어둠으로 그려낸 사랑과 폭력의 세계
세기를 넘어선 통찰력 그리고 감각적인 연출
21세기에 더욱 빛나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대표작

<공포분자>로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은표범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에드워드 양 감독은 자신의 제작회사를 설립하여 철저한 준비를 거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 매달렸다.
감독 자신의 가족 역시 1940년대 중국 대륙에서 대만으로 넘어온 이주민이었던 것처럼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도 이주민들과 그 가족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떠나온 중국 대륙으로 돌아가기를 꿈꾸는 부모세대와 상관없이 엘비스 프레슬리와 존 웨인의 서부극을 동경하는 아이들은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미래도 희망도 없는 막막함 속에서 사랑과 폭력의 세계로 돌진해 간다.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서 인상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빛과 어둠이다. 영화의 어둠은 물리적인 표현인 동시에 대만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특별하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샤오쓰는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었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샤오쓰가 소중하게 아끼던 손전등을 마지막 놓았을 때, 비극은 시작된다.
1960년대 대만을 그리고 있지만 인물들이 느끼는 초조함이나 희망에 대한 감정들은 여전히 불투명한 미래를 앞둔 2017년 현재 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련된 연출, 빛과 어둠으로 상징되는 감각적인 영상미를 보여준 에드워드 양 감독은 세기를 넘어 현 시대까지 관통하는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엘비스 프레슬리부터 리키 넬슨까지
미국 대중문화에 열광한 60년대 대만 청춘의 자화상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음악 역시 강렬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만으로 건너온 이주민들은 패전으로 철수한 일본 군인들이 남긴 일본 주택에 살고 거리에는 일본 음악이 흐른다.

 이런 삶을 사는 부모세대와 달리 청춘들은 미국 대중문화에 열광한다. 이들은 미국 팝송을 노래하고 존 웨인의 서부극 장면을 흉내 낸다.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팝 공연은 폭발적이고 공연의 이권을 놓고 ‘소공원파’와 ‘217파’ 등 조직들은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그들이 사랑한 노래들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Are you lonesome tonight’, ’Don’t be cruel’부터 리키 넬슨의 ‘Never be anyone else but you’ 까지 당시 최고의 히트곡들이다. 소년들은 뜻도 모르는 가사를 소리나는 대로 받아 적으며 노래를 열창하고 녹음한다. 소년들이 부르는 감미롭고 신나는 이 음악들은 전쟁 후 혼돈의 잔재가 생생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유일한 낭만이자 꿈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지막 캣이 샤오쓰에게 전달하려는 녹음 테이프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장면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때문에 영화의 전율과 흥분은 음악과 함께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수록곡 리스트 (원곡 아티스트)

1. Why (Frankie Avalon 1959)
2. Poor Little Fool (Ricky Nelson 1958)
3. Angel Baby (Rosie & The Originals 1961)
4. Don’t Be Cruel (Elvis Presley 1956)
5. Mr. Blue (The Fleetwoods 1959)
6. Why (Guitar Instrumental)
7. Are you Lonesome Tonight (Elvis Presley 1960)
8. This Magic Moment (Jay & The Americans 1969)
9. Only the Lonely (Roy Orbison 1960)
10. Never Be Anyone But You (Ricky Nelson 1959)
11. Peggy Sue (Buddy Holly 1957)
12. Are You Lonesome Tonight (Guitar Instrumental)


전세계를 놀라게 한 14살 소년의 강렬한 존재감
아시아의 스타 장첸을 탄생시킨 작품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친아버지, 친형과 함께 출연도 화제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주인공 샤오쓰 역을 연기한 장첸은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한 아시아 대표 배우 중 한 명이다. 그러나 26년 전 장첸은 연기경험이 거의 없는 14살 소년이었다. 그가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은 프로듀서 유 웨이엔이 샤오쓰의 부친을 연기한 배우이자 장첸의 친아버지인 장국주에게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유 웨이엔은 장국주에게 샤오쓰와 같은 나이 또래인 아들 장첸의 출연을 제안했고 이를 계기로 장첸은 친아버지 장국주, 친형 장한과 함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 합류했다.

장첸이 맡은 샤오쓰는 한 소녀를 좋아했고 세상에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었던 소년이었지만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큰 기복 없이 섬세하게 그러나 촘촘하게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는 샤오쓰를 연기하는 일은 연기경험이 별로 없던 장첸에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대작인 이 영화의 엄격한 촬영 현장에 익숙해 지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양 감독의 정확한 연기 지도로 장첸은 8개월 가까운 촬영 기간을 거치면서 샤오쓰라는 소년에 완벽하게 몰입,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했다.
이후 장첸은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일대종사>,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 1부><적벽대전 2부>,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자객 섭은낭> 등 스타 감독들과 함께 작업하며 뛰어난 연기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아시아 대표 배우의 입지를 굳혔다.
이번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개봉은 이처럼 아시아의 스타 장첸이 탄생하는 순간, 그리고 영화사에 남을 걸작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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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순응을 요구하는 사회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개인 간의 대립에 관하여.

by박성태Jan 20. 2021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보고 전체적인 생각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밍과 샤오쓰

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실제 1960년대 초반 대만에서 최초로 발생한 미성년자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4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은 주인공 샤오쓰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 사이의 갈등, 혼란 혹은 여러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나는 이 중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벌어지는 살인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물론 살인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범죄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도덕적 관념은 잠시 제쳐두고, 이 살인에 대만 사회가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사유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사건이라고 보았다. 

이는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 살인사건이 대만의 각 분야에서 큰 논쟁거리가 되었다'는 문구에서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감독 에드워드 양은 샤오쓰가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어떠한 환경에 노출되어왔는지에 관해 그저 멀리서 지켜보는 것과 같은 연출 기법을 활용하였다. 실제 역사적 사건인 만큼 감독은 본인의 가치관이나 의견을 영화에 투영해 표현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어떠한 동의의 표시도, 위로도 전하지 않는다. 마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아무도 모른다>와 같은 영화를 대할 때와 같은 시선에서 말이다. 감정은 최대한 절제하고 인물의 행동과 대사를 주로 보여주기 때문에 간혹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도 하며, 해석은 관객의 몫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그 여운이 오래 지속되게끔 한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셀 수 없이 많은 상징과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는 영화이기에, 매우 다양한 해석과 평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거시적 관점에서의 사회와 미시적 관점에서의 개인 사이의 충돌에 초점을 맞췄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의 대만 사회


시내의 탱크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극심한 혼란의 상태에 놓였다. 오랜 기간 서구 사회에 팽배했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시대가 막을 내렸고, 이에 맞물려 많은 국가들이 독립하게 된다. 그러나 누군가의 지배로부터 독립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통치 체제가 필요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열강으로부터 막 자유로워진 국가들에는 또 다른 형태의 혼란과 투쟁이 뒤섞였다. 독재자의 등장이나 군사 쿠데타를 통한 정권 획득과 같이 말이다. 또한, 과거 전 세계 여러 국가들을 호령하던 영국, 프랑스와 같은 전통 강대국들은 그 힘이 한풀 꺾이게 되었으며, 전례 없던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은 세상을 지배한다. 그리고 이 둘이 각각 채택하고 있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세상을 양분했다. 이러한 두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세계 곳곳의 나라들이 서로 충돌하고, 심한 경우 내전까지 발발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야말로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였던 것이다.


한편, 중국은 소련의 진영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채택했다. 동시에 이에 불복한 장제스는 1949년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패배 후 국민당의 본거지를 현재의 타이완 섬으로 옮겼다. 이렇듯 대만 역시 매우 혼란스러운 근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이 당시를 배경으로 삼고 있기에 학생들이 집에 가는 길 도로에서 여러 차례 탱크와 군인들을 만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적 혼란은 샤오쓰의 가정을 넘어, 샤오쓰 본인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성격처럼, 국가의 성격이 강압과 폭력으로 휩싸여 있던 것이다.


순응을 요구하는 사회


아버지와 샤오쓰

샤오쓰는 오히려 내성적인 인물로 비친다. 말수가 많은 편도 아니며, 그의 감정을 뚜렷하게 표현하고 드러내지 않는다. 시종일관 침묵을 유지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를 감싸고도는 사회상은 시끄럽다. 학교 친구들은 217파나 소공원파와 같은 갱단에 속해 폭력을 저지르고 다니기 때문에 그 또한 이런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누군가 상대 조직원을 공격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밤마다 복수가 계획되고 다시 폭력이 동원되면서 그는 이곳저곳에서 흔들린다. 그렇다면, 아직 어리다면 어리다고 볼 수 있는 중학생들은 왜 갱단을 조직해 불만을 표출하고 공격적으로 변해가는 것일까? 이들에겐 더 강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장 강한 무기이다. 힘이 강한 자 앞에서는 고개를 조아리고 모든 것을 내주어야 한다. 이러한 체계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학생들의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가치관이 결국 상위 개념인 사회 체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교육은 사회의 거울이다'라는 말과 같이 이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당시 사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샤오쓰의 아버지는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지식인 공무원이다. 그는 책을 읽음으로써 사람이 사랍답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책에 모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지식에 비해 힘 있게 살지 못한다. 그의 오랜 친구 왕 선생은 그에게 상하이 지식인 같은 고리타분한 생각을 이제는 버릴 때라며 변해야 한다는 조언을 한다. 시대가 달라졌고 여기에 맞춰 기존의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샤오쓰의 아버지가 겪게 되는 이러한 고민은 그뿐만 아니라 당시 여러 지식인들이 내몰렸던 흐름이다. 지식이 최고의 재산이 되던 시기는 이미 수차례의 전쟁으로 끝나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 많이 안다는 것은 내세울만한 것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보수적이고 옛것이고 고리타분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게 된 시대인 것이다. 때는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고 폭력이라는 수단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가 되어있던 것이다. 그는 끝까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려 했지만, 너무나도 큰 사회 흐름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아들 샤오쓰가 학교에서 사건에 휘말리고, 그가 행정실로 소환되었을 때, 그는 권력을 행사하는 선생에게 관료주의적 태도로 일관하지 말라며 화를 낸다. 그의 아들을 향한 지적이 불공정하며 선생으로서 그러한 행동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 그는 샤오쓰에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 사과를 요구당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의 불만을 표출하는 감정이 과연 해당 교사에게만 향한 것이었을까? 그가 앞으로 당하는 일들을 고려해보면, 어쩌면 이는 사회를 향한 감정 표현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항하는 개인

교사와 샤오쓰

샤오쓰의 아버지가 교육 기관의 관료주의적 태도를 비판하는 것은 넓게 보아 당대 사회적 체계를 지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관료제가 국가나 공적 조직을 운영하는 데에 있어서 기술적 우월성을 가진 전문적, 효율적 조직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관료제의 문제점을 비인격성에서 찾았다. 대만은 당시 최대한 빠르게 사회적 안정을 찾아야 했다. 사회 안정을 위해 필요한 것은 사회적 통제이고, 대부분의 국가가 그래 왔듯 사회 통제는 관료제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거대한 조직의 체계 내에 있는 구성원들은 그저 이 통제가 합리적이고 공정하며 법률적일 것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의 지시에 순응할 뿐이다. 그렇기에 샤오쓰의 아버지가 이 점을 언급하는 부분은 의미 있다. 그는 모두가 복종하고 있는 이 사회 시스템을 경계하고 작은 저항을 표한 것이다. 어쩌면 이후 샤오쓰가 교사들과 종종 갈등을 빚게 되는 것도 그의 아버지로부터 파생된 일종의 저항 정신이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가늠할 수 있다.


사회의 체제를 파악하고 상황에 맞춰 변화하는 개인





밍은 어쩌면 샤오쓰나 그의 아버지의 태도와는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천식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따라 가정부 생활을 하기 위해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는 밍은 매번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밍이 던져진 사회의 현실이다. 따라서 그녀는 본인의 속사정과 마음을 타인에게 온전히 전하지 않는다. 어차피 때가 되면 다른 사람에게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는 여러 남자를 만난다. 그녀에게 있어 이는 진정한 우정이나 사랑을 찾는 것이 아닌 적응의 일부분이다. 영국의 사상가 허버트 스펜서는 그의 이론 '적자생존'으로 인간들의 사회적 생존경쟁 원리를 함축했다. 사회 내의 개개인들은 주어진 환경에 가장 적합한 생존 방식을 통해 살아남는다는 것인데, 밍의 가치관과 행동은 이러했다. 그녀의 남자 친구 허니는 소공원파의 두목이었다. 그는 밍을 차지하기 위해 상대 조직인 217파의 두목을 죽이고 해군으로 입대해 타이난으로 피신한다. 그런 허니가 사라지자 밍은 샤오쓰와 만난다. 그러나 일말의 사건으로 이들의 만남도 오래가지 못한다. 그리고 새로 전학 온 샤오마라는 아이가 등장하는데, 그는 육군 장교의 아들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그를 건드리지 못한다.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다투던 조직원들 앞에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닌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밍은 결국 샤오쓰와도 친구 관계인 샤오마와 사귀게 된다.




밍에게 있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본인의 신분을 높이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사회 흐름을 통달하고는 그때그때 가장 강한 인물에게 간다. 이는 생존만을 놓고 봤을 때, 혼란스럽던 사회에 가장 효율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저항하는 자와 적응하는 자의 충돌



샤오쓰와 놀던 밍

샤오쓰는 소공원파도, 217파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밍과의 관계로 인해 두 조직 사이의 갈등에 휘말리고 결국 퇴학당한다. 그러던 중 샤오마의 집에서 놀던 밍은 실수로 샤오쓰를 향해 총을 쏜다. 샤오쓰가 이 총에 맞진 않았지만, 실탄이 장전되어있었기에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하였다.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샤오마는 상황을 묻지도 않고 밍의 뺨을 때린다. 이에 샤오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장면은 바뀐다. 밍은 이 불합리한 모욕을 당하고도 이후 샤오마와 만난다. 이 사실을 알고 분개하는 샤오쓰는 밍의 학교 앞으로 찾아간다. 샤오마를 죽이기 위해서이다.




밍을 만난 샤오쓰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도 널 무시 못해. 밍, 난 널 잘 알아. 하지만 상관없어. 널 잘 아니까 도와줄 수 있는 거야. 이제 네게 남은 희망은 나밖에 없어. 과거에는 허니가 그랬지. 네가 왜 허니를 못 잊는지 알아? 그건 네가 날 허니로 생각하기 때문이야." 이에 밍은 답한다. "내가 변하도록 도와주겠다는 거야? 너도 똑같구나. 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 너도 다른 애들처럼 나한테 감정을 바라고 잘해 준 거였어. 그러면 안심이 될 테니까. 참 이기적이다. 네가 날 바꾸겠다고? 난 이 세상과 같아. 세상은 변할 수 없어." 샤오쓰는 결국 밍을 살해한다. "넌 희망이 없어. 부끄러운 줄 알아!"


가장 폭력적인 최후의 저항이라는 모순



밍과 샤오쓰

샤오쓰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밍이 쓰러진 후 놀라 그녀에게 일어나라 애원하는 샤오쓰의 모습을 보면, 그는 밍에게 화났던 것이 아니다. 사회가 이러하므로 당신들 또한 이에 맞춰 변화하고 적응하라는 요구, 이런 잦은 요구들은 샤오쓰를 너무 힘들게 했다. 그리고 그 한계선을 넘어가자 폭발한 샤오쓰. 그러나 그의 폭력 또한 사회의 암담함에 포함된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다. 결국 그 또한 사회에 팽배하고, 그가 이해하지 못하던 폭력에 물들었다. 다른 갱단의 아이들과는 달리,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던 샤오쓰는 누구보다도 폭력적인 인간이 되어있었고 살인자가 되어있었다. 앞서 그의 아버지 또한 가족들에게 다정하던 과거는 잊은 듯이, 경찰의 견고한 힘 앞에 무릎을 꿇은 뒤엔 가정폭력을 저지른다. 무엇이 그들을 폭력으로 내몰았을까? 왜 결국은 그들이 저항하던 대상과 동일하게 변해있었을까?




밍은 안타까운 희생자이고 폭력의 굴레에 갇혀버린 인물이다. 샤오쓰는 그녀를 구원해주고 싶어 했으나, 잦은 혼란 속에서 결국 누구보다도 폭력으로 그녀를 없애버린다. 모든 책임은 살인을 저지른 샤오쓰가 져야 한다. 그러나 샤오쓰를 이렇게 만든 사회에도 일말의 책임은 있다고 생각한다. 지식보다 폭력이 우위이던 시대, 합리와 이성보다는 권위와 통제가 우선이던 시대는 그 속의 개인들을 이렇게 만들었다. 질서와 이념은 사회를 위한 것이 아닌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개개인들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개인들은 점차 소외되어 갔고 이론과는 상관없는 저마다의 생존 방식대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했다. 사회 안정을 위해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와 같은 말들은 개인들의 심리를 안정시키고 도와주기에는 너무 동떨어졌고 일방적이었으며, 공감해주지 못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언제나처럼 학생들의 대학 합격자 명단이 라디오에서 불리던 것은 어쩌면 샤오쓰도 그러한 시대상이 아니었다면 그저 평범한 학생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2편 '오심'에서 드미트리 카라마조프는 검사에게 말한다. "저 사람의 지혜는 놀러 나갔다가 그만 너무 외진 곳으로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거기서 스스로를 잃어버린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 사람은 은혜를 알고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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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A Brighter Summer Day>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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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페친의 글에서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가 나온 중에 이 영화가 나왔는데, 내가 대만의 현대사에 관심이 있어서, 여러 영화 중에 이 영화를 유튜브에서 찾아서 일요일 밤 아내와 같이 보는 영화로 보았다. 영어 자막이 있고, 한글 자막은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0kMR6hlAvlk

- 나는 영화를 선택할 때 보통은 이미 뭔가 찾아보고, 내용이나, 평을 어느 정도 알고 보는데, 이 영화의 경우는 전혀 찾아보지 않고, 내용 소개도 없는 페친의 영화 리스트에 나왔다는 것 하나 만으로 보게 된 것이다. 유튜브에 나오니까 영화가 상당히 길다는 것은 알고 보기 시작했다. 거의 4 시간이다. 8-10시간 짜리 드라마도 한 번에 보니,  영화가 길다는 것은 문제 없으리라 생각하며 아내와 영화를 보기 시작하였는데, 약 한 시간 보았을 때, 아내가 "무슨 이야기 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사실 나에게도 조금 그랬다. 그러나 나에게는 사회학, 또는 인류학적 관찰의 재미라는 것이 있다. 1960년대 초기의 대만의 유스 갱 (소년 갱)들의 대한 이야기이다. 오래 동안 뭔가 크게 일어나는 것이 없다. 결국 아내는 잠이 들어버렸다. 

- 나는 이 시대의 대만이 반공주의의 계엄령의 시대란 것을 알고 있으니, 뭔가 그것과 관게되는 이야기가 나올거라는 기대를 하며 영화를 보고 있었다. 결국은 나왔다. 중국에서 온 중산층 부모의 얌전한 아들, 15세의 주인공 소년은 유스 갱에 관계되기도 하나, 부모 들은 그걸 잘 모른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주로는 유스 갱의 스토리이지만, 그 배경인 독제사회가 나온다. 평온한 생활을 하던 공무원인 아버지가 어느날 정보국 같은 곳에 끌려가서 과거에 중국에 있을 때,공산주의자들과 관계가 있지 않은가 하는 심문을 받게되고, 결국은 직장을 잃는 것이 이 영화의 하나의 부분 이야기이다. 반공독제의 밑에서 사상범이나, 연좌죄로서의 피해자 이야기는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이다. 

- 십대의 자식들의 세계는 독제정치와 직접은 관계없으나, 간접적으로 상당히 관계가 있다. 자식들의 세계에는 (반공 독제를 지지하는 아시아 정책의) 미국의 대중문화가 깊게 침투해 있는 것이 이 영화에 상당히 나온다. 십대의 아이들은 한 편으로는 의리를 따지고, 또 한편으로는 미국의 대중 음악이나, 스타일을 딸아간다. 부모의 세계는 더 동양식이다. 우정인지, 커넥션인지, 그런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그렇다고 믿지만, 실제의 인간관계에서는 그렇지만은 않은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 영화의 영어 제목 <A Brighter Summer Day>은 엘비스 프레슬리 노래와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그 점은 영화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미국의 대중 음악이 퍼저 있는 것이 나오고, 프레슬리 노래가 나오는 콘서트 같은 것이 나오기 때문이다. 의미도 모르고 미국노래를 소리 만으로 왜워 매너리즘까지 흉내내며 부른다. 사실 나도 중학생 때 친구들 따라 해본 기억이 있다. 왜냐하면 주인공 나이가 나와 비슷하고, 나도 1960대 초기에 한국 서울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스 갱과는 관계가 없었어도 독제하의 한국의 청소년들 사이에 퍼저 있는 미국청년문화 같은 것을 경험하고 살았던 것이다. 
- 영화가 끝날 때에 주인공 소년이 여자 친구를 죽이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여와의 중국 한국 제목에서는 살인 사건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영어 제목에서는 기대할 수가 없는 스토리 앤징이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이 영화는 누구나가 좋아 할 영화는 아니나, 어떤 사람들을 좋아할 만한 영화라는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영화가 그리는 대만 사회의 사회학적 관찰 가치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를 보고 다음 날인 오늘, 이 영화에 대해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이 대만의 <Taiwan's New (Wave) Cinema>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대만의 뉴외이브 영화라는 것은 1980년대까지 대만의 영화계를 장악하고 있었던 흥미본위의 오버드라마틱 홍콩 영화를 벋어나는 대만식 뉴리얼리즘의 영화의 등장이라고 한다. 이 시작은 한편으로는 대만의 독제 계엄령 시대의 끝과도 일치한다.  대만의 사회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스토리에 큰 드라마나 클라이막스가 없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가 대만 영화계의 뉴 시네마의 대표작이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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