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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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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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8일 미우의 특집 조선학교 대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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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인디아나폴리스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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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입니다 아 오늘 또 어 그리고 오늘 특별히 일본에 살고 계시는 제일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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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 양선생님이 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영선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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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습니다 예 본인소개 부탁드릴게요 예에 저는에 양 대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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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다에 제일보 3세입니다에 저 부모님들께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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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제주도에서 일본에 건너오셔서 저는 1973년 생입니다에 조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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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 유치원으로 또 대학까지 다 나갔습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아예 반갑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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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난번에 예 어 그 린다 님하고 박교수 님하고 이제 일본의 그 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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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대학살 백준 백주기 행사에 다녀오시면서 그외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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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의 뭐 어 유적지 이런 곳을 또 방문하셨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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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 중심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예 일본에 다녀오신 그 내용으로 어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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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했었는데 요번에는 제 3편으로 어 조선학교 어를 진행하겠습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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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다시 기회를 주셔서 반갑습니다 지난번에는 간또 대학서 100주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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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서 일본에서 간도 추모제를 참석했었다 난 다음에는 히로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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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 오까야마 오사카에 있는 조선학교를 방문하게 됐거든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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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한 것에 대해서 미우의 방송에서 다시 소개할 수 있게 기회를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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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저가 처음에 갔었던 데는 9월 3일 날에 히로시마를 갔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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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갓 날이 그 히로시마 가무단 꽃치 피해라는 큰 공연을 했어요 그 공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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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큰 행사이지만 무엇보다도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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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지산은 75주년 경축 행사하기도 해서 아 이런 것도 일본에서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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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좀 신기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어요이 꽃찌 피해라는 공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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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 그러니까는 지금 재학생 졸업생 선생님 학부모가 다 합해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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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제 학교에서 그 고정 무용을 하셨던 분들이나 뭐 노래를 하셨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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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를 다셨던 분이 다 모여 가지고이 공연을 준비한대서 그래서이 공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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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수입금을 가지고 다시 조선학교에 후원금으로 지원할 수 있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각 지역 가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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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가무단 국구 가무단 어 오까야마 그랬나 제가 이름은 확실히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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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지역에 가모 단장님이 다 오셔 가지고 그 아주 학생부터 시작해서 아주 큰 공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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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더라고 근데 되게이 우리나라 전통 음악이랑 그리고 현대 내 악기랑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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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주가 돼서 굉장히 감흥이 있어요 왜냐면 거기에서 그 지금 한참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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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니 뭐 독도가 일본으로 뺏겨 가니 어쩌니 그러는데 거기서 그 울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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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이랑 노래로 노래도 막 했거든요 그면 와 너무너무 거기서 듣고 감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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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이었는데 어 이런 공연을 자주 하나 보다 그랬는데 그 공연이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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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를에 재정적인 거 그리고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하는 공연이라 그래서 더 어머니들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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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뿌듯하게 생각하시고 뜻 있는 행사였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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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짧은 시간에 참석할 수 있게 돼서 너무 고마웠어요 일본에 살고 계신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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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 그 후세들에게 우리 한국 혹은 조선 그런 문화를 계속 이렇게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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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그리고 그렇죠 아니 이제 2세 3세 어른분들이 이제 4세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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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들 테 예 학교를 지원 그 학생들이 지금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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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이나 후세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지원하는 거죠 예 양 선생님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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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의요 가급 보셨습니까 보신 적 있어요 저는 못 봤습니다 아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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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셨네네네 알고는 계세요 이런게 있다는 거 아 이런게 자 여러 지방에서 그 기획을 하기 때문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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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기획이 있다 하는 건 알고 있습니다네 여기가 이제이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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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극 단에 참여하고 산 사람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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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갈까요네 여기는 히로시마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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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인데요 저희가 갔을 때는음 부산 지역에서 조선학교를 지원하고 함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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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라는 지난번 여러분이 보셨던 차별 영화를 감독하던 김지훈 감독님 팀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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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저가 같이 방문했었어요네 여기 가운데에 앉아 계시는 분이 히로시마 우리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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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신데음 저희가 이제 처음에 찾아갔더니 저희를 이렇게 환영도 해 주시고 한 5분 좀 잠깐 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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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서 인사하시고 잠깐 기다리라 그러고 나가셨는데 어 그다음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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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 선생님이 오셔 갖고 우리 학교 구경해 보실래요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쫓아 갔더니 교정 선생님이 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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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가르키는 계시는 거예요 아 그래서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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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었구요 지 그랬더니 쏙 끝나니까 학생들을 또 집에 데려다 주고 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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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애들 차량 지원을 해야 된다고 갔다 올테니까 기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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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시더라구요 학생들이 하고 있는 활동 같은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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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남학생이나 여학생이 하고 있는 것도 보고 그리고는 이제 저희가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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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있는 아리랑이라고 하는 노인들이 계시는 요양 원를 다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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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계시는 연로하신 조선 분들을 돌보시는 데가 없는데 어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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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시작을 한 사업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거를를 그 노인 학교에 갔다 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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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사진에 불고기 파티를 한 거예요 그 갔다와 또 기다리라 그서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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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더니 교전 선생님이 코에 전 이렇게 막 거름이 껴 갖고 나타나실 가고 인제 식사하세요 이러더라고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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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선생님이이 학교 재반 일을 다하시고 수 도 가르치시고 학생들 반가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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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등학교 하는 것도 지도하시고 이렇게 선생님들이랑 손님들을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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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대접까지 아 1인 4역 5역을 다 하시네요 그러니까네 그러니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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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재정이 어려우니까 선생님들도 좀 부족하고 그 선생님들도 이은 다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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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고 정말로 규정 선생님이 정말로 린 다역을 하시는구나 아주 실감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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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학교였어요 히로시마 학교도 지금 70년이 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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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학교이고음 뭐 여기 보이는 분들이 이제 저희랑 같이 갔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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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 지원하시는 분들이랑 어 교장 선생님이랑 전부 다지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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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세요 근데 지금 학교 선생님들도 지금 양 선생님보다 어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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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들 같더라고요 그렇죠 예 양 선생님이 다니신 학교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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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입니다나요이 장님이 뭐 이거 여러 가지 일을 하시고 뭐 그런 거 비슷했나 예 다 그렇죠 아 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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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타입을 하면서 그 학교 그 운영하고 있죠 아 한 선생님이 여러 과목도 가르치시고 또 예 예 생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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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고 예 예 다인도 하거나 교도 보고 여러 가지 하시는 거죠 예 그래도 양 선생님이 다니신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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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라고 그러셨습니까 학교가 좀 크겠네요 학생수도 좀 많고 그 도교는 그 도교도 몇군데 학교였기 때문에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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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있고 중간 학교가 있고 도교의 고등학교는 제일 큰 학 입니다 아 그렇구나 예 이거 로지마 하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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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제가 그 대학 다닐 때 같이 대학에 있었던 그 분이기 때문에 압니다 아 그래서 지금 이렇게 미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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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까 제가 오히려 감동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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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예 제가 본 히로시마 시코 그랑 우까 세 군데를 다녔는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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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어 양 선생님보다 어리시고 동기 음 히 어신 분들이 교정 선생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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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고 계시고음 선생님들은 더 어리시고 그러니까 대학고 졸업하자마자 학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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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는 것 같아 그만큼 지금 교원들의 숫자가 굉장히 막 급박하게 돌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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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같아요음 예 예 그 이거는 이제 히로시마 학교를 방문하고 그다음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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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히로시마 원포 평화 공원을 방문했었는데요이 오른쪽에 있는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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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평 엄포 기념비 기념비인 여러분은 사진이 조금해서 잘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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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겠지만이 앞에 있는 이렇게 아치형이 기념비도 그거를 관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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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저 뒤에 있는 건물이 그 원폭이 때 폭파되었다 건물이에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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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옛날에 그 지금으로 말하면 무역관 무역센터 뭐 무역 센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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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 거기에서 굉장히 세계적으로 큰 그 무역 박람회가 있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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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큰 그러니까는이 전쟁 기념관으로 해서 폭파된 저 저 무역관을 보면서 전쟁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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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뜻으로요 밑에 다시는이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하고 점점점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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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대요 근데 그 옛날에는 그니까 아베 정권 이전에는 우리 일본에서 다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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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려고 많은 사람들이 죽는 이런게 없기를 바라니까 앞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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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고 사람들이 해석을 했었다는데 아베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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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는 다시는 전쟁을 해서지지 않겠다지면 안 되겠다 이런 뜻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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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을 하는게 나온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아베 정권이 얼마나 부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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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를 가지고 있는지 단편으로 보여 주는 거라고이 왼편에 지금 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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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신 분이 히로시마 교무 선생님이신데 분이 설명을 해 주시더라고요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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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있는 사진은 이게 이제이 언폭 평화공원 바깥에 원래 세워져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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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인 업이라고 해요 근데 원래 조선인 추업이라고 하지만은 고종의 자식이 있었던 그러니까 친일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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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던 친일파의 사람이 그 원폭 1 때 피해를 당해서 죽은 사람 추모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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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우는 건데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래도 아주고 그니까 높은 사람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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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인 하지만 그렇지만은이 평화 공원 바깥에 원래는 세워 놨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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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요 근데 그거를 이제이 평화 공원이 확장이 되면서이 공원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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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왔는데 공원 안으로 들어오면서 이게 조선인 희생자 추업이라고 이름을 바꿔서 올려놨다고 하더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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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요 앞에 있는 비석에는 이때 이제 조선인 추모비이다 뭐 이렇게 설명이 있지만 뒤에 있는 큰 비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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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은 그때 희생됐던 그 친일파 이름이 써져 있더라고요 근데 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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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총리가 요번에 그 윤성열 대통령을 이곳에 데리고 가서 여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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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희생자들을 일본 정부가 아직도 추모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보여줬다고 하더라고요 그거를 보고 이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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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을 생각해서 온게 아니라 너네 한국 정부는 그 뿌리가 친일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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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 잊지 말아라 이런 강압을 하려고 모시 온 거 아니냐 이렇게 설명을 하는데 굉장히 그 설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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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닿아요 지금 윤성열 정부가 하는 짓을 보면 그래서 평화공원에서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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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저가 뽑았습니다네 여기는 시코구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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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인데이 어 오른편에 보이는데 이제 저게 학교 교 교사인데 그에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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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이런 큰 글이 써져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자신들이 조국에 그니까 자기의 민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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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을 가리킬 수 있게 부모님들이 이렇게 희생해 주고 학교를 유지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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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것에 대해서 학생들이 써 놓았다고 그런 마음을 학교를 다니자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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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도 되는 거라고 하는데 저 말이 굉장히 마음에 와닿 있었고 시코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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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저희가 일본에 가서 그니까 히로시마에서 제 시내 안에 있는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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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항구로 가서 계속 여객선을 타고 다시 마을 버스 타고 또 택시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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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찾아간 학교 그 시후구 학교가 전교생이 지금 사진에 있는 거 열명 그 우리랑 같이 간 봄 단장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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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규 학생들이 함께 사진을 찍은 거고요 저 사진은 저희 미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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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우리 학교 함께 하는 동포 모임에서 제작한 그간 우리 학교를 지원하고 후원한다는 표시를 를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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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손수건을 요번에 학생들한테 나눠 줄 수 있었어요 그래서 함께 들고 사진 찍은 거예요 요화가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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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 중학생까지 같이 있는데 다 열명음 여기에서도 교정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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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키고 우리 한성해 주고 학생들 등학교 시켜 주고 또 같이 애들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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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조 소조 방가 후에 하는 활동도 또 같이 하시고 그리고 또 저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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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때 또 저녁 식사랑 같이 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엄청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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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하시고 고생하시고 있다 싶은 생각이 들 우리 같은 말 저렇게 헌신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 절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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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이 느껴지네요 그 우리 문화를 지키고 계승하려는 그런 마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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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다녔을 때는 학교에 학생 수가 몇 명 정도 있었어요 그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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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공 화가 되지 않을 때죠 예 저는 밖 다닐 때는 한 35년 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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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었기 때문에 한 제가 다닌 학교는 도교 제 5 학교였던에 도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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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쯤 크기였지만 대체로 한 학급에 30명 예음 정도음 어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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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았네요 예 예라 그러면은 1학년에서 뭐 몇 학급 있고 그 학 1학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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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반 2반 뭐 이렇게 있잖아요 1반 2반까지 없고 한 한 년에 30면 대체로 평균 주면 그것이 허 한 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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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기 때문에이 면 전도 250명 전도 있었죠 단 학교는 컸네요 그것은 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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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이었어 학교에서는 더 큰 학교는 어 어느 정도 줬는가 500명 쯤이 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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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 예 얜 그 제가 다녔을 때는음 지금은 그렇게 크지 않은가요 도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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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50명 쯤 있었던 제가 다니 학교도 7 80명 그렇 돼 있고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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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던 학교가 지금이 3 몇 명이죠 거의 1로 줄었네요 대체 그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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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네 예 인스럽지면 양 선생님은 고교 무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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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배제되기 전에 학교를 다니 물론 물론 그렇죠 예 예 오래 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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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그러면은 그때도 조선학교는 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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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였어요 그러 실제로는 사립 학교이고 사립학교 취급이 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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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그러면 학비가 어느 정도 했어요 아 비가 지금 그 제가 다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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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제가 어느 정도로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 그러니까 지금 학생들하고 저희들 학생 저희들 학생 시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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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차이는 학생들이 자기 부모의 그 사정을 걱정해서 저거에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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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겠습니다 하는 애들이 지금 나와 있다고 듣습니다 그 일본 학교를 산화되어 있고 학교는 무상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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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되어 있기 때문에에 돈이 걸린다는 거죠 그런 거 그런 걱정을 우리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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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음음 일반학교 가도 학교 가도 거의 비 돈이 걸리는데 다같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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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하는 것이 리가 생식의 였죠 물론 부는 있습니다 일본학교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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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지만 주세는 조선학교 계속 간다는 것이 우리가 학생때 그니까 30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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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쯤 전 이야기 그런 거 있죠 그러면은 그 학생 이유 중에 그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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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이유 중에 하나가 그 경제적인 이유일 것 같네요 제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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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에서 학교를서 일본학교 가는 이에서 어 고등학교로부터 일본학교 가는 이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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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큰 이소가 경제적인 이유라고는 실제로 말할 수 있죠 예 경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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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도 있고 또이 교과 과정을 또 승인을 안 하기 때문에 조선학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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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면 또 검정 부실 같이 어떤 학력 인정 고사를 또 봐야 되는 불편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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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거지 않습니까 그건 옛날에는 또 만났는데 최근에는 많이 풀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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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으로서 예 초등학교 고등학교를 나왔다 하더라도 일본의 군기 대학에도 수할 수 있게 지금 돼가고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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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옛날에 지금 김사장님 말씀하신 거 상당히 그것도 큰 이유였습니다 제가 조선학교 학생때는 조선학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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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전 안 되었기 때문에 그 국립대학 가련 도쿄 대학 교도 대학 그런 대학에 수험 못 했단 말입니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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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 할 수 있습니다 실력 있으면음 예 그러니까 우리 우리 학생 때는 토쿄 톤 중국학교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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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는데 일본에 그 다 다른 고교 다니는 애가 있었습니다 다블 스쿨 어 학교를 두 개를 같이 다녀요 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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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예 며치 있었습니다 그런 그런 징구가 지금은 아마 그런 거 없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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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니다 저거가 저거까지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자기 실력으로 일본 대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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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할 겁니다 지금은음네음 아 그러니까 검정고시를 봐야지 된다는게 없어진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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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조선학교 졸업한 그 실력으로 일본 학교를 그냥 바로 진급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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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는 말씀이에요 예 예 예에 그러니까 궁립 대학에 대한 수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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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이 조선학교 고등학교 졸업 빼도 네 그전에는 그 대학 응시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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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자가 응시를 할 수 있었지 않습니까 근데 조선학교 다닌 사람들은 그 수학 영어 이런 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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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지만 그 고교 학력으로 인정을 안 해 준 거예요 옛날에는 그래서 검정고시 같은 거를 봐야 다시 대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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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시를 할 수 있었다는 얘기죠 지금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제 그러니까 대학이라는 거는 그 금립 대학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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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학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립 대학들 속에서 개인이 판단해 거죠 그러면 입시를 줬다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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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도 안 된다는 대학도 있지 않습니까 그 기준은 극립 인줄 하니까 있죠 리비 학 교학 비롯한 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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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해야 다 인정하는 거죠 그렇죠 그 리 대학에서도 인정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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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에 반대 안 한다고 된 것은 2000년 이후입니다음 아 예 2003년 교입니다 아 예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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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립이 인전 되니까 지금 거의 모든 대학은 조선학교 처 빼도 그 수업 자격이 있다는 거죠 지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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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그냥 된게 아니고 법적으로 그 계속 소송을 제기하고 막 그렇게 해서 된 거죠 그때는 소송이라 보다 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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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로비 활동이죠 로비 활동 엔진도 하고 일본의 국회의원들 일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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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을 학교에 초청도 하고 학교를 보도로 하고 학생들이 학생들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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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도 하고 리도 그 시위 가드에서 그 그 시 행진도 하고 그런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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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년에 크게 했습니다 국립대학 수 쟁이라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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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 우리 역사에 남는 쟁입니다 거기 사한 차별은 2009년부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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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부터 예 년 10년 실제로 10년 그래서 제가 그 보충으로 좀 설명드리면네 고교무상 2010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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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 학교가 재되어 있고 아까 나왔던 일본의 국립대학 수험 자격 자격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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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도 우리가 그때는 2003년에 그 이렇게 결속을 치웠는데 일본 전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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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그 근저에는 먼저 어 다른다른 외국인 학교 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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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터네셔널 스라가 유럽의 인스 그런 걸 먼저 인정합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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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나라들 마지막에 가져오는 거죠 일본예서도 인정 별를 하는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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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유럽 학교 우선적으로 하고 그리고 아시안 학교를 나중에 하고 예 우리가 소리를 안내면 그냥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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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친다는 거죠 예 그 히 학교 학생들 앞으로 오케이입니다라고 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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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지만 다 대학들에서 알아서 하세요 아 자율적으로 판단하라 대학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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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성에서 일본 문부성에서 대학들에서 하는 걸 우리가 문부성이 반대 안한다 아 그렇 그러니까 문부성이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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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오케이라고 가지나 안 갔지만 실질적 그러는 인요한 거죠 그것이 2003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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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도쿄 증거나 또또 오사카도 그렇고 그 우수한 학생들 속에서는 도쿄 대학이나 교토 대학에 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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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 가 지금 있다는 거죠 아 예 예 그러니까 일본 정부는에 학력 인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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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무상화 제도에서의 차별 여러 가지 그런 차별 정책들을 계속 결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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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 하지 말라는 거잖아요 일본 정부는 그냥 없어졌으면 좋겠다는데 이렇게 끊임없이 투쟁을 통해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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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자격은 투쟁을 해서 쟁취를 했고 취했고 예 그다음에는 무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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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또 다시 계속되고 있는 거고 현재 싸움 중이고 예 현재 싸움 중이다 예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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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지금 보시고 있는 것처럼 시코쿠 학교를 이제 방문하는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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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을 이렇게 보는 중에 어떤 학생이 나와 가고 첼러 연습을 하더라고요 이렇게 하얀 저고리에 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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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학교 교복이 조선학교 교복고 그 복도에서 먼저 자기 혼자서 연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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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이제 다른 학생들이랑 같이 이렇게 합주하는 중에 혼자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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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근데이 학교 그 교 학교에서 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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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첫째도 노력이고 그다음은 수학이다 이게 학교에 써져 있는 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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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였는데 교원이 다섯 명이고 남학생은 이제 반가가 끝난 다음에 남학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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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조로 축구 연습을 하고 있었고 여학생들은 무용과랑 악기 소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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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는데 쪽에 이제 보면 오른쪽에는 이제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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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을 하는 거예요이 코코랑 오까야마 학생 수가 너무 적으니까 두세 학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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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 갖고 한 축구팀을 만들어서 축구를 이제 시합을 나간대요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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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번에이 구 축구 팀이랑 오까야마 축구 팀이랑 하에 가고 빛나리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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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인데 빛나리 팀이 요번에 축구 대회하는 데서 2등을 했다고 해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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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제가 감동적인게 뭐냐면 이렇게 학생 수도 줄고 일본 정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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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봤는데 또 교원 숫자도 적어서 열약한 환경인 거 같은데 학생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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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적으로 교육시키고 이렇게 풍부한 취미 활동 체육 활동까지 합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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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시키는이 모습이 저한테는 굉장히 감동적이에요 여러 가지 안 좋다고 그래서 대충 넘어가고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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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고 그냥 이런게 아니에요 시키는 거예요 모든 것을 다른 학교에서 오히려 할 수 없는 것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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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을 다해서 다 가리킨다는 거 이게 참 감동적입니다 정말로 감동적이었던
23:50
것이 저가 2017년에네 학교를 방문했었고 조선학교를 처음 방문했었는데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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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던 학교가 어디냐면 이바라기 이바라기 학교를 갔었거든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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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딱 들어갔는데 어디서 막 이렇게 짱짱한 아이들 합창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어 여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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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틀어 놨나 보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2층을 올라가니까 2학년 교실에 남학생 둘 여학생 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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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교실에서네 명이 합창을 하는데 교사가 떠내려가는 것처럼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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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랑하고 힘찬 무리를 하 거예요 진짜 그때 손 깜짝 놀랐고 그다음에 중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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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시를 가니까 중학교 3학년이라 그러는데 선생님 하나에 학생 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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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키는 거예요 근데 이제 선생님이 가리키면 학생이 재미가 없잖아 친구들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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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자습을 해 와서 선생님한테 가리키는 거예요 자기가 공부한게 맞는지를 선생님한테 설명하더라 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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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학생이이 학교에 유학 이발하기 초등학교 유 유치원이 아아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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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올 때부터 혼자 들어왔대 요 요번에 저가 여기 왔을 땐 그 학생이 고등학교 졸업을 했는데 처음 학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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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를 처음 들어올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선생님이랑 학생이 일대일로 그거를 졸업시키는 걸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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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랐어요 저는 왜냐면 저가 교회를 하니까 교회에 이제 교회 학교가 있잖아요 학생들이랑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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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들이 같이 오면 이제 학생들을 저희가 가리키는데 학생이 그랬던 최소한 세 명네 명만 와도 가르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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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이 생기니까 막 뭔가 활동도 하고 가르키고 그래요 근데 어느 날 이제 학생의 둘이 오거나 뭐 한 학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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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 그러면은 재미없잖아요 그럼 너 오늘은 뭐 비디오 봐 그리고 우리도 그냥 가서 예배드리고 싶으니까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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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거나 뭐 대충 소홀하게 하거든요 아니면은 뭐 다른 반에 붙이거나 아니면 너 오늘 나랑 같이 예배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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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 그냥 예배실에 데고 들어가는데 어떻게 유치원생부터 고등학 1학년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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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을 1학년 선생님 하나를 매년 올라가면서 그 학생을 가리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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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는지 그 학교 교회 선생님들의 의지랑 그 학교 시스템이라는게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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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정말로 그때 감동받았고 저도 선생님으로서 교회 선생님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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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부끄러웠어요 작가님이나 저 같은 경우는 그 진짜 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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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이렇게 공부를 하는데 대학교 들어가는게 굉장히 중요했거든요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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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가야 되고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데 취직 하니까 큰 회사에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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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음악 미술 체육 이런 거는 대부분 안 했어요 다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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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술음악이는 대충 넘어갔어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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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조선학교 다니시면서 어떤 악기를 다루거나 체육 활동 같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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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하셨나요 어 그러니까 했죠 그 그 높은 기술기 없었지만 그러니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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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 후에 그 소저라고 해서 그 다같이 그 소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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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소조 예술 다 학교는 두 개 들어가라고 돼 있었기 때문에 저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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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하고 또 저도 좀 민족 강유나 그 이제 고의 못하지만 조금 만져본 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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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죠 예 소전하는 그 시간에 다 하게 되는 겁니다 지금 어떤 학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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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셨어요 저는 아마 그때 지금 학생이 지금 가지고 있는 적대를 조금 했던 기억이납니다 이제 못하지만 아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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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선생님들이 좀 그런 생각이 들어가요 어떤 사명감을 갖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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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학생들을 진짜 참교육으로 그런 목적을 갖고 가르치시는 그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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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님 이러 생각이 들어가는데 어떻겠어요 그 선생님 결국 그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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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그 이제 젊은 선생들이 많이 계시는 속에서 자기가이 학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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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서 자기가이 선생님들로부터 배워서 자기가 보람 있게 살고 있다 자기가 기준한 것을 배웠다 그래서 그 기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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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배우고 보람 있게 살고 있는 것을 이제 다음 세대들에게 넘겨 줘야 되겠다 그런 사명감 책임감 이런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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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선생들을 그 그 정신 세계 랄까 선생님들을 그 떠밀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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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력이 아닌가 그렇게 저는 생각합니다 양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양 선생님 가르쳤던 그 선생님의 대한 기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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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게 있어요 아 유러 선생이 계셨기 때문에 많이 있고 결국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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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 제일 중요한은 뭐냐면 그 하나는 전제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우리가 다같이 앞으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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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못 넣 거 아니고 서로 옆 앞도 다 어깨 겪고 앞으로 나가야 되겠다 이걸 많이 배웠죠 우리가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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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부 조등학교 4년 선단에 입단하면서 단이라고 서년 단이라고 있 있는데 거기에 입단하면서 이걸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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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죠 공부할 때는 좋네요 예 그러니까 공부할 때 학습할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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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학교 다닐 때도에 혼자서 공부했다 치더라도 칭찬이 안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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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죠에 공물 다 같이해야 된다 그 서로 같이해야 된다 아는 사람 배워주고 모르는 사람 배워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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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되겠다 이런 걸 나는 오릴 때부터 왔기 때문에 이것 실은 응당한 걸로 생각 해왔죠 당연한 걸로 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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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일본 사이를 보고 또이 남분 보니까 이거 당연하지 않았다는 거죠 우리가 조선학교에서 배웠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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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을 배워왔다고 생각해왔지만 너무나도 개시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유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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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고 좋은 말씀이시네요 예 진짜 우리한테 필요한 교육인데 지금 그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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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빼고 가리키는 거 같아요 경쟁만 멀죠 학생들 경쟁 경쟁 경쟁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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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아야 된다 한국에서 미국도 그렇지만음 그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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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짝이랑 막 이렇게 금가 놓고 하고 뭐 시험 보면은 서로 안 가르쳐 주려고 이렇게 가려 놓고서는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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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 그러니까 우리 조선학교는 결국 다같이 단결 해야만 일본에서 살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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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다 하는 것을 초창기에 세 어르신들이 세웠을 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힘을 합쳐야 된다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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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그 민족성을 지키고게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 일심 단계야 된다
30:00
이것이 실은 이것이 제일 큰 전통이라는 거죠네 전통이 있다고 한다면 전음성 있게 살아야 한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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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예 아 그래야 단결 그래 그러다면 단결해야 된다네 존엄성 있게 살기 위해서 단결해야 된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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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멋있어 왜냐면 저들 또 일제 신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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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에 이름 그런 걸 찾기 위해서 한 거기 때문에 말과 그 찾기 위해서 한 거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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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죠 예 여기는 오까야마 학교이고 오 오까야마이 지금 전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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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손수건이네 저희가 제작할 때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 이름을 전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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넣는다고 넣었어요 그래서 이제 시 학생들한테 딱 나눠주고 너네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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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찾아봐 이러는데 어떤 학생이 탁 와 갖고 가야만 없어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야 다 넣어 그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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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만 없어요 그리고 다가 버리더라고요 아주 잘생긴 학생이 그래서 아닌데 하고 막 찾아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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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까 야마가 없고 와까 야마가 두 개인가 아 그래서 오카야마는 오까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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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없어요 죄송해요 그러고 전달했어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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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에서도 어 선생님들이 약깐 여러 그 이제 저희가 갔을 때는 아까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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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면음 예 왼편에 이제 학생들이 전부 다 태권도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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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는 그 지역에 태권도를 도장을 하시는 조선 분들이이 학교에 와서 자원봉사로 학생들한테 매주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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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를 가르쳐 주신다고 하더라고요 그 선생님이 부족하니까 근데이 강당이 아직 잘 돼 있잖아요 바닥도 나무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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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고 불도 들와 있고 이랬는데 이게 지난번에 한번 포구가 굉장히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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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을 때이 비가 새 가지고이 강단이 엉망이었다 쓸 수가 없었대요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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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에 계신 제 옆에 이렇게 까만 티를 입고 계신 분이이 어머니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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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이 근데 그 어머니회 회장 분이 설명을 해 주시더라고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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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들이이 이렇게 공연하나요 바자회 같은 거 해 가지고 그 수입금으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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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을 새로고 강당도 새로 예 재건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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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한다 그러죠 다시 만들 학생들 부족한 것들 뭐 그런 것도 다 해 주신다고 그래서 이분이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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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는게 길잡이라고 다음 장면에 길잡이라고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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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잡이라고 제가 이제 이제 만약에 양 선생님처럼 3세라고 하면 지금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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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제 자식이 지금 4세로 선생님이고 그 자식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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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들이 5세 아이들이 지금 학교를 다니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는 그 4세 세를 계속해서 끌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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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서 어머니들이 끌고 간다 길잡이가 되어 준다 이런 뜻으로이 어머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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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길잡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이 길잡이에 이제 학교 운영에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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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도 다 뒷받침대 해 주시고 뭐 수업에 필요한 거라든지 교 학교 재정을 도와주기도 하는데 어머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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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일본에서 이제 일하시니 일 끝나고 또 가족들 저녁까지 다 해 주고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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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쯤 이제 학교에 모여 갖고 연습을 하시더라고요 근데 올해도 이제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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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있으시대요 그래서 공연 연습을 하라 이렇게 모이 모이신 거예요 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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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머니들이 공연 연습 하신다 그러니까 궁금해서 갔었는데 그때 여기에 부서 보시면 가운데 초록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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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입으신 분은 그 봄 일본 부산에서 활동하신 조선학교 단장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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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오신 부마에서 오신 하연아 단장님이신 이분이 한국에서 부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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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조 무양 교수시국선언 걸 보다가 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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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도 해 그러면서 이렇게 보여줬거든요 그랬더니 그 어머니들 그걸 보고 바로로 이렇게 배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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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예요 막 너무 열심히 배우시는 거예요 그리고 어 이런 건 한 번도 안 해 봤다 그러면서 막 또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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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 그러면 또 한번 해 주고 뭐 다른 건 없어요 그러면 또 다른 거 보여 주고 막 이래 갖고 막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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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시는데 나중에 들으니까 일본에서는 이렇게 선생님이 와서 이렇게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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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쳐 준 거는이 어머니들이 보통 4 3세 되시는 분들인데 또 처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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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 학교 때부터 이게 이렇게 다 소조로 다 배웠지만 다들 이렇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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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으로 배우든지 그냥 선배가 이렇게 가르쳐 주는 거 따라하는 걸렸었는데 이렇게 처음 하는 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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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사람한테 배워본 적이 처음이라고음 그러면서 너무너무 자기네들한테는 좋은 시간이 됐고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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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고 제가 보기 아니 그럼 70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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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그냥 이렇게 선배가 후배한테 가르쳐 주는 걸로이 공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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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어 왔구나 우리나라 고전 문화를 다 이어 왔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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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감동적이었어요 궁금한 뭐 그 남한에서는 그 지원을 별로 안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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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들었으니까 뭐 70년 동안 처음으로 선생님이 오셔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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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해 가지고 근데 북한에서는 또 안 했나 보죠 북한에서는 좀 더 지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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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해오지 않았나요 이렇게 사람 와갖고 가르쳐 주는 건 없고 이제 학생들이 가서 배워 온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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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동영상을 보고 연습을 하구나 그러니까 그에서 그 제에 제 학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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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성에 대서 상당 큰 관심 가져오면서 아까 그 민족 관이나 민족
35:33
계약도 60년대 70년대부터 일본에 보내와 있죠 아까 보셨던 그 해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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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은 해금이 그러니까 소해금 이죠 그거 그 소해금이라는 거는 북에서 만든 민족 계량 기죠 아마 그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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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해금 이남에는 없을 겁니다 그 이남 분들이 가시면 그 소해금 다 지목해서 보시는 거 그 럭 보더라도 다에서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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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니다 그래서 무용도 북의 조선 무용을 많이 우리 학교는 배워 왔죠 그래서 세계적으로는 조선 대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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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들이 많이 배치되기 때문에 거기서 배운 사람들이 다 정국에 져서 한다는 것이 하나 있고 하에는 아까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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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대로 통신 교육이라 해서 지금은 좀 못 가는데에 우리 학생 식기의 친구들이라 그가 평야의 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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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현 자이라가 그런데 들어간 애들이 몇몇 명 있습니다 그래서 그 본국에서 배워서 돌아온다던 또 그 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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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되는 그 공의원 국에서는 공의원 잠가 더 많이 배우고 돌아온다던 그런 그 그 기획이까 그런 것이 참 많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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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학생들도 가고 어른들도 그 금강상 가극단 또 지방 가무단 그런 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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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가서 실제로 연습해서 돌아온다 그런 것으로 통해서 조선의 무용 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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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 그런 민족 기약 그런 것들 배우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고 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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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습니다 아 그럼 역시 북한이 지원이 많았네요 이런 그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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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이런 악기 같은 것도 다 보내줘서 처음에 다 연습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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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더라고요 예 예 예 예 그 지금은 조금 오기가
37:01
어려운데 예 원래 다 옛날에 보내 와준 거죠 아 그렇다 그러더라고요 응 이때도 조그만 소고 있잖아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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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를 북에서는 굉장히 가볍게 만들어 갖고 보내 줬었는데 그게 이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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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랑 오고 가지를 못하니까 그게 다 떨어졌대요 예예 떨어졌다고 그거를
37:21
새로 만들어야지 되는데 혹시 남쪽에서는 이런 걸 만들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부
37:27
음 응 응 응음 예 그럼이 동영상 여기 있는데 오른쪽이 동영상인데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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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어 볼까요네네 어머니들이 이렇게 한번 시범을 보여주면 그대로 따라해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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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37:53
런 시너 해명
38:00
을 앞 정
38:19
시작 아이거 아주 해요 실력이라 짠한 거죠 암으로 넘어갈까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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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이제 어 로마랑 시코구 오카야마 학교를 방문하고 잠깐 하루 시간이
38:35
나서 교도에 있는 우토로 평화 기념관을 방문했었어요요 오른편에 이제
38:40
뒤쪽에 있는 현대 건물은 그때 문재인 대통령령 마지막 때쯤 그때 새로
38:46
지어서 오픈하신 거고이 왼편에 이렇게 나무로 되어 있는 집이 그때 우토로
38:52
사람들이 살았던 한파라는 집이래요 그 실제 모형이 인데 그 우토로
38:58
지역이라는 것이 원래는 그 미비시 우리는 자동차 회사로 알고 있는데 미비 씨가 처음에 비행장을 만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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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더라고요 시비시 회사에서 비행장을 만들던 중에 전쟁이 끝난 거예요
39:11
그래서 그 비행장을 만들려니 땅을 평평하게 그 작업하는 사람들이 모여
39:17
살았던 그 강제 노 강제 노동구 끌려오고 또 징용되어 조선 사람들이
39:23
살았던 집이 지금이 나무를 들어져 있는 한바 집에요 그이 우토로 평화
39:29
기념관을 조선학교 학생들이 우리가 이렇게 변합 가는 것처럼 트로 평화
39:35
기념관 여러 학교에서 방문을 온다 그러는데이 조 여기에는 지금 근호
39:40
조선 초급학교 6학년 학생들이 와서 보고 듣고 자기네들 느낀 소감을 이렇게 적어서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39:47
그래서 학교에 전시되어 있는 거를 제가 찍어왔어요 자 여기 그 부관장
39:53
만났습니까 김수이 선생님이 픽업해 줬어요 만났죠 그래서
39:59
토의 김수환 선생도 어 제가 대식이 그 친구이고 아까 오카야마에 주가
40:05
교장도 우리 대식 아는 사이이고 또 히로시마 조고의 박지준 교장도 우리 대식 아는 사이입니다 우리가
40:11
조선대학음을 해서 다 이렇게 전국에서 이렇게 제보들 오을 지키기 위해서
40:16
지키자고 발동하고 있는 것이고 그 김수한 부관장은 제가 그 같은 반에서
40:22
배웠기 때문에 참 친합니다 그래서도 배우는 것이 많 그 부관장 스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말
40:29
하죠 지난날 차별과 편견 그 가난과 곤란의 산이었던 우토로이 마을이
40:35
님들이 더럽다 어지럽다고 냄새난다고 그렇게 불리웠던이 마을이 돈들이 단결해서 차별과이 부조리를 고치자고
40:44
세상에 알리자고 해서 해 나가니까 지금 세상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뭘 하러 오는가 인권과 평화를 배다
40:51
이렇게 돈들이 단결해서 뭉치면이 이렇게 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는 어떤 그 견제 회사에서도 인권을 배러
40:59
온다 또 어떤 학생들이 아까 나왔는데 일본 학생들이 인권을 배러 온다 또 외국에서도 역사를 배러 온다 어
41:04
이렇게 되었다 옛날에는 그런 거 상상도 못했지만 이렇게 단결해 일 하자 하니까 그렇게 할 수 있고 일이
41:12
차별 받고가 봤던이 역사를 새로 바꿀 수 있다 이런 걸 김수환 선생이 작거한테 이야기합니다 맞아요네 아이
41:20
여기 왼편에 있는 데가 1층 도서관이 하고 방문 오시는 분들 맞는 다기도
41:25
한데 저희가 갔을 때도 예 일본에서이 일본 분들이 이렇게 단체로 오셔
41:31
가지고 이렇게 막 설명 듣고 위에 이게 박물관 전 시간 하는 것도 보고
41:37
다 사인하시는게 다 본 분들이 오셨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본 분들이
41:44
많이 오신다고 안 그래도 김수 김주환 부자님이 설명해 주셨어요 그리고요
41:50
왼편에 있는 동영상은 여러분도 꼭 한번 좀 깊이 눈여겨 드셨으면
41:55
좋겠어요이 이 우토로 마을에 있던 사람들이 투쟁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했었는지를 적은 전지라 그러네 우리가
42:03
왜 싸우고 있는지를 했었던 그런 건데 그거를 잠깐 그 부장님이 설명해
42:09
주시는 거예요음 예 될까요네 우토로는 제일 분포의 고향이다 우토로는 반전의
42:16
기념비이다 우토로를 없애는 것은 제일 포의 역사를 없애는 것이다 우토로를 없애는
42:24
것은 일본의를 없는 것이다 우토로를 없애는 것은 일본인의 양심을 없애는
42:32
것이다 그 토로가 토로가이 상징하고 있는 뜻이요 안이 말 안에 다 들어가
42:39
있잖아요 아까 양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인권이나 평화를 배우로 많은 사람이 온다고 했던 것처럼 그 우토로
42:48
기념관이다 것이 원래는 없었잖아요 그냥 우토로 사람들이 이제 미비시 그
42:55
회사에서이 우토 로 지역 사람들을 다 쫓아내고 자기네 땅을 자기네가 쓰고 싶은
43:00
모양이었는데 다 철거 명령을 내리니까 근데 비라는 회사가 일단 세계적인
43:07
회사잖아요 근데 그 회사 브랜드 네임으로 철거할 수가 없으니까 그
43:12
중간에 다다른 회사 이름을 써서 그니까 판 것처럼 그래서 그 회사에서
43:17
다 철거 명령을 내린 거예요 그러니까이 철거 명령을 받고 한국이나
43:23
해외에 있는 동포들이 전부 다 후원금을 내서 이 우토로 마을을 지키겠다고 막 후원금도 내고
43:29
지키겠다는 운동을 하고 있을 때 그거 그 사람들이 한국 정부를 흔들어서 정부에서 약간의 지원금을 받아서이
43:37
우토로 기념관이 세워지게 되었다고 [음악] 하더라고요이 지도가 왼편에 있는 이게
43:45
빨간색이 있었던 데가 전부 다 원래 우토로 마을 사람들이 살았던 데고
43:51
그리고 그미 cbc 전체가 비행장 이었잖아요 근데 이제 지금 현재
43:57
우토로 전체 우토로 마을에서 우토로 기념관이 차지하고 있는 데가요 노란색
44:03
파란색 있는 지역이고 왼편에 있는 사진이 비행장을 깎으면서 강에
44:09
있는데이 강 옆에 있는 마을이 이제 한인들이 조선 사람들이 살았던 가바란
44:14
그 마을인데 거기에는 상하수도 시설이 없었대요 그러니깐 냄새나고 더러울
44:21
수밖에 없죠 그리고도 또이 강이 그림으로 봐서는 마을보다 밑에 있는
44:26
것처럼 보이지만은 사람들이 쓰면은 강이 사람들이 머리만큼 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조금만 비만
44:33
오면은이 하천이 넘쳐서이 조선인 사람 마을에 넘쳐 오는 거예요 그니까
44:38
장기적으로 침수 지역이기도 하고 거기에 상할 수도가 없던 데서 조선
44:44
사람들이 살았던 거죠 얼마나 열악한 지역 조선 사람들이 차별받고 일본 정부한테 무시되면 완전히 소외되면서
44:52
살았었는지 볼 수 있는 지역이고 증거하는 지역이 이라고 생각해요 그네
44:57
다음은 오사가 초급학교 넘어갈까요네 아 여기는 이제 오사가 초급학교
45:04
있고요 어 오른편에 있는 사진이 저희가 학교 토요일 날 오후 오전에
45:09
도착했었는데 토요일 날 오전에 나와서 그 학교 행사를 위해서 준비한다고
45:16
준비 연습 그니까 소조 특별 연습을 하고 있더라고요 여학생들이서 같이
45:21
찍은 학교이고 왼 사진이고 왼편에는 그 조선학 학교 초급학교 정문이 음음
45:28
예 예 그리고이 왼편에 있는 분 저랑 이제 박국영 스님 사이에 계신 분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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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가 조선학교 교교 무상화 차별이 시작됐을 때부터 그 대법원 판결이 날
45:42
때까지 투쟁할 때 함께 하셨던 이승현 변호사님을 거기서 뵀어요 이승현
45:48
변호사님 부부인데 그 우리가 승소할 때도 이렇게 승소했다고 나오시고 했을 때도
45:55
했다고 이렇게 즐고 나오시는음 그때 그 변호사님을 뵐 수 있어서 저도
46:00
굉장히 반가웠고 그 되게 잘생기신 분이세요 또 조선학교 굉장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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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기셨고 오른편의 사진은 저가 갔을 때 안영학 선수가 그 조선학교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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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시를 운영하시니이 오사카에 와서 그날은 그 축구 교시를 하고 계셨었어요 근데 막 굉장히 더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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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인데 학생들이 너무너무 열심히 막 축구를 연습을 하고 있길래 그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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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선생님이랑 저랑 학생들한테 아이스크림이랑이 차가운 음료수 같은 거를 사다가 줬었어요 그랬더니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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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다 하나씩 가져가면서 너무 반가워하고 좋아해서가 쁜 마음으로 찍어 왔어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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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 예 다음은 그 오사카의 그 절 통곡 조선인 절
46:50
통곡까요네네음 여기는 이제 조손 우사가 있는 조소인 절이라고 하는데
46:56
예네네 통국 나라의 통일 아 나라의 통일 일 나라의 통일서 통국 사입니다
47:04
동국사에 예이 보면은 그 제주 43 추모비도 있고 뭐 평화 통일을
47:12
기원하는 추모비도 있고 그리고 또 독일이 서독과 동독이 통일될 때 무너졌던 그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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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이라 그러나 아 그 벽 통일의 벽 있잖아요 예 예 예 예 을 응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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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개인이 소장하다가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 소장하다가 이곳에다가 헌납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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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그에 있는 직용 노동 자비는 응 만간 관 예 만간 탕이이 직용 자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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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서 아세요 양 선생님 교또 교이 이거 아니요 이거 사과예요 통국사
47:47
국사에 국사에 이거 새로 치운 겁니까 아니요 아니요 아니 만간 그 제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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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교 만관 탄 있었습니다 아 그 교에 일이 온 거예요 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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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왔다고 그러시 않 옮겨 왔는지 응네 옮겨왔어요 어 그런 아 그런
48:04
거구나 아 맞네요 교도에 있던 거 예 교도에 있던 빠 만간 기념관에 만간
48:09
기념관이 문 닫았습니다네 그게 문닫 중서 이쪽으로 왔다 통국사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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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더라고 예 예 그렇구나 응네 도망 당간 망간 예 그렇습니다 예 왜 닫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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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는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그 아마 은영이 어려워서 아닙니까음 그 기념관 그 개인이
48:30
운영했던 기념관 아마 그 그런 겁니다 예 예 원래는 이것이 그 일본 나라에서 해야 되는데 근데 개인이
48:37
운영하다 보니까 어려웠음을 최근에 달았다고 듣고 있는데 아마 동국사 주지스님께서 그걸 알아서 이걸 또 그
48:45
해야 된다 해서 가져오신 거 아닙니까 그렇게 추적이 됩니다 아마네네 이게 조선 탄강 노동자 진인데 어디가
48:53
어디서 유치하겠다는 데가 없어서 오사카까지 음 저 생각에는 잘 보이는서 있었으면
49:00
좋겠다 싶었는데 아 님이 응 스님이 이쪽으로 보실래요 그러면서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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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으로 데리고 갔더라고요 그래서 구속에 거 볼게 있나 그리고 갔는데 이게 있다고 보여 주셔서 아 이렇게
49:13
우리 역사를를 증명하는 그런 동상인데 이렇게 구석에 와 있는게 계
49:20
가게 지금 우리나라 현실을 보는 거 같아서음 음 봤어요 동국사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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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여러 가지 분들이 그 오시기 때문에 아마 주지 스님께서도 조금
49:34
사양 하셔서 뒤편에 넣었는지 그러니까요음 앞에다 놓 수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지 지적 관계 때문 여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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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오니까 응 네예 그이 그 간제 조원 진연비 그 영산에 있는 거랑
49:48
비슷한 거죠 용산 산 서울의 영산 역 앞에 있는 것이랑 이거 비슷한 거죠
49:55
같은 거 아닙니까 이거 아마 같은 겁니다 몰 아 같은 거예요 예 예 예 영산 역 앞에 있습니다 예 그 유한비
50:03
소녀상 비를 만드신 김서경 작가님이 같이
50:09
제작하시고 우리나라 민주노총이대 노총에서 세워진 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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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요 아 그게 같은 거군요 아마 같은 그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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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적인 이유로 해서 망간 그 노동자 동상이 이전에 해오고 근데 뭐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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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에 전시도 못 되고 뭐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일본에서 사시는 제일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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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들이 받는 그 차별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그게 가늠이 잘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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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그 많은 차별을 딛고 꿋꿋하게 살아가시는 거 같은데 뭐 그 점에
50:51
대해서 좀 해주실 말씀 있으신가요 양선생님 그러니까 아 그 저는 이제
50:57
40대 이제 50대 들어갑니다만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것이 그
51:03
나의 그 강한 차별인식 자기 속에서는 잘 모르는
51:08
거죠 그래서 저는 그나마 조선학교에서 이렇게 많이 배워서 전 있게 살자고
51:14
이렇게 하는 사람 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크게는 차를 안 느끼지만 돈는
51:21
조선학교 못 다니도 있고 못다 분도 계시고 또 가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51:26
한당 좀 차별 받고 있다 이제 지지다 이제 힘겹다 하는 그런 사람도 진에 많이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사람마다
51:33
도수가 달라서 내가 한한 목소리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는 말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에
51:39
지금에 제약업 비슷한 동합 쯤 되는 요성이에 조선인은 조선 조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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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라이 타에 그 말 가지고 소송 일으킨 이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소송에서 이겼습니다 이번에 응 그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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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 안 다님 분입니다 여성인데 여러 가지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그런 분들을 치면 지금 차별에
52:01
한 한참 심하다고 지금 느끼고 있을 겁니다 예 조선학교에서 똘똘 문치는 사람들은 차별은 심하지만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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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에서 나아가자 이렇게 생각을 으니까 아주 편한 아주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니까 지금 그 눈에
52:14
보이는 자별 눈에 안 보이는 자별 그래서 지금 온제 인간이 수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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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없애버리자는이 교묘한이 자별까 수법 이런 것이 많이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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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차별이 이렇습니다 한마디로는 찍을 수 없지만 그런데 지금 그런 상황가 있다는 것은 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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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잡한 상황이다 말하다 생각합니다음네네 그러니까 그럴수록
52:37
제돈 포들 문제는 일본의 사회 문제입니다 일본 사회의 성숙도 일본
52:43
사회의 관용성 일본 사회의 폭 아량 이것이 제일 외국인에 대한 문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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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목인 선인들의 대한이 문제를 해결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이 일본의 미래에 달려 있다고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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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더 더 좋은 사회로 발전하자 질소인 문제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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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면 과거 역사 문제가 포함해서 이걸 잘 포지 못 포지 못한다면
53:05
일본은 발전 못한다 반대로 말하면 일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손인 문제 손인 학교의 문제 대해서 잘 가야
53:12
된다 이걸 우리는 나는 생각하고 있고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 일본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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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불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일본 사람들 속에서 조선학교는 전 조선학교 관심 가져야 되겠다 조선학교를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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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다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일본이 명치 시대의 신민지 전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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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서도 유체 되는 것도 있고 일본이 전후에 미국이라는 그 오을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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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고에 반송 안해원이 일본의 전후에 대해서도 돌이켜보는 그 하나의 산증이
53:43
조선 학교이기 때문에 조선학교는 우리 제 부들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일본 사회를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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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합니다 맞아 맞 아유 너무 잘 들었습니다 양선생님 그이 조선학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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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다니시고 졸업을 하셔서 그런지 그 민족 자주 뭐 어떤 민족성 그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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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강하시고 예 하시는 말씀이 그냥 이게 딱 와닿 아 이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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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하는 어떤 아 고맙습니다 시원하게 예 시원하게 들리네요 정말 3세 이신데도 한국말을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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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셔서 고맙습니다 아 예 그 존경 예 막 세 면 참 좀 힘들 텐데
54:26
한국말을 하더라도이 서둘 수가 있는데 너무
54:31
잘하세요습니다 아 편의한 말입니다 편의한 문화입니다 그 이제 시간이 많이 갔고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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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도 이제 또 가셔야 되니까 미주 들한테 하시고 싶은 말씀 또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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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우리 일본에서도 일본 전부의 별과 탄압 속에서도 리 지켜왔지만 미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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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른 환경인가 아니면 더 쉬운 환경인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조선 전쟁이 끝나야 우리의 근본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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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면 조선과 미국의 전쟁이 끝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든 여러분들의 역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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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바른 미에서 더 크다고 생각하며 참 서로 힘을 합쳐서 우리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 번영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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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되겠다 하는 걸 절실히 느낍니다 예 당한 말씀이십니다 맞습니다 예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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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 고맙습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린다님
55:26
예예 린다님 이렇게 일본에 왔다 갔다 하시고 또 막 시간이 없는데도 이렇게
55:31
여행도 다시고 다니시고 하면서 이렇게 양 선생님이라 그가 제일동포 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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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게 되는 기기가 되고 조선학교에 대해서 하나도 몰랐는데 아무것도이 많은이 노력 끝에 이렇게
55:43
점점 알게 돼서 참 다행입니다 예 앞으로 탁드립니다 예 앞으로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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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우리 미주한인 우리 세상 우리 방송에서 계속 방송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마지막 말씀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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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맞았습니다네 고맙습니다 예 맙
56:07
미습니다 했습니다네 이거는 요번 10월 31일 다음 주 화요일
56:13
날인데요 12시에서 터 1시까지의 있는 일본 대사관 앞에서 조선학교
56:19
차별 반대 집회를 하는 거예요 영어로 나가 있지만 그니까 올해가 세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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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집회를 하는 거거든요 미국에 있는 여러 시민 단체들이 함께 하는
56:33
집회이다 차별 받는 것이 우리 해외 동포들 테도 또
56:39
차별을 굉장히 민감하잖아요 우리한테 하지만 이거는 일반 개인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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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학생들이 교육의 권리를 박탈하는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우리
56:50
아이들의 교육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저희 차별 운동하시는 것 꼭 여러분도
56:55
함께 동참해 주시고 관심 가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러니까 그 영어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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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민족 분들 특히 이제 인권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신 분들 인권 활동가들
57:08
이런 분들이 관심을 갖고 여기에이 많이 오시는 거죠네네 그 뉴욕에 있는 시 그니까
57:14
미국 시민 단체랑 일본 분들도 참여하시고 재한 군인회 분들도
57:22
참여하시고네네네 예 말씀 고맙습니다 네 예 자카 님 진행하시려고 수고하셨고 린다님 또 설명 또 양
57:29
선생님 모시고 좋은 내용 정말 신선한 내용이었어요 신선한 내용 오늘 잘
57:35
들었습니다 앞으로 린 담보 님의 조선학교 특집 계속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네
57:42
오늘 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57:50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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